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가족들에 대한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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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5
0
2021.11.03 13:56
민수기를 읽다가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아들들에 관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 출애굽 4:20
모세가 그 아내와 아들들을 나위게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 출애굽 18:2 하~3
모세가 돌려 보냈던 그의 아내 십보라와 그 두 아들을 데렸으니
[질문]
1.애굽에 같이 갔는데, 모세가 돌려 보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유?
2. 모세 생전에는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이 부분도 궁금합니다.
* 출애굽 4:20
모세가 그 아내와 아들들을 나위게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 출애굽 18:2 하~3
모세가 돌려 보냈던 그의 아내 십보라와 그 두 아들을 데렸으니
[질문]
1.애굽에 같이 갔는데, 모세가 돌려 보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유?
2. 모세 생전에는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이 부분도 궁금합니다.
과거 답변 중 관련 있는 것을 우선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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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9 20:59:38
yilee [ E-mail ]
가족의 회개운동 중 제일 대표적인 것 하나
제목분류 : [~성경~주해~출애굽기~]
내용분류 : [-성경-주해-출애굽기-]
--------------------------------------------------------------------------------------------
2.출애굽 사명을 맡은 초기
①당시 상황은 매일 현실에 충실할 뿐이었습니다.
모세 나이 40-80세 생활은
미디안에서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며 처가살이를 했습니다.
40년 계속되는 그 황량한 미디안의 목회생활 도중 출애굽 사명을 받게 됩니다.
그 자리에 살라 하면 40년 무미건조해도 항상 기쁨으로 새롭게 살아야 하고
40년 정붙여 살던 곳이라도 다음 단계를 준비하시고 명하시면 즉시 떠나야 합니다.
②모세의 떠나는 모습과 단행
눅9:62에서는 작별도 하지말고 즉시 따르도록 했으니 그렇게 해야 할 때가 있고
왕상19:21 엘리사는 동네 잔치를 열고 따랐으니 그의 현실은 그것이 단행이었습니다.
'즉시 순종'은 동일하지만 주신 현실에서 '즉시'실행하는 그 과정은 조금씩 다릅니다.
눅5:11에서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고 했으나, 성경은 생략이 많기 때문에 그 바다에 함께 있던 이들과 작별조차도 하지 않았는지 여부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동안 가진 모든 것을 다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명령에는 즉시 순종을 하되, 즉시 순종하는 모습은 각자를 인도하는 현실에 따라 다르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모세의 경우
명령을 받은 호렙이 지도상으로만 본다면 40년 살던 미디안과 지역적으로 먼 곳이나
넓게 보면 40년 살던 목자생활의 활동범위 내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호렙에서 바로 애굽으로 가도 되고, 살던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가도 됩니다.
3.질문에 직접 답변드린다면
①첫째 질문, 호렙에서 애굽으로 바로 가지 않은 것은
출애굽 성역 출발 이전에 모세 자기 가정의 성결이 먼저 필요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를 살던 곳으로 일단 가게 했습니다.
모세는 그냥 가족에게 작별인사나 하는 것인 줄 알고 돌아갔습니다.
모세가 40년 가족에게라도 지킬 비밀은 잘 지켰으나
출애굽에 앞서 청산할 문제를 알지 못하자
아들의 할례 문제를 하나 대표적으로 들고 하나님께서 경고를 한 것입니다.
호렙에서 바로 애굽으로 가지 않은 것은 이렇게 뒤에 이어지는 기록을 볼 때
모세가 인륜에 매여 가족인사를 하느라고 성역 출발에 주저한 것이 아니라
복음운동의 순서에 필요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셨습니다.
②둘째 질문, 모세 가족의 할례문제
이 문제는 단순히 '할례'라는 한 가지 때문에 죽이고 살리는 문제가 된 것이 아닙니다.
