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1:3에 서너가지 죄는 명백성 문제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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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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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1 08:14
백영희조직신학의 계시론에 성경은 정확무오하며 명백성이 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아모스 1장에는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을 예로 들며 모두 서너가지 죄라고 되어 있습니다. 3가지인지 4가지인지 죄가 확정이 되어야 정확무오한 말씀이 아닐까요? 대충, 대략, 짐작, 얼추처럼 기록했습니다. 적지 않았으면 생략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대략으로 적으면 정확성이 떨어지고 명백성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고린도전서 7:26에서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 했습니다. 6절에서는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요 명령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명백성이 없다고 보입니다. 민수기 1장의 지파별 계수에서는 백명단위로 적었습니다. 반올림이나 대략수인 것같습니다. 그런데 3:39에서는 레위 총수가 22,000명으로 천단위인데 3:43에서 12지파의 장남 숫자는 22,273명으로 1단위까지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3:47에서 12지파의 처음 난 남자와 레위지파 총숫자를 매칭하여 돈계산을 정확히 한 것을 보면 명백성과 모호성, 정확무오와 대략의 수치가 혼용된다고 보입니다. 정확과 애매한 것을 함께 섞으면 정확이 아니고 부정확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아모스 1장에는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을 예로 들며 모두 서너가지 죄라고 되어 있습니다. 3가지인지 4가지인지 죄가 확정이 되어야 정확무오한 말씀이 아닐까요? 대충, 대략, 짐작, 얼추처럼 기록했습니다. 적지 않았으면 생략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대략으로 적으면 정확성이 떨어지고 명백성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고린도전서 7:26에서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 했습니다. 6절에서는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요 명령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명백성이 없다고 보입니다. 민수기 1장의 지파별 계수에서는 백명단위로 적었습니다. 반올림이나 대략수인 것같습니다. 그런데 3:39에서는 레위 총수가 22,000명으로 천단위인데 3:43에서 12지파의 장남 숫자는 22,273명으로 1단위까지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3:47에서 12지파의 처음 난 남자와 레위지파 총숫자를 매칭하여 돈계산을 정확히 한 것을 보면 명백성과 모호성, 정확무오와 대략의 수치가 혼용된다고 보입니다. 정확과 애매한 것을 함께 섞으면 정확이 아니고 부정확이 되지 않을까요.
아래 내용은
질문하신, 백영희 조직신학에 나와 있는 성경의 ‘정확성’ 부분입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아래의 답변은 이 설명에 대한 보조 정도로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중복되는 내용도 있습니다.
첫째, 성경의 정확성은 세상 기준에 맞춘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숫자나 이름 또는 사건 기록 등에 여러 가지 잘못이 발견됩니다. 이런 오류 때문에 현재 성경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대세입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 정확성의 기준을 잘 몰라서 발생하는 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하셨기 때문에 인간이 볼 때 착오로 보이는 것은 그 인간의 수준이 낮아서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숫자나 이름이나 과학적 사실을 기준으로 삼을 때 발생하는 여러 가지 모순이나 착오는 성경을 그렇게 기록해야 할 필요가 있어 하나님께서 기록했으니 왜 그렇게 기록이 되어졌는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 기록의 목적과 이유를 살피지 않고 성경의 정확성을 평가하는 것은, 색안경을 쓰고 성경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성경의 정확성을 따지려면 우선 자기가 쓰고 있는 안경이 어떤 안경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시145:3)시145:3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
둘째, 성경은 그 기록이 구원목적입니다.
성경을 정확무오하지 않다는 이들은 대개 성경이 구원목적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무시하여 그런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낳은 가인과 아벨의 창세기 4장 기록을 인류 역사 초기의 호적등본으로 생각한다면, 가인이 하나님께 쫓겨나면서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한 것이 모순일 것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4장은 당시 천하에 퍼져나가던 아담의 자손들 중에서 발생한 2가지 신앙노선의 접촉과 갈등만을 따로 뽑아서 특별하게 기록하여 오늘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 4장의 기록은 그 기록 자체가 사실이고, 동시에 그 기록에 관련된 모든 상황은 전부 정확무오하게 하나님께서 기록한 진리입니다. 이 내용을 두고 그 어떤 면으로 비판을 하든지 이의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무지해서 그렇습니다(딤후3: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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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은 구원 도리의 관점으로 봐야 합니다.
