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을 수 없고 기대할 수 없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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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을 수 없고 기대할 수 없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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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0
다음 내용은 위 글의 내용에만 해당 하며 이 홈의 다른 답변과 달리 다른 경우에는 거의 적용 되지 않는 성격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독 30분에 연이어 설명을 더했으면 하는 그런 정도의 교인이면 그 교회 예배를 참석할 때는 그 목회자에게 위 글 질문자께서 은혜를 받겠다고 앉는 것이 아니고 그 교회의 아주 어린 교인들이 신앙 첫 출발에 교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냥 앉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 글께서 필요한 은혜는 예배 시간 외에 많은 시간이 있으니 직접 재독을 하면 바로 해결이 될 일입니다.


과거에는 그런 생활이 거의 불가능했으나 지금은 좋은 기술로 편리하게 되어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한 푼도 들이지 않고 그 원하는 소원을 다 이룰 수가 있는 때입니다. 교회는 목회자 얼굴만 보고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폭 넓게 교회 전체를 잘 살펴야 할 문제로 생각 됩니다. 이 문제는 과거 오랜 세월 공회 내에서 워낙 사례도 많고 토론도 많았으며 위 글의 원하는 대로 그렇게 해 본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공회를 좀 넓게 아는 분들 사이에는 이미 결론이 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1. 이해를 구합니다.


답변자가 설교자이므로 중립적 표현을 해도 교인 된 입장에서는 가재가 게 편 든다 할까 조심스럽습니다. 이 곳은 중립적 연구소이므로 늘 누구에게나 중립에 서서 양심만을 가지고 옳고 바른 것만 찾는다는 입장을 이해해 주시고, 혹시 답변자가 관계 있는 문제가 있을 때는 한 번 더 조심하려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2. 설교자의 설 자리, 교인의 설 자리


교인이 설교자에게 부탁한 위 글 말씀은 다 맞는 말씀입니다. 질문 속에 답변이 다 들어 있어 재론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설교자는 이런 지적을 들을 때 또 한 번 자신을 돌아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교인은 이런 곳에서 위 글 말씀으로 연구를 할 때는 위 글 말씀을 할 수가 있으나 실제 출석하는 교회의 교인으로서는 오로지 교인의 위치를 굳게 잡고 지키는 것이 필요하며 교역자가 설 설교자의 자세는 마음 속으로 기도하는 제목에 그쳐야 할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손양원 목사님 된 것은 다른 사람들은 환자의 상처를 입으로 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로서는 손 목사님을 본 받으려 노력해야 옳으나 교인으로서는 우리 목회자가 입으로 상처를 빨 수 없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에게는 어떤 은혜도 더 이상 갈 여지가 없게 됩니다. 신약의 교인은 목회자와 동격이기 때문입니다. 교인치고 그럴 수 있는 교인이 없듯이 목회자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갑자기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인 시절에 그렇게 했던 교인이라야 목회자가 된 후에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설교를 두고 교인들에게 발언권을 드린다면? 그 교인들의 발언은 백이면 백, 전부 맞는 말씀이요 구구절절이 바른 말씀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사람을 주문 제작해서 모실 수는 없는데 교인의 이런 요청은 목회자를 주문 제작하겠다는 자세이므로 실제 위 글은 교회를 사랑하는 진심으로만 발언을 하셨으나 결과적으로 말하면 불가능한 것만 요구하신 것입니다.


3. 목회자가 설교를 두고 해야 할 일은


이미 23 가지 주의할 사항에 다 담겨 있고 위 글이 보충까지 하셨기 때문에 더하고 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인이 서야 할 입장을 위주로 말씀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4. 설교를 듣는 교인은