가족 할례도 없이 출애굽 성역에 나선 것이 당시 모세와 이스라엘의 신앙환경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요구할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아들의 할례 문제를 하나 기록한 것은
모세에게는 아들 할례 문제 하나 외에는 100% 깨끗하다는 것이 아니라
모세의 신앙 여정을 살펴볼 때 태어난 아들에게 가장 중요한 '할례'조차 하지 않았으니
모세 자신을 포함하여 그가 책임진 가까운 곳에서부터 조사를 하면
하나님 앞에 부족한 부분이 곳곳에 많이 있었고, 그중에서 제일 대표적인 것 하나를 들어서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최소기록의 원칙이 있으므로
모세 아들의 할례문제만 잠깐 언급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아들의 할례문제까지를 경고하고 죽이려 한 정도였으니
십보라의 다급한 조처로 일단 이 위험을 넘기고 나서
모세와 그 가정에는 어떤 일이 있었겠는지 충분히 살펴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비상적 상황에서 아주 특이하게 어려운 과정을 겪은 모든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해서는 안 될 일도 회개했을 것이고
또 할례처럼 이렇게 초보수준 신앙에서 해결해야 할 것을 잊은 것도 여러 면으로 살펴보았을 것입니다.
만일 모세가 무할례 상태였다면?
망명 중 태어난 아들에게까지 이 정도였는데 하물며 본인 문제를 두고는 얼마나 등골이 오싹해질 것이며 얼마나 다급히 자기를 깨끗하게 하려 했겠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4.하나님께서 우리를 상대하실 때
각자에게 해당되는 평생이라는 세월을 주신고
마치 어린아이가 자라듯이 우리를 길러가십니다.
한꺼번에 다 요구하지 않으시고 자라감에 따라 새로 요구하며 과거에 덮어둔 것을 끄집어 냅니다.
질문에서 모세 가족의 할례 문제는
가장 대표적인 문제 하나를 가지고 오늘 우리에게 간략한 기록으로 많은 것을 알립니다.
기록되지 않았으나 우리가 그 일 직후에 모세와 그 가정에게 아들의 할례가 급해서 십보라가 피남편이라며 얼른 조처한 꼭 그 하나만 있었겠는지? 그 일을 통해 수많은 것을 돌아보며 크게 회개운동이 일어났다고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회개운동에 있어 모세가 회개한 것이 가장 많았을 것이고 그다음이 신앙있는 십보라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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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9 20:59:38
yilee [ E-mail ]
가족의 회개운동 중 제일 대표적인 것 하나
제목분류 : [~성경~주해~출애굽기~]
내용분류 : [-성경-주해-출애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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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출애굽 사명을 맡은 초기
①당시 상황은 매일 현실에 충실할 뿐이었습니다.
모세 나이 40-80세 생활은
미디안에서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며 처가살이를 했습니다.
40년 계속되는 그 황량한 미디안의 목회생활 도중 출애굽 사명을 받게 됩니다.
그 자리에 살라 하면 40년 무미건조해도 항상 기쁨으로 새롭게 살아야 하고
40년 정붙여 살던 곳이라도 다음 단계를 준비하시고 명하시면 즉시 떠나야 합니다.
②모세의 떠나는 모습과 단행
눅9:62에서는 작별도 하지말고 즉시 따르도록 했으니 그렇게 해야 할 때가 있고
왕상19:21 엘리사는 동네 잔치를 열고 따랐으니 그의 현실은 그것이 단행이었습니다.
'즉시 순종'은 동일하지만 주신 현실에서 '즉시'실행하는 그 과정은 조금씩 다릅니다.
눅5:11에서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고 했으나, 성경은 생략이 많기 때문에 그 바다에 함께 있던 이들과 작별조차도 하지 않았는지 여부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동안 가진 모든 것을 다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명령에는 즉시 순종을 하되, 즉시 순종하는 모습은 각자를 인도하는 현실에 따라 다르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모세의 경우
명령을 받은 호렙이 지도상으로만 본다면 40년 살던 미디안과 지역적으로 먼 곳이나
넓게 보면 40년 살던 목자생활의 활동범위 내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호렙에서 바로 애굽으로 가도 되고, 살던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가도 됩니다.
