'기능 구원'의 심층 연구 몇 가지 - 조직 신학의 구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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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 구원'의 심층 연구 몇 가지 - 조직 신학의 구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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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 현실의 부분적 종말


우주 전체를 끝내는 '우주적인' 종말이 앞으로 한 번 있을 것인데 이 일은 단 한 번입니다.

한 사람의 평생을 끝내는 '개인적인' 종말도 한 번은 있을 것인데 이 일도 단 한 번입니다.

우주적 종말과 개인적 죽음뿐 아니라 한 개인의 매 순간도 항상 한 번의 기회로 끝납니다.

그 매 순간 행동이 죄면 그 사람 속에는 죄의 기능이, 의를 행하면 의의 기능이 생기는데,

한 번 만들어 진 이 기능은 없어 지지 아니하니 다시는 고칠 수 없는 과거가 되어 버립니다.


따라서 매 현실은 우리 속에 있는 각 요소에게 그 요소적으로는 세상 마지막 날이 됩니다.

죄의 기능을 만들고 그 현실이 끝나는가 의의 기능을 만들고 끝나는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다음 날에 새로 행동하고 새로 만들 기능은 그 다음에 해당 된 것이고 오늘 끝이 난 것은

오늘 이 현실을 통과하면서 죄와 의 둘 중에 하나로 결정 되고 그 결정은 번복이 없습니다.


평생 살면서 의를 행했던 순간을 전부 합하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 갈 때 우리 실력이 되고

평생 살면서 죄를 지었던 순간을 모으면 우리가 지옥에 버릴 우리의 쓰레기 배출양입니다.

그 행위도 행위 자체로 하나님 앞에 계산이 되지만 그 행위가 만든 기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왜 행위와 기능을 따로 구별해야 할까?


2. 행위와 기능의 관계


'행위'라고 표현하는 것은 죄나 의를 그 순간 단면적으로 살펴 연구해야 유익하기 때문이고

'기능'은 그 행위들이 앞 뒤 행위에 연결이 되어 연속성 차원의 문제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일단 한 번밖에 주어 지지 않은 현실에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 문제는 '행위'로 연구하되

그 현실에서 죄를 짓게 될 때는 그 죄를 지을 수 있도록 미리 죄 짓기 좋은 여건이 있었고

또 그 현실에서 한 번 더 죄를 지으면 그 다음에는 죄를 더 익숙하게 잘 짓게 될 것입니다.

의든 죄든 어떤 경우든 한 행동이 만들어 질 때는 그 순간의 투쟁과 결정도 중요한 것이나

동시에 과거 지은 죄와 과거 행한 의가 다시 오는 새 현실에서 심각하게 영향을 미칩니다.

이렇게 매 현실에서 죄와 의를 결정할 때 이어 지는 이 면을 '기능'으로 살피는 것입니다.


3. 구체적으로 답변을 안내한다면


: [1] 심신의 기능 구원은 매 현실마다 단회성인가? 연속성인가?


->

개별 기능은 매 현실마다 단번의 기회, 즉 '단회'성입니다. 그러나 먼저 만들어 진 기능은

그 뒤에 새로 전개 되는 새 현실에서 또 다른 의를 만드는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과거 만들어 진 죄의 기능은 새 현실에서 죄의 기능이 만들어 지는데 힘을 보태게 됩니다.


: 한 현실에서 한번 살아난 심신의 기능과 요소는 다시 죽을수 없는 것 아닙니까?


->

한 번 의의 기능으로 만들어 진 그 의의 기능과 그 의의 기능을 만들 때에 사용 된 재료들,

즉 주어 진 기회(시간) 정력(심신을 움직인 힘) 심신의 행위 등이 의를 만들었으니 그 의는

다시는 죽지 않는 영생입니다.


: 연속성이 있는 것은 아직 미결이어서 그것이 완결될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까?


->

그 행위, 그 기능, 그 현실에 속한 개별 요소는 단번으로 생사가 갈리고 기회는 끝이 나고

연속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 뒤에 새로 닥친 새 현실에서 죄와 의를 만들려고 하는 양측의

투쟁, 즉 자기 속에 있는 악령 악성 악습이 새 현실에서 다시 한번 죄를 만들려고 하고

반대로 자기 속의 중생 된 영과 심신 속에 성화 된 의의 기능들은 또 의를 만들려 합니다.


