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에 세상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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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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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8 21:07
1. 어떤 대회가 주일에 열려서 못 갈 때 학교 선생님이 이유를 물으면 뭐라고 합니까? 이번에는 시험 기간으로 핑계댔으나 제가 교회 다니는 것을 아는 선생님이 따로 불러 교회일이면 설명해보라 하여 성경에 주일에 일하지 말라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2. 친구들이랑 대화할 때 제가 교인이라고 어느 정도로 밝혀야 합니까? 예를 들어서 미래에 집을 제약 없이 고를수있다면 어디로 하고 싶은지 이야기할 때 교회와 너무 멀지는 않은 곳이라는 평소 생각은 접어둔채로 학교와의 거리, 자연환경 같은 것만 입밖으로 꺼냅니다. 어떨 때는 일부러 숨기는 것같이 보이고 어떨 때는 너무 가볍게 대하는 것 같아서 고민입니다.
3. 설교록에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생활할 때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고 할 때가 거의 다입니다. 뭐가 맞습니까?
(주일과 세상 행사)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고 꼭 어디를 가야 할 때 비를 맞지 않으려고 건물의 처마를 찾아 다니며 몸을 움츠리고 머리에 책받침 하나라도 올리고 엉거주춤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가 조금이고 거리가 약간 일 때는 그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리도 멀고 비의 양을 봐도 결국 젖게 될 상황이면 그냥 비를 맞고 당당하게 걸어 버리는 것이 만사 좋을 수 있습니다.
교회를 처음 다니고 아직도 주변에 알리기 곤란하면 애매하게 다른 이유로 피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 질문하신 글을 읽어 보니 이 정도 학생이면 펴놓고 그냥 교회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만사 매사 조심하는 것은 늘 좋습니다. 그러나 이미 주일에 중요한 행사도 스스로 빠질 정도가 되었다며 떳떳하게 펴놓는 것이 모두에게 좋습니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이런 저런 말도 들어 오고 눈빛도 그렇지만 오히려 물 만난 고기처럼 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다 보면 믿는 사람으로서 좀 곤란한 행동을 줄이게 됩니다. 믿는 표시를 확실히 내지 않으면 학교 생활에서 애매한 행동을 하며 그늘에 숨기 좋으나 자신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굳이 표시 내고 다닐 것은 없지만, 표시를 해야 할 때는 당당한 것이 선생님에게도 낫습니다.
(주일의 휴식)
자동차도 4시간을 운행하면 30분을 쉬어 줍니다. 학교의 어떤 공부도 50분 수업에 10분의 휴식이 있습니다. 인체도 공부의 효력도 세상 돌아 가는 만사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고, 그렇게 믿지 않는다 해도 모두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없앤다는 공산국가도 불교가 국교인 나라도 일요일이 휴일인 이유와 종교 자유의 이 나라도 일요일은 반드시 법적으로 쉬게 한 이유가 바로 기독교의 우리, 교회의 신앙 생활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세계적 상식이며 유행이며 법이며 진리입니다. 믿지 않는 천하의 다른 종교와 세계 모든 민족과 회사와 별별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는 우리 때문에 달력에도 학교와 노동계의 모든 일정에도 우리를 위해 주일을 제도화해 놓았는데 믿는 사람들이 이 날에 놀러 다니고 공부하고 행사하는 것은, 참으로 곤란하며 그렇게 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정식은 아니다! 신앙 생활 외의 모든 대외 활동은 금지한다! 이 것이 원칙이며 교과서적이라고 말한다면 학교의 교사인 선생님으로서는 별 말을 할 수가 없을 듯합니다.