3.질문에 직접 답변드린다면
①첫째 질문, 호렙에서 애굽으로 바로 가지 않은 것은
출애굽 성역 출발 이전에 모세 자기 가정의 성결이 먼저 필요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를 살던 곳으로 일단 가게 했습니다.
모세는 그냥 가족에게 작별인사나 하는 것인 줄 알고 돌아갔습니다.
모세가 40년 가족에게라도 지킬 비밀은 잘 지켰으나
출애굽에 앞서 청산할 문제를 알지 못하자
아들의 할례 문제를 하나 대표적으로 들고 하나님께서 경고를 한 것입니다.
호렙에서 바로 애굽으로 가지 않은 것은 이렇게 뒤에 이어지는 기록을 볼 때
모세가 인륜에 매여 가족인사를 하느라고 성역 출발에 주저한 것이 아니라
복음운동의 순서에 필요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셨습니다.
②둘째 질문, 모세 가족의 할례문제
이 문제는 단순히 '할례'라는 한 가지 때문에 죽이고 살리는 문제가 된 것이 아닙니다.
가족 할례도 없이 출애굽 성역에 나선 것이 당시 모세와 이스라엘의 신앙환경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요구할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아들의 할례 문제를 하나 기록한 것은
모세에게는 아들 할례 문제 하나 외에는 100% 깨끗하다는 것이 아니라
모세의 신앙 여정을 살펴볼 때 태어난 아들에게 가장 중요한 '할례'조차 하지 않았으니
모세 자신을 포함하여 그가 책임진 가까운 곳에서부터 조사를 하면
하나님 앞에 부족한 부분이 곳곳에 많이 있었고, 그중에서 제일 대표적인 것 하나를 들어서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최소기록의 원칙이 있으므로
모세 아들의 할례문제만 잠깐 언급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아들의 할례문제까지를 경고하고 죽이려 한 정도였으니
십보라의 다급한 조처로 일단 이 위험을 넘기고 나서
모세와 그 가정에는 어떤 일이 있었겠는지 충분히 살펴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비상적 상황에서 아주 특이하게 어려운 과정을 겪은 모든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해서는 안 될 일도 회개했을 것이고
또 할례처럼 이렇게 초보수준 신앙에서 해결해야 할 것을 잊은 것도 여러 면으로 살펴보았을 것입니다.
만일 모세가 무할례 상태였다면?
망명 중 태어난 아들에게까지 이 정도였는데 하물며 본인 문제를 두고는 얼마나 등골이 오싹해질 것이며 얼마나 다급히 자기를 깨끗하게 하려 했겠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4.하나님께서 우리를 상대하실 때
각자에게 해당되는 평생이라는 세월을 주신고
마치 어린아이가 자라듯이 우리를 길러가십니다.
한꺼번에 다 요구하지 않으시고 자라감에 따라 새로 요구하며 과거에 덮어둔 것을 끄집어 냅니다.
질문에서 모세 가족의 할례 문제는
가장 대표적인 문제 하나를 가지고 오늘 우리에게 간략한 기록으로 많은 것을 알립니다.
기록되지 않았으나 우리가 그 일 직후에 모세와 그 가정에게 아들의 할례가 급해서 십보라가 피남편이라며 얼른 조처한 꼭 그 하나만 있었겠는지? 그 일을 통해 수많은 것을 돌아보며 크게 회개운동이 일어났다고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회개운동에 있어 모세가 회개한 것이 가장 많았을 것이고 그다음이 신앙있는 십보라였을 것입니다.
1. 성경 최소기록 원칙
요21:25에 따라 성경책 안에 모든 기록을 다하려면 그 용량과 부피는 이 세상을 다 덮어도 부족하다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최소 기록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최소 기록 안에는 모든 내용이 함축적으로 다 담겨 있고 또 최소 기록이기 때문에 자기 주관을 붙이기 쉬운데 성경이 서라는데에서 서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이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아야 하는데, 인간인지라 부족하여 치우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말씀으로 계속해서 살피며 고쳐가야 하고 성경도 평소 많이 읽어 둬야 합니다.