직업이 없어서 목회자로 나선 것이 오늘 거의 대부분 우리 목회자들입니다. 정말 세상에 좋은 길이 있는데 누가 목회를 나서겠습니까? 혹시 직업 때문에 나선 사람이 아니라면 실력이 있어서 자신을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고 강단이 비어 있고 아무도 짐을 지려 하지 않으므로 비워 둔 것보다 낫겠다는 생각에서 할 수 없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초보 교인이 아니라 위 글처럼 교회를 조금 다녀서 아는 교인들은 목회자가 은혜 있게 설교를 하면 천만 다행이고 만일 목회자 설교가 은혜롭지 않으면 목회자 설교란 의례 그런 것이며 그 것이 필연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다행히 공회는 시무투표 제도가 있어 2 년만 기다리면 차라리 강단을 비워 놓는 것이 좋을지 재독만 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어느 교회처럼 그 교회에서 설교 때문에 가장 불편을 느낀 분이 직접 설교를 해서 교인이 설교를 하는데도 온 교인이 은혜를 받으니 만사 가장 좋게 해결 된 그런 경우로 갈 수 있도록 선택의 기회가 있습니다.


현재 목회자가 설교를 잘 하지 못한다면 교인으로서는 속으로는 그 분에게 설교를 더 잘하기를 바라더라도 겉으로는 표시 내지 마셔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은혜를 받지 못하는 그 애 터지는 마음은 남 몰래 속으로 기도하는 데 다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교인으로서 은혜가 되지 않는 그 설교 시간에 앉아서 들어야 할 때는, 목회자가 설교 중에서 빠뜨리는 내용을 자기 마음 속으로나 노트에 적어 가며 스스로 보충하면 됩니다. 설교자의 입을 통해 들어 오는 말씀이나 듣는 나의 지각 속을 통해 들어 오는 말씀이나 설교의 은혜라는 것은 어디를 통해 들어 와도 말씀이 있고 그 말씀을 내 속의 성령이 깨닫게 해 주셔야 은혜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5. 답변자의 경우


혹시 신앙 성향을 전혀 달리 하는 교회에 참석하여 말씀을 들어야 할 때가 아주 가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교자가 불쌍한 사람을 도와 주는 것이 성경의 사랑이다 이런 설교만 하고 예수님의 대속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 설교자를 책하거나 답변자와 맞지 않다고 비판하지 않습니다. 들으면서 마음 속으로 그 설교자가 빠뜨리고 지나 가는 대속의 사랑을 계속 되 뇌입니다. 대속이라는 단어가 들어 가야 할 순간, 들어 가야 할 그 고비마다 답변자는 자기 마음으로 보충하며 듣습니다.


그리고 그 설교자는 전혀 모르고 말을 했을지라도 듣는 답변자는 이런 진리를 담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계속 듣고 은혜를 받고 나옵니다. 만일 그 설교를 객관적으로 평해야 할 상황이 된다면 잘못 된 점을 평하지만 설교를 듣는 교인 자리에 앉은 이상 교인으로 받을 은혜는 그 어떤 교회에서 어떤 말씀을 들어도 은혜를 받지 못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연습을 하다 보니까 가끔 사택에 지나 가는 도적이나 소매치기가 와서 자기 형편을 말하면서 도와 달라고 하는데 그들이 목회자를 설득하기 위해 도적질한 이야기는 소매치기 하는 그런 순간을 설명하게 되는데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답변자는 속으로 '저렇게 부지런하게 밤새도록 다니는데 나는 그 시간에 잠만 잤는데' '소매치기가 저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철 속을 헤집고 다니는데 나는 이렇게 나태하게 있었으니!' 이렇게 들어 보면 그들의 말에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6. 총공회 내에는


