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치와 법치 - 교회의 운영 방향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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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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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30 00:00
1. 인치와 법치
사람을 중심으로 통치가 이루어 지면 '인치'라고 하고, 법과 제도가 중심이 되면 법치라고 합니다. 미개한 사회일수록 인치가 대세이고 선진 사회가 될수록 법치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은 그럴 수밖에 없으므로 일반 세상은 그 어떤 사회나 조직이든지 인치가 법치로 전환 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법치가 인치에 비해서는 많은 면으로 나을 것입니다.
인류의 오랜 세월을 두고 인치의 세월이 많았기 때문에 20세기 기간에는 인치가 법치로만 바뀌면 금방 새 세계가 도래하고 모든 이에게 공평한 행복과 미래를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21세기 초반을 맞아 오늘 모든 사회 구조는 거의 다 법치 세상이 된 듯합니다. 그러나 세상 만사가 돌고 도는 것이니 법치가 대세가 되고 나면 또 인치가 왜 필요한지 재론이 될 것이고 그렇게 바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세대가 걸어 간 길을 다음 세대가 뒤 엎고, 그 다음 세대의 뒤를 살아 가는 이들은 그들 앞 세대가 그러했던 것처럼 또 그 전 세대를 뒤 엎으며 찰나의 세상을 바쁘게 살아 갑니다. 전도서 1장 2절 말씀대로 헛 되고 헛 되며 헛 되고 헛 된 짓만 하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귀신은 인간들이 알지도 못하고 바쁜 틈을 타서 모조리 지옥으로 데려 가고 있습니다.
2. 우리는 성경
- 성경은 인치
성경은 법치를 최소한으로 주셨고 그 법치 안에서 모든 것은 인치에 두고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 제도가 없어서 메시야를 못 박은 것이 아닙니다. 신약에 은혜의 구원이라는 이 제도를 주지 않아서 교회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도 아닙니다. 이 노선 빼고는 헌법이 없는 교단이 없는데 그 교단들에게 헌법이 없어서 분쟁이 생긴 것이 아니라 헌법을 가지고 분쟁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인치 중심으로 가는 이 노선에도 외견상 그들과 비슷한 분쟁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먹을 것을 두고 싸우는 것과 공산주의가 먹을 것을 두고 싸우는 것은 수준과 본질 차이가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배 부름의 감사를 몰라서 생기는 싸움이고 공산주의는 먹지 못해서 죽을 사선에서 생기는 싸움입니다. 경제의 생산량과 개인별 분급의 분량을 기준으로 보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다만 인간 본능에 상대적 감정이라는 것이 있어 자본주의가 인간 사회에서 경제 생산과 분급 체계상 최선 최고의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간의 근본 욕구는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 인치로 안 되는 것은 법치로도 불가능
인치로 안 되고 인치에 기댈 곳이 없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 흔히 법치가 그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철 없는 생각이니 깊이 생각하고 따져 보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마약 중독자에게 마약 주사를 다사 놔 주면 그 주사의 약효 동안에는 모든 고통이 없어 지고 아주 좋아 진다고 합니다. 인치로 해결하지 못한 교회를 법치로 대신하려 든다면 마약 주사로 일시 고통을 해소하는 길과 같습니다. 그 주사의 약효가 떨어 지고 나면 더 큰 고통이 찾아 오는 악순환이 계속 됩니다.
교회는 성경 하나만을 법으로 삼고 최소한의 몇 가지 방향이나 원칙만 제시한 다음, 모든 것은 한 사람 한 사람 지도자에게 맡겨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에 싸움이 생겼다 해서 절에 가면 해결 되는 것이 아니듯이, 부모가 자기를 덜 사랑한다 해서 옆 집에 다른 부모를 부모로 모시면 해결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인치가 잘못 되면 그 잘못 된 인치의 원인을 찾아 해결을 해야 하는데 귀신이 인치의 잘못을 치켜 들고 법치가 인치의 대안이라고 하는 것은 반 거짓말입니다. 마치 남한에서 경제적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북한의 평양 정권이 그들의 해방 세력이라고 그 쪽으로 다 가 버린 것은 역사와 상식을 몰라서 생긴 일인데, 집단 최면이요 역사의 기이한 현상입니다.
