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위에 짓는 건설,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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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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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8 00:00
지으면 건축인가? 건축은 건축이나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쓰러 질 건축은 건축이라 할 수도 있고 아니라 할 수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건축인가? 아닙니다. 그래도 현재 쌓여 올라 갔으니 건축이 아닌가? 맞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조직신학 교수들도 과거 교리를 요리조리 떼어 인용만 하지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한 자만 잘못 되면 바로 이단이 되니까 알 듯 모를 듯한 소리만 대충하고 빠집니다. 이렇게 조심하는 이유가 그 교리를 모르고도 세계적인 교회를 건설할 수 있고 수 많은 교인들이 따라 다니는 인기 목회자가 될 수도 있는데 그런 지도자들의 신앙 건설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모래 위에 지은 교회며 인기며 인기 몰이일 뿐입니다.
환란이 한 번 오면 싹 쓸려 없어 질, 한 때 한 번 모인 무리, 물일 뿐입니다.
철이 지나면 금방 어디 갔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 질 연예인, 유행일 뿐입니다.
신앙은 영원 불변인데 철이 지나고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때를 만나기도 하고 때를 만나지 못해서 시들해 진다면 그 것은 신앙의 것은 아니며, 영생의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 것은 신앙과 같아 보이고 영생의 것으로 보이기는 해도 그 속은 인간의 실력으로 인간이 이루어 놓은 인간의 성취일 뿐입니다. 연예인, 유명 선수, 정치가, 유행가.... 바로 본질은 이런 것과? 같습니다.
예정을 모르고 믿는다면, 그래도 열심은 좋은 것이고 그래도 교회를 향하는 발 걸음은 귀한 것이며 그래도 하나님을 찾는 그 열정은 귀하고 귀한 것입니다. 문제는 예정이라는 밑 바탕을 가지지 않고 이런 것들로 쌓아 올라 가면 어느 날 한꺼번에 무너 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덩치는 풀과 나무와 짚보다 훨씬 작아도 금과 은과 보석처럼 변치 않을 것 신령한 것 영원성의 것으로 하나씩 쌓아 올라 가려 하는 것입니다.
예정을 모르는 분들, 택함을 모르는 분들, 절대 주권의 섭리와 성취를 모르는 분들, 건설구원의 내용을 모르는 분들... 그 분들과 우리가 한 하나님과 하나인 성경을 함께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임에는 같고 틀림이 없는데 아들이면 다 같은 아들입니까 라고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전쟁의 결과와 전투의 피 흘리는 극단 상황을 다 아는 사람이 가족과 나라를 위해 마지 못해 나서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싸우는 것과 친구들과 술이나 먹고 돌아 다니다가 어느 날 영장을 받아 들고 군에 가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 군인이 전투에 투입 된 것을 비교한다면 두 군인이 군인이지만 같은 군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다른 교회들은 예배당의 평수, 높이, 건축 비용에 사활을 걸고 그 예배당에 모인 교인들의 숫자에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리도 노선도 성경도 찬송도 예배도 교인의 수와 연보에 필요하다면 바꾸지 못할 것이 없다는 자세로 지금까지 달려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노선은 건설구원의 내막을 알기 때문에 오늘도 단 한 명이라도 끝까지 이 길에서 걸어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겉 보기는 같아도 같을 수가 없습니다.
운전에 숙달 된 사람의 시력과 운전을 해 보지 않은 분의 시력이 평소 보는 것을 그냥 볼 때는 꼭 같은 눈처럼 보이는데 운전석에 올려 놓고 핸들을 맡기게 되면 그 때는 두 사람의 눈은 눈은 눈이나 같은 눈이 아니며 두 사람의 팔 다리도 분명히 팔 다리는 같은데 같은 팔 다리가 아닙니다. 운전을 못하는 사람의 팔 다리가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의 팔 다리보다 더 빠르고 더 힘이 강할 수도 있으나 운전석에서 핸들을 잡는 순간부터는 모든 상황이 전혀 달라 집니다.
