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신앙의 발전과 신앙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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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신앙의 발전과 신앙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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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장과 발전이 가장 이상적으로 되려면


첫 걸음을 걷는 사람은 무엇이든 열심히 찾으려 노력하고 만사를 시도해 보고

그 다음을 걷는 사람은 앞 사람의 단점은 피하고 장점을 이어 그 위에서 다시 발전하고

이후 세대는 역사 전체를 살펴 참고하되 자기 시대의 새 개척을 노력하면 좋을 것입니다.

하나는 뿌리고 다음 사람은 가꾸며 마지막 사람은 열매를 따되 앞 사람의 수고를 기억하면

하나는 하나이면서 전체의 하나가 되어 하나가 전체를 위하고 전체가 하나를 위하게 되니

각각의 하나들이 서로가 유기적으로 엮이며 전체 속에 자율로 자원으로 하나 되는 이 세계!

이 세계가 바로 하나님께서 역사 교회 전체를 운영하는 큰 방향입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이룰 수는 없도록 하신 하나님의 섭리 세계를 안다면

그리고 한 인생이 두 번을 살 수 없는 한계를 알고 있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대는 물론 역사 전체를 통해 모든 교인을 한 교회로 만드심을 안다면

이미 역사에 나타난 것 중에서 쓸 만한 것은 최대한 아끼고 보존하고 활용해야 할 터인데

이미 역사에 나타난 것 중에 손을 봐야 할 부분이 발견 된 것은 얼른 보완해야 할 터인데

바로 된 과거는 하나님께 바로 붙들린 과거이니 그 과거는 하나님의 역사로 대해야 하는데

이런 사람이 된다면 그에게는 그에게 해당 된 새 현실에 새로운 발전이 있게 하실 터인데

이런 발전이 겹치면 아브라함 이삭을 통해 야곱 시기에 12 지파로 발전을 하게 될 것이고

이런 선후배라면 모세 여호수아처럼 엘리야 엘리사처럼 다윗 솔로몬처럼 발전할 것입니다.


한 사람이 할 수도 없을 뿐더러 하나님께서 그렇게 맡기지도 않으시는 세계가 있습니다.

루터가 1천 년의 천주교 철벽을 무너뜨리자 칼빈의 교리 체계는 앞 날을 열었습니다.

루터 칼빈도 실은 그들의 1천 년 전에 살았던 어거스틴과 교부들의 세계 위에 섰었습니다.


태산을 한 걸음에 넘어 가려면 날개를 가진 새가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만

한 걸음 올라 간 사람의 수고에 다음 사람이 자기 걸음을 더하여 내 딛는다면 됩니다.

신앙의 세계에서 이렇게 이어 가는 사람이 되려면 우선 나 자신이 산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 만일 그런 다른 사람과 이어 진다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사람을 평가할 때 자신의 신앙과 함께 신앙의 노선 상으로 평가합니다.

아무리 훌륭해도 이어 지는 노선에서 비켜 있으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것을 그칩니다.

좀 못해도 이어 지는 노선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그 못한 능력이 더 큰 일을 하게 됩니다.

만일 훌륭한 사람이 이어 지는 노선에 서 있다면 그의 역할과 업적은 형언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처럼 한 사람의 무슨 업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사역이 문제입니다.


2. 훌륭한 분들은 많으나


하나님께서 개인의 경건과 능력만 주시고 그 범위에서만 사용하고 마시는 분들도 있으니

이어 지는 노선의 연장선에서 그 앞과 이후의 연결을 보면 하나님의 쓰시는 범위를 압니다.

우리가 갖출 신앙의 자질이 많은데 그 중에 하나, 이어 지는 하나님의 인도를 봐야 합니다.


천주교와 단절하고 개혁교의 길을 걸은 대표적 거대 집단들 중에서 영국과 독일의 경우는

성공회와 루터교라는 길로 이어 졌고 그 뒤는 개혁의 생명성이 이어 지는 흔적이 없습니다.

그들보다 훨씬 작고 뒤 떨어 졌지만 칼빈의 제네바 개혁 운동은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주기철 손양원 김현봉처럼 오늘 우리 시대를 살아 간 우리 교계의 거목들도 많았습니다.

한 분씩 꼽아 가며 그들을 연구해 보면 참으로 경탄할 만하고 하나님께 붙들렸던 분들인데

그들이 모자라서가 아니고 그들을 감히 우리가 평할 정도의 낮은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는 주시지 않아서 그러했든지 그들 스스로 깊은 속에서 거부해서 그러했든지 간에

그 성자들은 이어 지는 세계가 없습니다.


