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받은 우리의 순종으로 표현하는 것이 나을 듯 (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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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받은 우리의 순종으로 표현하는 것이 나을 듯 (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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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구원을 단정지어놓고 그 위에 자라나가라고 하는 것 은 구원의 문을 처음부터 넓게 열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양의 문이 아니라 담을 넘어 가는 것은 아닌지.. 한 번이라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마음이 있다면 택자의 범주에 넣으버리는 듯 하는 말씀은 구원 받은자의 고민의 범주에 넣어 버린다면 지금 세상인구의 거의가 택자라고 생각 할 수 도 있는 여건이 형성 됩니다.

그리고 구원의 한 면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절대 알 수 없도록 한 것 중에 하나라고 이곳에서 배웠습니다. 그렇기때문에, 평생 긴장 할 수 있고, 평생 믿음을 감찰하고 되돌아 볼 수 있는 가장 효력있는 기능이 아닌지.. 자라가는 면을 강조하셨고, 그 부분을 건설이라는 표현을 쓰셨고, 또 건설을 잘 이루어 나가는 것 을 높게 더 체계적으로 쌓아 올라간다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이 부분이 약간 추상적이라 높게 잘 쌓아 올라진 신앙은 어떤 신앙을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전 답변들을 살펴 본 바로는, 신앙의 목적은 예수그리스도를 닮는 것 이고, 이것이 건설구원인데, 건설구원을 이루어 가기 위해서, 기본구원 후 로는 건설구원에 전적으로 힘 써야 하며 이루는 가장 효력있는 측면은 의의 기능이 강화되어 이전에 순종했던 것 이 더 힘을 얻어 앞으로 순종하는데 영향력을 미치며 자라나가는데, 이렇게 자라나는 영이 우리의 영원의 모습이자 실력이자 영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기존구원론과 건설구원의 다른 점을 지적하신 점은 개혁주의가 구원받고 난 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모호하다는데 비해 이곳은 자라갈 면을 강조함으로 기본구원과 이루어갈 구원의 상호적작용이 더 보충되고 강조 되어 진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느낀 바 입니다/ ) 정리하면 이것들이 건설구원의 실제적기능 중 가장 큰 효력을 나타내는 부분 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른개혁주의는 구원받은 후 자신의 갈 방향을 몰라 안주해 있는 모습을 찾아 보기가 어렵습니다.(바른개혁주의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에 한함) 저는 현재 이 두 가지 지식이 함께 공존하여 그들의 구원을 이루는 삶이 답변자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정말 가야할 앞 길을 몰라 구원의 확신을 위해서만 노력하고 있는 제자리신앙인지, 말씀하시는 1층 짜리 건설의 신앙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그러한 면이 더 구원을 구원답게 만들며, 인간이 전적타락한 죄인이므로 자기중심이라는 것을 전제 해 볼 때, 어느설득을 가하고 또 가해도 자신의 생명과 가장 직접적으로 직결되는 택 불자 문제에 더 마음이 가게 되지, 건설구원이라는 범주 안 에 서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갈 것 이라고 보는 것은 인간의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함에서 생겨난 것 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믿고 난 후 회개와 믿음이 따르지 않는 것을 보고도 택자의 범주에 넣어버리는 것이 더 애매모호 하게 구원의 문을 넓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됩니다. 성경은 구원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 부분이 많고 애매모호한 성경구절은 지켜보면서 순종해보면 구원의 확신과 더불어 성화의 모습으로 자라나갈 것 입니다. 바울도 자신의 구원에 대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구원의 모순점으로 보이는 이것이 공존하고 있을 때, 그 안 에서 모순이 모순 되지 않게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이 아닌지요.. 택자라면 그러한 구원의 의심 가운데서 성령께서 확증해주실 것 이고, 그 감사함으로 말씀을 순종하고 계속 이루어 나가게 될 것 입니다. 이렇게 반복 될 때, 구원의 확신을 더 분명해 지면서, 말씀 순종을 통한 건설구원도 함께 이루어져 갈 것 으로 봅니다.