전국 어느 교회든지 그 어느 목회자를 상대로 하든지 공회 교인들은 설교와 목회와 교회 부흥에 대하여 잘 배워서 잘 깨닫고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실 목회자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불편하다고 말씀하시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바로 그 교인이 실제로 그 교회 목회자보다 낫고 더 나아가 목회자를 길러야 하는 높은 차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어느 목회자든지 그 목회자들은 자기들 교회의 교인들께 배워야 할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목회자들은 부족한 줄 알면서도 강단이 비어 있으니 목회에 출발한 희생의 사람들이고 교인들은 현직 목회자보다 앞 서 목회를 출발해야 하는데도 가족을 희생 시킬 수가 없어서 목회를 나가지 못한 분들입니다. 그러니 최소한 목회자가 설교는 교인보다 못하다 해도 실제 교회를 위해 희생한 면을 본다면 교인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인들은 목회자가 신앙이 어려서 단 번에 장성한 데 나갈 수가 없으니 마땅히 기다려 주고 격려하며 도와 드릴 기회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설교를 두고 목회자를 가르치는 교인들이 한 교회에 한 두 사람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공회 교회는 교인의 숫자만큼 모두가 스스로 목회자를 가르칠 스승이라고 생각하며 또 실제 그들의 요구하는 내용을 들어 봐도 목회자를 가르치고도 남을 수준입니다. 한 사람은 소리를 외쳐 강단이 깨지도록 증거하라고 하고 한 사람은 설교는 조용히 설명조로 하는데 듣는 사람이 감동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니 두 교인의 말은 다 맞는데 한 교회 한 강단의 한 설교자로서는 누구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이 대목에 오게 되면 다시 그 교회는 처음으로 돌아 오게 됩니다. 즉, 신앙 있는 사람은 가족과 자기 세상 일이 바빠서 목회를 나오지 않고 말로만 가르치고 그 밑에 신앙이 좀 어린 사람들은 자기 신앙 이상으로 가족을 희생하고서라도 교회를 위해 목회를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좀 기회를 주든지 아니면 교인들의 요구를 하나로 만든 다음에 목회자와 협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교인들의 요구가 각각 다르게 여러 가지로 제시 되고 있으니 목회자로서도 난감할 듯 합니다.


한 쪽에서는 은혜로운 설교록에 토씨 하나도 가감하지 말고 그대로 재독 해 달라고 하고

한 쪽에서는 재독을 절반하고 해석과 설명을 절반 섞어야 은혜롭다 하고

한 쪽에서는 완전히 자기 것을 만들어서 자기 설교로만 하라고 하는데

백 목사님은 목회자가 아주 어릴 때는 첫째를 그 다음 제대로 좀 자란 후에는 세 번째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보다 신앙으로 더 앞선 교인들이 백 목사님과도 다른 차원에서 다른 것을 요구하고 있으니 이런 현상이 일어 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그 교인들이 실제 목회를 해 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주일학교 반사만 해 보았더라면 자기가 자기 주일학생들에게 그렇게 해 보면 저절로 그 효력이 나타날 것이고 그러면 사무엘의 말이 한 마디도 땅에 떨어 지지 않는 것을 보고 그는 저절로 이스라엘 전체의 사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지 못했다면 좀 못 난 사람이 목회를 하더라도 좀 기다려야 할 문제라고 생각 됩니다.


각각 따로 요구하는 교인들이 서로 목회자를 향해 목회자가 교만해서 도저히 내 말을 듣지 않으니 못 쓰겠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에 누구 말을 들어야 할까요? 재독과 설교 내용의 혼용 등에 대한 이런 요구를 내 놓기 전에 일단 교인으로서는 교인 전체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교인들이 한 가지 의견을 모아서 목회자에게 요구를 하면 그 때 목회자는 교인 전체가 요구하는 것이므로 심각하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 다윗 님이 쓰신 내용 <<

:

: 총공회 목사님은 참으로 설교할 것이 많아서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왜냐면 귀한 종을 통하여 주신 설교록이 있어서 설교할 것이 무궁무진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설교록에 있는 내용을 요약을 하든지 또 줄거리를 잡고 자기 경험 체험적인 것을 붙여서 설교를 한다든지, 정 준비가 되지 않으면 거의 설교록의 내용을 익혀서 하면 되고, 그것도 안되면 설교록을 노트에 베껴서 읽으면 되고....

:

: 성도 입장에서는 설교록에 있는 말씀이라 할지라도 성경을 보고 목회자가 감동받은 그 줄거리에서 성도들을 보면서 말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설교록을 그대로 읽거나 들으면 맥이 잡히고 논리적이면서도 이치에 맞는 감동이 많이 받는데 이것을 요약하거나 띄엄띄엄 인용하다보니 대강의 말씀은 알아 듣겠으나 말씀을 들으면서 이해하려 쫓아가기 바쁜 때가 많습니다.

