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와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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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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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9 00:00
- 천주교의 역사
원래 초대 교회가 중세기를 거치며 천주교라는 이름으로 외도를 했는데 그 외도의 정도는
교회라는 이름 안에서 이리 저리 어지러웠던 정도가 아니고 종교라는 선을 넘어 갔습니다.
그래서 루터와 칼빈의 종교 개혁은 천주교 안에서 틀린 것을 고쳐서 사용할 정도가 아니라
천주교 자체를 버리고 천주교로 삐둘어 지기 이전의 초대 교회로 돌아 가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와 기독교는 아예 종교가 서로 다르니 불교와 기독교가 다르듯이 다릅니다.
- 우상 종교, 천주교
천주교 시절이 1천 년이었으므로 그들의 잘못 된 것들은 손으로 다 헤아리기 어렵습니다만
천주교라는 이름으로 삐뚤어 지기 시작했던 첫 모습은 바로 '보이는 것'을 섬긴 것입니다.
보이는 것을 가지고 가르쳐서 보이지 않는 신령한 세계로 인도한 것은 구약 시대였습니다.
주님이 오셨고 십자가 사활의 대속으로 우리 구원을 완성한 후에 시작 된 신약 시대에서는
이제 보이지 않는 신령한 것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성품에까지 자라 가야 할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불교는 신령한 것이 없으니까 뭐든지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어 운영하지만
우리는 신령한 세계를 이미 우리 안에 가지고 있으므로 보이는 외부로 나가면 안 되는데도
사람이 어두워 지고 흐려 지면 내면의 신령한 것을 찾지 않고 보이는 외부를 찾게 됩니다.
구약에는 돌과 나무로 성전이라는 집을 지어 놓고 그 곳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셨으나
신약에는 하나님 모신 우리가 성전이고 예배당은 하나님 잘 모시게 예배 드리는 집입니다.
로마 박해가 끝나고 평화가 오자 인재와 돈이 넘친 천주교는 하나님과 멀어 져 어두워 지니
예배당 건축이 신앙 건설인 줄 알고 마치 불교가 불당에 모든 것을 쏟아 붓 듯 했습니다.
- 천주교와 십자가
성경의 '십자가'란 가로 세로를 교차만 시킨 표시라면 무조건 십자가가 되는 것이 아니니
그런 표시가 우리 구원의 십자가라면 사찰에도 유교의 향교의 창살에도 십자가는 무수하나
성경이 말씀하는 십자가는 내 죄 때문에 주님이 대신 죽은 '대속'이 성경의 십자가입니다.
내 죄로 주님이 대신 죽으셨으니 이제는 죽어도 말씀을 어기지 않겠다는 생활이 십자가인데
목이나 예배당 안팎에 십자가 표시만 해 두면 십자가 생활인 줄로 안다면 너무 외식입니다.
천주교가 타락하면서 예배당 건물이 교회인 줄 안 것처럼 십자가 표시가 십자가인 줄 알고
십자가를 그려 달고 군대를 모아 창과 칼로 십자가 군을 만들어 중동에서 전쟁을 벌였으니
루터와 칼빈의 종교 개혁은 바로 이렇게까지 썩고 썩은 천주교의 탈선이 한 이유였습니다.
오늘 교회가 눈에 보이는 십자가를 그려서 건물에 달아 매고 어디든 앞 세우고 나가는 것은
신앙이 있는 표시가 아니라 교회가 얼마나 어두워 지고 흐려 졌는지를 말하는 척도입니다.
중이 고기를 먹는 것은 부처가 준 복이며 자랑이 아니라 불교의 근본을 짓 밟는 행동이듯이
교회가 눈에 보이는 십자가를 어디나 자랑스럽게 내 대는 것은 우상 종교로 가는 탈선인데
신학교 교수들은 신학교 강의실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으나 그들의 돈과 직책을 쥐고 있는
교단 지도자들과 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그 십자가를 가지고 교인들에게 연보를 받고 있으니
개혁 교회의 원리를 가르치는 강의 시간에 어린 아이 징얼 대듯 뭐라고 말만 할 뿐입니다.