인치에 생긴 문제를 해결해 주는 법치가 있다면 좋습니다. 그런데 창조로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자녀로 삼아 놓고 이 인간을 위해 나머지 모든 것을 만들어 내셨고 움직이게 하셨습니다.
3. 초대형 교회와 지도자의 개인 능력
- 잘 된 곳이 있다면 인치의 결과
기독교를 국교로 가진 사회가 아닌 미국이나 우리 나라와 같은 사회에서 초대형 교회가 형성 되었다면 그 형성 과정에서 한 사람의 개인 실력이 있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법치로 초대형 교회를 만든 사례가 있다면 그 법치는 허울이고 그 법치 안에는 그 법치를 제시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 인물이 법치의 내용이니 결국 인치라는 말입니다.
공로자를 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법치를 만들어 그 법치가 성공을 했다 해도 그 후에 그 법치를 만든 사람이 없어 지고 나면 그 법치가 그 법치를 만든 사람이 없는데도 법치의 힘으로 인치를 대신할 수 있는가? 법치는 그대로 있으나 그 법치가 상대할 사람들은 시시각각 현실마다 변합니다. 인심이 변하고 사람이 죽고 나고 새로 일어 서며 환경에 따라 내나 그 사람인데도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달리 나오게 됩니다.
바로 된 인물이 있다면 잘못 된 법치를 고치고 바꾸어 사람을 살게 하고, 그 시대에 좋은 법치라도 그 사람이 없어 지고 나면 다음 세대들에게는 역사의 교훈은 될 수 있을지라도 새롭게 전개 되는 새 현실에서 새로운 인물에게는 맞지 않는 일이 생깁니다.
- 인치를 이어 갈 인물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다음을 이어 갈 인재를 주지 않으시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주지 않는데 사람이 법과 제도로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음 인재를 주지 않으면 우선 가능한 사람으로 대신하고 모든 전력을 하나님께 지도자를 주시도록 구하는 것이 신앙인의 할 일입니다.
지도자를 주시지 않는데 사람들이 법과 제도를 만들어 하나님 주시는 인물을 대신한다고 생각하고 시행에 들어 가는 순간, 이미 세상으로 타락하는 단체가 되었습니다. 뿌리 끊어 진 나무의 나머지 진행은 수목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다 해도 결국 한 길뿐입니다.
4.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한다면
- 초대형 교회와 공로자
교회의 규모뿐 아니라 그 어느 사안에서도 남 다른 면을 가진 결과가 나왔다면 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탁월하고 수고하고 공로가 있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 그 공로자의 사후
그 공로자에 이어 하나님께서 또 한 사람의 지도자를 주시면 그 시대는 이어 가는 것이고 주지 않으면 중단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결정이지 우리가 왈가왈부하고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여호수아를 주셨기 때문에 모세 사후가 이어 지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고 그 뒤에는 지도자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사 시대가 되면서 이스라엘 역사는 그렇게 진행 됩니다. 사사 시대 마지막인 사무엘 시대에 사람들이 인치가 아닌 법치로 그 문제점을 해결하려 했으나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세상이 아니라 교회가 살아 가는 법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는 점을 재삼 각인했으면 합니다. 이 것은 우리의 의논 결과와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를 운영하는 원칙입니다.
하나님께 붙들리는 사람이 있으면 해결 되는 것이 교회고, 하나님께 붙들리지 않고도 법과 제도로 길을 열어 보려는 것은 타락일 뿐입니다. 구해도 주지 않고 기다려도 주지 않는다면? 주실 때까지 호소하고 기다릴 뿐입니다. 그 호소가 많아 지고 길어 지게 되면? 때가 가깝다는 표시입니다. 모세를 주시기 전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의 형편이 그러했고, 사사기 시대가 늘 그렇게 해결을 했습니다.