2. 모세의 가족
십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애굽으로 새출발하는 모세에게 할례를 가르친 스승이었습니다. 미디안 제사장의 딸이었고 비록 이방신을 믿었으나 신을 향한 믿음과 자세는 모세보다 나았던 것 같습니다. 부부는 한 몸이고 애굽 400년 기간 이후에는 불신 결혼은 본래 불가한 것인데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로 인하여 모세는 이방 결혼을 했고, 십보라의 입장에서는 모세와 결혼 후에 잘못된 신관을 고쳐가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십보라는 할례사건 이후 애굽에 들어와서는 원래 자기 위치를 찾아 하나님의 종이자 남편인 모세의 지도를 받고 그를 보필하며 나아갔다면, 모세에 머금가는 신앙의 인물로 기억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출애굽 그리고 광야생활의 어느 틈엔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모세는 아내와 아들들을 돌려보냈습니다.(출18:-3)
왜 돌려 보냈을까? 잘 따라오는데 돌아가라 했을까? 아니면 도저히 못 살겠다고 하니까 견딜 수가 없어서 보냈을까? 견딜 수 없다고 하면 그러면 무조건 보내야 하는 것일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돌아가겠다는 십보라의 의지가 있었을 것이고, 돌아가겠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어렵고 힘든 환경이었을 것 같습니다. 광야에서 물이 없다고 고기가 없다고 하나님을 수 없이 원망한 본토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 충분히 그렇습니다. 입맛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고, 친정 미디안보다 모든 것이 열악하고 또 갈수록 어려워지는 광야 생활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신앙노선으로 가는데 다른 문제도 아니라 입맛이 달라서 아내가 힘들다고 하면 얼마든지 남편이 나서서 해결해줄 수 있고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세도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평소 하나님의 선지자 직무를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아내를 돌아볼 새가 없었을 것입니다. 평소 자기 가정을 우선 책임지되, 하나님의 맡기신 일에 지장이 생기면 가정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리고 지도자의 아내가 원망 불평하는 모습이 자꾸 보이면 백성들의 구원에 더욱 큰 악영향이 갑니다. 그래서 아내를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해야할 판단이요. 남편과 아버지로는 피눈물이 나는 결단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3. 모세의 아들들
이삭과 야곱을 보면 성자는 성자에게 나지 않고 성모에게서 납니다. 남자는 외부에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밖에 드러나고, 여자는 가정 내부에서 자녀를 기르며 단속하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자가 더 큰일을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스라엘을 구원한 모세와 그 모세를 길러낸 요게벳의 수고 중 어느 결과가 더 높다고 말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자의 역할, 여자의 중요성. 얼마나 얼마나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는 특권은 여자가 받았습니다. 그 낳은 아이가 자기 밖에 모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기 아이를 향한 뜨거운 모성애라는 본능까지 부여 받았습니다. 이 특권을 가지고 어떤 사람으로 만들 것인가, 전적으로 여자에게 달렸습니다. 여자의 마음 먹기에 따라서 모세를 만들 수도 바로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20살에 결혼하고 30살 전에 4명의 아이를 낳고 거기에 자기의 젊은 인생을 다 투자하되, 육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길러내려는 어머니들의 숨은 수고가 설교록만큼 귀한 공회의 신앙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모세의 아들들은 일단 불리한 조건이고 형편이었습니다. 아버지과 어머니가 대립을 합니다. 게다가 어린 시절 이방신을 믿는 외가에서 자랐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모든 것을 초월하고 모세를 따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어머니를 따라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대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결혼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이렇게 어려운 결혼인 것을 몰랐을까? 일단 결혼하니 무조건 기뻤을까? 아니면 훗날의 이런 문제가 생길 것을 알았을까? 결혼을 안 하면 더 큰 문제가 생겨서 결혼을 하기는 하지만 모세의 마음은 염려하지 않았을까? 갓 태어난 두 아들들을 바라보는 모세의 마음은 어땠을까? 기뻤을까? 행복했을까? 두 아들의 이름을 지은 것을 보면 모세의 마음이 보입니다.
