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의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아주 다릅니다.

문의답변      


성화의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아주 다릅니다.

분류
yilee 0
1. 성화


칼빈주의 신학에서 말하는 '중생'은 기본구원이고 '성화'는 건설구원입니다.


2. 칼빈주의의 중생


안 믿던 사람이 믿게 되는 것은 무조건 은혜이지 인간의 노력이 아니며 인간은 거저 믿는 것으로 구원을 받아 들이며 그 이상은 어떤 것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인데 바로 이 부분이 천주교와 극단적으로 달랐습니다. 천주교는 죽을 때까지 믿는 사람이 어떻게 믿었느냐는 행위에 따라 천국을 가느냐 마느냐로 나뉜다고 가르쳤습니다. 천주교의 이 교리가 틀렸다고 칼빈이 강조했고 평생 이 면을 두고 논쟁을 하다가 보니까 칼빈의 입에서는 '구원이란 오직 믿음'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3. 칼빈주의의 성화


문제는 믿은 이후에도 성도는 여러 면에서 신앙이 자라게 되는데 이 것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느냐 아니면 노력을 해야 자라느냐는 문제로 나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가 평생 행위에 따라 구원이 좌우 된다고 가르쳤고 칼빈은 이 것이 틀렸다고 강조하다 보니까 칼빈의 입에서는 구원은 어떤 구원이든 인간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강조해야 했습니다.


4. 칼빈주의 성화의 문제점


구원은 오직 믿음이다 이렇게 가르치다 보니까 성화라는 것은 어떻게 이루어 지느냐는 문제가 나왔고 칼빈주의는 정말 중생 된 사람은 저절로 죄를 짓지 않게 되고 저절로 자꾸 신앙이 자라 가게 되어 있다고 설명함으로 천주교의 행위 구원을 반대하고 교인들에게 설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중생 후에도 현저하게 죄를 짓고 반복적으로 계속 죄를 짓고 고의로 악한 죄를 짓는 사람은 어떤 경우인가 라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기 대해서 중생이 된 줄 잘못 알았지 정말 중생 된 사람이라면 고의로 반복적으로 또는 너무 심각한 죄는 지을 리가 없다는 설명으로 애매하게 그쳤습니다. 이런 설명대로라면 베드로는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거듭 거듭 거듭 부인했으니 베드로는 당시에 실제 중생이 되지도 않은 상태였느냐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칼빈주의의 성화가 가지고 있는 약점들은 천주교와 천국을 가는 기본구원 문제에 주력을 하고 그 문제를 설명하다 보니까 성화라는 것은 그냥 중생 된 자에게 자연스럽게 뒤 이어 돋아 나는 그런 자연 현상 정도로만 관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천주교와 오랜 싸움이 끝나고 교회가 이제 스스로 자립하고 앞 날을 위해 건설해야 하는 자기 내면에 주력하게 되자 각 교파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중생 후에도 분명히 우리는 신사참배처럼 의로 죄를 짓고 반복적으로 죄를 지으며 또 심각한 죄를 짓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다면 중생 후에 각자 경험했던 확고한 믿음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해결 된 것이 삼분론의 배경 하에서 중생 된 영은 범죄하지 않고 중생 된 사람의 마음이 몸과 함께 죄를 짓는 것이며 이 심신이 중생 후에도 죄를 짓다가 회개하는 것을 반복하는 단계가 성화이니 이 것이 신앙의 건설 단계요 이 건설 단계에서는 인간의 신앙 행위가 중요하고 안 믿던 사람이 처음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을 무조건 들어 가게 되는 자격을 얻게 되는 중생이라는 것은 기본구원이니 이는 믿는 사람이 무조건 받는 것이고 이는 죽은 영이 중생 되는 것이라는 설명이 백영희 목사님에게서 정리 되었습니다.


5. 질문 내용에 집중한다면


칼빈주의의 '성화'는 이 노선의 건설구원과 같은 개념입니다.


