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설교가 공회의 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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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설교가 공회의 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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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 내용을 중심으로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말이 있습니다. 눈 앞만 짧게 보면 생활 설교나 도덕 설교를 해야 교인들에게 즉효가 있습니다. 좋게 듣고 이해도 잘 하고 생활에 반영이 잘 됩니다. 이로 인해 변화 된 모습도 빠르게 나타 나기 때문에 전도에도 좋습니다.


이에 비해 교리 설교는 교인들의 일반 학습력이 천차만별이며 일반 교회의 교리 설교는 학습력이 있는 고졸 이상이면 가능하나 공회의 교리 설교는 대학원이든 박사 수료자를 막론하고 집중력이 없으면 따라 오지도 못할 정도입니다. 교리 설교라는 것 자체가 어려운 편에 속하며 설교의 형태는 강의 식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공회 교리는 거의 전부가 수백 년 내려 오는 일반 교리를 거의 모든 면에서 단번에 심화를 시켰고, 단순한 심화가 아니라 거의 모든 면에서 새로운 구성 체계로 접근하기 때문에 공회 교리의 가치성을 알아 차린 목회자나 신학자가 아니면 사실상 들을 수 없다는 평가를 자주 받습니다.


2. 공회 설교의 기본 방향

다행스럽게 우리는 일반 대학의 강의나 타 종교의 교리를 공부하지 않고 성경 말씀을 대상으로 합니다. 교회의 예배 시간에 설교는 성령이 듣는 이들의 마음 속에서 직접 역사하시기 때문에 기독교의 교과서인 성경의 문장 구성만 가지고 학습 난이도를 따지는 것은 사실 처음부터 접근이 잘못 되었습니다. 천하 없이 어려운 책이라도 그 저자가 읽는 사람 옆에 직접 설명한다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 질 것입니다.


성경은 그 표현이나 문장 자체만 가지고도 난해하여 학습 자세로 단순히 읽거나 교리 중심으로 강의하고 배우는 것은 틀림 없이 일반 교인에게 적용 시킬 수 없습니다. 지금 인터넷에 교파를 막론하고 별별 설교들이 난무하지만 일반적인 어느 한 교회의 주일 오전 설교를 들어 보시고 그리고 백 목사님의 주일 오전 설교를 아무 것이나 펴고 읽어 보시면 백 목사님 설교의 난이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울 것입니다.


백 목사님은 자신이 세상 공부를 하지 않았고 신학은 구경만 잠깐 했을 뿐입니다. 그는 성경 하나만 들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고대하며 아는 대로 읽었고 깨달은 것은 생활 속에서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이 자세와 충성을 보시고 성령은 조금씩 더 알려 주셨고 그 반복을 통해 그의 노년은 그의 평생에 절정기였고, 그의 절정기의 그 어려운 설교를 듣는 교인들은 불신 가정에서 나온 수 많은 주일학생 중고등 학생 무식한 사람들 글도 모르는 학습 하층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그들이 설교가 어려워 재미 없고 앉아 있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없었습니다. 오히려 도덕 생활 설교를 하는 타 교단은 1 시간을 설교한다면 교인들이 앉아 있는 것이 어렵다 하여 30분까지 설교 시간이 줄어 들었고 심지어 20 분에서 25 분이 대세라는 말까지 나왔으나, 백 목사님 설교는 주일 오전에 2 시간 때로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불신 가정의 어린 학생들이 장년반 일반 예배 참석이 너무 많아 지게 되자 훗날 그 설교 시간을 줄였으나 기본적으로는 늘 그러했습니다.


특히 5월과 8월의 연차 집회 때는 새벽 4:30, 오전 9시 30분, 오후 2시 경 등으로 시작하며 설교만 2 ~ 3 시간이 보통이었습니다. 여름 집회 1만 5천여 명이 숨 죽여 전체가 가마니 위에 앉아 말씀을 필기하며 듣는 모습은 그 모습을 보는 것 자체만 가지고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함을 모두가 함께 느꼈습니다. 그런 상황이 가능한 이유는 그가 지식과 학습력과 표현 방법처럼 인간적이며 세상적인 요소를 전혀 배제하고 자기 속에서 성령이 인도하심을 따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그대로 전했을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3. 공회 설교의 관건

공회 목회자는 원칙적으로 백 목사님의 설교록을 원고로 삼고 최대한 그대로 전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내용이 너무 성경적이면서도 어렵고 또 설교 전체가 체계적이어서 웬만한 목회자로서는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기 위해 설교 내용을 조절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잘못 조정을 하게 되면 새로운 현실을 위한 설교가 아니라 변질 된 이상한 설교가 되고 심지어 성경 자체를 벗어 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설교들 중에 목회자가 그 교회에 그 당시 필요한 말씀에 비교적 가장 가까운 설교를 선택하고 될 수 있으면 원문 설교를 충실히 전하되, 전하면서 목회자들은 외형의 설교를 듣는 교인들에게 성령이 직접 그들 마음 속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도록 성령님께 맡기려고 합니다.