- 오늘 국내와 세계의 대형 교회를 보며
그 대형 교회를 이룬 것이 '교회'를 그렇게 크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기업체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사교 클럽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사회복지단체를 만들었는지, 지성인들의 여가 선용의 기회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사실 쉽게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몇 교회는 확실하게 복음 운동에 전력하는 좋은 교회라고 보이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 곳들까지 그 지도자가 수고한 이후를 두고는 자기가 성령으로 시작한 그대로 그 후임도 성령으로 이어 가도록 그런 인물을 찾고 기르면 좋겠는데, 후임 문제가 생기면 갑자가 본토 친척 아비 집으로 돌아 와서 자녀의 앞 날을 위한 사업체로 보거나 아니면 자기 노후나 사후의 기념에 눈을 돌려 그 끝을 망쳐 놓는 경우를 봅니다.
그 와중에 어떤 분들은 자기 자녀 중에 실제 솔로몬처럼 다윗을 이어 갈 신앙의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귀신 떼가 교회 안과 밖에서 자녀로 이어 지면 무조건 죄라고 떠드니까 그 개 짓는 소리에 밀려서 신앙의 지도자로 그 교회를 이을 인물이 되지 않는 사람을 세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국에 수 많은 교회가 있으나 규모 면에서 크게 성공하는 교회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렵고 그 수도 희귀한데, 그 중에서도 복음으로 제대로 잘 만들어 진 교회들마저 세습의 유혹에 빠지거나 아니면 그런 오해를 받을까 해서 잘못 인계하는 바람에 성공한 좋은 교회들이 제대로 이어 지는 경우가 없다 할 만큼 되었습니다. 귀신들은 뒤로 돌아 앉아서 배를 잡고 우습다며 성공 파티를 하고 있고 성령은 대 탄식을 하고 계시는 형편입니다.
- 서부교회의 경우
백 목사님은 생전에 막내 사위를 후계자로 지켜 봤고 확정했습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보다 앞 서 돌아 가시는 바람에 자녀로 이어 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자녀가 아닌 분들이 서부교회를 이었고 그 서부교회는 회칠한 무덤이 되었습니다. 백 목사님은 돌아 가시기 전에 그렇게 될 상황을 전체 교인들에게 누누히 가르 쳤고 많은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현재도 백 목사님 자녀 중에 막내 따님과 같은 분은 서부교회를 이어 갈 신앙과 실력과 경력과 지도력을 고루 갖춘 분입니다. 그런데 막내 사위의 경우는 목사님이 후계자로 지명까지 하셨으나 막내 딸의 경우는 내면으로는 그 실력을 그렇게 봤으나 공식 거론을 하지 않았습니다. 실력은 되지만 공개적으로 지명을 하지 않은 것은 당신은 후임을 두고 어떤 언질도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가고, 그 뒤는 하나님께서 서부교회를 버리든지 아니면 그 딸을 통해 다시 앞 날을 이어 가게 하신다면 부친의 생전 지명 대신 하나님이 직접 현실을 그렇게 인도하시도록 맡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장로 님이 쓰신 내용 <<
:
: 기독교 통계 하나를 봤습니다. 국내의 초대형교회들은 한결같이 목회자 한 사람의 카리스마로 이룩한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목회자 한 사람의 카리스마에 의존해서 선 교회는 그 분이 돌아가시면 뒤끝이 허무해지는 것이 역사입니다. 좋은 현상일까요? 제도적으로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는 없을까요? 교계의 이런저런 근심을 토로해 보았습니다.
사람을 중심으로 통치가 이루어 지면 '인치'라고 하고, 법과 제도가 중심이 되면 법치라고 합니다. 미개한 사회일수록 인치가 대세이고 선진 사회가 될수록 법치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은 그럴 수밖에 없으므로 일반 세상은 그 어떤 사회나 조직이든지 인치가 법치로 전환 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법치가 인치에 비해서는 많은 면으로 나을 것입니다.