이 노선이 건설구원으로 설명하는 배경은 삼분론이며 건설구원은 중생 이후의 노력에 따라 달라 진다는 것이니 중생이 될 때는 무조건 은혜이나 건설구원은 성도 각자의 행위로 차이가 난다는 것이므로 칼빈주의에서 예전에 알았던 상식을 더 깊게 설명한 것이며 한 편으로는 칼빈주의에서 필연적으로 봉착할 수밖에 없는 성도의 노력 문제를 명쾌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 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 중생과 성화를 [오직 믿음으로]라는 칼빈의 강령속에 내포된 것이라는 설명들이 있습니다. 최삼경목사의 총공회에 대한 이단비판글에서도 중생과 성화를 같이 놓고 설명하는 것을 볼수있습니다.

:

: 1.성화라는 의미가 우리가 아는 성화구원과 같은 개념으로 봐야할지..

: 2.만약 같은 것으로 본다면, 오늘 우리가 발표하고 있는 건설구원이라는 설명은 기존에 있는 것을 이중으로 발표한 것이 되는 것은 아닌지.. 즉, 과거의 신학지식(경북노회의 총공회 이단 발표문)이 오늘 개혁교회들의 신학지식보다 어려서 일시 몰랐던 것이 아닌지 하는 문제가 보입니다.

:

: 분별을 해주십시오.
오직 믿음으로..
중생과 성화를 [오직 믿음으로]라는 칼빈의 강령속에 내포된 것이라는 설명들이 있습니다. 최삼경목사의 총공회에 대한 이단비판글에서도 중생과 성화를 같이 놓고 설명하는 것을 볼수있습니다.


1.성화라는 의미가 우리가 아는 성화구원과 같은 개념으로 봐야할지..

2.만약 같은 것으로 본다면, 오늘 우리가 발표하고 있는 건설구원이라는 설명은 기존에 있는 것을 이중으로 발표한 것이 되는 것은 아닌지.. 즉, 과거의 신학지식(경북노회의 총공회 이단 발표문)이 오늘 개혁교회들의 신학지식보다 어려서 일시 몰랐던 것이 아닌지 하는 문제가 보입니다.


분별을 해주십시오.
---------------------------
쓰기 문의답변 초기목록
(1) 항목별 검색 주제별 | 가나다별 주제별 정리
(2) 게시판 검색
(3) 통합검색
번호제목이름날짜
  • 7959
    게으른신자
    2009.11.29일
  • 7958
    yilee
    2009.11.30월
  • 7957
    작은 아이
    2009.11.28토
  • 7956
    yilee
    2009.11.29일
  • 7955
    교인
    2009.11.29일
  • 7954
    방문
    2009.11.20금
  • 7953
    yilee
    2009.11.20금
  • 7952
    신학생
    2009.11.12목
  • 7951
    yilee
    2009.11.14토
  • 7950
    교인
    2009.11.11수
  • 7949
    yilee
    2009.11.11수
  • 7948
    김상수
    2009.11.10화
  • 7947
    김상수
    2009.11.10화
  • 7946
    help1
    2009.11.10화
  • 7945
    신학생
    2009.11.10화
  • 7944
    yilee
    2009.11.10화
  • 7943
    목회자
    2009.11.08일
  • 7942
    yilee
    2009.11.08일
  • 7941
    help4
    2009.11.06금
  • 7940
    yilee
    2009.11.07토
  • 7939
    help4
    2009.11.07토
  • 7938
    help4
    2009.11.07토
  • 7937
    홀랜드
    2009.11.05목
  • 7936
    yilee
    2009.11.06금
  • 7935
    B
    2009.11.05목
State
  • 현재 접속자 188(1) 명
  • 오늘 방문자 6,484 명
  • 어제 방문자 6,972 명
  • 최대 방문자 7,646 명
  • 전체 방문자 3,254,166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