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이 안 되면 차선으로 - 호별전도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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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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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0 00:00
호별전도란
가가호호 전도라는 뜻이니 한 집씩 따로 찾아 들어가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남들 보란듯이 한번 떠들고 지나가는 것보다
조용하게 그러나 진실되게 한 사람씩 표적을 삼아 또박또박 전하자는 것입니다.
70년대를 지나가면서 우리 사회는 이렇게 해야 할 시대로 급변을 했습니다.
노방전도란
전도자는 적고 안 믿는 사람은 거리에 한없이 많던 과거, 대로로 나가 고함을 지렀으니
호별전도의 중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때는 노방전도가 필요했던 때였습니다.
60년대까지는 거리에 사람은 넘쳐나고 복음을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교회들이 나서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곳곳을 외치고 다녔습니다.
호별전도를 하실 때
한 집씩 문을 두드리고 사람을 만나서 간단하지만 분명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최선인데
현재 우리 사회의 주택과 생활 여건으로 그렇게 하려면 불가능하다 할 정도입니다.
노방전도에서 호별전도로 바뀌던 1970년대에는 집집마다 문이 다 열려 있었고
한 집 대문을 열면 보통 2-3가정 많은 곳은 4-5가정이 모여 있었습니다.
지금 전도지만 문틈에 밀어넣는다면
과거 노방전도만은 못하고 대문으로 들어가서 사람을 만나서 전하는 호별전도만도 못하지만
그래도 현 사회 여건에서 문틈에 전도지만 밀어넣는다 해도 과거 전도 정도 될 것입니다.
물론 최상은 아니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한다면 차선은 될 것입니다.
과거 누구든지 노방전도 할 수 있고 호별전도 할 수 있던 그 시절이 복 받은 시절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이 상황을 내가 만들지 않았으니 복 없는 시대에는 이 면에 복 없이 살고
대신 이 과거와 비교할 때 오늘은 말씀 연구에 장점이 많으니 이 면을 살리면 됩니다.
양심의 가책을 가지지 마시고
대문을 열 수 있는 가정이 아직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곳은 그렇게 하시고.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는 가정에는 문틈에 밀어넣기만 하시고.
벨을 누를 수 있으면 누르시되 벨을 눌러대는 장사꾼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벨을 누를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벨을 누르고 전하는 심정을 마음에 담아
기도하면서 전도지를 밀어넣을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이 시대가 너무 잘 살아 배부르고 등 따시고 만사 부족함이 없으니
이것이 복이 아니고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큰 화요 큰 저주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우리에게 요구하는 하나님의 이 시대 사명이 따로 있습니다.
전도의 효력은
단언코 전하는 방법에 있지 않고 전하는 이의 충성과 진실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에 불타는 진심이 있다면 그리고 전하는 노력이 있다면 전도만큼은 틀림없습니다.
불교나 천주교 문패가 보이거든
무조건 밀어넣으시면 됩니다. 다만 마주치는 경우가 있더라도 소리가 나면 안 됩니다.
전도는 멱살 잡고 밀어넣는 신문 판촉이 아니며
상대방과 싸워 가며 밀어넣어야 하는 사상전도 아닙니다.
전하는 말씀에 능력이 담겨 있고 이 능력이 그 전달 받은 사람 속에서 독자적으로 움직이니
전하는 내가 귀한 말씀을 전달하는 자세만 좋으면 됩니다.
상대방에게 뺨을 돌려대 가며 전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별별 소리를 듣는 것이 정상이며 듣지 않으면 이상한 것입니다.
전도할 때 옷차림은
단정한 정도면 좋겠습니다.
너무 정장으로 갖추다가 남들에게 그 옷차림 때문에 너무 드러나도 좀 불편하겠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가 정장인지 과도한 것인지 좀 못한 옷차림인지 단정하지 못하겠습니다.
성의를 다하고 받는 이들에게 또 옆에서 보는 이들에게 일반적이면서 단정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옷차림의 기준보다 마음 속에 불을 담고 행동에 열심을 담아 전하되
그 전하는 것이 계속된다면 옷차림에 비록 서툰 면이 있다 해도 다 묻히게 됩니다.
