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립으로'의 표어가 나온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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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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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1 05:13

이 내용은 학생들에게 주신 내용으로 이전에 설명하지 않았는지요?
백 목사님 생전 서부교회 중간반 학생은 약 2천 명 정도였고 그들을 관리하던 유급 중간반사가 30여 명이었습니다. 중간반은 서영준 목사님 계실 때가 가장 전성기였고, 이후 송용석, 김진태 목사님으로 이어질 때는 유지되면서도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고,
1986년에 이르러는 중간반 제도 자체를, 학생을 전도한 주일학교 반사가 구역장과 함께 학생을 평생 직접 관리하는 ‘특수반’ 제도로 변경하게 됩니다.
제도가 변경됨에 따라 유급으로 활동하던 중간반사들은 대거 일선 목회자로 파송되어 1987년 9월까지 14명이 파송되었고, 중간반사들이 목회자로 대거 파송되던 그 막바지 즈음인 1987년 8월 15일 백 목사님께서 유일하게 후계자로 공인하셨던 서영준 목사님께서 과로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백 목사님께서 특수반 담당자를 5층으로 불러 친필로 쓰신 ‘나는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주님만 모시고, 어디까지든지’라는 표어를 주시면서, 인쇄하여 중간반 학생들과 교인들에게 나눠 주라 하셨고, 상의 주머니나 작은 수첩에 넣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수천 장을 인쇄, 코팅하여 학생들에게 배부하였습니다.
그리고 1987년 9월 20일 주일에 이 표어에 대해서, ‘앞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어떤 어려움이 올지 모르는데, 여러분들의 신앙을 지도하던 지도자가 참 목자라면 벌써 순교하거나 옥에 갇혔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변질되었을 것이니, 지도자를 따라 믿던 신앙을 넘어서서 이제는 말없이 고요하게, 주님 한 분만 보고, 순교하는 데까지라도 갈 수 있는 독립 신앙으로 자라가야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표어의 의미를 설명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표어를 발표하실 당시의 주 대상은 중간반 학생들의 독립 신앙을 위한 것이었지만, 오늘까지 넓게 보면 중간반 학생은 물론 장년반과 목회자들까지를 포함한 믿는 우리 모두가 평생을 통하여 나아가며 자라가야 될 소망을 담은 신앙의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1986년에 이르러는 중간반 제도 자체를, 학생을 전도한 주일학교 반사가 구역장과 함께 학생을 평생 직접 관리하는 ‘특수반’ 제도로 변경하게 됩니다.
제도가 변경됨에 따라 유급으로 활동하던 중간반사들은 대거 일선 목회자로 파송되어 1987년 9월까지 14명이 파송되었고, 중간반사들이 목회자로 대거 파송되던 그 막바지 즈음인 1987년 8월 15일 백 목사님께서 유일하게 후계자로 공인하셨던 서영준 목사님께서 과로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백 목사님께서 특수반 담당자를 5층으로 불러 친필로 쓰신 ‘나는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주님만 모시고, 어디까지든지’라는 표어를 주시면서, 인쇄하여 중간반 학생들과 교인들에게 나눠 주라 하셨고, 상의 주머니나 작은 수첩에 넣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수천 장을 인쇄, 코팅하여 학생들에게 배부하였습니다.
그리고 1987년 9월 20일 주일에 이 표어에 대해서, ‘앞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어떤 어려움이 올지 모르는데, 여러분들의 신앙을 지도하던 지도자가 참 목자라면 벌써 순교하거나 옥에 갇혔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변질되었을 것이니, 지도자를 따라 믿던 신앙을 넘어서서 이제는 말없이 고요하게, 주님 한 분만 보고, 순교하는 데까지라도 갈 수 있는 독립 신앙으로 자라가야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표어의 의미를 설명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표어를 발표하실 당시의 주 대상은 중간반 학생들의 독립 신앙을 위한 것이었지만, 오늘까지 넓게 보면 중간반 학생은 물론 장년반과 목회자들까지를 포함한 믿는 우리 모두가 평생을 통하여 나아가며 자라가야 될 소망을 담은 신앙의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