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선의 정통 노선 계승과 독창적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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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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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31 00:00
백 목사님의 성경 깨달음은
사람에게 배우거나 서적이나 학문이나 교육 체계를 통해 배운 것이 없습니다. 덕유산 골짜기에서 믿을 때부터 본인이 지나 가는 전도인을 불러 세운 뒤 교회를 자기 발로 출석했고, 그 날 이후로 엉덩이가 패어 방석을 5 개 정도를 쌓아야 하도록 성경만 읽었습니다. 그리고 읽으면서 느껴 지고 알아 지는 것은 그 즉시로 실행을 했습니다. 실행할 때 과거 모르던 말씀이 깨달아 졌고 그런 반복을 통해 평생을 깨닫고 가르 쳤습니다. 이 홈에 게재 된 그 평생의 설교 자료 전부가 여실히 그런 면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 사상에 대한 인용이나 소개나 응용이 그야 말로 거의 없고, 혹 어느 특수한 시기에 약간 스쳐 간 정도인데 그 것도 당시 교인들에게 일반 신학과 교계를 알아야 교회와 신앙의 사회성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결과입니다.
역사 최대의 분량으로 생생하게 남아 있는 백 목사님의 성경 해석 전부를 통해 백 목사님의 설교의 출처는 성경 그대로지 다른 사람이나 신학을 거쳐 나온 것은 없다 할 정도인 결과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래서 교계 손 꼽는 신학교의 최고 교수들이 역사에 칼빈과 백영희, 또는 스펄젼과 백영희 등으로 단 2 명을 꼽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역사에 비슷한 사례
우리가 나타 나고 알기에는 사도 바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가깝게 김현봉 목사님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물론 김현봉과 백영희의 개인 신앙은 각각 다 시대를 감당할 특수한 경우이나 적어도 성경 깨달음과 교훈의 체계나 영향력에서 비교한다면 김현봉은 백영희에 비교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합니다. 즉, 우리의 시야가 좁아서 역사에 몇 명이라는 정도로 표현은 하지만 곳곳에 숨겨 둔 종들은 있다고 보입니다.
백 목사님의 신학교 지원
1946년 해방 직후 경남지방에 목사 양성을 위한 신학 강좌가 개설 된다는 소식을 들을 때 당시 심정을 자세히 기록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백 목사님은 조사로 목회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당시 목사가 되는 것은 어려우나 일단 되고 나면 권력이 대단했는데 그런 목사 이름을 심히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얼핏 한 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한 것만 가지고도 심각하게 오랫 동안 회개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신학을 통과해서 목사가 되는 것도 안중에 없고 부끄러운 것으로 알았지만 또한 신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성경을 가르 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지나 간 인간들의 이런저런 말만 늘어 놓는 것에 대해 극단적으로 반대한 분입니다. 그래서 1946년에는 시골 목회하던 교회의 청년들만 보내어 목사 과정을 밟게 하고 정작 본인은 가지도 않았습니다. 신학을 알고 고려파의 초창기 핵심들과 주변 아는 분들이 볼 때는 신학을 깡통 취급하는 대단한 도발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그는 너무 유명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역사가 너무 뚜렷하여 감히 누가 말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진해 강좌 이후 부산에서 고려신학교의 정식 개교가 있을 때 백 목사님은 제 1회 입학생으로 정식 입학합니다. 주변에 미치는 영향과 교회 내의 사회성을 전혀 무시만 하고 나갈 수는 없었습니다. 고려파의 성경 중심의 철저한 구호 때문에 다소 낫지 않겠나 하고 갔으나 역시 신학은 인간의 학문이었고 백 목사님은 며칠만에 바로 자퇴해 버렸습니다.
1949년 유급 목회자로 주남선 목사님의 지시를 받아 다른 교회로 파송을 받아 가게 될 때 할 수 있는 대로는 버티고 거부하다 하나님의 채찍을 받고서야 항복하고 출발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싫고 잘못 되었다 해도 소속 교파가 이단이 아니며 죄가 아닌 것을 가르 치는 이상 효율이나 내용을 가지고 전면 거부할 수가 없게 되어 신학을 입학하고 1954년 고신 8회로 졸업합니다.
