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52-54 년 기간, 성경 해석과 교리 근본은 처음 믿을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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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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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0 00:00
백 목사님은
1936년에 믿고 1952년까지 덕유산 시골에서 항상 목숨 걸고 믿었던 현장의 신앙 지도자였고 신학을 접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물론 한 두 달 정도의 성경학교 공부와 가끔 지나 가는 선교사나 신학을 공부했던 분들과의 접촉을 통해 약간의 상식 이야기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1952년부터 1959년까지 기간에는 부산에서 고신 교단의 중심 교회를 맡아 고려신학교 박윤선 목사님 등을 중심으로 신학의 깊은 것을 접할 수 있었고 토론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1960년 이후 돌아 가실 때까지는 신학과 접할 기회는 없었고 1976년부터 시작 된 교단 내 양성원 과정의 신학 강좌에는 배우거나 새로운 것을 접하는 기회가 아니라 강의하는 교수들에게 지적을 하는 차원이었습니다.
백 목사님의 주요 교리는
덕유산에서 성경 하나만 들고 목숨을 걸고 믿던 매일의 신앙 현장에서 총론적으로 다 깨닫고 알던 것을, 1952년부터 몇 년 동안 고신의 고려신학교에서 공부하며 그가 깨달은 것을 신학에서 어떤 표현으로 어떤 체계로 어떤 방법으로 가르 치는지를 확인하는 시기였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새로 배워서 도움이 된 교리는 없었다 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성경신학의 원어적 학문적 내용이나 교회사 등은 신학교에 와서 구경을 하게 되었고, 원어적 학문적 성경 신학은 이 노선에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신학 상식으로는 필요가 있으나 신앙에는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입장이며 교회사는 크게 참고하고 배웠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것이 없다 하는 것은 교리 방향과 성경 해석 부분입니다. 신학교에 오기 전에 성경에서 알고 있던 것을 신학이 어떻게 표현하는지 용어를 알게 된 정도입니다.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 대한 것도 그 분은 미리 방향과 중요한 근본 흐름은 알고 있었고, 전택설과 후택설이 대립한다는 것은 신학교에 와서 배웠으나 전택설이 성경이라는 사실은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기본구원관에서 건설구원과 기능구원에 이르는 길은 그 방향은 미리 알고 있었으나 일반 신학이 건설구원을 크게 혼동하고 있음을 신학 과정에서 알게 되었고 이를 체계적으로 객관적으로 반론하면서 건설구원론을 체계화 하는 과정은 1950년대 중반에 벌써 나타 나기 시작하고 완전히 체계화를 한 것은 1960년 경 또는 그 직후로 보입니다.
>> 진리연구 님이 쓰신 내용 <<
:
: 백영희목사님은 개혁주의 신학인 '타락전 선택설 - 타락후 선택설'을 배운다음에
: 더 연구하여 '목적구원'을 깨달은것입니까?
: 개혁주의 구원의 서정(소명 중생 칭의 회심 성화 견인 영화)을 배운다음에
: 더 연구하여 '기본구원 -건설구원-기능구원'을 깨달은것입니까?
:
: 백영희목사님의 교리는 정통개혁주의신학의 모든부분에 있어서 깊어지고 선명해졌는데
: 그것이 고려신학교에가서 정통신학을 배운후에 더 연구하여 깊어진것인지
: 아니면 정통신학을 배우지않고 정통신학보다 더 깊어진 교리를 깨달은것인지 궁금합니다.
:
: 백목사님 혼자 깨달음과 배워서 연구하여 깨달음이 어느정도 되는지알고싶습니다.
1936년에 믿고 1952년까지 덕유산 시골에서 항상 목숨 걸고 믿었던 현장의 신앙 지도자였고 신학을 접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물론 한 두 달 정도의 성경학교 공부와 가끔 지나 가는 선교사나 신학을 공부했던 분들과의 접촉을 통해 약간의 상식 이야기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1952년부터 1959년까지 기간에는 부산에서 고신 교단의 중심 교회를 맡아 고려신학교 박윤선 목사님 등을 중심으로 신학의 깊은 것을 접할 수 있었고 토론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1960년 이후 돌아 가실 때까지는 신학과 접할 기회는 없었고 1976년부터 시작 된 교단 내 양성원 과정의 신학 강좌에는 배우거나 새로운 것을 접하는 기회가 아니라 강의하는 교수들에게 지적을 하는 차원이었습니다.
