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공회 목회자들과 함께, 통회합니다
| 분류 |
|---|
yilee
0
2010.02.28 00:00
1. 목회자와 일반적인 설교 세계
목회자에게는 설교가 목회의 전부라 할 만큼 중요한 줄은 다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목회자가 매일 자기 설교를 듣는 같은 교회 교인을 상대로 계속 설교를 반복하다 보면 듣는 이들이 자기 설교에 새 은혜를 받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목회자의 평생 가장 큰 짐 중에 하나가 설교입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첫 목회에서는 신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많아서 설교 거리가 아주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 강단은 신학교 강의 시간과 달라서 신학 지식은 교인들에게 은혜는 커녕 이해조차 되지 않습니다. 눈치가 있는 목회자라면 신학교에서 배운 것과 교회에서 설교하는 내용은 전혀 별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때부터 목회자들은 신학교에서 배운 것은 가끔 사전을 뒤져 보듯 그렇게 보게 되고 그 대신 설교의 주 내용은 신학교에서 배운 것 외의 것을 중심으로 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본문을 읽을 때는 성경을 읽습니다. 그런데 그 본문을 가지고 정작 설교를 할 때는 세상 상식 경험 심지어 최신 뉴스로 채우게 됩니다. 이런 노력도 얼마 지나 가다 보면 본전이 다 나오게 됩니다.
대단한 입심과 만담가적 소질을 가진 분들은 웃고 즐겁게 듣는 교인들의 얼굴을 보며 자기가 설교를 잘하는 줄 알고 그 길로 계속 가게 되고, 일반 목회자들은 성경을 읽고 그 본문으로 교인이 은혜를 받도록 하는 것이 신학교에서 배운 것과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제 지식과 상식만 가지고는 안 되는 줄 알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 제대로 된 설교 자료를 찾아 나섭니다. 결국 주석과 설교집들을 섭렵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그런 책들은 모든 목회자들이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 내용조차 조금 들어 가다 보면 꼭 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노선을 아지 못하는 목회자들은 설교에 대한 짐을 평생 힘들게 지고 갑니다.
2. 이 노선 목회자들과 설교 세계
공회 목회자들은 목회 초기에 백영희 목사님의 설교록만 설교의 자료로 삼습니다. 그런데 조금의 기간을 지나게 되면 성경 한 권만 가지면 그 어떤 책도 참고할 필요가 없고 성경만 가지고 평생에 설교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고 나면 두 종류의 목회자가 생깁니다.
설교록은 초기 잠깐만 활용했고 이후로는 성경 하나만 가지고 평생을 가는 목회자가 있습니다. 또 한 종류는 설교록을 그냥 수 많은 설교록 중의 하나 정도로만 대하다가 그 설교록의 설교 세계가 목회자에게 정말 설교의 방향을 잡아 주고 성경을 제대로 깨닫게 해 주는 차원 높은 설교록인 줄을 알아 차립니다. 그래서 그 설교록 안에서 좀 더 배울 것이 없는지 유심히 살피는 목회자가 됩니다. 이런 목회자들은 그 설교록을 떼 놓고 성경만 가지고도 설교를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배우는 자세 때문에 평생 설교록을 참고하게 됩니다.
그런데 설교록은 그 내용 전체를 통해 신학이나 세상 상식이나 설교자의 개인 이야기는 거의 없고 성경의 한 말씀 속에 담긴 세계를 꾸준하게 살피고 있기 때문에 다른 설교록과 달리 이 설교록은 접하고 활용할수록 성경 안으로만 들어 가게 합니다. 설교록을 조금 보다가 이제 어느 정도 알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설교록을 쉽게 포기한 사람들은 얼마 가지 않아서 성경 자체로부터도 멀어 지는 것을 보고 설교록에 집착을 가진 사람들은 성경 자체를 깊이 알아 가는 현상이 뚜렷해 지기 때문에 공회 내부는 물론 공회 외부에서 이 설교 자료가 엄청 나게 이용 되고 있는 것입니다.