신학교 시절
백 목사님은 신학교를 다녔지만 늘 교수들과 성경 논쟁이 많았고 또 대부분의 시간을 당시 고신과 총회(합동)파의 분리 과정에서 전국 교회들을 고신으로 돌려 세우는 일선의 부흥 강사로 다녔기 때문에 신학 공부를 제대로 할 시간은 거의 없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백 목사님에게 신학과 신학 과정과 고려신학교 전 과정은, 목회자로서 소속 교단과 전체 교회 분위기를 최대한 고려해서 죄 되지 않는 일로는 전면 분쟁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다녔고, 실제로는 우리가 동물원에 구경을 가서 열람을 하고 관람을 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그는 돌아 가실 때까지 늘 이 면을 강조했고, 그 밑에 교역자들을 기를 때도 일반 교인으로 말씀대로 평소 열심히 신앙 생활 하는 그 자체로 목회자 양성 과정과 선발에 유일하고 전부로 삼았던 분입니다. 그렇게 목회자를 선발한 다음, 목회자가 일반 교회와 대외 관계에서 신학의 최소 용어나 기본 내용조차 모를 때 발생할 대화 문제, 선입견에 의한 불필요한 분쟁 문제를 막는 정도로 구경을 시켰습니다.
이런 노선 원칙 때문에 공회에서 신학을 신학답게 한 사람은 내용적으로 공회 사람으로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독창적인 깨달음
2천 년 학문으로 자료로 제자 훈련을 통해 가꾸고 길러 온 우리 기독교 정통 교리 교훈들은 겉에는 사람들이 노력했으나 속에는 성령이 붙들고 나온 결과입니다. 바로 그 성령은 오늘 백 목사님이나 답변자나 질문자나 또 제 3자 그 누구라도 붙들고 그렇게 쓸 수도 있고 또는 모든 것을 생략하고 2천 년 교리 전체를 한꺼번에 깨닫게 하거나 그 깨달음 위에 발전 된 깨달음을 열어 줄 수도 있습니다. 백 목사님은 그런 경우였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국내 최대 교파인 합동 교단의 사당동 총신 시절 성경과목을 평생 맡아 합동 교파 거의 모든 목회자들이 그렇게 존경해 마지 않는다는 박희천 목사님은 그의 저서나 대내외 강의에서 칼빈과 백영희를 같은 급에 놓고 극찬했는데, 그 박 목사님이 1950년대 초반 부산에서 막 신학을 시작하여 한 반에서 배우던 동급생이었고 그 시절 신학 강의 시간마다 백 목사님과 신학 교수들의 설전, 또는 백 목사님의 평소 언급하는 것을 소상하게 기억하면서 '성령은 시공을 초월하여 깨닫게 하시니 역사의 신학자들의 깨달음과 덕유산 골짜기에서 혼자 성경 보고 깨닫는 무식한 백영희 조사의 깨달음을 같게 하신다'는 유명한 일화를 소개한 현장 목격자요 역사에 이 기록을 남긴 공회 외부 신학자입니다.
백 목사님께 영향을 끼친 분들
주남선 목사님은 평소 신앙의 행동으로 백 목사님께 평생 잊지 못할 스승이 되셨고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은 동시대를 살며 당대를 감당한 종들로 그들 소식이 힘이 되었고
박윤선 목사님은 백 목사님께 세계 정통신학을 요약 설명하여 신학 목록을 소개한 분이고
오종덕 김현봉 목사님은 성경에 정통한 분들이어서 그 분들의 설교 속에서는 양식이 되고 동감이 되는 깨달음을 가장 많이 발견한 분들입니다.
이 노선이 세계 신학의 정통 역사 교리 체계에 발전적 기여를 한 부분들은 백 목사님 혼자 깨달은 것입니다. 조금도 주변에 영향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전혀 다른 범위에서 우연히 같은 면을 깨달아 동감을 했던 분들은 부분적으로는 조금씩 있습니다. 김현봉 목사님의 경우 건설구원과 영의 윤곽 개념은 별도로 가졌던 분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으로 들어 가면 총론적으로만 깨달았지 구체적 체계화에는 내 딛지 못했습니다. 기록과 여러 자료로 \남아 있는 사실입니다. 나이로 선배였지 성경 깨달음을 두고는 백 목사님은 1950년대 중후반부터 이미 정통의 교리 체계 전체를 마치 부정하고 반대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이 노선 교리 체계를 구체화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돌아 가실 때까지 그 완성도를 높혔습니다.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백영희목사님도 박윤선박사님의 추천으로 신학교를 갔다고 들었습니다.
:
:
:
: 문의1)
:
: 백영희 목사님은 기독교 2000년의 깨달음을 누군가에서 배우지 않고, 사도바울이
: 3년 동안 아라비아 사막에서,혼자 묵상하고 구약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깨달은 것처럼
: 본인 스스로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고 깨달은 것입니까?
