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음악회, CCM, 성극, 연예오락식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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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0 23:25
성탄이 되면 세상 음악회나 오락 프로그램처럼 진행합니다. 공회 교회들을 찾아봤으나 비슷해 보였습니다. 인터넷이나 기독교 언론에서 소개할 때는 김현봉 백영희 이병규 계열의 교회는 한국교회의 경건주의를 지켜온다고 했는데 성탄행사는 같아보였습니다.
한가지 질문을 추가합니다. 어릴 때는 시내에 교회들마다 성탄츄리를 화려하게 했습니다.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좌경화 된 세상의 영향을 받은 결과일까요? 음모론도 많으나 실제 이런 현상의 원인을 알고 싶습니다.
한가지 질문을 추가합니다. 어릴 때는 시내에 교회들마다 성탄츄리를 화려하게 했습니다.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좌경화 된 세상의 영향을 받은 결과일까요? 음모론도 많으나 실제 이런 현상의 원인을 알고 싶습니다.
1. 성탄절 행사
백영희 목사님 생전 서부교회 주일학교는 세계적으로 이름이 나서 유명했습니다. 매주 8천명이 모였고, 성탄절이 되면 1만명이 넘게 모였습니다. 전국에서 매주 많은 교회들이 견학을 왔었습니다. 그런 서부교회의 성탄절 행사는, 학생들 중심의 찬송과 성경 암송이 전부였고, 장년반 행사는 성탄절 하루종일 전도지 전하는 것으로 보냈습니다.
성탄절 하루 이틀 정도 전에 교회 주변의 난전에 장사하는 분들, 평소 많은 주일학생들 때문에 겪는 불편, 찬송하는 소음 등 때문에 본의 아니게 피해 본 분들을 교회 1층에 초대해서 떡국을 끓여 대접했습니다. 성탄절이어서 경로당이나 주변에 약간의 이웃돕기 하는 정도였습니다. 장년반은 아예 찬송이나 특별 순서가 없었고, 몇 년에 한 번 정도 여 집사님의 특송 하나 정도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지금 총공회에 속한 교회들도 대부분 성탄절 행사는 일반 교계를 많이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전도가 어려운 시기에 전도의 방법으로 이해는 하지만, 그렇게 하나씩 나가다 보면 결국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 교회 역사입니다.
이곳 연구소에 속한 교회들은 성탄절 행사를 백 목사님 생전보다 오히려 간략하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성탄절인 25일에는 별도로 예배가 없고, 성탄절 전후로 가까운 주일에 1년에 한 번 학생들에게 선물 주는 것, 교인들이 함께 떡국으로 점심을 같이 먹는 것, 그리고 유치부 학생들 찬송과 암송, 초등학생들 찬송과 암송, 그리고 여학생들로만 구성된 찬양대의 찬송과 암송 정도로 성탄 행사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성탄절이 없어지고 잊혀져 가는 흐름이 있어서 작년부터는 성탄절 새벽송을 하기도 합니다. 간단하게 하면서도 성탄절의 본 의미를 새기면서 잊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성탄절 장식과 분위기
과거에는 명절이 명절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설, 추석은 밤잠을 자지 않고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었습니다. 아이들 운동회나 소풍 가는 전날 밤에는 설레어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불신자들도 성탄절에는 교회를 갔고, 불신자들도 성탄절 트리는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성탄절 찬송은 불신자들도 알았고 흥얼거렸고 좋아했습니다. 교회들이 하는 것은 다 이해를 했습니다.
지금은 매일이 명절이고 매일이 소풍이고 운동회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구경할 것, 놀 것이 너무 차고 넘쳐서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TV도 켤 필요가 없습니다. 손바닥 안의 휴대폰에 세상 모든 재미가 다 있고, 구경거리가 다 들어 있습니다. 성탄 트리가 새로울 것도 없고 신기할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식상할 정도입니다.
