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예배*추도예배*명절예배*헌화는 우상숭배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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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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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7 00:00
1. 이 홈은 교회와 신앙의 일반 상식에 반하는 질문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잘못 알았다면 얼른 고치는 복을 받을 것이며
진리는 어떤 반론과 이견도 넘어 설 것이므로 설명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역사적으로 바르고 필요한 교훈은 반론을 통해 발견되고 다듬어졌기 때문입니다.
2. 한국의 장례식
우리 나라는 불교와 유교와 미신으로 내려 왔으므로 우리 생활 전부는 말이 생활이지 그 내용은 귀신을 섬기든 귀신 앞에 떨든 귀신을 떠나 존재하는 것이 없습니다. 땅 이름과 사람 이름으로부터 집을 짓는 방향과 농사를 짓는 힘도 먹고 사는 배후도 전부 귀신의 법도와 귀신의 눈치를 살피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분야가 죽은 사람을 처리하는 장례식입니다. 장례식은 우리나라를 거쳐 간 모든 종교와 미신의 종합 전시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귀한 사람, 아까운 사람을 위한다는 긍정적인 마음에서부터
죽는 순간 썩는 육체를 보며 인생과 사후가 어떤 것인지를 두고 맨 정신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좋다는 것은 다하고, 하라는 것은 다하고, 듣고 보고 아는 것은 다하는 것이 장례식인데 우리의 성격이 특별하여 장례에 대한 예법은 맨 정신 가진 사람이 제대로 관찰한다면 그야 말로 가관이며 귀신 섬김을 조금 아는 사람들의 눈에는 종교 예법의 종합 집합소와 같습니다.
사람이 죽는 순간부터 시작 되는 절차, 행동, 옷, 말 표현 그 어느 하나에도 종교가 들어 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지금은 과학 세상이어서 평소 생활에서는 종교나 미신을 우습게 여기는 이들이 막상 장례에 임하면 그냥 습관인 줄 알고 하는 그들의 언행 하나하나가 최근 종교인들은 그 의미도 알지 못하는 그런 고등 종교예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교회가 들어온 지 불과 120여 년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우리 장례식의 예법은 교회에서 진행하는 것조차 아슬아슬하여 마음을 졸이는 정도입니다. 하나님과 귀신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했고 1계명과 2계명이 하나님과 우상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분명히 못을 박았으니, 믿지 않거나 아직 확신에 이르지 못하였다면 옛법을 섞는다 해도 이해를 하겠는데 명백하게 믿는 사람으로 믿는 가정으로 출발한 분들 특히 교회가 주도적으로 옛법을 혼동할 때는 정말 이 나라에 기독교가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3. 한국교회의 장례식 - 1
- 한국 천주교의 경우
얼마 전에도 어느 분과 천주교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천주교도 1계명과 2계명은 부인하지 않습니다. 한국에 천주교가 들어올 때 다른 나라 선교처럼 으레 초기에는 박해가 있고 조금 견디면 프랑스의 국력과 선교사들의 노고를 통해 그 나라에 정착이 된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여러 사화를 거치며 수 만 명의 목숨이 날아가고 그 끝이 보이지 않게 되자 교황청에 탄원을 올렸고 교황청은 한국의 제사는 전통 문화이지 종교 행위가 아니므로 제사를 지내도 된다고 결론을 내려 주었습니다. 이 한 가지만 가지고도 천주교는 얼마든지 정죄할 수 있습니다. 교황무오설을 유지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앞에 죽은 순교자는 이 교황청의 입장 변경으로 개죽음이 되고, 교황무오설은 이미 깨어진 것입니다.
문제는 기독교입입니다. 천주교는 원래 우상 종교였으므로 다른 건과 달리 한국의 제사 문제를 피해 갈 여지가 있었으나 교회는 살아 있는 교회였고 당시만 해도 건전했으며, 특히 당시 선교사들은 한국의 문화를 처음 접하는 서양 기독교국 출신들이었으므로 명확하게 우상이다 아니다 이렇게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유교 불교 미신의 예법은 다 배제시켜야 했습니다. 제사는 당연히 금지되었고 장례식에 섞인 별별 미신 요소를 제거했습니다.
- 미신과 자연의 사이
문제는 애매한 것이 있었습니다. 죽은 조상 앞에 우는 것도 죄냐? 죄는 죄지만 믿음이 약하여 우는 것이지 우는 그 자체는 미신 종교 행위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교의 예법에는 부모가 죽었으면 자식은 죄인이고 죄인이라는 표시로 '곡'이라는 것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이 어이 어이'하는 이 소리를 선교사들은 자기들처럼 또는 자기들보다 더 슬픈 표시 정도로 알았으나 이런 장례의 곡은 슬퍼 나오는 곡도 있고 장례의 유교 예법에 따른 '곡'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그 속에 들어가 봐야 아는데 물어 볼 수도 없지만 금지할 방법도 없고 구별할 방법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 어느 사회라 해도 부모 죽은 자식으로서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런 슬픈 행위는 신앙이 어린 정도라고 보지 타 종교의 귀신 예법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것이 복잡하게 섞여 있으므로 어디까지 구별을 해야 하는지 애매한 문제가 많았습니다.
