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글을 잘 읽으면 해결 - 이 노선과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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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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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6 00:00
1.본인의 자백과 토론
질문자께서 소개한 분의 두 글에는 결론이 있으므로 토론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허락 없이 가져왔지 도둑질은 않했다.'는 자백에 왜 도둑질인지 토론이 필요한가?
이런 토론은 옳은 것을 찾는 노력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말을 새로 배워야 합니다.
생각 없이 퍼뜩 떠오른다고 자꾸 글을 적고 보니까 글마다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기독교를 비판한 외부와 기독교는 토론이 필요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직 이 노선에 대한 외부의 비판과 정죄를 두고 토론이 필요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합동 교단 경북 노회, 탁명환, 박영관, 최삼경 등 모두 자기 글에서 끝났습니다.
그들의 글에 의하면 그들이 이단이고 그들의 글에 의하면 공회 정죄는 틀렸습니다.
공회 20 년 역사에 토론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발표된 글이 자기를 정죄했었습니다.
전국 총공회원 전체가 모여 코메디 한 세월과 노력이 너무 많았습니다. 아쉽습니다.
외부에서 토론의 가치가 있고 토론의 여지가 있는 것을 지적했다면! 참 아쉽습니다.
이 노선 내부에서 스스로 고치려니 이렇게 발전이 더딥니다. 남이 잘 보는 법인데!
2.위 글에서 소개한 경우도
공개 토론을 요구하겠다며 적은 그 글과 그 앞의 글, 그 두 글만 읽으면 해결입니다.
초등 학교 고학년 정도면 차분하게 몇 가지 설명을 해 주면 바로 알아 들을 글입니다.
위 글은 질문에 올리지도 말았어야 하는데 일단 올려 졌으니 간단히 비교하겠습니다.
-> 2008-12-06 공회의 공회적 송사에 대한 小考
개교회에 어떤 일이 있을 때 어떤 문제는 공회회의에서 공회적으로 처리를
하고, 어떤 문제는 개교회가 처리하도록 맡겨버리면 안 됩니다... 송사에
따라 지방공회나 총공회는 진리 전원일치로 재판하여 그 결정을 지어주어야
합니다.
-> 2008-12-29 ‘공회의 다스림과 장로회의 다스림’ 그 차이점
지금 현재의 장로회는 총회와 노회가 개교회의 상회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
나 지금 현재의 공회는 총공회와 지방공회가 개교회주의 교회들의 모임이며
또한 그 개교회들이 모여서 심의적으로 의논하고, 심의적으로 가결하고, 심
의적으로 집행합니다. 그것도 전원일치로 통과시킵니다. 그러므로 공회의 다
스림과 장로회의 다스림은 그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 공회적은 행15:1-41에
서 상고하면 그 답이 나옵니다.
위 글을 적은 분은 글을 적는 은혜는 받았으나 앞 뒤 내용을 비교하는 은혜를 받지 못하여
글을 적는 것은 한도 없이 적는데 그 글의 앞이 뒤를 치고 뒤가 앞을 부인하는 글들입니다.
먼저 조용히 더 배우고 나서 발표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 노선 표현으로 외부에 적어 대니
인터넷 검색을 하는 외부인들에게 그 분은 일단 선지자가 되는 목표를 달성했을지 몰라도
그 글의 내용은 신인양성일위, 삼위일체, 성경론과 같은 기독교 근본을 부인하는 글이어서
그 분이 이 노선 교훈을 외부에 전하는 수고에 자기의 잘못된 것을 섞어 전하는 중이어서
참으로 고통스럽게 그리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퍼뜩 머리에 떠 오르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몰아 가 버리니 그 진실과 중심에 불구하고
그 나가는 방향은 결국 갈수록 자기만 자라게 되고 이 노선은 자신의 사닥다리에 그치며
이 과정에서도 이 노선의 원래 교훈으로 그 분의 잘못된 부분을 가려 내면 다행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폐단이 더 많을 수 있고 또는 지금은 작아 보여도 앞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분이 회개하고 처음부터 조용히 다시 배우고 현재 전하는 것은 과거 그대로만 전하고
만일 본인이 새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공회 내에서 우선 의견을 구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공회는 교권으로 진리 연구를 억압하거나 제한하는 그런 구조나 운영이 애초 차단되어서
본인이 예루살렘부터 얼마든지 외치고 그 다음 유다와 사마리아 순서로 나가야 할 것인데
예루살렘 안에는 이 도를 아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여기서 발언하면 잘못이 드러날까 하여
퍼뜩 외부에다 발표부터 하고 보니, 남이 하지 않은 말을 내가 먼저 했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 잡힌 명예심이 아니고야 왜 저러는지, 왜 이 활동이 공회 이름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공회의 체제도 그를 제어하지 않도록 되어 있고 그 어떤 면으로도 자제 시킬 수가 없어
그냥 지켜 볼 따름입니다.