3. 이 과정에서 생긴 문제점
우리가 다 부족하다 보니까 어떤 좋은 것이 있다 해도 그 좋은 것에서 좋은 것만 활용하면 좋은데 그 속에서도 또 좋지 않은 것을 어떻게 찾아 내고 거기에 안주하는 모습을 봅니다. 설교록의 분량이 방대하다 보니까 그 내용을 통해 자기가 직접 성경을 깨닫는 그 깊이를 한 없이 깊게 만들어야 할 터인데, 그냥 그 내용을 단순히 읽는 듯이 하고 지나 가기만 해도 교인들에게 설교 거리로서는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10만 페이지에 달하는 설교 분량은 평생 설교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제대로 읽어서 소개라도 해 주면 좋겠는데 그조차도 하지 않는 목회자들이 대량 생겨 지고 있습니다.
일반 교회에서는 설교 재료에 목이 타서 죽는데 이 노선에서는 설교 재료의 홍수 속에서 가뭄이 연이어 계속 되고 있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 나고 있으니 교인치고 조금이라도 눈치가 있는 교인이라면 위 글의 말씀처럼 탄식을 하지 않을 수가 없고 절규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쌀이 없어 얻어 먹고 사는 가정이 주변에 허다 한데 창고에 쌀을 쌓아 두고도 밥솥까지 옮기는 것이 귀찮아서 생쌀이나 조금씩 집어다 주니 어린 아이들이 영양 실조에 걸린 꼴입니다.
잠19:24에서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와 한다고 하셨는데 공회 목회자들은 설교록에 눈을 맞춰 놓고도 입으로 전하는 그 일을 괴로와 그냥 녹음기를 틀 듯 해 버리거나 아니면 그 설교록을 읽어 보지도 않은 사람처럼 되어 버리니까 차라리 설교 시간의 일부라도 재독을 할 수 있게 하고 나머지 시간을 설교자가 설교를 하게 되면 앞에 나온 설교 내용을 함께 들은 교인이 지켜 보고 있으니 설교자가 노력을 하게 되고 그렇게 하다 보면 설교자의 설교가 늘지 않을 수 없겠다는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4. 사실 오래 전부터 사용 되었던 방법입니다.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설교 내용 이상으로 잘 전하기가 어렵고, 또 그 설교 내용 중에는 일반 교인들이 그냥 듣고 넘어 가는 빠트린 중요한 부분들이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설교 시간의 앞 부분에 재독을 일부 하고 이어 설교자가 자기 교회 현실에 맞고 교인들에게 필요한 말씀을 전한다면 최선은 되지 않더라도 차선은 될 수가 있습니다.
위 글의 발언을 앞에 안내하면서 좀 비판적으로 보일 만큼 먼저 소개한 이유는 이제 설명 드린 이런 연유 때문에 위 글의 제안을 따라 그렇게 해 보는 것도 게으른 목회자들을 위해서는 좋은 방법인데 문제는 교회 내에서 목회자와 사이가 좋지 않은 분들이 재독을 직접 시간마다 활용하는 문제를 두고 시비를 벌인다면 그 시비는 옳고 그른 것을 떠나 교회에 많은 파란을 만들고 그 파란이 일어 나게 되면 받을 수 있는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전체 교인의 의사를 모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되어 전체 교인이 이해를 하게 된다면 설교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교인에게 진정한 은혜가 될 수 있다면 해 볼 수 있습니다. 신약은 죄 되지 않는다면 은혜 중심으로 뭐든지 일단 해 볼 수가 있습니다. 다른 교단에서는 심지어 세상 이야기를 하고 세상 춤을 추고 놀자판도 만드는데 우리의 노력은 성경으로 더 깊게 들어 가야 하는 그 과정에 필요한 방법을 사용해 보는 것이므로 과도기의 노력치고는 최선의 방법이라 할 만한데, 이 방법이 주는 은혜와 효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방해하는 운동 역시 크고 그로 인해 선의로 시작한 것이 교회를 손해 보이고 끝난 경우가 많아서 좀 조심하고 신중하며 전체 의사를 반드시 먼저 살핀 다음에 해야 할 일로 봅니다.
