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미국인의 인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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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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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7 00:00
1. 사회적인 면
엘리베이터는 보통 한 평입니다. 3 - 4 명이 타고 심지어 7 - 8 명이 탈 때도 있습니다. 믿든 안 믿든 한국의 순종은 못 본 체하는 얼굴과 태도입니다. 상대방의 존재를 모를 수가 없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굳이 안 본 것으로 합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외국인들조차 한국에 오면 한국화가 되어 같아 져 버립니다. 처음 온 분들은 그들 나라에서 하던 대로 몇 번을 하다가 얼른 눈치를 채고 같이 굳은 얼굴을 해 버립니다.
총공회 교인들은 원래 타고 난 민족성에 충실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 면으로는 조선의 순수 혈통이 간직 되고 있는 편입니다. 알지만 표시를 하지 않는 것, 역사적으로는 유교 사회 영향 때문입니다. 또 농경 사회여서 늘 보던 그 얼굴이라 굳이 새롭게 말할 것도 없습니다. 또 천성적으로 착한 편입니다. 좀 바보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속이 그 겉과 같지는 않습니다. 인정도 있고 또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고 또 한 번 봇물이 터지면 밤새 그 사람을 붙들고 지난 날의 개인 사생활 내면까지도 다 퍼 놓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처음 본 얼굴에게 얼른 밝게 인사하는 것은 잘하지만 아무리 사귀어도 그 정도지 그 이상으로 자기 속내를 드러 내지는 않습니다. 얼른 사귀나 깊이 사귐이 없어 돌아 서면 그 것으로 끝이 납니다. 우리는 가마솥처럼 익어 가는 데는 애 터지게 시간이 걸리나 한 번 발동이 걸리면 너무 깊게 들어 가서 탈입니다.
공회 교인들은 외국 교회의 교인들과 교류가 없습니다. 다른 교단들은 미국 교회와 교류에 목숨을 걸었다 할 만큼 소동입니다. 교단의 지도부가 미국 교회 지도자들과 그들 사회를 먼저 접하여 그들 식으로 옷을 입고 인사를 나누고, 그 것이 밑에 있는 일반 목회자들과 교인들에게 순차적으로 전염이 되면서 현재의 일반 교회 교인들의 얼굴 표정과 인사 행동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예배당 안에서 아무나 붙들고 안고 가볍게 여기 저기 인사를 하는데 우리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는 그렇게까지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총공회는 말투나 생활 모습이나 행동이나 인사처럼 성경이 직접 지시하는 말씀이나 신앙의 근본 노선에 속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생활 속의 언행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 합니다. 그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은혜이미 현실이라고 보며 그 현실이 우리에게는 가장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한국 사회에서 믿고 한국 교회를 다니는 한국의 교인은 신앙으로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일반 한국적 생활 모습을 갖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 경건 면 때문에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주신 현실에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고 해도 남을 보면 웃고 인사하는 것조차 조선식으로 얼굴을 굳게 해라고 가르 치지는 않습니다. 이런 것은 소리 없이 얼른 고치라고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사나 얼굴 표정과 같은 행동은 이 노선이 하나님 앞에 사는 성도의 생활 자세가 하나님 두려움을 늘 앞 세우기기 때문이 여기에 영향을 받는 점이 많습니다.
또 겉 모습만이 아니라 자기 현실에서 늘 말씀대로 실제 살려면 진지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신앙 투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공회 교인은 후방 휴가 나온 군인과 거리가 멀고 그 대신 전투 일선에 적을 살피는 초병과 같은 면이 있습니다. 교훈이 그러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대할 때 환영보다는 경계가, 신임보다는 의심이, 편한 자세보다는 긴장이 익숙해 져 있고 또 말씀으로 세상에서 실제 살다 보면 시험을 앞 둔 학생처럼 조심하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굳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의미로, 공회 교인들은 시험을 앞 둔 학생의 자세요 수술을 앞 둔 환자의 자세며 전쟁에 나서는 군인의 자세에 충실하기 때문이라고 봐 주셨으면 합니다.
3. 기가 막힌 것은
이런 실제 내용 때문이 아니라 돌부처처럼 인상을 쓰고 있어야 경건해 보이고 신앙에 긴장한 사람처럼 보일 것이라는 고도의 계산 끝에 경건한 모양을 보이려고 연습을 해서 숙달이 된 분들이 더러 섞여 있지 않나 하는 점입니다. 있다면 바리새인입니다. 그래도 바리새인이 부활을 부인하는 사두개인보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바리새인 중에는 바울처럼 회개하여 잘 믿은 분들이 있으나 신령한 면을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은 전멸 신앙이었습니다.