또 다른 면으로는,
벌써 지금부터 40여년 전인데, 80년대까지만 해도 개인 신앙도, 교회도, 교계도, 사회 분위기도, 시대적인 흐름도, 정상적인 시대의 막바지이긴 하지만 그래도 좀 건전했습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갈수록 신앙은 속화되고, 세상의 도덕도 윤리도 없어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과학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 시대 자체도 정상적인 모습이 없다 할 만큼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가 되고 여자가 남자가 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부부다운 부부가 드물고, 가정다운 가정이 다 무너져 가는 시대입니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고 정상이 비정상이 되어 있는 때입니다. 어느 한쪽만이 아니고 총체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는 참 말세지 말입니다. 세상의 그런 흐름에 교회들도 편승하여 교회다운 교회가 희귀한 때입니다. 주님 말씀에, 내가 세상에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믿는 자를 보겠느냐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교회를 찾아보기 힘든 때입니다. 좌경화나 음모론 같은 것을 떠나서 시대적인 흐름으로 보이고, 그런 흐름에 교회들도 알게 모르게 물들고 따라가는 것 아닌가 염려합니다.
세상은 돌고 돈다고 합니다. 유행도, 가치관도, 재미도 다 그렇습니다. 이것을 성경 전도서에는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전에 있던 것이 지금 있고, 지금 있는 것이 이후에도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탄에 대한 깊은 의미까지는 몰라도 껍데기라도 가지고 있으면 세월의 흐름에서 알맹이를 찾을 수 있는데 마귀 귀신이 껍데기까지 다 까먹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럴 때여서 생각 있는 교회는 오히려 과거에 안 하던 트리도 하고, 안 하던 성탄절 행사를 더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세상이나 일반 교계 식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찬송과 성경 암송을 더 하고, 그동안 안 하던 새벽 찬양 같은 것을 하기도 합니다. 신앙에 유익하고 좋은 것들은 이어나가는 것이 다음 세대에도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옳고 바른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몫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역사는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백영희 목사님 생전 서부교회 주일학교는 세계적으로 이름이 나서 유명했습니다. 매주 8천명이 모였고, 성탄절이 되면 1만명이 넘게 모였습니다. 전국에서 매주 많은 교회들이 견학을 왔었습니다. 그런 서부교회의 성탄절 행사는, 학생들 중심의 찬송과 성경 암송이 전부였고, 장년반 행사는 성탄절 하루종일 전도지 전하는 것으로 보냈습니다.
성탄절 하루 이틀 정도 전에 교회 주변의 난전에 장사하는 분들, 평소 많은 주일학생들 때문에 겪는 불편, 찬송하는 소음 등 때문에 본의 아니게 피해 본 분들을 교회 1층에 초대해서 떡국을 끓여 대접했습니다. 성탄절이어서 경로당이나 주변에 약간의 이웃돕기 하는 정도였습니다. 장년반은 아예 찬송이나 특별 순서가 없었고, 몇 년에 한 번 정도 여 집사님의 특송 하나 정도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지금 총공회에 속한 교회들도 대부분 성탄절 행사는 일반 교계를 많이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전도가 어려운 시기에 전도의 방법으로 이해는 하지만, 그렇게 하나씩 나가다 보면 결국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 교회 역사입니다.
이곳 연구소에 속한 교회들은 성탄절 행사를 백 목사님 생전보다 오히려 간략하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성탄절인 25일에는 별도로 예배가 없고, 성탄절 전후로 가까운 주일에 1년에 한 번 학생들에게 선물 주는 것, 교인들이 함께 떡국으로 점심을 같이 먹는 것, 그리고 유치부 학생들 찬송과 암송, 초등학생들 찬송과 암송, 그리고 여학생들로만 구성된 찬양대의 찬송과 암송 정도로 성탄 행사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성탄절이 없어지고 잊혀져 가는 흐름이 있어서 작년부터는 성탄절 새벽송을 하기도 합니다. 간단하게 하면서도 성탄절의 본 의미를 새기면서 잊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성탄절 장식과 분위기
과거에는 명절이 명절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설, 추석은 밤잠을 자지 않고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었습니다. 아이들 운동회나 소풍 가는 전날 밤에는 설레어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불신자들도 성탄절에는 교회를 갔고, 불신자들도 성탄절 트리는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성탄절 찬송은 불신자들도 알았고 흥얼거렸고 좋아했습니다. 교회들이 하는 것은 다 이해를 했습니다.
지금은 매일이 명절이고 매일이 소풍이고 운동회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구경할 것, 놀 것이 너무 차고 넘쳐서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TV도 켤 필요가 없습니다. 손바닥 안의 휴대폰에 세상 모든 재미가 다 있고, 구경거리가 다 들어 있습니다. 성탄 트리가 새로울 것도 없고 신기할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식상할 정도입니다.