- 초기 선교사들의 지도
다른 나라는 몰라도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술 담배를 먼저 끊도록 했고 학습에 6 개 월과 세례의 1 년이라는 제도를 시행시켰습니다. 다른 교회는 몰라도 한국교회에게는 성경에도 없는 이런 제도가 교회의 근간을 지키는 중요한 실행, 또는 한국교회에만 해당되는 특별한 개별 사항이라고 본 것입니다. 오늘까지도 이 것은 지지고 있고 120 년의 열매를 가지고 되돌아 볼 때 초기 선교사들의 이런 지시는 굉장한 영안이었으며 한국교회의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사와 장례 예법을 두고 선교사들은 머리나 몸을 굽혀 죽은 사람 앞에 절하는 것은 전부 금했습니다. 그리고 누가 봐도 다른 종교나 미신의 고유 표시를 사용하는 것까지는 없앴습니다. 그러나 애매한 것은 그냥 넘어갔습니다. 일일이 구별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7 마디로 묶는 것은 관을 옮길 때 송장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데 그 '7'이라는 숫자에는 미신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7 마디를 무조건 피해서 묶어야 하는가? 5 마디로 묶든 6 마디로 묶든 7 마디로 묶든 묶다 보면 사람의 키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무조건 7 마디가 법이라고 하면 반대를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의미가 없으므로 7 마디로도 묶고 6 또는 8 마디로도 묶습니다. 이런 우리가 7 마디로 묶었을 때 귀신법으로 묶었으니 목사가 죄를 지었고 처벌을 받으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가장 고민한 것 중에 하나는 상여였습니다. 상여의 그림 하나 꽃 하나까지 미신의 의미가 있는데 꽃이야 불교의 연꽃을 피하면 되지만 그렇다고 연꽃을 꽃으면 우상 장례법이므로 막아서야 하는가? 그렇게 하려면 바울이 말한 것처럼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또 시신이 집을 나가는 것을 발인이라 하는데 살던 집을 나가는 순간 불신자들은 발인 제사를 지내고 묻을 때는 하관 제사를 또 지내는데 그 절차에 목숨을 내 대는 조선 사람들을 향해, 그 순간 순간에 옛법에 매이고 흔들리고 걱정하는 심리를 달래기 위해 발인 제사는 발인 예배로 하관 제사는 하관 예배로 바꾸는 투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로 말하면 왜 발인 예배인가? 우리에게 죽은 교인의 시신이 그 집을 떠나는 그 순간에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되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예배'라고 이름을 붙였으니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는 사안이지만 왜 하필이면 발인예배 하관예배 임종예배가 법처럼 되어 있는가?
- 사월초파일 예배
불교 믿는 사람이 사월초파일에 생명 걸고 온갖 지성을 다하다가 믿고 나서 돌이켰는데 사월초파일이 되면 과거 습관 때문에 뭔가 불안해 하고 떨고 안절부절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우리가 그 어린 교인 집을 방문해서 석가는 사람인데 믿지 않고 죽어 지금 우리 조상들과 함께 지옥에 있고, 부처는 돌이니 아무 것도 아닌 장난이고, 사월초파일은 내 생일만도 못한데 우리가 그렇게 우매무지하게 살았다고 잘 설명을 해서 그 교인이 이해가 되고 믿어지고 그런 미신에서 해방이 된다면 이 심방예배는 좋은 심방이지 죄될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월초파일만 되면 예배를 드리고 나중에는 사월초파일 예배가 생긴다면? 이 것은 예배라는 이름만 붙였지 불교와 기독교를 혼합한 미신 행위가 될 것입니다. 불교에 붙들렸다 아직 구습을 벗지 못해 안절부절한 교인을 그 날 심방하고 예배를 통해 말씀을 가르치고 돌이켜 세우려고 사월초파일 날에 심방하고 예배를 드린 것은 불교를 때려 부수려고 간 행위지만, 그런 내막 없이 불교에서 개종한 교인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4월 8일 예배가 고정화가 되고 이미 자자손손 지났으므로 이제 그 가정이 4월 8일의 특별한 의미도 모르는데 이상하게 그냥 습관적으로 교회와 가정이 4월 8일에 예배를 드린다면 이는 그 예배가 아무리 목사의 교회 예배라 해도 우리는 비록 공개적으로 정죄하지는 못해도 마음 속으로 이는 귀신법이라고 선을 긋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일반적인 상황을 가지고 설명하기는 쉬운데, 어느 한 가정에서 진행되는 4월 8일의 가정 예배를 두고 이 가정의 오늘 예배는 죄다 아니다 단정할 수 있겠는가? 이 것은 그 가정의 구성원이 되어 그 내막을 알지 않고는 모를 일이고, 그 교회의 특별한 상황을 모르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런 객관화 할 수 없고 애매한 문제를 두고는 우리 교회들이 갈수록 속화되는 신앙의 자연현상에 따라 처음에는 신앙에 불 타는 마음으로 4월 8일에 그 가정에 들어 가서 목사와 앞 서 믿는 교인들이 사월초파일은 미신이라고 강타를 했지만 그 4월 8일이 반복되면서 어느 날 여러 예배 중에 한 예배로 정착이 되고 단순한 예배로만 아는데 역사까지 아는 사람이 볼 때는 이런 잘못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한국교회 전체의 일반적 상황이 아니고 아주 특별한 사례입니다.