설교가 설득이거나 세뇌 교육이라면 인간적으로 그런 면에 실력 있는 사람이 잘 할 것이나, 설교가 성경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면 전하고 듣는 이들 속에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의미 없는 꾕과리 소리가 될 것입니다. 앵무새도 설교의 몇 마디는 전할 것이고, 녹음기는 아주 탁월할 것이고, 요즘 기술은 감격적으로 듣고 느끼게 만들 것입니다. 문제는 이 세상에 없는 하늘의 말씀을 전하고 듣는 것이 설교라면 설교는 인간으로서는 할 만큼 해 보는 것이 전부고 실제로는 성령의 감동이 역사를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데 달려 있을 것입니다. 즉, 성령 하나님이 움직여야 설교고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나 때우가 끝이 날 뿐입니다. 현재 한국 교회 최고의 설교가의 설교에 온 청중이 눈물을 철철 흘리나 반 벙어리 수준으로 설교하고 듣는 이들은 태반이나 졸고 있다 해도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두 경우는 꼭 같은 인간의 말놀이에 끝나며 신앙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만일 성령이 역사하신다면 두 경우 다 그 결과가 같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성령이 감화와 감동의 역사로 함께 하실 수 있을까? 요령 부리지 않고, 인간 노력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교육 심리적 방법을 버리고, 오로지 성령이 불쌍히 여기고 함께 해 주실 수 있도록 '진심'과 '충성'을 다할 뿐입니다. 진정으로 자기를 다 기울이면 성령은 역사하시고 그렇지 않으면 성령이 손을 떼 버립니다. 세상 것은 성령 없이 인간 실력과 환경에 달려 있으나 신앙의 세계는 그 어느 것이든 주님이 손 대지 않고는 되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 없이도 되는 것이 있다면 신앙의 모습일 뿐이지 신앙의 내용은 아닙니다.


4. 답변자는 공회 목회자가 아닙니다.

공회 목회자는 신학을 배제하고, 이 게시판을 지켜 보며 문답을 하는 일을 하지 않고, 교인들이나 교단의 담당자들을 만나 회의하고 섭외하고 함께 돌아 다니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 교회 교인들을 한 주간에 한 번씩 방문하여 살피고, 그 외 시간은 한 평짜리 산 속의 기도실에 들어 가서 성경 읽고 기도만 합니다. 어느 교회에 전화를 했을 때 공회의 정상적인 목회자라면 통화가 어렵습니다. 타 교단 목회자는 회의에 무슨 모임에 다니느라고 그런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나 공회 목회자는 심방 중이 아니면 기도나 성경 읽느라고 휴대 전화를 꺼 두었을 것입니다. 사실 휴대폰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 분도 드물 것입니다.


답변자는 공회 전체적으로 백 목사님 생전에 공회의 자료와 연구와 정리 전파를 위해 세운 연구소 직원입니다. 연구소 직원들은 답변자 한 사람 외에는 교회를 배정 받지 않았습니다. 설교록 출간만 해도 넘치기 때문입니다. 답변자에게는 연구 기능을 부탁하시면서 목회 없는 연구는 죽은 연구가 된다 하여 순교 6 개 월 전에 현재 부임한 교회에 배치했습니다. 그러면서 연구 8과 목회 2로 맡겼습니다. 이런 경우는 목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답변자는 담당한 교회에 부임 처음부터 공회의 이런 입장이 불편하면 언제든지 연구소로 돌아 가겠다고 했고 세월이 오래 지나면서 이제는 이런 설명을 할 것도 없이 답변자가 맡고 있는 교회는 연구소를 운영하는 사명이 최우선이 되어 있는 특별한 경우입니다.


답변자 교회 교인들은 비록 다는 아니라 해도 너무 많은 분들이 연구소의 업무를 분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전체 분위기로 볼 때 이 분들에게는 이 노선 설교의 내용은 넘치나 그 내용으로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적용해야 할지만 간단히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한 편으로 답변자 역시 거의 모든 시간을 연구소 관련 활동만 하고 있기 때문에 공회의 다른 목회자들처럼 어느 한 설교를 하루 종일 또는 한 주간 잘 준비해서 전하는 좋은 사례를 맞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구소의 업무를 두고 본다면 답변자는 하루의 전부, 한 주간의 거의 전부를 연구소 업무에 전념하지만 다른 목회자들은 공회의 목회자로 설교 준비를 충실히 하는 정도여서 정상적으로 설교를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결론적으로 답변자는 연구소 업무에 전념하는 직원입니다. 말하자면 일반 교인 중에 한 사람이지 공회 기준에서는 목회자라 할 수가 없습니다. 질문자의 지적은 다 옳은 말씀입니다. 답변자의 부족 때문이며, 답변자의 전념 분야 때문에 일어 난 일입니다. 자주 설명하기 어렵고 본 사이트에서는 한 직원의 개인 신상을 최대한 표시하지 않는 원칙 때문에 가끔 설명이 필요할 때도 최소화를 했습니다. 이 번 기회에 앞 날의 유사한 질문을 예상하여 미리 설명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5. 백영희 사후 공회의 설교관

