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목사님과 1984년 시기

문의답변      


백 목사님과 1984년 시기

분류
yilee 0
- 백영희 설교 세계


백 목사님의 설교는 주경과 교리에 깊은 내용을 가지면서도 항상 자기와 맡겨 진 교인들의 신앙 환경을 현실로 받아 그 현실을 통해 하나님 원하시는 면을 살펴서 설교를 합니다. 그래서 백 목사님의 설교록 이름은 '목회'를 앞에 굳이 붙입니다. 하나님께서 현실을 조성해 주시니 그 현실 안에서 지켜야 할 말씀을 찾았고 증거했고 앞 서 갔고 교인들을 길러 갔습니다. 그래서 백 목사님의 설교는 교리와 성경 해석에 있어 어느 신학서보다 더 깊은 세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설교 방향은 분명하게 현실을 지키며 현실을 헤쳐 나간 설교였습니다.


이런 면 때문에 이 홈은 백 목사님의 전기와 시대 별 공회 상황을 따로 살펴 자료화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설교가 나오게 되었는지 그 당시의 세계적 흐름이 있었는지 국내 안보 상황이나 생활 여건이나 사회 현상이 있었는지 아니면 공회와 교회나 목사님 개인에게 그런 설교를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 1984년의 교계 상황


순복음교회가 1970년대를 통해 갑자기 세계적 교회로 떠 오르면서 국내 교세 판도를 뒤 흔들었고 일반 교계가 일제히 이단으로 정죄했던 환경이 있었습니다. 공회는 건설구원론이 있어 순복음을 천국에 가지 못할 기본구원 문제로 볼 여지는 없었으나 건설구원으로 자라 가야 하는 신앙 면에서 본다면 순복음교회의 주장과 활동은 교회의 본질 방향을 너무 흐리고 있었으므로 그런 차원에서 비판을 했습니다.


순복음교회의 초기 부흥기는 공회와는 신앙의 차원과 범위가 너무 멀었기 때문에 공회에 미치는 영향이 없었으므로 목사님은 가끔 언급할 정도였으나 일반 교계로서는 사활을 걸 정도로 투쟁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순복음교회 식으로 하지 않고는 살아 남을 수가 없다고 본 일반 교계가 1980년대에 들어 서면서 일제히 순복음교회화 되어 갑니다. 그리고 대세를 이룹니다. 1980년대에 접어 들며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교계는 순복음화 되었고 그 여세가 공회 문턱을 넘을 듯했으므로 목사님께서는 순복음의 문제점을 강단에서 정면 비판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목사님이 계셨으므로 공회는 전국 거의 모든 교단이 버티지 못하고 동화가 되었던 순복음 방식에서 전혀 물이 들지 않았습니다만 목사님은 매사 그 어떤 것이든 장점과 단점을 함께 보지 하나만 보지를 않습니다. 순복음의 교리나 복음운동의 방향과 방법론은 크게 지적을 했으나 그들의 기도에 매달리는 자세와 눈에 보이는 복을 구하는 면을 보면서 공회가 교리 정립과 발전 과정에서 오래 동안 후순위로 두었던 과거 기도와 보이는 복에 대한 방치를 최소한으로 회복 시켰습니다.


1980년대에 다시 시작 된 기도회와 1983년 경으로 시작 되는 병 낫는 기도를 모르는 분들은 순복음의 영향이라고 하는데 공회는 1936년 일제 시대부터 해방 후를 거치며 훗날의 순복음교회는 흉내도 낼 수 없을 정도로 병 낫는 역사와 기도의 어린 시기를 가졌습니다. 그 후 교계적으로 공회의 역할이 교리와 주경과 교단으로서 맡아야 할 위치가 있어 하나님은 공회의 방향을 그렇게 인도했고 1970년대는 이미 순복음의 장년반 전도에 비하여 더욱 폭발적인 주일학교 전도에 주력을 했습니다. 순복음은 오로지 보이는 성과였고 내실은 없었으나 공회는 보이는 면은 말할 것도 없고 볼 수 없는 면으로는 차원이 다른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순복음교회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순복음의 어린 신앙에서 노력하는 기도와 병 낫는 보이는 복을 지켜 보며 공회는 과거 버려 두다시피 한 그런 면을 다시 더 높은 차원에서 재개할 필요를 느꼈고 공회의 1980년대 모습이 형성 됩니다. 1980년대 백 목사님의 설교 전체의 흐름 속에는 교계적 이런 상황이 있었음을 알면 설교의 이해 차원이 달라 집니다.


