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피와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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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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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7 00:00
참고로
많지 않은 교회의 의식 중에도 가장 어렵고 조심스런 것이 성찬식입니다. 상징이지만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설교 역시 그러합니다. 많은 설교를 하지만 가장 어렵고 조심스런 설교가 주님의 피에 대한 내용입니다. 글로 기록하기 때문에 말로 설교하는 것보다는 덜하겠지만 여전히 조심스럽고 어려운 것이 주님의 피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의 피는 기독교의 가장 중심이며 전부라 할 수 있고, 따라서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주님의 피를 깨닫지 못하는 신앙은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피를 깨닫고 그 은혜에 감격된 신앙이 참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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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피와 살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의 피와 살이 참된 양식이니 주님의 피와 살을 먹으면 영생이 있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부활이 있고, 주님이 그 안에 계시고 주님의 피와 살을 양식으로 먹는 그 사람은 주님으로 인하여 살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하게 알아야 할 것은
첫째, 주님의 피와 살이 무엇인가 하는 것과
둘째, 주님의 피와 살을 어떻게 양식으로 삼는가,
다시 말하면 참된 양식인 주님의 피와 살을 어떻게 먹는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1. 주님의 피와 살
주님의 피는 주님의 죽으심을 상징합니다.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니까 주님의 피는 주님의 죽으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대속의 절정입니다. 죽으심으로 대속을 완성했고, 죽으심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부활로 살리신 것입니다. 죽으심은 주님이 하실 수 있는 최종의 일이고, 부활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었고 하신 일입니다.
주님의 피는 대속의 절정이지만 죽으심이 전부가 아닙니다.
죽으심은 말 그대로 마지막 절정이며 완성이었고, 죽으심 이전에 많은 과정이 있었으니 십자가의 고난과 33년 4개월의 사생활 공생활의 생애가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 하나님이 사람 되신 신인양성일위의 도성인신이 있었고, 하나님의 수많은 섭리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 창조와 예정이 있었고 그 이전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으며, 가장 근본에는 자존하신 하나님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존하신 하나님이 자존 사랑, 자존 의지로 정하신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 목적은 우리를 귀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과 꼭 같은 사람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로 영원 후까지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이 목적을 위해 예정대로 모든 존재를 다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지으신 모든 존재들을 하나님이 주권의 능력으로 섭리하시며,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주님의 피, 주님의 죽으심입니다.
주님의 피에는 자존하신 하나님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이 죽으신 것이고 하나님의 소원이 주님의 피로 완성된 것입니다. 우리 구원과 연관된 하나님의 존재 의미는 영광입니다. 영광이 없는 하나님은 존재의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존자고 전지전능자고 아무리 크고 높고 귀해도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아 줄 존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적은 영광의 찬미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원히 나타내시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며 이것이 주님의 피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피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흠 없고 점 없는 귀하고 아름다운 하나님 아버지 형상과 꼭 같은 사람을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주님의 피로 완성이 된 것입니다.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주님이 피 흘려 죽으셨고 주님의 죽으신 피로 인하여 크신 하나님의 목적이 완성이 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피에는 하나님의 예정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정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예정입니다. 목적을 위해서 영원 후까지 수도 없이 많은 존재와 순서들이 예정되어 있으니, 우리 앞에 부딪히는 수많은 현실의 모든 순서는 전부 하나님의 목적인 내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내 구원을 위하지 않은 우주의 움직임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는 내 구원 위해 영원 전 하나님이 예정하신 순서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예정이 우리 구원 위해 있게 된 것, 이것이 주님의 피로 된 것입니다. 예정대로 주님이 피를 흘리셨고 주님의 피로 인하여 예정이 성취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피에는 하나님의 창조가 들어 있습니다.
모든 존재의 창조는 목적을 위한 예정대로의 창조이며, 이 모든 창조는 우리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지음 받은 존재가 내 구원 위해 있지 않은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원수도 내 구원 위해서 있습니다. 죽음도 내 구원 위해 있습니다. 죄도 마귀도 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존재가 내 구원 위해 있게 된 이것이 주님의 피로 된 것입니다. 주님의 피가 아니면 모든 존재는 다 서로 원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피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희생의 절정입니다.
주님의 피에는 사랑으로 인한 무한한 희생이 들어 있습니다. 그 어떤 것에게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 자존 사랑, 영원하고 무한하신 완전한 사랑이 주님의 피 속에 들어 있습니다. 주님의 피는 하나님의 사랑의 완성입니다. 사랑으로 희생하신 주님의 희생은 무한한 희생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영광 존귀를 다 내어 놓고 낮고 천한 사람이 되시되 마구간까지 낮아지시고,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해 고난 받고 죽으신 주님의 그 사랑과 희생은 도무지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이며 인간의 지혜로 상상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사랑이며 희생입니다. 이 무한하신 사랑과 희생의 절정이 주님의 피인 것입니다.
주님의 피를 생각할 때는 이 모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극히 크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광대하신 구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희생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내 구원을 위한, 바로 나를 위한 역사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2. 주님의 피를 양식 삼는 것은
먹는 것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를 양식 삼는 것은 주님의 피와 연결된 이 모든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이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먹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는 참사람의 인격의 양식입니다. 인격의 양식은 쉽게 말하면 생각으로 먹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먹는 것이고, 실행하는 것이 먹는 것입니다. 내가 먹는 양식은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것은 주님의 죽으심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고난 속에 들어 있는 날 사랑하신 주님의 지극한 사랑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크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광대하신 구원 역사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알게 됩니다. 생각하면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광대하신 구원을 생각하고 이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희생을 말씀을 근거하여 자꾸 생각해 보면 그 속에서 많은 것이 나오고 많은 역사가 있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그런 것이고 사람은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것은 먹지 않는 것입니다. 천하 없는 장사라도 안 먹으면 힘 없고 안 먹으면 죽습니다. 먹어야 힘이 나고 건강도 있고 자라기도 하고 번식도 되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깨달음이 나옵니다. 감동이 나옵니다. 감격이 나옵니다. 한없는 감사가 나오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나옵니다. 그리고 한없는 죄송함이 나옵니다. 자기가 미워서 견딜 수 없는 것도 나옵니다. 통분함이 나오고 회개가 나옵니다. 이 힘으로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각오와 결심이 나옵니다. 이를 갈면서 결심을 하게 됩니다. 주님의 피를 생각함으로 나오는 이 힘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피를 먹는 것이고 양식 삼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를 양식 삼아 먹는 그 힘은 세상을 다 이깁니다. 자기를 이깁니다. 이 힘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3. 주님의 피를 먹는 생활의 결과는
이렇게 주님의 피를 양식 삼아 먹는 여기에 영생이 있습니다. 주님의 피를 생각함으로 나오는 그 지혜가 영생하는 지혜고, 그 힘이 영생하는 힘이며, 이렇게 사는 것이 영생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을 주님이 마지막 날에 생명의 부활로 다시 살리시며, 이렇게 사는 그 사람 속에는 주님이 함께 계시고,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질문하신 내용의 중심이라 하겠습니다.
