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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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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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31 00:00
: 고김석준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강해집에서 직접발취 96페이지
: 고 김석준목사님은 신학교 졸업반에 있을 때 이 교훈을 처음 받았습니다.
: 그는 이전에 설교나 목회를 부흥식으로 했습니다.
: 그런 목회를 하기도 하고 부흥회도 많이 인도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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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목사님의 형님이 김영광 목사님이셨고 그 분께 이런 내용을 직접 들었습니다.
: 고김석준 목사님은 백영희 목사님, 김현봉 목사님, 이병규 목사님의 제자입니다.
: 이분들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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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님이 가장 많이 배운 분이 백 목사님이고, 백 목사님을 만나기 전에 잠깐 김현봉 목사님께 배웠던 시기도 있고, 이병규 목사님께는 서울 지방에 있으면서 많이 배울 기회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백영희목사님에게 안수받은 1기생들은 다음과 같다.
: 김현봉, 이병규, 한순직, 김응익, 이용규, 5명 목사님을 서부교회로 청빙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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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목사님이 고신에서 1959년 제명 될 때 강도사였습니다. 안수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고신을 나왔기 때문에 당시 안수를 받기 위해 별도의 안수 위원들을 서부교회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이미 안수를 받아 목사가 되어 있었던 분들이 김현봉 이병규 한순직 김응익 이용규 목사님 5 명입니다. 그 5 명이 백 목사님을 안수한 안수 위원들입니다.
: 백영희 목사님은 설교집을 집필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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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목사님은 예배 인도만 하셨지 단 한 권의 책이나 짧은 글 하나도 출간을 위해 집필한 적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주보 한 장도 미리 작성하지 않았던 것은 같은 원칙 때문입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록은 서부교회 편집실 직원들이 설교를 녹음한 다음 그대로 설교록 이름을 붙여 출간한 것입니다.
그 말이나 그 말이나 비슷한 것 같은데도 굳이 설명을 하는 이유는, 백 목사님은 순복음 교회의 월간지에서 설교를 싣고 싶다며 부탁을 받은 적도 있고 기독교방송에서도 방송에 내 보낼 설교를 부탁한 적이 있는데 다 거절했습니다. 어느 목적을 위해 주어 진 시간이나 분량을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은 하나님 인도를 따라 예배를 인도하는 목회자로서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설교록으로 출간하기 위해 집필을 하는 개념은 목사님께 없었고, 그냥 예배를 인도했는데 그 기록을 일반인들이 참고하는 것은 필요할 것으로 봤습니다.
공회의 예배와 교회 운영과 신앙의 기본 개념이 이러하기 때문에 일반 교회와 신앙의 모습에서 다를 수밖에 없고 이런 원리에서 백 목사님의 설교록 집필이라는 표현은 백 목사님의 신앙 세계에서는 가능성의 여지가 없습니다.
: 백영희 목사님의 스승은 순교한 주기철목사님과 주남선목사님이 스승입니다.
: 백영희목사님은 주기철목사님 순교하신 후 그분이 사용하셨던 성경을 평생 읽으며 사역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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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선 목사님은 백 목사님의 직계 스승입니다. 주남선 목사님이 거창 함양 합천의 3 개 군에 유일한 목사님이시면서 실질적인 지도자셨고 백 목사님은 그 시절 그 산하 교회에서 처음 믿고 신앙 출발을 했으며 신앙 초기부터 주 목사님 교인이었습니다.