- 84년 1월 교역자회


한 편 공회가 발전 과정에서 초기 열심 중에 몇 가지를 잠 재워 둘 정도로 미뤘다가 다시 찾아 가지는 과정에서 백태영 목사님은 공회가 순복음교회처럼 귀신노름이나 한다며 백 목사님을 상대로 공개 비판을 하는 일이 생깁니다. 과거에는 백 목사님의 지도를 거부하면 공회를 탈퇴하고 다른 길로 가면 갔지 공회 내에서 공개 거부하는 일은 없었는데 백태영 목사님은 공회 역사상 처음으로 공석에서 공개적으로 반항을 하게 됩니다.


1982년 7월 백 목사님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정도의 중환 시기에 백태영 목사님은 공회의 후임을 생각하고 움직였다가 대책망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중환기를 거쳐 다시 회복한 목사님은 백태영 목사님보다 더 건강해 지셨고 백태영 목사님으로서는 자신이 더 일찍 죽을 수 있는 정도로 건강한 백 목사님을 향하여 때를 기다리며 순종하는 모습을 벗고 공개 반항을 하면서 공회 내에서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시작합니다.


백 목사님은 설교 시간에 이 문제를 실명으로 공개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알 만한 분들은 그 시기에 가끔 나오는 이런 배경의 설교 내용을 통해 백태영 목사님은 이 노선을 완전히 벗어 났으나 때를 기다리며 내부에서 잠복해 있는 외부 신앙으로 분류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공회 내의 지교회 교인들을 중심으로 자칭 선지자들과 영안이 밝은 공회인들은 백태영 목사님의 잠실동교회의 이탈이 1989년 8월 이후로 보는 분도 있고 1996년 9월 이후로 보는 분도 있고 심지어 열린 예배를 시도한 1999년으로 보는 분들도 있으나 이런 분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주관에 빠졌다고 해야 할 정도입니다. 아는 분들은 최소한 1984년 1월의 교역자회 공개 반항을, 그보다 더 앞으로 가면 1982년 7월의 중환기 교권욕을, 더 앞으로 가면 1979년 미국 목회 시기로, 더 앞으로 가면 백태영 목사님의 훗날 고백처럼 처음부터 다른 길이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1984년 설교에서 어떤 면을 보셨는지 몰라도 그 시기 앞 뒤로는 이런 배경이 있어서 설교를 통해 이런 면들을 고치고 앞으로 백 목사님 사후에 이런 내부 문제가 공회 노선과 개인 신앙을 손해 보이게 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설교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 1984년 봄의 가정사