또 다른 면으로는,
벌써 지금부터 40여년 전인데, 80년대까지만 해도 개인 신앙도, 교회도, 교계도, 사회 분위기도, 시대적인 흐름도, 정상적인 시대의 막바지이긴 하지만 그래도 좀 건전했습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갈수록 신앙은 속화되고, 세상의 도덕도 윤리도 없어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과학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 시대 자체도 정상적인 모습이 없다 할 만큼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가 되고 여자가 남자가 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부부다운 부부가 드물고, 가정다운 가정이 다 무너져 가는 시대입니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고 정상이 비정상이 되어 있는 때입니다. 어느 한쪽만이 아니고 총체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는 참 말세지 말입니다. 세상의 그런 흐름에 교회들도 편승하여 교회다운 교회가 희귀한 때입니다. 주님 말씀에, 내가 세상에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믿는 자를 보겠느냐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교회를 찾아보기 힘든 때입니다. 좌경화나 음모론 같은 것을 떠나서 시대적인 흐름으로 보이고, 그런 흐름에 교회들도 알게 모르게 물들고 따라가는 것 아닌가 염려합니다.
세상은 돌고 돈다고 합니다. 유행도, 가치관도, 재미도 다 그렇습니다. 이것을 성경 전도서에는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전에 있던 것이 지금 있고, 지금 있는 것이 이후에도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탄에 대한 깊은 의미까지는 몰라도 껍데기라도 가지고 있으면 세월의 흐름에서 알맹이를 찾을 수 있는데 마귀 귀신이 껍데기까지 다 까먹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럴 때여서 생각 있는 교회는 오히려 과거에 안 하던 트리도 하고, 안 하던 성탄절 행사를 더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세상이나 일반 교계 식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찬송과 성경 암송을 더 하고, 그동안 안 하던 새벽 찬양 같은 것을 하기도 합니다. 신앙에 유익하고 좋은 것들은 이어나가는 것이 다음 세대에도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옳고 바른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몫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역사는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앞의 설명을 참고하시면서 또 이런 면도 기억하셨으면.
(성탄절)
성탄의 날짜와 행사는 성경에는 없으나, 어린 신앙을 위해 사람의 생일처럼 주님의 생일을 축하하자는 좋은 뜻으로 출발했습니다. 교회의 제도와 행사가 처음에는 좋은 뜻으로 시작하나 악령이 지나치게 밀어 버리면 천주교처럼 됩니다. 너무 지나치다 하여 반발심으로 줄이고 없애다 보면 신앙의 내면까지 해체하고 무교회주의와 무신론으로 가는 것이 역사입니다.
나의 죄로 지옥 갈 나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으니 이 점은 넘치게 감사를 해야 하나, 세상 사람의 일반 생일 잔치처럼 시작하고 확대를 하다 보니 성탄절을 기회로 7계명의 죄가 넘치고 연말의 회개할 기회까지 없어 지게 되었습니다. 성탄의 의미를 묵상하고 깨닫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고 눈 앞에 세상의 잔치를 만들어 버리면 우선은 호응이 있습니다. 트리도 그렇습니다.
(현상황)
이제 먹을 것이 넘치고 유치원부터 모든 학교와 가정과 세상의 각종 선물과 행사가 봇물처럼 쏟아 집니다. 또 시골의 골목까지 1년 내내 각종 조명과 장사와 각종 안내판이 넘치다 보니 성탄의 트리도 행사도 선물도 세상의 일부가 되고 세상에게 보여 줄 만한 것도 되지 못하며, 오히려 성탄 때문에 주일과 일반 예배처럼 더 중요한 것을 손해 보는 상황입니다.
공회는 80년대까지 세상까지 성탄절에 휩싸일 때 성탄의 뜻과 중심을 담은 주일과 예배에 주력했습니다. 이제는 세상과 교회가 성탄을 내버리는 상황이다 보니 성탄의 좋았던 때를 잊지 않도록 가끔 최소한의 표시는 할 수도 있으나 이런 의미를 모르다 보니 공회도 연구소 이 곳과 관련 되지 않은 교회들은 거의 교계와 세상을 따라 가고 있다고 보입니다.