신사참배가 막 시작 되던 시기에 백 목사님은 주 목사님을 통해 전국 상황을 들을 수 있었고 주 목사님의 옥고 6년 동안 가족들을 뒷 바라지했고 출옥 후 주 목사님은 전국적 유명 인사가 되어 각종 부흥회에 초빙을 받게 될 때 자신이 가야 할 곳에 백 목사님이 당시 집사였는데도 대신 보낸 곳이 많았습니다. 가족에 대한 수고 때문이 아니라 백 목사님은 맡은 교회 전체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나왔으며 그의 신앙이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주 목사님은 돌아 가실 때 맡은 교회를 부목에게 인계하지만 실질적으로 신앙의 후임으로는 백 목사님을 생각하고 있었고 평생 목회하며 사용했던 성경과 두루막을 넘기게 됩니다. 성경은 설명이 필요가 없고 두루막은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남긴 겉옷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백 목사님은 평생 그의 설교에서 주 목사님의 신앙을 들어 설교를 했으나 성경과 두루막은 주 목사님의 신앙을 기억하는 귀중품으로 아껴 두었지 실제 사용은 하지 않았습니다. 관리나 그 유품화의 의미 등으로 두루막 대신 성경만 생존 끝까지 소중하게 보관했다가 고신대학교에서 주남선 기념관을 건립한다며 기증을 부탁 받고 고신에 인계를 했는데 그 과정을 잘 알면서도 현재 고신은 백영희라는 이름을 빼고 있는데 기관 대 기관의 업무를 보내 개인적 신의를 보나 역사적 사실을 보나 가족들의 간곡한 뜻을 보나 이 연구회에서 수 차 그 문제를 직접 지적한 면을 고려할 때 고신의 '상부에 뜻을 전하겠다'는 외교 수사 내지는 행정 실무선의 절차를 내 세워 수 년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일반 사회 단체 수준도 될 수 없는 행태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에 대한 백 목사님의 사모는 주남선 목사님에 비할 정도지만 주 목사님과 백 목사님의 직접 접촉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역사적 인물로 그리고 신사참배 거부 당시 생사를 건 투쟁에서 주기철 목사님이 평양에서 한국교회 전체의 반대 운동에 힘을 주셨던 면을 두고 큰 어른으로 감사했지만 신앙의 직접 접촉은 없었으므로 일반적 표현에서 '스승'이라고 한다면 백 목사님이 그 높은 주기철 목사님의 성함을 남용하는 것처럼 될 수 있습니다.
: 백영희목사님은 설교도중 괴한의 칼에 찔려 순교하셨다. 부산서부교회의 부흥이 시대적 영감의 흐름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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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목사님의 서부교회 부흥 역사는 우리 나라 선교 역사에서 가장 신앙에 철저했던 호주 선교부에 시작하고 해방 후 고신 중심의 신앙 지도부의 전적 지원을 받았고 이후 고신의 탈선이 시작 되자 고신의 원래 신앙 정신에 투철하여 그 정신 그대로 남아서 서부교회 부흥 역사로 이어 졌으므로 서부교회 신앙노선은 고신의 참 된 원래 모습이 가장 잘 구현 된 상태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주남선 목사님 계통입니다.
한국 교회가 교단 정치 문제로 신앙의 본류를 다 흐트러 지게 했는데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투쟁을 피하려고 교단 이름을 총공회라고 했지만 원래 내면의 흐름은 '시대적 영감의 흐름'을 분명히 잇고 있다는 위 글의 표현은 서부교회와 백 목사님의 신앙을 제대로 본 것입니다.
: 고 김석준목사님은 신학교 졸업반에 있을 때 이 교훈을 처음 받았습니다.
: 그는 이전에 설교나 목회를 부흥식으로 했습니다.
: 그런 목회를 하기도 하고 부흥회도 많이 인도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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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목사님의 형님이 김영광 목사님이셨고 그 분께 이런 내용을 직접 들었습니다.
: 고김석준 목사님은 백영희 목사님, 김현봉 목사님, 이병규 목사님의 제자입니다.
: 이분들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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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님이 가장 많이 배운 분이 백 목사님이고, 백 목사님을 만나기 전에 잠깐 김현봉 목사님께 배웠던 시기도 있고, 이병규 목사님께는 서울 지방에 있으면서 많이 배울 기회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백영희목사님에게 안수받은 1기생들은 다음과 같다.
: 김현봉, 이병규, 한순직, 김응익, 이용규, 5명 목사님을 서부교회로 청빙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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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목사님이 고신에서 1959년 제명 될 때 강도사였습니다. 안수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고신을 나왔기 때문에 당시 안수를 받기 위해 별도의 안수 위원들을 서부교회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이미 안수를 받아 목사가 되어 있었던 분들이 김현봉 이병규 한순직 김응익 이용규 목사님 5 명입니다. 그 5 명이 백 목사님을 안수한 안수 위원들입니다.