4. 한국교회의 장례식 - 2
- 추도예배
서양 교회들도 추도식은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추도식은 오랜 신앙 역사 때문에 죽은 자가 천국 가도록 또는 죽은 자가 천국에서 계속 잘 붙들려 있고 지옥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또는 죽은 자에게 이 땅 위에서 지속적으로 살아 있는 자손들이 예배를 통해 위로제를 송달하고 천국 유지에 필요한 공을 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죽은 그 날을 '계기'로 그 분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이나 교회에 어떤 일을 했는지 기억하여 하나님 앞에 살아 있는 이들의 현재가 충성되도록 한 번 '마음을 일신'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라면 죄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한국 사회의 한국교회의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죽은 날'이란 그 날은 죽은 귀신이 밥을 먹으러 오는 '날'입니다. 종교 행사일입니다. 그래서 그 날 밥을 차려 잘 먹여 놓으면 귀신이 고마워하고 자손들을 좀 돕고, 그렇지 않으면 자손을 망친다는 참으로 해괴망측하고 듣기도 민망한 엽기 종교 사상이 바탕에 너무 짙게 깔려 있습니다. 특히 제사를 섬기다가 돌아선 분들의 경우는 이런 '날'에 찌든 감정과 실감이 무서울 정도로 살아 있습니다.
이미 믿은 지 오래 되어 답변자처럼 몇 대를 걸쳐 온 교인들은 제사 지내는 모습조차 구경하지 못한 세월이 많아서 오랜 세월 제사라는 단어는 알아도 제사라는 모습은 전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교인들이 특별히 기억해야 할 의미가 있는 분의 사망일에 모여 그 분을 기억하면서 오늘의 신앙을 다진다면 이는 서양식 추도식이니 이 것은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 나라에는 불신자들이 '날'에 대한 종교적 실감이 생생하게 살아 있고 이 나라 교인들 중에 대단히 많은 수가 믿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죽은 그 '날'에 귀신이 돌아와서 음식을 찾고 있는데 만일 이 것이 잘못 되면 가정과 자신에게 큰 불행이 닥칠까... 속으로는 아니라는 생각이 많으나 혹시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해서 불안한 것도 좀 있습니다. 이런 이들을 상대로 만일 추도예배를 드린다면 이는 엄청나게 위험한 선을 넘는 것입니다.
해방 후 남한 교회에 1950년의 손양원 목사님의 장례식과 1951년의 주남선 목사님의 장례식은 출옥성도들의 장례였고 그들과 그 따르는 주변의 분위기가 보수신앙에 엄한 이들이어서 하나의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부산의 고려신학교에서 손 목사님 순교하신 이후에 추도예배를 공식적으로 진행하려다가 백영희 당시 조사님의 반대로 하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주 목사님의 경우는 백 조사님이 유일한 제자라 할 위치가 있어 더욱 그러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도 살아 생전 애양원에서 추도예배를 엄하게 금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들은 자기들 고국에서 우리와 달리 죽은 분이 죽은 그 날에 귀신이 되어 찾아오고 자손들이 제사로 섬겨야 된다는 등의 생각과 관습은 전혀 없고 순수하게 구약의 추수감사 맥추감사 부활절과 같은 절기들을 비록 계명은 아니나 1 년 한 차례 특별히 그 날에 그런 신앙의 의미를 더 뜨겁게 한다는 정도에서 추도식을 예사로 하기 때문에 한국의 추도예배에 대해서는 한국인의 정서 파악을 하지 못해 어설프게 했고 이로 인해 혼란의 여지를 남겼습니다.
- 명절예배
한국 전통사회는 미신법에 의해 설날과 추석날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기타 절기들도 다 미신적 요소가 깔려 있습니다. 물론 음력의 절기들이 농사나 수산업에 자연 흐름을 활용하는 과학적인 측면도 있으나 그 과학적 측면에 교묘히 귀신이 스며들어 이 둘을 떼놓지 못할 정도입니다. 따라서 음력을 가지고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는 경제와 과학에는 오늘도 우리가 활용하지만 그런 절기에 축제나 음식이 오가는 설 추석 동지 등의 여러 행사는 믿는 사람이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동지의 팥죽이 그냥 팥죽이 아니라 귀신을 쫓는 예법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믿은 이후에 이런 예법은 완전히 버렸으나 그냥 먹던 습관이 되어 맛 때문에 팥죽을 먹는다면 그 것도 금해야 하는가? 참고로 이 곳 공회 노선은 설날 추석날 교회에서 단체로 기도를 가고 동짓날 팥죽은 커녕 생일이나 환갑도 없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은 서부교회 부임일도 모르고 서부교회 전체를 통해 그런 기록도 없고 기억하는 이도 없고 물어도 몰라서 타 교단 기록으로 그 분 사후에 겨우 찾은 정도입니다.
그런데 다른 교단들이 동짓날 팥죽이 교회 안에서 음식으로 나온다든지 설날 추석날 명절예배를 드린다든지 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앞에서 말한 대로 그 배경과 내용을 알지 않고 섣불리 정죄하기가 어려워 언급은 피하지만 원칙으로 말한다면 사월초파일 예배를 두고 교회가 왜 하필 그 날에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묻는다면 아마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고 용감한 사람들은 안 된다고 할 것입니다.