3.'회'에 대한 연구?
'장로회는 지금 현재의 장로회가 있고, 초대교회의 장로의 회가(딤전4:14)
있습니다. 공회는 지금 현재의 공회가 있고, 초대교회의 공회가(막15:1)
있습니다. 장로의 회는 교회들의 그 장로들의 모임이고, 공회는 백성들의
그 장로들의 모임입니다. 그렇기에 사도행전 15장은 교회들의 그 장로회였
음을 상고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설명조차 그 설명이 남 모르는 무엇을 말하는 듯이 보이지만 공회의 원래 설명에다
자꾸 물을 갖다 부으면 나중에 공회의 참 전할 핵심 내용은 희미해 지고 잊혀지게 됩니다.
이렇게 대꾸하고 상대할 글이 아닌데도 안내를 더해 놓는 이유는 인터넷 검색에서 한 글만
자꾸 검색이 되고 그 검색이 반복 인용되면서 원전이 되어 다른 글을 적게 하거나 아니면
이 노선을 살피는 이들에게 일부 잘못된 글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알려 지게 되면 과거
우리 경험으로 이 노선 복음 운동에 너무 큰 훼방이 되어 훼방한 그들이 먼저 저주를 받고
공회의 어린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외부에서 이 노선을 향하는 발걸음을 크게 막았던 적이
있어 검색에서 최소한 두 글이 함께 올려져야 할 상황이어서 시간 소비를 하고 있습니다.
질문자께서 소개한 분의 두 글에는 결론이 있으므로 토론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허락 없이 가져왔지 도둑질은 않했다.'는 자백에 왜 도둑질인지 토론이 필요한가?
이런 토론은 옳은 것을 찾는 노력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말을 새로 배워야 합니다.
생각 없이 퍼뜩 떠오른다고 자꾸 글을 적고 보니까 글마다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기독교를 비판한 외부와 기독교는 토론이 필요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직 이 노선에 대한 외부의 비판과 정죄를 두고 토론이 필요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합동 교단 경북 노회, 탁명환, 박영관, 최삼경 등 모두 자기 글에서 끝났습니다.
그들의 글에 의하면 그들이 이단이고 그들의 글에 의하면 공회 정죄는 틀렸습니다.
공회 20 년 역사에 토론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발표된 글이 자기를 정죄했었습니다.
전국 총공회원 전체가 모여 코메디 한 세월과 노력이 너무 많았습니다. 아쉽습니다.
외부에서 토론의 가치가 있고 토론의 여지가 있는 것을 지적했다면! 참 아쉽습니다.
이 노선 내부에서 스스로 고치려니 이렇게 발전이 더딥니다. 남이 잘 보는 법인데!
2.위 글에서 소개한 경우도
공개 토론을 요구하겠다며 적은 그 글과 그 앞의 글, 그 두 글만 읽으면 해결입니다.
초등 학교 고학년 정도면 차분하게 몇 가지 설명을 해 주면 바로 알아 들을 글입니다.
위 글은 질문에 올리지도 말았어야 하는데 일단 올려 졌으니 간단히 비교하겠습니다.
-> 2008-12-06 공회의 공회적 송사에 대한 小考
개교회에 어떤 일이 있을 때 어떤 문제는 공회회의에서 공회적으로 처리를
하고, 어떤 문제는 개교회가 처리하도록 맡겨버리면 안 됩니다... 송사에
따라 지방공회나 총공회는 진리 전원일치로 재판하여 그 결정을 지어주어야
합니다.