1. 게르솜(내가 이방의 객이 되었다)
2. 엘리에셀(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두 아들을 볼 적마다, 하나님이 그리웠고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사무치게 생각난 듯 합니다.
그리고,
두 아들들에게는 이 이름은 어떤 의미였을까?
게르솜아, 내 아들아, 너는 누가 뭐래도 이곳이 고향이 아니다.
엘리에셀, 내 아들아, 너는 아버지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잊지 말아라. 하나님만 참 신이다.
두 아들이 받은 이 귀한 이름의 뜻을 곱씹으며, 신앙 내면의 전투를 해서 이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요21:25에 따라 성경책 안에 모든 기록을 다하려면 그 용량과 부피는 이 세상을 다 덮어도 부족하다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최소 기록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최소 기록 안에는 모든 내용이 함축적으로 다 담겨 있고 또 최소 기록이기 때문에 자기 주관을 붙이기 쉬운데 성경이 서라는데에서 서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이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아야 하는데, 인간인지라 부족하여 치우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말씀으로 계속해서 살피며 고쳐가야 하고 성경도 평소 많이 읽어 둬야 합니다.
2. 모세의 가족
십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애굽으로 새출발하는 모세에게 할례를 가르친 스승이었습니다. 미디안 제사장의 딸이었고 비록 이방신을 믿었으나 신을 향한 믿음과 자세는 모세보다 나았던 것 같습니다. 부부는 한 몸이고 애굽 400년 기간 이후에는 불신 결혼은 본래 불가한 것인데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로 인하여 모세는 이방 결혼을 했고, 십보라의 입장에서는 모세와 결혼 후에 잘못된 신관을 고쳐가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십보라는 할례사건 이후 애굽에 들어와서는 원래 자기 위치를 찾아 하나님의 종이자 남편인 모세의 지도를 받고 그를 보필하며 나아갔다면, 모세에 머금가는 신앙의 인물로 기억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출애굽 그리고 광야생활의 어느 틈엔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모세는 아내와 아들들을 돌려보냈습니다.(출18:-3)
왜 돌려 보냈을까? 잘 따라오는데 돌아가라 했을까? 아니면 도저히 못 살겠다고 하니까 견딜 수가 없어서 보냈을까? 견딜 수 없다고 하면 그러면 무조건 보내야 하는 것일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돌아가겠다는 십보라의 의지가 있었을 것이고, 돌아가겠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어렵고 힘든 환경이었을 것 같습니다. 광야에서 물이 없다고 고기가 없다고 하나님을 수 없이 원망한 본토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 충분히 그렇습니다. 입맛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고, 친정 미디안보다 모든 것이 열악하고 또 갈수록 어려워지는 광야 생활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신앙노선으로 가는데 다른 문제도 아니라 입맛이 달라서 아내가 힘들다고 하면 얼마든지 남편이 나서서 해결해줄 수 있고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세도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평소 하나님의 선지자 직무를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아내를 돌아볼 새가 없었을 것입니다. 평소 자기 가정을 우선 책임지되, 하나님의 맡기신 일에 지장이 생기면 가정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리고 지도자의 아내가 원망 불평하는 모습이 자꾸 보이면 백성들의 구원에 더욱 큰 악영향이 갑니다. 그래서 아내를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해야할 판단이요. 남편과 아버지로는 피눈물이 나는 결단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3. 모세의 아들들
이삭과 야곱을 보면 성자는 성자에게 나지 않고 성모에게서 납니다. 남자는 외부에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밖에 드러나고, 여자는 가정 내부에서 자녀를 기르며 단속하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자가 더 큰일을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스라엘을 구원한 모세와 그 모세를 길러낸 요게벳의 수고 중 어느 결과가 더 높다고 말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자의 역할, 여자의 중요성. 얼마나 얼마나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는 특권은 여자가 받았습니다. 그 낳은 아이가 자기 밖에 모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기 아이를 향한 뜨거운 모성애라는 본능까지 부여 받았습니다. 이 특권을 가지고 어떤 사람으로 만들 것인가, 전적으로 여자에게 달렸습니다. 여자의 마음 먹기에 따라서 모세를 만들 수도 바로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20살에 결혼하고 30살 전에 4명의 아이를 낳고 거기에 자기의 젊은 인생을 다 투자하되, 육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길러내려는 어머니들의 숨은 수고가 설교록만큼 귀한 공회의 신앙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모세의 아들들은 일단 불리한 조건이고 형편이었습니다. 아버지과 어머니가 대립을 합니다. 게다가 어린 시절 이방신을 믿는 외가에서 자랐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모든 것을 초월하고 모세를 따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어머니를 따라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대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결혼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이렇게 어려운 결혼인 것을 몰랐을까? 일단 결혼하니 무조건 기뻤을까? 아니면 훗날의 이런 문제가 생길 것을 알았을까? 결혼을 안 하면 더 큰 문제가 생겨서 결혼을 하기는 하지만 모세의 마음은 염려하지 않았을까? 갓 태어난 두 아들들을 바라보는 모세의 마음은 어땠을까? 기뻤을까? 행복했을까? 두 아들의 이름을 지은 것을 보면 모세의 마음이 보입니다.