성경의 명백성이라는 것은, 기록된 문장이 아닌 그 속에 담겨 있는 구원의 도리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 지식을 가르치는 교과서나 교양서적이 아닌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구원에 필요한 이치를 가르친 말씀이므로 기록된 문장 속에 담겨진 이치, 도리를 찾아야 하고 그 도리가 명백성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서너 가지, 어느 숫자의 반올림 같은 단위, 이래도 저래도 되는 듯한’ 그 자체가 명백성입니다. 그렇게 기록해야 그 속에 정확 무오한 진리를 담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역시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상식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라는 뜻이고, 하나님이 직접 기록하셨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기록했지만 실제는 하나님이 기록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기록을 ‘영감’으로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이 기록하신 성경을 사람의 기준으로 보고 판단하면 맞지 않는 것이 아주 많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높고 깊고 넓으신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하고자 하시는 일, 하나님이 알리시고자 하시는 것을 기록하신 것이 성경입니다. 그것을 사람의 기준으로, 인간 서적의 문법적인 기준으로 보고 판단하면 맞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뜻인 구원, 구원 도리의 관점에서, 정확무오한 진리인 구원 도리를 찾아보면 성경은 하나도 빠짐없이 정확한 명백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2. 인간의 관점으로 명백성은 정할 수 없습니다.
과거 미개할 때는 태양을 비롯한 모든 별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했습니다. 소위 천동설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는 태양은 그냥 있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지동설이 증명되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지나니까 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구원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가 중심입니다. 도는 것이야 지구가 돌면서 태양 주위를 돌겠지만, 광대무변한 우주의 중심은 성경적으로 지구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그나마 가장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은 물리인 과학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과학은 물리이고, 물리는 물질의 이치이며 그 이치는 물질의 진리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정말 바로 아는 과학자들은 과학은 불변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정확한 물리로 발견하고 실험까지도 마친 과학의 이론과 실제가 세월이 지난 후 더 넓게 깊게 많은 것이 발견되면 달라지는 것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 스스로 밝히고 있는 일입니다.
사람은 조석변이라고 합니다. 아침과 저녁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생각이 다르고 마음이 다르며, 감정이 달라집니다.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인간의 관점으로 성경을 읽고 보고 판단하면 성경은 맞을 수가 없습니다. 실제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이론을 정하고 실험을 통해서 확정하는, 그나마 가장 정확하다고 할 수 있는 과학조차도 세월이 지나면 변할 수 있는 것인데, 하물며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명백성을 판단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시각이 됩니다. 인간의 관점으로는 성경은 물론이고 세상의 그 어느 것 하나도 명백성을 정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변하기 때문입니다. 세월 따라, 환경 따라, 입장 따라, 건강 따라서도 변합니다.
3. 명백성이 없으면 성경은 엉터리가 됩니다.
명백성이란, 아주 정확하여 틀림이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명백성은 진리에만 해당됩니다. 진리는 절대성을 가집니다. 절대성이란 내용적으로 정확무오하며, 실제 반드시 그렇게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명백성이 없으면 절대성이 없다는 말이 되고, 절대성이 없으면 진리가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한 마디로 성경은 엉터리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절대자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은 정확무오한 진리이며, 그 진리는 반드시 그렇게 이루어지는 절대성을 가졌고, 이 모든 것을 환하게 알 수 있도록 밝힌 명백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모든 성경은 명백성이 있습니다. 하나님 목적의 구원 도리의 관점에서 보면 명백성은 명확하게 보입니다. 그 명백성을 찾아 알기 위해서 성경을 공부하며 연구하는 것입니다.
질문하신, 백영희 조직신학에 나와 있는 성경의 ‘정확성’ 부분입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아래의 답변은 이 설명에 대한 보조 정도로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중복되는 내용도 있습니다.
첫째, 성경의 정확성은 세상 기준에 맞춘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숫자나 이름 또는 사건 기록 등에 여러 가지 잘못이 발견됩니다. 이런 오류 때문에 현재 성경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대세입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 정확성의 기준을 잘 몰라서 발생하는 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하셨기 때문에 인간이 볼 때 착오로 보이는 것은 그 인간의 수준이 낮아서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숫자나 이름이나 과학적 사실을 기준으로 삼을 때 발생하는 여러 가지 모순이나 착오는 성경을 그렇게 기록해야 할 필요가 있어 하나님께서 기록했으니 왜 그렇게 기록이 되어졌는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 기록의 목적과 이유를 살피지 않고 성경의 정확성을 평가하는 것은, 색안경을 쓰고 성경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성경의 정확성을 따지려면 우선 자기가 쓰고 있는 안경이 어떤 안경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시145:3)시145:3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
둘째, 성경은 그 기록이 구원목적입니다.
