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것입니다.
| 분류 |
|---|
yilee
0
2009.10.20 00:00
국내에 소개 된 개혁 주의 신학은 신앙과 경건과 능력으로 말하면 박윤선에 의하여 더 들어 올 것이 없을 정도가 되었고 학문으로 말해도 박형룡과 박윤선에 의하여 거의 대부분이 다 들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혁 주의 노선에 살다 간 그 어느 누구라 해도 그를 통해 우리가 신앙의 힘을 얻기 때문에 해외의 더 많은 개혁 신앙가들의 신학과 신앙이 소개 된다면 그로 인해 더 큰 은혜를 받게 된다는 것은 상식이겠지만 그 소개로 인해 얼마나 더 큰 혜택이 있겠는가? 이 문제를 두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선 국내에 더 들어 와야 할 그들의 개혁 신앙의 효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그 개혁 신학들이 본국에 있었을 때를 짐작하면 미리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노선은 민족 주의적 관점에서 외국산을 비판하거나 배격하는 면은 없습니다. 단순히 객관적으로 비교할 때 외국 신학이라도 좋은 것은 좋다 하고 국산이라도 좋은 것은 좋다 할 뿐입니다. 이런 면을 이해하시고 다시 살펴 본다면 한국 교계는 1백 년 전만 해도 신앙이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무참하게 배척하고 반대만 했었는데, 이후 개혁 신학을 전해 준 선교사들 때문에 자라 나온 발전사를 살펴 본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개혁 신앙을 통해 전해 진 효력이 넘쳤으니 이 개혁 신앙을 전파 해 준 미국과 영국과 카나다와 호주와 비교할 때 결코 뒤질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설교의 손양원, 전도에 최권능, 경건의 주남선, 기이한 김현봉, 초월의 주기철, 찬송의 유재현 등의 수 많은 이름들은 그들이 미개한 한국 교회에 살다 갔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후진국의 국경선과 한글 문화권에 제한을 받아 해외에 멀리 나가지 못하고 세계 각국의 신학교 교재에 인용 되지 못했을 뿐이지 그들의 신앙과 경건의 차원이란 세계 개혁 교회사 어디에 내놓아도 최 정상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골에서는 서울에서 온 처녀라면서 소개하면 총각들이 선녀처럼 아주 지성인처럼 보고, 자기 동네 주변에서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람을 소개하면 보리 자루처럼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자란 사람이 지성 면에서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객관적인 유리한 조건은 실제 사람을 견주어 볼 때 인간이기 때문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소 때문에 그 결과가 반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개혁 신학의 꽃은 한국에서 만발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 영국 카나다 호주의 선배 교회들이 수고하고 가르쳐 길러 놓은 덕택입니다. 그러나 청출어남 청어남이라는 말처럼 그들에게서 나왔으나 그들보다 앞서는 면이 많다는 것은 한국 교회의 오늘이 아니라 한국 교회의 어제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너무 확고하게 느껴집니다.
다만 어떤 사람은 학문적 역량이 있고 그런 계기가 있어 해외 개혁 신학에서 더 큰 은혜를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런 기회가 없고 그 대신 주변만 살펴 볼 기회가 있는데 그 주변에서 외부 것보다 나은 사례를 접하며 신앙에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음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한 때 미국 학위만 갖다 붙이면 교인들이 열광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우스웠고 기가 막혔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위 글에서 소개한 분은 그런 부정적인 분들과는 아주 차원이 다르고 순수하게 우리 한국 교회를 가르친 원래 개혁 신앙의 바로 된 부분을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 분의 말씀에 토를 달거나 달리 말할 내용은 아닙니다. 그냥 이 노선의 입장을 단순히 설명했을 뿐입니다.
>> 윤영삼 님이 쓰신 내용 <<
:
: 아마도 80평짜리 개혁주의 신학도, 현재 한국에 소개되어 있는
: 개혁주의 신학과 전체적인 흐름에는 큰 차이가 없을것 같습니다.
