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목 목사님
| 분류 |
|---|
yilee
0
2010.04.13 00:00
1954년생으로 기억 되며, 경남 거창군 마리면 출신으로 어릴 때 부산 대신동에서 살았고 이 때까지는 불신자였는데 모친이 미신이 아주 심했고 가정이 어려워 경남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통학교를 진학하지 못했고 건강조차 좋지 않아서 방황하던 시기에 주변 서부교회로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장 목사님이 서부교회를 출석하던 70년대 중반에는 서부교회가 가파르게 부흥하던 때였는데 백 목사님 설교에 받은 은혜도 컸고 그 구역장이신 추순덕 집사님의 지도도 탁월했으며 교회 내에서는 그 분이 끝없이 충성할 수 있는 분위기였고 그리고 그 분은 누구보다 충성을 했기 때문에 매주 주일 오전 주일학교 예배에 출석하는 학생을 340명까지 만드는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 학반을 기록하게 됩니다.
당시 반사 선생님 1 명이 100 명 학생을 출석 시키는 경우는 많았고 200 명까지 출석 시키는 경우도 있었으나 장 목사님의 기록은 전무후무한 기록이 됩니다. 숫자만 많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말씀에 대한 집착 파악력 필기 그리고 이 노선에 대한 충성과 애착 등 모든 면에서 누구와도 견줄 수 없다 할 만큼 거의 모든 면으로 참 흠 잡을 데가 없다 할 만한 분이었습니다.
1982년 경,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전성기 시절에 전임 주일학교 책임자가 목회를 나가게 되자 후임이 되었고 이후 약 10 년 동안 주일학교를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매사 백 목사님께 지도를 받았고 그리고 현장은 그 분의 발로 뛰었으며 6백 명 전체 반사와 4백 명 보조 반사들을 혼자서 이끌고 서부교회 10 년의 주일학교를 안팎으로 실질적으로 전부 다 수행했다고 평가를 받을 정도입니다.
전국 교회와 교단과 외부 각종 초대형 수련회에 한국교계 최고 거물들과 나란히 강사로 활동을 했는데, 바로 이 시기에 그 분들을 접촉하면서 공회 노선 외부의 부흥이나 장점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데 이 경험이 백 목사님 사후 이 노선을 떠나게 되는 배경이 됩니다.
사모님은 음성희 선생님이며 서부교회를 어릴 때부터 다니셨고 반사로 앞장 섰고 그 내면 신앙도 강했으니 주일학교 반사로서 신앙과 활동에서 부부는 서로 한 치도 뒤 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장 목사님이 노동과 국수 장수와 배달 장수를 할 때 아이를 낳고 살림을 사는 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모든 일을 다 헤쳐 나간 분입니다. 모르는 분들은 장 목사님에게 딸려 있고 보조하는 사모님인가 할지 모르나 아는 분들은 장 목사님보다 더 나은 분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백 목사님 휘하의 인재 중의 인재 부부였습니다. 백 목사님 사후에도 답변자와 이 노선을 끝까지 지키기로 굳게 다짐을 했던 몇 분 중에 한 분이셨는데, 돌이켜 보면 백 목사님 사후에 공회가 잃은 것 중에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는 수 많은 인재가 다 흩어 진 점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수 많은 분야와 교단 안에서 아마 크게 활약을 하고 계신다고 위로 받고 있습니다.
제대로 설명하려는 분량이 너무 많아서 대충 몇 가지만 소개 드렸습니다.
>> 공회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 장영목 목사님과 사모님의 대해서 알고싶습니다.
장 목사님이 서부교회를 출석하던 70년대 중반에는 서부교회가 가파르게 부흥하던 때였는데 백 목사님 설교에 받은 은혜도 컸고 그 구역장이신 추순덕 집사님의 지도도 탁월했으며 교회 내에서는 그 분이 끝없이 충성할 수 있는 분위기였고 그리고 그 분은 누구보다 충성을 했기 때문에 매주 주일 오전 주일학교 예배에 출석하는 학생을 340명까지 만드는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 학반을 기록하게 됩니다.
당시 반사 선생님 1 명이 100 명 학생을 출석 시키는 경우는 많았고 200 명까지 출석 시키는 경우도 있었으나 장 목사님의 기록은 전무후무한 기록이 됩니다. 숫자만 많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말씀에 대한 집착 파악력 필기 그리고 이 노선에 대한 충성과 애착 등 모든 면에서 누구와도 견줄 수 없다 할 만큼 거의 모든 면으로 참 흠 잡을 데가 없다 할 만한 분이었습니다.
1982년 경,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전성기 시절에 전임 주일학교 책임자가 목회를 나가게 되자 후임이 되었고 이후 약 10 년 동안 주일학교를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매사 백 목사님께 지도를 받았고 그리고 현장은 그 분의 발로 뛰었으며 6백 명 전체 반사와 4백 명 보조 반사들을 혼자서 이끌고 서부교회 10 년의 주일학교를 안팎으로 실질적으로 전부 다 수행했다고 평가를 받을 정도입니다.
전국 교회와 교단과 외부 각종 초대형 수련회에 한국교계 최고 거물들과 나란히 강사로 활동을 했는데, 바로 이 시기에 그 분들을 접촉하면서 공회 노선 외부의 부흥이나 장점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데 이 경험이 백 목사님 사후 이 노선을 떠나게 되는 배경이 됩니다.
사모님은 음성희 선생님이며 서부교회를 어릴 때부터 다니셨고 반사로 앞장 섰고 그 내면 신앙도 강했으니 주일학교 반사로서 신앙과 활동에서 부부는 서로 한 치도 뒤 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장 목사님이 노동과 국수 장수와 배달 장수를 할 때 아이를 낳고 살림을 사는 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모든 일을 다 헤쳐 나간 분입니다. 모르는 분들은 장 목사님에게 딸려 있고 보조하는 사모님인가 할지 모르나 아는 분들은 장 목사님보다 더 나은 분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백 목사님 휘하의 인재 중의 인재 부부였습니다. 백 목사님 사후에도 답변자와 이 노선을 끝까지 지키기로 굳게 다짐을 했던 몇 분 중에 한 분이셨는데, 돌이켜 보면 백 목사님 사후에 공회가 잃은 것 중에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는 수 많은 인재가 다 흩어 진 점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수 많은 분야와 교단 안에서 아마 크게 활약을 하고 계신다고 위로 받고 있습니다.
제대로 설명하려는 분량이 너무 많아서 대충 몇 가지만 소개 드렸습니다.
>> 공회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 장영목 목사님과 사모님의 대해서 알고싶습니다.
질문
그리고 장영목 목사님이 이끌어 가시는 모리아선교회를 목사님은 어떻게
평가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신학교를 짓는다는 소식을 보았는데 혹시 이영인 목사님도 도우실 생각이 앖으신지
알고싶습니다.
---------------------------
그리고 장영목 목사님이 이끌어 가시는 모리아선교회를 목사님은 어떻게
평가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신학교를 짓는다는 소식을 보았는데 혹시 이영인 목사님도 도우실 생각이 앖으신지
알고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