성경을 정확무오하지 않다는 이들은 대개 성경이 구원목적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무시하여 그런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낳은 가인과 아벨의 창세기 4장 기록을 인류 역사 초기의 호적등본으로 생각한다면, 가인이 하나님께 쫓겨나면서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한 것이 모순일 것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4장은 당시 천하에 퍼져나가던 아담의 자손들 중에서 발생한 2가지 신앙노선의 접촉과 갈등만을 따로 뽑아서 특별하게 기록하여 오늘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 4장의 기록은 그 기록 자체가 사실이고, 동시에 그 기록에 관련된 모든 상황은 전부 정확무오하게 하나님께서 기록한 진리입니다. 이 내용을 두고 그 어떤 면으로 비판을 하든지 이의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무지해서 그렇습니다(딤후3: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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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은 구원 도리의 관점으로 봐야 합니다.
성경의 명백성이라는 것은, 기록된 문장이 아닌 그 속에 담겨 있는 구원의 도리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 지식을 가르치는 교과서나 교양서적이 아닌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구원에 필요한 이치를 가르친 말씀이므로 기록된 문장 속에 담겨진 이치, 도리를 찾아야 하고 그 도리가 명백성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서너 가지, 어느 숫자의 반올림 같은 단위, 이래도 저래도 되는 듯한’ 그 자체가 명백성입니다. 그렇게 기록해야 그 속에 정확 무오한 진리를 담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역시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상식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라는 뜻이고, 하나님이 직접 기록하셨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기록했지만 실제는 하나님이 기록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기록을 ‘영감’으로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이 기록하신 성경을 사람의 기준으로 보고 판단하면 맞지 않는 것이 아주 많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높고 깊고 넓으신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하고자 하시는 일, 하나님이 알리시고자 하시는 것을 기록하신 것이 성경입니다. 그것을 사람의 기준으로, 인간 서적의 문법적인 기준으로 보고 판단하면 맞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뜻인 구원, 구원 도리의 관점에서, 정확무오한 진리인 구원 도리를 찾아보면 성경은 하나도 빠짐없이 정확한 명백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2. 인간의 관점으로 명백성은 정할 수 없습니다.
과거 미개할 때는 태양을 비롯한 모든 별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했습니다. 소위 천동설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는 태양은 그냥 있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지동설이 증명되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지나니까 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구원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가 중심입니다. 도는 것이야 지구가 돌면서 태양 주위를 돌겠지만, 광대무변한 우주의 중심은 성경적으로 지구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그나마 가장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은 물리인 과학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과학은 물리이고, 물리는 물질의 이치이며 그 이치는 물질의 진리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정말 바로 아는 과학자들은 과학은 불변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정확한 물리로 발견하고 실험까지도 마친 과학의 이론과 실제가 세월이 지난 후 더 넓게 깊게 많은 것이 발견되면 달라지는 것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 스스로 밝히고 있는 일입니다.
사람은 조석변이라고 합니다. 아침과 저녁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생각이 다르고 마음이 다르며, 감정이 달라집니다.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인간의 관점으로 성경을 읽고 보고 판단하면 성경은 맞을 수가 없습니다. 실제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이론을 정하고 실험을 통해서 확정하는, 그나마 가장 정확하다고 할 수 있는 과학조차도 세월이 지나면 변할 수 있는 것인데, 하물며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명백성을 판단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시각이 됩니다. 인간의 관점으로는 성경은 물론이고 세상의 그 어느 것 하나도 명백성을 정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변하기 때문입니다. 세월 따라, 환경 따라, 입장 따라, 건강 따라서도 변합니다.
3. 명백성이 없으면 성경은 엉터리가 됩니다.
명백성이란, 아주 정확하여 틀림이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명백성은 진리에만 해당됩니다. 진리는 절대성을 가집니다. 절대성이란 내용적으로 정확무오하며, 실제 반드시 그렇게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명백성이 없으면 절대성이 없다는 말이 되고, 절대성이 없으면 진리가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한 마디로 성경은 엉터리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절대자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은 정확무오한 진리이며, 그 진리는 반드시 그렇게 이루어지는 절대성을 가졌고, 이 모든 것을 환하게 알 수 있도록 밝힌 명백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모든 성경은 명백성이 있습니다. 하나님 목적의 구원 도리의 관점에서 보면 명백성은 명확하게 보입니다. 그 명백성을 찾아 알기 위해서 성경을 공부하며 연구하는 것입니다.