많지 않은 교회의 의식 중에도 가장 어렵고 조심스런 것이 성찬식입니다. 상징이지만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설교 역시 그러합니다. 많은 설교를 하지만 가장 어렵고 조심스런 설교가 주님의 피에 대한 내용입니다. 글로 기록하기 때문에 말로 설교하는 것보다는 덜하겠지만 여전히 조심스럽고 어려운 것이 주님의 피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의 피는 기독교의 가장 중심이며 전부라 할 수 있고, 따라서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주님의 피를 깨닫지 못하는 신앙은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피를 깨닫고 그 은혜에 감격된 신앙이 참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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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피와 살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의 피와 살이 참된 양식이니 주님의 피와 살을 먹으면 영생이 있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부활이 있고, 주님이 그 안에 계시고 주님의 피와 살을 양식으로 먹는 그 사람은 주님으로 인하여 살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하게 알아야 할 것은
첫째, 주님의 피와 살이 무엇인가 하는 것과
둘째, 주님의 피와 살을 어떻게 양식으로 삼는가,
다시 말하면 참된 양식인 주님의 피와 살을 어떻게 먹는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1. 주님의 피와 살
주님의 피는 주님의 죽으심을 상징합니다.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니까 주님의 피는 주님의 죽으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대속의 절정입니다. 죽으심으로 대속을 완성했고, 죽으심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부활로 살리신 것입니다. 죽으심은 주님이 하실 수 있는 최종의 일이고, 부활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었고 하신 일입니다.
주님의 피는 대속의 절정이지만 죽으심이 전부가 아닙니다.
죽으심은 말 그대로 마지막 절정이며 완성이었고, 죽으심 이전에 많은 과정이 있었으니 십자가의 고난과 33년 4개월의 사생활 공생활의 생애가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 하나님이 사람 되신 신인양성일위의 도성인신이 있었고, 하나님의 수많은 섭리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 창조와 예정이 있었고 그 이전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으며, 가장 근본에는 자존하신 하나님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존하신 하나님이 자존 사랑, 자존 의지로 정하신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 목적은 우리를 귀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과 꼭 같은 사람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로 영원 후까지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이 목적을 위해 예정대로 모든 존재를 다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지으신 모든 존재들을 하나님이 주권의 능력으로 섭리하시며,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주님의 피, 주님의 죽으심입니다.
주님의 피에는 자존하신 하나님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이 죽으신 것이고 하나님의 소원이 주님의 피로 완성된 것입니다. 우리 구원과 연관된 하나님의 존재 의미는 영광입니다. 영광이 없는 하나님은 존재의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존자고 전지전능자고 아무리 크고 높고 귀해도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아 줄 존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적은 영광의 찬미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원히 나타내시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며 이것이 주님의 피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피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흠 없고 점 없는 귀하고 아름다운 하나님 아버지 형상과 꼭 같은 사람을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주님의 피로 완성이 된 것입니다.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주님이 피 흘려 죽으셨고 주님의 죽으신 피로 인하여 크신 하나님의 목적이 완성이 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피에는 하나님의 예정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정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예정입니다. 목적을 위해서 영원 후까지 수도 없이 많은 존재와 순서들이 예정되어 있으니, 우리 앞에 부딪히는 수많은 현실의 모든 순서는 전부 하나님의 목적인 내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내 구원을 위하지 않은 우주의 움직임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는 내 구원 위해 영원 전 하나님이 예정하신 순서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예정이 우리 구원 위해 있게 된 것, 이것이 주님의 피로 된 것입니다. 예정대로 주님이 피를 흘리셨고 주님의 피로 인하여 예정이 성취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피에는 하나님의 창조가 들어 있습니다.
모든 존재의 창조는 목적을 위한 예정대로의 창조이며, 이 모든 창조는 우리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지음 받은 존재가 내 구원 위해 있지 않은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원수도 내 구원 위해서 있습니다. 죽음도 내 구원 위해 있습니다. 죄도 마귀도 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존재가 내 구원 위해 있게 된 이것이 주님의 피로 된 것입니다. 주님의 피가 아니면 모든 존재는 다 서로 원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피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희생의 절정입니다.
주님의 피에는 사랑으로 인한 무한한 희생이 들어 있습니다. 그 어떤 것에게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 자존 사랑, 영원하고 무한하신 완전한 사랑이 주님의 피 속에 들어 있습니다. 주님의 피는 하나님의 사랑의 완성입니다. 사랑으로 희생하신 주님의 희생은 무한한 희생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영광 존귀를 다 내어 놓고 낮고 천한 사람이 되시되 마구간까지 낮아지시고,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해 고난 받고 죽으신 주님의 그 사랑과 희생은 도무지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이며 인간의 지혜로 상상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사랑이며 희생입니다. 이 무한하신 사랑과 희생의 절정이 주님의 피인 것입니다.
주님의 피를 생각할 때는 이 모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극히 크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광대하신 구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희생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내 구원을 위한, 바로 나를 위한 역사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2. 주님의 피를 양식 삼는 것은
먹는 것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를 양식 삼는 것은 주님의 피와 연결된 이 모든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이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먹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는 참사람의 인격의 양식입니다. 인격의 양식은 쉽게 말하면 생각으로 먹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먹는 것이고, 실행하는 것이 먹는 것입니다. 내가 먹는 양식은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것은 주님의 죽으심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고난 속에 들어 있는 날 사랑하신 주님의 지극한 사랑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크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광대하신 구원 역사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알게 됩니다. 생각하면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광대하신 구원을 생각하고 이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희생을 말씀을 근거하여 자꾸 생각해 보면 그 속에서 많은 것이 나오고 많은 역사가 있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그런 것이고 사람은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것은 먹지 않는 것입니다. 천하 없는 장사라도 안 먹으면 힘 없고 안 먹으면 죽습니다. 먹어야 힘이 나고 건강도 있고 자라기도 하고 번식도 되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깨달음이 나옵니다. 감동이 나옵니다. 감격이 나옵니다. 한없는 감사가 나오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나옵니다. 그리고 한없는 죄송함이 나옵니다. 자기가 미워서 견딜 수 없는 것도 나옵니다. 통분함이 나오고 회개가 나옵니다. 이 힘으로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각오와 결심이 나옵니다. 이를 갈면서 결심을 하게 됩니다. 주님의 피를 생각함으로 나오는 이 힘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피를 먹는 것이고 양식 삼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를 양식 삼아 먹는 그 힘은 세상을 다 이깁니다. 자기를 이깁니다. 이 힘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3. 주님의 피를 먹는 생활의 결과는
이렇게 주님의 피를 양식 삼아 먹는 여기에 영생이 있습니다. 주님의 피를 생각함으로 나오는 그 지혜가 영생하는 지혜고, 그 힘이 영생하는 힘이며, 이렇게 사는 것이 영생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을 주님이 마지막 날에 생명의 부활로 다시 살리시며, 이렇게 사는 그 사람 속에는 주님이 함께 계시고,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질문하신 내용의 중심이라 하겠습니다.
소선집
스팸 메일 정리 때문에 재 등재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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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통하여 빛을 찾았고 항상 말씀으로 은혜받고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이러한 총공회에 교훈으로 은혜받기를....
편집부님 아래의 말씀을 정리해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바쁘시니 다음주중에 부탁드립니다.)
참된양식 (9호)
1982. 9. 12. 주일오전
본문:요한복음 6장 54절~57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주님의 피와 살과 구속받은 성도들의 그 구원 관계가 어떠한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천지가 변치 않는 것보다 더 확고한 말씀이지만 이 사실을 사람들은 인정하지 못합니다. 성신의 감화에서만 인정할 수 있는 어려운 사실입니다.
영생
54절에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는 영생이 그 속에 있고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살린다” 하는 말씀이 기록됐습니다.