5. 요약하면
한국교회사에서 최초의 교회, 최초의 목사, 최초의 무슨 기록을 찾는 것은 역사신학에서는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지만, 실제 복음의 일선에서 첫 수고를 해 보는 분들에게는 최초의 기록은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목숨 걸고 자기 달려 갈 길만 갔습니다. 훗날 학자들이 이런 것을 연구하여 현실에서 신앙을 잘 지키는 데 활용한다면 귀한 것이나 문제는 정확한 기록이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 이후 정말 선교의 역사에는 늘 그런 법입니다.
지금 한국의 공식 기록에는 중국에 간 최초 선교사가 있을지 몰라도, 정말 선교한 사람은 그들보다 먼저 혼자 목숨 걸고 갔을 것입니다. 전쟁이 끝 난 뒤에 정말 공로자들은 대개 무명으로 남습니다. 우연히 기록이 남아 덕을 보는 이들도 있기는 합니다.
한국교회는 미국의 남장로교 북장로교 감리교 카나다와 호주 선교부 등이 주로 활동했고 영국 선교사 토마스의 활동도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보다 앞 서 정말 선교 자체에 불 타는 이들이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기록에 남을 수도 있고 남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질문하신 한국 최초의 기록들은 답변자가 알지 못합니다. 아마 기록에 남아 있기 어려울 듯합니다. 기록에 남아 있다면, 그 기록은 기록 중에는 최초 기록이 될지 몰라도 신앙 실제에서 최초가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 장례 예법 등의 구체적 내용은 답변자 상식으로 예를 든 것이고 옛법의 사실 관계에 대한 단정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는 범위에서 적은 이유는 전체 흐름 때문입니다.
>> 박노아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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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장로교-통합에 속한 자입니다. 교회 입장에 반하는 질문을 드리는 결례를 범하지 않는지 해서 조심스럽습니다. 전에도 기독교계에서 얘기가 안나온 건 아니지만, 장례예배*추도예배*명절예배*헌화는 우상숭배인지?를 알고 싶습니다. 예로: 일제시대때, 예배 시작시에 천황이나 신사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숙이고 묵도를 한 것이 <신사참배>이고 <우상숭배>라고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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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예수교장노회의 목회자들이 신사참배를 결의했고요. 해방이 되고 시간이 많이 흘러서,, 신앙양심을 지적하는 주변의 따가운 눈총으로 회개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유대인이 죽으면,, 시신을 앞세우고 장례행렬이 함께 가서는 돌무덤에 시신을 넣어두고 오면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장례식이니,,장례예배니,,이런 건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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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례예배*추도예배*명절예배..이런 종교적인 행위를 <우상숭배>로 보는 의견이 상당히 있던데요. 귀교회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 더우기, 추도예배는 1800년대 말에 선교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감리교 이무영(당시, 궁중일을 보는 관료)이라는 교인이 예수교로 개종한 이유로 인해서,, 어머니 제사를 어찌해야 하나? 하다가 <추도예배>를 발명해 냈다고 자료를 보았습니다. 그 이후에 성경에 없는 것을 한국교회 속에 토착화시킨 건 아닐려는지요. 추도예배가 보편화되자, 장례예배(임종,입관,발인,하관)나 명절예배가 보편화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 (2) 장례예배를 맨처은 드리게 된 최초 교회(교회명?)의 사례를 알고 싶습니다.
: (3) 명절예배를 맨처음 드리게 된 최초 교회(교회명?)의 사례를 알고 싶습니다.
:
: 너무 어려운 질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우상숭배는 무서운 죄 아니겠습니까? 시원하고 명쾌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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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우리가 잘못 알았다면 얼른 고치는 복을 받을 것이며
진리는 어떤 반론과 이견도 넘어 설 것이므로 설명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역사적으로 바르고 필요한 교훈은 반론을 통해 발견되고 다듬어졌기 때문입니다.
2. 한국의 장례식
우리 나라는 불교와 유교와 미신으로 내려 왔으므로 우리 생활 전부는 말이 생활이지 그 내용은 귀신을 섬기든 귀신 앞에 떨든 귀신을 떠나 존재하는 것이 없습니다. 땅 이름과 사람 이름으로부터 집을 짓는 방향과 농사를 짓는 힘도 먹고 사는 배후도 전부 귀신의 법도와 귀신의 눈치를 살피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분야가 죽은 사람을 처리하는 장례식입니다. 장례식은 우리나라를 거쳐 간 모든 종교와 미신의 종합 전시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귀한 사람, 아까운 사람을 위한다는 긍정적인 마음에서부터
죽는 순간 썩는 육체를 보며 인생과 사후가 어떤 것인지를 두고 맨 정신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좋다는 것은 다하고, 하라는 것은 다하고, 듣고 보고 아는 것은 다하는 것이 장례식인데 우리의 성격이 특별하여 장례에 대한 예법은 맨 정신 가진 사람이 제대로 관찰한다면 그야 말로 가관이며 귀신 섬김을 조금 아는 사람들의 눈에는 종교 예법의 종합 집합소와 같습니다.
