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선후배가 하나 되는지, 그 기준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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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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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3 00:00
1. 좋은 점
시부모와 며느리는 한 가족이 되었는데도 수천 년을 죽기살기로 싸운 것이 우리 민족성입니다. 그런데 믿은 이후에도 우리 속에 있는 옛사람을 다 없애지 못하여 평생을 두고 고쳐 가는 것인데, 한국 교회에서 전임자와 후임자가 서로 대화하고 대우하고 조심하며 잘 협조하는 교회가 있다면 훌륭한 모범사례입니다.
선배의 경험과 장점이 후배에게 시행착오를 줄이고 단점을 보완해 줄 것입니다. 후배의 열심과 새로운 시도들이 선배가 이룬 그 교회의 약점을 보완할 것입니다. 후배는 선배 때문에, 선배는 후배 때문에 자신들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되는 발전에 있어 그 어느 인간들의 어떤 도움보다 클 것입니다.
2. 걱정 되는 점
- 무엇으로 은퇴 목회자를 모시는가?
선배나 후배는 둘 다 목회자입니다. 목회자들이 교인들의 유익과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목회자들의 유익을 위해 단결하고 싸고 도는 방향으로 가지 말아야 하는데 이 것을 피하기가 그렇게 어렵습니다. 선배 목회자를 깎듯하게 예우하고, 훗날 자기가 은퇴하면 후배에게 그런 대우를 받는 전통을 만들어 놓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은퇴한 선배를 대우하려면 교인들에게 현재 담임이 받아 가진 돈과 권한 범위 안에서 그 것을 쪼개어 선배에게 대우하면 탈이 없을 것입니다. 현재 담임은 자기가 받을 것을 다 받고 누리면서 교인들에게 현재 담임 외에 은퇴한 분까지 더 섬기라고 짐을 얹는다면 아주 문제가 많아 질 것입니다.
- 선후배가 하나 되는 기준은 무엇인가?
선배는 보수적이고 후임은 선배에 비해 진보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모든 교회의 세대 교체이며 시대 흐름입니다. 후배가 목회자로서 넘어 가지 말아야 할 자유주의 신학을 손 대고 교회를 속화 시키는 제도를 도입하는데도 선배가 후배 담임 목회자를 잘 모시라고 교인들에게 다독거린다면 이는 선배의 대접에 팔려 교회의 신앙을 적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선후배가 하나 된 그 모습이 맹수끼리의 단합인지 속화를 위한 자유신학의 야합인지 아니면 교회를 위해서는 마땅히 죽이고 희생할 자기 사욕을 희생하여 하나 된 것인지, 그 기준이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 봐야 판단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 신학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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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교회의 경우를 언론에서 읽었습니다. 좋아 보입니다. 혹시 조심해야 할 면은 없을까요? 한 교회에 목회자의 교체라는 것은 항상 있는 법인데 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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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로·담임목사 ‘행복한 동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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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성전 입당예배에서 악수하는 원로목사(오른쪽)와 담임 목사. 두 사람의 신뢰관계는 교회의 안정과 부흥의 한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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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1층에는 원로목사실이 있다. 원로 목사를 위한 공간이며 원로 장로들과 원로목사가 주일이면 만나 교회 성장의 옛 추억을 나누는 곳이다. 새예배당을 지으면서 원로목사실을 짓고 원로에게 하남교회로 계속 출석해 줄 것을 요청한 사람은 담임 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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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남교회는 원로와 담임 목회자간에 신뢰와 존경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원로목사는 얼마 전까지 교회가 은퇴 기념으로 지어준 교회에 출석했다. 그러나 목사는 원로에게 교회로 다시 돌아와 출석해 자기의 힘이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특이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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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모셔온 만큼 목사는 원로에게 깍듯하다. 노회 행사 등에는 담임 목사가 운전사의 역할을 자임해 원로를 모신다. 노회가 정한 대로 원로에 대한 예우를 깍듯이 하고 있다. 목회적 판단을 할 경우가 생기면 원로의 자문을 겸손히 구한다.
:
: 원로 역시 담임목사를 예의를 갖춰 대하고 있다. 목사는 “일체 간섭을 하지 않는다”라고 담임목사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원로가 된 순간 나는 평신도로 돌아가는 심정으로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기념교회에 나갔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
: 원로는 주일 2부 예배에 참석한다. 그러면 담임은 원로에게 축도를 부탁한다. 그리고 원로는 원로목사실로 내려가 자신을 찾아온 교회 성장의 옛 주역들을 만난다. 때로 젊은 담임목사의 목회방향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이라도 있으면 원로는 그들을 다독인다. 이러한 원로와 담임 간의 화평한 관계는 성도들에게도 평안을 줘 교회 부흥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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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는 “원로와 담임은 서로 믿어주고, 서로 다름을 인정해 줘야 한다”면서 “두 목회자의 관계가 사랑의 본이 되지 않으면 성도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라고 말했다. 목사는 담임목회자와 성도들에게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라. 세속화의 거센 파도 속에서 복음의 진리를 잘 지키고 선조들의 소중한 신앙을 잘 전수하라”고 당부했다.