영생은 우리 성도들에게 언제든지 있는 것 아닙니다. 중복적입니다. 영생은 그 속에 있다가 없다가 그렇게 하는 영생입니다. 중생된 생명은 언제나 내주하지만 영생은 그 사람에게 하루 한 시간 있다가 없어지는 일도 있고 계속 그 속에 영생이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지금 살고 있는 지혜와 힘 또 산 그 생애의 일 이 세 가지가 없어지는 것도 있고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사는 것도 있습니다.
성도 안에 멸망하는 멸망의 지혜와 능력이 있을 때도 있고 영생하는 지혜와 능력이 속에 있을 때도 있습니다. 또 성도가 행동한 것이 영원히 천국에 있어 하나님과 모든 이웃과 자기에게 유효하게 쓰여지는 영원한 일도 있고, 그 일이 세상에서는 천지를 울렸다 해도 다 멸망되고 없는 그런 행동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껍데기는 사람이 행동하는 것이요 그 알맹이는 진리와 하나님이 조성하는 일입니다. 인생의 지능 껍데기 속에 하나님의 지능이 알맹이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지능에 따라 인간 지능이 움직여질 때에 그것이 영생의 힘이요 해 놓은 모든 행동이 다 영생입니다. 그때에 사람이 행동한 기능도 그 기능은 영원히 그 사람에게 살아 역사합니다. 그 행동도 영원히 하나님과 이웃과 그에게 필요있게 쓰여지는 행동입니다.
그런고로, 인간의 기능은 변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기능이 인간 기능 안에서 역사할 수도 있고 떠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이 하나님의 기능이 자기 기능이 되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움직이는 자기의 움직임이 됨으로 자기의 모든 해 놓은 일이 영원히 보존될 뿐만 아니라 영원히 무궁세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그 행동으로 쓰여지는 이 영생이 되기를 사람들은 원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이 이 영생을 가질려고 온갖 노력의 방편을 해도 못 가지기 쉽습니다. 결심도 하고, 선도 사모하고, 의도 사모하고, 화평도, 절제도, 계속성의 의지도 별별 것을 사모해도 그것으로서는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있다 할지라도 극히 미약합니다.
다만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일, 주님이 어떠하신 그 크신 분으로서 천한 나를 위해서 어떻게 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셔서 세 가지 대속을 주신 이 사실을 자기가 연구하고 생각하고 점점 깨달아 느낌으로 자기에게 생각도 새로운 생각이 나올 것이고, 소원도 새 소원이 나올 것이고, 작정도, 결심도, 비판도, 평가도 모든 움직이는 그 마음의 힘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그 생각이, 그때의 마음의 힘이, 생각의 힘이, 결심의 힘이 그 힘이 그때에 그렇게 깨달아 하고 싶은 그 지혜가 그것이 막바로 하나님이신 주님의 지혜요 능력입니다. 바로 그것이 주님의 지혜요 능력입니다.
그럴 때에 그 마음 그 소원 그 결심 가지고 그대로 행할 때에 그것이 영생입니다. 그것이 껍데기는 사람이지만 속에 알맹이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겉은 인간 역사요 속은 하나님의 역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생입니다.
영생하는 참 힘은
그러기에 자기가 어떤 명예를 생각해서, 어떤 목적을 생각해서, 땅에 별별 인간을 유혹시키는 소망들이 많고, 욕심들이 많고, 인간들이 좋아하는 모든 목표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생각해도 힘이 나옵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생명도 바칠 수 있는 힘도 나옵니다. 정치가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 생각하고 생각하는 그 영웅심은 생명도 아끼지 않는 그런 힘도 나옵니다. 또 자기가 명예나 도덕이나 그런 것을 사모해서 그 목적을 위해서 생각하고 힘을 써도 그 속에 굉장한 깨달음의 힘과 결심의 힘과 용기의 힘, 몸과 생명과 소유를 바칠 만한 그런 힘도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의 어떤 온갖 사욕의, 어떤 종류의 정욕을 생각해도 그 생각하는 끝에 자기의 심신을 다 기울여서 그 일을 달성코자 하는 그런 힘도 나오는 것입니다. 천하의 사람들이 다 그 생각에서, 그 욕심에서, 그 목적에서 나오는 힘 가지고 모든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영생하는 요소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 속에, 억억만 명의 결심 속에도 하나님의 지혜나 능력이나 하나님의 소원하시는 그 하나님의 소욕은 그 속에 섞여 있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러나 구속받은 성도들이 주님이 나를 구속하신 주님의 피를 생각하고 주님의 살을 생각해서, 어떻게 크신 분이 어떻게 작은 나를 위해서 어떤 사랑으로 어떤 희생을 해 가지고 나를 구속하셔서 영광의 소망이 있게 하셨는가 하는 것을 자기가 생각하고 또 되생각하고, 아는 대로 범위를 넓게 생각하고 깊이 생각하고, 생각하는 가운데에서 깨달음이 나오고, 감동이 나오고, 힘이 나오고, 욕심이 나오는 그 전부가 다 영생입니다.
요것은 세상이 전혀 부인하는 것이요 성신의 감화를 받은 자들이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는 별별 거짓 기독자가 많이 있습니다. 자기는 ‘복음의 사역자가 되겠다’ `큰 개혁가가 되겠다' `큰 부흥사가 되겠다' `세계를 한번 변화를 시키겠다’ ‘어떤 위대한 대목회자가 되겠다' 다 좋은 생각이지만 거기에는 그 속에 영생은 없습니다. 여러분들 이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며칠 전에도 여기에서 새벽기도 설교한 그 설교 여러분들은 들을 때에 아주 잘했다고 칭찬하지만 그 사람을 내가 나무랐습니다. 그 사람은 피도 잊어버렸고, 주님도 잊어버렸고 다 잊어버렸습니다. 자기 배운 것 주 대서 자기만 이렇다는 사람으로 나타내려는 그것밖에는 없었습니다. 못씁니다.
여러분들, 세계의 대부흥사라고 결단코 그 속에 영생이 있는 것 아닙니다. 아주 사람 보기에 초초하다고 그 속에 영생이 없는 것 아닙니다. “영생은 이것이니 홀로 하나이신 참 하나님을 아옵고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앎이니이다”
예수님의 대속이 어디서부터 근원되어 나왔으며, 나오는 그 유래의 과정이 어떠했으며, 어떠한 사랑으로, 어떠한 계획으로, 어떠한 큰 투자로, 어떻게 광대하심으로 이렇게 구속하셨는가 하는 것을, 자기에게 많든지 적든지 있는 대로의 그 지능을 다해서 …
주의 피와 살로 양식 삼으라 그 말은 주의 피와 살로 얻는 힘, 지혜의 힘이나 마음의 힘, 주님의 피와 살의 그 공로를 생각하고 깨달음으로 얻어지는 힘, 자라가는 자람, 해 놓은 일 그것만 참되다 그말이오.
주님의 피와 살은 참된 양식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 그 말은, 다른 양식들은 다 썩어질 양식들이요 참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어떤 것으로 인한 힘으로 자라고, 또 힘으로 일하고 한다 할지라도, 그 힘도 그 자란 것도 일해 놓은 것도 다 참된 것은 아닙니다.
다 거짓부리입니다. 다 거짓부리. 귀가 있는 자는 들을 것입니다. 다 거짓부리요.