이 노선의 길을 걸어 보신 분들만이 알고 느낄 수 있는 세계를 보고 계신 것입니다.
이런 면을 겪어 보기 때문에 어려움도 많고 불편도 많고 우리의 부족 때문에 비판도 많이 받고 있으면서도 이 길을 걷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공회인, 백파라고 합니다.
>> 윤영삼 님이 쓰신 내용 <<
:
: 제가 있었던 교회는 담임목사님이 예정론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 총공회교리인 기본구원 - 건설구원을 모르셨고, 담임목사님은
: 한번구원영원구원에 대해서 완전히 확신하셨는지는 의문입니다.
: 그런데 제가 신학을 공부해본 결과론, 예정론을 믿지 못하면
: 한번구원영원구원을 확실히 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
: 하지만 저는 24살때부터 혼자서 저희교회에서 전병욱목사님(칼빈주의)
: 책을 계속 읽었었고, 그리고 신학교에 가서 칼빈주의를 제대로 공부하기
: 시작했습니다.
:
: 하지만 저희 교회에 저를 빼고는 전부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계속 들었고
: 저도 물론 들었지만 거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저는 전병욱목사님 책을 통해
: 혼자서 은혜를 입었습니다.
: 교회성도님들과 청년들은 거의다가 예정론을 믿지않았고,
: 또한 한번구원받은자도 구원을 잃어버릴수 있다고 많이 믿고 그렇게 함께 신앙생활을 계속했었습니다. 그리고 예전교회 많은 이들이 은사주의를 많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 저도 신학교 가기전까지 은사주의를 추구하는경향성이 굉장히 강했지만, 칼빈주의와
: 백영희목사님 신학을 접하면서, 교리가 마음에 새겨지면서, 은사주의 점점 멀어지기
: 시작했습니다.
:
: 그리고 저는 칼빈주의의 완성인 총공회 신학을 점점 더 믿게 되었고
: 칼빈주의와 총공회 신학이 저의 신앙에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
:
: 가끔 예전교회 사람들과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나는데, 그들과 저의 마음의 기능이 많이 다른것 같습니다. 그들도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고, 나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 그들은 알미니안 신앙을 가졌고, 저는 칼빈주의 신앙을 가졌는데,
:
: 그들과 저의 마음의 기능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
: 백영희목사님은 알미니안은 건설구원의 이단이라 하셨는데,
: 그렇다면 알미니안 교리를 가지고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하고 마음의 기능을 계속
: 만들어 갔다면, 그 기능은 잘못된 기능이 아닌가 싶습니다.
:
: 대화를 가끔 해보면 마음에 많은 부딪침이 있습니다.
:
:
: 알미니안신앙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사람들의 마음의 기능은?
: 바른 기능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
: 저는 한번구원영원구원이라는 교리의 확신이후에 마음의 바른 기능이 계속 만들어
: 지고 있음을 많이 느낍니다. 또 동천교회와서 바른신앙노선에서 신앙생활을 하니
: 또 바른 기능이 많이 만들어 짐을 느낍니다.(물론 아직 형편없이 사는부분이 많지만요)
:
: 예전교회 사람들은 남녀섞은 청년부와, 기타드럼예배와, 그리고 교리도 알미니안이
: 강하고, 단기선교도 많이 가고....
:
: 저와 너무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마음의 기능이 달라서 그런것 같기도
: 하고...좀 혼란스럽기도 하고...
:
: (글을 정리하여 쓰지 못해 죄송합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세요.)
:
삼위일체 교리는 조직신학 교수들도 과거 교리를 요리조리 떼어 인용만 하지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한 자만 잘못 되면 바로 이단이 되니까 알 듯 모를 듯한 소리만 대충하고 빠집니다. 이렇게 조심하는 이유가 그 교리를 모르고도 세계적인 교회를 건설할 수 있고 수 많은 교인들이 따라 다니는 인기 목회자가 될 수도 있는데 그런 지도자들의 신앙 건설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모래 위에 지은 교회며 인기며 인기 몰이일 뿐입니다.