오늘 상표로서의 주기철 손양원 김현봉의 이름은 우리 교계의 성자로 다 받아 들여 지나

그들 속에 흐르고 있던 신앙의 흐름은 그들의 임종으로 끝이 났고 이어 진 흔적이 없습니다.

물론 광의로 말한다면 어느 성도의 어느 한 기도인들 허공에 메아리로 끝나는 수가 없고

반드시 그 모든 것을 다 담아 천사의 손에 받들려 보좌 앞으로 올라 가게 됩니다만

오늘 이 땅 위에서 우리가 노력하고 나갈 우리 사명 차원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3. 이유를 살펴 보면


앞에 소개한 분들은 대개 하나님께서 그 한 사람씩만 따로 사용하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들 외에 일반적으로 유력했던 분들의 경우는 그들에게 이어 지는 노선이 주어 졌지만

자기 당대에 전부를 이루려 조급해서 그렇게 못한 사람

자기를 나타 내려는 자기 주관이 강해서 그렇게 못한 사람

이 것 저 것도 모르고 시야가 너무 좁아서 멋 모르고 살다가 그렇게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는 이 복음을 받아 열심 있게 사는 장점만큼 우리에게 단점이 있으니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남이 먼저 했다면 그 것을 배우고 익히고 잘 가져다가 사용하지 않고

기어코 내가 움직여 나라는 사람의 흔적이 남도록 나를 표시해야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이 것이 원죄인 자기 중심인데 작게는 주관이고 크게 말하면 왕이 되어야 하는 심리입니다.


특이하게도 소개하신 목사님의 경우는

원래 전통의 신학을 배웠고 그 속에서 은혜를 받아 그 신학을 계승하는데 철저한 분입니다.

그 노선에 철저하시므로 그 노선에서 발전할 수 있는 혜택은 고루 받아 잘 하시는 것 같고

그 노선 상에서 과거에 없는 발전도 이룰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4. 질문을 두고 구체적으로 안내한다면


: 1.백목사님 신학은 칼빈주의를 그대로 잇고 있는데, 그들이 진정 백목사님 신학으로

: 나아가야 할텐데 왜 예전 청교도로 개혁주의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칼빈 신학의 연장선에서 발전을 바르게 했다면 백영희 신앙 노선을 발견해야 할 것 같고

혹시 이 노선을 알지 못했다 해도 저절로 이 노선과 같은 안팍을 가질 것으로 생각 하지만

하나님께서 열어 주지 않으면 옆에 두고도 모르고 살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의 한계입니다.

일단 실명으로 거론한 분은 논외로 하고 일반적으로 한국 교계에 허다한 유명한 분들이

이 노선의 장점을 알면서도 받아 들이지 못하고 이 노선의 일부를 배껴 사용하고 만 것은

진정한 복음은 입에는 꿀 같이 다나 실제 걸어 가려면 배 속에서는 너무 쓰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계를 통해 예를 들면 알 만한 분들은 허다 하지만 소란을 피하기 위해 생략하고

꼭 질문 내용에 충실하기 위해 실명으로 거론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박윤선 목사님입니다.

박 목사님의 학문적 개인 경건적 평생은 한국 교회의 칼빈 주의 청교도 신앙 노선의 대표이며

그 분의 걸어 간 평생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그 역사는 현대사의 신화로 전설로 남았습니다.

현재 한국 보수 교계 대부분의 중심 인물들이 그 분의 제자였음과 일화를 그렇게 거론하지만

그 분은 이 노선과 접했고 이 노선을 알았으나 이 노선에 서서 평생을 살지는 못했습니다.


이 노선에 서기 위해서는

배운 학문의 한계를 벗어야 했는데 우선 그 것이 그렇게 어려웠고

이 노선에 서기에는 훈련이 되지 않아 힘에 겨웠습니다.


: 2. 이시대에 진정한 개혁주의(칼빈주의)는 백영희 목사님 신학을 믿고 살아가고 있는

: 사람인것입니가? 그러면 옛날 개혁주의를 따라가고 거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딤후2장 말씀처럼 큰 집에는 금 그릇도 있고 은 그릇도 있으며 귀하게 쓰야 할 그릇도 있고

천하게 쓰는 그릇도 있습니다. 재료로 본다면 나무나 질 그릇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 자기에게 원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인도를 제한 없이 따랐느냐 입니다.