흔히 현대전은 국가 총력전이라고 합니다. 준비한 무기 군인뿐 아니라 그 나라의 경제력과

그 나라의 국민 의식과 지리적 여건과 심지어 평소 확보해 둔 외국과의 외교 역량을 합하여

양쪽이 부딪히고 승패를 결정하게 되는데, 우리 현실의 기능 전쟁도 그러합니다.


과거 전쟁은 영웅 하나가 위기에서 나라를 구해 낸 그 요행과 우연의 일치가 많이 통했으나

현대 전쟁은 전쟁하기 전에 거의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을 예측할 수 있고 맞을 수 있으니

전쟁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를 정말 잘 분류하고 기여도와 변수까지 넣어 함수로 풀면

최근 뉴스에서 전쟁 결과 시뮬레이션이라는 표현을 실감 있게 경청하듯 그렇게 되어 집니다.


비록 수학과 같지 않고 또 수학과 비교도 못할 차원의 복잡과 중간에 변하는 현상이 있지만

원리적으로 소개한다면 신사참배가 닥쳤을 때 이미 승패와 승리의 차원은 결정되어 있었고

6.25 전쟁 기간의 승패와 그 승리의 차원 역시 해방 후 전쟁 직전까지를 파악하던 사람들은

전쟁이 닥치기 전에 이미 결과표를 읽고 있었습니다.


시대적 환란도 그렇지만, 좁혀서 이 홈의 주력인 이 노선 과거 혼동기만을 가지고 말한다면

백 목사님의 장례식에서 오늘까지의 이 노선의 노선적 큰 흐름과 현상들은 환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와 교파의 사건을 가지고 예를 드는 이유는, 그 큰 범위를 축소하여 자기를 살피면

믿는 사람이 자기 앞날의 신앙 승패를 사례 별로 따져서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이유는?

조금만 양심을 써서 차분히 살피면 자기 신앙 승패에 관련 된 모든 요소와 요소별 역량을

파악하는 것이 고등 수학 정도로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거의 눈에 보이게 되어 있으니

한 사람의 앞날을 두고 양심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되는 타인 사례를 가지고 예를 든다면

믿는 사람들은 남의 신앙을 평가할 때 그 정확성이 아주 놀라울 만큼 대단한 면이 있습니다.

비록 '절대'를 붙일 수는 없지만 굉장힌 근접한 예측이 가능한 이유는 그 사람의 지난 날에

의의 기능과 죄의 기능이 어떻게 쌓여 져 왔는지, 그 총량은 비교적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완결과 미결의 용어로 다시 침노 받을수 있음을 언급하신 적이 있어 질문드립니다.


이 부분은 주로 다니엘의 경우이며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살아 나올 때 의의 기능은 영생이나

다니엘이라는 인물의 총량을 두고 말한다면 살아 나온 이상 살아 나온 이후의 인생이 있고

그 남은 인생에서 의와 죄 문제가 계속 이어 지면서 과거에 없던 죄를 지을 수 있으므로

다니엘의 총점을 두고 사자굴에서 죽었더라면 100점 만점에서 끝났을 터인데 살아 나왔으므로

그의 남은 현실에서 계속 될 새로운 시험 점수가 다 100 점이 되지 않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4. 교리적 연구 과제


- 홍포 입은 부자의 경우


성경 본문에 '눈을 들어' '손가락 끝' '아브라함의 품' '물 한 방울' '혀' '큰 구렁이'...

이런 표현 때문에 우리의 천국과 지옥이 오늘 땅 위의 생활처럼 공간적 개념이 있는 듯하나

천국은 물질의 우주 높은 어느 장소에 마련 된 공간 개념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신령한 세계, 가치적으로 존재적으로 활동적으로 오늘과 비교할 수 없는 무제한의 나라인데

신앙 어린 우리에게 쉽게 설명하시려고 그런 표현을 했으니 질문자 설명과 근거에 동의합니다.


- 불택자의 영이 그래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영인데 지옥과 음부에 갈수가 있나?


과거의 왕손은 왕손이었다는 그 사실 자체가 가장 큰 의미가 있었으나 하나님 앞의 존재는

하나님 형상이었다는 이 천지대경할 사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게 되는 순간

하나님 형상이었다는 그 엄청난 사실 때문에 더 불행한 존재가 되어 집니다.