설교록에는 가끔 표시가 되어 있으나 1984년은 목사님의 평생을 통해 중요한 시기이며 교훈의 흐름과 구체적 행동의 변화 등이 나타 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목사님은 자녀 전부를 오로지 복음의 제단에 바친다는 일념이 너무 강했습니다. 자라 가는 자녀분들을 강제할 수 없어 중도에 포기했지 목사님으로서는 사력을 다했고 이 사실은 모든 가족들이 목회를 하지 못하는 이상 부친에 대한 마음의 짐을 벗을 수 없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일반 교인들로서는 아름답게 보이는 노력이나 부친의 이런 노력 때문에 자녀 입장에서 당한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일단 자녀 일곱 분의 신앙은 겉 보기는 대부분 조용한 신앙인으로 보이나 내심으로는 거의 다 대단한 분들입니다. 늘 세상 길을 다 막아서라도 목회자로 써 달라는 목사님의 기도는 자녀들에게 그 기도의 능력을 평소 봐서 알기 때문에 인생의 심각한 난제였습니다. 1984년에 목사님은 그 동안 감추어 두었던 당시 최근의 집안 일을 공개합니다. 큰 사위가 한국으로 목회를 배우기 위해 돌아 오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된 배경으로는 미국 생활 20여 년을 통해 미국에서 성공하여 큰 돈을 벌고 대궐 같은 집에 캐딜락을 몰며 자녀들이 다 명문 사립을 다니던 순간 여러 가지 일들이 동시 다발로 발생하면서 모든 사업을 다 접고 완전히 빈 손이 되었는데 그 분들은 재기할 능력이 있다 해도 그 모든 일이 아버지 백 목사님의 기도와 소원 때문에 하나님께서 막고 나섰다는 거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절정기 상류층이 느끼는 세상 좋은 모든 평안과 풍요로움을 이미 다 가지고 누리며 살던 미국의 자녀들을 향해 말세 주님 재림이 임박했음을 절절히 느끼고 또 신앙 지도자로서 공회의 복음 일꾼 하나를 더 세우기 위해 불러 들일 때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말세, 회개, 다급한 시기, 급한 소식... 등으로 많은 말씀들이 이어 지고 있었습니다. 좁게는 그 분의 가정 구원을 위한 다급한 소식이었으나 그 분과 그 가정을 통해 하나님은 이 노선 전체를 향해 그리고 이후 세대인 오늘을 향해 외친 말씀이었습니다. 깨닫기에 둔하고 미련한 우리가 오늘 이 시대를 살펴 보건대 우리를 위한 말세 다급한 위기의 신앙을 깨우치기 위한 목적도 들어 있었습니다.


지금 이 홈에서 출간하는 '백영희목회설교록' 등의 첫 머리에 '가족에 대한 감사'를 표시한 이유도 이 곳에서 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여러 형태의 고초를 겪은 분들인데 우리는 그 가족들의 일차 고초 때문에 비교적 좀 먼 거리에서 눈치를 살피며 걷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 .. 님이 쓰신 내용 <<

:

: 개인적으로 84년도 말씀이 제게 유난히 은혜가 더욱 되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

: 공회적으로나 서부교회에 1984년 전후로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요?

:

: 말씀으로만 받지 배경을 모르기때문에 가끔씩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

: 설교말씀에 언급하실때도 있지만...
1984년
개인적으로 84년도 말씀이 제게 유난히 은혜가 더욱 되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공회적으로나 서부교회에 1984년 전후로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요?


말씀으로만 받지 배경을 모르기때문에 가끔씩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설교말씀에 언급하실때도 있지만...
---------------------------
쓰기 문의답변 초기목록
(1) 항목별 검색 주제별 | 가나다별 | test 주제별 정리
(2) 게시판 검색
(3) 통합 검색
분류별 자료보기
교리 이단, 신학 정치, 과학, 종교, 사회, 북한
교단 [교단] 교회사[교회사]
통일 [통일] 소식 [소식]
통일 [통일] 통일 [통일] 성경 소식 [소식] 교계동정
번호제목이름날짜
  • 8713
    yilee
    2011.01.23일
  • 8712
    교인1
    2011.01.22토
  • 8711
    yilee
    2011.01.22토
  • 8710
    평범
    2011.01.21금
  • 8709
    yilee
    2011.01.22토
  • 8708
    ..
    2011.01.19수
  • 8707
    yilee
    2011.01.19수
  • 8706
    ..
    2011.01.19수
  • 8705
    새교인
    2011.01.17월
  • 8704
    yilee
    2011.01.17월
  • 8703
    봉사부
    2011.01.16일
  • 8702
    교인1
    2011.01.16일
  • 8701
    yilee
    2011.01.16일
  • 8700
    교인
    2011.01.14금
  • 8699
    yilee
    2011.01.15토
  • 8698
    교역자
    2011.01.13목
  • 8697
    yilee
    2011.01.14금
  • 8696
    김현숙
    2011.01.11화
  • 8695
    김 정수
    2011.01.12수
  • 8694
    교인
    2011.01.13목
  • 8693
    yilee
    2011.01.14금
  • 8692
    김현숙
    2011.01.12수
  • 8691
    택자
    2011.01.10월
  • 8690
    김승재
    2011.12.01목
  • 8689
    yilee
    2011.01.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