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래는 '봉독' 2. 편의상 '읽다'도 사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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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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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6 00:00
1. 예배 태도
예배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는 자리이므로, 사람으로서 가장 조심하고 두려워 해야 할 순간입니다. 예배 시간에 우리가 상대하는 그 대상이 하나님이며, 예배의 내용은 하나님의 바로 그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도 행동도 자세도 사람이 할 수 있는 대로는 가장 조심해야 하므로 예배 시간에 사용하는 표현과 자세는 늘 최상의 '조심'과 '존경'이 옳습니다.
구약이 아니므로 옷이나 걸음걸이나 표현을 비록 천주교처럼 법칙을 만들고 강제로 지키게 하지는 않지만, 우리 마음의 자세와 태도가 예배를 정말 예배로 대한다면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일반 사회 생활에서 하던 것과는 뭔가 달라야 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해야 '최상의' 존경과 조심이 되느냐? 이 것은 각 교회 교인들의 출신과 신앙 수준과 현재 생활 상태에 따라 다 다를 것입니다.
2. 일반적인 사례
예배를 참석하는 교인의 옷 차림과 태도, 그리고 강단의 목회자나 사회자나 찬송 인도자처럼 순서를 맡는 사람들은 어느 교파를 막론하고 원래는 모두 극도로 경건하게 조심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교단이 자세와 태도를 풀어 헤쳤다 할 만큼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노선 교회들은 대부분 과거 그 예배 정신을 오늘도 지키고 있습니다.
이 노선뿐 아니라 한국 교회가 함께 지켜 온 예배 모습은 '설교단'을 '강단'으로, '성경 읽기'를 '성경 봉독'으로, 기부금이나 헌금을 '연보'로, 성서를 '성경'으로 사용하며 표현 하나까지 조심스럽게 해 왔습니다. '예배 보러 가자' 대신에 '예배 드리러 가자'로 사용했고, 찬송을 '부르자'라고 하지 않고 찬송을 '드리자'라고 하는 그 모든 표현이 바로 예배 시간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움직이는 행동들이어서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 노선은 주일학교 운영에서 보듯이 수백 년 내려 온 전통이라도 그 전통이 성경에 맞지 않고 복음 운동에 불편하며 더 좋은 제도가 있다면 순식간에 개혁했습니다. 그러나 옛 것이 더 좋거나 비슷하여 굳이 바꿀 필요가 없을 때는 앞 선 신앙 선배의 걸음과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며 그들이 해 온 것을 바꾸는 데에는 아주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3. 질문하신 '성경 봉독'의 경우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는 예배 시간에 하나님께서 성경에 무슨 말씀을 기록했는지 살펴서 우리가 고칠 것을 알고 구할 바를 배우게 되는데 이 목적을 위해 예배 시간 중에 성경을 읽는 순서가 온다면 어떻게 표현해야 좋겠는가? 꼭 정한 법은 없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어떤 표현이 가장 은혜롭고 옳을 것인지? 이 문제를 두고 한국 교회는 '성경 봉독'이라고 표현했고 우리 공회는 지금까지 늘 그 표현이 은혜롭고 옳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사용해 왔습니다.
성경을 '읽는다'라고 표현하면 존칭이나 비칭이 아니라 평범한 '사실 표현' '사실 설명'입니다. 그러나 '봉독'이라고 표현을 하면 '읽어 올린다' '읽는 것을 높은 분께 바쳐 올린다'는 그런 뜻이 됩니다. 예배 시간에 우리와 하나님의 사이를 두고 우리는 하나님께 '바쳐 올리는' 모습과 인식이 옳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4. 그런데
원래 쌍욕만 하고 살던 천민이 교회를 다니면서 예배 시간에 일반 평민의 표현 정도로 표현한다면 굉장히 조심하는 것이며 그런 표현을 하기 위해 남 모르는 고생이 많습니다. 귀족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버릇 없는 언행이지만 쌍놈의 과거를 안다면 큰 발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대신 고관대작들이 평소 격조 높은 양반 가문에서 사용하는 존칭어를 사용하지 않고 교회에 나와서 일반 서민들 수준에서 존칭을 사용하게 된다면 쌍놈들의 평민 언어에 비해서 엄청 나게 격조가 높고 조심스런 표현으로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그 귀족들은 다섯 달란트를 받았으나 세 달란트만 사용하는 꼴이 되고 쌍놈들은 한 달란트 받아 놓고 두 달란트나 남기는 노력을 하는 것이 됩니다.