: (이런 분은 2000년 기독교역사가운데 사도바울 말고는 한분도 없었는데, 만약 제 질문의
: 내용처럼 그렇다면, 굉장히 특별한 분이고 하나님이 바울처럼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 손수 가르치신 형태인 것 같습니다.)
:
: ※ 2000년의 기독교의 핵심 깨달음 :
: 성경 정경론(신구약 66권), 신론(삼위일체). 기독론(신인양성일위)
: 구원론(이신칭의 = 기본구원) 인론 등
:
: 문의2)
:
: 신학교에 가서는 무엇을 배웠는지 궁금합니다. 혼자 모두 깨달았다면, 딱히 신학교에서
: 배울것은 없었는 것 같은데...
:
: 문의3)
:
: 현재 백목사님의 핵심교리이며 정통기독교에 미진한 부분을 모두 밝히신 교리들도
: 본인 혼자 스스로 깨달은 것입니까?
:
사람에게 배우거나 서적이나 학문이나 교육 체계를 통해 배운 것이 없습니다. 덕유산 골짜기에서 믿을 때부터 본인이 지나 가는 전도인을 불러 세운 뒤 교회를 자기 발로 출석했고, 그 날 이후로 엉덩이가 패어 방석을 5 개 정도를 쌓아야 하도록 성경만 읽었습니다. 그리고 읽으면서 느껴 지고 알아 지는 것은 그 즉시로 실행을 했습니다. 실행할 때 과거 모르던 말씀이 깨달아 졌고 그런 반복을 통해 평생을 깨닫고 가르 쳤습니다. 이 홈에 게재 된 그 평생의 설교 자료 전부가 여실히 그런 면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 사상에 대한 인용이나 소개나 응용이 그야 말로 거의 없고, 혹 어느 특수한 시기에 약간 스쳐 간 정도인데 그 것도 당시 교인들에게 일반 신학과 교계를 알아야 교회와 신앙의 사회성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결과입니다.
역사 최대의 분량으로 생생하게 남아 있는 백 목사님의 성경 해석 전부를 통해 백 목사님의 설교의 출처는 성경 그대로지 다른 사람이나 신학을 거쳐 나온 것은 없다 할 정도인 결과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래서 교계 손 꼽는 신학교의 최고 교수들이 역사에 칼빈과 백영희, 또는 스펄젼과 백영희 등으로 단 2 명을 꼽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역사에 비슷한 사례
우리가 나타 나고 알기에는 사도 바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가깝게 김현봉 목사님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물론 김현봉과 백영희의 개인 신앙은 각각 다 시대를 감당할 특수한 경우이나 적어도 성경 깨달음과 교훈의 체계나 영향력에서 비교한다면 김현봉은 백영희에 비교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합니다. 즉, 우리의 시야가 좁아서 역사에 몇 명이라는 정도로 표현은 하지만 곳곳에 숨겨 둔 종들은 있다고 보입니다.
백 목사님의 신학교 지원
1946년 해방 직후 경남지방에 목사 양성을 위한 신학 강좌가 개설 된다는 소식을 들을 때 당시 심정을 자세히 기록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백 목사님은 조사로 목회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당시 목사가 되는 것은 어려우나 일단 되고 나면 권력이 대단했는데 그런 목사 이름을 심히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얼핏 한 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한 것만 가지고도 심각하게 오랫 동안 회개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신학을 통과해서 목사가 되는 것도 안중에 없고 부끄러운 것으로 알았지만 또한 신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성경을 가르 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지나 간 인간들의 이런저런 말만 늘어 놓는 것에 대해 극단적으로 반대한 분입니다. 그래서 1946년에는 시골 목회하던 교회의 청년들만 보내어 목사 과정을 밟게 하고 정작 본인은 가지도 않았습니다. 신학을 알고 고려파의 초창기 핵심들과 주변 아는 분들이 볼 때는 신학을 깡통 취급하는 대단한 도발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그는 너무 유명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역사가 너무 뚜렷하여 감히 누가 말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진해 강좌 이후 부산에서 고려신학교의 정식 개교가 있을 때 백 목사님은 제 1회 입학생으로 정식 입학합니다. 주변에 미치는 영향과 교회 내의 사회성을 전혀 무시만 하고 나갈 수는 없었습니다. 고려파의 성경 중심의 철저한 구호 때문에 다소 낫지 않겠나 하고 갔으나 역시 신학은 인간의 학문이었고 백 목사님은 며칠만에 바로 자퇴해 버렸습니다.