인류의 오랜 세월을 두고 인치의 세월이 많았기 때문에 20세기 기간에는 인치가 법치로만 바뀌면 금방 새 세계가 도래하고 모든 이에게 공평한 행복과 미래를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21세기 초반을 맞아 오늘 모든 사회 구조는 거의 다 법치 세상이 된 듯합니다. 그러나 세상 만사가 돌고 도는 것이니 법치가 대세가 되고 나면 또 인치가 왜 필요한지 재론이 될 것이고 그렇게 바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세대가 걸어 간 길을 다음 세대가 뒤 엎고, 그 다음 세대의 뒤를 살아 가는 이들은 그들 앞 세대가 그러했던 것처럼 또 그 전 세대를 뒤 엎으며 찰나의 세상을 바쁘게 살아 갑니다. 전도서 1장 2절 말씀대로 헛 되고 헛 되며 헛 되고 헛 된 짓만 하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귀신은 인간들이 알지도 못하고 바쁜 틈을 타서 모조리 지옥으로 데려 가고 있습니다.
2. 우리는 성경
- 성경은 인치
성경은 법치를 최소한으로 주셨고 그 법치 안에서 모든 것은 인치에 두고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 제도가 없어서 메시야를 못 박은 것이 아닙니다. 신약에 은혜의 구원이라는 이 제도를 주지 않아서 교회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도 아닙니다. 이 노선 빼고는 헌법이 없는 교단이 없는데 그 교단들에게 헌법이 없어서 분쟁이 생긴 것이 아니라 헌법을 가지고 분쟁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인치 중심으로 가는 이 노선에도 외견상 그들과 비슷한 분쟁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먹을 것을 두고 싸우는 것과 공산주의가 먹을 것을 두고 싸우는 것은 수준과 본질 차이가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배 부름의 감사를 몰라서 생기는 싸움이고 공산주의는 먹지 못해서 죽을 사선에서 생기는 싸움입니다. 경제의 생산량과 개인별 분급의 분량을 기준으로 보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다만 인간 본능에 상대적 감정이라는 것이 있어 자본주의가 인간 사회에서 경제 생산과 분급 체계상 최선 최고의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간의 근본 욕구는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 인치로 안 되는 것은 법치로도 불가능
인치로 안 되고 인치에 기댈 곳이 없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 흔히 법치가 그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철 없는 생각이니 깊이 생각하고 따져 보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마약 중독자에게 마약 주사를 다사 놔 주면 그 주사의 약효 동안에는 모든 고통이 없어 지고 아주 좋아 진다고 합니다. 인치로 해결하지 못한 교회를 법치로 대신하려 든다면 마약 주사로 일시 고통을 해소하는 길과 같습니다. 그 주사의 약효가 떨어 지고 나면 더 큰 고통이 찾아 오는 악순환이 계속 됩니다.
교회는 성경 하나만을 법으로 삼고 최소한의 몇 가지 방향이나 원칙만 제시한 다음, 모든 것은 한 사람 한 사람 지도자에게 맡겨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에 싸움이 생겼다 해서 절에 가면 해결 되는 것이 아니듯이, 부모가 자기를 덜 사랑한다 해서 옆 집에 다른 부모를 부모로 모시면 해결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인치가 잘못 되면 그 잘못 된 인치의 원인을 찾아 해결을 해야 하는데 귀신이 인치의 잘못을 치켜 들고 법치가 인치의 대안이라고 하는 것은 반 거짓말입니다. 마치 남한에서 경제적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북한의 평양 정권이 그들의 해방 세력이라고 그 쪽으로 다 가 버린 것은 역사와 상식을 몰라서 생긴 일인데, 집단 최면이요 역사의 기이한 현상입니다.
인치에 생긴 문제를 해결해 주는 법치가 있다면 좋습니다. 그런데 창조로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자녀로 삼아 놓고 이 인간을 위해 나머지 모든 것을 만들어 내셨고 움직이게 하셨습니다.