백 목사님의 주요 교리는
덕유산에서 성경 하나만 들고 목숨을 걸고 믿던 매일의 신앙 현장에서 총론적으로 다 깨닫고 알던 것을, 1952년부터 몇 년 동안 고신의 고려신학교에서 공부하며 그가 깨달은 것을 신학에서 어떤 표현으로 어떤 체계로 어떤 방법으로 가르 치는지를 확인하는 시기였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새로 배워서 도움이 된 교리는 없었다 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성경신학의 원어적 학문적 내용이나 교회사 등은 신학교에 와서 구경을 하게 되었고, 원어적 학문적 성경 신학은 이 노선에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신학 상식으로는 필요가 있으나 신앙에는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입장이며 교회사는 크게 참고하고 배웠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것이 없다 하는 것은 교리 방향과 성경 해석 부분입니다. 신학교에 오기 전에 성경에서 알고 있던 것을 신학이 어떻게 표현하는지 용어를 알게 된 정도입니다.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 대한 것도 그 분은 미리 방향과 중요한 근본 흐름은 알고 있었고, 전택설과 후택설이 대립한다는 것은 신학교에 와서 배웠으나 전택설이 성경이라는 사실은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기본구원관에서 건설구원과 기능구원에 이르는 길은 그 방향은 미리 알고 있었으나 일반 신학이 건설구원을 크게 혼동하고 있음을 신학 과정에서 알게 되었고 이를 체계적으로 객관적으로 반론하면서 건설구원론을 체계화 하는 과정은 1950년대 중반에 벌써 나타 나기 시작하고 완전히 체계화를 한 것은 1960년 경 또는 그 직후로 보입니다.
>> 진리연구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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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영희목사님은 개혁주의 신학인 '타락전 선택설 - 타락후 선택설'을 배운다음에
: 더 연구하여 '목적구원'을 깨달은것입니까?
: 개혁주의 구원의 서정(소명 중생 칭의 회심 성화 견인 영화)을 배운다음에
: 더 연구하여 '기본구원 -건설구원-기능구원'을 깨달은것입니까?
:
: 백영희목사님의 교리는 정통개혁주의신학의 모든부분에 있어서 깊어지고 선명해졌는데
: 그것이 고려신학교에가서 정통신학을 배운후에 더 연구하여 깊어진것인지
: 아니면 정통신학을 배우지않고 정통신학보다 더 깊어진 교리를 깨달은것인지 궁금합니다.
:
: 백목사님 혼자 깨달음과 배워서 연구하여 깨달음이 어느정도 되는지알고싶습니다.
중요질문
백영희목사님은 개혁주의 신학인 '타락전 선택설 - 타락후 선택설'을 배운다음에
더 연구하여 '목적구원'을 깨달은것입니까?
개혁주의 구원의 서정(소명 중생 칭의 회심 성화 견인 영화)을 배운다음에
더 연구하여 '기본구원 -건설구원-기능구원'을 깨달은것입니까?
백영희목사님의 교리는 정통개혁주의신학의 모든부분에 있어서 깊어지고 선명해졌는데
그것이 고려신학교에가서 정통신학을 배운후에 더 연구하여 깊어진것인지
아니면 정통신학을 배우지않고 정통신학보다 더 깊어진 교리를 깨달은것인지 궁금합니다.
백목사님 혼자 깨달음과 배워서 연구하여 깨달음이 어느정도 되는지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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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목사님은 개혁주의 신학인 '타락전 선택설 - 타락후 선택설'을 배운다음에
더 연구하여 '목적구원'을 깨달은것입니까?
개혁주의 구원의 서정(소명 중생 칭의 회심 성화 견인 영화)을 배운다음에
더 연구하여 '기본구원 -건설구원-기능구원'을 깨달은것입니까?
백영희목사님의 교리는 정통개혁주의신학의 모든부분에 있어서 깊어지고 선명해졌는데
그것이 고려신학교에가서 정통신학을 배운후에 더 연구하여 깊어진것인지
아니면 정통신학을 배우지않고 정통신학보다 더 깊어진 교리를 깨달은것인지 궁금합니다.
백목사님 혼자 깨달음과 배워서 연구하여 깨달음이 어느정도 되는지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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