1949년 유급 목회자로 주남선 목사님의 지시를 받아 다른 교회로 파송을 받아 가게 될 때 할 수 있는 대로는 버티고 거부하다 하나님의 채찍을 받고서야 항복하고 출발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싫고 잘못 되었다 해도 소속 교파가 이단이 아니며 죄가 아닌 것을 가르 치는 이상 효율이나 내용을 가지고 전면 거부할 수가 없게 되어 신학을 입학하고 1954년 고신 8회로 졸업합니다.
신학교 시절
백 목사님은 신학교를 다녔지만 늘 교수들과 성경 논쟁이 많았고 또 대부분의 시간을 당시 고신과 총회(합동)파의 분리 과정에서 전국 교회들을 고신으로 돌려 세우는 일선의 부흥 강사로 다녔기 때문에 신학 공부를 제대로 할 시간은 거의 없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백 목사님에게 신학과 신학 과정과 고려신학교 전 과정은, 목회자로서 소속 교단과 전체 교회 분위기를 최대한 고려해서 죄 되지 않는 일로는 전면 분쟁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다녔고, 실제로는 우리가 동물원에 구경을 가서 열람을 하고 관람을 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그는 돌아 가실 때까지 늘 이 면을 강조했고, 그 밑에 교역자들을 기를 때도 일반 교인으로 말씀대로 평소 열심히 신앙 생활 하는 그 자체로 목회자 양성 과정과 선발에 유일하고 전부로 삼았던 분입니다. 그렇게 목회자를 선발한 다음, 목회자가 일반 교회와 대외 관계에서 신학의 최소 용어나 기본 내용조차 모를 때 발생할 대화 문제, 선입견에 의한 불필요한 분쟁 문제를 막는 정도로 구경을 시켰습니다.
이런 노선 원칙 때문에 공회에서 신학을 신학답게 한 사람은 내용적으로 공회 사람으로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독창적인 깨달음
2천 년 학문으로 자료로 제자 훈련을 통해 가꾸고 길러 온 우리 기독교 정통 교리 교훈들은 겉에는 사람들이 노력했으나 속에는 성령이 붙들고 나온 결과입니다. 바로 그 성령은 오늘 백 목사님이나 답변자나 질문자나 또 제 3자 그 누구라도 붙들고 그렇게 쓸 수도 있고 또는 모든 것을 생략하고 2천 년 교리 전체를 한꺼번에 깨닫게 하거나 그 깨달음 위에 발전 된 깨달음을 열어 줄 수도 있습니다. 백 목사님은 그런 경우였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국내 최대 교파인 합동 교단의 사당동 총신 시절 성경과목을 평생 맡아 합동 교파 거의 모든 목회자들이 그렇게 존경해 마지 않는다는 박희천 목사님은 그의 저서나 대내외 강의에서 칼빈과 백영희를 같은 급에 놓고 극찬했는데, 그 박 목사님이 1950년대 초반 부산에서 막 신학을 시작하여 한 반에서 배우던 동급생이었고 그 시절 신학 강의 시간마다 백 목사님과 신학 교수들의 설전, 또는 백 목사님의 평소 언급하는 것을 소상하게 기억하면서 '성령은 시공을 초월하여 깨닫게 하시니 역사의 신학자들의 깨달음과 덕유산 골짜기에서 혼자 성경 보고 깨닫는 무식한 백영희 조사의 깨달음을 같게 하신다'는 유명한 일화를 소개한 현장 목격자요 역사에 이 기록을 남긴 공회 외부 신학자입니다.
백 목사님께 영향을 끼친 분들
주남선 목사님은 평소 신앙의 행동으로 백 목사님께 평생 잊지 못할 스승이 되셨고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은 동시대를 살며 당대를 감당한 종들로 그들 소식이 힘이 되었고
박윤선 목사님은 백 목사님께 세계 정통신학을 요약 설명하여 신학 목록을 소개한 분이고
오종덕 김현봉 목사님은 성경에 정통한 분들이어서 그 분들의 설교 속에서는 양식이 되고 동감이 되는 깨달음을 가장 많이 발견한 분들입니다.
이 노선이 세계 신학의 정통 역사 교리 체계에 발전적 기여를 한 부분들은 백 목사님 혼자 깨달은 것입니다. 조금도 주변에 영향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전혀 다른 범위에서 우연히 같은 면을 깨달아 동감을 했던 분들은 부분적으로는 조금씩 있습니다. 김현봉 목사님의 경우 건설구원과 영의 윤곽 개념은 별도로 가졌던 분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으로 들어 가면 총론적으로만 깨달았지 구체적 체계화에는 내 딛지 못했습니다. 기록과 여러 자료로 \남아 있는 사실입니다. 나이로 선배였지 성경 깨달음을 두고는 백 목사님은 1950년대 중후반부터 이미 정통의 교리 체계 전체를 마치 부정하고 반대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이 노선 교리 체계를 구체화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돌아 가실 때까지 그 완성도를 높혔습니다.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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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영희목사님도 박윤선박사님의 추천으로 신학교를 갔다고 들었습니다.
