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2:5, 전도와 설교는 말에 능숙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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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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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2 00:00
1. 하나님의 자연 역사
일반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자연스럽습니다. 입으로 먹게 하고 발로 걷게 하시지, 발로 먹게 하거나 입으로 걷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꼭 이런 자연 상황을 바꿀 필요가 있으면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일반 세상의 운영은 거의 자연스럽게 운영하시고, 우리의 신앙 역사는 초자연의 역사가 많습니다.
2. 전도와 성령 역사
하나님께서 공부나 사업이나 건강처럼 일반 세상 사람에게도 해당 되는 역사는 물질의 자연 이치에 맞게 움직이지만 신앙 문제에는 물질의 이치와 세상을 운영하는 역사와 너무 뚜렷하게 다르게 인도하시는데, 그 중에서도 전도의 경우는 극단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상의 자연 이치와 다르게 역사하십니다. 아예 보지도 못한 세계, 아예 믿을 수도 없는 것을 믿게 하시는 역사니, 안 믿는 사람이 믿게 되거나 믿는 사람이 말씀의 은혜를 받아 변화 되는 과정은 세상 이치는 아예 무시하고 성경의 진리 이치만 적용합니다.
3. 전도와 언어 문제
학교 강의는 말이 통하지 않고는 전달 될 수 없으나, 전도와 설교는 전하는 사람이 얼마나 어떻게 하나님께 붙들렸느야에 따라 가지, 전하는 사람의 언어력과는 아예 무관합니다. 물론 전도와 설교 은혜는 '언어 소통'이 전제가 되고 사용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셨으니 외부적으로는 말 잘하는 사람이 효력을 보고 말 못하는 사람은 안 되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한국에 한글로 된 성경이 없거나, 오늘 한국에 한국어를 구사하는 한국어 원어민 목사가 부족하여 말씀 전달에 문제가 있을까? 신학의 발전과 목회자들의 설교 기법의 계발은 역사 6천 년을 통해 절정에 도달했으나 오늘 그 설교가 제대로 전해 지는 교회나 그런 예배는 거의 들어 보기 어렵습니다. 이유는? 한국어 구사 능력 문제가 아니라 오늘 자기 속에 성령에게 붙들리는 노력이나 그런 애절함을 가진 목사가 없고 교인이 없고 그런 신도가 있을 가능성조차 없어서 생기는 일입니다.
바로 이 문제를 뒤 집어 보면 이미 지구 상에는 국가 단위로 볼 때 복음이 들어 가지 않은 곳이 없는데 그 나라의 복음 전파가 그 국가의 표준 언어의 의사소통 문제인가? 아닙니다. 성경도 이를 증거하고 역사도 이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100 년 전에 한국의 선교 초기에 한국으로 들어 오는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태어 난 2세들이 아니라 미국 호주 카나다 영국에서 성인이 되고 목사가 된 후에 들어 왔으며 당시 그들에게 조선 나라는 나라 이름도 알려 지지 않았으니 한국어 교습소나 프로그램조차 없던 시기에 간단한 생활 대화 몇 마디와 복음 전파에 필요한 단어 몇 가지만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번역했고 설교했고 그들이 전도해서 만들어 놓은 교회가 한국교회입니다. 세계교회의 선교와 발전 단계도 다 동일입니다.