1. 게르솜(내가 이방의 객이 되었다)
2. 엘리에셀(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두 아들을 볼 적마다, 하나님이 그리웠고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사무치게 생각난 듯 합니다.
그리고,
두 아들들에게는 이 이름은 어떤 의미였을까?
게르솜아, 내 아들아, 너는 누가 뭐래도 이곳이 고향이 아니다.
엘리에셀, 내 아들아, 너는 아버지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잊지 말아라. 하나님만 참 신이다.
두 아들이 받은 이 귀한 이름의 뜻을 곱씹으며, 신앙 내면의 전투를 해서 이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1.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향할 때 여호와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여 그 부인 십보라가 아들의 양피를 베는 기록이 있고 이 후로 기록이 없습니다. 할례로 회개를 했지만 이어지는 회개의 시간이 더 필요하여 돌려보냈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이스라엘 전체를 구원하는 큰 사명을 가지고 갈 때에 좀 더 조심, 집중하기 위해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2. 성경은 최소기록입니다. 굳이 기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고, 사무엘의 아들들과 같은 경우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구원하는 큰 사명을 가지고 갈 때에 좀 더 조심, 집중하기 위해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2. 성경은 최소기록입니다. 굳이 기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고, 사무엘의 아들들과 같은 경우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모세의 가족의 행적)
1. 모세가 가족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으나, 돌려보낸 이유
출4:20, 출18:2-3
복음 운동에 가족은 창12:1에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주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12 제자도 그렇게 했습니다. 가족을 데려 가지 못할 이유가 있으면 두고 따라 가야 하고, 가족을 데리고 갈 수 있으면 데리고 갑니다. 주님을 따라 가족을 두고 떠날 때 눅9:62에서는 부친 장례까지 금했으나 왕상19:19의 엘리사는 부모와 작별 인사를 하고 따라 오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외형에 무조건 매이지 않고, 내용으로 결정합니다. 바울은 결혼하지 않고 베드로는 결혼한 상태로 목회를 한 것도 마찬 가지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따라 떠날 때는 가족까지 버려 뒀으나 주님 부활 후에는 부부가 함께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데려 올 때는 반드시 떠나 온 고향에 가서 데려 오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애굽으로 처음 돌아 갈 때는 함께 갈 수 있었고 함께 가야 했으며, 출애굽을 위해 바로와 본격적으로 분쟁이 벌어 지는 상황에서는 가족을 돌려 보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을까? 성경에 기록이 있으면 성경으로만 해석하면 되고, 성경에 해석할 길이 없으면 그 성경으로 교회 역사가 오늘도 펼쳐 지고 있으니 오늘 확실하게 주님께 붙들려 움직인 분을 연구하거나 자신을 살펴 보면 답은 나올 듯합니다.
