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는 현실 따라 간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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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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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6 00:00
무조건 '재독'을 주장하는 것이나 무조건 '강사'를 주장하는 것은 둘 다 위험한 발상입니다. '은혜로운 강사 한 분을 세워'라는 소원을 가지지 않았다면 믿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자기보다 나은 자식을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듯이, 은혜로운 강사를 주실 시대를 구하지 않을 분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은혜로운 강사'를 주시지 않는데, 재독과 비교할 때 은혜가 훨씬 떨어 지는데도 불구하고, '은혜로운 강사'를 내세워 재독을 피한다면 이 것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고 한 편으로 칼빈의 자료를 통해 칼빈보다 더 은혜로운 제자가 나와야 하는데도 더 은혜로운 제자가 나오면 안 된다는 정도로 강의하는 보수 정통 학자들처럼 설교록 연구를 통해 설교록보다 더 은혜로운 강사가 나와야 하는데도 더 은혜로운 제자가 나올까 봐 미리 눌러 버리는 것도 같은 불행스런 일입니다. 도의 초보를 몰라서 생긴 일입니다.
아인슈타인보다 나은 과학자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몇 세기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그런 위인을 거론하면서 이 나라 몇만 명의 수학 교사와 교수들이 제마다 아인슈타인보다 나을지 모른다고 나선다면 너무 어지럽고 불행스런 일입니다.
설교록의 내용은 답변자로는 역사 최고의 성경 해석집입니다. 이처럼 성경과 교리에 깊으면서도 이처럼 일반 교인의 평소 생활을 낱낱이 분해하고 적용 시켜 놓은 설교집은 알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오늘 설교 강단을 맡은 목회자들의 수준은 교회를 팔아 팔아 배를 불리는 도적이거나 아니면 교회 강단을 자기 소신을 펼치는 기회로 삼거나 아니면 자기 명예를 위해 하나님을 밟고 살고 있습니다. 설교록을 들으며 회개해야 할 단계이지 설교록의 은혜를 넘어 설 정도의 목회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한 시대는 다음 시대를 위한 거름이며 다음 시대는 조금만 주의하면 이전 세대를 넘어 설 수 있는 은혜를 받는 시기이므로 우리들의 수준은 앞 서 개탄한 그런 정도이나 우리의 소망은 과거 훌륭한 종들의 수고 덕분에 오늘을 감당할 말씀을 직접 외치는 인물들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은 간절합니다. 과거 설교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소 차이가 있을지라도 과거 설교를 뛰어 넘고 발전적으로 앞 서 나갈 인물은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만일 그런 인물이 있다면 이 홈은 즉각 이 홈의 간판을 바꾸든지 이 홈의 초기화면의 전면을 통해 알리고, 이 홈 운영자는 그 자리 제일 앞에 앉을 것입니다.
지적하신 분의 뜻은 알고 있습니다. 이 홈은 '백영희' 노선을 기치로 걸었으나 그런 면을 공회 전체적으로 가장 먼저 찾고 있습니다. 현재 재독하는 방법부터 과거 단순 재독에서 여러 방법을 사용하면서 더 은혜로운 길을 찾고 있습니다. 산 자는 죽은 자처럼 누워 있지는 못합니다. 그렇다고 산 자의 모든 활동은 전부 긍정적이거나 옳다고 생각해도 안 될 것입니다. 산 자이므로 과거 받은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좀 더 은혜로울까! 어떻게 해야 은혜로운 강사가 생겨 질까! 그래서 이 시대에 쏟아 지는 현안들을 앞 장 서서 외치며 우리를 인도하게 될까! 이런 면을 한 번도 잊어 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 홈의 집회는 한 설교만 가지고 2 - 3 회를 반복한다거나, 한 집회에 담은 여러 주제의 설교 중에 오늘에 필요한 주제를 중심으로 재독하는 설교 내용을 2 - 3 개의 집회에서 모아서 들어 보는 등의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또 하루 3 회의 집회 시간에 더하여 저녁에는 하루의 말씀으로 기도하고 새김질하는 기회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약간의 변형이 있게 되면 집회의 전체 운영은 재독의 형태이나 실은 이렇게 지도하는 사람의 개인 집회가 됩니다. 그런 면으로 많은 연습을 거쳐 능숙하게 되어 지면 그 다음에는 질문자께서 소망하시고 이 홈이 대망하는 인물을 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질문자께서 주신 의견은 사실 공회 내에서는 가장 자연스럽고 당연한 소망인데도 과거 총공회 내부의 분쟁 과정에서 상대방을 치기 위해 특정 내용을 담은 설교를 고의로 선택하여 상대방을 치는 무기로 삼은 경우가 있었고, 이에 맞선다며 반대 쪽에서는 재독을 우상이라는 이름으로 훼방한 기막힌 일들이 있었습니다. 성전의 금은 성물을 가지고 이방 나라에 뇌물을 바쳤던 꼴들이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 젖어서 이 글을 읽는 분들이 계실까 해서 글 초반에는 좀 엄한 면으로 말씀을 드렸으나 답변자 중심은 질문자와 같습니다.
함께 그 날을 소망하며
yilee 올림
>> 부공2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 재독집회는 언제까지 할수있을까요?
: 총공회 전체가 모여 최고 은혜로운 강사한분을 세워 집회를 하는것이
: 앞으로 대안이지 않을까요?
: 목사님에 고견을 듣고싶습니다.
