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주의와 삼분론은 전혀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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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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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5 00:00
1. 예를 들어
불교는 고기를 먹지 않는데, 만일 성경에 장수하던 노아 이전 시기가 채식 중심이었으니 오늘을 사는 우리도 육식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목사님이 계시는 경우, 그 분의 주장이 불교 영향을 받아서 그렇다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기 전에 그 목사님이 불교 영향인지 아니면 성경 영향인지 비판하는 쪽에서는 먼저 구별하는 기회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유교는 효도를 말하는데, 교회가 효도를 강조했다 해서 한국교회는 유교 영향을 받아서 그렇다고 해 버린다면, 그렇게 비판하기 전에 그 목회자가 성경의 5계명을 앞 세웠으나 속으로는 유교식 사고방식인가 아니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으나 내면에서는 참으로 하나님께서 은혜의 기관을 통해 역사하시니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라고 가르쳤는가 살펴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열심히 아주 특심한데, 믿는 사람이 복을 달라고 기도만 하면 무조건 5천 년 내려 온 기복의 미신에 빠져 그런가 아니면 과거는 그러했으나 이제는 성경 말씀 때문에 복의 개념이 바뀌어 복음의 복을 구하는가 살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순복음교회를 중심으로 한 쪽에서는 무당 굿하며 빌 듯 빌어 대어 탈이고, 기장 기감 중심의 자유주의 신신학 교회들은 하나님께 복을 빈다고 야단을 쳐서 탈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기독교를 비판할 때, 교회가 천국을 말하는 것은 극락을 말하는 불교나 무릉도원을 말하는 도교처럼 이방 미신에 영향을 끊지 못해서 그렇다 하고 또 교회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로마 시대의 태양신 숭배일에 포섭이 되어 그렇다고 그렇게 비판을 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성경에서 천국을 배웠고 주일을 배워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비판들은 걸어 다닌다고 해서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 하는 식이며 호박에 줄을 그으면 수박이 된다는 식이니 유치원 수준의 지적 상태에서 나오는 비판입니다.
2. 영지주의
- 단어
어느 신학교든지 역사신학이나 신약신학이라는 과목을 배우면 아주 초기에 접하는 이단이 영지주의입니다. '그노시스'라고 하는데 영어 발음으로는 '그'가 약음이 되어 '나시스'로 들립니다. 단어의 뜻은 영어의 'know, 알다. 지식'이니 '지식주의'라 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영적인 면을 강조하기 때문에 한글로는 '영적 지식 주의'의 준말로 영지주의라 합니다.
- 주장
사람은 일반 사람이 알 수 없는 신비한 영적 지식이 있어야 하며, 사람의 육체는 죄나 짓고 아주 악한 것이어서 육체를 초월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신비한 영적 깨달음을 가져야 영생을 갖게 된다는 사상입니다. 좋게 보면 육체에 휘둘려 살지 않게 되고 사람이 뭔가 깨닫고 살려고 노력하게 만듭니다. 또 이 사상이 좀 지나치면 현실을 너무 무시해서 가족과 사회에 대한 책임도 벗는 극단주의로 나타납니다.
- 지역
이스라엘 근처에는 동쪽의 이란으로부터 남쪽의 이집트와 북쪽으로 가며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국력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 가지 발달 된 종교와 철학들이 많아서 비록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해도 나름대로 인간 속에 진리를 찾고 영생을 찾는 노력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그리스 이스라엘 이집트 이란에 이르기까지 퍼져 나간 이런 사상은 종교나 철학과 만나서 영향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합니다.
- 실체
이 영지주의는 어느 인물이나 어느 한 종교의 이름을 가지고 나타 난 것이 아니고 초대교회가 시작하던 시기에 이스라엘과 그 주변에 널리 유행하던 하나의 사상입니다. 방언신앙, 은사신앙, 운동권신앙이 하나의 흐름으로 흘러 가듯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상은 인간이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비록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도 뭔가 생각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은 일반인보다 훨씬 깊게 생각을 하게 되면서 죽지 않는 길이 있을까, 그런 영생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이 참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문화나 문명 발달을 갖게 된 비슷한 무리들이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이 것이 유행을 하게 되면 역사에서 '영지주의, 그노시스파'라는 이름까지 얻게 되는 것입니다.