- 문제는
십자가뿐 아니라 루터 칼빈의 개혁 이후 500 년이 흐르면서 썩지 않은 부분이 거의 없으니
신학생이 아직 소속 교단과 교계의 전체 분위기를 몰라서 지금은 그런 것으로 탄식을 하나
실제 목회자가 되어 자기와 가족이 먹고 살 문제와 자기 평생 근무할 이해 관계가 생기면
앞 선 선배들처럼 원리는 아나 현실에 피동 되어 그 속에서 묻혀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 문제 하나라면 어렵지 않을 수 있으나 그 문제를 정식으로 건들이고 바로 살려 하면
현재 신학교 체제 자체는 더욱 더 큰 죄가 되는 문제에 직면할 것입니다.
현재 교육부나 교육청에 등록한 정규 신학교라는 학교들은 한국의 교육법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한국의 교육법은 단군 할애비의 홍익 사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를 책임 맡을 목회자를 양성하는데 왜 세상 학위가 필요한가?
그 세상 학위가 죄 되지 않고 신앙에 배치 되지 않는다면 가질 수 있다고 백 번 양보해도
그 학위를 주려면 단군 할애비의 홍익 사상 이념 아래 교육하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모든 등록 신학교가 이 서약에 그 교파나 신학교 운영 책임자가 서명 날인을 한 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친다? 신학을 배운다?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우리가 절에도 구경 갈 수 있으나
그 절에 들어 가면서 부처에게 절을 하란다든지 어떤 행동을 요구하면 이야기는 달라 집니다.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개신교 교회들이 왜 밖에 십자가를 다는지요?
: 이것은 개혁신앙에 위배되는 일이아닙니까?
원래 초대 교회가 중세기를 거치며 천주교라는 이름으로 외도를 했는데 그 외도의 정도는
교회라는 이름 안에서 이리 저리 어지러웠던 정도가 아니고 종교라는 선을 넘어 갔습니다.
그래서 루터와 칼빈의 종교 개혁은 천주교 안에서 틀린 것을 고쳐서 사용할 정도가 아니라
천주교 자체를 버리고 천주교로 삐둘어 지기 이전의 초대 교회로 돌아 가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와 기독교는 아예 종교가 서로 다르니 불교와 기독교가 다르듯이 다릅니다.
- 우상 종교, 천주교
천주교 시절이 1천 년이었으므로 그들의 잘못 된 것들은 손으로 다 헤아리기 어렵습니다만
천주교라는 이름으로 삐뚤어 지기 시작했던 첫 모습은 바로 '보이는 것'을 섬긴 것입니다.
보이는 것을 가지고 가르쳐서 보이지 않는 신령한 세계로 인도한 것은 구약 시대였습니다.
주님이 오셨고 십자가 사활의 대속으로 우리 구원을 완성한 후에 시작 된 신약 시대에서는
이제 보이지 않는 신령한 것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성품에까지 자라 가야 할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불교는 신령한 것이 없으니까 뭐든지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어 운영하지만
우리는 신령한 세계를 이미 우리 안에 가지고 있으므로 보이는 외부로 나가면 안 되는데도
사람이 어두워 지고 흐려 지면 내면의 신령한 것을 찾지 않고 보이는 외부를 찾게 됩니다.
구약에는 돌과 나무로 성전이라는 집을 지어 놓고 그 곳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셨으나
신약에는 하나님 모신 우리가 성전이고 예배당은 하나님 잘 모시게 예배 드리는 집입니다.
로마 박해가 끝나고 평화가 오자 인재와 돈이 넘친 천주교는 하나님과 멀어 져 어두워 지니
예배당 건축이 신앙 건설인 줄 알고 마치 불교가 불당에 모든 것을 쏟아 붓 듯 했습니다.