분명히 남은 자는 적을 것 입니다. 정말 주님의 택한 자는 적을 것 입니다. 아브라함때도, 노아때도, 이스라엘이 멸망했을 때도,, 그렇기 때문에 택자라면 당연히 이런 성경진리가 깨달아 질 것 이고 더 말씀을 순종하기 힘쓰고 각자 처한 현실에서 그 구원을 이루어 나가기에 필요한 것들을 더 해주실 것 이고 행함이 동반될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건설구원을 통한 실제적 효용의 득실을 따져 볼 때, 기본구원에서 더 자라났다고 하는 이 하나의 체계가 잡힘으로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는데 집중할 수 있는유익있으나, 그에 못지 않은 기본구원의 문을 엄첨나게 넓혀놓는 면도 있음을 볼 때 그 실은 상당할 것 으로 생각되어집니다.

결론은 개혁주의로도 충분히 예수님닮은 형상으로 자라나가는 목표가 성령의 감동으로 중생된 자 에게는 있기때문에, 개혁주의의 구원론을 유지하되, 행함으로 구원받는 행함을 강조하는 것 이 아닌, 구원받은 우리의 순종을 강조한다면 충분하지 않을 지 생각이 되어집니다.

>> yilee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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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에 대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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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접해 본 건설구원론 지적 중에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반론입니다. 이 노선의 특별한 면이 건설구원론이므로 수십 년 세월을 통해 바꾸어 놓은 교인도 많으나 그에 못지 않게 반론자도 많았으나 귀 담아 들을 내용은 전무했습니다. 그런데 이 번 질문은 건설구원론이 옳다 해도 건설구원론이 늘 잊지 말아야 하고 늘 짐을 지고 가야 할 과제를 주셨으며, 만일 지적하신 반론이 맞다면 건설구원론에서 세월과 기회를 뺏기고 있는 이 노선의 많은 분들이 얼른 돌아 설 수 있는 구원의 소식이니 비판다운 비판은 우리 신앙생활에서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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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이 옳다면 이 노선 건설구원론의 체계를 처음부터 다시 살펴 볼 상황이고, 지적이 오해라면 이런 지적을 통해서 건설구원론은 마광 되는 것이니, 위 질문은 옳아도 좋고 옳지 않아도 좋습니다. 미리 부탁하는 것은 답변자의 안내를 두고 가끔 '답변자는 그 어떤 질문이라도 자기가 소속한 이 노선이 옳다고 전제해 놓고 나서 뭐든지 끼워 맞춘다'는 지적을 받는데 이 홈의 운영 이유 중 하나는 더 옳은 것을 찾고자 한다는 진의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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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경 근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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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교회 5백 년의 근간이 되는 '한 번 구원 받은 사람은 택함에 의하여 구원 받은 것이며, 그 구원은 흔들릴 수 없는 절대성의 것이니 성령의 견인 역사가 이를 담보하는 것이고, 그 구원에는 인간의 노력과 의지는 전혀 개입 될 수 없으니 전적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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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구원론은 바로 위에 설명한 이 개혁주의 구원론을 절대 옳고 바르다는 것이므로 개혁주의 구원론과 이 노선 구원론은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같은 것이며 하나인데 왜 다른 것처럼 보이는가? 개혁주의 구원론이 천국을 가는 면만 가르쳤고 개혁주의 구원론의 구원을 얻은 사람이 그 이후 평생 살아 가는 생활에서 닥치는 문제를 보충한 것이 이 노선의 건설구원론이므로, 건설구원론은 개혁주의 구원론의 보충이며 후속이며 연장선이며 수습책이며 필연적인 결과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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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벧후3:18에서 '자라 가라'는 말씀과