5. 위 글을 두고는 먼저 1차 답변을 통해 질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위 글께서는 선의로 말씀하신 내용이나 어떤 분들은 바로 이런 내용을 가지고 목회자를 쥐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하는 경우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과 저런 분들께서 함께 보고 계실 장소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답변자가 목회자 입장에서 교인들의 지적이 있으면 최대한 선의로만 듣고 조심했다고 기억합니다. 그런데 한 쪽으로만 지나치게 나가다 보니까 교인들로서는 교인 입장에서 조금 살필 때도 있어야 하는데 마치 천주교가 교황제를 가졌던 것처럼 또는 보통 목회자들이 목회자의 권세를 무슨 전권인 줄 알고 휘두렀듯이 어떤 교인들은 교인이라 하면 어떤 말도 다 옳은 듯이 되는 경향이 공회 내에서는 일부 있었습니다.
앞에 1차 설명한 내용은 위 글을 적으신 교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실은 위 글을 적은 분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 위 글을 핑계 삼아 평소 공회 내에서 자기 지위를 잊고 지나치게 발언했던 분들을 향해 질책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위 글께서 직접 통회로 나오시니 답변자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위 글의 1차 질문에서 말씀한 내용을 두고 목회자라면 정말 뜨겁게 회개해야 할 내용이며 답변에 앞 서 답변자부터 그 글을 읽고 다시 23 가지 설교 준비 지침도 되 새겼습니다. 답변자만 가지고 있던 백 목사님의 개인 노트에서 답변자가 그 내용을 외부에 처음 공개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답변자가 위 글 때문에 다시 그 내용을 읽어 보며 너무 부끄럽고 서툴렀음을 깊이 느꼈습니다.
어디 답변자 한 사람이겠습니까? 거의 모든 우리 공회 목회자들과 함께 이런 설교 자료를 마음껏 손에 쥔 공회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말씀의 은혜 때문에 갈급을 느끼게 했다면 세상 누구의 말처럼 공회 목회자들은 다 자폭을 해야 할 정도입니다. 설교에 은혜가 있다면 시간은 좀 더디다 해도 부흥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생명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 공회 교인들의 설교 듣는 수준이 예사가 아니어서 아무리 노력해도 현직 목회자들로서는 말씀 은혜를 받게 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30분 정도 또는 20분 정도의 재독으로 일차 은혜를 나눈 다음에 이어 지는 설교가 있으면 과도기에 좋을 듯한데, 이 방법을 백 목사님 생전부터 사용한 분들이 또는 그 사후에도 시도해 본 분들이 교회 내에서 큰 분란을 겪어 마음에는 원이나 실제 그렇게 하지 못하고 머뭇 거리다가 기회를 놓친 경우도 많았습니다.
다른 일정 때문에 답변을 잘 다듬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그리고 답변자의 질책을 질문자로서 들어 주시니 답변자로서는 어디 설 자리조차 찾지 못하겠습니다. 많은 인사보다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함께 가야 할 길을 고민하는 진정한 공회 사랑 공회인의 글임을 뜨거운 마음으로 읽었다는 점은 이해해 주시고 1차 답변을 다른 분을 대신해서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다윗 님이 쓰신 내용 <<
:
:
: 1. 먼저 통회합니다. 교인다운 교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 2. 외부로 향한 애씀을 내부적으로 고치는데 힘을 쓰겠습니다
: 3.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하며 내가 목회자 입장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 4. 한 몸이룬 교회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단일체가 되도록 노력하겠씁니다
: 5. 항상 감사하오며 받은 은혜와 받는 은혜와 받을 은혜를 놓치지 않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목회자에게는 설교가 목회의 전부라 할 만큼 중요한 줄은 다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목회자가 매일 자기 설교를 듣는 같은 교회 교인을 상대로 계속 설교를 반복하다 보면 듣는 이들이 자기 설교에 새 은혜를 받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목회자의 평생 가장 큰 짐 중에 하나가 설교입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첫 목회에서는 신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많아서 설교 거리가 아주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 강단은 신학교 강의 시간과 달라서 신학 지식은 교인들에게 은혜는 커녕 이해조차 되지 않습니다. 눈치가 있는 목회자라면 신학교에서 배운 것과 교회에서 설교하는 내용은 전혀 별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때부터 목회자들은 신학교에서 배운 것은 가끔 사전을 뒤져 보듯 그렇게 보게 되고 그 대신 설교의 주 내용은 신학교에서 배운 것 외의 것을 중심으로 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본문을 읽을 때는 성경을 읽습니다. 그런데 그 본문을 가지고 정작 설교를 할 때는 세상 상식 경험 심지어 최신 뉴스로 채우게 됩니다. 이런 노력도 얼마 지나 가다 보면 본전이 다 나오게 됩니다.