사람이 죽는 순간부터 시작 되는 절차, 행동, 옷, 말 표현 그 어느 하나에도 종교가 들어 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지금은 과학 세상이어서 평소 생활에서는 종교나 미신을 우습게 여기는 이들이 막상 장례에 임하면 그냥 습관인 줄 알고 하는 그들의 언행 하나하나가 최근 종교인들은 그 의미도 알지 못하는 그런 고등 종교예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교회가 들어온 지 불과 120여 년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우리 장례식의 예법은 교회에서 진행하는 것조차 아슬아슬하여 마음을 졸이는 정도입니다. 하나님과 귀신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했고 1계명과 2계명이 하나님과 우상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분명히 못을 박았으니, 믿지 않거나 아직 확신에 이르지 못하였다면 옛법을 섞는다 해도 이해를 하겠는데 명백하게 믿는 사람으로 믿는 가정으로 출발한 분들 특히 교회가 주도적으로 옛법을 혼동할 때는 정말 이 나라에 기독교가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3. 한국교회의 장례식 - 1
- 한국 천주교의 경우
얼마 전에도 어느 분과 천주교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천주교도 1계명과 2계명은 부인하지 않습니다. 한국에 천주교가 들어올 때 다른 나라 선교처럼 으레 초기에는 박해가 있고 조금 견디면 프랑스의 국력과 선교사들의 노고를 통해 그 나라에 정착이 된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여러 사화를 거치며 수 만 명의 목숨이 날아가고 그 끝이 보이지 않게 되자 교황청에 탄원을 올렸고 교황청은 한국의 제사는 전통 문화이지 종교 행위가 아니므로 제사를 지내도 된다고 결론을 내려 주었습니다. 이 한 가지만 가지고도 천주교는 얼마든지 정죄할 수 있습니다. 교황무오설을 유지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앞에 죽은 순교자는 이 교황청의 입장 변경으로 개죽음이 되고, 교황무오설은 이미 깨어진 것입니다.
문제는 기독교입입니다. 천주교는 원래 우상 종교였으므로 다른 건과 달리 한국의 제사 문제를 피해 갈 여지가 있었으나 교회는 살아 있는 교회였고 당시만 해도 건전했으며, 특히 당시 선교사들은 한국의 문화를 처음 접하는 서양 기독교국 출신들이었으므로 명확하게 우상이다 아니다 이렇게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유교 불교 미신의 예법은 다 배제시켜야 했습니다. 제사는 당연히 금지되었고 장례식에 섞인 별별 미신 요소를 제거했습니다.
- 미신과 자연의 사이
문제는 애매한 것이 있었습니다. 죽은 조상 앞에 우는 것도 죄냐? 죄는 죄지만 믿음이 약하여 우는 것이지 우는 그 자체는 미신 종교 행위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교의 예법에는 부모가 죽었으면 자식은 죄인이고 죄인이라는 표시로 '곡'이라는 것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이 어이 어이'하는 이 소리를 선교사들은 자기들처럼 또는 자기들보다 더 슬픈 표시 정도로 알았으나 이런 장례의 곡은 슬퍼 나오는 곡도 있고 장례의 유교 예법에 따른 '곡'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그 속에 들어가 봐야 아는데 물어 볼 수도 없지만 금지할 방법도 없고 구별할 방법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 어느 사회라 해도 부모 죽은 자식으로서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런 슬픈 행위는 신앙이 어린 정도라고 보지 타 종교의 귀신 예법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것이 복잡하게 섞여 있으므로 어디까지 구별을 해야 하는지 애매한 문제가 많았습니다.
- 초기 선교사들의 지도
다른 나라는 몰라도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술 담배를 먼저 끊도록 했고 학습에 6 개 월과 세례의 1 년이라는 제도를 시행시켰습니다. 다른 교회는 몰라도 한국교회에게는 성경에도 없는 이런 제도가 교회의 근간을 지키는 중요한 실행, 또는 한국교회에만 해당되는 특별한 개별 사항이라고 본 것입니다. 오늘까지도 이 것은 지지고 있고 120 년의 열매를 가지고 되돌아 볼 때 초기 선교사들의 이런 지시는 굉장한 영안이었으며 한국교회의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사와 장례 예법을 두고 선교사들은 머리나 몸을 굽혀 죽은 사람 앞에 절하는 것은 전부 금했습니다. 그리고 누가 봐도 다른 종교나 미신의 고유 표시를 사용하는 것까지는 없앴습니다. 그러나 애매한 것은 그냥 넘어갔습니다. 일일이 구별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7 마디로 묶는 것은 관을 옮길 때 송장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데 그 '7'이라는 숫자에는 미신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7 마디를 무조건 피해서 묶어야 하는가? 5 마디로 묶든 6 마디로 묶든 7 마디로 묶든 묶다 보면 사람의 키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무조건 7 마디가 법이라고 하면 반대를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의미가 없으므로 7 마디로도 묶고 6 또는 8 마디로도 묶습니다. 이런 우리가 7 마디로 묶었을 때 귀신법으로 묶었으니 목사가 죄를 지었고 처벌을 받으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가장 고민한 것 중에 하나는 상여였습니다. 상여의 그림 하나 꽃 하나까지 미신의 의미가 있는데 꽃이야 불교의 연꽃을 피하면 되지만 그렇다고 연꽃을 꽃으면 우상 장례법이므로 막아서야 하는가? 그렇게 하려면 바울이 말한 것처럼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또 시신이 집을 나가는 것을 발인이라 하는데 살던 집을 나가는 순간 불신자들은 발인 제사를 지내고 묻을 때는 하관 제사를 또 지내는데 그 절차에 목숨을 내 대는 조선 사람들을 향해, 그 순간 순간에 옛법에 매이고 흔들리고 걱정하는 심리를 달래기 위해 발인 제사는 발인 예배로 하관 제사는 하관 예배로 바꾸는 투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로 말하면 왜 발인 예배인가? 우리에게 죽은 교인의 시신이 그 집을 떠나는 그 순간에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되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예배'라고 이름을 붙였으니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는 사안이지만 왜 하필이면 발인예배 하관예배 임종예배가 법처럼 되어 있는가?