(음모론)
세상의 음모론은 그냥 던져 보는 것이 많고 그 중에 소리 없이 새어 나오는 비밀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문제를 두고는 악령이 한치의 실수도 없이 고의로 진행합니다. 탄압이 필요할 때는 그렇게, 소문이 필요할 때는 그렇게, 또 은밀히 죄어 가야 할 때는 또 그렇게 합니다. 성탄절과 캐롤과 트리 등을 기독교 우대라 하여 차별금지라는 소방대를 통해 불을 끄고 있습니다. 이 것은 음모론이 아니라 교회 역사에서 항상 봐 온 것이고 현재 그런 뜻을 가지지 않았다 해도 그들 배후의 악령은 교회가 열심을 내면 지나치게 만들어 앞으로 넘어 지게 하고, 교회가 힘을 잃으면 뒤에서 당겨 주저 앉게 하는 상황입니다.
이럴 때 악령의 조처는 성경과 교회사에서 쉽게 볼 수 있으니 그 정도만 상식적으로 알면 되고, 우리의 주력은 꼭 해야 할 일만 하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주님과 주님의 사활의 대속을 늘 잊지 않고 감사하되, 주님은 출생 때부터 우리 위해 고난을 모두 겪었으니 그 성탄에는 항상 성찬을 나란히 두고 감사하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가장 좋은 성탄은 주일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성탄절)
성탄의 날짜와 행사는 성경에는 없으나, 어린 신앙을 위해 사람의 생일처럼 주님의 생일을 축하하자는 좋은 뜻으로 출발했습니다. 교회의 제도와 행사가 처음에는 좋은 뜻으로 시작하나 악령이 지나치게 밀어 버리면 천주교처럼 됩니다. 너무 지나치다 하여 반발심으로 줄이고 없애다 보면 신앙의 내면까지 해체하고 무교회주의와 무신론으로 가는 것이 역사입니다.
나의 죄로 지옥 갈 나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으니 이 점은 넘치게 감사를 해야 하나, 세상 사람의 일반 생일 잔치처럼 시작하고 확대를 하다 보니 성탄절을 기회로 7계명의 죄가 넘치고 연말의 회개할 기회까지 없어 지게 되었습니다. 성탄의 의미를 묵상하고 깨닫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고 눈 앞에 세상의 잔치를 만들어 버리면 우선은 호응이 있습니다. 트리도 그렇습니다.
(현상황)
이제 먹을 것이 넘치고 유치원부터 모든 학교와 가정과 세상의 각종 선물과 행사가 봇물처럼 쏟아 집니다. 또 시골의 골목까지 1년 내내 각종 조명과 장사와 각종 안내판이 넘치다 보니 성탄의 트리도 행사도 선물도 세상의 일부가 되고 세상에게 보여 줄 만한 것도 되지 못하며, 오히려 성탄 때문에 주일과 일반 예배처럼 더 중요한 것을 손해 보는 상황입니다.
공회는 80년대까지 세상까지 성탄절에 휩싸일 때 성탄의 뜻과 중심을 담은 주일과 예배에 주력했습니다. 이제는 세상과 교회가 성탄을 내버리는 상황이다 보니 성탄의 좋았던 때를 잊지 않도록 가끔 최소한의 표시는 할 수도 있으나 이런 의미를 모르다 보니 공회도 연구소 이 곳과 관련 되지 않은 교회들은 거의 교계와 세상을 따라 가고 있다고 보입니다.
(음모론)
세상의 음모론은 그냥 던져 보는 것이 많고 그 중에 소리 없이 새어 나오는 비밀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문제를 두고는 악령이 한치의 실수도 없이 고의로 진행합니다. 탄압이 필요할 때는 그렇게, 소문이 필요할 때는 그렇게, 또 은밀히 죄어 가야 할 때는 또 그렇게 합니다. 성탄절과 캐롤과 트리 등을 기독교 우대라 하여 차별금지라는 소방대를 통해 불을 끄고 있습니다. 이 것은 음모론이 아니라 교회 역사에서 항상 봐 온 것이고 현재 그런 뜻을 가지지 않았다 해도 그들 배후의 악령은 교회가 열심을 내면 지나치게 만들어 앞으로 넘어 지게 하고, 교회가 힘을 잃으면 뒤에서 당겨 주저 앉게 하는 상황입니다.
이럴 때 악령의 조처는 성경과 교회사에서 쉽게 볼 수 있으니 그 정도만 상식적으로 알면 되고, 우리의 주력은 꼭 해야 할 일만 하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주님과 주님의 사활의 대속을 늘 잊지 않고 감사하되, 주님은 출생 때부터 우리 위해 고난을 모두 겪었으니 그 성탄에는 항상 성찬을 나란히 두고 감사하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가장 좋은 성탄은 주일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