그러기에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 말은 다른 것은 다 썩을 양식이라 그말이오.
그러기에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하는 말씀은, 피와 살을 먹는 자 그 속에는 벌써 영생이 역사한다 그말이오. 주님의 피와 살을 양식삼아, 주님의 피와 살로 인하여 얻어지는 힘, 인하여 생겨진 욕심, 인하여 생겨진 지혜 그것이 막바로 영생이오. 그것이 주님의 지혜요, 주님의 능력이요, 그것이 주님의 소욕입니다. 주님의 욕심이요 주님의 소욕이오.
그러기에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음료라” 그 말은, 인간이 고기덩어리의 양식이야 물질을 먹어야 되지 딴것 서슴을 것이 있습니까?
여기에 양식이라 말하는 것은 인격의 양식과 마음의 양식, 정신의 양식, 욕심의 양식 그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생각하고 깨달음으로 자기에게 생겨진 욕심, 그 욕심이 강해진 욕심 그것이 막바로 성령의 욕심이오.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생각하고 주님이 누구심을, 그의 계획이 얼마나 광대함을, 모든 것은 그에게 지음받은 것이니 이것은 그에게는 비교를 할 수가 없는 것이라 하는 이 사실을 깨달음으로 인하여 자기에게 생겨지는 지혜가, 힘이, 욕심이, 소원이 그것이 그 사람이 하고 있지만 그것은 누구의 것입니까? 그것이 막바로 주님의 것이오. 인간의 생각 욕심으로 나타났지만 알맹이를 보면 주님이시오.
그러기 때문에 성도가 주님을 중보로 삼아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 못 갑니다. 암만 기도해도 헛일입니다. 암만 부르짖어도 헛일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중보자십니다.
주님을 덩더꿍이로 ‘주여 주여’ 할 게 아니라, 주님이 어떠하신 분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어떻게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그 과정을, 그 범위를, 그 광대하심을 자기가 생각할 때에 깨달음이 나오고, 그 깨달음으로 인하여 욕심이 변화되고, 힘이 변화됩니다.
그전에는 아주 인간을 막 엎어칠 만한 힘이 있었지만 나중에 주님의 피와 살을 깨닫고 보니까 그 힘이 자타를 죽이는 힘이기 때문에 집어 내던져 버립니다. 주님의 피와 살을 먹음으로 생겨지는 힘이 따로 있어요. 지혜가 따로 있어요. 모든 사람을 사기 협잡 횡령해서 마구 착취할 그런 지혜가 있었는데, 주님의 피와 살을 자기가 사모해 보니 거기에서 그 힘이 나오는 것만치 이 힘은 줄어지고 나중에 이 썩은 힘은 다 없어지고 예수님의 피와 살의 힘으로 바꿔집니다.
이 양식이 참되다 말은 주님의 피와 살의 공로를 자기가 생각함으로 생겨지는 힘 그것이 참힘이라 말이오. 영생하는 힘이라 말이오. 그것이 참 힘이오. 그 외에는 참 힘이 없어요. 세계에 과학이 어떤 인류들이 뭐라 해도 그것도 힘이지만 주님 오시면 다 불타 버립니다. 아무 힘 없어요. 그 힘을 의지하고 살던 자마다 그것이 멸해질 때는 같이 멸망받습니다.
여러분들,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하는 요 한 말씀이라도 여러분들이 굳게 잡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지식 있는 대로 생각하고, 더 넓게 생각하고, 더 깊이 생각하고, 더 길게 멀게 생각하고, 과거적으로 태초부터 생각하고 자존부터 생각해서, 이렇게 생각을 함으로 나온 그 지혜가 참 지혜다. 생각을 함으로 나는 그 힘이 참 힘이다. 생각을 함으로 생겨지는 소원과 욕심 그것이 참 욕심이요 참 소원이다. 그것이 뭐이냐? 영생이다. 그것이 껍데기는 사람이요 알맹이는 하나님이신 주님이시다. 이것이 예수님의 피로만 된다. 피로만 이루어지지 피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네가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생각함으로 생겨지는 지혜와 힘, 생겨지는 소원과 욕심 그것이 참 것이요 영생하는 것이지, 그 외에 네가 어떤 인간을 접촉함으로, 사물을 접촉함으로, 시대를 접촉함으로, 네가 어떤 피조물로 얻어지는 힘이나 소원이나 욕심이나 지혜나 행동, 굉장히 찬란하다 할지라도 한 말로 다 멸망이다. 영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는 그 속에 벌써 영생이 역사한다, 주님의 지능이 역사한다 그말입니다. 그 사람은 성령의 소욕대로 움직이니 그의 모든 움직임이 다 영생이다, 이러니까 마지막 부활할 때에 그것은 다 부활할 요소들이다, 영원히 부활해서 하늘나라 가서 영생할 요소들이다는 말입니다.
그 외의 것은 제가 세계에서 어떻게 유력하게 유명하게 활동했다 할지라도 죽을 때에 그것은 다 없어지고 부활할 때는 그런 기능은 없습니다. 부활할 때는 권능 없는 고기덩어리 형체만 부활하지 속에 기능은 하나도 없는 자로 부활합니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리리라” 어떻게 해서? 그다음에 다시 해석해 놨습니다.
주님의 피와 살로 인한 생애
55절에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어떻게 해서 그와 같이 되는가?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자기가 주님의 피와 살을 자기의 전부로 삼아야 합니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아니면 하나님에게 상관이 없어요.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아니면 만물의 적입니다. 만물의 원수입니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만 하나님과 자기와는 사이가 화친해서 연결이 되고 모든 피조물과도 화친해서 연결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 사이의 중보자요 모든 피조물과 나 사이의 중보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분이 아니면 안 되요.
그런데 “내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는 내가 그 안에 있기를 아버지가 내 안에 있어 모든 역사를 이루심으로써 흠없는 완전 승리를 이룸같이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내가 그 안에 있어 나로 인하여 이루어진다” 이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버리고는, 어떤 성자 성녀라도 주님의 피와 살을 잊어버리고는 하나님으로 사귈 수는 없습니다. 연결은 안 됩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피와 살로 양식을 삼는 자는 ‘그 속에 영생이 있다’ 영생이 뭐 있다 말인가?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겠다’ 주님은 어디 계시면서? 주님이 어디 계시다가 살립니까? 주님이 어디 계십니까? 주님의 피와 살로 양식삼는 자에게는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하늘에 있습니까 땅에 있습니까? 거기 뭐라고 말했어요?
요걸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이 못 믿는 일이오. 꼭 조작배기 같습니다.
주님의 피와 살로 양식 삼는자는,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시고 주님의 피와 살로 양식 삼지 않고 ‘복음 운동으로 세계를 구원하겠다, 몇백만 교회를 세우겠다, 대혁명가 대개혁가 대부흥사가 되겠다, 내가 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몸과 생명을 바치겠다.’ 좋지만 거기에는 계약이 없습니다.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 “나는 그 안에 있고 그는 내 안에 있나니” 떨어지지 않았어요. “나는 그 안에 있고 그는 내 안에 있나니” 어떻다 말이오?
“그는 내 안에 있고 나는 그 안에 있나니”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아버지가 내 안에 계셔서, 내가 사는 것 같지만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사는 것이라! 아버지가 내 안에 계셔서 사는 것처럼 내 피와 살을 양식 삼아 먹는 그에게는 나는 그안에 거하고 그는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나로 인하여 사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 가능하게 된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세상이 안 믿는 일이오. 신자들이 안 믿어요.