신앙 어린 사람의 죄 하나보다 신앙 있는 사람의 죄 하나가 하나님 앞에서는 엄청나게 중하고

불택자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보다 믿는 우리의 불경이 하나님 앞에 더 크게 징계 받습니다.

많이 준 자에게 많은 것을 찾고, 하나님과 가까울수록 봐 주는 대신 더 큰 징벌을 내립니다.


다른 존재의 반역은 생각할 필요가 없지만 만물 중에 가장 실력 있는 천사의 타락이었기 때문에

그 천사 중에서도 머리 되는 천사의 반역이었기 때문에 죄와 타락과 그에 대한 형벌이라는 것은

더 무거워 집니다.


: 불택자의 심신이 지옥 갈때 죽은 영은 기능상 활동이 전무하므로 고통은 없지 않나?


죽었다는 뜻은 존재의 무를 말하지 않습니다.

영의 기능이 완전 없어졌다는 것은 원래 영으로서 활동하는 하나님과 연결의 무를 말합니다.

그 영이 영원무궁토록 불택자의 영이라는 사실을 두고 하나님께 두려워하며 영광을 돌리며

불택자의 영이기 때문에 지옥을 와야 했던 것이 잘 이해가 되고 그 고통을 영원히 받으면서

하나님의 하나님이심 앞에 지옥 모든 존재 앞에 가장 모범적이지 않을까?


세상에서도 불택자의 영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이 없어 그 어떤 생명의 일은 할 수 없으나

돌이 속으로는 알면서 겉으로는 인간들의 행사를 지켜 보면서 의식이 없는 존재처럼 살 듯이

영도 그 어떤 구원과 생명에 속한 일은 할 수 없지만 자기 심신이 악령의 것이 되어 움직이고

그 결과가 영원 지옥이라는 사실과 그 지옥의 고통을 미리부터 가장 잘 느끼는 존재이므로

이 땅 위에서도 죽은 영이 하나님 거역하는 행위에 가장 공포를 느끼고 있지 않을까?

귀신도 믿고 떠느니라 하신 말씀에서 그 귀신은 살아서 움직인다고 보이나 영이 죽어 있듯이

그 귀신도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 져 죽은 귀신입니다.


다만 타락한 천사는 심신을 입지 않고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귀신 노릇을 할 수 있으며

우리 인간의 죽은 영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 지면 아무 건설에 속한 일은 할 수가 없고

동시에 자기 심신뿐 아니라 심신의 범위를 벗어 나서 어디 딴 데로 돌아 다닐 수도 없으므로

잠 자는 것처럼, 마치 송장처럼 되었다고 하는 것이지, 영의 사망이 무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 (3) 살아난 심신의 기능이 다시 죽을수 있다면, 그것을 살린 피와 성령과 진리의 권세를 먼저 허물어야 되지 않는가?


답변자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비록 그 부분은 이 홈에서 제공하는 설교 내용에서 따로 표현한

기억은 없지만 이 노선의 교훈과 교리 체계상 자연스런 판단으로 생각합니다.

공식으로 다 대입을 해서 답을 적어 놓은 문제만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중요 예제를 봤다면

그리고 그 공식으로 대입하여 무리가 없다면 교리의 초보이지만 우리는 맞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한번 살아난 심신의 기능이 다시 죽을수 있는 가요?
[1] 심신의 기능 구원은 매 현실마다 단회성인가? 연속성인가?


1. 질문 요약

택자가 중생이후 평생을 걸어가면서 매 순간마다 영생과 사망 둘 중에 하나로 결정을 짓고서 현실을 통과하는데 한번 사망한 심신의 기능은 다시 기회가 없으며, 살수도 없다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한 현실에서 한번 살아난 심신의 기능과 요소는 그 순간 영생으로 살아 났다면, 다시 죽을수 없는 것 아닙니까?


아니면, 심신의 기능과 요소도 연속성이 있는 것과 비연속성의 것이 따로 존재하여,

비연속성의 것은 그 현실로서 완결을 짓고 살아난 그것이 천국에 가서 종자적으로 영원히 영생하는 것이고, 연속성이 있는 것은 아직 미결이어서 그것이 완결될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까?