어느 정도가 예배 시간에 바른 표현이며 좋은 태도인가? 이 문제는 법으로 잘라서 딱 규정하지는 못합니다. 시대에 따라 출신에 따라 각자의 신앙 수준에 따라 다 달라 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각 교단과 각 교회와 각 교인들은 자기 양심을 따라 많은 면으로 신중하게 생각한 다음, 정말 이 정도면 하나님 앞에 신앙의 전반을 고려할 때 은혜스럽게 또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조심하며 성의가 되겠는가 라고 생각하여 결정할 일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1) '돈 내 놔! 안 죽이면 죽여 버릴 거야!'
2) '용돈 좀 줘! 이렇게 애 먹일 거야!'
3) '용돈 좀 주소! 얼른 주면 종겠는데...'
4) '용돈 좀 주세요. 좀 급한 데가 있어요.'
5) '용돈 좀 주십시오. 죄송합니다만 급한 일이 있습니다.'
6) '정말 죄송합니다. 꼭 사정이 있습니다. 용돈 좀 혹시 되겠습니까?'
위의 6 가지 표현 중에서 어느 정도가 강단에서 옳은 자세이며 표현이겠는가?
대대로 쌍놈 집안에 양아치로 살다 믿게 되었다면 3)번 정도라면 굉장한 신앙일 것 같고
일반 서민 가정 출신이라면 적어도 5)번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름대로 세상을 조심스럽게 또 예절 바르게 살았다면 최소한 6)번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 교회는 6)번보다 하나를 더 올려서 '봉독'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총공회 신앙노선은 서민층이 많아서 평소 생활 언어는 1)번이나 2)번으로 사용했지만 강단 용어만큼은 7)번 용어에 엄격했습니다. 어느 날 다른 교파 다른 교회들은 4)번이 흔하게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공회는 7)번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서부교회가 4)번 정도의 표현을 사용했다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법으로는 금하거나 비판하거나 달리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원래 취지나 사회의 탈선이나 교계의 타락 속화의 추세나 우리가 살아 가는 사회 생활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회 현상들을 고려한다면 강단 용어와 자세는 7)번을 유지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정도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5. 따라서 이 번 답변은
답변자가 무엇이 옳다 그르다 라고 안내할 수가 없고 '봉독'과 '읽다'를 비교하며 한국 교회와 서부교회의 과거 역사를 소개 해 드린 다음, 현재 서부교회의 전반적 상황에서 볼 때 어느 것이 신앙에 유익하냐는 판단은 질문하신 분이 스스로 해야 할 사안입니다.
6. 참고로
'봉독'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이 계신다면, 답변자는 대 찬성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취지를 잘 모르고 그냥 단순히 '강경파'적 성향이 있거나 아니면 신앙 생활을 최선을 다해 해 보려는 선한 뜻으로 '무작정' 봉독이라고 해야 한다며 강하게 주장을 하는 분이 계신다면, 이런 면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마8:4 '예수께서' 마22:44 '주께서'
마1:16' '예수가' 마21:3 '주가'
성경 자체에서도 존대말과 예사말로 사용한 곳이 허다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 표현도 전부 경칭으로 다 바꾸어야 하는가?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아다시피 우리 말은 존대말과 예사말의 쓰임새가 아주 복잡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그 믿는 순간에는 대개 서민이거나 막 가는 세월을 보낸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이 존칭 존대말을 배우느라고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며 어려운 표현이 말씀을 배우는데 약간의 장애가 되지 않겠는가?
성경은 성경 기록 원칙이 있으니 일반인들이 가장 쉽고 편하게 접하는 언어와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이며 이는 성경 기록 사실이 그렇고 이 원칙은 교리적으로도 확인을 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질문하신 문제는 일반 다른 주제와 달리 대화를 통해 해결하기가 쉽지 않으니, 그래도 수십 년 전의 우리 말과 글은 어느 정도 사회적 안정성과 보편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일반 원칙으로 통용 시키기가 쉬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사회의 최고 지도층에서부터 격식 파괴나 현장 중심의 실용 노선과 같은 원칙을 앞 세워 사회를 지도하다 보니 그 것이 경제 발전에는 유리한 점이 많은데 성경과 신앙의 '조심스런 표현'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어디를 기준으로 잡아야 할지도 모를 만큼 언어 사용에 있어 혼동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이 노선이 '봉독'이라는 표현 대신 '성경을 읽겠습니다.'라는 표현을 정죄하거나 비판하게 된다면 반대쪽에서 신명기와 에스라와 느헤미야 서에서 성경을 '낭독'했다고 했는데 낭독은 읽는다는 뜻인가 봉독이라는 뜻인가 라고 반문할 것이고, 꼭 성경이라 할 수는 없으나 대개 성경으로 알고 있는 행15:31 등의 성구 표현을 가지고 끝 없는 논쟁으로 나갈 것입니다.