송용조 서영호 두 분이 처음 미국 유학 갈 때는 혼자 갔고 중간에 부인이 따라 갔습니다. 두 분은 일단 결혼과 안수를 시킨 다음 보냈으나 저는 미혼 반사로 갔다가 와서 결혼하고 3년 뒤에 조사로 출발합니다. 모세의 경우 약간의 힌트는 보입니다. 출4:18에 장인에게도 복음의 비밀을 지켰고 그 과정에 '내 형제의 생존'을 살피러 간다 했습니다. 가족이 함께 가면 더욱 잘 감춰 졌을 듯합니다. 그리고 가자 말자 바로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5:1에서 내 백성을 내 놓으라고 할 때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4:29에서 평안히 40년 만에 자기 민족을 만나고 31절에 다 같이 경배를 했었습니다.
2. 게르솜 엘리에셀
이전에 문답을 통해 설명한 기억이 있습니다. 모세는 당대 최고의 지도자였고 구약 전체를 통해서도 최고였습니다. 다윗은 조금이라도 있는 곳에서 출발했으나 모세는 무에서 유로만 계속했습니다. 모세에게는 육체의 후계로 내려 가지 않고 여호수아로 내려 가며 이후 지도 계통에서 다시는 후손이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위대하기 때문에 인간적 초점을 돌리셨을지요? 공회의 전성수 홍순철 서영준은 정말 정금 같은데 자녀가 전무합니다.
1. 모세가 가족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으나, 돌려보낸 이유
출4:20, 출18:2-3
복음 운동에 가족은 창12:1에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주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12 제자도 그렇게 했습니다. 가족을 데려 가지 못할 이유가 있으면 두고 따라 가야 하고, 가족을 데리고 갈 수 있으면 데리고 갑니다. 주님을 따라 가족을 두고 떠날 때 눅9:62에서는 부친 장례까지 금했으나 왕상19:19의 엘리사는 부모와 작별 인사를 하고 따라 오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외형에 무조건 매이지 않고, 내용으로 결정합니다. 바울은 결혼하지 않고 베드로는 결혼한 상태로 목회를 한 것도 마찬 가지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따라 떠날 때는 가족까지 버려 뒀으나 주님 부활 후에는 부부가 함께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데려 올 때는 반드시 떠나 온 고향에 가서 데려 오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애굽으로 처음 돌아 갈 때는 함께 갈 수 있었고 함께 가야 했으며, 출애굽을 위해 바로와 본격적으로 분쟁이 벌어 지는 상황에서는 가족을 돌려 보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을까? 성경에 기록이 있으면 성경으로만 해석하면 되고, 성경에 해석할 길이 없으면 그 성경으로 교회 역사가 오늘도 펼쳐 지고 있으니 오늘 확실하게 주님께 붙들려 움직인 분을 연구하거나 자신을 살펴 보면 답은 나올 듯합니다.
송용조 서영호 두 분이 처음 미국 유학 갈 때는 혼자 갔고 중간에 부인이 따라 갔습니다. 두 분은 일단 결혼과 안수를 시킨 다음 보냈으나 저는 미혼 반사로 갔다가 와서 결혼하고 3년 뒤에 조사로 출발합니다. 모세의 경우 약간의 힌트는 보입니다. 출4:18에 장인에게도 복음의 비밀을 지켰고 그 과정에 '내 형제의 생존'을 살피러 간다 했습니다. 가족이 함께 가면 더욱 잘 감춰 졌을 듯합니다. 그리고 가자 말자 바로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5:1에서 내 백성을 내 놓으라고 할 때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4:29에서 평안히 40년 만에 자기 민족을 만나고 31절에 다 같이 경배를 했었습니다.
2. 게르솜 엘리에셀
이전에 문답을 통해 설명한 기억이 있습니다. 모세는 당대 최고의 지도자였고 구약 전체를 통해서도 최고였습니다. 다윗은 조금이라도 있는 곳에서 출발했으나 모세는 무에서 유로만 계속했습니다. 모세에게는 육체의 후계로 내려 가지 않고 여호수아로 내려 가며 이후 지도 계통에서 다시는 후손이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위대하기 때문에 인간적 초점을 돌리셨을지요? 공회의 전성수 홍순철 서영준은 정말 정금 같은데 자녀가 전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