: 마7:24에서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와 26절에서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를 두고 21절에서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 가리라'고 하셨으니 개혁주의 구원론이 5백 년 간 밝혀 놓은 '행위가 아닌 구원' 외에 '행함으로 자라 가는 구원'을 보충해야 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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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많은 성구 중에 이 번 답변에서는 간단하게 2 곳만 제시합니다. 이 두 성구는 5백 년 개혁주의 교회의 구원론만 가지고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감리교 쪽에서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개혁주의 구원론이 틀렸다고 하는데 이 노선은 바로 그 성구들이 개혁주의의 구원론을 틀렸다는 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개혁주의 구원론에서 아직 열지 않은 새 장을 말씀한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노선 구원론은 개혁주의 구원론이며 성구 근거는 명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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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위 글에서 특별한 지적으로 평가하고 싶은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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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구나 교리 연구에서는 천주교에서 나올 때 개혁주의 우리 구원론이 더 이상 논쟁이 필요 없도록 완벽했듯이 이 노선의 건설구원론이 개혁주의 기본구원론의 보완이 되며 기본구원론의 나갈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 확실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으나, 위 글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우리의 평소 신앙 생활에서 느끼는 효력 면입니다. 기본구원론만을 가질 때 신앙에 있어 두려움과 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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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자나 답변자 그리고 그 누구라 해도 택자와 불택자로만 나누어 천국 가고 지옥 가는 단일만 가르 치는 교리가 우리를 더 두렵고 긴장하게 만들어 실제 평소 신앙 생활에서 우리의 자세가 가다듬어 지는 것을 느끼고, 건설구원론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안이하게 만들며 더 나아 가서 방종에 이르게 한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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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부분은 각자의 느낌이므로 다시 생각해 보시되 범위를 좀 넓혀 보시기를 청합니다. 택 불택으로 나누며 천국과 지옥의 단선만 강조하게 되면 구원 받은 확신에 감사가 넘치고 지옥 갈 불택자를 보며 하나님의 두려움을 알게 되어 만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라는 말씀이 당장에 와 닿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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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 불택은 다른 면에서는 자포자기를 만드는 것도 사실이니 예정에 따른 택함과 불택은 우리의 인지와 노력 범위를 벗어 난 것이므로 알미니안들이 4백여 년 지적한 대로 양식을 가지고 지성 있게 믿는 이들에게는 자포자기와 운명론과 막가는 사람을 만드는 폐단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의 명확한 증거가 있으므로 인간의 염려나 우려를 인간적인 것으로 돌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한 단계 위에서 이 교리를 증거하고 가져 왔습니다. 바로 그 원리에 의하여 건설구원론이 나를 나태하게 만드는 인간적 느낌이 들고 말고에 상관 없이 앞 서 설명한 성구들 때문에 성경의 증거는 확실하니 일단 성경의 증거가 확실하다면 우리는 인간적 우려와 염려를 인간적인 것으로 돌리고 하나님께서 필요해서 주신 것은 믿음으로 그대로 순종해 나가다 보면 인간의 애초 염려과 근심은 인간의 공연한 기우였고 실제로는 기본구원에 건설구원이 더해 질 때 기본구원도 더 기본구원적이 되어 기본구원만 가졌을 때보다 기본구원 은혜에 더 감사하게 되고 그리고 건설구원이 우리를 일시만 아니라 평생을 긴장하게 만드는 면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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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하시는 분의 말씀으로 기본구원만 간단히 알게 될 때 신앙에 더욱 두려움을 가지고 잘 믿는 결과를 예상하신다고 했는데, 개혁주의 구원론이 기본구원만 말하고 있으므로 정말 이 구원론을 제대로 잡았다면 그 다음부터는 우리의 본능이 우리의 이룰 것을 다 이루었고 더 이상 아무 할 일이 없다는 것을 파악하는 순간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인지? 나태 안일 방종이란, 더 이상 나 갈 곳이 없고 더 이상 이룰 것이 없고 모든 것을 다 가졌고 다 이룬 상태에서 필연적으로 나타 나는 열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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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구원으로 천국 입성을 확정하되 천국의 영원한 차이와 다시는 변경 시킬 수 없는 단 번의 기회가 우리 평생에 주어 진다는 건설구원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믿는 순간 개혁주의의 구원론이 주는 모든 감사와 두려움과 다행과 행복을 품에 안고 그 다음부터는 건설구원론 때문에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안심할 수 없이 질주하게 되는 것이 바로 건설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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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의 간결성을 가지고 성경적인지 여부를 말씀하셨는데, 만일 그 논리로 말하면 삼위일체 교리는 2천 년이 다 되어 가는 