7. 문제는
다 큰 딸 아이가 요즘 친구들처럼 유행 따라 옷을 입겠다고 설치기 시작하면 어떤 옷을 어느 정도에서 간섭을 해야 하느냐는 문제로 아무리 싸워도 끝이 날 수 없습니다. 힘으로 누른다 해도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 딸 아이가 세상이 무서운 줄 알고 TV를 보면서 사건과 옷차림의 관계를 면밀하게 잘 파악을 하게 된다면 누가 뭐라 해도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조심을 할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된 자녀라면 부모와 머리를 맞대고 서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으나, 이미 딸 속에 '뭐가 문제야!'라고 대드는 입장이거나 아니면 나도 다 알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터인데 뭔 나이 많은 이들이 시대도 모르면서... 라고 한다면 벧후2:8 말씀처럼 소돔에 사는 의인 롯으로서는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의 상황인 줄 아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서부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 서부교회 주일예배때에 사회보시던 어떤분이 (하나님의 종나오셔서 하나님 말씀을 읽으시고 이어서 증거해주시겠습니다.)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 말씀 봉독하시고로 알고있는데
: 봉독이 옳은지 아니면 읽으시고가 옳은지
: 아니면 둘다 사용해도되는지 궁금합니다.
: 참고로 봉독은 틀렸고 읽으시고가 맞다고 말하는분이 있습니다.
예배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는 자리이므로, 사람으로서 가장 조심하고 두려워 해야 할 순간입니다. 예배 시간에 우리가 상대하는 그 대상이 하나님이며, 예배의 내용은 하나님의 바로 그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도 행동도 자세도 사람이 할 수 있는 대로는 가장 조심해야 하므로 예배 시간에 사용하는 표현과 자세는 늘 최상의 '조심'과 '존경'이 옳습니다.
구약이 아니므로 옷이나 걸음걸이나 표현을 비록 천주교처럼 법칙을 만들고 강제로 지키게 하지는 않지만, 우리 마음의 자세와 태도가 예배를 정말 예배로 대한다면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일반 사회 생활에서 하던 것과는 뭔가 달라야 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해야 '최상의' 존경과 조심이 되느냐? 이 것은 각 교회 교인들의 출신과 신앙 수준과 현재 생활 상태에 따라 다 다를 것입니다.
2. 일반적인 사례
예배를 참석하는 교인의 옷 차림과 태도, 그리고 강단의 목회자나 사회자나 찬송 인도자처럼 순서를 맡는 사람들은 어느 교파를 막론하고 원래는 모두 극도로 경건하게 조심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교단이 자세와 태도를 풀어 헤쳤다 할 만큼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노선 교회들은 대부분 과거 그 예배 정신을 오늘도 지키고 있습니다.
이 노선뿐 아니라 한국 교회가 함께 지켜 온 예배 모습은 '설교단'을 '강단'으로, '성경 읽기'를 '성경 봉독'으로, 기부금이나 헌금을 '연보'로, 성서를 '성경'으로 사용하며 표현 하나까지 조심스럽게 해 왔습니다. '예배 보러 가자' 대신에 '예배 드리러 가자'로 사용했고, 찬송을 '부르자'라고 하지 않고 찬송을 '드리자'라고 하는 그 모든 표현이 바로 예배 시간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움직이는 행동들이어서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 노선은 주일학교 운영에서 보듯이 수백 년 내려 온 전통이라도 그 전통이 성경에 맞지 않고 복음 운동에 불편하며 더 좋은 제도가 있다면 순식간에 개혁했습니다. 그러나 옛 것이 더 좋거나 비슷하여 굳이 바꿀 필요가 없을 때는 앞 선 신앙 선배의 걸음과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며 그들이 해 온 것을 바꾸는 데에는 아주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3. 질문하신 '성경 봉독'의 경우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는 예배 시간에 하나님께서 성경에 무슨 말씀을 기록했는지 살펴서 우리가 고칠 것을 알고 구할 바를 배우게 되는데 이 목적을 위해 예배 시간 중에 성경을 읽는 순서가 온다면 어떻게 표현해야 좋겠는가? 꼭 정한 법은 없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어떤 표현이 가장 은혜롭고 옳을 것인지? 이 문제를 두고 한국 교회는 '성경 봉독'이라고 표현했고 우리 공회는 지금까지 늘 그 표현이 은혜롭고 옳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사용해 왔습니다.
