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교회 김영환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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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교회 김영환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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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북림교회 출신입니다.


남해 출신 교인들은 타 지역과 비교하면 잘 난 분들이 많고 한 번 결심하면 끝을 본다 할 만큼 의지가 굳고 남 다른 장점을 많이 가졌습니다. 바로 이런 장점이 죄를 짓고 타락을 하게 될 때는 강퍅한 방향에 크게 사용 되는데, 현재 노트 문제를 두고는 그 분의 지난 날의 모든 장점이 현재 그 분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는데 너무 크게 사용 되고 있다고 생각이 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한도 없습니다. 남해 출신들은 일본 사람들처럼 내부 단결과 선후배의 의리나 위계가 확실한 편이니 이런 기회에 그 분과 관련이 있는 분들은 모두 나서서 그 분이 죄를 더 짓지 않도록, 그 분이 함께 가질 말씀을 혼자 빼 돌려 가지지 않도록 권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형님이 김정부 집사님이라고 울산에서 교사 생활을 하시며 교회를 맡고 계신 분인데 주일학교 반사로 크게 일을 했고 실력을 인정 받아 1970년대부터 목회자로 추천을 받아 온 분입니다. 김 목사님은 순복음교회 기도 모임에 따라 갔다가 돌아 가신 같은 남해 출신 안효일 집사님의 직계였습니다. 안 집사님이 살아 계셨더라면 그 큰 손바닥으로 김 목사님의 멱살을 잡고서라도 그 자료를 바로 뺏들어 냈을 터인데 좋은 선배 스승이 돌아 가셔서 안타깝습니다.


서부교회 반사 출신입니다.


54세로 기억 되며 남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1976년 경 서부교회로 와서 대학 입학 준비를 다시 했고 안 집사님 밑에서 반사 생활을 했으며 만사 모범적으로 열심을 가지고 충성했던 당시 수백 명의 목회 지망 청년들 중에 한 분이었습니다.


연구부 직원 출신입니다.


1982년 목회연구소가 출발하고 답변자가 10월에 출근하면서 설교록의 출간을 위해 교정과 출간 준비를 비롯한 연구부 업무를 맡았고 1983년 5월에 이치영 목사님이 그리고 이후에 김영환 목사님이 연구부의 교정 직원으로 들어 온 기억이 있습니다. 1984년 1월부터 설교록 출간이 시작 될 때 이치영 목사님과 함께 설교록 초기부터 교정 실무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체질적으로 목회나 심방에 관심이 많아서 교정 업무에는 이치영 목사님보다 못한 반면 맡은 주일학생이나 중간반 학생을 챙기고 기르는 일에는 불철주야 열심이었습니다. 설교록 내용을 차분하게 살펴야 하는 교정 일을 하다가 맡은 학생들이나 식구들에게 너무 자주 전화를 하여 연구부 업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여서 당시 소장 목사님께 연구소의 연구부 직원으로는 맞지 않으니 목회를 내 보내도록 백 목사님께 건의를 드렸습니다.


안양 안산교회 목회자였습니다.


1988년 12월 경 정도로 기억이 되는데, 백 목사님 생전 마지막 기간에 서부교회와 공회와 연구소 등 백 목사님의 주변 핵심 기관들은 목사님의 사후를 준비하는 데 바빴습니다. 연구소의 경우 백 목사님 사후에도 그 생전처럼 자료의 수집과 연구와 출간이 제대로 이루어 지려면 연구부 직원 중에 김영환 선생님이 나가야 한다고 결정이 되었고, 안양의 안산교회로 파견이 되었습니다.


안산교회 파견이 결정 되자 김 목사님은 연구소 내의 자료를 개인적으로 대량으로 가져 갔는데 당시 기준으로는 허락 될 수 없었습니다. 연구부장으로서 바로 조처를 하려다가 이미 설교록 출간을 위해 그 동안 수고도 했고 또 연구소 직원들의 월급은 교회 내의 다른 직원들에 비하여 너무 열악했으므로 목회지에서 설교 자료가 필요할 때 복사비라도 아끼게 할 정도는 되겠다고 판단하여 묵인했습니다. 당시 연구소 외부로 나가서는 안 되는 자료들도 일부 포함 되어 있었으나 본인이 부인하게 되면 소란만 있을까 하여 덮어 두었습니다. 당시 이 문제는 소장과 답변자가 함께 처리한 것이어서 당시 자료 유출의 잘못이 거론 된다면 사후 결정자 2 명의 책임입니다.


대신 김 목사님께는 자료를 대량 유출하여 개인적으로 가져 가는 것을 연구소가 알고 있다는 표시를 해 드렸습니다. 목회를 출발한 이후에도 이런 일은 계속 되었고 과거 설교록 출간을 위한 교정 직원이었다는 점에서 묵인은 오래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당시 그 묵인 때문에 이후에도 연구소의 연구부 직원들에게는 연구소 내의 자료 제공을 폭넓게 허락했고 그 연장선에서 김부호 목사님도 혜택을 받은 분입니다.