제 생각에는 한번 피와 성령과 진리로 현실에서 살아난 심신의 기능은 심신의 형체와 마찬가지로 다시 죽을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만, 백목사님께서 몇차례 완결과 미결의 용어로 다시 침노 받을수 있음을 언급하신 적이 있어 질문드립니다.


참고로 연속성이라면, 매 현실마다 죽은 심신의 기능은 다시 그 기회가 없다란 것도 모순이 되어 지는 것 같습니다.


2. 의문되는 설교 내용 일부


(1) 85년 3월 31일 주일 오후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영도 이제는 그만 그거는 다시 죽지 않는 영으로 완전 구원 얻었기 때문에 영생하고 우리 마음의 기능은 마음의 기능은 믿을 때의 그 기능이 살아 가지고 그대로 낙원에 가는데 낙원에 가는데 그 믿은 기능이 그것이 낙원에 가기 전에는 장. 미결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 믿는 그 마음의 기능이 가다가 망령을 부려 가지고 믿는 기능이 이 믿는 기능을 다 버려 버리고 배반해 버리고 이거 안 믿는 믿음으로 변질되면 안 된다 그 말이오. 변질되면 안 되기 때문에 그 믿음의 사람들은 그 그리스도의 것이 완전히 되어졌을 때 그때, 그만 '그리스도의 것으로 내 심신이 끝나 버렸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그것이 성도들의 일편 단심의 소원인 것입니다.


왜? 그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의 그것이 내 마음도 내 몸의 모든 기능도 고것이 돼 가지고서 그만 그것 때문에 죽이니 살리니 해도 '죽어도 놓지 않겠다' 하고서 요와 같이 요것으로 돼 가지고 있는 고때 그만 끝이 그만 딱 나 버리면 그거는 할렐루야! 다시 마귀는 다시 못 합니다. 마귀 와 죄와 다시 그런 것들은 시험하고 힐란하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저 자꾸 이렇게 고문도 하고 고형도 하는 것은 행여나 그라다가 항복 받을라고 자꾸 이랬는데 항복 받아 예수님의 운명 딱 해 버리니까 다시는 마귀는 그만 손들고 패전해 버리고 예수님이 완전 승리를 한 것입니다.


(2) 정확한 설교 날자는 기억이 안나나 8월 집회 설교 였음

한번 죄를 짓고 회개는 하였으나 다시 같은 죄의 현실이 와서 그 죄를 이기기 전까지는 아직 미결이라고 설교하심


(3) 86년도 설교였던 것으로 기억함

미결인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면 지금까지 건설구원 전부가 수포로 돌아간다고 설교하심.


[2] 참고로, 제가 지금 까지 고민한 심신의 기능 구원과 관련된 몇가지 사실을 올립니다. 참고하시고, 틀린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 주십시오.


1. 심신의 기능 구원에 관련된 사심판의 시기는 매 현실마다 임


(1) 근거 대표 성구 : 마태복음 16장 27절~28절

*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26절) : 행위 심판이니 사심판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27절) : 이 말씀 하실때 제자들이 2009년 5월 현재까지 아직 부활하기 전이고 더군다나 예수님은 아직 재림 하시지 않으셨으니 여기 인자가 오시는 것은 매 현실마다 임하시는 주님 즉, 사심판의 주님 이심


(2) 교리적 근거

심신의 기능은 매 현실마다 사망과 영생이 결정 지워져서 통과하며, 이것은 심신의 기능구원의 사심판 시기가 지금 매 현실이며, 죽어 대기소인 낙원과 음부에 갈때 기능이 함께 감. 죽어 기능이 함께 가지 않는 다면 홍포입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발표에서 보여지는 그런 활동을 할수가 없음.


(3) 의문사항1

사심판이 매 현실에서 결정이 지어 진다면 그렇다면, 부활후 그리스도의 사심판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몸과 마음의 기능을 따로 분리하여 볼 필요가 있음.


