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7:40, 다윗의 매끄러운 돌의 해석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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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17:40, 다윗의 매끄러운 돌의 해석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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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원 8 0
신풍교회 설교 (2021년 9월 29일 수밤, 2021년 9월 30일 목새)

사무엘상 17장 40절의 '다윗의 매끄러운 돌'의 해석 근거를 성구로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연구1 2021.10.19 14:11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잠언 27:17
연구2 2021.10.19 14:11  
■ 성구

(마음의 연단)
잠 17: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욥 14:19 물은 돌을 닳게 하고 넘치는 물은 땅의 티끌을 씻어 버리나이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사람의 소망을 끊으시나이다

(다윗의 연단)
시 26: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 동일한 내용

출4:20 모세가 그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골리앗을 이긴 다윗의 매끄러운 돌이 인간의 수단 방법이 아니라 평상시 하나님의 마음 연단과 다윗의 순종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상징이라면, 모세의 지팡이 역시 주변에 흔하디 흔한 그런 나무 지팡일 뿐이지만, 광야 40년 동안에 하나님과 동행하며 양을 치던 순종의 지팡이므로, 400년 애굽을 탈출시키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연구3 2021.10.19 14:11  
창14:14~16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 십 팔인을 거느리고 단가지 쫓아가서 ~ 다 찾아왔더라
위 성구는 어떨가 싶습니다.

시냇물 속에서 닳고 닳아 매끄럽게 된 돌에 대한 의미로 연결지우면 물(세상 또는 진리)에 길리운(연단되고 연습된) 돌(삼백 십 팔인)도 연결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연구4 2021.10.19 14:12  
바로 앞에 있는 17장 34절~39절까지를 성경적 근거로 제시합니다.
특히 39절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치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그 후에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사울의 갑옷이 익숙치 못하니 그것을 벗고 평소 익숙한 것을 찾은 것이 막대기와 매끄러운 돌입니다.

평소에 자기 생활 속에 자기가 맡은 신앙의 사람을 위하여 수고하고, 신앙의 사람을 챙기느라 세월 속에 생겨진, 만들어지고 준비가 되어진,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익숙해질 수 있는 그것이 다윗에게는 막대기와 매끄러운 돌입니다.
연구5 2021.10.19 14:12  
■ 모세를 살펴보았습니다.

▣ 초년 40년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출2:9-10)

요게벳의 아들과 바로의 딸의 아들로 살며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교훈을 모두 접하며 갈등하고 바로 궁의 풍요 속에서 진리를 찾으며 산 모세의 초년 40년 세월이 모세를 매끄럽게 만들었다 생각됩니다.


▣ 중년 40년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가로되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출2:21-22)

미디안 광야에서 객이 되어 미디안 제사장의 사위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양을 치며 빈곤 속에서 외롭게 산 모세의 중년 40년 세월도 초년과는 다른 환경에서 모세의 모난 부분이 매끄럽게 되었다 생각됩니다.
교인 2021.10.19 14:12  
이사야57:1-6
의인이 죽을찌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찌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그는 평안에 들어갔나니 무릇 정로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
무녀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씨 너희는 가까이 오라
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궤휼의 종류가 아니냐
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 틈에서 자녀를 죽이는도다
골짜기 가운데 매끄러운 돌 중에 너희 소득이 있으니 그것이 곧 너희가 제비 뽑아 얻은 것이라 너희가 전제와 예물을 그것들에게 드리니 내가 어찌 이를 용인하겠느냐
연구6 2021.10.19 14:13  
근거 성구: 약1:2-4
설명: 모난 돌이 수많은 세월 동안 수많은 물에 부딪혀서 깎아 지고 깎아 지면 원만한 매끄러운 돌이 되는 것처럼 죄악밖에 없는 신자는 수많은 시험을 통해 죄는 깎여 지고 의는 구비해져 점점 원만해 지고 온전해 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담당 2021.10.20 18:18  
‘다윗의 매끄러운 돌’에 대한 해석과 개혁주의 신학의 알레고리 해석에 대한 비판 (초안)

* 일반 신학의 ‘알레고리’라는 성경해석에 대한 비판
알레고리는 성경을 비유로 보고 성경을 떠나 개인이 알아서 풀어 가는 아전인수.
이단들이 알레고리 해석으로 성경을 왜곡하게 되면서 성경과 멀어 지고 달라 짐.
공회의 성경 해석은 그런 역사적 알레고리 해석이나 비판이나 이단을 아지 못함.
공회는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며 생활 속에 실행을 통해 하나씩 깨달아 갈 뿐.

성경해석에 역사적으로 문제가 많고 논쟁 하는 것은 상대를 공격하는 자세 때문.
성경의 해석과 교리 요약은 교회의 기본인데 자기와 의견이 다르면 무조건 비판.
상대를 공격할 때 상대를 인간 철학이라거나 알레고리라 비판하는 배경이 문제.
자기도 알레고리로 해석하고 자기도 철학을 사용하면서 상대만을 비판하면 문제.


