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몸에 손을 대고 기도하는 것
| 분류 |
|---|
yilee
0
2009.03.05 00:00
1. 수학으로 예를 들면
구약은 보이는 것을 가지고 신앙을 가르쳐 기르는 어린 때였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육체와 눈에 보이는 물질을 가지고 가르쳤습니다. 마치 수학의 이치를 말로 배우기 어려운 유치원생들에게 2 X 2 = 4 곱하기를 곱셈이라는 이치로 가르치기 어려우니까 구슬을 가지고 직접 구슬 둘씩 두 묶음을 모아 두고 네 개가 된다고 가르친 식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르치면 눈에 보이기 때문에 그 2 X 2 = 4 곱하기를 알아 차리는 것은 아주 쉬운데 실은 이 단계의 곱셈은 곱셈이 아니라 곱셈을 이해 시키기 위해 흥미를 유발하며 걸음마를 시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런 구슬들의 묶음과 갯수를 보며 곱셈이라는 이치를 알아야 비로소 수학을 배운 학생이 됩니다.
2. 신약 초기나 구약의 기도
구약에서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기도한 것은 눈에 보이는 구름 위의 하늘이 우리가 갈 하늘이기 때문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높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고 구하게 하므로 그 것을 통해 '가치적' '평가적' '존재적' '활동적'으로 높은 수준, 닿을 수 없는 차원의 하나님께 이 미천하고 무지 무능한 우리가 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인데, 최근 신약 교회 역사를 통해 그렇게 하지도 않은 손 들고 기도하기가 갑자기 나타나서 전국 교회의 기도 모습으로 바뀌어 참으로 당황스럽습니다. 마치 대학생들을 갑자기 유치원 토끼 뜀 뛰기 율동으로 가르치는 식입니다.
신약 초기 예수님께서 병자의 몸에 손을 대고 기도하고 낫게 한 것은 신약의 초기 즉 구약 시기의 연장선에 있었던 당시 어린 교회를 가르친 방법이었고 오늘 우리에게 그런 모습을 그대로 기록한 것은 그런 기록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면을 가르치려고 한 것인지 깨달으면 믿는 이치를 알고 믿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고 그 모습만 흉내 내면 무당이나 목사나 별로 다를 바가 없게 됩니다.
3. 기도할 때 자세
욜2:13에서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했습니다. 구약에서 눈에 보이는 것으로 가르친 것은 그 속에 가르친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도 구약은 일단 눈에 보이는 행동을 하도록 명령했으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만 그 속의 뜻을 미리 가르쳤는데, 하물며 신약에서 그 것을 모른다면 신약에 살면서 구약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손을 들고, 손을 대고 기도한 기록이 있다면 눈에 보이는 손을 대고 들고 기도하여 다른 사람이 볼 때 심리적으로 또는 손의 접촉에 의한 느낌으로 효과를 보라는 것이 아니며, 또는 하나님의 능력이 목사의 손이라는 전선을 통하지 않으면 병자에게 전달이 되지 않는 물질의 전기와 다르니 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과 그 능력을 믿는다면 이런 육체의 행동은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기도들은 자칫 심리 치료 또는 기 치료라는 의술의 일종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낫게 할 사람이면 손을 대지 않아도 낫게 할 것이고, 상대방 신앙이 어리거나 극단적인 경우에 처한 사람이 있어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아주 예외적으로 할 수는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기도는 하나님께서 왜 아프게 했는지 그 뜻을 찾아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께 기도하여 그 뜻을 깨달아 그 뜻대로 실행하는 과정에서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은 보이는 것을 가지고 신앙을 가르쳐 기르는 어린 때였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육체와 눈에 보이는 물질을 가지고 가르쳤습니다. 마치 수학의 이치를 말로 배우기 어려운 유치원생들에게 2 X 2 = 4 곱하기를 곱셈이라는 이치로 가르치기 어려우니까 구슬을 가지고 직접 구슬 둘씩 두 묶음을 모아 두고 네 개가 된다고 가르친 식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르치면 눈에 보이기 때문에 그 2 X 2 = 4 곱하기를 알아 차리는 것은 아주 쉬운데 실은 이 단계의 곱셈은 곱셈이 아니라 곱셈을 이해 시키기 위해 흥미를 유발하며 걸음마를 시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런 구슬들의 묶음과 갯수를 보며 곱셈이라는 이치를 알아야 비로소 수학을 배운 학생이 됩니다.
2. 신약 초기나 구약의 기도
구약에서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기도한 것은 눈에 보이는 구름 위의 하늘이 우리가 갈 하늘이기 때문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높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고 구하게 하므로 그 것을 통해 '가치적' '평가적' '존재적' '활동적'으로 높은 수준, 닿을 수 없는 차원의 하나님께 이 미천하고 무지 무능한 우리가 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인데, 최근 신약 교회 역사를 통해 그렇게 하지도 않은 손 들고 기도하기가 갑자기 나타나서 전국 교회의 기도 모습으로 바뀌어 참으로 당황스럽습니다. 마치 대학생들을 갑자기 유치원 토끼 뜀 뛰기 율동으로 가르치는 식입니다.
신약 초기 예수님께서 병자의 몸에 손을 대고 기도하고 낫게 한 것은 신약의 초기 즉 구약 시기의 연장선에 있었던 당시 어린 교회를 가르친 방법이었고 오늘 우리에게 그런 모습을 그대로 기록한 것은 그런 기록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면을 가르치려고 한 것인지 깨달으면 믿는 이치를 알고 믿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고 그 모습만 흉내 내면 무당이나 목사나 별로 다를 바가 없게 됩니다.
3. 기도할 때 자세
욜2:13에서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했습니다. 구약에서 눈에 보이는 것으로 가르친 것은 그 속에 가르친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도 구약은 일단 눈에 보이는 행동을 하도록 명령했으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만 그 속의 뜻을 미리 가르쳤는데, 하물며 신약에서 그 것을 모른다면 신약에 살면서 구약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손을 들고, 손을 대고 기도한 기록이 있다면 눈에 보이는 손을 대고 들고 기도하여 다른 사람이 볼 때 심리적으로 또는 손의 접촉에 의한 느낌으로 효과를 보라는 것이 아니며, 또는 하나님의 능력이 목사의 손이라는 전선을 통하지 않으면 병자에게 전달이 되지 않는 물질의 전기와 다르니 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과 그 능력을 믿는다면 이런 육체의 행동은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기도들은 자칫 심리 치료 또는 기 치료라는 의술의 일종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낫게 할 사람이면 손을 대지 않아도 낫게 할 것이고, 상대방 신앙이 어리거나 극단적인 경우에 처한 사람이 있어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아주 예외적으로 할 수는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기도는 하나님께서 왜 아프게 했는지 그 뜻을 찾아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께 기도하여 그 뜻을 깨달아 그 뜻대로 실행하는 과정에서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