시부모와 며느리는 한 가족이 되었는데도 수천 년을 죽기살기로 싸운 것이 우리 민족성입니다. 그런데 믿은 이후에도 우리 속에 있는 옛사람을 다 없애지 못하여 평생을 두고 고쳐 가는 것인데, 한국 교회에서 전임자와 후임자가 서로 대화하고 대우하고 조심하며 잘 협조하는 교회가 있다면 훌륭한 모범사례입니다.
선배의 경험과 장점이 후배에게 시행착오를 줄이고 단점을 보완해 줄 것입니다. 후배의 열심과 새로운 시도들이 선배가 이룬 그 교회의 약점을 보완할 것입니다. 후배는 선배 때문에, 선배는 후배 때문에 자신들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되는 발전에 있어 그 어느 인간들의 어떤 도움보다 클 것입니다.
2. 걱정 되는 점
- 무엇으로 은퇴 목회자를 모시는가?
선배나 후배는 둘 다 목회자입니다. 목회자들이 교인들의 유익과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목회자들의 유익을 위해 단결하고 싸고 도는 방향으로 가지 말아야 하는데 이 것을 피하기가 그렇게 어렵습니다. 선배 목회자를 깎듯하게 예우하고, 훗날 자기가 은퇴하면 후배에게 그런 대우를 받는 전통을 만들어 놓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은퇴한 선배를 대우하려면 교인들에게 현재 담임이 받아 가진 돈과 권한 범위 안에서 그 것을 쪼개어 선배에게 대우하면 탈이 없을 것입니다. 현재 담임은 자기가 받을 것을 다 받고 누리면서 교인들에게 현재 담임 외에 은퇴한 분까지 더 섬기라고 짐을 얹는다면 아주 문제가 많아 질 것입니다.
- 선후배가 하나 되는 기준은 무엇인가?
선배는 보수적이고 후임은 선배에 비해 진보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모든 교회의 세대 교체이며 시대 흐름입니다. 후배가 목회자로서 넘어 가지 말아야 할 자유주의 신학을 손 대고 교회를 속화 시키는 제도를 도입하는데도 선배가 후배 담임 목회자를 잘 모시라고 교인들에게 다독거린다면 이는 선배의 대접에 팔려 교회의 신앙을 적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선후배가 하나 된 그 모습이 맹수끼리의 단합인지 속화를 위한 자유신학의 야합인지 아니면 교회를 위해서는 마땅히 죽이고 희생할 자기 사욕을 희생하여 하나 된 것인지, 그 기준이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 봐야 판단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 신학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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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교회의 경우를 언론에서 읽었습니다. 좋아 보입니다. 혹시 조심해야 할 면은 없을까요? 한 교회에 목회자의 교체라는 것은 항상 있는 법인데 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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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로·담임목사 ‘행복한 동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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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성전 입당예배에서 악수하는 원로목사(오른쪽)와 담임 목사. 두 사람의 신뢰관계는 교회의 안정과 부흥의 한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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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1층에는 원로목사실이 있다. 원로 목사를 위한 공간이며 원로 장로들과 원로목사가 주일이면 만나 교회 성장의 옛 추억을 나누는 곳이다. 새예배당을 지으면서 원로목사실을 짓고 원로에게 하남교회로 계속 출석해 줄 것을 요청한 사람은 담임 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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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남교회는 원로와 담임 목회자간에 신뢰와 존경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원로목사는 얼마 전까지 교회가 은퇴 기념으로 지어준 교회에 출석했다. 그러나 목사는 원로에게 교회로 다시 돌아와 출석해 자기의 힘이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특이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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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모셔온 만큼 목사는 원로에게 깍듯하다. 노회 행사 등에는 담임 목사가 운전사의 역할을 자임해 원로를 모신다. 노회가 정한 대로 원로에 대한 예우를 깍듯이 하고 있다. 목회적 판단을 할 경우가 생기면 원로의 자문을 겸손히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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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로 역시 담임목사를 예의를 갖춰 대하고 있다. 목사는 “일체 간섭을 하지 않는다”라고 담임목사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원로가 된 순간 나는 평신도로 돌아가는 심정으로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기념교회에 나갔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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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로는 주일 2부 예배에 참석한다. 그러면 담임은 원로에게 축도를 부탁한다. 그리고 원로는 원로목사실로 내려가 자신을 찾아온 교회 성장의 옛 주역들을 만난다. 때로 젊은 담임목사의 목회방향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이라도 있으면 원로는 그들을 다독인다. 이러한 원로와 담임 간의 화평한 관계는 성도들에게도 평안을 줘 교회 부흥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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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는 “원로와 담임은 서로 믿어주고, 서로 다름을 인정해 줘야 한다”면서 “두 목회자의 관계가 사랑의 본이 되지 않으면 성도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라고 말했다. 목사는 담임목회자와 성도들에게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라. 세속화의 거센 파도 속에서 복음의 진리를 잘 지키고 선조들의 소중한 신앙을 잘 전수하라”고 당부했다.