4. 교회사의 빛난 예찬 때문에
그 나라나 그 부족에 첫 선교자라든지 아니면 선교 공로자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수도 없는 사람들이 뛰어 들고 있는데 이는 교회사 공부를 통해 선교화 되는 역사의 사례가 너무 찬란해서 '선교 과열'이라는 좋은 현상은 생기고 있습니다만 찬란한 세계선교사의 결과와 영광은 아나 그 열매를 맺게 된 좋은 나무인 원인 행위는 너무 버려 져 있습니다. 오직 성령에 붙들려 자기 속의 주님이 인도하는 대로 갔고 전하라는 대로 전했고 그 과정에서 목숨도 가족도 경제도 이름도 돌아 보지 않았고 그런 이들을 붙들고 복음을 전한 이는 성령이셨으니 성령이 전하는 이를 붙들고 시킬 때 전하는 이들이 바로 전하면 그 전도를 듣는 이들의 마음을 믿도록 만들어 이 복음은 전해 져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일'조차 아는 선교사가 없고 그들 머리 속에는 신학교에서 배운 학문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들이 선교라는 단어 앞에 국내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해외에서 한 건 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은 명예주의로 활동하는 그 곳에 성령이 쉽게 동하실까? 안 봐도 성령은 그렇게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 것이 바로 오늘 선교와 비교할 때 100 년 전이나 그 이전의 세계 기독교 선교사의 기록적인 활동 시기는 언어나 모든 형편이 아주 뒤 떨어 졌는데 선교의 열매는 더욱 큰 이유입니다. 오늘 선교사는 휴대폰을 들고 고국에서 지원 되는 물심 양면의 후원이 든든한데 그들이 과연 애절하고 성령을 찾겠는가? 기금과 지원과 관심과 기술이 넘치기 때문에 그 만큼 성령의 역사는 제감 되고, 과거는 그런 것들이 없는 상태이므로 어디를 봐도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고는 안 되기 때문에 성령만 의지했고 그래서 성령이 언어 소통의 문제까지 다 초월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5. 오늘 우리 환경에서
언어 학습의 기회가 충분하므로 과거와 꼭 같이 선교를 위해 준비하려 한다면 현지 언어는 과거에 비해 탁월히 잘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력해도 그 이상을 넘을 수 없는 언어 한계는 정말 제대로 된 고대사회 환경에서 선교하든 신앙의 선배들을 따라 오직 성령에 붙들려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영어를 포함해서 세계 그 어느 나라 말이라도 배울 수 있는데 공부하기 싫고 땀 흘리기 싫어서 성령을 머슴 부리듯이 앞 세우려 한다면 불충일 것이나, 할 만큼 했는데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성령에게 맡기고 전해야 합니다.
>> 선교생 님이 쓰신 내용 <<
:
: 요즘은 해외 연수 기회가 많습니다. 국비지원도 많고 또 주변에 친구들이 일하면서 배우는 워킹스테이도 많습니다. 몇번 나갔다 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중심이고 선교를 하고 싶어 하는데 현지어 구사가 되지 않아서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
: 본국에서 받은 연보로 교육이나 복지처럼 사회활동은 해서 빛은 되나 실제 복음을 전해서 현지인들이 믿고 발전하는 경우를 만나는 것은 어찌 그리 어려울까요? 해외 나가 있는 선교사들이 세워서 교회가 잘된다고 하면 그곳에 있는 한국사람들이 모이는 한인교회고 현지인 전도는 사회활동의 구호대상일 뿐이지 그들을 복음화해서 교회로 자라가는 경우는 너무 적습니다.
:
: 이 모든 원인을 현지어 구사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그런 것을 실감합니다. 그런데 영어 때문에 우리는 외국어 학습경험이 많습니다. 경우 생활회화나 하게 되는 것이지 말씀을 전해서 신앙에 변화를 일으킬 정도가 되려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지에서 자라난 한인2세들은 신앙과 멀고 한국에서 은혜 받고 불타는 사람들은 선교의 열망과 지원비만 넘치지 현지인을 말씀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현지 원주민들에게 한국에서 돈을 많이 보내어 그들이 스스로 전하게 한다고 하는데 결과는 참 미미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반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자연스럽습니다. 입으로 먹게 하고 발로 걷게 하시지, 발로 먹게 하거나 입으로 걷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꼭 이런 자연 상황을 바꿀 필요가 있으면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일반 세상의 운영은 거의 자연스럽게 운영하시고, 우리의 신앙 역사는 초자연의 역사가 많습니다.
2. 전도와 성령 역사
하나님께서 공부나 사업이나 건강처럼 일반 세상 사람에게도 해당 되는 역사는 물질의 자연 이치에 맞게 움직이지만 신앙 문제에는 물질의 이치와 세상을 운영하는 역사와 너무 뚜렷하게 다르게 인도하시는데, 그 중에서도 전도의 경우는 극단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상의 자연 이치와 다르게 역사하십니다. 아예 보지도 못한 세계, 아예 믿을 수도 없는 것을 믿게 하시는 역사니, 안 믿는 사람이 믿게 되거나 믿는 사람이 말씀의 은혜를 받아 변화 되는 과정은 세상 이치는 아예 무시하고 성경의 진리 이치만 적용합니다.