환란이 한 번 오면 싹 쓸려 없어 질, 한 때 한 번 모인 무리, 물일 뿐입니다.
철이 지나면 금방 어디 갔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 질 연예인, 유행일 뿐입니다.
신앙은 영원 불변인데 철이 지나고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때를 만나기도 하고 때를 만나지 못해서 시들해 진다면 그 것은 신앙의 것은 아니며, 영생의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 것은 신앙과 같아 보이고 영생의 것으로 보이기는 해도 그 속은 인간의 실력으로 인간이 이루어 놓은 인간의 성취일 뿐입니다. 연예인, 유명 선수, 정치가, 유행가.... 바로 본질은 이런 것과? 같습니다.
예정을 모르고 믿는다면, 그래도 열심은 좋은 것이고 그래도 교회를 향하는 발 걸음은 귀한 것이며 그래도 하나님을 찾는 그 열정은 귀하고 귀한 것입니다. 문제는 예정이라는 밑 바탕을 가지지 않고 이런 것들로 쌓아 올라 가면 어느 날 한꺼번에 무너 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덩치는 풀과 나무와 짚보다 훨씬 작아도 금과 은과 보석처럼 변치 않을 것 신령한 것 영원성의 것으로 하나씩 쌓아 올라 가려 하는 것입니다.
예정을 모르는 분들, 택함을 모르는 분들, 절대 주권의 섭리와 성취를 모르는 분들, 건설구원의 내용을 모르는 분들... 그 분들과 우리가 한 하나님과 하나인 성경을 함께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임에는 같고 틀림이 없는데 아들이면 다 같은 아들입니까 라고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전쟁의 결과와 전투의 피 흘리는 극단 상황을 다 아는 사람이 가족과 나라를 위해 마지 못해 나서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싸우는 것과 친구들과 술이나 먹고 돌아 다니다가 어느 날 영장을 받아 들고 군에 가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 군인이 전투에 투입 된 것을 비교한다면 두 군인이 군인이지만 같은 군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다른 교회들은 예배당의 평수, 높이, 건축 비용에 사활을 걸고 그 예배당에 모인 교인들의 숫자에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리도 노선도 성경도 찬송도 예배도 교인의 수와 연보에 필요하다면 바꾸지 못할 것이 없다는 자세로 지금까지 달려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노선은 건설구원의 내막을 알기 때문에 오늘도 단 한 명이라도 끝까지 이 길에서 걸어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겉 보기는 같아도 같을 수가 없습니다.
운전에 숙달 된 사람의 시력과 운전을 해 보지 않은 분의 시력이 평소 보는 것을 그냥 볼 때는 꼭 같은 눈처럼 보이는데 운전석에 올려 놓고 핸들을 맡기게 되면 그 때는 두 사람의 눈은 눈은 눈이나 같은 눈이 아니며 두 사람의 팔 다리도 분명히 팔 다리는 같은데 같은 팔 다리가 아닙니다. 운전을 못하는 사람의 팔 다리가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의 팔 다리보다 더 빠르고 더 힘이 강할 수도 있으나 운전석에서 핸들을 잡는 순간부터는 모든 상황이 전혀 달라 집니다.
이 노선의 길을 걸어 보신 분들만이 알고 느낄 수 있는 세계를 보고 계신 것입니다.
이런 면을 겪어 보기 때문에 어려움도 많고 불편도 많고 우리의 부족 때문에 비판도 많이 받고 있으면서도 이 길을 걷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공회인, 백파라고 합니다.
>> 윤영삼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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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있었던 교회는 담임목사님이 예정론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 총공회교리인 기본구원 - 건설구원을 모르셨고, 담임목사님은
: 한번구원영원구원에 대해서 완전히 확신하셨는지는 의문입니다.