:

: 드릴 질문사항은

: 1. 말씀을 듣는 성도 입장에서 이 귀한 말씀을 예배시간에 은혜 받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 학생이면 내일 배울 분량을 알아 예습이라고도 하겠지만 공회에서는 알수도 없으니...

: 사실 배운 본문말씀을 다시 설교록을 찾아 은혜를 받는 복습으로 은혜를 만회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

: 2. 예전 설교록에 목회성공이 다른 곳에 있지 않고 부흥하려면 양을 잘 먹이는 것이 제일인데 이는 목회자 자기실력이 없어도 재독을 통해 은혜를 받게 하면 자라갈 수 있다고 했고 성도입장에서도 재독을 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는데 백목사님의 설교를 30분정도 재독을 하고 이에 대해 재강조하거나 요약을 하거나 현실적용(교회)에 있어서 필요한 사항을 목사님이 강조하는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 3. 예전 백목사님이 말씀하셨던 23가지 설교준비사항에 대해서 오늘날도 각 목회자들에게 해당되는지요 ? 또는 추가되거나 감해야 하는 사항은 없는지요? 총공회 목회자들은 실상 이렇게 말씀준비를 하는지요?

:

: 4. 목회자가 말씀 준비하면서 골이 빠진다고 합니다. 반대로 말씀을 증거한 것이 미흡하여 이면 저면으로 아쉬워서 세밀하게 전하려하니 예배시간도 부족하여 한말씀을 가지고 일주일 아니 한달을 해도 부족하다고 하는데 목회자가 말씀준비 측면에서 초보일때에서부터 단계별로 성장할 때 그 현상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항상 감사합니다.
설교하는 자, 설교 듣는 자
총공회 목사님은 참으로 설교할 것이 많아서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귀한 종을 통하여 주신 설교록이 있어서 설교할 것이 무궁무진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설교록에 있는 내용을 요약을 하든지 또 줄거리를 잡고 자기 경험 체험적인 것을 붙여서 설교를 한다든지, 정 준비가 되지 않으면 거의 설교록의 내용을 익혀서 하면 되고, 그것도 안되면 설교록을 노트에 베껴서 읽으면 되고....


성도 입장에서는 설교록에 있는 말씀이라 할지라도 성경을 보고 목회자가 감동받은 그 줄거리에서 성도들을 보면서 말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설교록을 그대로 읽거나 들으면 맥이 잡히고 논리적이면서도 이치에 맞는 감동이 많이 받는데 이것을 요약하거나 띄엄띄엄 인용하다보니 대강의 말씀은 알아 듣겠으나 말씀을 들으면서 이해하려 쫓아가기 바쁜 때가 많습니다.


드릴 질문사항은

1. 말씀을 듣는 성도 입장에서 이 귀한 말씀을 예배시간에 은혜 받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학생이면 내일 배울 분량을 알아 예습이라고도 하겠지만 공회에서는 알수도 없으니...

사실 배운 본문말씀을 다시 설교록을 찾아 은혜를 받는 복습으로 은혜를 만회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2. 예전 설교록에 목회성공이 다른 곳에 있지 않고 부흥하려면 양을 잘 먹이는 것이 제일인데 이는 목회자 자기실력이 없어도 재독을 통해 은혜를 받게 하면 자라갈 수 있다고 했고 성도입장에서도 재독을 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는데 백목사님의 설교를 30분정도 재독을 하고 이에 대해 재강조하거나 요약을 하거나 현실적용(교회)에 있어서 필요한 사항을 목사님이 강조하는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예전 백목사님이 말씀하셨던 23가지 설교준비사항에 대해서 오늘날도 각 목회자들에게 해당되는지요 ? 또는 추가되거나 감해야 하는 사항은 없는지요? 총공회 목회자들은 실상 이렇게 말씀준비를 하는지요?


4. 목회자가 말씀 준비하면서 골이 빠진다고 합니다. 반대로 말씀을 증거한 것이 미흡하여 이면 저면으로 아쉬워서 세밀하게 전하려하니 예배시간도 부족하여 한말씀을 가지고 일주일 아니 한달을 해도 부족하다고 하는데 목회자가 말씀준비 측면에서 초보일때에서부터 단계별로 성장할 때 그 현상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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