그런고로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는 이 말씀은 피와 살은 절정이니까.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주의 대속의 이 공로를 자기가 아는 대로 생각하고 연구하고, 대속의 공로와 자기와 어떤 관련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깨닫고 깨달음으로 힘나는 그 힘이 바로 주님의 힘이요, 생각나는 그 지혜가 바로 주님의 지혜요, 소원하는 그 소원이 주님의 소욕입니다. 주님이 그 안에 계셔서 그와 같이 하는 것이오.
아버지가 내 안에 계셔서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완전 생애를 이룬 것같이 인생이 내 피와 살의 공로를 사모하여 이 공로로 인하여 자기의 모든 기능과 모든 발원을 삼는 그자에게는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는 것처럼 내가 그 안에 있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산 생애를 성공한 것처럼 그는 나로 인하여 사는 생애를 성공하게 된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생 부활은 주님의 피와 살로만
그러기 때문에,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 말은, 참된 양식이라 말은 참 힘을 얻는 양식이라 그말이오. 참 힘을 얻는 양식이라 그말이오. 지혜의 힘, 능력의 힘, 소원의 힘, 또 자라는 것이 마지막에 부활할 참으로 자라. 인간이 아무리 세계를 움직이고 크다 할지라도 죽으면 송장이고 부활할 때는 지옥이오. 예수 믿는 사람도 부활할 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능이 없어요.
제가 이번에 아파서 힘없는 꼴을 봤는데 체중도 좀 줄어지기는 줄어졌지만 몸은 그대로 있는데 힘이 하나도 없어. 힘이 하나도 없으면 목숨 붙어 있어도 그뭐 죽은 것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어요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릴 것이요”
성도야! 네가 참 힘을 얻고, 참으로 참 것으로 자라고, 네가 참 일을 하고 마지막 부활할 때에 영생으로 부활할 자 그자는 내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여기에서만 가능하다. 다른 데서는 안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생각함으로 생겨진 지혜와 능력과 욕망과 행동이 아니라면 성공같으나 실패요, 인생을 구원하는 것 같으나 다 멸망이오. 왜? 거기에는 주님이 역사적으로 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중생시킨 중생적으로는 주님이 우리 안에 항상 계시지만 역사의 주님으로서는 우리 안에 계실 때도 있고 계시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내가 문 밖에서 문들 두드리노니 문을 열라” 하는 것은 역사적인 주님으로는 우리 심신 속에 내주하시지를 않기 때문에 내주하시기를 원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로마서 6장 5절 이하에 보면 “나의 죽음에 연합한 자가 되면 나의 부활에도 연합한 자가 되어” 주님이 부활하신 것은 새생명 산 소망에 속한 것, 새 생활 할 수 있다 말입니다.
이상하게 생각지 말고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이 다른 사람 천만 인이 말했지만 소용 없는데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서라” 예수의 이름을 인계받아 가지고 전하는, 사도된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전할 때에, 그가 그 전도에 소망을 가지고 일어설려고 뻐득거렸지만 그것 가지고 되는 것 아니오.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지만 일으킨 것 가지고 된 것 아니오. 그것은 껍데기 인간 행동이오. 본인이 힘쓰고 협조하는 것인데 뼈와 발목을 힘있게 한 것은 보이지 않는 그분이 당신이 맡겨 주신 그 복음의 사도의 전도를 통해서 당신이 책임지고 일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사실을 믿지 않는 자는 기독교의 신비는 접하지 못합니다. 이러나 저러나 다 썩을 것, 다 무익한 것 하고 있지, 주님이 역사하시는 것은 그를 인정할 때 와서 역사해요. 보이지 않는 그분이 볼 수 없는 그 사람의 인정하는 그 인정에 따라서 움직여요.
주님의 피와 살을, 자기는 주님의 피와 살로 인한,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한 그 은혜로, 대속의 공로로 인한 그 힘으로, 대속의 공로로 인한 하나님의 선물로, 대속의 공로로 인한 교제로, 대속의 공로로 인한 연결로, 대속의 공로로 인하여 하나님에게 받아지는 것으로, 이것으로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가 주의 피와 살을 참된 양식으로 인정하는 자요. 그자에게는 영생이 있어요. 마지막 날에 다시 살려요. “내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는 내가 그 안에 있다” 피와 살을 먹을 때 그 안에 있어요.
「영생이 있고」 하는 것은 영생이 없을 수도 있다 그말이오. “너희들이 미워하면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없느니라” 문을 두드리는데 문을 두드릴 때는 영생이 그 속에 없어요. 영접해야 영생이 있지. 영생은 왔다 갔다 합니다. 중생시킨 생명은 그렇지 않아요.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 그 말은, 양식은 힘을 얻게 하는 것이요, 자라게 하는 것이오. 힘 얻고 자라면 일하지요. 그러기에 인간이 참 사람의 힘, 참 지혜의 힘, 참 능력의 힘, 참 것, 모두 참 것은 예수의 공로를 사모함으로 거기에 감격된 그 감격으로 말미암아서만 되어지지, 제가 복음을 위한다고 해도 딱 쪼개서 해부를 해 보면 별별 허영심과 허욕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주님에게는 상관이 없어요.
주님의 피와 살에 감격한 그 소원, 그 결심, 그 욕심, 감격으로 인하여서 얻어진 그 지혜와 능력이 아니면 다 가짜요 다 썩은 것이오. 다 제것이오. 주님의 적이오. 다 왕된 자의 왕이오. 그것은 원죄인 자기 중심의 것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 운동 하는 자 많고 목회하는 자도 많습니다. 신앙 생활 하는 자 많습니다.
이러기에 “내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는 나는 그 안에 그는 내 안에 있다” “그는 내 안에 나는 그 안에 있나니” 어떻다 말이오? “있나니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처럼 그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인하여 살게 된다 그말이오.
어리석지 맙시다. 공연히 허영과 허욕을 가지고 예수를 믿으면서 예수 안에서 허영과 허욕을 가지고 자타를 망치는 그런 고라의 길과 그런 멸망의 가인의 길 그런 패역한 길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순진하십시오!
깨끗하십시오!
순전히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자기를 위하지 마십시오!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하십시오!
거기에 영생이 있습니다!
주님의 복음과 주님의 이름을 팔아 가지고 자기를 위하는 그런 무서운 죄를 짓는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쨌건 주님의 피와 살로 인한 힘이 아니면 가짜요. 주의 피와 살로 인하여서 성장된 것이 아니면 마지막에 부활 못 합니다. 그것이라야 됩니다.
주님을 우리 안에 들어오게 할려면, 들어와 계시게 할려면 주의 피와 살을 먹어야 됩니다. 주의 피와 살을 생각하고, 연구하고, 사모하고, 느끼고 그것이 먹는 것이 마음으로 먹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 먹는 것이요, 새김질 하는 것이 먹는 것이요, 연구하는 것이 먹는 것이요, 깨닫는 것이 그것이 거기에서 영양을 취한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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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 메일 정리 때문에 재 등재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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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통하여 빛을 찾았고 항상 말씀으로 은혜받고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이러한 총공회에 교훈으로 은혜받기를....
편집부님 아래의 말씀을 정리해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바쁘시니 다음주중에 부탁드립니다.)