대단한 입심과 만담가적 소질을 가진 분들은 웃고 즐겁게 듣는 교인들의 얼굴을 보며 자기가 설교를 잘하는 줄 알고 그 길로 계속 가게 되고, 일반 목회자들은 성경을 읽고 그 본문으로 교인이 은혜를 받도록 하는 것이 신학교에서 배운 것과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제 지식과 상식만 가지고는 안 되는 줄 알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 제대로 된 설교 자료를 찾아 나섭니다. 결국 주석과 설교집들을 섭렵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그런 책들은 모든 목회자들이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 내용조차 조금 들어 가다 보면 꼭 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노선을 아지 못하는 목회자들은 설교에 대한 짐을 평생 힘들게 지고 갑니다.
2. 이 노선 목회자들과 설교 세계
공회 목회자들은 목회 초기에 백영희 목사님의 설교록만 설교의 자료로 삼습니다. 그런데 조금의 기간을 지나게 되면 성경 한 권만 가지면 그 어떤 책도 참고할 필요가 없고 성경만 가지고 평생에 설교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고 나면 두 종류의 목회자가 생깁니다.
설교록은 초기 잠깐만 활용했고 이후로는 성경 하나만 가지고 평생을 가는 목회자가 있습니다. 또 한 종류는 설교록을 그냥 수 많은 설교록 중의 하나 정도로만 대하다가 그 설교록의 설교 세계가 목회자에게 정말 설교의 방향을 잡아 주고 성경을 제대로 깨닫게 해 주는 차원 높은 설교록인 줄을 알아 차립니다. 그래서 그 설교록 안에서 좀 더 배울 것이 없는지 유심히 살피는 목회자가 됩니다. 이런 목회자들은 그 설교록을 떼 놓고 성경만 가지고도 설교를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배우는 자세 때문에 평생 설교록을 참고하게 됩니다.
그런데 설교록은 그 내용 전체를 통해 신학이나 세상 상식이나 설교자의 개인 이야기는 거의 없고 성경의 한 말씀 속에 담긴 세계를 꾸준하게 살피고 있기 때문에 다른 설교록과 달리 이 설교록은 접하고 활용할수록 성경 안으로만 들어 가게 합니다. 설교록을 조금 보다가 이제 어느 정도 알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설교록을 쉽게 포기한 사람들은 얼마 가지 않아서 성경 자체로부터도 멀어 지는 것을 보고 설교록에 집착을 가진 사람들은 성경 자체를 깊이 알아 가는 현상이 뚜렷해 지기 때문에 공회 내부는 물론 공회 외부에서 이 설교 자료가 엄청 나게 이용 되고 있는 것입니다.
3. 이 과정에서 생긴 문제점
우리가 다 부족하다 보니까 어떤 좋은 것이 있다 해도 그 좋은 것에서 좋은 것만 활용하면 좋은데 그 속에서도 또 좋지 않은 것을 어떻게 찾아 내고 거기에 안주하는 모습을 봅니다. 설교록의 분량이 방대하다 보니까 그 내용을 통해 자기가 직접 성경을 깨닫는 그 깊이를 한 없이 깊게 만들어야 할 터인데, 그냥 그 내용을 단순히 읽는 듯이 하고 지나 가기만 해도 교인들에게 설교 거리로서는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10만 페이지에 달하는 설교 분량은 평생 설교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제대로 읽어서 소개라도 해 주면 좋겠는데 그조차도 하지 않는 목회자들이 대량 생겨 지고 있습니다.