복음 전도가 그런 것입니다.
가가호호 전도라는 뜻이니 한 집씩 따로 찾아 들어가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남들 보란듯이 한번 떠들고 지나가는 것보다
조용하게 그러나 진실되게 한 사람씩 표적을 삼아 또박또박 전하자는 것입니다.
70년대를 지나가면서 우리 사회는 이렇게 해야 할 시대로 급변을 했습니다.
노방전도란
전도자는 적고 안 믿는 사람은 거리에 한없이 많던 과거, 대로로 나가 고함을 지렀으니
호별전도의 중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때는 노방전도가 필요했던 때였습니다.
60년대까지는 거리에 사람은 넘쳐나고 복음을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교회들이 나서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곳곳을 외치고 다녔습니다.
호별전도를 하실 때
한 집씩 문을 두드리고 사람을 만나서 간단하지만 분명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최선인데
현재 우리 사회의 주택과 생활 여건으로 그렇게 하려면 불가능하다 할 정도입니다.
노방전도에서 호별전도로 바뀌던 1970년대에는 집집마다 문이 다 열려 있었고
한 집 대문을 열면 보통 2-3가정 많은 곳은 4-5가정이 모여 있었습니다.
지금 전도지만 문틈에 밀어넣는다면
과거 노방전도만은 못하고 대문으로 들어가서 사람을 만나서 전하는 호별전도만도 못하지만
그래도 현 사회 여건에서 문틈에 전도지만 밀어넣는다 해도 과거 전도 정도 될 것입니다.
물론 최상은 아니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한다면 차선은 될 것입니다.
과거 누구든지 노방전도 할 수 있고 호별전도 할 수 있던 그 시절이 복 받은 시절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이 상황을 내가 만들지 않았으니 복 없는 시대에는 이 면에 복 없이 살고
대신 이 과거와 비교할 때 오늘은 말씀 연구에 장점이 많으니 이 면을 살리면 됩니다.
양심의 가책을 가지지 마시고
대문을 열 수 있는 가정이 아직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곳은 그렇게 하시고.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는 가정에는 문틈에 밀어넣기만 하시고.
벨을 누를 수 있으면 누르시되 벨을 눌러대는 장사꾼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벨을 누를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벨을 누르고 전하는 심정을 마음에 담아
기도하면서 전도지를 밀어넣을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이 시대가 너무 잘 살아 배부르고 등 따시고 만사 부족함이 없으니
이것이 복이 아니고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큰 화요 큰 저주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우리에게 요구하는 하나님의 이 시대 사명이 따로 있습니다.
전도의 효력은
단언코 전하는 방법에 있지 않고 전하는 이의 충성과 진실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에 불타는 진심이 있다면 그리고 전하는 노력이 있다면 전도만큼은 틀림없습니다.
불교나 천주교 문패가 보이거든
무조건 밀어넣으시면 됩니다. 다만 마주치는 경우가 있더라도 소리가 나면 안 됩니다.
전도는 멱살 잡고 밀어넣는 신문 판촉이 아니며
상대방과 싸워 가며 밀어넣어야 하는 사상전도 아닙니다.
전하는 말씀에 능력이 담겨 있고 이 능력이 그 전달 받은 사람 속에서 독자적으로 움직이니
전하는 내가 귀한 말씀을 전달하는 자세만 좋으면 됩니다.
상대방에게 뺨을 돌려대 가며 전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별별 소리를 듣는 것이 정상이며 듣지 않으면 이상한 것입니다.
전도할 때 옷차림은
단정한 정도면 좋겠습니다.
너무 정장으로 갖추다가 남들에게 그 옷차림 때문에 너무 드러나도 좀 불편하겠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가 정장인지 과도한 것인지 좀 못한 옷차림인지 단정하지 못하겠습니다.
성의를 다하고 받는 이들에게 또 옆에서 보는 이들에게 일반적이면서 단정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옷차림의 기준보다 마음 속에 불을 담고 행동에 열심을 담아 전하되
그 전하는 것이 계속된다면 옷차림에 비록 서툰 면이 있다 해도 다 묻히게 됩니다.
복음 전도가 그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