성경을 '읽는다'라고 표현하면 존칭이나 비칭이 아니라 평범한 '사실 표현' '사실 설명'입니다. 그러나 '봉독'이라고 표현을 하면 '읽어 올린다' '읽는 것을 높은 분께 바쳐 올린다'는 그런 뜻이 됩니다. 예배 시간에 우리와 하나님의 사이를 두고 우리는 하나님께 '바쳐 올리는' 모습과 인식이 옳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4. 그런데
원래 쌍욕만 하고 살던 천민이 교회를 다니면서 예배 시간에 일반 평민의 표현 정도로 표현한다면 굉장히 조심하는 것이며 그런 표현을 하기 위해 남 모르는 고생이 많습니다. 귀족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버릇 없는 언행이지만 쌍놈의 과거를 안다면 큰 발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대신 고관대작들이 평소 격조 높은 양반 가문에서 사용하는 존칭어를 사용하지 않고 교회에 나와서 일반 서민들 수준에서 존칭을 사용하게 된다면 쌍놈들의 평민 언어에 비해서 엄청 나게 격조가 높고 조심스런 표현으로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그 귀족들은 다섯 달란트를 받았으나 세 달란트만 사용하는 꼴이 되고 쌍놈들은 한 달란트 받아 놓고 두 달란트나 남기는 노력을 하는 것이 됩니다.
어느 정도가 예배 시간에 바른 표현이며 좋은 태도인가? 이 문제는 법으로 잘라서 딱 규정하지는 못합니다. 시대에 따라 출신에 따라 각자의 신앙 수준에 따라 다 달라 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각 교단과 각 교회와 각 교인들은 자기 양심을 따라 많은 면으로 신중하게 생각한 다음, 정말 이 정도면 하나님 앞에 신앙의 전반을 고려할 때 은혜스럽게 또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조심하며 성의가 되겠는가 라고 생각하여 결정할 일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1) '돈 내 놔! 안 죽이면 죽여 버릴 거야!'
2) '용돈 좀 줘! 이렇게 애 먹일 거야!'
3) '용돈 좀 주소! 얼른 주면 종겠는데...'
4) '용돈 좀 주세요. 좀 급한 데가 있어요.'
5) '용돈 좀 주십시오. 죄송합니다만 급한 일이 있습니다.'
6) '정말 죄송합니다. 꼭 사정이 있습니다. 용돈 좀 혹시 되겠습니까?'
위의 6 가지 표현 중에서 어느 정도가 강단에서 옳은 자세이며 표현이겠는가?
대대로 쌍놈 집안에 양아치로 살다 믿게 되었다면 3)번 정도라면 굉장한 신앙일 것 같고
일반 서민 가정 출신이라면 적어도 5)번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름대로 세상을 조심스럽게 또 예절 바르게 살았다면 최소한 6)번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 교회는 6)번보다 하나를 더 올려서 '봉독'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총공회 신앙노선은 서민층이 많아서 평소 생활 언어는 1)번이나 2)번으로 사용했지만 강단 용어만큼은 7)번 용어에 엄격했습니다. 어느 날 다른 교파 다른 교회들은 4)번이 흔하게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공회는 7)번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서부교회가 4)번 정도의 표현을 사용했다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법으로는 금하거나 비판하거나 달리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원래 취지나 사회의 탈선이나 교계의 타락 속화의 추세나 우리가 살아 가는 사회 생활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회 현상들을 고려한다면 강단 용어와 자세는 7)번을 유지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정도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5. 따라서 이 번 답변은
답변자가 무엇이 옳다 그르다 라고 안내할 수가 없고 '봉독'과 '읽다'를 비교하며 한국 교회와 서부교회의 과거 역사를 소개 해 드린 다음, 현재 서부교회의 전반적 상황에서 볼 때 어느 것이 신앙에 유익하냐는 판단은 질문하신 분이 스스로 해야 할 사안입니다.