3. 전도와 언어 문제
학교 강의는 말이 통하지 않고는 전달 될 수 없으나, 전도와 설교는 전하는 사람이 얼마나 어떻게 하나님께 붙들렸느야에 따라 가지, 전하는 사람의 언어력과는 아예 무관합니다. 물론 전도와 설교 은혜는 '언어 소통'이 전제가 되고 사용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셨으니 외부적으로는 말 잘하는 사람이 효력을 보고 말 못하는 사람은 안 되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한국에 한글로 된 성경이 없거나, 오늘 한국에 한국어를 구사하는 한국어 원어민 목사가 부족하여 말씀 전달에 문제가 있을까? 신학의 발전과 목회자들의 설교 기법의 계발은 역사 6천 년을 통해 절정에 도달했으나 오늘 그 설교가 제대로 전해 지는 교회나 그런 예배는 거의 들어 보기 어렵습니다. 이유는? 한국어 구사 능력 문제가 아니라 오늘 자기 속에 성령에게 붙들리는 노력이나 그런 애절함을 가진 목사가 없고 교인이 없고 그런 신도가 있을 가능성조차 없어서 생기는 일입니다.
바로 이 문제를 뒤 집어 보면 이미 지구 상에는 국가 단위로 볼 때 복음이 들어 가지 않은 곳이 없는데 그 나라의 복음 전파가 그 국가의 표준 언어의 의사소통 문제인가? 아닙니다. 성경도 이를 증거하고 역사도 이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100 년 전에 한국의 선교 초기에 한국으로 들어 오는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태어 난 2세들이 아니라 미국 호주 카나다 영국에서 성인이 되고 목사가 된 후에 들어 왔으며 당시 그들에게 조선 나라는 나라 이름도 알려 지지 않았으니 한국어 교습소나 프로그램조차 없던 시기에 간단한 생활 대화 몇 마디와 복음 전파에 필요한 단어 몇 가지만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번역했고 설교했고 그들이 전도해서 만들어 놓은 교회가 한국교회입니다. 세계교회의 선교와 발전 단계도 다 동일입니다.
4. 교회사의 빛난 예찬 때문에
그 나라나 그 부족에 첫 선교자라든지 아니면 선교 공로자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수도 없는 사람들이 뛰어 들고 있는데 이는 교회사 공부를 통해 선교화 되는 역사의 사례가 너무 찬란해서 '선교 과열'이라는 좋은 현상은 생기고 있습니다만 찬란한 세계선교사의 결과와 영광은 아나 그 열매를 맺게 된 좋은 나무인 원인 행위는 너무 버려 져 있습니다. 오직 성령에 붙들려 자기 속의 주님이 인도하는 대로 갔고 전하라는 대로 전했고 그 과정에서 목숨도 가족도 경제도 이름도 돌아 보지 않았고 그런 이들을 붙들고 복음을 전한 이는 성령이셨으니 성령이 전하는 이를 붙들고 시킬 때 전하는 이들이 바로 전하면 그 전도를 듣는 이들의 마음을 믿도록 만들어 이 복음은 전해 져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일'조차 아는 선교사가 없고 그들 머리 속에는 신학교에서 배운 학문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들이 선교라는 단어 앞에 국내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해외에서 한 건 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은 명예주의로 활동하는 그 곳에 성령이 쉽게 동하실까? 안 봐도 성령은 그렇게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 것이 바로 오늘 선교와 비교할 때 100 년 전이나 그 이전의 세계 기독교 선교사의 기록적인 활동 시기는 언어나 모든 형편이 아주 뒤 떨어 졌는데 선교의 열매는 더욱 큰 이유입니다. 오늘 선교사는 휴대폰을 들고 고국에서 지원 되는 물심 양면의 후원이 든든한데 그들이 과연 애절하고 성령을 찾겠는가? 기금과 지원과 관심과 기술이 넘치기 때문에 그 만큼 성령의 역사는 제감 되고, 과거는 그런 것들이 없는 상태이므로 어디를 봐도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고는 안 되기 때문에 성령만 의지했고 그래서 성령이 언어 소통의 문제까지 다 초월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5. 오늘 우리 환경에서
언어 학습의 기회가 충분하므로 과거와 꼭 같이 선교를 위해 준비하려 한다면 현지 언어는 과거에 비해 탁월히 잘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력해도 그 이상을 넘을 수 없는 언어 한계는 정말 제대로 된 고대사회 환경에서 선교하든 신앙의 선배들을 따라 오직 성령에 붙들려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영어를 포함해서 세계 그 어느 나라 말이라도 배울 수 있는데 공부하기 싫고 땀 흘리기 싫어서 성령을 머슴 부리듯이 앞 세우려 한다면 불충일 것이나, 할 만큼 했는데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성령에게 맡기고 전해야 합니다.