* 공회의 성경 해석에 대한 입장
공회는 역사적 신학적 그런 논란을 떠나 한 걸음씩 성경으로만 살펴 봤고 발전.
말씀으로 자기를 먼저 살펴 보고 배우고 고치다 보면 말씀 안에서 저절로 해결.
성경을 역사로만 상대하면 세대주의, 성경을 역사 없이 사용하면 우화나 이론서.
성경은 과거 역사이면서 오늘의 내가 살아 가는 모든 현실에 해당 된 진리 말씀.
 
성경은 성경으로 계속 살피고 해석하다 보면 틀리게 나갈 수 없게 저절로 해결.
성경을 해석할 때 왜곡도 문제나 성경이 더 나아갈 때 중간에 멈추는 것도 문제.
성경을 해석하며 성경 밖으로 끌고 나가는 것은 신학이든 알레고리든 모두 문제.



* 삼상17:40의 ‘다윗의 매끄러운 돌’을 중심으로 살펴 보면
계약 신학 – 믿고 순종할 때 어떤 원수도 이기 듯 오늘도 믿고 순종하면 승리한다.
세대 신학 – 구약은 돌을 던져 구원 받게 했고 오늘 신약은 다른 방법으로 구원함.
공회 입장 – 다윗의 돌은 구약 역사. 이 기록으로 우리는 우리 현실에서 순종할 것.

1. 성경의 반석과 돌
*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
광야 40년의 반석은 그리스도, 고전10:4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시118:22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마16:18
예수님이 교회의 머릿돌, 시118:22 행4:11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마21:42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7:24

* 반석과 돌을 사용한 방향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2:20~22
예수님이 반석, 모퉁이 돌이면, 우리는 그 위에 지어져 가는 돌
하나님이..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예수님이 포도나무 우리는 가지, 예수님이 반석 우리는 돌

* 구약의 골리앗, 오늘 내 현실에 죄를 짓게 하는 원수를 대적할 ‘돌’은
구원의 주님, 주님의 구원하신 은혜가 오늘 현실에 신앙 전투와 신앙 건설에 반석.
변치 않는 이 반석을 머릿돌 삼고 이 위에 나의 믿음 나의 순종을 하나씩 쌓을 것.
우리가 산 돌이 되어 머릿돌 위에 자기의 매일의 순종을 이어 가고 쌓아 가는 것.
이런 생활을 못하게 막는 안팎의 시험에도 순종을 계속하는 것이 원수와 돌의 충돌.
이 땅 위에 죄악이 신앙을 막을 때 세상이 무조건 이길 듯하나 주님이 원수를 꺾음.
성경으로 자기를 고치고 기르는 사람, 그 순종 그 인내가 다윗이 가진 유일의 무기.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그 날의 무기는 돌 하나. 자기에게 주신 신앙의 인격 곧 믿음.

훗날 다윗은 평생 검과 투구와 방패와 갑옷을 갖춘 전쟁의 대왕으로 살아 가지만
엡6:13에서 다윗의 갑옷 방패 투구 검은 하나님 믿음 구원 말씀을 가르친다고 하심
신25:4에 소 입에 망을 금지한 것은 고전9:9에서 소가 아니라 우리를 염려했다 하심
이 것을 알레고리라면서 구약의 소와 입에 망을 해석하게 못한다면 성경 해석 금지임.
마13:34에서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낸다 했으니,
알레고리라는 표현으로 성경의 표현에 다른 해석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천주교 통제.
신학의 알레고리 비판은 벧후3:16에서 인간이 성경을 떠나 억지로 푸는 것을 금지함.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게 해 놓았는데 이를 무조건 금지함은 알레고리 이단처럼 위험


2. 매끄러운 돌
* 성경의 돌 다듬기
성경의 반석과 돌은 주님과 주님을 닮고 주님을 따라서 자라 갈 우리를 가르쳤다면.
돌을 다듬는 과정은 구약의 성전과 신약의 여러 말씀으로 너무 명확한 것이니..
왕상5:18, 성전의 모든 돌을 다듬어 사용했는데 고전3:17에 우리가 성전의 돌이면?
중생 후의 우리 인격 우리 생활 우리 마음을 안 믿을 때처럼 그냥 둬도 성전일까?
 
* 인격의 다듬기
약1:4, 우리의 믿음조차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시련을 시킨다.
벧전4:12, 믿는 우리조차 우리를 시련하려고 불시험을 주시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벧전1:7, 여러 시험으로 우리의 믿음을 시련할 때 비로소 금보다 귀한 믿음이 된다.
히12:8, 징계까지 동원해서 우리를 만든다. 그렇지 않다면 참 아들이 아닌 가라지다.

구약의 노아 아브라함 요셉 다윗의 모든 인물사 기록은 한 사람을 다듬어 가는 진리
신약의 비유와 간단한 결론은 모두 우리의 신앙 인격을 세밀하게 다듬어 주는 말씀
엡4:22,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버리라, 신앙 인격을 다듬는 말씀
갈5:24,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신앙 인격을 다듬는 말씀
성경 전체는 불신자가 아니라 믿는 우리에게 우리의 신앙을 다듬어 가라고 주신 것.