3. 기독교와 영지주의
- 초대교회
영지주의는 예수님이 계시던 시기 주변에 중동 지방 근처에 나타 나기 시작했고, 제자들이 초대교회를 세워 나가던 시기에 이 운동은 일반 사회에 급격하게 퍼졌으며, 이후 몇백 년 동안 기독교의 초기 고난 시기와 부흥 시기에 그 운동도 함께 주변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초대교회사에 상식적으로 거론이 됩니다.
- 교회에 미친 영향
영지주의는 육체는 죄나 짓고 아주 몹쓸 존재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육체로 오셨다는 기독교의 전도를 받을 때 '신이 그런 육체를 입었을 리가 있는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여 비판을 하게 되고, 또 믿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듣고 마치 여호와 증인의 말에 현혹 되어 헷갈리면 헛소리를 하듯이 또는 운동권의 주장을 듣다 보면 마치 교회가 반정부 데모나 해야 하는 것처럼 착각을 하듯이, 착각을 하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누구는 영지주의에 빠졌다, 그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이단이라는 그런 말들이 나오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정말 영지주의라는 세상 사상에 빠져 교회를 어지럽힌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서로 토론하다가 상대방을 이기지 못하게 되면 영지주의에 빠진 것이 아니냐며 상대방을 치는 하나의 방법으로 비판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4. 교회의 신앙 논쟁에서
- 신앙 논쟁
신앙의 길에서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미리 알려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성경에 기록하여 미리 알리십니다. 또 먼저 알려 주신 것으로 우리가 알아 가게 하여 길러 가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혼자에게 깨닫게 하시고 어떤 것은 다른 사람과 접촉을 통해 알아 가게 하십니다.
루터처럼 한 사람의 깨달음이 옳고 천하 사람이 다 틀릴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장로교와 침례교의 교회 운영 방법론처럼 이 쪽도 단점이 있고 저 쪽도 장점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지다 보면 두 사람이 다 틀려서 함께 제 삼의 의견을 가지고 끝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게으르고 진실이 없는 사람은 다투는 것을 무조건 싫어 하여 논쟁도 전쟁이라 해서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몸인 줄도 모르고 남을 쳐 내는 것만 좋아 하여 싸움을 좋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논쟁은 자살 행위가 됩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말하면 논쟁이란 서로가 다 알 수 없고 서로가 배워 가는 것이 사람이므로 사람은 필연코 다른 사람과 대화를 통해 옳은 것을 알아 가야 하니 논쟁이란 꼭 필요한 것입니다. 다만 사람이 서로 부족하여 대화를 통해 찾아 나가는 과정에 목소리나 표정에 조절 문제가 있고 또 이해 문제와 대화 방법 문제로 감정이 생기니까 '논쟁'이라는 표현이 흔하게 사용 되며 또 속을 모르는 사람이 옆에서 보면 정말 중요한 문제는 서로 최선을 다해야 하므로 싸우는 모습처럼 보여야 정상입니다.
- 잘못 된 논쟁
그런데 이 논쟁 과정에서 사람은 서로 부족하여 자기 감정 조절이나 대화 방법을 잘못 사용하는 수가 많은데 목소리가 지나치게 큰 경우, 상대방의 다른 약점을 거론하는 경우 등 별별 경우가 많으나 이런 것은 단순히 실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말을 조작하여 변조 시킨 다음에 다른 죄목을 걸어 치는 것은, 작정하고 죄를 짓는 일입니다.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면 이는 논쟁해야 할 주제를 입에 담을 자격도 없고 그 논쟁을 시작하기 전에 중 범죄인입니다.
- 삼분설이 왜 영지주의인가?
삼분설의 '삼'이 들어 있기 때문에 삼분설은 삼위일체에 근거를 두고 있고
이분설의 '이'는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이위일체를 주장하는 이단이라 이렇게 말한다면
이분설을 주장하는 쪽에서 삼분설과 이분설의 논쟁으로 보겠는가? 아니면 주먹 싸움으로 보겠는가?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금방 나오는 대답입니다. 소가 입으로 밥을 먹는다고 하여 입으로 밥을 먹는 사람은 전부 진화론의 결과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사람이 입으로 밥을 먹게 된 근거가 소를 보고 그렇게 배웠다고 한다면 이런 억지를 두고 대화가 되겠습니까?
