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층천 관련 내용
| 분류 |
|---|
편집부
0
2009.03.05 00:00
자료 확인이 간단하고 쉬운 것은 '편집부'에서 다른 직원이 수고를 먼저 하시고, 답변에 보충이 필요하면 따로 더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구 질문은 이 홈의 /초기화면/활용자료/에서나 /주해사전/에서 먼저 확인해 보시도록 요청합니다. - 관리자
-------------------------------------------------------------------------------------
질문하신 내용은
고후 12:1-4의 말씀입니다.
성경 본문에는 '세째 하늘, 낙원'으로 나옵니다.
설교록에는 직접적인 해석은 없지만
82.5.12.밤 설교에 보면
삼층천은 '영계'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역시 삼층천에 대한 직접 해석은 없지만
81.11.22.주일오전의 내용이
삼층천과 관련 있는 말씀입니다.
이 내용은 '활용자료-주해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두 설교 중에서 해당되는 내용을 발췌하여 첨부합니다.
-------------------------------------------------------------------------------------
…
어떤 입신한 성자의 전기를 보니까, 그분이 입신했는데, 영계에, 바울이 삼층천에 간 거와 같이 영계 가서 보니까 참 놀랄 일이, 놀랄 일이 있었다고. 놀랄 꼴을 봤다고. 왜? 자기가 아는 사람들인데, 아는 사람들인데 아주 사람들에게 멸시 천대받아 흉한 사람들인데 그 하늘나라에 어떻게 지극히 영광스러운 자인지? 세상에서 그 사람들은 모두 다 성자라 성녀라 하는 사람들인데 가보니까 아주 허무한 자리에 떨어져 있더라고. 세상 사람이 보는 데에 믿음과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의 믿음이 이렇게 차이 있는 데 대해서 크게 놀랬다고. 그 사람이 놀란 것 둘을 말했는데 ‘세상과 하늘나라가 이렇게 놀라게 다르더라.’ 또 하나 놀란 것은 ‘이 세상에 불원간에 땅 위에 참 인간이 피조물이 크게 놀랄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말했습니다. …
(820512수밤 중에서)
-------------------------------------------------------------------------------------
(주해사전)
*고린도후서12:1-5
여기 삼층천에, 삼층천에 이끌려 올라가 가지고 거기서 보고 들은 것이 있는데, 삼층천에 올라가 가지고 거기서 보고 들은 것이 있는데, 그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못한다 이랬습니다.
삼층천에 이끌려 갈 때에 이끌려 가는 그 사람이 몸 밖에 있었는지 몸 안에 있었는지, 그의 심령만 이끌려 갔는지 몸 채로 이끌려 갔는지, 그러면 자신은 분별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사람은 제 삼자 같이 이렇게 말했으나 앞뒤를 맞춰보면 실은 사도 바울 자신을 가리킨 것이 분명합니다.
사도 바울이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일층 이층 삼층이 되는 삼층천에 가 가지고 그가 보고 들은 그것은 사람의 말로는 아무리 표현을 할래야 표현을 할 수 없는 것이요, 또 말을 할 수가 없다, 말을 하면 도리어 폐단될 것이기 때문에, 유익되지 못하고 폐단이 될 것이기 때문에 자타의 폐단을 인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삼층천에 올라가 가지고 보고 듣고 말할 수 없는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것을 우리에게는 좀 궁금하게 되겠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그 사실을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그 후 그의 행동을 인해서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바울이 이렇게 삼층천에 가서 무엇을 봤기에, 무엇을 들었기에 인간의 말로 말할 수 없는 그것을 보고 들었는데 ‘그것을 말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고 또 그걸 말하면 도리어 결과적으로 유익이 없을까 해서 말을 안 한다, 또 자기를 지나치게 높게 인정할까 해서 안 한다 이랬지마는 그의 행동을 봐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이북에 납치돼 가지고 갔다가 와 가지고 여기 와서 물어야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마는 그 사람 행동을 보면 그쪽이 어떻더라 하는 것이 그 행동에서 나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울이 이 복음을 위해서는 자기가 살지 않을 수 없었고, 이 복음을 위해서 사는, 이 복음 위해서 바쳐진 것은, 이 복음 위해서 희생된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아니하고 오히려 희생을 못해서 마음의 고통이 됐고, 또 희생하게 된 데 대해서는 그는 기쁨이 측량할 수 없다고 말을 했고 이래 한 것을 보아서 삼층천에서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우리는 추측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
그가 삼층천에 올라갈 때에 세상에서 자기는 참 율법으로써는 흠이 없는 자로 이렇게 살았지마는 삼층천에 가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문서로, 문서로 우리에게 전달해 준, 신구약 성경으로 이렇다, 이렇다 하는 그 전달하는 이 전달한 이것을 그분이 보고 지켰고, 또 이것보다 더 확실한 것, 이보다 더 확실한 것 성신의 감화를 받아 가지고, 문서만 보고 지식적으로 깨닫는 그것을 탁월한 성신의 감화를 받아서 깨달아 그 실상에 가까운 것을 보고 그대로 살았지마는 삼층천에 올라 가 가지고,
이제는 문서로 증거한 것보다, 영감으로 증거한 것보다 더 실상에 가까운 삼층천에 가보니까 성경에 나타내준 사실이 너무도, 인간이 측량 못할 만큼 너무도 크고, 너무도 두렵고, 너무도 존귀하고, 너무도 가치 있는 그 실상을, 여기 나타낸 그 실상을 더 똑똑히 본 것이 아니겠느냐?