: 그런데 제가 신학을 공부해본 결과론, 예정론을 믿지 못하면
: 한번구원영원구원을 확실히 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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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저는 24살때부터 혼자서 저희교회에서 전병욱목사님(칼빈주의)
: 책을 계속 읽었었고, 그리고 신학교에 가서 칼빈주의를 제대로 공부하기
: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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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저희 교회에 저를 빼고는 전부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계속 들었고
: 저도 물론 들었지만 거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저는 전병욱목사님 책을 통해
: 혼자서 은혜를 입었습니다.
: 교회성도님들과 청년들은 거의다가 예정론을 믿지않았고,
: 또한 한번구원받은자도 구원을 잃어버릴수 있다고 많이 믿고 그렇게 함께 신앙생활을 계속했었습니다. 그리고 예전교회 많은 이들이 은사주의를 많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 저도 신학교 가기전까지 은사주의를 추구하는경향성이 굉장히 강했지만, 칼빈주의와
: 백영희목사님 신학을 접하면서, 교리가 마음에 새겨지면서, 은사주의 점점 멀어지기
: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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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저는 칼빈주의의 완성인 총공회 신학을 점점 더 믿게 되었고
: 칼빈주의와 총공회 신학이 저의 신앙에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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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예전교회 사람들과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나는데, 그들과 저의 마음의 기능이 많이 다른것 같습니다. 그들도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고, 나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 그들은 알미니안 신앙을 가졌고, 저는 칼빈주의 신앙을 가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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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과 저의 마음의 기능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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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영희목사님은 알미니안은 건설구원의 이단이라 하셨는데,
: 그렇다면 알미니안 교리를 가지고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하고 마음의 기능을 계속
: 만들어 갔다면, 그 기능은 잘못된 기능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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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를 가끔 해보면 마음에 많은 부딪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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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미니안신앙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사람들의 마음의 기능은?
: 바른 기능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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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한번구원영원구원이라는 교리의 확신이후에 마음의 바른 기능이 계속 만들어
: 지고 있음을 많이 느낍니다. 또 동천교회와서 바른신앙노선에서 신앙생활을 하니
: 또 바른 기능이 많이 만들어 짐을 느낍니다.(물론 아직 형편없이 사는부분이 많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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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교회 사람들은 남녀섞은 청년부와, 기타드럼예배와, 그리고 교리도 알미니안이
: 강하고, 단기선교도 많이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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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와 너무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마음의 기능이 달라서 그런것 같기도
: 하고...좀 혼란스럽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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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정리하여 쓰지 못해 죄송합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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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와 알미니안의 마음의 기능은 많이 다르지 않은지?
제가 있었던 교회는 담임목사님이 예정론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총공회교리인 기본구원 - 건설구원을 모르셨고, 담임목사님은
한번구원영원구원에 대해서 완전히 확신하셨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신학을 공부해본 결과론, 예정론을 믿지 못하면
한번구원영원구원을 확실히 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24살때부터 혼자서 저희교회에서 전병욱목사님(칼빈주의)
책을 계속 읽었었고, 그리고 신학교에 가서 칼빈주의를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교회에 저를 빼고는 전부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계속 들었고
저도 물론 들었지만 거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저는 전병욱목사님 책을 통해
혼자서 은혜를 입었습니다.
교회성도님들과 청년들은 거의다가 예정론을 믿지않았고,
또한 한번구원받은자도 구원을 잃어버릴수 있다고 많이 믿고 그렇게 함께 신앙생활을 계속했었습니다. 그리고 예전교회 많은 이들이 은사주의를 많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저도 신학교 가기전까지 은사주의를 추구하는경향성이 굉장히 강했지만, 칼빈주의와
백영희목사님 신학을 접하면서, 교리가 마음에 새겨지면서, 은사주의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칼빈주의의 완성인 총공회 신학을 점점 더 믿게 되었고
칼빈주의와 총공회 신학이 저의 신앙에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가끔 예전교회 사람들과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나는데, 그들과 저의 마음의 기능이 많이 다른것 같습니다. 그들도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고, 나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그들은 알미니안 신앙을 가졌고, 저는 칼빈주의 신앙을 가졌는데,
그들과 저의 마음의 기능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백영희목사님은 알미니안은 건설구원의 이단이라 하셨는데,
그렇다면 알미니안 교리를 가지고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하고 마음의 기능을 계속
만들어 갔다면, 그 기능은 잘못된 기능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화를 가끔 해보면 마음에 많은 부딪침이 있습니다.