참된양식 (9호)
1982. 9. 12. 주일오전
본문:요한복음 6장 54절~57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주님의 피와 살과 구속받은 성도들의 그 구원 관계가 어떠한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천지가 변치 않는 것보다 더 확고한 말씀이지만 이 사실을 사람들은 인정하지 못합니다. 성신의 감화에서만 인정할 수 있는 어려운 사실입니다.
영생
54절에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는 영생이 그 속에 있고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살린다” 하는 말씀이 기록됐습니다.
영생은 우리 성도들에게 언제든지 있는 것 아닙니다. 중복적입니다. 영생은 그 속에 있다가 없다가 그렇게 하는 영생입니다. 중생된 생명은 언제나 내주하지만 영생은 그 사람에게 하루 한 시간 있다가 없어지는 일도 있고 계속 그 속에 영생이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지금 살고 있는 지혜와 힘 또 산 그 생애의 일 이 세 가지가 없어지는 것도 있고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사는 것도 있습니다.
성도 안에 멸망하는 멸망의 지혜와 능력이 있을 때도 있고 영생하는 지혜와 능력이 속에 있을 때도 있습니다. 또 성도가 행동한 것이 영원히 천국에 있어 하나님과 모든 이웃과 자기에게 유효하게 쓰여지는 영원한 일도 있고, 그 일이 세상에서는 천지를 울렸다 해도 다 멸망되고 없는 그런 행동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껍데기는 사람이 행동하는 것이요 그 알맹이는 진리와 하나님이 조성하는 일입니다. 인생의 지능 껍데기 속에 하나님의 지능이 알맹이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지능에 따라 인간 지능이 움직여질 때에 그것이 영생의 힘이요 해 놓은 모든 행동이 다 영생입니다. 그때에 사람이 행동한 기능도 그 기능은 영원히 그 사람에게 살아 역사합니다. 그 행동도 영원히 하나님과 이웃과 그에게 필요있게 쓰여지는 행동입니다.
그런고로, 인간의 기능은 변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기능이 인간 기능 안에서 역사할 수도 있고 떠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이 하나님의 기능이 자기 기능이 되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움직이는 자기의 움직임이 됨으로 자기의 모든 해 놓은 일이 영원히 보존될 뿐만 아니라 영원히 무궁세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그 행동으로 쓰여지는 이 영생이 되기를 사람들은 원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이 이 영생을 가질려고 온갖 노력의 방편을 해도 못 가지기 쉽습니다. 결심도 하고, 선도 사모하고, 의도 사모하고, 화평도, 절제도, 계속성의 의지도 별별 것을 사모해도 그것으로서는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있다 할지라도 극히 미약합니다.
다만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일, 주님이 어떠하신 그 크신 분으로서 천한 나를 위해서 어떻게 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셔서 세 가지 대속을 주신 이 사실을 자기가 연구하고 생각하고 점점 깨달아 느낌으로 자기에게 생각도 새로운 생각이 나올 것이고, 소원도 새 소원이 나올 것이고, 작정도, 결심도, 비판도, 평가도 모든 움직이는 그 마음의 힘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그 생각이, 그때의 마음의 힘이, 생각의 힘이, 결심의 힘이 그 힘이 그때에 그렇게 깨달아 하고 싶은 그 지혜가 그것이 막바로 하나님이신 주님의 지혜요 능력입니다. 바로 그것이 주님의 지혜요 능력입니다.
그럴 때에 그 마음 그 소원 그 결심 가지고 그대로 행할 때에 그것이 영생입니다. 그것이 껍데기는 사람이지만 속에 알맹이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겉은 인간 역사요 속은 하나님의 역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생입니다.
영생하는 참 힘은
그러기에 자기가 어떤 명예를 생각해서, 어떤 목적을 생각해서, 땅에 별별 인간을 유혹시키는 소망들이 많고, 욕심들이 많고, 인간들이 좋아하는 모든 목표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생각해도 힘이 나옵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생명도 바칠 수 있는 힘도 나옵니다. 정치가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 생각하고 생각하는 그 영웅심은 생명도 아끼지 않는 그런 힘도 나옵니다. 또 자기가 명예나 도덕이나 그런 것을 사모해서 그 목적을 위해서 생각하고 힘을 써도 그 속에 굉장한 깨달음의 힘과 결심의 힘과 용기의 힘, 몸과 생명과 소유를 바칠 만한 그런 힘도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의 어떤 온갖 사욕의, 어떤 종류의 정욕을 생각해도 그 생각하는 끝에 자기의 심신을 다 기울여서 그 일을 달성코자 하는 그런 힘도 나오는 것입니다. 천하의 사람들이 다 그 생각에서, 그 욕심에서, 그 목적에서 나오는 힘 가지고 모든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영생하는 요소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 속에, 억억만 명의 결심 속에도 하나님의 지혜나 능력이나 하나님의 소원하시는 그 하나님의 소욕은 그 속에 섞여 있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러나 구속받은 성도들이 주님이 나를 구속하신 주님의 피를 생각하고 주님의 살을 생각해서, 어떻게 크신 분이 어떻게 작은 나를 위해서 어떤 사랑으로 어떤 희생을 해 가지고 나를 구속하셔서 영광의 소망이 있게 하셨는가 하는 것을 자기가 생각하고 또 되생각하고, 아는 대로 범위를 넓게 생각하고 깊이 생각하고, 생각하는 가운데에서 깨달음이 나오고, 감동이 나오고, 힘이 나오고, 욕심이 나오는 그 전부가 다 영생입니다.
요것은 세상이 전혀 부인하는 것이요 성신의 감화를 받은 자들이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는 별별 거짓 기독자가 많이 있습니다. 자기는 ‘복음의 사역자가 되겠다’ `큰 개혁가가 되겠다' `큰 부흥사가 되겠다' `세계를 한번 변화를 시키겠다’ ‘어떤 위대한 대목회자가 되겠다' 다 좋은 생각이지만 거기에는 그 속에 영생은 없습니다. 여러분들 이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며칠 전에도 여기에서 새벽기도 설교한 그 설교 여러분들은 들을 때에 아주 잘했다고 칭찬하지만 그 사람을 내가 나무랐습니다. 그 사람은 피도 잊어버렸고, 주님도 잊어버렸고 다 잊어버렸습니다. 자기 배운 것 주 대서 자기만 이렇다는 사람으로 나타내려는 그것밖에는 없었습니다. 못씁니다.
여러분들, 세계의 대부흥사라고 결단코 그 속에 영생이 있는 것 아닙니다. 아주 사람 보기에 초초하다고 그 속에 영생이 없는 것 아닙니다. “영생은 이것이니 홀로 하나이신 참 하나님을 아옵고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앎이니이다”
예수님의 대속이 어디서부터 근원되어 나왔으며, 나오는 그 유래의 과정이 어떠했으며, 어떠한 사랑으로, 어떠한 계획으로, 어떠한 큰 투자로, 어떻게 광대하심으로 이렇게 구속하셨는가 하는 것을, 자기에게 많든지 적든지 있는 대로의 그 지능을 다해서 …
주의 피와 살로 양식 삼으라 그 말은 주의 피와 살로 얻는 힘, 지혜의 힘이나 마음의 힘, 주님의 피와 살의 그 공로를 생각하고 깨달음으로 얻어지는 힘, 자라가는 자람, 해 놓은 일 그것만 참되다 그말이오.