일반 교회에서는 설교 재료에 목이 타서 죽는데 이 노선에서는 설교 재료의 홍수 속에서 가뭄이 연이어 계속 되고 있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 나고 있으니 교인치고 조금이라도 눈치가 있는 교인이라면 위 글의 말씀처럼 탄식을 하지 않을 수가 없고 절규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쌀이 없어 얻어 먹고 사는 가정이 주변에 허다 한데 창고에 쌀을 쌓아 두고도 밥솥까지 옮기는 것이 귀찮아서 생쌀이나 조금씩 집어다 주니 어린 아이들이 영양 실조에 걸린 꼴입니다.
잠19:24에서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와 한다고 하셨는데 공회 목회자들은 설교록에 눈을 맞춰 놓고도 입으로 전하는 그 일을 괴로와 그냥 녹음기를 틀 듯 해 버리거나 아니면 그 설교록을 읽어 보지도 않은 사람처럼 되어 버리니까 차라리 설교 시간의 일부라도 재독을 할 수 있게 하고 나머지 시간을 설교자가 설교를 하게 되면 앞에 나온 설교 내용을 함께 들은 교인이 지켜 보고 있으니 설교자가 노력을 하게 되고 그렇게 하다 보면 설교자의 설교가 늘지 않을 수 없겠다는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4. 사실 오래 전부터 사용 되었던 방법입니다.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설교 내용 이상으로 잘 전하기가 어렵고, 또 그 설교 내용 중에는 일반 교인들이 그냥 듣고 넘어 가는 빠트린 중요한 부분들이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설교 시간의 앞 부분에 재독을 일부 하고 이어 설교자가 자기 교회 현실에 맞고 교인들에게 필요한 말씀을 전한다면 최선은 되지 않더라도 차선은 될 수가 있습니다.
위 글의 발언을 앞에 안내하면서 좀 비판적으로 보일 만큼 먼저 소개한 이유는 이제 설명 드린 이런 연유 때문에 위 글의 제안을 따라 그렇게 해 보는 것도 게으른 목회자들을 위해서는 좋은 방법인데 문제는 교회 내에서 목회자와 사이가 좋지 않은 분들이 재독을 직접 시간마다 활용하는 문제를 두고 시비를 벌인다면 그 시비는 옳고 그른 것을 떠나 교회에 많은 파란을 만들고 그 파란이 일어 나게 되면 받을 수 있는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전체 교인의 의사를 모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되어 전체 교인이 이해를 하게 된다면 설교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교인에게 진정한 은혜가 될 수 있다면 해 볼 수 있습니다. 신약은 죄 되지 않는다면 은혜 중심으로 뭐든지 일단 해 볼 수가 있습니다. 다른 교단에서는 심지어 세상 이야기를 하고 세상 춤을 추고 놀자판도 만드는데 우리의 노력은 성경으로 더 깊게 들어 가야 하는 그 과정에 필요한 방법을 사용해 보는 것이므로 과도기의 노력치고는 최선의 방법이라 할 만한데, 이 방법이 주는 은혜와 효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방해하는 운동 역시 크고 그로 인해 선의로 시작한 것이 교회를 손해 보이고 끝난 경우가 많아서 좀 조심하고 신중하며 전체 의사를 반드시 먼저 살핀 다음에 해야 할 일로 봅니다.
5. 위 글을 두고는 먼저 1차 답변을 통해 질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위 글께서는 선의로 말씀하신 내용이나 어떤 분들은 바로 이런 내용을 가지고 목회자를 쥐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하는 경우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과 저런 분들께서 함께 보고 계실 장소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답변자가 목회자 입장에서 교인들의 지적이 있으면 최대한 선의로만 듣고 조심했다고 기억합니다. 그런데 한 쪽으로만 지나치게 나가다 보니까 교인들로서는 교인 입장에서 조금 살필 때도 있어야 하는데 마치 천주교가 교황제를 가졌던 것처럼 또는 보통 목회자들이 목회자의 권세를 무슨 전권인 줄 알고 휘두렀듯이 어떤 교인들은 교인이라 하면 어떤 말도 다 옳은 듯이 되는 경향이 공회 내에서는 일부 있었습니다.