희망하건대 언젠가 모두들 속으로는 경건하나 겉으로는 다른 사람의 안면을 봐서라도 남을 위해서라도 편안하게 대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얼굴에 평화가 배어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 속에는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내용은 고장이 나서 그렇습니다.
>> 총공회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 부모님이 다니시는 교회에 목회자부부가 온지 7개월정도 되셨습니다.
: 아버지께서, 새로온 사모님은 웃는 얼굴이 참 보기좋다고 하셨습니다.
: 성도들과 마주칠때도, 잘 웃으시고, 평소에도 잘 웃으시는 것 같습니다.
:
: 예전에 저를 가르쳤던 전도사님 사모님2명이 계셨는데,그 분들이 얼굴이 참 밝았습니다.
:
: 그런데 총공회 성도들과 사역자들과 사모님들은 얼굴이 좀 어두운것 같습니다.
:
: 잘 웃으시는 사모님들은 교리도 별로없고, 알미니안 신앙을 가진분들도 있습니다.
:
: 그런데 그 분들은 왜 얼굴이 항상 싱글벙글하고, 우리 총공회는 얼굴이 좀 어두운지
: 모르겠습니다. 총공회 사역자나(부부) 교인들 얼굴을 밝게 웃는 얼굴을 본적이 많이
: 없는것같습니다.
:
: 항상 얼굴이 밣다고, 신앙이 좋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엘리베이터는 보통 한 평입니다. 3 - 4 명이 타고 심지어 7 - 8 명이 탈 때도 있습니다. 믿든 안 믿든 한국의 순종은 못 본 체하는 얼굴과 태도입니다. 상대방의 존재를 모를 수가 없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굳이 안 본 것으로 합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외국인들조차 한국에 오면 한국화가 되어 같아 져 버립니다. 처음 온 분들은 그들 나라에서 하던 대로 몇 번을 하다가 얼른 눈치를 채고 같이 굳은 얼굴을 해 버립니다.
총공회 교인들은 원래 타고 난 민족성에 충실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 면으로는 조선의 순수 혈통이 간직 되고 있는 편입니다. 알지만 표시를 하지 않는 것, 역사적으로는 유교 사회 영향 때문입니다. 또 농경 사회여서 늘 보던 그 얼굴이라 굳이 새롭게 말할 것도 없습니다. 또 천성적으로 착한 편입니다. 좀 바보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속이 그 겉과 같지는 않습니다. 인정도 있고 또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고 또 한 번 봇물이 터지면 밤새 그 사람을 붙들고 지난 날의 개인 사생활 내면까지도 다 퍼 놓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처음 본 얼굴에게 얼른 밝게 인사하는 것은 잘하지만 아무리 사귀어도 그 정도지 그 이상으로 자기 속내를 드러 내지는 않습니다. 얼른 사귀나 깊이 사귐이 없어 돌아 서면 그 것으로 끝이 납니다. 우리는 가마솥처럼 익어 가는 데는 애 터지게 시간이 걸리나 한 번 발동이 걸리면 너무 깊게 들어 가서 탈입니다.
공회 교인들은 외국 교회의 교인들과 교류가 없습니다. 다른 교단들은 미국 교회와 교류에 목숨을 걸었다 할 만큼 소동입니다. 교단의 지도부가 미국 교회 지도자들과 그들 사회를 먼저 접하여 그들 식으로 옷을 입고 인사를 나누고, 그 것이 밑에 있는 일반 목회자들과 교인들에게 순차적으로 전염이 되면서 현재의 일반 교회 교인들의 얼굴 표정과 인사 행동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예배당 안에서 아무나 붙들고 안고 가볍게 여기 저기 인사를 하는데 우리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는 그렇게까지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총공회는 말투나 생활 모습이나 행동이나 인사처럼 성경이 직접 지시하는 말씀이나 신앙의 근본 노선에 속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생활 속의 언행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 합니다. 그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은혜이미 현실이라고 보며 그 현실이 우리에게는 가장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한국 사회에서 믿고 한국 교회를 다니는 한국의 교인은 신앙으로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일반 한국적 생활 모습을 갖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 경건 면 때문에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주신 현실에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고 해도 남을 보면 웃고 인사하는 것조차 조선식으로 얼굴을 굳게 해라고 가르 치지는 않습니다. 이런 것은 소리 없이 얼른 고치라고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사나 얼굴 표정과 같은 행동은 이 노선이 하나님 앞에 사는 성도의 생활 자세가 하나님 두려움을 늘 앞 세우기기 때문이 여기에 영향을 받는 점이 많습니다.