오늘도 개혁주의 우리 정통 교파 신학자까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아직도 설명을 더듬고 있으나, 여호와의 증인들의 단일신론은 단순 명쾌하여 여호와증인의 이단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특별히 굳건히 잡고 있는 장로교인 그 것도 정통교파 교인일수록 그들은 피 냄새를 맡은 승냥이처럼 상어처럼 대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논리에서는 늘 장로교인, 개혁주의 정통에 선 교파 교인들은 구석에 몰리고 그들은 그럴수록 더욱 신이 나서 이단의 길에 한 가지 위안을 삼아 힘을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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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구원 교리가 너무 단순하여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앙은 생명이니 생명이란 출생하면 성장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연 속에서 쉽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쉬운 것을, 어렵게 느껴지게 한 것은 건설구원론이 아니라 기본구원만 듣고 배운 분들이 건설구원론으로 성경을 한 번만 들여다 봤다면 이 노선을 접한 수 많은 교인들의 쏠림처럼 단번에 쏠렸을 터인데 기존 지식, 선입견, 옛 사고방식의 저항력과 저력이 얼마나 큰지, 기본구원론만을 전부로 알고 건설구원론을 비판만 하려다 보니까 복잡한 것처럼 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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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란 타락한 인간 세계의 필연적 생존법인데, 공산주의가 반론을 일으켜 좌우익 논쟁이 오랜 세월 세계 곳곳과 이 나라와 이 나라 남반부에 마치 진실 논쟁처럼 되었습니다. 결국 70 년 동안 좌익들은 잠꼬대만 했고 그들의 애초 주장은 스스로 다 없앴으니 이렇게 허무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이 과거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자본주의화 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논쟁 때문에 자본주의는 마치 어렵고 잘못 된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인간은 약육강식을 피할 수 없게 되었는데 마치 공산주의는 강약공존 강약협력 강약공생이 가능한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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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구원을 받은 교인이 생명을 다시 손에 넣었으니 그 생명이란 당연히 남은 인생 전부를 통해 자라 가야 한다는 것은 간단 명료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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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개혁주의 구원론에서 신앙을 잘 이루어 간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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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층짜리 작은 집은 설계도 없이 아무나 경험 없이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63빌딩 같은 고층 건물은 치밀한 설계와 이치의 뒷받침이 없이 추진 된다면 공원묘지가 될 것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만큼 어려운 교리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교리가 왜 우리 현실에 필요한지 사실 일반 교인들은 모릅니다. 답변자가 오랜 세월 겪어 본 목회자들도 그 교리가 왜 일반 교인들에게 필요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모든 개혁교회들이 예배에 사도신경을 외우는데 그 공고백의 내용이 바로 삼위일체가 거의 전부입니다. 목회자도 설명하지 못하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교리여서 목회자들이 삼위일체 교리를 내용으로 해서 설교하는 설교문은 접해 본 적도 없는데 모두가 그 고백을 함께 외우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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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의 가지와 잎사귀만 눈에 보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가지와 잎사귀가 태풍과 사시사철 고난을 겪으며 열매를 맺는다고 보이나 실제 더 큰 수고는 뿌리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뿌리기 때문에 이 교리의 토씨 하나가 평소 일반인의 평생 신앙생활 전부의 보이지 않는 힘이 되고 뒷받침이 되며 이 하나가 잘못 되면 그 위에 번성한 가지와 잎들은 그 번성한 결과 때문에 태풍에 더 빨리 절단 납니다. 가정의 아이들에게 어머니의 감사는 늘 눈에 보이나 집 밖에서 투쟁하여 돈을 벌어 오는 아버지의 수고를 아는 데는 세월도 걸리고 시야가 좀 넓어야 함을 참고해 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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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많은 내용을 평소 설명한 것과 이 번 설명을 보탠다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다른 종류의 지적과 다른 면이 보여 반갑게 읽고 설명을 했으나 이 답변 하나에 질문자께서 전반적으로 이해할 만한 내용 전부를 다 담기 어려워 과거 설명을 참고해 주시라는 부탁과 함께 이 번 질문 때문에 한 번 더 생각해 보셨으면 하는 글들을 중심으로 적어 봤습니다. 이 홈 초기 수 년 간의 답변은 답변 하나가 해당 질문에 이어 져 나올 질문까지 고려하고 적는다고 적었으나 최근 수 년 간은 과거 내용들이 이미 제공 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답변 하나의 완성도는 크게 생각하고 있지 않음을 이 곳을 찾는 모든 분들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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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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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건설구원교리를 전제로 하여 신앙생활을 할 때 신앙생활이 안이해 짐을 느낍니다.