(주거의 위치)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내가 아직 믿는지도 모르겠고 부모 때문에 눈치 보며 다니는 정도라면 표시 내지 말고 대충 둘러 대며 살아야 할 정도입니다. 그렇다 해도 나는 부모님 때문에 교회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해야 해! 이렇게 말해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부모님 때문에 이런 결정을 한다면 겉으로는 놀릴지라도 속으로는 뭔가 달리 볼 듯합니다. 그런데 현재 질문하시는 학생 정도의 글이라면 툭 털어 놓고 이야기 하는 것이, 나도 모르게 상대방 속에 전도가 되고 또 상대방이 믿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깨우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그런 이야기 때문에 주변의 시선이 이상해 지고 분위기가 곤란해 진다면 그 것은 믿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필수 비용입니다. 대학을 다니며 입학금과 교재비를 아낄 수는 없는 것이고, 입대를 하는 군인이 머리를 깎지 않는 수가 없으며, 운동 선수가 경기를 하면서 땀을 아낄 수는 없는 것처럼, 믿는 학생이 주변에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최소한의 할 말을 하다 보면 자신의 신앙이 갑자기 한 단계 좋아 져 버립니다. 그런데 그런 애매한 순간에 자기를 조금 가리고 숨어 버리면 자기 신앙이 이상하게도 한 단계 내려 갑니다.
(예수 믿는 사람/ 교회 다니는 사람)
설교록에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는 표현보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설교록의 설교를 하시던 백영희 목사님의 연령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1910년에 출생했고 1936년에 신앙을 출발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한국에 갑자기 새로운 종교들이 많아 지면서 그런 '교'들이 모이는 '교당'들이 많았습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모두가 아는 종교는 불교와 유교 정도였습니다. 불교는 산 속에 절이 있고, 유교는 지역마다 향교라는 대형 건축물로 표시를 했습니다. 19세기 말이 되면서 중국에 서구 열강이 들어 와서 찢겨 지고 일본이 서구 열강에게 배우면서 하루 아침에 엄청난 국가로 변모하자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런 난세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종교를 갑자기 만들어 냅니다.
조선 5백년의 역사를 통해 불교는 산 속으로 들어 갔지만 워낙 뿌리가 깊어 모두가 '불교 = 중 = 사찰 = 절'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고 있었고, 유교는 조선 5백년을 국교로 자리를 잡았으니 '유교 = 향교 = 서원 = 서당 = 유림 = 유학자'라는 이름으로 온 나라가 잘 파악하는 상황입니다. 이 두 종교로는 감당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구한말의 국제 정세가 조선반도를 휘몰아 치게 되자 조선에 지성인들 중에 묘한 사람들이 유교 불교의 흔적 위에 기독교 천주교라는 새로 접하는 서구 종교를 적당하게 섞어서 별별 종교를 만들어 냅니다. 동학으로부터 원불교 대종교 등등 수많은 새 종교들이 모이는 곳은 서로 이름을 달리 하기가 어렵지만 대개 '교당' 비슷한 이름이 들어 갑니다.
'교' '회' '당'은 오늘날 우리만 사용하지만 구한말에서 일제 때까지 전국 곳곳의 별별 종교들의 별별 모임이 거의 다 '집회' '회당' '교회' '교당' 등등으로 비슷하게 되자 '교회' '예배당'이라는 말은 기독교만의 이름으로 또렷하지 못해서 '예수'라는 이름을 붙이고 다른 종교와 구별을 또렷하게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이름이 너무 달라서 혼란이 없었습니다. 불신자들은 조롱 삼아 또 신기해서 '예수쟁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교인 교도 교당 회당 집회 예배 예배당 굿당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습니다.