1. 서너 가지 죄
3 가지인지 4 가지인지 잘 모르겠으니 서너 가지다, 이렇게 말하면 명확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시지만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 자기의 죄를 찾아 가도록 첫 길을 열어 주실 때 답의 최종이 아니라 답의 첫 단계만 알려 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3 가지만 찾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4 가지를 찾아 낼 수도 있습니다. 3 가지가 보인 사람은 이 것이 전부인지 다시 찾아 보라는 과제이고, 4 가지를 찾은 사람은 하나를 공연히 더해 버린 것이 아닌지 찾도록 하신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기에 이른 죄를 보면 요12:6에서 평소 연보를 횡령했고, 마26:14에서는 대제사장들과 사전 공모를 했으며, 26:48에서 예수님을 지목하여 원수에게 넘겼습니다. 여기까지는 확실한데 27:3에서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27:5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회개로 본다면 3 가지 죄가 됩니다. 그러나 공회는 죄의 종류를 8계명의 도둑질하지 말찌니라 말씀을 어긴 죄, 사전에 공모한 것은 제 마음대로 돌아 다닌 불의의 죄, 원수에게 넘긴 것은 불목의 죄, 그리고 소망을 버린 것은 절망의 죄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자살을 죄 중의 죄이며 죄 중의 최고 절정의 죄가 됩니다. 4 가지 죄로 잡을 수도 있습니다.
아모스 1장에서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을 차례로 짚었으나 죄를 일일이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3 가지 죄와 4 가지 죄를 놓고 성경은 우리에게 각 이방 나라를 두고 어떤 죄들이 있는지 3 가지까지는 무조건 찾으라 말씀한 것이고 4 가지 죄는 단정하지 않았으니 각자의 신앙에 따라 3 가지를 찾은 다음 4 가지 죄는 없는 죄를 만들지는 말아야 하나 있는 죄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어린 신앙이니 잘 찾아 보라고 적어 주셨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애매하여 대충 적어 주신 것이 아니라 명확한 문제를 주시면서 우리에게 찾아 가는 과정을 명하신 말씀입니다.
2. 바울의 권도가 기록된 성경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적었기 때문에 정확무오인데 완전이 아니며 전지도 아니고 불변도 아닌 바울의 부탁, 바울의 권면을 성경에 적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모습을 통해 우리를 길러 가시는 하나님의 인도의 방법입니다. 바울을 앞에 세웠지만 바울을 통해 말씀하는 분은 성령 하나님입니다. 권도라는, 비교적 느슨하고 알아서 하라고 자율을 주신 표현을 봐서는 이 말씀은 꼭 그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면 좋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은 해야만 하는 최종의 진리입니다. 다만 읽는 우리의 신앙 단계와 준비와 순종하는 과정에 유기적인 인도를 기록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결혼을 보면 성경의 결혼 원칙을 어긴 것으로 나옵니다. 이방 결혼은 명백히 죄가 되지만 이방 여인을 데려 온 것만 가지고 바로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잘했다는 것이 아니며 해도 되는 일을 했다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이었으나 자라 가는 과정에 스스로 조절하게 한 것입니다. 신앙의 초기에는 반대하지 않으면 눅9:50에서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라고 하셨지만 시간이 흘러 간 11:23에서는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하셨습니다.
3. 성경의 수치
성경에서 1명까지 적어 주셨으면 그 1명까지 적은 것이 진리요 정확무오한 수치입니다. 출12:37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라고 대략으로 적었습니다. 이 곳에는 대략을 적어야 우리의 신앙에 필요하여 그 정확한 수치를 알면서도 간단히 적어 주신 것입니다. 민1:46에서 총계가 603,550명으로 정확히 계수 된 것은 출애굽을 했던 하나님의 백성의 지파 별 총수를 정확히 기록하기 위해서 정확히 적었고, 출애굽의 진행 과정을 알리기 위해 총수는 대략 숫자로 일부로 적은 것입니다. 몰라서 애매하게 적은 것이 아닙니다.
부산에서 서울을 가겠다는 외국인이 렌터카를 빌려 길을 물으면 '1번 고속도로에 차를 올린 다음 대구 - 대전 - 서울로 표시판을 보고 가시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울까지 가는 길에 100개가 넘을 중간 지명을 다 불러 주면 정확한 것이 아니라 혼선을 통해 오도하는 일이 됩니다.