- 사월초파일 예배
불교 믿는 사람이 사월초파일에 생명 걸고 온갖 지성을 다하다가 믿고 나서 돌이켰는데 사월초파일이 되면 과거 습관 때문에 뭔가 불안해 하고 떨고 안절부절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우리가 그 어린 교인 집을 방문해서 석가는 사람인데 믿지 않고 죽어 지금 우리 조상들과 함께 지옥에 있고, 부처는 돌이니 아무 것도 아닌 장난이고, 사월초파일은 내 생일만도 못한데 우리가 그렇게 우매무지하게 살았다고 잘 설명을 해서 그 교인이 이해가 되고 믿어지고 그런 미신에서 해방이 된다면 이 심방예배는 좋은 심방이지 죄될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월초파일만 되면 예배를 드리고 나중에는 사월초파일 예배가 생긴다면? 이 것은 예배라는 이름만 붙였지 불교와 기독교를 혼합한 미신 행위가 될 것입니다. 불교에 붙들렸다 아직 구습을 벗지 못해 안절부절한 교인을 그 날 심방하고 예배를 통해 말씀을 가르치고 돌이켜 세우려고 사월초파일 날에 심방하고 예배를 드린 것은 불교를 때려 부수려고 간 행위지만, 그런 내막 없이 불교에서 개종한 교인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4월 8일 예배가 고정화가 되고 이미 자자손손 지났으므로 이제 그 가정이 4월 8일의 특별한 의미도 모르는데 이상하게 그냥 습관적으로 교회와 가정이 4월 8일에 예배를 드린다면 이는 그 예배가 아무리 목사의 교회 예배라 해도 우리는 비록 공개적으로 정죄하지는 못해도 마음 속으로 이는 귀신법이라고 선을 긋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일반적인 상황을 가지고 설명하기는 쉬운데, 어느 한 가정에서 진행되는 4월 8일의 가정 예배를 두고 이 가정의 오늘 예배는 죄다 아니다 단정할 수 있겠는가? 이 것은 그 가정의 구성원이 되어 그 내막을 알지 않고는 모를 일이고, 그 교회의 특별한 상황을 모르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런 객관화 할 수 없고 애매한 문제를 두고는 우리 교회들이 갈수록 속화되는 신앙의 자연현상에 따라 처음에는 신앙에 불 타는 마음으로 4월 8일에 그 가정에 들어 가서 목사와 앞 서 믿는 교인들이 사월초파일은 미신이라고 강타를 했지만 그 4월 8일이 반복되면서 어느 날 여러 예배 중에 한 예배로 정착이 되고 단순한 예배로만 아는데 역사까지 아는 사람이 볼 때는 이런 잘못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한국교회 전체의 일반적 상황이 아니고 아주 특별한 사례입니다.
4. 한국교회의 장례식 - 2
- 추도예배
서양 교회들도 추도식은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추도식은 오랜 신앙 역사 때문에 죽은 자가 천국 가도록 또는 죽은 자가 천국에서 계속 잘 붙들려 있고 지옥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또는 죽은 자에게 이 땅 위에서 지속적으로 살아 있는 자손들이 예배를 통해 위로제를 송달하고 천국 유지에 필요한 공을 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죽은 그 날을 '계기'로 그 분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이나 교회에 어떤 일을 했는지 기억하여 하나님 앞에 살아 있는 이들의 현재가 충성되도록 한 번 '마음을 일신'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라면 죄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한국 사회의 한국교회의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죽은 날'이란 그 날은 죽은 귀신이 밥을 먹으러 오는 '날'입니다. 종교 행사일입니다. 그래서 그 날 밥을 차려 잘 먹여 놓으면 귀신이 고마워하고 자손들을 좀 돕고, 그렇지 않으면 자손을 망친다는 참으로 해괴망측하고 듣기도 민망한 엽기 종교 사상이 바탕에 너무 짙게 깔려 있습니다. 특히 제사를 섬기다가 돌아선 분들의 경우는 이런 '날'에 찌든 감정과 실감이 무서울 정도로 살아 있습니다.
이미 믿은 지 오래 되어 답변자처럼 몇 대를 걸쳐 온 교인들은 제사 지내는 모습조차 구경하지 못한 세월이 많아서 오랜 세월 제사라는 단어는 알아도 제사라는 모습은 전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교인들이 특별히 기억해야 할 의미가 있는 분의 사망일에 모여 그 분을 기억하면서 오늘의 신앙을 다진다면 이는 서양식 추도식이니 이 것은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 나라에는 불신자들이 '날'에 대한 종교적 실감이 생생하게 살아 있고 이 나라 교인들 중에 대단히 많은 수가 믿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죽은 그 '날'에 귀신이 돌아와서 음식을 찾고 있는데 만일 이 것이 잘못 되면 가정과 자신에게 큰 불행이 닥칠까... 속으로는 아니라는 생각이 많으나 혹시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해서 불안한 것도 좀 있습니다. 이런 이들을 상대로 만일 추도예배를 드린다면 이는 엄청나게 위험한 선을 넘는 것입니다.