이 것은 각자 스스로 잘 알 것이고, 그들과 가깝게 사는 이들은 알 것이나

멀리 있는 사람으로서는 짐작만 할 수 있는데 외부적으로 실명 공개하며 비판하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의 경우는 워낙 이 노선과 가까운 사이였으므로 잘 압니다.

그 분은 평생 진실 되어 그리고 가장 경건한 청교도 학자로 사셨으나 그 최종의 걸음이

그의 평생을 평가합니다. 그 분은 이 노선에 섰어야 했던 인물입니다. 후회하고 갔습니다.


: 3. 백목사님 설교록에 보면 현 시대에는 삼분론을 모르면

: 신앙이 어리다(잘못되었다) 한 것 같습니다.(정확하지는 않음).

: 그러면 현재 개혁주의를 가지고 있고, 다시 거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신앙이

: 어린 것입니까?


지금 북한에서 최고의 음료수며 생활용품이라고 자랑하는 것은 그들로서는 자랑스러워도

객관적으로 국제 선진 사회에 내 놓으면 부끄러운 것입니다.

현대차와 벤츠차는 차이가 있습니다.

청교도의 신앙, 칼빈 주의의 교리 교훈 노선이란 천주교의 이단을 바르게 개혁한 것이지만

오늘 이 노선과 비교해 본다면 당시의 것은 이 노선의 앞 시대 것으로 이 노선을 만든 것이나

청교도나 칼빈 주의라는 모습 그 자체만 가지고는 아무리 고치고 보완하고 발전을 시킨다 해도

이 노선에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그 것을 참으로 바로 보완 발전 시켰다면 이 노선이 됩니다.


열광하는 사람이란, 순복음에 열광하는 사람이 제일 많고 청교도에 열광하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그 열광이 그들에게는 죄송하나, 마치 세상의 복고 주의 흐름을 보는 것 같아서 안스럽습니다.

박정희 정권을 그렇게 씹고 씹던 이들이 지금은 박 정권 때가 가장 좋았다고 회고를 하는데

그들이 박 대통령의 사망 이후 10여 년 간 어떻게 행동을 했던가? 그 것이 그들의 한계입니다.

과거의 선지자를 죽인 조상들을 비록 자기 조상인데도 불구하고 혹독하게 비판하는 것은 귀하나

그 비판의 진정성과 희망성은 그 비판만으로 판단할 수 없고 그들에게 주어 진 당대의 선지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보며 판단하는 것입니다.


과거 조선교회가 주기철 목사님을 제명 시킨 사실을 비판하지 않는 지도자들은 없으나

오늘 지도자들 중에서 과거 주 목사님을 제명 시킨 지도자들과 다른 지도자 보기가 어렵습니다.

오늘 손양원을 칭송하지 않는 지도자가 없으나 손양원의 사망 이후 그의 신앙을 묻을 때

그 신앙을 묻어서 안 된다고 외친 지도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손 목사님에 대한 교계의 뜨거운 지지와 흠모를 두고 이 홈의 체감은 다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며 예수님을 따르며 열광하던 그들이 억지로 임금을 만드려고 했었는데

바로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던 예수님을 두고 어떤 행동을 했던가?


이 노선은 오늘의 열광 그 자체는 아주 의미 없게 대합니다. 그 열광의 원인을 주시합니다.
진정한 개혁주의 - 백영희 신앙노선
백영희 목사님 신학은(목적,기본,건설,기능) 개혁주의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 신학입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개혁주의쪽에서) 영미청교도 신학서적에

대한 뜨거움이 다시 일어나고 있습니다. 김남준 목사님의 얼마전 강의내용에 보면

`우리가 신학교에서 배운 개혁주의는 8평 아파트고, 현재 80평짜리의 신학의 보물들이

많이있다`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아마도 한국에 개혁주의나 청교도 신학의 원서들이

이제야 제대로 알려지고 번역되고 읽혀 지는 것 같습니다.


(질문모두가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1.백목사님 신학은 칼빈주의를 그대로 잇고 있는데, 그들이 진정 백목사님 신학으로

나아가야 할텐데 왜 예전 청교도로 개혁주의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2. 이시대에 진정한 개혁주의(칼빈주의)는 백영희 목사님 신학을 믿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것입니가? 그러면 옛날 개혁주의를 따라가고 거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3. 백목사님 설교록에 보면 현 시대에는 삼분론을 모르면

신앙이 어리다(잘못되었다) 한 것 같습니다.(정확하지는 않음).

그러면 현재 개혁주의를 가지고 있고, 다시 거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신앙이

어린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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