해방이 되고 근대화가 진행이 되면서 거의 모든 신흥 종교가 없어 져 지금은 역사적인 유교 불교 정도만 남아 있고 불교에 서양식 모습으로 변형을 시킨 원불교 정도. 천주교 = 성당 = 신부는 '기독교 = 교회 = 목사 = 예배당' 정도로 서로 사용하는 표현이 또렷해 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한말에는 왕성했고 일제 때도 저력을 가졌던 종교들, 심지어 해방 후까지도 버티던 그들과 구별하는 말이 '예수님'이었다가 이제는 '교회'라고 하면 모두가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의 교회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친숙한 표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교회 다닙니다.'라는 표현이 '예수님 믿는 사람입니다.'라는 뜻이 되었고 두 표현 중에 '예수님'은 예수님 아니면 지옥 간다는 강한 느낌이 있고 교회를 다닌다면 기독교 교인, 믿는 사람, 그리고 당연히 예수님 믿는 사람으로 순화가 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 참고로 원래 정식 표현은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단체를 표시하고, 한 교회가 예배 때문에 모이는 곳을 '예배당'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 속에 '교회 = 예배당'이 되어 지금은 예배당이라고 하면 뭔가 좀 구식 같고 애매하고 교회라고 해야 예배당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모두가 알고 모두가 사용을 하기 때문에 원래 단어가 바뀌어 사용됩니다. 이 정도는 상식으로 알아 두면 좋겠습니다.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고 꼭 어디를 가야 할 때 비를 맞지 않으려고 건물의 처마를 찾아 다니며 몸을 움츠리고 머리에 책받침 하나라도 올리고 엉거주춤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가 조금이고 거리가 약간 일 때는 그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리도 멀고 비의 양을 봐도 결국 젖게 될 상황이면 그냥 비를 맞고 당당하게 걸어 버리는 것이 만사 좋을 수 있습니다.
교회를 처음 다니고 아직도 주변에 알리기 곤란하면 애매하게 다른 이유로 피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 질문하신 글을 읽어 보니 이 정도 학생이면 펴놓고 그냥 교회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만사 매사 조심하는 것은 늘 좋습니다. 그러나 이미 주일에 중요한 행사도 스스로 빠질 정도가 되었다며 떳떳하게 펴놓는 것이 모두에게 좋습니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이런 저런 말도 들어 오고 눈빛도 그렇지만 오히려 물 만난 고기처럼 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다 보면 믿는 사람으로서 좀 곤란한 행동을 줄이게 됩니다. 믿는 표시를 확실히 내지 않으면 학교 생활에서 애매한 행동을 하며 그늘에 숨기 좋으나 자신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굳이 표시 내고 다닐 것은 없지만, 표시를 해야 할 때는 당당한 것이 선생님에게도 낫습니다.
(주일의 휴식)
자동차도 4시간을 운행하면 30분을 쉬어 줍니다. 학교의 어떤 공부도 50분 수업에 10분의 휴식이 있습니다. 인체도 공부의 효력도 세상 돌아 가는 만사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고, 그렇게 믿지 않는다 해도 모두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없앤다는 공산국가도 불교가 국교인 나라도 일요일이 휴일인 이유와 종교 자유의 이 나라도 일요일은 반드시 법적으로 쉬게 한 이유가 바로 기독교의 우리, 교회의 신앙 생활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세계적 상식이며 유행이며 법이며 진리입니다. 믿지 않는 천하의 다른 종교와 세계 모든 민족과 회사와 별별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는 우리 때문에 달력에도 학교와 노동계의 모든 일정에도 우리를 위해 주일을 제도화해 놓았는데 믿는 사람들이 이 날에 놀러 다니고 공부하고 행사하는 것은, 참으로 곤란하며 그렇게 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정식은 아니다! 신앙 생활 외의 모든 대외 활동은 금지한다! 이 것이 원칙이며 교과서적이라고 말한다면 학교의 교사인 선생님으로서는 별 말을 할 수가 없을 듯합니다.
(주거의 위치)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내가 아직 믿는지도 모르겠고 부모 때문에 눈치 보며 다니는 정도라면 표시 내지 말고 대충 둘러 대며 살아야 할 정도입니다. 그렇다 해도 나는 부모님 때문에 교회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해야 해! 이렇게 말해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부모님 때문에 이런 결정을 한다면 겉으로는 놀릴지라도 속으로는 뭔가 달리 볼 듯합니다. 그런데 현재 질문하시는 학생 정도의 글이라면 툭 털어 놓고 이야기 하는 것이, 나도 모르게 상대방 속에 전도가 되고 또 상대방이 믿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깨우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그런 이야기 때문에 주변의 시선이 이상해 지고 분위기가 곤란해 진다면 그 것은 믿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필수 비용입니다. 대학을 다니며 입학금과 교재비를 아낄 수는 없는 것이고, 입대를 하는 군인이 머리를 깎지 않는 수가 없으며, 운동 선수가 경기를 하면서 땀을 아낄 수는 없는 것처럼, 믿는 학생이 주변에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최소한의 할 말을 하다 보면 자신의 신앙이 갑자기 한 단계 좋아 져 버립니다. 그런데 그런 애매한 순간에 자기를 조금 가리고 숨어 버리면 자기 신앙이 이상하게도 한 단계 내려 갑니다.