: 백영희 목사님은 설교집을 집필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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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목사님은 예배 인도만 하셨지 단 한 권의 책이나 짧은 글 하나도 출간을 위해 집필한 적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주보 한 장도 미리 작성하지 않았던 것은 같은 원칙 때문입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록은 서부교회 편집실 직원들이 설교를 녹음한 다음 그대로 설교록 이름을 붙여 출간한 것입니다.
그 말이나 그 말이나 비슷한 것 같은데도 굳이 설명을 하는 이유는, 백 목사님은 순복음 교회의 월간지에서 설교를 싣고 싶다며 부탁을 받은 적도 있고 기독교방송에서도 방송에 내 보낼 설교를 부탁한 적이 있는데 다 거절했습니다. 어느 목적을 위해 주어 진 시간이나 분량을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은 하나님 인도를 따라 예배를 인도하는 목회자로서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설교록으로 출간하기 위해 집필을 하는 개념은 목사님께 없었고, 그냥 예배를 인도했는데 그 기록을 일반인들이 참고하는 것은 필요할 것으로 봤습니다.
공회의 예배와 교회 운영과 신앙의 기본 개념이 이러하기 때문에 일반 교회와 신앙의 모습에서 다를 수밖에 없고 이런 원리에서 백 목사님의 설교록 집필이라는 표현은 백 목사님의 신앙 세계에서는 가능성의 여지가 없습니다.
: 백영희 목사님의 스승은 순교한 주기철목사님과 주남선목사님이 스승입니다.
: 백영희목사님은 주기철목사님 순교하신 후 그분이 사용하셨던 성경을 평생 읽으며 사역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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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선 목사님은 백 목사님의 직계 스승입니다. 주남선 목사님이 거창 함양 합천의 3 개 군에 유일한 목사님이시면서 실질적인 지도자셨고 백 목사님은 그 시절 그 산하 교회에서 처음 믿고 신앙 출발을 했으며 신앙 초기부터 주 목사님 교인이었습니다.
신사참배가 막 시작 되던 시기에 백 목사님은 주 목사님을 통해 전국 상황을 들을 수 있었고 주 목사님의 옥고 6년 동안 가족들을 뒷 바라지했고 출옥 후 주 목사님은 전국적 유명 인사가 되어 각종 부흥회에 초빙을 받게 될 때 자신이 가야 할 곳에 백 목사님이 당시 집사였는데도 대신 보낸 곳이 많았습니다. 가족에 대한 수고 때문이 아니라 백 목사님은 맡은 교회 전체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나왔으며 그의 신앙이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주 목사님은 돌아 가실 때 맡은 교회를 부목에게 인계하지만 실질적으로 신앙의 후임으로는 백 목사님을 생각하고 있었고 평생 목회하며 사용했던 성경과 두루막을 넘기게 됩니다. 성경은 설명이 필요가 없고 두루막은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남긴 겉옷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백 목사님은 평생 그의 설교에서 주 목사님의 신앙을 들어 설교를 했으나 성경과 두루막은 주 목사님의 신앙을 기억하는 귀중품으로 아껴 두었지 실제 사용은 하지 않았습니다. 관리나 그 유품화의 의미 등으로 두루막 대신 성경만 생존 끝까지 소중하게 보관했다가 고신대학교에서 주남선 기념관을 건립한다며 기증을 부탁 받고 고신에 인계를 했는데 그 과정을 잘 알면서도 현재 고신은 백영희라는 이름을 빼고 있는데 기관 대 기관의 업무를 보내 개인적 신의를 보나 역사적 사실을 보나 가족들의 간곡한 뜻을 보나 이 연구회에서 수 차 그 문제를 직접 지적한 면을 고려할 때 고신의 '상부에 뜻을 전하겠다'는 외교 수사 내지는 행정 실무선의 절차를 내 세워 수 년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일반 사회 단체 수준도 될 수 없는 행태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에 대한 백 목사님의 사모는 주남선 목사님에 비할 정도지만 주 목사님과 백 목사님의 직접 접촉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역사적 인물로 그리고 신사참배 거부 당시 생사를 건 투쟁에서 주기철 목사님이 평양에서 한국교회 전체의 반대 운동에 힘을 주셨던 면을 두고 큰 어른으로 감사했지만 신앙의 직접 접촉은 없었으므로 일반적 표현에서 '스승'이라고 한다면 백 목사님이 그 높은 주기철 목사님의 성함을 남용하는 것처럼 될 수 있습니다.