이러니까 바울이 그 후 모든 생애가 다른 사람보다 독특히 뛰어난 그런 생애를 하되 그분은 세상에서 어떤 위험이 왔지마는 그 위험으로 인해서 두려워해 보지를 않았습니다. 그 위험으로 인해서 두려워 보지를 않았고 또 이 복음을 인해서 고생을 수없이 했지마는 그 고생한 데 대해서 불만이나 불평이나 원망이나 불만이 하나도 없었고, 이렇게 밤낮 충성을 다하고도 ‘이제는 내가 할 만큼 했다.’ 하는 그 흐뭇한 생각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하고 늘 자기는 하지 못한 빚진 자, 무익한 종, 죄인, 괴수 죄인, 만삭되지 못해서 낳은 자와 같은 무능자,
자꾸 이것만 바울이 그이에 사무쳤기 때문에, 그는 말하기를 시간이 지나가고 자꾸 늙어져 갈수록 마치 무거운 짐 진 거와 같이 그분을 대하고, 주님을 대할 것과 주님의 나라에 가서 모든 만물 앞에서 나타날 것을 생각할 때에 세상에서 이제까지 산 그 생활이 너무 자기 마음에 후회스럽고 원통해서,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그 일이 무거운 짐 진 거와 같이 자기에게 눌린다 했습니다. 무거운 짐 진 거와 같이, 자꾸 갈수록 마음이 더 눌리고, 더 충성하지 못하고 더 그분 앞에서 더 시행하지 못했고 더 감사하지 못했고 그분을 높이지 못했고 그분을 아는 자로 살지 못한 이것을 그는 무거운 짐 진 거와 같이 고통스럽다고 말을 했습니다.
(81112201) 1
-------------------------------------------------------------------------------------
질문하신 내용은
고후 12:1-4의 말씀입니다.
성경 본문에는 '세째 하늘, 낙원'으로 나옵니다.
설교록에는 직접적인 해석은 없지만
82.5.12.밤 설교에 보면
삼층천은 '영계'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역시 삼층천에 대한 직접 해석은 없지만
81.11.22.주일오전의 내용이
삼층천과 관련 있는 말씀입니다.
이 내용은 '활용자료-주해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두 설교 중에서 해당되는 내용을 발췌하여 첨부합니다.
-------------------------------------------------------------------------------------
…
어떤 입신한 성자의 전기를 보니까, 그분이 입신했는데, 영계에, 바울이 삼층천에 간 거와 같이 영계 가서 보니까 참 놀랄 일이, 놀랄 일이 있었다고. 놀랄 꼴을 봤다고. 왜? 자기가 아는 사람들인데, 아는 사람들인데 아주 사람들에게 멸시 천대받아 흉한 사람들인데 그 하늘나라에 어떻게 지극히 영광스러운 자인지? 세상에서 그 사람들은 모두 다 성자라 성녀라 하는 사람들인데 가보니까 아주 허무한 자리에 떨어져 있더라고. 세상 사람이 보는 데에 믿음과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의 믿음이 이렇게 차이 있는 데 대해서 크게 놀랬다고. 그 사람이 놀란 것 둘을 말했는데 ‘세상과 하늘나라가 이렇게 놀라게 다르더라.’ 또 하나 놀란 것은 ‘이 세상에 불원간에 땅 위에 참 인간이 피조물이 크게 놀랄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말했습니다. …
(820512수밤 중에서)
-------------------------------------------------------------------------------------
(주해사전)
*고린도후서12:1-5
여기 삼층천에, 삼층천에 이끌려 올라가 가지고 거기서 보고 들은 것이 있는데, 삼층천에 올라가 가지고 거기서 보고 들은 것이 있는데, 그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못한다 이랬습니다.