(예수 믿는 사람/ 교회 다니는 사람)
설교록에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는 표현보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설교록의 설교를 하시던 백영희 목사님의 연령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1910년에 출생했고 1936년에 신앙을 출발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한국에 갑자기 새로운 종교들이 많아 지면서 그런 '교'들이 모이는 '교당'들이 많았습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모두가 아는 종교는 불교와 유교 정도였습니다. 불교는 산 속에 절이 있고, 유교는 지역마다 향교라는 대형 건축물로 표시를 했습니다. 19세기 말이 되면서 중국에 서구 열강이 들어 와서 찢겨 지고 일본이 서구 열강에게 배우면서 하루 아침에 엄청난 국가로 변모하자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런 난세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종교를 갑자기 만들어 냅니다.
조선 5백년의 역사를 통해 불교는 산 속으로 들어 갔지만 워낙 뿌리가 깊어 모두가 '불교 = 중 = 사찰 = 절'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고 있었고, 유교는 조선 5백년을 국교로 자리를 잡았으니 '유교 = 향교 = 서원 = 서당 = 유림 = 유학자'라는 이름으로 온 나라가 잘 파악하는 상황입니다. 이 두 종교로는 감당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구한말의 국제 정세가 조선반도를 휘몰아 치게 되자 조선에 지성인들 중에 묘한 사람들이 유교 불교의 흔적 위에 기독교 천주교라는 새로 접하는 서구 종교를 적당하게 섞어서 별별 종교를 만들어 냅니다. 동학으로부터 원불교 대종교 등등 수많은 새 종교들이 모이는 곳은 서로 이름을 달리 하기가 어렵지만 대개 '교당' 비슷한 이름이 들어 갑니다.
'교' '회' '당'은 오늘날 우리만 사용하지만 구한말에서 일제 때까지 전국 곳곳의 별별 종교들의 별별 모임이 거의 다 '집회' '회당' '교회' '교당' 등등으로 비슷하게 되자 '교회' '예배당'이라는 말은 기독교만의 이름으로 또렷하지 못해서 '예수'라는 이름을 붙이고 다른 종교와 구별을 또렷하게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이름이 너무 달라서 혼란이 없었습니다. 불신자들은 조롱 삼아 또 신기해서 '예수쟁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교인 교도 교당 회당 집회 예배 예배당 굿당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습니다.
해방이 되고 근대화가 진행이 되면서 거의 모든 신흥 종교가 없어 져 지금은 역사적인 유교 불교 정도만 남아 있고 불교에 서양식 모습으로 변형을 시킨 원불교 정도. 천주교 = 성당 = 신부는 '기독교 = 교회 = 목사 = 예배당' 정도로 서로 사용하는 표현이 또렷해 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한말에는 왕성했고 일제 때도 저력을 가졌던 종교들, 심지어 해방 후까지도 버티던 그들과 구별하는 말이 '예수님'이었다가 이제는 '교회'라고 하면 모두가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의 교회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친숙한 표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교회 다닙니다.'라는 표현이 '예수님 믿는 사람입니다.'라는 뜻이 되었고 두 표현 중에 '예수님'은 예수님 아니면 지옥 간다는 강한 느낌이 있고 교회를 다닌다면 기독교 교인, 믿는 사람, 그리고 당연히 예수님 믿는 사람으로 순화가 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 참고로 원래 정식 표현은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단체를 표시하고, 한 교회가 예배 때문에 모이는 곳을 '예배당'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 속에 '교회 = 예배당'이 되어 지금은 예배당이라고 하면 뭔가 좀 구식 같고 애매하고 교회라고 해야 예배당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모두가 알고 모두가 사용을 하기 때문에 원래 단어가 바뀌어 사용됩니다. 이 정도는 상식으로 알아 두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