대략수가 아니면 아닌 경우는 대략수가 그 위치에 적힐 정확무오한 수치이고, 1명까지 적어야 할 곳에는 대략 수치는 모호성이 됩니다. 12지파 총수와 레위인의 총수를 돈으로 환산한 기록을 보면 1백 단위로 계산한 12지파는 100단위로 헤아리게 한 것이 정확무오한 기록입니다. 성경은 오늘 인구의 산출 근거와 집계로 발표하는 대한민국 2025년 행안부의 인구 통계와 그 기준과 정확성의 의미가 다릅니다.
* 성경의 궁금한 것
일단 이 정도의 글을 가지고 시간을 갖고 여러 면으로 두루 생각을 해 보신 다음에 다시 궁금한 것을 물어 주시면 진리 연구의 방법에 좋을 듯합니다. 3세 아이가 하늘을 가리키며 저 건 뭐예요? 가리킬 때마다 기상 천문학이나 천체 물리학 또는 우주의 형성 입자와 그 존재 형태가 되는 물리학의 전문서를 읽어 준다면? 그 것은 대답이 아니라 오도일 듯합니다. 마찬 가지로 알아 가는 우리도 하나씩만 살펴 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보시면 좋겠습니다. 궁금해야 할 것을 바르게 질문할 때도 있지만 물어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물어 보면서 묻는 것부터 배우게 됩니다. 안내하는 이 곳도 넘치게 안내할 때도 있고 또 잘못 안내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안내하는 담당자들도 질문자와 함께 배우고 자라 갑니다. 한꺼번에 두 걸음이나 열 걸음을 뛰려면 문제가 많습니다. 이 것이 신앙의 '생명성'입니다. 생명은 조합이나 종합이나 야합이 아니라 '성장'입니다.
다만 38년을 안내하였고 그 과정에 노력한 것이 더해 지다 보니 웬만한 질문은 안내를 할 정도가 되었고 또 갈수록 내용도 나아 졌을 듯합니다. 답변을 맡은 담당자들이 원래 자기의 신앙과 경험으로 안내했다면 질문자와 대부분 비슷했을 사람들인데 이 곳이 백영희 신앙 노선에 주력하다 보니 안내할 입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3 가지인지 4 가지인지 잘 모르겠으니 서너 가지다, 이렇게 말하면 명확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시지만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 자기의 죄를 찾아 가도록 첫 길을 열어 주실 때 답의 최종이 아니라 답의 첫 단계만 알려 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3 가지만 찾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4 가지를 찾아 낼 수도 있습니다. 3 가지가 보인 사람은 이 것이 전부인지 다시 찾아 보라는 과제이고, 4 가지를 찾은 사람은 하나를 공연히 더해 버린 것이 아닌지 찾도록 하신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기에 이른 죄를 보면 요12:6에서 평소 연보를 횡령했고, 마26:14에서는 대제사장들과 사전 공모를 했으며, 26:48에서 예수님을 지목하여 원수에게 넘겼습니다. 여기까지는 확실한데 27:3에서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27:5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회개로 본다면 3 가지 죄가 됩니다. 그러나 공회는 죄의 종류를 8계명의 도둑질하지 말찌니라 말씀을 어긴 죄, 사전에 공모한 것은 제 마음대로 돌아 다닌 불의의 죄, 원수에게 넘긴 것은 불목의 죄, 그리고 소망을 버린 것은 절망의 죄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자살을 죄 중의 죄이며 죄 중의 최고 절정의 죄가 됩니다. 4 가지 죄로 잡을 수도 있습니다.
아모스 1장에서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을 차례로 짚었으나 죄를 일일이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3 가지 죄와 4 가지 죄를 놓고 성경은 우리에게 각 이방 나라를 두고 어떤 죄들이 있는지 3 가지까지는 무조건 찾으라 말씀한 것이고 4 가지 죄는 단정하지 않았으니 각자의 신앙에 따라 3 가지를 찾은 다음 4 가지 죄는 없는 죄를 만들지는 말아야 하나 있는 죄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어린 신앙이니 잘 찾아 보라고 적어 주셨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애매하여 대충 적어 주신 것이 아니라 명확한 문제를 주시면서 우리에게 찾아 가는 과정을 명하신 말씀입니다.