>> 선교생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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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해외 연수 기회가 많습니다. 국비지원도 많고 또 주변에 친구들이 일하면서 배우는 워킹스테이도 많습니다. 몇번 나갔다 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중심이고 선교를 하고 싶어 하는데 현지어 구사가 되지 않아서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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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국에서 받은 연보로 교육이나 복지처럼 사회활동은 해서 빛은 되나 실제 복음을 전해서 현지인들이 믿고 발전하는 경우를 만나는 것은 어찌 그리 어려울까요? 해외 나가 있는 선교사들이 세워서 교회가 잘된다고 하면 그곳에 있는 한국사람들이 모이는 한인교회고 현지인 전도는 사회활동의 구호대상일 뿐이지 그들을 복음화해서 교회로 자라가는 경우는 너무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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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원인을 현지어 구사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그런 것을 실감합니다. 그런데 영어 때문에 우리는 외국어 학습경험이 많습니다. 경우 생활회화나 하게 되는 것이지 말씀을 전해서 신앙에 변화를 일으킬 정도가 되려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지에서 자라난 한인2세들은 신앙과 멀고 한국에서 은혜 받고 불타는 사람들은 선교의 열망과 지원비만 넘치지 현지인을 말씀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현지 원주민들에게 한국에서 돈을 많이 보내어 그들이 스스로 전하게 한다고 하는데 결과는 참 미미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교 사역과 현지어 구사 능력
요즘은 해외 연수 기회가 많습니다. 국비지원도 많고 또 주변에 친구들이 일하면서 배우는 워킹스테이도 많습니다. 몇번 나갔다 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중심이고 선교를 하고 싶어 하는데 현지어 구사가 되지 않아서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본국에서 받은 연보로 교육이나 복지처럼 사회활동은 해서 빛은 되나 실제 복음을 전해서 현지인들이 믿고 발전하는 경우를 만나는 것은 어찌 그리 어려울까요? 해외 나가 있는 선교사들이 세워서 교회가 잘된다고 하면 그곳에 있는 한국사람들이 모이는 한인교회고 현지인 전도는 사회활동의 구호대상일 뿐이지 그들을 복음화해서 교회로 자라가는 경우는 너무 적습니다.
이 모든 원인을 현지어 구사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그런 것을 실감합니다. 그런데 영어 때문에 우리는 외국어 학습경험이 많습니다. 경우 생활회화나 하게 되는 것이지 말씀을 전해서 신앙에 변화를 일으킬 정도가 되려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지에서 자라난 한인2세들은 신앙과 멀고 한국에서 은혜 받고 불타는 사람들은 선교의 열망과 지원비만 넘치지 현지인을 말씀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현지 원주민들에게 한국에서 돈을 많이 보내어 그들이 스스로 전하게 한다고 하는데 결과는 참 미미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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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해외 연수 기회가 많습니다. 국비지원도 많고 또 주변에 친구들이 일하면서 배우는 워킹스테이도 많습니다. 몇번 나갔다 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중심이고 선교를 하고 싶어 하는데 현지어 구사가 되지 않아서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본국에서 받은 연보로 교육이나 복지처럼 사회활동은 해서 빛은 되나 실제 복음을 전해서 현지인들이 믿고 발전하는 경우를 만나는 것은 어찌 그리 어려울까요? 해외 나가 있는 선교사들이 세워서 교회가 잘된다고 하면 그곳에 있는 한국사람들이 모이는 한인교회고 현지인 전도는 사회활동의 구호대상일 뿐이지 그들을 복음화해서 교회로 자라가는 경우는 너무 적습니다.
이 모든 원인을 현지어 구사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그런 것을 실감합니다. 그런데 영어 때문에 우리는 외국어 학습경험이 많습니다. 경우 생활회화나 하게 되는 것이지 말씀을 전해서 신앙에 변화를 일으킬 정도가 되려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지에서 자라난 한인2세들은 신앙과 멀고 한국에서 은혜 받고 불타는 사람들은 선교의 열망과 지원비만 넘치지 현지인을 말씀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현지 원주민들에게 한국에서 돈을 많이 보내어 그들이 스스로 전하게 한다고 하는데 결과는 참 미미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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