6. 참고로
'봉독'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이 계신다면, 답변자는 대 찬성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취지를 잘 모르고 그냥 단순히 '강경파'적 성향이 있거나 아니면 신앙 생활을 최선을 다해 해 보려는 선한 뜻으로 '무작정' 봉독이라고 해야 한다며 강하게 주장을 하는 분이 계신다면, 이런 면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마8:4 '예수께서' 마22:44 '주께서'
마1:16' '예수가' 마21:3 '주가'
성경 자체에서도 존대말과 예사말로 사용한 곳이 허다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 표현도 전부 경칭으로 다 바꾸어야 하는가?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아다시피 우리 말은 존대말과 예사말의 쓰임새가 아주 복잡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그 믿는 순간에는 대개 서민이거나 막 가는 세월을 보낸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이 존칭 존대말을 배우느라고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며 어려운 표현이 말씀을 배우는데 약간의 장애가 되지 않겠는가?
성경은 성경 기록 원칙이 있으니 일반인들이 가장 쉽고 편하게 접하는 언어와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이며 이는 성경 기록 사실이 그렇고 이 원칙은 교리적으로도 확인을 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질문하신 문제는 일반 다른 주제와 달리 대화를 통해 해결하기가 쉽지 않으니, 그래도 수십 년 전의 우리 말과 글은 어느 정도 사회적 안정성과 보편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일반 원칙으로 통용 시키기가 쉬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사회의 최고 지도층에서부터 격식 파괴나 현장 중심의 실용 노선과 같은 원칙을 앞 세워 사회를 지도하다 보니 그 것이 경제 발전에는 유리한 점이 많은데 성경과 신앙의 '조심스런 표현'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어디를 기준으로 잡아야 할지도 모를 만큼 언어 사용에 있어 혼동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이 노선이 '봉독'이라는 표현 대신 '성경을 읽겠습니다.'라는 표현을 정죄하거나 비판하게 된다면 반대쪽에서 신명기와 에스라와 느헤미야 서에서 성경을 '낭독'했다고 했는데 낭독은 읽는다는 뜻인가 봉독이라는 뜻인가 라고 반문할 것이고, 꼭 성경이라 할 수는 없으나 대개 성경으로 알고 있는 행15:31 등의 성구 표현을 가지고 끝 없는 논쟁으로 나갈 것입니다.
7. 문제는
다 큰 딸 아이가 요즘 친구들처럼 유행 따라 옷을 입겠다고 설치기 시작하면 어떤 옷을 어느 정도에서 간섭을 해야 하느냐는 문제로 아무리 싸워도 끝이 날 수 없습니다. 힘으로 누른다 해도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 딸 아이가 세상이 무서운 줄 알고 TV를 보면서 사건과 옷차림의 관계를 면밀하게 잘 파악을 하게 된다면 누가 뭐라 해도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조심을 할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된 자녀라면 부모와 머리를 맞대고 서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으나, 이미 딸 속에 '뭐가 문제야!'라고 대드는 입장이거나 아니면 나도 다 알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터인데 뭔 나이 많은 이들이 시대도 모르면서... 라고 한다면 벧후2:8 말씀처럼 소돔에 사는 의인 롯으로서는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의 상황인 줄 아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서부교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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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교회 주일예배때에 사회보시던 어떤분이 (하나님의 종나오셔서 하나님 말씀을 읽으시고 이어서 증거해주시겠습니다.)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 말씀 봉독하시고로 알고있는데
: 봉독이 옳은지 아니면 읽으시고가 옳은지
: 아니면 둘다 사용해도되는지 궁금합니다.
: 참고로 봉독은 틀렸고 읽으시고가 맞다고 말하는분이 있습니다.
봉독인지, 읽으시고인지...
서부교회 주일예배때에 사회보시던 어떤분이 (하나님의 종나오셔서 하나님 말씀을 읽으시고 이어서 증거해주시겠습니다.)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 말씀 봉독하시고로 알고있는데
봉독이 옳은지 아니면 읽으시고가 옳은지
아니면 둘다 사용해도되는지 궁금합니다.
참고로 봉독은 틀렸고 읽으시고가 맞다고 말하는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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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교회 주일예배때에 사회보시던 어떤분이 (하나님의 종나오셔서 하나님 말씀을 읽으시고 이어서 증거해주시겠습니다.)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 말씀 봉독하시고로 알고있는데
봉독이 옳은지 아니면 읽으시고가 옳은지
아니면 둘다 사용해도되는지 궁금합니다.
참고로 봉독은 틀렸고 읽으시고가 맞다고 말하는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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