알미니안신앙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사람들의 마음의 기능은?
바른 기능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한번구원영원구원이라는 교리의 확신이후에 마음의 바른 기능이 계속 만들어
지고 있음을 많이 느낍니다. 또 동천교회와서 바른신앙노선에서 신앙생활을 하니
또 바른 기능이 많이 만들어 짐을 느낍니다.(물론 아직 형편없이 사는부분이 많지만요)
예전교회 사람들은 남녀섞은 청년부와, 기타드럼예배와, 그리고 교리도 알미니안이
강하고, 단기선교도 많이 가고....
저와 너무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마음의 기능이 달라서 그런것 같기도
하고...좀 혼란스럽기도 하고...
(글을 정리하여 쓰지 못해 죄송합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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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있었던 교회는 담임목사님이 예정론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총공회교리인 기본구원 - 건설구원을 모르셨고, 담임목사님은
한번구원영원구원에 대해서 완전히 확신하셨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신학을 공부해본 결과론, 예정론을 믿지 못하면
한번구원영원구원을 확실히 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24살때부터 혼자서 저희교회에서 전병욱목사님(칼빈주의)
책을 계속 읽었었고, 그리고 신학교에 가서 칼빈주의를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교회에 저를 빼고는 전부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계속 들었고
저도 물론 들었지만 거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저는 전병욱목사님 책을 통해
혼자서 은혜를 입었습니다.
교회성도님들과 청년들은 거의다가 예정론을 믿지않았고,
또한 한번구원받은자도 구원을 잃어버릴수 있다고 많이 믿고 그렇게 함께 신앙생활을 계속했었습니다. 그리고 예전교회 많은 이들이 은사주의를 많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저도 신학교 가기전까지 은사주의를 추구하는경향성이 굉장히 강했지만, 칼빈주의와
백영희목사님 신학을 접하면서, 교리가 마음에 새겨지면서, 은사주의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칼빈주의의 완성인 총공회 신학을 점점 더 믿게 되었고
칼빈주의와 총공회 신학이 저의 신앙에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가끔 예전교회 사람들과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나는데, 그들과 저의 마음의 기능이 많이 다른것 같습니다. 그들도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고, 나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그들은 알미니안 신앙을 가졌고, 저는 칼빈주의 신앙을 가졌는데,
그들과 저의 마음의 기능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백영희목사님은 알미니안은 건설구원의 이단이라 하셨는데,
그렇다면 알미니안 교리를 가지고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하고 마음의 기능을 계속
만들어 갔다면, 그 기능은 잘못된 기능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화를 가끔 해보면 마음에 많은 부딪침이 있습니다.
알미니안신앙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사람들의 마음의 기능은?
바른 기능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한번구원영원구원이라는 교리의 확신이후에 마음의 바른 기능이 계속 만들어
지고 있음을 많이 느낍니다. 또 동천교회와서 바른신앙노선에서 신앙생활을 하니
또 바른 기능이 많이 만들어 짐을 느낍니다.(물론 아직 형편없이 사는부분이 많지만요)
예전교회 사람들은 남녀섞은 청년부와, 기타드럼예배와, 그리고 교리도 알미니안이
강하고, 단기선교도 많이 가고....
저와 너무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마음의 기능이 달라서 그런것 같기도
하고...좀 혼란스럽기도 하고...
(글을 정리하여 쓰지 못해 죄송합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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