답변자의 특별한 상황을 배제하고, 이 번 질문에 대해서는 한 가지를 보태고 싶습니다. 공회 전체와 이 시대 전체를 통괄적으로 본다면 공회 교훈에 철저한 분들에게는 '시급히' '중대하게' 그 동안 머리 속에 심어 둔 공회의 교리와 성경 교훈을 가지고 이제는 자기 내면과 자기 생활에 실제 적용을 시켜야 하는 상황으로 봅니다. 백영희라는 인물은 분명히 오늘 우리를 위해 주님이 보내셨고 전하라는 내용을 잘 전했다고 봅니다. 백 목사님이 직접 목회하던 서부교회나 총공회 전체 교인들에게 그들의 평소 생활에만 필요한 정도의 교훈을 전하려 했다면 이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설교의 분량이나 내용의 100분의 1이나 1000분의 1이라 해도 부족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때뿐 아니라 이후 시대에 전할 사명을 가졌고 그가 직접 목회한 교회뿐 아니라 그와 상관이 없었던 타 교파들과 타 지역에까지 전할 사명을 가졌으므로 그에게 부어 준 내용은 너무 많았습니다.


문제는 그의 설교를 직접 듣고 있던 서부교회와 공회 교인들에게는 자기들에게 직접 필요한 분량보다 너무 많고 너무 깊은 것을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그 결과 공회 교인들의 지식과 이론은 대형교회의 목회자가 되어도 넉넉할 정도인데 교인들의 자기 인격과 생각과 언행은 유치원에나 가야 할 경우가 허다합니다. 실은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시대적으로 본다면 백영희라는 인물을 통해 20세기 중반과 후반에 공회 교회에 주신 말씀은 실행보다 이론 전달에 중점을 두었다면, 21세기 초반의 현재 답변자가 사는 시대의 공회인들은 이제 타 교단 사람들이 익히 잘 하고 있는 인사법, 예절법, 좌석 앉는 법과 같은 지극히 초보적인 언행을 시작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까지를 고려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답변자 교회의 설교 내용은 '교인들끼리 청소하다 늦게 왔다고 섭섭해서 다음 날 교회를 나오지 않으려 하는 수준'을 대상으로 새 출발을 하는 식입니다.


>> 외부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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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변하시는 목사님의 설교를 구해서 들었습니다. 홈에서는 백 목사님 설교록만 그토록 권하시는 모습인데 막상 목회하는 교회서는 백 목사님 설교록 인용은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또 백 목사님은 교리 설교를 중심으로 하시는데 목사님은 생활 설교가 중심이었습니다. 알아 듣기는 쉬우나 신앙의 뼈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환란이나 훗날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백 목사님 설교록에서 배운 상식인데 저도 그렇다고 생각하며 문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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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고민이 되는 것은 사실 목사님처럼 설교를 하지 않고 교리 설교를 중심으로 하면 듣는 교인들이 어렵게 생각하고 어린 교인들은 다른 교회를 기웃거리거나 선교방송이나 인터넷에 설교를 찾습니다. 이 시대를 고민하며 내린 목사님의 결정에 배경과 목회 상황을 폭넓게 설명 듣고자 합니다.
교리 설교와 생활 설교
답변하시는 목사님의 설교를 구해서 들었습니다. 홈에서는 백 목사님 설교록만 그토록 권하시는 모습인데 막상 목회하는 교회서는 백 목사님 설교록 인용은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또 백 목사님은 교리 설교를 중심으로 하시는데 목사님은 생활 설교가 중심이었습니다. 알아 듣기는 쉬우나 신앙의 뼈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환란이나 훗날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백 목사님 설교록에서 배운 상식인데 저도 그렇다고 생각하며 문의 드립니다.


그런데 고민이 되는 것은 사실 목사님처럼 설교를 하지 않고 교리 설교를 중심으로 하면 듣는 교인들이 어렵게 생각하고 어린 교인들은 다른 교회를 기웃거리거나 선교방송이나 인터넷에 설교를 찾습니다. 이 시대를 고민하며 내린 목사님의 결정에 배경과 목회 상황을 폭넓게 설명 듣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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