2. 재림전 신자의 개인적인 종말(죽음)시, 마음의 기능은 음부나 낙원으로, 몸의 기능은 세상에 대기하며 존재함


(1) 근거 대표 성구 : 요한복음 5:28

* 무덤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때가 오나니

--> 귀 : 세상에서 대기하는 몸의 일부분

--> 듣다 : 세상에서 대기하는 몸의 기능

* 마태복음 27: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2) 근거 설교 : 85년 3월 31일 주일 오후

* 우리의 심신의 기능 중에서 마음의 기능이라는 것은 죽지 안하고 그만 영원히 삽니다.... 이 마음의 기능은 살아 난 것은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날때에 영과 함께 낙원에 가고 그때부터 영이 입고 그 자기의 그 기관으로 삼아서 입고 이 아음을 타고 마음을 입고 영계에 가 가지고 머물게 되고

* 이 몸의 기능이라 하는 것은 그때 가지 못하고 이 모든 원소 가운데에 있으나 그 기능은 살아서 거기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같이 갈수 없는 것은 이것은 아직까지는 신령한 것으로 변화되지 않했기 때문에 이거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3) 심신의 기능에 대한 각각의 개별에 대한 임시 결정과 총체적인 최종 결정의 차이임(의문사항1 에 대한 해결시도)

부활후 그리스도의 사심판은 아직 대기 중인 몸의 기능과 이미 음부나 낙원에 가 있는 마음의 기능을 종합적으로 최종 판결을 짓고서 대기소가 아닌 영원 영주처로 심신의 기능이 지옥과 천국을 결정 짓는 심판으로 판단됨.

현실에서의 각 심신의 기능에 대한 사심판이 임시라하여 그 결정의 번복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최종의 영주처인 천국과 지옥에 대한 심판 이전에 대기소인 낙원과 음부에 대한 임시적인 결정을 의미한다고 생각되어짐.


(3) 논리적으로 근거

기능의 주인인 심신의 형체가 마음은 죽어 영과 함께 낙원으로 몸은 세상에서 대기하고 있으므로, 몸이 없이 마음이나 마음의 기능이 직접 몸의 기능을 관계할수 없음. 그러므로 몸의 기능도 몸의 형체와 함께 세상에서 대기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됨.


(4) 의문 사항2

홍포입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성경 본문에서 마치 몸의 형체 혹은 몸의 기능을 연상시키는 듯한 다음과 같은 생생한 표현에 대하여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 눈을 들어

- 손가락 끝

- 아브라함의 품

- 물 한 방울

- 혀

- 서늘하게

- 큰 구렁이

- 불러 가로되(음성과 입)


3. 의문사항2에 대한 해결 시도


(1) 근거 성구

- 마가복음 9장 38절~50절, 누가복음 23장 44절~46절

- 범죄한 손과 발을 찍어 버리고, 눈을 뽑아버리라는 표현에서 몸뚱아리인 물질을 가지고 설명하시나, 실은 이것은 물질을 가지고 죄짓은 요소를 없애라는 교훈을 하신 성구임. 이 성구는 너무도 생생히 몸의 지체를 가지고 표현하셨으나 실은 문자적으로 표현하신 손이 손이 아니며, 발이 발이 아니며, 눈이 눈이 아님을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주신 성구임. 이 성구로 누가복음 16장 24절~31절에 나오는 몸의 형체 혹은 몸의 기능을 연상시키는 듯한 생생한 표현이 물질이 아닐수도 있음을 보여주며, 다른 교리들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해야 됨을 보여줌


(2) 교리적 근거

- 마음은 낙원과 음부로 몸은 세상에 대기한다는 것이 일반 교리임.(행5:10, 전3:21, 약2:26, 눅23:43)

- 더군다나, 몸의 기능의 주인이 세상에서 원소로 대기하므로, 몸의 기능도 같이 세상에서 대기함.

- 몸의 기능과 몸의 형체는 아직 신령하게 변화되지 않았으므로, 그것이 산 기능이건 죽은 기능이건 시공간의 제한을 받고 있으므로 부활이전에는 세상에 대기하여야 함.


4. 아직도 남는 의문사항3


(1) 불택자의 영이 기능적으로 활동을 전무하여 죽은 상태이나, 그래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영인데 후에 지옥과 음부에 갈수가 있나?


(2) 원치 않는 곳에 끌려 간다고 한 바울의 고백처럼 불택자의 심신이 지옥 갈때 죽은 영이 같이 끌려 간다하더라도, 기능상 활동이 전무하므로 불택자의 심신과 심신의 기능이 느끼는 고통은 느낄수 없지 않나? (활동이 전혀 없으므로...)


(3) 한번 살아난 심신의 기능이 다시 죽을수 있다면, 그것을 살린 피와 성령과 진리의 권세를 먼저 허물어야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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