앞에 1차 설명한 내용은 위 글을 적으신 교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실은 위 글을 적은 분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 위 글을 핑계 삼아 평소 공회 내에서 자기 지위를 잊고 지나치게 발언했던 분들을 향해 질책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위 글께서 직접 통회로 나오시니 답변자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위 글의 1차 질문에서 말씀한 내용을 두고 목회자라면 정말 뜨겁게 회개해야 할 내용이며 답변에 앞 서 답변자부터 그 글을 읽고 다시 23 가지 설교 준비 지침도 되 새겼습니다. 답변자만 가지고 있던 백 목사님의 개인 노트에서 답변자가 그 내용을 외부에 처음 공개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답변자가 위 글 때문에 다시 그 내용을 읽어 보며 너무 부끄럽고 서툴렀음을 깊이 느꼈습니다.
어디 답변자 한 사람이겠습니까? 거의 모든 우리 공회 목회자들과 함께 이런 설교 자료를 마음껏 손에 쥔 공회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말씀의 은혜 때문에 갈급을 느끼게 했다면 세상 누구의 말처럼 공회 목회자들은 다 자폭을 해야 할 정도입니다. 설교에 은혜가 있다면 시간은 좀 더디다 해도 부흥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생명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 공회 교인들의 설교 듣는 수준이 예사가 아니어서 아무리 노력해도 현직 목회자들로서는 말씀 은혜를 받게 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30분 정도 또는 20분 정도의 재독으로 일차 은혜를 나눈 다음에 이어 지는 설교가 있으면 과도기에 좋을 듯한데, 이 방법을 백 목사님 생전부터 사용한 분들이 또는 그 사후에도 시도해 본 분들이 교회 내에서 큰 분란을 겪어 마음에는 원이나 실제 그렇게 하지 못하고 머뭇 거리다가 기회를 놓친 경우도 많았습니다.
다른 일정 때문에 답변을 잘 다듬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그리고 답변자의 질책을 질문자로서 들어 주시니 답변자로서는 어디 설 자리조차 찾지 못하겠습니다. 많은 인사보다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함께 가야 할 길을 고민하는 진정한 공회 사랑 공회인의 글임을 뜨거운 마음으로 읽었다는 점은 이해해 주시고 1차 답변을 다른 분을 대신해서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다윗 님이 쓰신 내용 <<
:
:
: 1. 먼저 통회합니다. 교인다운 교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 2. 외부로 향한 애씀을 내부적으로 고치는데 힘을 쓰겠습니다
: 3.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하며 내가 목회자 입장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 4. 한 몸이룬 교회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단일체가 되도록 노력하겠씁니다
: 5. 항상 감사하오며 받은 은혜와 받는 은혜와 받을 은혜를 놓치지 않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설교하는 자, 설교 듣는 자
총공회 목사님은 참으로 설교할 것이 많아서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귀한 종을 통하여 주신 설교록이 있어서 설교할 것이 무궁무진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설교록에 있는 내용을 요약을 하든지 또 줄거리를 잡고 자기 경험 체험적인 것을 붙여서 설교를 한다든지, 정 준비가 되지 않으면 거의 설교록의 내용을 익혀서 하면 되고, 그것도 안되면 설교록을 노트에 베껴서 읽으면 되고....
성도 입장에서는 설교록에 있는 말씀이라 할지라도 성경을 보고 목회자가 감동받은 그 줄거리에서 성도들을 보면서 말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설교록을 그대로 읽거나 들으면 맥이 잡히고 논리적이면서도 이치에 맞는 감동이 많이 받는데 이것을 요약하거나 띄엄띄엄 인용하다보니 대강의 말씀은 알아 듣겠으나 말씀을 들으면서 이해하려 쫓아가기 바쁜 때가 많습니다.