영지주의가 육을 죄나 짓는 존재로 보고 영을 강조하며 영을 통해 깨닫는 신비로운 세계를 말했다고 해서 삼분설을 영지주의에 갖다 붙이는 것은, 만일 신학자가 그렇게 말했다면 신학 사기꾼 수준일 것이고 목회자나 일반인이 그리 말했다면 단어도 모르고 근거도 없이 무식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왜 삼분설이 영지주의인가? 우선 주장하는 쪽의 내용을 좀 자세히 듣게 된다면 일일이 자세하게 설명하겠으나 총론적으로 삼분론과 영지주의는 그 어떤 공통점도 없고 있을 수도 없음을 말씀 드립니다. 혹시 이 홈의 삼분론과 상관이 없는 고대의 그 어느 삼분론자가 영지주의를 근거로 그렇게 주장했다고 고백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 것은 그 사람의 개인적 오류이지 삼분론 전체의 오류와는 무관합니다.
- 자주 듣는 유형
삼분론은 헬라 철학에서 주장했으니 삼분론은 헬라 철학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는 식입니다. 그러면 요한복음의 '말씀'이라는 단어가 헬라 철학에서 그 이전부터 사용 된 표현이며 그런 개념이었으니 요한복음도 헬라 철학에서 영향을 받았는가? 신신학자들과 불신 철학에서는 상식적으로 그리 공격을 합니다. 바로 그런 자세와 표현을 근거로 우리는 그들을 불신자라고 합니다. 또한 구약 성경에서 제사 제도가 나타 나기 전부터 고고학에서는 주변 다른 나라에서 그런 제도가 있었다고 증거를 찾은 다음, 기독교는 주변에 선진 종교를 본 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주장을 우리는 신신학이나 불신자라고 웃어 넘겨 버립니다.
그런데 그런 식의 논리를 가지고 성경을 그대로 믿는 보수 신학계에서 불신자들과 신신학자들의 그런 방법 그런 논리를 끄집어 낸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 자유주의를 상대하다 자유주의 신학에 물이 들어 버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타교단 사역자에게 총공회 삼분론을 이야기 하니
: 영지주의라고 공격을 합니다. 영지주의가 정확히 무엇이며
: 총공회 삼분론이 영지주의와 관련이 있습니까?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총공회 삼분론이 왜 영지주의가 아닌지도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영에 대해 이야기하면 영지주의와 연관시키는 경향도 있는것 같습니다.
불교는 고기를 먹지 않는데, 만일 성경에 장수하던 노아 이전 시기가 채식 중심이었으니 오늘을 사는 우리도 육식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목사님이 계시는 경우, 그 분의 주장이 불교 영향을 받아서 그렇다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기 전에 그 목사님이 불교 영향인지 아니면 성경 영향인지 비판하는 쪽에서는 먼저 구별하는 기회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유교는 효도를 말하는데, 교회가 효도를 강조했다 해서 한국교회는 유교 영향을 받아서 그렇다고 해 버린다면, 그렇게 비판하기 전에 그 목회자가 성경의 5계명을 앞 세웠으나 속으로는 유교식 사고방식인가 아니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으나 내면에서는 참으로 하나님께서 은혜의 기관을 통해 역사하시니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라고 가르쳤는가 살펴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열심히 아주 특심한데, 믿는 사람이 복을 달라고 기도만 하면 무조건 5천 년 내려 온 기복의 미신에 빠져 그런가 아니면 과거는 그러했으나 이제는 성경 말씀 때문에 복의 개념이 바뀌어 복음의 복을 구하는가 살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순복음교회를 중심으로 한 쪽에서는 무당 굿하며 빌 듯 빌어 대어 탈이고, 기장 기감 중심의 자유주의 신신학 교회들은 하나님께 복을 빈다고 야단을 쳐서 탈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기독교를 비판할 때, 교회가 천국을 말하는 것은 극락을 말하는 불교나 무릉도원을 말하는 도교처럼 이방 미신에 영향을 끊지 못해서 그렇다 하고 또 교회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로마 시대의 태양신 숭배일에 포섭이 되어 그렇다고 그렇게 비판을 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성경에서 천국을 배웠고 주일을 배워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비판들은 걸어 다닌다고 해서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 하는 식이며 호박에 줄을 그으면 수박이 된다는 식이니 유치원 수준의 지적 상태에서 나오는 비판입니다.
2. 영지주의
- 단어
어느 신학교든지 역사신학이나 신약신학이라는 과목을 배우면 아주 초기에 접하는 이단이 영지주의입니다. '그노시스'라고 하는데 영어 발음으로는 '그'가 약음이 되어 '나시스'로 들립니다. 단어의 뜻은 영어의 'know, 알다. 지식'이니 '지식주의'라 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영적인 면을 강조하기 때문에 한글로는 '영적 지식 주의'의 준말로 영지주의라 합니다.