물론 개혁 주의 노선에 살다 간 그 어느 누구라 해도 그를 통해 우리가 신앙의 힘을 얻기 때문에 해외의 더 많은 개혁 신앙가들의 신학과 신앙이 소개 된다면 그로 인해 더 큰 은혜를 받게 된다는 것은 상식이겠지만 그 소개로 인해 얼마나 더 큰 혜택이 있겠는가? 이 문제를 두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선 국내에 더 들어 와야 할 그들의 개혁 신앙의 효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그 개혁 신학들이 본국에 있었을 때를 짐작하면 미리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노선은 민족 주의적 관점에서 외국산을 비판하거나 배격하는 면은 없습니다. 단순히 객관적으로 비교할 때 외국 신학이라도 좋은 것은 좋다 하고 국산이라도 좋은 것은 좋다 할 뿐입니다. 이런 면을 이해하시고 다시 살펴 본다면 한국 교계는 1백 년 전만 해도 신앙이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무참하게 배척하고 반대만 했었는데, 이후 개혁 신학을 전해 준 선교사들 때문에 자라 나온 발전사를 살펴 본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개혁 신앙을 통해 전해 진 효력이 넘쳤으니 이 개혁 신앙을 전파 해 준 미국과 영국과 카나다와 호주와 비교할 때 결코 뒤질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설교의 손양원, 전도에 최권능, 경건의 주남선, 기이한 김현봉, 초월의 주기철, 찬송의 유재현 등의 수 많은 이름들은 그들이 미개한 한국 교회에 살다 갔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후진국의 국경선과 한글 문화권에 제한을 받아 해외에 멀리 나가지 못하고 세계 각국의 신학교 교재에 인용 되지 못했을 뿐이지 그들의 신앙과 경건의 차원이란 세계 개혁 교회사 어디에 내놓아도 최 정상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골에서는 서울에서 온 처녀라면서 소개하면 총각들이 선녀처럼 아주 지성인처럼 보고, 자기 동네 주변에서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람을 소개하면 보리 자루처럼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자란 사람이 지성 면에서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객관적인 유리한 조건은 실제 사람을 견주어 볼 때 인간이기 때문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소 때문에 그 결과가 반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개혁 신학의 꽃은 한국에서 만발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 영국 카나다 호주의 선배 교회들이 수고하고 가르쳐 길러 놓은 덕택입니다. 그러나 청출어남 청어남이라는 말처럼 그들에게서 나왔으나 그들보다 앞서는 면이 많다는 것은 한국 교회의 오늘이 아니라 한국 교회의 어제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너무 확고하게 느껴집니다.
다만 어떤 사람은 학문적 역량이 있고 그런 계기가 있어 해외 개혁 신학에서 더 큰 은혜를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런 기회가 없고 그 대신 주변만 살펴 볼 기회가 있는데 그 주변에서 외부 것보다 나은 사례를 접하며 신앙에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음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한 때 미국 학위만 갖다 붙이면 교인들이 열광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우스웠고 기가 막혔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위 글에서 소개한 분은 그런 부정적인 분들과는 아주 차원이 다르고 순수하게 우리 한국 교회를 가르친 원래 개혁 신앙의 바로 된 부분을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 분의 말씀에 토를 달거나 달리 말할 내용은 아닙니다. 그냥 이 노선의 입장을 단순히 설명했을 뿐입니다.
>> 윤영삼 님이 쓰신 내용 <<
:
: 아마도 80평짜리 개혁주의 신학도, 현재 한국에 소개되어 있는
: 개혁주의 신학과 전체적인 흐름에는 큰 차이가 없을것 같습니다.
진정한 개혁주의 - 백영희 신앙노선
백영희 목사님 신학은(목적,기본,건설,기능) 개혁주의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 신학입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개혁주의쪽에서) 영미청교도 신학서적에
대한 뜨거움이 다시 일어나고 있습니다. 김남준 목사님의 얼마전 강의내용에 보면
`우리가 신학교에서 배운 개혁주의는 8평 아파트고, 현재 80평짜리의 신학의 보물들이
많이있다`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아마도 한국에 개혁주의나 청교도 신학의 원서들이
이제야 제대로 알려지고 번역되고 읽혀 지는 것 같습니다.
(질문모두가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1.백목사님 신학은 칼빈주의를 그대로 잇고 있는데, 그들이 진정 백목사님 신학으로
나아가야 할텐데 왜 예전 청교도로 개혁주의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2. 이시대에 진정한 개혁주의(칼빈주의)는 백영희 목사님 신학을 믿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것입니가? 그러면 옛날 개혁주의를 따라가고 거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3. 백목사님 설교록에 보면 현 시대에는 삼분론을 모르면
신앙이 어리다(잘못되었다) 한 것 같습니다.(정확하지는 않음).
그러면 현재 개혁주의를 가지고 있고, 다시 거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신앙이
어린 것입니까?
---------------------------
백영희 목사님 신학은(목적,기본,건설,기능) 개혁주의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 신학입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개혁주의쪽에서) 영미청교도 신학서적에
대한 뜨거움이 다시 일어나고 있습니다. 김남준 목사님의 얼마전 강의내용에 보면
`우리가 신학교에서 배운 개혁주의는 8평 아파트고, 현재 80평짜리의 신학의 보물들이
많이있다`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아마도 한국에 개혁주의나 청교도 신학의 원서들이
이제야 제대로 알려지고 번역되고 읽혀 지는 것 같습니다.
(질문모두가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1.백목사님 신학은 칼빈주의를 그대로 잇고 있는데, 그들이 진정 백목사님 신학으로
나아가야 할텐데 왜 예전 청교도로 개혁주의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2. 이시대에 진정한 개혁주의(칼빈주의)는 백영희 목사님 신학을 믿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것입니가? 그러면 옛날 개혁주의를 따라가고 거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3. 백목사님 설교록에 보면 현 시대에는 삼분론을 모르면
신앙이 어리다(잘못되었다) 한 것 같습니다.(정확하지는 않음).
그러면 현재 개혁주의를 가지고 있고, 다시 거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신앙이
어린 것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