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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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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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은 내일 하고, 일단 몇 가지 관련 자료를 제공합니다. 백 목사님 전기 작업에 필요하여 모아 둔 것입니다. 2009년 4월에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방문하고 '한부선' 자료실을 제한 없이 살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관련 자료를 다 소개하기는 그렇고 일단 몇 가지 필요한 안내를 먼저 드립니다.


1. 가장 존경한 선교사


권임함 (Cunningham) 목사님을 제일 존경했습니다. Australia에서 왔던 분으로 경건한 분이었습니다. 논문 박사로 7개 학위를 가질 수 있었으나 본인이 고사해서 박사학위는 하나도 가지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동료 선교사들이 증거를 하는 유명한 분입니다. 그에게 두 달을 배웠는데 선교사치고는 그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 권임함이고 그 다음이 한부선 목사님입니다.


2. 선교 내력


한부선은 본명이 Bruce Finley Hunt(1903-92)이며 아버지는 평양에서 활동한 한위렴William Brewster Hunt(1869-1953) 목사님입니다. 아버지는 호화로운 미국생활을 버리고 굉장히 미개하고 미신적이고 주관적인 이 나라에 선교사로 왔습니다. 그때만 해도 기독교는 미학이라 해서 죽이고 조롱하였습니다. 그 나라가 강대국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미국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떨다가도 예수를 믿으라고 도를 전하면 그 자리에서 침을 뱉으며 멸시했습니다. 한 세대가 지났고 전쟁을 겪으면서 미국이 우상이라 할 만큼 되었던 1950년대 백조사님이 한부선목사님과 함께 차를 탔는데 미국사람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보다가도 전도를 하니까 단번에 말을 놓고 하대를 해버립니다.

아버지 한위렴의 유언을 따라 아들인 한부선도 미국의 호화로운 문화생활을 버리고 미개국에서 평생을 바쳤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간다면서 소녀 하나를 백조사님에게 맡겨 1980년대에 서부교회에서 반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소경이요 아내는 아편중독자인데 그들을 바로 잡아보려고 노력했고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그 딸의 앞날까지 걱정하고 사람을 가려서 맡겼던 것입니다. 미국에 돌아가자 그는 그 교파 총회장으로 선출된 실력자입니다. 복음을 위해 2대를 이어가며 희생하는 길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3. 목회 나가던 1949년


토요일날 심방 때문에 부부간에 신경 쓰일 일이 있었습니다. 심방을 가야 된다 안 가야 된다 옥신각신하고 있었는데 12살짜리 4학년인 둘째 딸이 사고가 났다며 일꾼들이 안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둘째 딸이 친구들하고 아버지 정미소 부근에 있었는데 복잡한 기계 주변에서 놀다가 그만 치마가 벨트기계에 감겨 들어가고 물레방아 공장 내부의 복잡한 기계와 벨트는 둘째를 계속해서 감아 돌아 바짝 부스러뜨렸습니다. 팔과 다리가 2곳씩 부러지고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으며 마치 가죽주머니 안에 부서진 각목들이 있는 것처럼 아주 형편없이 되어져 버렸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둘째라면서 보듬어 놓았습니다....


우선 기도를 했고 다음에 엉망이 된 아이를 눕혀놓고 뼈를 대충 맞췄습니다. 속에서 뼈는 부러졌지만 외부 가죽은 성하니까 가죽 안쪽에 잡히는 뼈들을 제자리로 돌린 것입니다. ‘많이 아프니?’ ‘아뇨!’ ‘밥을 먹을 수 있겠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상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단번에 확 와서 닿고 있었습니다. 다음날은 한부선 목사님이 교역자 수양회 강사로 인도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2주일이 지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죽지는 않았는고?’ 멀리서 보니까 마당에서 뛰놀고 다니는 딸이 보입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까 흉터 하나도 없이 표도 없이 다 나았습니다.

기부스도 하지 않았는데 마당에 작대기를 짚고 다녔고 후에는 완전히 나았습니다. 마음에 크게 단정이 되었습니다. 주남선 목사님이 '이제 나서지...' 조용히 또 말씀하십니다. '예, 이제는 순종하겠습니다. 나서려고 왔습니다.‘ 하나님이 부를 때 안 나가도 탈, 또 자기가 앞서 날뛰어도 탈... 평생 가르치는 것입니다.


4. 사람 부탁


한부선목사님이 한국에 있으며 참 불쌍한 사람을 하나 길렀는데 미국으로 들어가면서 그 사람을 서부교회 목사님에게 맡겼습니다. 백 목사님은 서봉월집사님 구역에 맡겨 돌봤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졌습니다. 이제는 그 가정 자녀들이 또 결혼을 했습니다. 이곳 소식을 미국으로 편지를 해서 그분으로 기뻐할 수 있도록 하라고 시켰습니다.