- 주장
사람은 일반 사람이 알 수 없는 신비한 영적 지식이 있어야 하며, 사람의 육체는 죄나 짓고 아주 악한 것이어서 육체를 초월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신비한 영적 깨달음을 가져야 영생을 갖게 된다는 사상입니다. 좋게 보면 육체에 휘둘려 살지 않게 되고 사람이 뭔가 깨닫고 살려고 노력하게 만듭니다. 또 이 사상이 좀 지나치면 현실을 너무 무시해서 가족과 사회에 대한 책임도 벗는 극단주의로 나타납니다.
- 지역
이스라엘 근처에는 동쪽의 이란으로부터 남쪽의 이집트와 북쪽으로 가며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국력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 가지 발달 된 종교와 철학들이 많아서 비록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해도 나름대로 인간 속에 진리를 찾고 영생을 찾는 노력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그리스 이스라엘 이집트 이란에 이르기까지 퍼져 나간 이런 사상은 종교나 철학과 만나서 영향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합니다.
- 실체
이 영지주의는 어느 인물이나 어느 한 종교의 이름을 가지고 나타 난 것이 아니고 초대교회가 시작하던 시기에 이스라엘과 그 주변에 널리 유행하던 하나의 사상입니다. 방언신앙, 은사신앙, 운동권신앙이 하나의 흐름으로 흘러 가듯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상은 인간이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비록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도 뭔가 생각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은 일반인보다 훨씬 깊게 생각을 하게 되면서 죽지 않는 길이 있을까, 그런 영생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이 참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문화나 문명 발달을 갖게 된 비슷한 무리들이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이 것이 유행을 하게 되면 역사에서 '영지주의, 그노시스파'라는 이름까지 얻게 되는 것입니다.
3. 기독교와 영지주의
- 초대교회
영지주의는 예수님이 계시던 시기 주변에 중동 지방 근처에 나타 나기 시작했고, 제자들이 초대교회를 세워 나가던 시기에 이 운동은 일반 사회에 급격하게 퍼졌으며, 이후 몇백 년 동안 기독교의 초기 고난 시기와 부흥 시기에 그 운동도 함께 주변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초대교회사에 상식적으로 거론이 됩니다.
- 교회에 미친 영향
영지주의는 육체는 죄나 짓고 아주 몹쓸 존재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육체로 오셨다는 기독교의 전도를 받을 때 '신이 그런 육체를 입었을 리가 있는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여 비판을 하게 되고, 또 믿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듣고 마치 여호와 증인의 말에 현혹 되어 헷갈리면 헛소리를 하듯이 또는 운동권의 주장을 듣다 보면 마치 교회가 반정부 데모나 해야 하는 것처럼 착각을 하듯이, 착각을 하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누구는 영지주의에 빠졌다, 그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이단이라는 그런 말들이 나오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정말 영지주의라는 세상 사상에 빠져 교회를 어지럽힌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서로 토론하다가 상대방을 이기지 못하게 되면 영지주의에 빠진 것이 아니냐며 상대방을 치는 하나의 방법으로 비판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4. 교회의 신앙 논쟁에서
- 신앙 논쟁
신앙의 길에서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미리 알려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성경에 기록하여 미리 알리십니다. 또 먼저 알려 주신 것으로 우리가 알아 가게 하여 길러 가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혼자에게 깨닫게 하시고 어떤 것은 다른 사람과 접촉을 통해 알아 가게 하십니다.
루터처럼 한 사람의 깨달음이 옳고 천하 사람이 다 틀릴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장로교와 침례교의 교회 운영 방법론처럼 이 쪽도 단점이 있고 저 쪽도 장점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지다 보면 두 사람이 다 틀려서 함께 제 삼의 의견을 가지고 끝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게으르고 진실이 없는 사람은 다투는 것을 무조건 싫어 하여 논쟁도 전쟁이라 해서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몸인 줄도 모르고 남을 쳐 내는 것만 좋아 하여 싸움을 좋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논쟁은 자살 행위가 됩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말하면 논쟁이란 서로가 다 알 수 없고 서로가 배워 가는 것이 사람이므로 사람은 필연코 다른 사람과 대화를 통해 옳은 것을 알아 가야 하니 논쟁이란 꼭 필요한 것입니다. 다만 사람이 서로 부족하여 대화를 통해 찾아 나가는 과정에 목소리나 표정에 조절 문제가 있고 또 이해 문제와 대화 방법 문제로 감정이 생기니까 '논쟁'이라는 표현이 흔하게 사용 되며 또 속을 모르는 사람이 옆에서 보면 정말 중요한 문제는 서로 최선을 다해야 하므로 싸우는 모습처럼 보여야 정상입니다.