주님의 피와 살은 참된 양식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 그 말은, 다른 양식들은 다 썩어질 양식들이요 참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어떤 것으로 인한 힘으로 자라고, 또 힘으로 일하고 한다 할지라도, 그 힘도 그 자란 것도 일해 놓은 것도 다 참된 것은 아닙니다.
다 거짓부리입니다. 다 거짓부리. 귀가 있는 자는 들을 것입니다. 다 거짓부리요.
그러기에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 말은 다른 것은 다 썩을 양식이라 그말이오.
그러기에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하는 말씀은, 피와 살을 먹는 자 그 속에는 벌써 영생이 역사한다 그말이오. 주님의 피와 살을 양식삼아, 주님의 피와 살로 인하여 얻어지는 힘, 인하여 생겨진 욕심, 인하여 생겨진 지혜 그것이 막바로 영생이오. 그것이 주님의 지혜요, 주님의 능력이요, 그것이 주님의 소욕입니다. 주님의 욕심이요 주님의 소욕이오.
그러기에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음료라” 그 말은, 인간이 고기덩어리의 양식이야 물질을 먹어야 되지 딴것 서슴을 것이 있습니까?
여기에 양식이라 말하는 것은 인격의 양식과 마음의 양식, 정신의 양식, 욕심의 양식 그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생각하고 깨달음으로 자기에게 생겨진 욕심, 그 욕심이 강해진 욕심 그것이 막바로 성령의 욕심이오.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생각하고 주님이 누구심을, 그의 계획이 얼마나 광대함을, 모든 것은 그에게 지음받은 것이니 이것은 그에게는 비교를 할 수가 없는 것이라 하는 이 사실을 깨달음으로 인하여 자기에게 생겨지는 지혜가, 힘이, 욕심이, 소원이 그것이 그 사람이 하고 있지만 그것은 누구의 것입니까? 그것이 막바로 주님의 것이오. 인간의 생각 욕심으로 나타났지만 알맹이를 보면 주님이시오.
그러기 때문에 성도가 주님을 중보로 삼아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 못 갑니다. 암만 기도해도 헛일입니다. 암만 부르짖어도 헛일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중보자십니다.
주님을 덩더꿍이로 ‘주여 주여’ 할 게 아니라, 주님이 어떠하신 분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어떻게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그 과정을, 그 범위를, 그 광대하심을 자기가 생각할 때에 깨달음이 나오고, 그 깨달음으로 인하여 욕심이 변화되고, 힘이 변화됩니다.
그전에는 아주 인간을 막 엎어칠 만한 힘이 있었지만 나중에 주님의 피와 살을 깨닫고 보니까 그 힘이 자타를 죽이는 힘이기 때문에 집어 내던져 버립니다. 주님의 피와 살을 먹음으로 생겨지는 힘이 따로 있어요. 지혜가 따로 있어요. 모든 사람을 사기 협잡 횡령해서 마구 착취할 그런 지혜가 있었는데, 주님의 피와 살을 자기가 사모해 보니 거기에서 그 힘이 나오는 것만치 이 힘은 줄어지고 나중에 이 썩은 힘은 다 없어지고 예수님의 피와 살의 힘으로 바꿔집니다.
이 양식이 참되다 말은 주님의 피와 살의 공로를 자기가 생각함으로 생겨지는 힘 그것이 참힘이라 말이오. 영생하는 힘이라 말이오. 그것이 참 힘이오. 그 외에는 참 힘이 없어요. 세계에 과학이 어떤 인류들이 뭐라 해도 그것도 힘이지만 주님 오시면 다 불타 버립니다. 아무 힘 없어요. 그 힘을 의지하고 살던 자마다 그것이 멸해질 때는 같이 멸망받습니다.
여러분들,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하는 요 한 말씀이라도 여러분들이 굳게 잡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지식 있는 대로 생각하고, 더 넓게 생각하고, 더 깊이 생각하고, 더 길게 멀게 생각하고, 과거적으로 태초부터 생각하고 자존부터 생각해서, 이렇게 생각을 함으로 나온 그 지혜가 참 지혜다. 생각을 함으로 나는 그 힘이 참 힘이다. 생각을 함으로 생겨지는 소원과 욕심 그것이 참 욕심이요 참 소원이다. 그것이 뭐이냐? 영생이다. 그것이 껍데기는 사람이요 알맹이는 하나님이신 주님이시다. 이것이 예수님의 피로만 된다. 피로만 이루어지지 피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네가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생각함으로 생겨지는 지혜와 힘, 생겨지는 소원과 욕심 그것이 참 것이요 영생하는 것이지, 그 외에 네가 어떤 인간을 접촉함으로, 사물을 접촉함으로, 시대를 접촉함으로, 네가 어떤 피조물로 얻어지는 힘이나 소원이나 욕심이나 지혜나 행동, 굉장히 찬란하다 할지라도 한 말로 다 멸망이다. 영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는 그 속에 벌써 영생이 역사한다, 주님의 지능이 역사한다 그말입니다. 그 사람은 성령의 소욕대로 움직이니 그의 모든 움직임이 다 영생이다, 이러니까 마지막 부활할 때에 그것은 다 부활할 요소들이다, 영원히 부활해서 하늘나라 가서 영생할 요소들이다는 말입니다.
그 외의 것은 제가 세계에서 어떻게 유력하게 유명하게 활동했다 할지라도 죽을 때에 그것은 다 없어지고 부활할 때는 그런 기능은 없습니다. 부활할 때는 권능 없는 고기덩어리 형체만 부활하지 속에 기능은 하나도 없는 자로 부활합니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리리라” 어떻게 해서? 그다음에 다시 해석해 놨습니다.
주님의 피와 살로 인한 생애
55절에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어떻게 해서 그와 같이 되는가?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자기가 주님의 피와 살을 자기의 전부로 삼아야 합니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아니면 하나님에게 상관이 없어요.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아니면 만물의 적입니다. 만물의 원수입니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만 하나님과 자기와는 사이가 화친해서 연결이 되고 모든 피조물과도 화친해서 연결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 사이의 중보자요 모든 피조물과 나 사이의 중보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분이 아니면 안 되요.
그런데 “내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는 내가 그 안에 있기를 아버지가 내 안에 있어 모든 역사를 이루심으로써 흠없는 완전 승리를 이룸같이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내가 그 안에 있어 나로 인하여 이루어진다” 이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버리고는, 어떤 성자 성녀라도 주님의 피와 살을 잊어버리고는 하나님으로 사귈 수는 없습니다. 연결은 안 됩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피와 살로 양식을 삼는 자는 ‘그 속에 영생이 있다’ 영생이 뭐 있다 말인가?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겠다’ 주님은 어디 계시면서? 주님이 어디 계시다가 살립니까? 주님이 어디 계십니까? 주님의 피와 살로 양식삼는 자에게는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하늘에 있습니까 땅에 있습니까? 거기 뭐라고 말했어요?
요걸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이 못 믿는 일이오. 꼭 조작배기 같습니다.
주님의 피와 살로 양식 삼는자는,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시고 주님의 피와 살로 양식 삼지 않고 ‘복음 운동으로 세계를 구원하겠다, 몇백만 교회를 세우겠다, 대혁명가 대개혁가 대부흥사가 되겠다, 내가 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몸과 생명을 바치겠다.’ 좋지만 거기에는 계약이 없습니다.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 “나는 그 안에 있고 그는 내 안에 있나니” 떨어지지 않았어요. “나는 그 안에 있고 그는 내 안에 있나니” 어떻다 말이오?