- 천주교와 십자가
성경의 '십자가'란 가로 세로를 교차만 시킨 표시라면 무조건 십자가가 되는 것이 아니니
그런 표시가 우리 구원의 십자가라면 사찰에도 유교의 향교의 창살에도 십자가는 무수하나
성경이 말씀하는 십자가는 내 죄 때문에 주님이 대신 죽은 '대속'이 성경의 십자가입니다.
내 죄로 주님이 대신 죽으셨으니 이제는 죽어도 말씀을 어기지 않겠다는 생활이 십자가인데
목이나 예배당 안팎에 십자가 표시만 해 두면 십자가 생활인 줄로 안다면 너무 외식입니다.
천주교가 타락하면서 예배당 건물이 교회인 줄 안 것처럼 십자가 표시가 십자가인 줄 알고
십자가를 그려 달고 군대를 모아 창과 칼로 십자가 군을 만들어 중동에서 전쟁을 벌였으니
루터와 칼빈의 종교 개혁은 바로 이렇게까지 썩고 썩은 천주교의 탈선이 한 이유였습니다.
오늘 교회가 눈에 보이는 십자가를 그려서 건물에 달아 매고 어디든 앞 세우고 나가는 것은
신앙이 있는 표시가 아니라 교회가 얼마나 어두워 지고 흐려 졌는지를 말하는 척도입니다.
중이 고기를 먹는 것은 부처가 준 복이며 자랑이 아니라 불교의 근본을 짓 밟는 행동이듯이
교회가 눈에 보이는 십자가를 어디나 자랑스럽게 내 대는 것은 우상 종교로 가는 탈선인데
신학교 교수들은 신학교 강의실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으나 그들의 돈과 직책을 쥐고 있는
교단 지도자들과 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그 십자가를 가지고 교인들에게 연보를 받고 있으니
개혁 교회의 원리를 가르치는 강의 시간에 어린 아이 징얼 대듯 뭐라고 말만 할 뿐입니다.
- 문제는
십자가뿐 아니라 루터 칼빈의 개혁 이후 500 년이 흐르면서 썩지 않은 부분이 거의 없으니
신학생이 아직 소속 교단과 교계의 전체 분위기를 몰라서 지금은 그런 것으로 탄식을 하나
실제 목회자가 되어 자기와 가족이 먹고 살 문제와 자기 평생 근무할 이해 관계가 생기면
앞 선 선배들처럼 원리는 아나 현실에 피동 되어 그 속에서 묻혀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 문제 하나라면 어렵지 않을 수 있으나 그 문제를 정식으로 건들이고 바로 살려 하면
현재 신학교 체제 자체는 더욱 더 큰 죄가 되는 문제에 직면할 것입니다.
현재 교육부나 교육청에 등록한 정규 신학교라는 학교들은 한국의 교육법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한국의 교육법은 단군 할애비의 홍익 사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를 책임 맡을 목회자를 양성하는데 왜 세상 학위가 필요한가?
그 세상 학위가 죄 되지 않고 신앙에 배치 되지 않는다면 가질 수 있다고 백 번 양보해도
그 학위를 주려면 단군 할애비의 홍익 사상 이념 아래 교육하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모든 등록 신학교가 이 서약에 그 교파나 신학교 운영 책임자가 서명 날인을 한 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친다? 신학을 배운다?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우리가 절에도 구경 갈 수 있으나
그 절에 들어 가면서 부처에게 절을 하란다든지 어떤 행동을 요구하면 이야기는 달라 집니다.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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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신교 교회들이 왜 밖에 십자가를 다는지요?
: 이것은 개혁신앙에 위배되는 일이아닙니까?
십자가
개신교 교회들이 왜 밖에 십자가를 다는지요?
이것은 개혁신앙에 위배되는 일이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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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교회들이 왜 밖에 십자가를 다는지요?
이것은 개혁신앙에 위배되는 일이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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