해방 후 남한 교회에 1950년의 손양원 목사님의 장례식과 1951년의 주남선 목사님의 장례식은 출옥성도들의 장례였고 그들과 그 따르는 주변의 분위기가 보수신앙에 엄한 이들이어서 하나의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부산의 고려신학교에서 손 목사님 순교하신 이후에 추도예배를 공식적으로 진행하려다가 백영희 당시 조사님의 반대로 하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주 목사님의 경우는 백 조사님이 유일한 제자라 할 위치가 있어 더욱 그러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도 살아 생전 애양원에서 추도예배를 엄하게 금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들은 자기들 고국에서 우리와 달리 죽은 분이 죽은 그 날에 귀신이 되어 찾아오고 자손들이 제사로 섬겨야 된다는 등의 생각과 관습은 전혀 없고 순수하게 구약의 추수감사 맥추감사 부활절과 같은 절기들을 비록 계명은 아니나 1 년 한 차례 특별히 그 날에 그런 신앙의 의미를 더 뜨겁게 한다는 정도에서 추도식을 예사로 하기 때문에 한국의 추도예배에 대해서는 한국인의 정서 파악을 하지 못해 어설프게 했고 이로 인해 혼란의 여지를 남겼습니다.
- 명절예배
한국 전통사회는 미신법에 의해 설날과 추석날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기타 절기들도 다 미신적 요소가 깔려 있습니다. 물론 음력의 절기들이 농사나 수산업에 자연 흐름을 활용하는 과학적인 측면도 있으나 그 과학적 측면에 교묘히 귀신이 스며들어 이 둘을 떼놓지 못할 정도입니다. 따라서 음력을 가지고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는 경제와 과학에는 오늘도 우리가 활용하지만 그런 절기에 축제나 음식이 오가는 설 추석 동지 등의 여러 행사는 믿는 사람이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동지의 팥죽이 그냥 팥죽이 아니라 귀신을 쫓는 예법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믿은 이후에 이런 예법은 완전히 버렸으나 그냥 먹던 습관이 되어 맛 때문에 팥죽을 먹는다면 그 것도 금해야 하는가? 참고로 이 곳 공회 노선은 설날 추석날 교회에서 단체로 기도를 가고 동짓날 팥죽은 커녕 생일이나 환갑도 없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은 서부교회 부임일도 모르고 서부교회 전체를 통해 그런 기록도 없고 기억하는 이도 없고 물어도 몰라서 타 교단 기록으로 그 분 사후에 겨우 찾은 정도입니다.
그런데 다른 교단들이 동짓날 팥죽이 교회 안에서 음식으로 나온다든지 설날 추석날 명절예배를 드린다든지 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앞에서 말한 대로 그 배경과 내용을 알지 않고 섣불리 정죄하기가 어려워 언급은 피하지만 원칙으로 말한다면 사월초파일 예배를 두고 교회가 왜 하필 그 날에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묻는다면 아마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고 용감한 사람들은 안 된다고 할 것입니다.
5. 요약하면
한국교회사에서 최초의 교회, 최초의 목사, 최초의 무슨 기록을 찾는 것은 역사신학에서는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지만, 실제 복음의 일선에서 첫 수고를 해 보는 분들에게는 최초의 기록은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목숨 걸고 자기 달려 갈 길만 갔습니다. 훗날 학자들이 이런 것을 연구하여 현실에서 신앙을 잘 지키는 데 활용한다면 귀한 것이나 문제는 정확한 기록이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 이후 정말 선교의 역사에는 늘 그런 법입니다.
지금 한국의 공식 기록에는 중국에 간 최초 선교사가 있을지 몰라도, 정말 선교한 사람은 그들보다 먼저 혼자 목숨 걸고 갔을 것입니다. 전쟁이 끝 난 뒤에 정말 공로자들은 대개 무명으로 남습니다. 우연히 기록이 남아 덕을 보는 이들도 있기는 합니다.
한국교회는 미국의 남장로교 북장로교 감리교 카나다와 호주 선교부 등이 주로 활동했고 영국 선교사 토마스의 활동도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보다 앞 서 정말 선교 자체에 불 타는 이들이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기록에 남을 수도 있고 남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질문하신 한국 최초의 기록들은 답변자가 알지 못합니다. 아마 기록에 남아 있기 어려울 듯합니다. 기록에 남아 있다면, 그 기록은 기록 중에는 최초 기록이 될지 몰라도 신앙 실제에서 최초가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 장례 예법 등의 구체적 내용은 답변자 상식으로 예를 든 것이고 옛법의 사실 관계에 대한 단정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는 범위에서 적은 이유는 전체 흐름 때문입니다.