5. 한국 사랑


6.25 전쟁이 계속 되는 3년 기간 서울의 정부가 부산을 임시 피난 수도로 사용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경남도청을 그리고 대통령 관사는 경남도지사 공관 등을 사용했던 바, 서부교회 맞은편이었습니다. 한부선목사님과 함께 길을 가다가 대통령 관사 울타리에 주민들이 옷을 말린다고 널어놓은 것을 보고 한목사님은 깜짝 놀랍니다. ‘대통령 관사에 빨래를 널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아주 놀라면서 탄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 주변 사람 중에 말이 통할 만한 사람에게 빨래를 걷도록 했습니다. 상대방의 지위를 찾아 대우할 줄 알기 때문에 그들은 선진국이며 민주주의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비교하면 버릇없는 상놈들입니다.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선전하지만 실은 지위도 모르는 정도입니다.


6. 무형의 복음


한부선목사님이 말씀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그 피를 유형으로 대하지 말고 그 유형의 피 속에 인간의 말과 표시로 할 수 없는 대속의 공로를 깨달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어 마음에 딱 맞고 좋았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유형으로 표시하기 때문에 복음이 순전히 세상화 되고 육체화 되어 마지막에는 다 속화된다는 뜻이었습니다.


7. 성경의 대소지 연구법


이기선목사님이 성경을 가르칠 때 성경 전체를 전부 대소지로 나누어 가르쳤고 책으로도 출간했습니다. 책을 구입하였다가 보관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그 연구법을 보며 늘 의문이었는데 언제 한부선목사님에게 그 대소지 연구법을 물어봤습니다. 한목사님 설명은 대소지로 연구하면 우선은 쉽게 배울 수 있어 좋은데 그 대소지 연구가 성경의 무한한 범위를 유한한 범위 안에 가두게 된다고 지적을 했습니다. 듣는 순간 백조사님은 깜짝 놀라며 참 신령한 종으로 감사했습니다.


8. 한국 교계


해방 전 우리나라 교회는 교리와 신조가 그렇게 뚜렷이 들어가지 못했고 그 높이나 깊이도 별로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수 믿으면 구원 얻는다’ 는 정도의 초보적이고 아주 어린 교리나 신조만 가르치고 그것을 가지고 믿었습니다.

그러다가 신사참배라는 환경의 마찰을 겪고 해방 후에는 교회를 개혁하면서 신학자들이 비로소 다 사색과 궁구를 통해 견해하는 것이 깊어졌고 그래서 많은 개혁들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고려신학교가 제일 정통 신학교로 인정을 받았고 그래서 박형룡목사님도 거기 와서 교장으로 시무했는데 그 전에는 박윤선목사님이 먼저 교장으로 시무를 했으므로 두 분은 서로 비교가 되었습니다. 서로 학적으로는 크게 차이날 것이 없었는데 은혜 면에 있어 박윤선목사님이 월등이 나으니까 박형룡목사님은 서울로 갔습니다. 서울에서 신학교를 한다고 박형룡목사님이 올라가게 되니까 한부선목사님이 그 일을 만류하고 나섰습니다. 박형룡목사님이 신신학에 관련될까 크게 걱정을 했습니다.


9. 고려신학교 운영 문제


고려신학교가 신학교로만 있을 때는 아주 왕성했고 진리를 잘 가르쳐서 한국 신학교 중에 제일 으뜸이었습니다. 그러나 학교를 세상식으로 키우며 길러야 한다 해서 복음병원을 차렸고 그다음에는 대학을 만들고 나중에 종합대학을 만들었습니다. 또 의과대학을 만들었습니다. 한명동목사님이 주동이 되어 일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백조사님은 이를 반대했습니다. 나중에 머리 좋은 학생들은 의과나 법과에 가고 신학과는 아주 찌끄러기 못쓸 것들만 오게 될 것이라고 반대를 했습니다.

복음병원은 한부선목사님이 시발을 시켰는데 이 문제 때문에 몇 년이 지난 다음 한번은 언쟁을 벌렸습니다. '한부선 목사님, 복음 병원을 누가 세웠습니까?' '하나님이시지' '목사님이 시작해 가지고 세운 것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목사님이 그곳을 얼마나 주관하고 지도를 하고 있습니까? 목사님 뜻대로 되고 있습니까?' 자존심 때문에 차마 말은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중심의 한목사님이 좋은 뜻으로 시작을 시켰지만 결국 신앙으로 주관하지 못하고 그 병원은 돈벌이 중심으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신학교를 대학교로 만들어 나가려고 할 때도 시비가 많았습니다.


>> 장유남 님이 쓰신 내용 <<

:

: 목사님 설교중에 자주 언급되는 분 중에 한부선선교사님이 있습니다.

:

: 한국교회 특히 고신과는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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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님 설교에서 언급된 것 만으로도 백영희목사님과의 관계가 짐작되곤 합니다.

:

: 구체적으로 두분은 어떤 교제를 나누셨는지, 고신에서 제명된후에도 백목사님과의 관계가 계속됐는지

:

: 또한 그분이 총공회를 어떻게 보셨는지 등도 궁금합니다.
한부선선교사와 총공회
목사님 설교중에 자주 언급되는 분 중에 한부선선교사님이 있습니다.


한국교회 특히 고신과는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목사님 설교에서 언급된 것 만으로도 백영희목사님과의 관계가 짐작되곤 합니다.


구체적으로 두분은 어떤 교제를 나누셨는지, 고신에서 제명된후에도 백목사님과의 관계가 계속됐는지


또한 그분이 총공회를 어떻게 보셨는지 등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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