3. 초대형 교회와 지도자의 개인 능력
- 잘 된 곳이 있다면 인치의 결과
기독교를 국교로 가진 사회가 아닌 미국이나 우리 나라와 같은 사회에서 초대형 교회가 형성 되었다면 그 형성 과정에서 한 사람의 개인 실력이 있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법치로 초대형 교회를 만든 사례가 있다면 그 법치는 허울이고 그 법치 안에는 그 법치를 제시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 인물이 법치의 내용이니 결국 인치라는 말입니다.
공로자를 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법치를 만들어 그 법치가 성공을 했다 해도 그 후에 그 법치를 만든 사람이 없어 지고 나면 그 법치가 그 법치를 만든 사람이 없는데도 법치의 힘으로 인치를 대신할 수 있는가? 법치는 그대로 있으나 그 법치가 상대할 사람들은 시시각각 현실마다 변합니다. 인심이 변하고 사람이 죽고 나고 새로 일어 서며 환경에 따라 내나 그 사람인데도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달리 나오게 됩니다.
바로 된 인물이 있다면 잘못 된 법치를 고치고 바꾸어 사람을 살게 하고, 그 시대에 좋은 법치라도 그 사람이 없어 지고 나면 다음 세대들에게는 역사의 교훈은 될 수 있을지라도 새롭게 전개 되는 새 현실에서 새로운 인물에게는 맞지 않는 일이 생깁니다.
- 인치를 이어 갈 인물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다음을 이어 갈 인재를 주지 않으시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주지 않는데 사람이 법과 제도로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음 인재를 주지 않으면 우선 가능한 사람으로 대신하고 모든 전력을 하나님께 지도자를 주시도록 구하는 것이 신앙인의 할 일입니다.
지도자를 주시지 않는데 사람들이 법과 제도를 만들어 하나님 주시는 인물을 대신한다고 생각하고 시행에 들어 가는 순간, 이미 세상으로 타락하는 단체가 되었습니다. 뿌리 끊어 진 나무의 나머지 진행은 수목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다 해도 결국 한 길뿐입니다.
4.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한다면
- 초대형 교회와 공로자
교회의 규모뿐 아니라 그 어느 사안에서도 남 다른 면을 가진 결과가 나왔다면 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탁월하고 수고하고 공로가 있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 그 공로자의 사후
그 공로자에 이어 하나님께서 또 한 사람의 지도자를 주시면 그 시대는 이어 가는 것이고 주지 않으면 중단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결정이지 우리가 왈가왈부하고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여호수아를 주셨기 때문에 모세 사후가 이어 지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고 그 뒤에는 지도자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사 시대가 되면서 이스라엘 역사는 그렇게 진행 됩니다. 사사 시대 마지막인 사무엘 시대에 사람들이 인치가 아닌 법치로 그 문제점을 해결하려 했으나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세상이 아니라 교회가 살아 가는 법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는 점을 재삼 각인했으면 합니다. 이 것은 우리의 의논 결과와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를 운영하는 원칙입니다.
하나님께 붙들리는 사람이 있으면 해결 되는 것이 교회고, 하나님께 붙들리지 않고도 법과 제도로 길을 열어 보려는 것은 타락일 뿐입니다. 구해도 주지 않고 기다려도 주지 않는다면? 주실 때까지 호소하고 기다릴 뿐입니다. 그 호소가 많아 지고 길어 지게 되면? 때가 가깝다는 표시입니다. 모세를 주시기 전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의 형편이 그러했고, 사사기 시대가 늘 그렇게 해결을 했습니다.