“그는 내 안에 있고 나는 그 안에 있나니”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아버지가 내 안에 계셔서, 내가 사는 것 같지만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사는 것이라! 아버지가 내 안에 계셔서 사는 것처럼 내 피와 살을 양식 삼아 먹는 그에게는 나는 그안에 거하고 그는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나로 인하여 사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 가능하게 된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세상이 안 믿는 일이오. 신자들이 안 믿어요.
그런고로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는 이 말씀은 피와 살은 절정이니까.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주의 대속의 이 공로를 자기가 아는 대로 생각하고 연구하고, 대속의 공로와 자기와 어떤 관련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깨닫고 깨달음으로 힘나는 그 힘이 바로 주님의 힘이요, 생각나는 그 지혜가 바로 주님의 지혜요, 소원하는 그 소원이 주님의 소욕입니다. 주님이 그 안에 계셔서 그와 같이 하는 것이오.
아버지가 내 안에 계셔서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완전 생애를 이룬 것같이 인생이 내 피와 살의 공로를 사모하여 이 공로로 인하여 자기의 모든 기능과 모든 발원을 삼는 그자에게는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는 것처럼 내가 그 안에 있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산 생애를 성공한 것처럼 그는 나로 인하여 사는 생애를 성공하게 된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생 부활은 주님의 피와 살로만
그러기 때문에,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 말은, 참된 양식이라 말은 참 힘을 얻는 양식이라 그말이오. 참 힘을 얻는 양식이라 그말이오. 지혜의 힘, 능력의 힘, 소원의 힘, 또 자라는 것이 마지막에 부활할 참으로 자라. 인간이 아무리 세계를 움직이고 크다 할지라도 죽으면 송장이고 부활할 때는 지옥이오. 예수 믿는 사람도 부활할 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능이 없어요.
제가 이번에 아파서 힘없는 꼴을 봤는데 체중도 좀 줄어지기는 줄어졌지만 몸은 그대로 있는데 힘이 하나도 없어. 힘이 하나도 없으면 목숨 붙어 있어도 그뭐 죽은 것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어요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릴 것이요”
성도야! 네가 참 힘을 얻고, 참으로 참 것으로 자라고, 네가 참 일을 하고 마지막 부활할 때에 영생으로 부활할 자 그자는 내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여기에서만 가능하다. 다른 데서는 안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생각함으로 생겨진 지혜와 능력과 욕망과 행동이 아니라면 성공같으나 실패요, 인생을 구원하는 것 같으나 다 멸망이오. 왜? 거기에는 주님이 역사적으로 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중생시킨 중생적으로는 주님이 우리 안에 항상 계시지만 역사의 주님으로서는 우리 안에 계실 때도 있고 계시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내가 문 밖에서 문들 두드리노니 문을 열라” 하는 것은 역사적인 주님으로는 우리 심신 속에 내주하시지를 않기 때문에 내주하시기를 원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로마서 6장 5절 이하에 보면 “나의 죽음에 연합한 자가 되면 나의 부활에도 연합한 자가 되어” 주님이 부활하신 것은 새생명 산 소망에 속한 것, 새 생활 할 수 있다 말입니다.
이상하게 생각지 말고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이 다른 사람 천만 인이 말했지만 소용 없는데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서라” 예수의 이름을 인계받아 가지고 전하는, 사도된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전할 때에, 그가 그 전도에 소망을 가지고 일어설려고 뻐득거렸지만 그것 가지고 되는 것 아니오.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지만 일으킨 것 가지고 된 것 아니오. 그것은 껍데기 인간 행동이오. 본인이 힘쓰고 협조하는 것인데 뼈와 발목을 힘있게 한 것은 보이지 않는 그분이 당신이 맡겨 주신 그 복음의 사도의 전도를 통해서 당신이 책임지고 일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사실을 믿지 않는 자는 기독교의 신비는 접하지 못합니다. 이러나 저러나 다 썩을 것, 다 무익한 것 하고 있지, 주님이 역사하시는 것은 그를 인정할 때 와서 역사해요. 보이지 않는 그분이 볼 수 없는 그 사람의 인정하는 그 인정에 따라서 움직여요.
주님의 피와 살을, 자기는 주님의 피와 살로 인한,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한 그 은혜로, 대속의 공로로 인한 그 힘으로, 대속의 공로로 인한 하나님의 선물로, 대속의 공로로 인한 교제로, 대속의 공로로 인한 연결로, 대속의 공로로 인하여 하나님에게 받아지는 것으로, 이것으로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가 주의 피와 살을 참된 양식으로 인정하는 자요. 그자에게는 영생이 있어요. 마지막 날에 다시 살려요. “내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는 내가 그 안에 있다” 피와 살을 먹을 때 그 안에 있어요.
「영생이 있고」 하는 것은 영생이 없을 수도 있다 그말이오. “너희들이 미워하면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없느니라” 문을 두드리는데 문을 두드릴 때는 영생이 그 속에 없어요. 영접해야 영생이 있지. 영생은 왔다 갔다 합니다. 중생시킨 생명은 그렇지 않아요.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 그 말은, 양식은 힘을 얻게 하는 것이요, 자라게 하는 것이오. 힘 얻고 자라면 일하지요. 그러기에 인간이 참 사람의 힘, 참 지혜의 힘, 참 능력의 힘, 참 것, 모두 참 것은 예수의 공로를 사모함으로 거기에 감격된 그 감격으로 말미암아서만 되어지지, 제가 복음을 위한다고 해도 딱 쪼개서 해부를 해 보면 별별 허영심과 허욕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주님에게는 상관이 없어요.
주님의 피와 살에 감격한 그 소원, 그 결심, 그 욕심, 감격으로 인하여서 얻어진 그 지혜와 능력이 아니면 다 가짜요 다 썩은 것이오. 다 제것이오. 주님의 적이오. 다 왕된 자의 왕이오. 그것은 원죄인 자기 중심의 것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 운동 하는 자 많고 목회하는 자도 많습니다. 신앙 생활 하는 자 많습니다.
이러기에 “내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는 나는 그 안에 그는 내 안에 있다” “그는 내 안에 나는 그 안에 있나니” 어떻다 말이오? “있나니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처럼 그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인하여 살게 된다 그말이오.
어리석지 맙시다. 공연히 허영과 허욕을 가지고 예수를 믿으면서 예수 안에서 허영과 허욕을 가지고 자타를 망치는 그런 고라의 길과 그런 멸망의 가인의 길 그런 패역한 길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순진하십시오!
깨끗하십시오!
순전히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자기를 위하지 마십시오!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하십시오!
거기에 영생이 있습니다!
주님의 복음과 주님의 이름을 팔아 가지고 자기를 위하는 그런 무서운 죄를 짓는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쨌건 주님의 피와 살로 인한 힘이 아니면 가짜요. 주의 피와 살로 인하여서 성장된 것이 아니면 마지막에 부활 못 합니다. 그것이라야 됩니다.
주님을 우리 안에 들어오게 할려면, 들어와 계시게 할려면 주의 피와 살을 먹어야 됩니다. 주의 피와 살을 생각하고, 연구하고, 사모하고, 느끼고 그것이 먹는 것이 마음으로 먹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 먹는 것이요, 새김질 하는 것이 먹는 것이요, 연구하는 것이 먹는 것이요, 깨닫는 것이 그것이 거기에서 영양을 취한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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