: 백영희목사님은 설교도중 괴한의 칼에 찔려 순교하셨다. 부산서부교회의 부흥이 시대적 영감의 흐름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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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목사님의 서부교회 부흥 역사는 우리 나라 선교 역사에서 가장 신앙에 철저했던 호주 선교부에 시작하고 해방 후 고신 중심의 신앙 지도부의 전적 지원을 받았고 이후 고신의 탈선이 시작 되자 고신의 원래 신앙 정신에 투철하여 그 정신 그대로 남아서 서부교회 부흥 역사로 이어 졌으므로 서부교회 신앙노선은 고신의 참 된 원래 모습이 가장 잘 구현 된 상태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주남선 목사님 계통입니다.
한국 교회가 교단 정치 문제로 신앙의 본류를 다 흐트러 지게 했는데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투쟁을 피하려고 교단 이름을 총공회라고 했지만 원래 내면의 흐름은 '시대적 영감의 흐름'을 분명히 잇고 있다는 위 글의 표현은 서부교회와 백 목사님의 신앙을 제대로 본 것입니다.
김석준 목사님의 언급에서 몇 가지 의문
평소 백 목사님 자료를 접하며 알던 것과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내용을 한번 살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 김석준 목사님의 간증
히스기야와 요시야 강해서에서 발취
고김석준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강해집에서 직접발취 96페이지
고 김석준목사님은 신학교 졸업반에 있을 때 이 교훈을 처음 받았습니다. 그는 이전에 설교나 목회를 부흥식으로 했습니다.
그런 목회를 하기도 하고 부흥회도 많이 인도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졸업반에 있으면서 이렇게 깨달아 가지고 이 교훈을
받으려니까 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설교 원고를 보내 달라고 하니까?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 김석준목사님은
보따리 싸 가지고 새벽기도 마치고는 그냥 저 언덕 밑에 가서 산으로 들로 뛰어 다니다가 묘지 옆에 가서 이렇게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이여, 김현봉 목사님에게 주신 성령 김석준에게는 안 준다는 법칙이 없지 않습니까?" 라고 떼를 썼죠? 할 수 없이 떼를 썼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에게 주신 은혜, 성령님, 내게는 안주신다는 그런 법은 없지 않습니까?" "주실줄 믿습니다."하고는 그때는 뭐 밥 먹을 생각도 안 나고 이 은혜 안 받으면 우리는 밥도 안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한 몇개월 금식하면서 주암산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냥 "김현봉 목사님에게 깨닫게 하던 각성적 염감의 감화, 백영희 목사님에게 내렸던 그 각성적 영감의 감화, 이병규 목사님에게 내렸던 그 각성적 영감의 감화를 내게도 주실줄 믿습니다."하고는 기도했습니다. 하니까 하나님께서도 아마 "에이, 이놈, 참 고집불통이구나!"하시고는 허락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고김석준목사님께 져 주신 것입니다. 제가 나쁜 것을 요구했으면 하나님께서 안된다 했겠습니다만, 은혜를 갈망하는 데야 왜 안주시겠느냐 말입니다. 주십니다. 은혜를 안준다는 그런 법칙이 없습니다. 성경에 없어요.
고김석준 목사님은 백영희 목사님, 김현봉 목사님, 이병규 목사님의 제자입니다. 이분들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백영희목사님에게 안수받은 1기생들은 다음과 같다. 김현봉, 이병규, 한순직, 김응익, 이용규, 5명 목사님을 서부교회로 청빙안수.