>> 박노아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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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장로교-통합에 속한 자입니다. 교회 입장에 반하는 질문을 드리는 결례를 범하지 않는지 해서 조심스럽습니다. 전에도 기독교계에서 얘기가 안나온 건 아니지만, 장례예배*추도예배*명절예배*헌화는 우상숭배인지?를 알고 싶습니다. 예로: 일제시대때, 예배 시작시에 천황이나 신사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숙이고 묵도를 한 것이 <신사참배>이고 <우상숭배>라고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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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예수교장노회의 목회자들이 신사참배를 결의했고요. 해방이 되고 시간이 많이 흘러서,, 신앙양심을 지적하는 주변의 따가운 눈총으로 회개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유대인이 죽으면,, 시신을 앞세우고 장례행렬이 함께 가서는 돌무덤에 시신을 넣어두고 오면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장례식이니,,장례예배니,,이런 건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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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례예배*추도예배*명절예배..이런 종교적인 행위를 <우상숭배>로 보는 의견이 상당히 있던데요. 귀교회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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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우기, 추도예배는 1800년대 말에 선교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감리교 이무영(당시, 궁중일을 보는 관료)이라는 교인이 예수교로 개종한 이유로 인해서,, 어머니 제사를 어찌해야 하나? 하다가 <추도예배>를 발명해 냈다고 자료를 보았습니다. 그 이후에 성경에 없는 것을 한국교회 속에 토착화시킨 건 아닐려는지요. 추도예배가 보편화되자, 장례예배(임종,입관,발인,하관)나 명절예배가 보편화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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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장례예배를 맨처은 드리게 된 최초 교회(교회명?)의 사례를 알고 싶습니다.
: (3) 명절예배를 맨처음 드리게 된 최초 교회(교회명?)의 사례를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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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어려운 질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우상숭배는 무서운 죄 아니겠습니까? 시원하고 명쾌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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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예배*추도예배*명절예배*헌화는 우상숭배입니까?
안녕하세요. 장로교-통합에 속한 자입니다. 교회 입장에 반하는 질문을 드리는 결례를 범하지 않는지 해서 조심스럽습니다. 전에도 기독교계에서 얘기가 안나온 건 아니지만, 장례예배*추도예배*명절예배*헌화는 우상숭배인지?를 알고 싶습니다. 예로: 일제시대때, 예배 시작시에 천황이나 신사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숙이고 묵도를 한 것이 <신사참배>이고 <우상숭배>라고 알고 있습니다.
조선예수교장노회의 목회자들이 신사참배를 결의했고요. 해방이 되고 시간이 많이 흘러서,, 신앙양심을 지적하는 주변의 따가운 눈총으로 회개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유대인이 죽으면,, 시신을 앞세우고 장례행렬이 함께 가서는 돌무덤에 시신을 넣어두고 오면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장례식이니,,장례예배니,,이런 건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1) 장례예배*추도예배*명절예배..이런 종교적인 행위를 <우상숭배>로 보는 의견이 상당히 있던데요. 귀교회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더우기, 추도예배는 1800년대 말에 선교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감리교 이무영(당시, 궁중일을 보는 관료)이라는 교인이 예수교로 개종한 이유로 인해서,, 어머니 제사를 어찌해야 하나? 하다가 <추도예배>를 발명해 냈다고 자료를 보았습니다. 그 이후에 성경에 없는 것을 한국교회 속에 토착화시킨 건 아닐려는지요. 추도예배가 보편화되자, 장례예배(임종,입관,발인,하관)나 명절예배가 보편화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 장례예배를 맨처은 드리게 된 최초 교회(교회명?)의 사례를 알고 싶습니다.
(3) 명절예배를 맨처음 드리게 된 최초 교회(교회명?)의 사례를 알고 싶습니다.
너무 어려운 질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우상숭배는 무서운 죄 아니겠습니까? 시원하고 명쾌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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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장로교-통합에 속한 자입니다. 교회 입장에 반하는 질문을 드리는 결례를 범하지 않는지 해서 조심스럽습니다. 전에도 기독교계에서 얘기가 안나온 건 아니지만, 장례예배*추도예배*명절예배*헌화는 우상숭배인지?를 알고 싶습니다. 예로: 일제시대때, 예배 시작시에 천황이나 신사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숙이고 묵도를 한 것이 <신사참배>이고 <우상숭배>라고 알고 있습니다.
조선예수교장노회의 목회자들이 신사참배를 결의했고요. 해방이 되고 시간이 많이 흘러서,, 신앙양심을 지적하는 주변의 따가운 눈총으로 회개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유대인이 죽으면,, 시신을 앞세우고 장례행렬이 함께 가서는 돌무덤에 시신을 넣어두고 오면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장례식이니,,장례예배니,,이런 건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1) 장례예배*추도예배*명절예배..이런 종교적인 행위를 <우상숭배>로 보는 의견이 상당히 있던데요. 귀교회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더우기, 추도예배는 1800년대 말에 선교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감리교 이무영(당시, 궁중일을 보는 관료)이라는 교인이 예수교로 개종한 이유로 인해서,, 어머니 제사를 어찌해야 하나? 하다가 <추도예배>를 발명해 냈다고 자료를 보았습니다. 그 이후에 성경에 없는 것을 한국교회 속에 토착화시킨 건 아닐려는지요. 추도예배가 보편화되자, 장례예배(임종,입관,발인,하관)나 명절예배가 보편화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 장례예배를 맨처은 드리게 된 최초 교회(교회명?)의 사례를 알고 싶습니다.
(3) 명절예배를 맨처음 드리게 된 최초 교회(교회명?)의 사례를 알고 싶습니다.
너무 어려운 질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우상숭배는 무서운 죄 아니겠습니까? 시원하고 명쾌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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