-> 2008-12-29 ‘공회의 다스림과 장로회의 다스림’ 그 차이점
지금 현재의 장로회는 총회와 노회가 개교회의 상회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
나 지금 현재의 공회는 총공회와 지방공회가 개교회주의 교회들의 모임이며
또한 그 개교회들이 모여서 심의적으로 의논하고, 심의적으로 가결하고, 심
의적으로 집행합니다. 그것도 전원일치로 통과시킵니다. 그러므로 공회의 다
스림과 장로회의 다스림은 그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 공회적은 행15:1-41에
서 상고하면 그 답이 나옵니다.
위 글을 적은 분은 글을 적는 은혜는 받았으나 앞 뒤 내용을 비교하는 은혜를 받지 못하여
글을 적는 것은 한도 없이 적는데 그 글의 앞이 뒤를 치고 뒤가 앞을 부인하는 글들입니다.
먼저 조용히 더 배우고 나서 발표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 노선 표현으로 외부에 적어 대니
인터넷 검색을 하는 외부인들에게 그 분은 일단 선지자가 되는 목표를 달성했을지 몰라도
그 글의 내용은 신인양성일위, 삼위일체, 성경론과 같은 기독교 근본을 부인하는 글이어서
그 분이 이 노선 교훈을 외부에 전하는 수고에 자기의 잘못된 것을 섞어 전하는 중이어서
참으로 고통스럽게 그리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퍼뜩 머리에 떠 오르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몰아 가 버리니 그 진실과 중심에 불구하고
그 나가는 방향은 결국 갈수록 자기만 자라게 되고 이 노선은 자신의 사닥다리에 그치며
이 과정에서도 이 노선의 원래 교훈으로 그 분의 잘못된 부분을 가려 내면 다행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폐단이 더 많을 수 있고 또는 지금은 작아 보여도 앞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분이 회개하고 처음부터 조용히 다시 배우고 현재 전하는 것은 과거 그대로만 전하고
만일 본인이 새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공회 내에서 우선 의견을 구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공회는 교권으로 진리 연구를 억압하거나 제한하는 그런 구조나 운영이 애초 차단되어서
본인이 예루살렘부터 얼마든지 외치고 그 다음 유다와 사마리아 순서로 나가야 할 것인데
예루살렘 안에는 이 도를 아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여기서 발언하면 잘못이 드러날까 하여
퍼뜩 외부에다 발표부터 하고 보니, 남이 하지 않은 말을 내가 먼저 했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 잡힌 명예심이 아니고야 왜 저러는지, 왜 이 활동이 공회 이름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공회의 체제도 그를 제어하지 않도록 되어 있고 그 어떤 면으로도 자제 시킬 수가 없어
그냥 지켜 볼 따름입니다.
3.'회'에 대한 연구?
'장로회는 지금 현재의 장로회가 있고, 초대교회의 장로의 회가(딤전4:14)
있습니다. 공회는 지금 현재의 공회가 있고, 초대교회의 공회가(막15:1)
있습니다. 장로의 회는 교회들의 그 장로들의 모임이고, 공회는 백성들의
그 장로들의 모임입니다. 그렇기에 사도행전 15장은 교회들의 그 장로회였
음을 상고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설명조차 그 설명이 남 모르는 무엇을 말하는 듯이 보이지만 공회의 원래 설명에다
자꾸 물을 갖다 부으면 나중에 공회의 참 전할 핵심 내용은 희미해 지고 잊혀지게 됩니다.
이렇게 대꾸하고 상대할 글이 아닌데도 안내를 더해 놓는 이유는 인터넷 검색에서 한 글만
자꾸 검색이 되고 그 검색이 반복 인용되면서 원전이 되어 다른 글을 적게 하거나 아니면
이 노선을 살피는 이들에게 일부 잘못된 글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알려 지게 되면 과거
우리 경험으로 이 노선 복음 운동에 너무 큰 훼방이 되어 훼방한 그들이 먼저 저주를 받고
공회의 어린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외부에서 이 노선을 향하는 발걸음을 크게 막았던 적이
있어 검색에서 최소한 두 글이 함께 올려져야 할 상황이어서 시간 소비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