드릴 질문사항은
1. 말씀을 듣는 성도 입장에서 이 귀한 말씀을 예배시간에 은혜 받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학생이면 내일 배울 분량을 알아 예습이라고도 하겠지만 공회에서는 알수도 없으니...
사실 배운 본문말씀을 다시 설교록을 찾아 은혜를 받는 복습으로 은혜를 만회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2. 예전 설교록에 목회성공이 다른 곳에 있지 않고 부흥하려면 양을 잘 먹이는 것이 제일인데 이는 목회자 자기실력이 없어도 재독을 통해 은혜를 받게 하면 자라갈 수 있다고 했고 성도입장에서도 재독을 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는데 백목사님의 설교를 30분정도 재독을 하고 이에 대해 재강조하거나 요약을 하거나 현실적용(교회)에 있어서 필요한 사항을 목사님이 강조하는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예전 백목사님이 말씀하셨던 23가지 설교준비사항에 대해서 오늘날도 각 목회자들에게 해당되는지요 ? 또는 추가되거나 감해야 하는 사항은 없는지요? 총공회 목회자들은 실상 이렇게 말씀준비를 하는지요?
4. 목회자가 말씀 준비하면서 골이 빠진다고 합니다. 반대로 말씀을 증거한 것이 미흡하여 이면 저면으로 아쉬워서 세밀하게 전하려하니 예배시간도 부족하여 한말씀을 가지고 일주일 아니 한달을 해도 부족하다고 하는데 목회자가 말씀준비 측면에서 초보일때에서부터 단계별로 성장할 때 그 현상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
총공회 목사님은 참으로 설교할 것이 많아서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귀한 종을 통하여 주신 설교록이 있어서 설교할 것이 무궁무진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설교록에 있는 내용을 요약을 하든지 또 줄거리를 잡고 자기 경험 체험적인 것을 붙여서 설교를 한다든지, 정 준비가 되지 않으면 거의 설교록의 내용을 익혀서 하면 되고, 그것도 안되면 설교록을 노트에 베껴서 읽으면 되고....
성도 입장에서는 설교록에 있는 말씀이라 할지라도 성경을 보고 목회자가 감동받은 그 줄거리에서 성도들을 보면서 말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설교록을 그대로 읽거나 들으면 맥이 잡히고 논리적이면서도 이치에 맞는 감동이 많이 받는데 이것을 요약하거나 띄엄띄엄 인용하다보니 대강의 말씀은 알아 듣겠으나 말씀을 들으면서 이해하려 쫓아가기 바쁜 때가 많습니다.
드릴 질문사항은
1. 말씀을 듣는 성도 입장에서 이 귀한 말씀을 예배시간에 은혜 받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학생이면 내일 배울 분량을 알아 예습이라고도 하겠지만 공회에서는 알수도 없으니...
사실 배운 본문말씀을 다시 설교록을 찾아 은혜를 받는 복습으로 은혜를 만회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2. 예전 설교록에 목회성공이 다른 곳에 있지 않고 부흥하려면 양을 잘 먹이는 것이 제일인데 이는 목회자 자기실력이 없어도 재독을 통해 은혜를 받게 하면 자라갈 수 있다고 했고 성도입장에서도 재독을 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는데 백목사님의 설교를 30분정도 재독을 하고 이에 대해 재강조하거나 요약을 하거나 현실적용(교회)에 있어서 필요한 사항을 목사님이 강조하는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예전 백목사님이 말씀하셨던 23가지 설교준비사항에 대해서 오늘날도 각 목회자들에게 해당되는지요 ? 또는 추가되거나 감해야 하는 사항은 없는지요? 총공회 목회자들은 실상 이렇게 말씀준비를 하는지요?
4. 목회자가 말씀 준비하면서 골이 빠진다고 합니다. 반대로 말씀을 증거한 것이 미흡하여 이면 저면으로 아쉬워서 세밀하게 전하려하니 예배시간도 부족하여 한말씀을 가지고 일주일 아니 한달을 해도 부족하다고 하는데 목회자가 말씀준비 측면에서 초보일때에서부터 단계별로 성장할 때 그 현상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