원로와 담임 목사님의 관계에 대하여
어느 교회의 경우를 언론에서 읽었습니다. 좋아 보입니다. 혹시 조심해야 할 면은 없을까요? 한 교회에 목회자의 교체라는 것은 항상 있는 법인데 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원로·담임목사 ‘행복한 동역’
▲ 새성전 입당예배에서 악수하는 원로목사(오른쪽)와 담임 목사. 두 사람의 신뢰관계는 교회의 안정과 부흥의 한 요인이다.
교회 1층에는 원로목사실이 있다. 원로 목사를 위한 공간이며 원로 장로들과 원로목사가 주일이면 만나 교회 성장의 옛 추억을 나누는 곳이다. 새예배당을 지으면서 원로목사실을 짓고 원로에게 하남교회로 계속 출석해 줄 것을 요청한 사람은 담임 목사다.
하남교회는 원로와 담임 목회자간에 신뢰와 존경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원로목사는 얼마 전까지 교회가 은퇴 기념으로 지어준 교회에 출석했다. 그러나 목사는 원로에게 교회로 다시 돌아와 출석해 자기의 힘이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특이한 사건이었다.
그렇게 모셔온 만큼 목사는 원로에게 깍듯하다. 노회 행사 등에는 담임 목사가 운전사의 역할을 자임해 원로를 모신다. 노회가 정한 대로 원로에 대한 예우를 깍듯이 하고 있다. 목회적 판단을 할 경우가 생기면 원로의 자문을 겸손히 구한다.
원로 역시 담임목사를 예의를 갖춰 대하고 있다. 목사는 “일체 간섭을 하지 않는다”라고 담임목사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원로가 된 순간 나는 평신도로 돌아가는 심정으로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기념교회에 나갔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원로는 주일 2부 예배에 참석한다. 그러면 담임은 원로에게 축도를 부탁한다. 그리고 원로는 원로목사실로 내려가 자신을 찾아온 교회 성장의 옛 주역들을 만난다. 때로 젊은 담임목사의 목회방향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이라도 있으면 원로는 그들을 다독인다. 이러한 원로와 담임 간의 화평한 관계는 성도들에게도 평안을 줘 교회 부흥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목사는 “원로와 담임은 서로 믿어주고, 서로 다름을 인정해 줘야 한다”면서 “두 목회자의 관계가 사랑의 본이 되지 않으면 성도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라고 말했다. 목사는 담임목회자와 성도들에게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라. 세속화의 거센 파도 속에서 복음의 진리를 잘 지키고 선조들의 소중한 신앙을 잘 전수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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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회의 경우를 언론에서 읽었습니다. 좋아 보입니다. 혹시 조심해야 할 면은 없을까요? 한 교회에 목회자의 교체라는 것은 항상 있는 법인데 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원로·담임목사 ‘행복한 동역’
▲ 새성전 입당예배에서 악수하는 원로목사(오른쪽)와 담임 목사. 두 사람의 신뢰관계는 교회의 안정과 부흥의 한 요인이다.
교회 1층에는 원로목사실이 있다. 원로 목사를 위한 공간이며 원로 장로들과 원로목사가 주일이면 만나 교회 성장의 옛 추억을 나누는 곳이다. 새예배당을 지으면서 원로목사실을 짓고 원로에게 하남교회로 계속 출석해 줄 것을 요청한 사람은 담임 목사다.
하남교회는 원로와 담임 목회자간에 신뢰와 존경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원로목사는 얼마 전까지 교회가 은퇴 기념으로 지어준 교회에 출석했다. 그러나 목사는 원로에게 교회로 다시 돌아와 출석해 자기의 힘이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특이한 사건이었다.
그렇게 모셔온 만큼 목사는 원로에게 깍듯하다. 노회 행사 등에는 담임 목사가 운전사의 역할을 자임해 원로를 모신다. 노회가 정한 대로 원로에 대한 예우를 깍듯이 하고 있다. 목회적 판단을 할 경우가 생기면 원로의 자문을 겸손히 구한다.
원로 역시 담임목사를 예의를 갖춰 대하고 있다. 목사는 “일체 간섭을 하지 않는다”라고 담임목사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원로가 된 순간 나는 평신도로 돌아가는 심정으로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기념교회에 나갔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원로는 주일 2부 예배에 참석한다. 그러면 담임은 원로에게 축도를 부탁한다. 그리고 원로는 원로목사실로 내려가 자신을 찾아온 교회 성장의 옛 주역들을 만난다. 때로 젊은 담임목사의 목회방향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이라도 있으면 원로는 그들을 다독인다. 이러한 원로와 담임 간의 화평한 관계는 성도들에게도 평안을 줘 교회 부흥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목사는 “원로와 담임은 서로 믿어주고, 서로 다름을 인정해 줘야 한다”면서 “두 목회자의 관계가 사랑의 본이 되지 않으면 성도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라고 말했다. 목사는 담임목회자와 성도들에게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라. 세속화의 거센 파도 속에서 복음의 진리를 잘 지키고 선조들의 소중한 신앙을 잘 전수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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