또 겉 모습만이 아니라 자기 현실에서 늘 말씀대로 실제 살려면 진지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신앙 투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공회 교인은 후방 휴가 나온 군인과 거리가 멀고 그 대신 전투 일선에 적을 살피는 초병과 같은 면이 있습니다. 교훈이 그러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대할 때 환영보다는 경계가, 신임보다는 의심이, 편한 자세보다는 긴장이 익숙해 져 있고 또 말씀으로 세상에서 실제 살다 보면 시험을 앞 둔 학생처럼 조심하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굳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의미로, 공회 교인들은 시험을 앞 둔 학생의 자세요 수술을 앞 둔 환자의 자세며 전쟁에 나서는 군인의 자세에 충실하기 때문이라고 봐 주셨으면 합니다.
3. 기가 막힌 것은
이런 실제 내용 때문이 아니라 돌부처처럼 인상을 쓰고 있어야 경건해 보이고 신앙에 긴장한 사람처럼 보일 것이라는 고도의 계산 끝에 경건한 모양을 보이려고 연습을 해서 숙달이 된 분들이 더러 섞여 있지 않나 하는 점입니다. 있다면 바리새인입니다. 그래도 바리새인이 부활을 부인하는 사두개인보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바리새인 중에는 바울처럼 회개하여 잘 믿은 분들이 있으나 신령한 면을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은 전멸 신앙이었습니다.
희망하건대 언젠가 모두들 속으로는 경건하나 겉으로는 다른 사람의 안면을 봐서라도 남을 위해서라도 편안하게 대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얼굴에 평화가 배어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 속에는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내용은 고장이 나서 그렇습니다.
>> 총공회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 부모님이 다니시는 교회에 목회자부부가 온지 7개월정도 되셨습니다.
: 아버지께서, 새로온 사모님은 웃는 얼굴이 참 보기좋다고 하셨습니다.
: 성도들과 마주칠때도, 잘 웃으시고, 평소에도 잘 웃으시는 것 같습니다.
:
: 예전에 저를 가르쳤던 전도사님 사모님2명이 계셨는데,그 분들이 얼굴이 참 밝았습니다.
:
: 그런데 총공회 성도들과 사역자들과 사모님들은 얼굴이 좀 어두운것 같습니다.
:
: 잘 웃으시는 사모님들은 교리도 별로없고, 알미니안 신앙을 가진분들도 있습니다.
:
: 그런데 그 분들은 왜 얼굴이 항상 싱글벙글하고, 우리 총공회는 얼굴이 좀 어두운지
: 모르겠습니다. 총공회 사역자나(부부) 교인들 얼굴을 밝게 웃는 얼굴을 본적이 많이
: 없는것같습니다.
:
: 항상 얼굴이 밣다고, 신앙이 좋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왜 잘 안웃는지?
부모님이 다니시는 교회에 목회자부부가 온지 7개월정도 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새로온 사모님은 웃는 얼굴이 참 보기좋다고 하셨습니다.
성도들과 마주칠때도, 잘 웃으시고, 평소에도 잘 웃으시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저를 가르쳤던 전도사님 사모님2명이 계셨는데,그 분들이 얼굴이 참 밝았습니다.
그런데 총공회 성도들과 사역자들과 사모님들은 얼굴이 좀 어두운것 같습니다.
잘 웃으시는 사모님들은 교리도 별로없고, 알미니안 신앙을 가진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왜 얼굴이 항상 싱글벙글하고, 우리 총공회는 얼굴이 좀 어두운지
모르겠습니다. 총공회 사역자나(부부) 교인들 얼굴을 밝게 웃는 얼굴을 본적이 많이
없는것같습니다.
항상 얼굴이 밣다고, 신앙이 좋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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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다니시는 교회에 목회자부부가 온지 7개월정도 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새로온 사모님은 웃는 얼굴이 참 보기좋다고 하셨습니다.
성도들과 마주칠때도, 잘 웃으시고, 평소에도 잘 웃으시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저를 가르쳤던 전도사님 사모님2명이 계셨는데,그 분들이 얼굴이 참 밝았습니다.
그런데 총공회 성도들과 사역자들과 사모님들은 얼굴이 좀 어두운것 같습니다.
잘 웃으시는 사모님들은 교리도 별로없고, 알미니안 신앙을 가진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왜 얼굴이 항상 싱글벙글하고, 우리 총공회는 얼굴이 좀 어두운지
모르겠습니다. 총공회 사역자나(부부) 교인들 얼굴을 밝게 웃는 얼굴을 본적이 많이
없는것같습니다.
항상 얼굴이 밣다고, 신앙이 좋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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