1989년 8월 27일에 백 목사님이 돌아 가시게 되자 안양의 안산교회는 대구공회의 중심이 되었던 이재순 목사님의 위상과 영향력 때문에 대구공회의 핵심 교회가 되었는데, 김상렬 이도영 집사님 등이 중심이 되어 부산공회 노선을 원하게 되자 교회는 내부 갈등을 맞게 됩니다. 당시 양측은 공회의 노선 문제를 두고 어느 쪽이 옳은지를 살피기로 하여 교회 밖에서 대표들을 불러 양측이 공청회 형식의 심의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김 목사님은 연구소의 자료와 답변자의 공회 노선 관련 자료가 필요하여 긴밀한 협조를 요청했고 답변자는 힘대로 도와 드렸습니다.


결국 양측 교인들은 김영환 목사님과 따르는 교인들을 개척해 나가도록 합의를 했고 김 목사님은 노선 문제로 함께 나온 교인들과 1990년 동안양교회를 개척하게 되는데 이 교회에서 그 해 11월에 시무투표를 받고 80%대에 이르는 반대자들 때문에 부산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서전교회를 목회하며 공회의 정치 목사의 길을 걸었습니다.


불신임을 받은 뒤에 목회자가 가야 할 교회를 찾고 그 과정에서 소개를 하는 목회자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 때부터 김 목사님은 목회 대신에 교회 정치에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따로 갈 곳이 없던 차에 부산의 서전교회에서 부산공회 교회가 시작 되자 이를 맡았으나 목회는 부차적이었고 공회의 교학실에서 실무자로 일하면서 공회의 파벌 싸움과 노선 갈등과 백 목사님 사후 격동기를 정치 목사로 그 중앙을 걷게 됩니다.


속으로는 김효순 권사님 서영호 목사님의 핵심이면서 겉으로는 이재순 목사님 교권 하에 충실한 직원처럼 업무를 맡아 심부름을 다 했습니다. 그리고 단순 심부름에 그쳐야 할 직책에도 불구하고 소리 없이 많은 개별 교회에 영향력을 미치려 했고, 이로 인해 현재 소속 공회에서조차 정치 목회자 중에서 대표적 인물로 분류 되고 있습니다. 맡고 있던 교회에서는 목회자 시무 불신임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어 2년 마다 신임투표를 앞두고 투표 시행을 맡은 목사님과 사전에 긴밀한 연락과 협조를 유지했고 신임투표를 넘기면 그 다음부터는 다시 2 년 재임 기간의 활동은 아주 활발했습니다. 김부호 목사님과 함께 전국 교회에 개입이나 간섭을 하지 않았던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알려 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활동이란 김영환 목사님으로서는 서부교회 내에서는 김효순 권사님의 지시를 받아 서영호 목사님을 담임 목회자로 받들어 총공회를 운영하는 것이 옳다는 확신으로 진행했고 그 일을 위해서는 김 목사님이 지난 날 자신의 모든 행동이 다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고 믿고 있으므로 김 목사님은 자신의 모든 행위는 전부 천국에서 상을 받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말출 노트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것도 김 목사님의 그런 활동에 걸림이 된다고 생각한 이 홈을 치기 위해 필요하여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 홈과는 매사 입장이 정반대일 뿐입니다.


정치 목사의 길을 걷게 되면 자기 교회의 목회에는 소홀하게 되는 법입니다. 동안양교회나 부산의 서전교회에서 목회는 교인들로부터 혹평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안양교회에서는 80%대의 불신임이 나왔고 서전교회에서는 교인도 적었지만 그마저 불신임이 나올까 해서 늘 투표 때마다 투표 주관 목회자와 미리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2009년 수원의 수산교회로 이동을 했고 이 교회가 새수원교회를 분리 개척하면서 교인들이 많이 낙심을 했는데 이제 교회가 조용하게 되자 본 교회로 돌아 오는 사람들도 있으며 수도권으로 진출했던 같은 계열의 교인들도 집합하고 있어 현재 수산교회의 파동 전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 산증인 님이 쓰신 내용 <<

:

: 이말출 권사님의 자료를 가지고 계시는 김영환 목사님의 대해서 자세히 알고싶습니다.

: 그리고 그 분이 지금까지 거쳐가신교회와 목회의 실적도 알고싶습니다.

: 예전에 목회연구소에 게셨다는것은 알고있습니다.
알고싶습니다.
이말출 권사님의 자료를 가지고 계시는 김영환 목사님의 대해서 자세히 알고싶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지금까지 거쳐가신교회와 목회의 실적도 알고싶습니다.

예전에 목회연구소에 게셨다는것은 알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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