2. 바울의 권도가 기록된 성경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적었기 때문에 정확무오인데 완전이 아니며 전지도 아니고 불변도 아닌 바울의 부탁, 바울의 권면을 성경에 적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모습을 통해 우리를 길러 가시는 하나님의 인도의 방법입니다. 바울을 앞에 세웠지만 바울을 통해 말씀하는 분은 성령 하나님입니다. 권도라는, 비교적 느슨하고 알아서 하라고 자율을 주신 표현을 봐서는 이 말씀은 꼭 그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면 좋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은 해야만 하는 최종의 진리입니다. 다만 읽는 우리의 신앙 단계와 준비와 순종하는 과정에 유기적인 인도를 기록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결혼을 보면 성경의 결혼 원칙을 어긴 것으로 나옵니다. 이방 결혼은 명백히 죄가 되지만 이방 여인을 데려 온 것만 가지고 바로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잘했다는 것이 아니며 해도 되는 일을 했다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이었으나 자라 가는 과정에 스스로 조절하게 한 것입니다. 신앙의 초기에는 반대하지 않으면 눅9:50에서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라고 하셨지만 시간이 흘러 간 11:23에서는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하셨습니다.
3. 성경의 수치
성경에서 1명까지 적어 주셨으면 그 1명까지 적은 것이 진리요 정확무오한 수치입니다. 출12:37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라고 대략으로 적었습니다. 이 곳에는 대략을 적어야 우리의 신앙에 필요하여 그 정확한 수치를 알면서도 간단히 적어 주신 것입니다. 민1:46에서 총계가 603,550명으로 정확히 계수 된 것은 출애굽을 했던 하나님의 백성의 지파 별 총수를 정확히 기록하기 위해서 정확히 적었고, 출애굽의 진행 과정을 알리기 위해 총수는 대략 숫자로 일부로 적은 것입니다. 몰라서 애매하게 적은 것이 아닙니다.
부산에서 서울을 가겠다는 외국인이 렌터카를 빌려 길을 물으면 '1번 고속도로에 차를 올린 다음 대구 - 대전 - 서울로 표시판을 보고 가시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울까지 가는 길에 100개가 넘을 중간 지명을 다 불러 주면 정확한 것이 아니라 혼선을 통해 오도하는 일이 됩니다.
대략수가 아니면 아닌 경우는 대략수가 그 위치에 적힐 정확무오한 수치이고, 1명까지 적어야 할 곳에는 대략 수치는 모호성이 됩니다. 12지파 총수와 레위인의 총수를 돈으로 환산한 기록을 보면 1백 단위로 계산한 12지파는 100단위로 헤아리게 한 것이 정확무오한 기록입니다. 성경은 오늘 인구의 산출 근거와 집계로 발표하는 대한민국 2025년 행안부의 인구 통계와 그 기준과 정확성의 의미가 다릅니다.
* 성경의 궁금한 것
일단 이 정도의 글을 가지고 시간을 갖고 여러 면으로 두루 생각을 해 보신 다음에 다시 궁금한 것을 물어 주시면 진리 연구의 방법에 좋을 듯합니다. 3세 아이가 하늘을 가리키며 저 건 뭐예요? 가리킬 때마다 기상 천문학이나 천체 물리학 또는 우주의 형성 입자와 그 존재 형태가 되는 물리학의 전문서를 읽어 준다면? 그 것은 대답이 아니라 오도일 듯합니다. 마찬 가지로 알아 가는 우리도 하나씩만 살펴 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보시면 좋겠습니다. 궁금해야 할 것을 바르게 질문할 때도 있지만 물어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물어 보면서 묻는 것부터 배우게 됩니다. 안내하는 이 곳도 넘치게 안내할 때도 있고 또 잘못 안내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안내하는 담당자들도 질문자와 함께 배우고 자라 갑니다. 한꺼번에 두 걸음이나 열 걸음을 뛰려면 문제가 많습니다. 이 것이 신앙의 '생명성'입니다. 생명은 조합이나 종합이나 야합이 아니라 '성장'입니다.
다만 38년을 안내하였고 그 과정에 노력한 것이 더해 지다 보니 웬만한 질문은 안내를 할 정도가 되었고 또 갈수록 내용도 나아 졌을 듯합니다. 답변을 맡은 담당자들이 원래 자기의 신앙과 경험으로 안내했다면 질문자와 대부분 비슷했을 사람들인데 이 곳이 백영희 신앙 노선에 주력하다 보니 안내할 입장이 되어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