삼층천에 이끌려 갈 때에 이끌려 가는 그 사람이 몸 밖에 있었는지 몸 안에 있었는지, 그의 심령만 이끌려 갔는지 몸 채로 이끌려 갔는지, 그러면 자신은 분별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사람은 제 삼자 같이 이렇게 말했으나 앞뒤를 맞춰보면 실은 사도 바울 자신을 가리킨 것이 분명합니다.
사도 바울이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일층 이층 삼층이 되는 삼층천에 가 가지고 그가 보고 들은 그것은 사람의 말로는 아무리 표현을 할래야 표현을 할 수 없는 것이요, 또 말을 할 수가 없다, 말을 하면 도리어 폐단될 것이기 때문에, 유익되지 못하고 폐단이 될 것이기 때문에 자타의 폐단을 인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삼층천에 올라가 가지고 보고 듣고 말할 수 없는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것을 우리에게는 좀 궁금하게 되겠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그 사실을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그 후 그의 행동을 인해서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바울이 이렇게 삼층천에 가서 무엇을 봤기에, 무엇을 들었기에 인간의 말로 말할 수 없는 그것을 보고 들었는데 ‘그것을 말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고 또 그걸 말하면 도리어 결과적으로 유익이 없을까 해서 말을 안 한다, 또 자기를 지나치게 높게 인정할까 해서 안 한다 이랬지마는 그의 행동을 봐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이북에 납치돼 가지고 갔다가 와 가지고 여기 와서 물어야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마는 그 사람 행동을 보면 그쪽이 어떻더라 하는 것이 그 행동에서 나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울이 이 복음을 위해서는 자기가 살지 않을 수 없었고, 이 복음을 위해서 사는, 이 복음 위해서 바쳐진 것은, 이 복음 위해서 희생된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아니하고 오히려 희생을 못해서 마음의 고통이 됐고, 또 희생하게 된 데 대해서는 그는 기쁨이 측량할 수 없다고 말을 했고 이래 한 것을 보아서 삼층천에서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우리는 추측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
그가 삼층천에 올라갈 때에 세상에서 자기는 참 율법으로써는 흠이 없는 자로 이렇게 살았지마는 삼층천에 가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문서로, 문서로 우리에게 전달해 준, 신구약 성경으로 이렇다, 이렇다 하는 그 전달하는 이 전달한 이것을 그분이 보고 지켰고, 또 이것보다 더 확실한 것, 이보다 더 확실한 것 성신의 감화를 받아 가지고, 문서만 보고 지식적으로 깨닫는 그것을 탁월한 성신의 감화를 받아서 깨달아 그 실상에 가까운 것을 보고 그대로 살았지마는 삼층천에 올라 가 가지고,
이제는 문서로 증거한 것보다, 영감으로 증거한 것보다 더 실상에 가까운 삼층천에 가보니까 성경에 나타내준 사실이 너무도, 인간이 측량 못할 만큼 너무도 크고, 너무도 두렵고, 너무도 존귀하고, 너무도 가치 있는 그 실상을, 여기 나타낸 그 실상을 더 똑똑히 본 것이 아니겠느냐?
이러니까 바울이 그 후 모든 생애가 다른 사람보다 독특히 뛰어난 그런 생애를 하되 그분은 세상에서 어떤 위험이 왔지마는 그 위험으로 인해서 두려워해 보지를 않았습니다. 그 위험으로 인해서 두려워 보지를 않았고 또 이 복음을 인해서 고생을 수없이 했지마는 그 고생한 데 대해서 불만이나 불평이나 원망이나 불만이 하나도 없었고, 이렇게 밤낮 충성을 다하고도 ‘이제는 내가 할 만큼 했다.’ 하는 그 흐뭇한 생각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하고 늘 자기는 하지 못한 빚진 자, 무익한 종, 죄인, 괴수 죄인, 만삭되지 못해서 낳은 자와 같은 무능자,
자꾸 이것만 바울이 그이에 사무쳤기 때문에, 그는 말하기를 시간이 지나가고 자꾸 늙어져 갈수록 마치 무거운 짐 진 거와 같이 그분을 대하고, 주님을 대할 것과 주님의 나라에 가서 모든 만물 앞에서 나타날 것을 생각할 때에 세상에서 이제까지 산 그 생활이 너무 자기 마음에 후회스럽고 원통해서,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그 일이 무거운 짐 진 거와 같이 자기에게 눌린다 했습니다. 무거운 짐 진 거와 같이, 자꾸 갈수록 마음이 더 눌리고, 더 충성하지 못하고 더 그분 앞에서 더 시행하지 못했고 더 감사하지 못했고 그분을 높이지 못했고 그분을 아는 자로 살지 못한 이것을 그는 무거운 짐 진 거와 같이 고통스럽다고 말을 했습니다.
(8111220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