:
:
:
: 문의1)
:
: 백영희 목사님은 기독교 2000년의 깨달음을 누군가에서 배우지 않고, 사도바울이
: 3년 동안 아라비아 사막에서,혼자 묵상하고 구약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깨달은 것처럼
: 본인 스스로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고 깨달은 것입니까?
: (이런 분은 2000년 기독교역사가운데 사도바울 말고는 한분도 없었는데, 만약 제 질문의
: 내용처럼 그렇다면, 굉장히 특별한 분이고 하나님이 바울처럼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 손수 가르치신 형태인 것 같습니다.)
:
: ※ 2000년의 기독교의 핵심 깨달음 :
: 성경 정경론(신구약 66권), 신론(삼위일체). 기독론(신인양성일위)
: 구원론(이신칭의 = 기본구원) 인론 등
:
: 문의2)
:
: 신학교에 가서는 무엇을 배웠는지 궁금합니다. 혼자 모두 깨달았다면, 딱히 신학교에서
: 배울것은 없었는 것 같은데...
:
: 문의3)
:
: 현재 백목사님의 핵심교리이며 정통기독교에 미진한 부분을 모두 밝히신 교리들도
: 본인 혼자 스스로 깨달은 것입니까?
:
백목사님은 본인의 깨달음을 모두 혼자서...?
백영희목사님도 박윤선박사님의 추천으로 신학교를 갔다고 들었습니다.
문의1)
백영희 목사님은 기독교 2000년의 깨달음을 누군가에서 배우지 않고, 사도바울이
3년 동안 아라비아 사막에서,혼자 묵상하고 구약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깨달은 것처럼
본인 스스로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고 깨달은 것입니까?
(이런 분은 2000년 기독교역사가운데 사도바울 말고는 한분도 없었는데, 만약 제 질문의
내용처럼 그렇다면, 굉장히 특별한 분이고 하나님이 바울처럼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손수 가르치신 형태인 것 같습니다.)
※ 2000년의 기독교의 핵심 깨달음 :
성경 정경론(신구약 66권), 신론(삼위일체). 기독론(신인양성일위)
구원론(이신칭의 = 기본구원) 인론 등
문의2)
신학교에 가서는 무엇을 배웠는지 궁금합니다. 혼자 모두 깨달았다면, 딱히 신학교에서
배울것은 없었는 것 같은데...
문의3)
현재 백목사님의 핵심교리이며 정통기독교에 미진한 부분을 모두 밝히신 교리들도
본인 혼자 스스로 깨달은 것입니까?
(추가 질문)
신학교를 가셨는데, 그곳에서는 무엇을 배웠는지 궁금합니다.
신학교가서 본인의 신학을 확인하셨는지, 신학교 가서는 배운것이 하나도 없으신지?
신학교가서 본인의 깨달음에 도움을 받은 부분은 없는지,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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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목사님도 박윤선박사님의 추천으로 신학교를 갔다고 들었습니다.
문의1)
백영희 목사님은 기독교 2000년의 깨달음을 누군가에서 배우지 않고, 사도바울이
3년 동안 아라비아 사막에서,혼자 묵상하고 구약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깨달은 것처럼
본인 스스로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고 깨달은 것입니까?
(이런 분은 2000년 기독교역사가운데 사도바울 말고는 한분도 없었는데, 만약 제 질문의
내용처럼 그렇다면, 굉장히 특별한 분이고 하나님이 바울처럼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손수 가르치신 형태인 것 같습니다.)
※ 2000년의 기독교의 핵심 깨달음 :
성경 정경론(신구약 66권), 신론(삼위일체). 기독론(신인양성일위)
구원론(이신칭의 = 기본구원) 인론 등
문의2)
신학교에 가서는 무엇을 배웠는지 궁금합니다. 혼자 모두 깨달았다면, 딱히 신학교에서
배울것은 없었는 것 같은데...
문의3)
현재 백목사님의 핵심교리이며 정통기독교에 미진한 부분을 모두 밝히신 교리들도
본인 혼자 스스로 깨달은 것입니까?
(추가 질문)
신학교를 가셨는데, 그곳에서는 무엇을 배웠는지 궁금합니다.
신학교가서 본인의 신학을 확인하셨는지, 신학교 가서는 배운것이 하나도 없으신지?
신학교가서 본인의 깨달음에 도움을 받은 부분은 없는지,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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