백영희 목사님은 설교집을 집필하였고 이병규목사님은 성경전권 강해집을 집필하였으며 김석준목사님은 체계적 신앙 신학, 즉 조직신학을 집필하였습니다. 이병규목사님은 현제 살아 계시며 현 계약신학대학원 이사장으로 계십니다. 이병규목사님은 저의 스승입니다. 그러니 신앙노선과 계열이 같은 계열입니다. 백영희 목사님의 스승은 순교한 주기철목사님과 주남선목사님이 스승입니다. 백영희목사님은 주기철목사님 순교하신 후 그분이 사용하셨던 성경을 평생 읽으며 사역을 하셨다. 백영희목사님은 설교도중 괴한의 칼에 찔려 순교하셨다. 부산서부교회의 부흥이 시대적 영감의 흐름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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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백 목사님 자료를 접하며 알던 것과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내용을 한번 살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 김석준 목사님의 간증
히스기야와 요시야 강해서에서 발취
고김석준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강해집에서 직접발취 96페이지
고 김석준목사님은 신학교 졸업반에 있을 때 이 교훈을 처음 받았습니다. 그는 이전에 설교나 목회를 부흥식으로 했습니다.
그런 목회를 하기도 하고 부흥회도 많이 인도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졸업반에 있으면서 이렇게 깨달아 가지고 이 교훈을
받으려니까 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설교 원고를 보내 달라고 하니까?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 김석준목사님은
보따리 싸 가지고 새벽기도 마치고는 그냥 저 언덕 밑에 가서 산으로 들로 뛰어 다니다가 묘지 옆에 가서 이렇게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이여, 김현봉 목사님에게 주신 성령 김석준에게는 안 준다는 법칙이 없지 않습니까?" 라고 떼를 썼죠? 할 수 없이 떼를 썼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에게 주신 은혜, 성령님, 내게는 안주신다는 그런 법은 없지 않습니까?" "주실줄 믿습니다."하고는 그때는 뭐 밥 먹을 생각도 안 나고 이 은혜 안 받으면 우리는 밥도 안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한 몇개월 금식하면서 주암산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냥 "김현봉 목사님에게 깨닫게 하던 각성적 염감의 감화, 백영희 목사님에게 내렸던 그 각성적 영감의 감화, 이병규 목사님에게 내렸던 그 각성적 영감의 감화를 내게도 주실줄 믿습니다."하고는 기도했습니다. 하니까 하나님께서도 아마 "에이, 이놈, 참 고집불통이구나!"하시고는 허락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고김석준목사님께 져 주신 것입니다. 제가 나쁜 것을 요구했으면 하나님께서 안된다 했겠습니다만, 은혜를 갈망하는 데야 왜 안주시겠느냐 말입니다. 주십니다. 은혜를 안준다는 그런 법칙이 없습니다. 성경에 없어요.
고김석준 목사님은 백영희 목사님, 김현봉 목사님, 이병규 목사님의 제자입니다. 이분들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백영희목사님에게 안수받은 1기생들은 다음과 같다. 김현봉, 이병규, 한순직, 김응익, 이용규, 5명 목사님을 서부교회로 청빙안수.
백영희 목사님은 설교집을 집필하였고 이병규목사님은 성경전권 강해집을 집필하였으며 김석준목사님은 체계적 신앙 신학, 즉 조직신학을 집필하였습니다. 이병규목사님은 현제 살아 계시며 현 계약신학대학원 이사장으로 계십니다. 이병규목사님은 저의 스승입니다. 그러니 신앙노선과 계열이 같은 계열입니다. 백영희 목사님의 스승은 순교한 주기철목사님과 주남선목사님이 스승입니다. 백영희목사님은 주기철목사님 순교하신 후 그분이 사용하셨던 성경을 평생 읽으며 사역을 하셨다. 백영희목사님은 설교도중 괴한의 칼에 찔려 순교하셨다. 부산서부교회의 부흥이 시대적 영감의 흐름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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