* 시냇가의 매끄러운 돌
삼상17:40, 다윗이 맞닥뜨린 현실은 하나님이 조성해 주셨고 그 곳은 시냇가였다.
다윗은 자기 양을 위해 늘 막대기와 물매는 가지고 다녔다. 돌은 주변에서 구했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가감 할 수 없게 기록했다. 왜 시냇가 매끄러운 돌을 적었을까?
성경을 떠난 자기 생각도 접어 두고 확인 못할 성경 고고학으로 가져 가도 위험.
성경 전체로 자꾸 살펴 본다. 돌은 알 수 있다. 매끄러운 돌은 다듬어 진 돌이다.
사람이 기도하고 노력하므로 스스로 다듬을 수 있다. 환경이 들이 치면 다듬어진다.
환경만이나 노력만으로 되지 않고 주신 환경 속에 자기 반응에 따라 다듬어 진다.
둘째 탕자가 먼 나라에 가서 환경이 어려워 질 때 자기 깨달음으로 자기를 만든다.
외부 현실은 나를 위해 하나님이 만드신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 마음을 달래신다.
현실과 신앙 양심 속에 역사하는 성령의 감화 역사를 통해 우리는 다듬어 진다.

시냇가 돌은 물 때문에 매끄럽게 다듬어 진다. 특수한 한 사람만 아는 것이 아니다.
환경이 몰아 칠 때 말씀과 성령의 감화로 살아 보려고 하면 신앙이 다듬어 진다.
다윗이 평소 맡은 양을 위해 말씀에 순종한 세월이 다윗의 신앙을 다듬어 놓았다. 


요일5:4 세상을 이긴 이김은 우리의 믿음이라 했다. 골리앗을 이긴 이김과 다른가?
평소 다윗이 제 멋대로 살다가 골리앗을 상대로 이 날 패기 하나로 던져서 이겼을까?
평소 말씀과 양심으로 소리 없이 자기를 꺾고 만들고 길러 가는 것이 참 믿음이다.
그리고 인간으로 버틸 수 없고 이길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주님이 주신다면?
평소의 순종 그대로 걸어 가고 평소 인도하신 주님은 그 순종으로 환란 때 역사한다.
계3:10 평소 인내의 말씀을 지켰고 시험의 때에는 주님이 이기게 해 주신다고 했다.

* 간단한 말씀
영어가 제대로 되지 않는 한국 사람이 원어로 성경을 해석하겠다 함도 심히 곤란하고
동양어를 그렇게 어려워 하는 미국 신학자가 히브리어로 직접 해석한다 함도 그렇다.
영어와 원어가 자유롭다 해도 유대인이 히브리어 원어를 몰라 주님을 배척했을까?
예수님 초림 때 유대인은 일단 구약 성경의 원어 히브리어가 모국어라도 실패했지만
오늘은 수천 년 전의 사어가 된 언어를 신학과 언어학으로 배워 해석한다는 것은 문제.
성경과 신앙의 기본 원리는 특수한 인간에게 성경 해석을 유리하게 하지 않았다 한다.
천주교 교황제도는 성경을 접근하고 해석함에는 특수한 부류가 있다고 한다. 이단이다.

가장 간단하고 기본적인 원리, 성경은 믿는 우리 모두에게 꼭 같이 주신 계시 은혜다.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그 말씀으로 살려고 하다 보면 필요한 면을 하나씩 알린다.
삼상17장의 그 때 골리앗은 일제 때 총독부였고 6.25 때는 점령한 인민군들이었다.
신학자치고 승리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평소 말씀으로 자기를 다음은 사람이 이겼다.
이 것이 열처녀 비유의 기름 준비와도 같다. 한 달란트에 충성하면 부족함이 없다.
신학 없이, 그리고 어느 한 사람만의 경험이나 무슨 꿈을 이야기 하지 않고 해석했다.
이 정도는 모두가 다 깨달을 수 있어 보인다. 혹 늦었다 해도 한 번 들으면 알 듯하다.

(알레고리 비판론에 대한 추가)
구약의 예언서, 신약의 계시록은 '알레고리'라면서 비판하는 이상 손을 대면 안 될 성경이 되지 않을까? 세상이 필요 없다는 염세주의가 이단이라고 해서, 세상을 사랑해야 한다는 속세주의가 정통 되는 것은 아니다. 염세주의도 속세주의도 모두 이단이다. 신앙은 용세주의다. 좌익이 교회 탄압을 한다고 한 때는 우익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마치 신앙인 듯한 시절이 있었다. 지금 세상은 다시 같은 현상이 벌어 지면서 최근의 신좌파들 때문에 신보수가 신앙인 줄 안다. 말씀에서 벗어 나면 좌향도 우향도 꼭 같이 틀렸다. 잘못 된 해석은 알레고리식이든 역사신학적이든 모두 틀렸다. 바른 해석은 알레고리식으로 보이든 역사신학식으로 보이든 말씀에 바르면 성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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