:
문제는 '은혜로운 강사'를 주시지 않는데, 재독과 비교할 때 은혜가 훨씬 떨어 지는데도 불구하고, '은혜로운 강사'를 내세워 재독을 피한다면 이 것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고 한 편으로 칼빈의 자료를 통해 칼빈보다 더 은혜로운 제자가 나와야 하는데도 더 은혜로운 제자가 나오면 안 된다는 정도로 강의하는 보수 정통 학자들처럼 설교록 연구를 통해 설교록보다 더 은혜로운 강사가 나와야 하는데도 더 은혜로운 제자가 나올까 봐 미리 눌러 버리는 것도 같은 불행스런 일입니다. 도의 초보를 몰라서 생긴 일입니다.
아인슈타인보다 나은 과학자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몇 세기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그런 위인을 거론하면서 이 나라 몇만 명의 수학 교사와 교수들이 제마다 아인슈타인보다 나을지 모른다고 나선다면 너무 어지럽고 불행스런 일입니다.
설교록의 내용은 답변자로는 역사 최고의 성경 해석집입니다. 이처럼 성경과 교리에 깊으면서도 이처럼 일반 교인의 평소 생활을 낱낱이 분해하고 적용 시켜 놓은 설교집은 알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오늘 설교 강단을 맡은 목회자들의 수준은 교회를 팔아 팔아 배를 불리는 도적이거나 아니면 교회 강단을 자기 소신을 펼치는 기회로 삼거나 아니면 자기 명예를 위해 하나님을 밟고 살고 있습니다. 설교록을 들으며 회개해야 할 단계이지 설교록의 은혜를 넘어 설 정도의 목회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한 시대는 다음 시대를 위한 거름이며 다음 시대는 조금만 주의하면 이전 세대를 넘어 설 수 있는 은혜를 받는 시기이므로 우리들의 수준은 앞 서 개탄한 그런 정도이나 우리의 소망은 과거 훌륭한 종들의 수고 덕분에 오늘을 감당할 말씀을 직접 외치는 인물들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은 간절합니다. 과거 설교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소 차이가 있을지라도 과거 설교를 뛰어 넘고 발전적으로 앞 서 나갈 인물은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만일 그런 인물이 있다면 이 홈은 즉각 이 홈의 간판을 바꾸든지 이 홈의 초기화면의 전면을 통해 알리고, 이 홈 운영자는 그 자리 제일 앞에 앉을 것입니다.
지적하신 분의 뜻은 알고 있습니다. 이 홈은 '백영희' 노선을 기치로 걸었으나 그런 면을 공회 전체적으로 가장 먼저 찾고 있습니다. 현재 재독하는 방법부터 과거 단순 재독에서 여러 방법을 사용하면서 더 은혜로운 길을 찾고 있습니다. 산 자는 죽은 자처럼 누워 있지는 못합니다. 그렇다고 산 자의 모든 활동은 전부 긍정적이거나 옳다고 생각해도 안 될 것입니다. 산 자이므로 과거 받은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좀 더 은혜로울까! 어떻게 해야 은혜로운 강사가 생겨 질까! 그래서 이 시대에 쏟아 지는 현안들을 앞 장 서서 외치며 우리를 인도하게 될까! 이런 면을 한 번도 잊어 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 홈의 집회는 한 설교만 가지고 2 - 3 회를 반복한다거나, 한 집회에 담은 여러 주제의 설교 중에 오늘에 필요한 주제를 중심으로 재독하는 설교 내용을 2 - 3 개의 집회에서 모아서 들어 보는 등의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또 하루 3 회의 집회 시간에 더하여 저녁에는 하루의 말씀으로 기도하고 새김질하는 기회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약간의 변형이 있게 되면 집회의 전체 운영은 재독의 형태이나 실은 이렇게 지도하는 사람의 개인 집회가 됩니다. 그런 면으로 많은 연습을 거쳐 능숙하게 되어 지면 그 다음에는 질문자께서 소망하시고 이 홈이 대망하는 인물을 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질문자께서 주신 의견은 사실 공회 내에서는 가장 자연스럽고 당연한 소망인데도 과거 총공회 내부의 분쟁 과정에서 상대방을 치기 위해 특정 내용을 담은 설교를 고의로 선택하여 상대방을 치는 무기로 삼은 경우가 있었고, 이에 맞선다며 반대 쪽에서는 재독을 우상이라는 이름으로 훼방한 기막힌 일들이 있었습니다. 성전의 금은 성물을 가지고 이방 나라에 뇌물을 바쳤던 꼴들이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 젖어서 이 글을 읽는 분들이 계실까 해서 글 초반에는 좀 엄한 면으로 말씀을 드렸으나 답변자 중심은 질문자와 같습니다.
함께 그 날을 소망하며
yilee 올림
>> 부공2교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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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독집회는 언제까지 할수있을까요?
: 총공회 전체가 모여 최고 은혜로운 강사한분을 세워 집회를 하는것이
: 앞으로 대안이지 않을까요?
: 목사님에 고견을 듣고싶습니다.
:
집회
재독집회는 언제까지 할수있을까요?
총공회 전체가 모여 최고 은혜로운 강사한분을 세워 집회를 하는것이
앞으로 대안이지 않을까요?
목사님에 고견을 듣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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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집회는 언제까지 할수있을까요?
총공회 전체가 모여 최고 은혜로운 강사한분을 세워 집회를 하는것이
앞으로 대안이지 않을까요?
목사님에 고견을 듣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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