- 오늘 국내와 세계의 대형 교회를 보며
그 대형 교회를 이룬 것이 '교회'를 그렇게 크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기업체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사교 클럽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사회복지단체를 만들었는지, 지성인들의 여가 선용의 기회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사실 쉽게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몇 교회는 확실하게 복음 운동에 전력하는 좋은 교회라고 보이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 곳들까지 그 지도자가 수고한 이후를 두고는 자기가 성령으로 시작한 그대로 그 후임도 성령으로 이어 가도록 그런 인물을 찾고 기르면 좋겠는데, 후임 문제가 생기면 갑자가 본토 친척 아비 집으로 돌아 와서 자녀의 앞 날을 위한 사업체로 보거나 아니면 자기 노후나 사후의 기념에 눈을 돌려 그 끝을 망쳐 놓는 경우를 봅니다.
그 와중에 어떤 분들은 자기 자녀 중에 실제 솔로몬처럼 다윗을 이어 갈 신앙의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귀신 떼가 교회 안과 밖에서 자녀로 이어 지면 무조건 죄라고 떠드니까 그 개 짓는 소리에 밀려서 신앙의 지도자로 그 교회를 이을 인물이 되지 않는 사람을 세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국에 수 많은 교회가 있으나 규모 면에서 크게 성공하는 교회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렵고 그 수도 희귀한데, 그 중에서도 복음으로 제대로 잘 만들어 진 교회들마저 세습의 유혹에 빠지거나 아니면 그런 오해를 받을까 해서 잘못 인계하는 바람에 성공한 좋은 교회들이 제대로 이어 지는 경우가 없다 할 만큼 되었습니다. 귀신들은 뒤로 돌아 앉아서 배를 잡고 우습다며 성공 파티를 하고 있고 성령은 대 탄식을 하고 계시는 형편입니다.
- 서부교회의 경우
백 목사님은 생전에 막내 사위를 후계자로 지켜 봤고 확정했습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보다 앞 서 돌아 가시는 바람에 자녀로 이어 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자녀가 아닌 분들이 서부교회를 이었고 그 서부교회는 회칠한 무덤이 되었습니다. 백 목사님은 돌아 가시기 전에 그렇게 될 상황을 전체 교인들에게 누누히 가르 쳤고 많은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현재도 백 목사님 자녀 중에 막내 따님과 같은 분은 서부교회를 이어 갈 신앙과 실력과 경력과 지도력을 고루 갖춘 분입니다. 그런데 막내 사위의 경우는 목사님이 후계자로 지명까지 하셨으나 막내 딸의 경우는 내면으로는 그 실력을 그렇게 봤으나 공식 거론을 하지 않았습니다. 실력은 되지만 공개적으로 지명을 하지 않은 것은 당신은 후임을 두고 어떤 언질도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가고, 그 뒤는 하나님께서 서부교회를 버리든지 아니면 그 딸을 통해 다시 앞 날을 이어 가게 하신다면 부친의 생전 지명 대신 하나님이 직접 현실을 그렇게 인도하시도록 맡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장로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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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통계 하나를 봤습니다. 국내의 초대형교회들은 한결같이 목회자 한 사람의 카리스마로 이룩한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목회자 한 사람의 카리스마에 의존해서 선 교회는 그 분이 돌아가시면 뒤끝이 허무해지는 것이 역사입니다. 좋은 현상일까요? 제도적으로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는 없을까요? 교계의 이런저런 근심을 토로해 보았습니다.
대형교회와 목회자의 카리스마
기독교 통계 하나를 봤습니다. 국내의 초대형교회들은 한결같이 목회자 한 사람의 카리스마로 이룩한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목회자 한 사람의 카리스마에 의존해서 선 교회는 그 분이 돌아가시면 뒤끝이 허무해지는 것이 역사입니다. 좋은 현상일까요? 제도적으로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는 없을까요? 교계의 이런저런 근심을 토로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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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통계 하나를 봤습니다. 국내의 초대형교회들은 한결같이 목회자 한 사람의 카리스마로 이룩한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목회자 한 사람의 카리스마에 의존해서 선 교회는 그 분이 돌아가시면 뒤끝이 허무해지는 것이 역사입니다. 좋은 현상일까요? 제도적으로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는 없을까요? 교계의 이런저런 근심을 토로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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