: : 그 이유 중 하나를 쉽게 말하면 개혁주의 기본구원, 즉 택자와 불택자로 나뉜다는 관점으로 성경을 보니 더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나의 믿음을 점검하고 돌이키게 되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 : 2.그리고 한가지 더, 가장 중요한 것은 건설구원이 더 성경적이냐는 것 입니다. 아주 간단한 이유를 하나 들어보자면 기본구원교리가 더 직접적이고 더 간결하다는 것 입니다. 즉 해석을 더 붙 일 필요도 없고..

: : 개혁주의의 신앙을 보고 옛 것으로 돌아가는 면을 보며 안타까워? 하셨는데,

: : 3.그들도 그 개혁주의 신앙으로 성경전체를 이용하여 자신의 현실에서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갑니다. 이것이 또한 신앙적인 면으로 볼 때는 건설구원이라 말은 하지 않지만 건설구원이 아닌지? 혹, 이들에게 건설구원을 전한다면 어떤 면 에서 그들의 신앙유익이 보탬이 될 지 궁금 합니다. 그들을 볼 때, 이분법으로 나눈다고 해서 꼭 구원 받지 못 해 두려워 신앙건설을 못 하는 면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 두려움이 진노의 하나님을 깨달음으로 신앙생활에 더 유익이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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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구원교리의 실제적 효과 면에 대해
1.건설구원교리를 전제로 하여 신앙생활을 할 때 신앙생활이 안이해 짐을 느낍니다.

그 이유 중 하나를 쉽게 말하면 개혁주의 기본구원, 즉 택자와 불택자로 나뉜다는 관점으로 성경을 보니 더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나의 믿음을 점검하고 돌이키게 되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2.그리고 한가지 더, 가장 중요한 것은 건설구원이 더 성경적이냐는 것 입니다. 아주 간단한 이유를 하나 들어보자면 기본구원교리가 더 직접적이고 더 간결하다는 것 입니다. 즉 해석을 더 붙 일 필요도 없고..

개혁주의의 신앙을 보고 옛 것으로 돌아가는 면을 보며 안타까워? 하셨는데,

3.그들도 그 개혁주의 신앙으로 성경전체를 이용하여 자신의 현실에서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갑니다. 이것이 또한 신앙적인 면으로 볼 때는 건설구원이라 말은 하지 않지만 건설구원이 아닌지? 혹, 이들에게 건설구원을 전한다면 어떤 면 에서 그들의 신앙유익이 보탬이 될 지 궁금 합니다. 그들을 볼 때, 이분법으로 나눈다고 해서 꼭 구원 받지 못 해 두려워 신앙건설을 못 하는 면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 두려움이 진노의 하나님을 깨달음으로 신앙생활에 더 유익이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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