- 잘못 된 논쟁
그런데 이 논쟁 과정에서 사람은 서로 부족하여 자기 감정 조절이나 대화 방법을 잘못 사용하는 수가 많은데 목소리가 지나치게 큰 경우, 상대방의 다른 약점을 거론하는 경우 등 별별 경우가 많으나 이런 것은 단순히 실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말을 조작하여 변조 시킨 다음에 다른 죄목을 걸어 치는 것은, 작정하고 죄를 짓는 일입니다.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면 이는 논쟁해야 할 주제를 입에 담을 자격도 없고 그 논쟁을 시작하기 전에 중 범죄인입니다.
- 삼분설이 왜 영지주의인가?
삼분설의 '삼'이 들어 있기 때문에 삼분설은 삼위일체에 근거를 두고 있고
이분설의 '이'는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이위일체를 주장하는 이단이라 이렇게 말한다면
이분설을 주장하는 쪽에서 삼분설과 이분설의 논쟁으로 보겠는가? 아니면 주먹 싸움으로 보겠는가?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금방 나오는 대답입니다. 소가 입으로 밥을 먹는다고 하여 입으로 밥을 먹는 사람은 전부 진화론의 결과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사람이 입으로 밥을 먹게 된 근거가 소를 보고 그렇게 배웠다고 한다면 이런 억지를 두고 대화가 되겠습니까?
영지주의가 육을 죄나 짓는 존재로 보고 영을 강조하며 영을 통해 깨닫는 신비로운 세계를 말했다고 해서 삼분설을 영지주의에 갖다 붙이는 것은, 만일 신학자가 그렇게 말했다면 신학 사기꾼 수준일 것이고 목회자나 일반인이 그리 말했다면 단어도 모르고 근거도 없이 무식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왜 삼분설이 영지주의인가? 우선 주장하는 쪽의 내용을 좀 자세히 듣게 된다면 일일이 자세하게 설명하겠으나 총론적으로 삼분론과 영지주의는 그 어떤 공통점도 없고 있을 수도 없음을 말씀 드립니다. 혹시 이 홈의 삼분론과 상관이 없는 고대의 그 어느 삼분론자가 영지주의를 근거로 그렇게 주장했다고 고백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 것은 그 사람의 개인적 오류이지 삼분론 전체의 오류와는 무관합니다.
- 자주 듣는 유형
삼분론은 헬라 철학에서 주장했으니 삼분론은 헬라 철학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는 식입니다. 그러면 요한복음의 '말씀'이라는 단어가 헬라 철학에서 그 이전부터 사용 된 표현이며 그런 개념이었으니 요한복음도 헬라 철학에서 영향을 받았는가? 신신학자들과 불신 철학에서는 상식적으로 그리 공격을 합니다. 바로 그런 자세와 표현을 근거로 우리는 그들을 불신자라고 합니다. 또한 구약 성경에서 제사 제도가 나타 나기 전부터 고고학에서는 주변 다른 나라에서 그런 제도가 있었다고 증거를 찾은 다음, 기독교는 주변에 선진 종교를 본 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주장을 우리는 신신학이나 불신자라고 웃어 넘겨 버립니다.
그런데 그런 식의 논리를 가지고 성경을 그대로 믿는 보수 신학계에서 불신자들과 신신학자들의 그런 방법 그런 논리를 끄집어 낸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 자유주의를 상대하다 자유주의 신학에 물이 들어 버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타교단 사역자에게 총공회 삼분론을 이야기 하니
: 영지주의라고 공격을 합니다. 영지주의가 정확히 무엇이며
: 총공회 삼분론이 영지주의와 관련이 있습니까?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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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공회 삼분론이 왜 영지주의가 아닌지도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영에 대해 이야기하면 영지주의와 연관시키는 경향도 있는것 같습니다.
삼분론 -영지주의
타교단 사역자에게 총공회 삼분론을 이야기 하니
영지주의라고 공격을 합니다. 영지주의가 정확히 무엇이며
총공회 삼분론이 영지주의와 관련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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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교단 사역자에게 총공회 삼분론을 이야기 하니
영지주의라고 공격을 합니다. 영지주의가 정확히 무엇이며
총공회 삼분론이 영지주의와 관련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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