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의 일반신학에 대한 부정적 경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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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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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3 00:00
목사님 홈페이지글을 읽다가 발견한 글입니다.
제가 이 글을 읽으면서 느낀점은 2000년 일반정통기독교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굳이 이 글을 올린 이유는, 이글 뿐만 아니라 총공회에서는 일반교단에
대해서 이런 느낌이 알게모르게 있는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아랫글 1번에 `일반신학에서 믿고 난 후의 의롭게 삶은 무의미합니다.`
라는 글이 있습니다.저는 일반신학과 여기 홈페이지를 통해서 총공회신학을 둘다 공부했는데,일반신학을 보고 성화의 삶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굉장히 위험한 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건설구원을 몰라도 성화를 이루기 위해 생명걸고 달려간 분들이 2000년 기독교사에
또 현재의 한국교회에 세계교회에 많다고 생각을 합니다.
총공회의 건설구원교리를 모르고 성화를 열심히 이루어 가면 잘못된 것입니까?
총공회의 건설구원교리를 모르고 성화를 이루어 가면 잘못된것입니까?
총공회의 건설구원교리를 몰라도 `나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예수님의
닮아가는 삶을 추구하는 것은 건설구원을 몰라도 우리안에 성령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정신이 바로잡힌 성도라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당연히 그 사람에게 원하시는 삶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총공회의 건설구원을 몰라도 하나님의 구원받은 사랑이 너무커서 성화를 이루어 간다면 총공회의 건설구원을 알고 성화를 이루어가는
사람보다 더 기뻐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칼빈주의교리가 총공회신학보다 깊지는 못해도, 그 신학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성화를 이루어 가는 성도들이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것인데, 아랫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좋지가 않습니다.
목사님의 답변을 듣고싶습니다.
한번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그리고
1.일반신학에서의 믿고 난 후의 의롭게 삶은 무의미입니다.
본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부정하지만, 그냥 들어보면 결국 그 부정이 사실은 긍정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가 구원받는 것이 목적이고, 그 목적이 이루어진 이상 더 이상의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근래에 점진적인 구원이라 또는 연속적 중생이라는 말로 믿은 이후를 설명하려고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근간이 구원받는 것으로 끝났다는 것을 조금 얼버무리는 정도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단지 성화에 대해서 조금씩이나마 의식을 했다는 정도에서 만족할 정도입니다.
만약 구원 받은 자가 크~~ㄴ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될까요?
님의 마지막 부분의 고민입니다.
만약에 성령을 훼방한다든지, 속인다든지, 예를 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등
일반신학에 정통한 분들의 답변은, 그는 애초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조금 달리 설명한다 해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점진적인 구원이든지, 연속적 중생이라든지 말을 하더라도 위의 애초에 구원받지 못했다는 설명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연속적 중생이라는 말은 겨우 성화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하려는 시도일 뿐 거기서 더 뻗어나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큰 죄를 지은 자는, 또는 성경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자들은 애초에 구원을 받지 못해서 멸망받았다는 말로 끝이 납니다.
이런 답변은 칼빈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볼수있는 한계입니다. 한번 구원받은 자는 결코 구원상실이 되지 않는다는 명제를 세우기 위해 나오는 주장입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단면입니다.
문제는 답변을 하는 본인은 결코,당연히,절대로 구원받은 자라는 점이 그 한계의 정점에 있습니다.
절대로 본인은 큰 죄를 짓지 않을 것이라는 단정이 내면에 들어 있습니다.
살인죄, 신사참배 같은 우상숭배 등등...
구원받은 자가 구원상실될만한 그런 큰 죄를 지을 리가 없기 때문이지요..
2.죄를 해결하셨다는 의미는,
죄로 인하여 죽은 나를 죄에서 건져 주님의 의를 입혀서 천국에 데려가심이지, 내가 지은 죄에 금을 발라서 천국에 전시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내가 만약 살인죄를 지었다면 님은 내가 지은 살인죄를 천국에 둘지, 지옥으로 보내야할지 한번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살인을 하든, 도둑질을 하든, 내가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짓는 순간에 내 노력과 열심과 정력과 힘이 들어갑니다.
이후에 다시 같은 죄를 지으면 처음 죄지을 때보다 더 연습이 되어서 능숙하게 짓습니다.
님은 이런 능숙한 솜씨를 천국에서 영광스럽게 전시를 해야할지, 아니면 지옥에 폐기처분해야할지 심판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죄를 지었던 나를 깨끗케 하시려면, 죄짓는 능숙을 버려야 깨끗이 될까요? 아니면 능숙을 가지고 있어야 깨끗한 자가 될까요?
어쨋거나,
나는 주님이 대속을 입혀주셔서 내가 회개를 하든 안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구원받은 자가 되었으니 반드시 천국에 가겠지요.
이미 구원받았으니 마음껏 죄를 짓는다면, 내 죄문제를 해결하시려고,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고, 또 나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기쁨으로 주님의 얼굴을 보실수있는지 한번쯤은 생각해 보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옥갈 자가 천국에 가게 되어 무조건 기쁘게 생각한다면 그 기뻐함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또 세상에 있을때 주님을 아주 기쁘시게 했다고 자랑스럽게 천국에 입성할 수있다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만,
과연 내 양심이 그렇게 될지 생각해 보심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님의 회개를 통해서 님의 죄가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도성인신, 십자가 대속으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님이 회개를 했다 안했다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진정한 회개의 의미는 입으로 시인하고 돌아서는 것에 있지 않고, 그 죄에 대한 주님의 수고와 인내, 그리고 그에 따른 나의 성찰 등이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3.굳이 구원을 둘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은,
지금 님 처럼 구원받은 자로서 죄문제와 회개문제,구원문제 등이 아리까리하게 헷갈리고 혼란스러움을 교통정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미 구원받는 시점이 있고, 그 이후가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분류해서 그 이후의 삶의 의미와 이유와 방법 등을 논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님은 구원받으셨나요?
이런 고민을 하시니 구원받으셨겠지요.. 기본구원을 이미 받은 자가 되었고, 일반신학이 가장 열심히 수고하는 전도의 목적에 다다랐습니다.
그러면 님은 앞으로 어떻게 사실것인가요? 구원받은 님의 입장을 어떻게 정리하실건가요?
이후는 건설구원을 두고 하실 고민입니다.
건설구원의 시작은 이미 받은 구원이후입니다.
그 마지막은 ..... 영원히 없습니다. 계속 ....ing입니다.
우리가 어쩌다보니 큰 자본가를 만났고(기본구원),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자본가로부터 자본을 마련하는 의미가 있고, 앞으로 천국에 가서는 그 자본으로 장사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건설구원).
4.저는 아직 백영희목사님의 설교에서만큼 예수님의 대속과 그 의의를 깊고 넓게 설명해주는 일반신학자나 일반교단 목회자를 만나본 일이 없습니다.
간판이 크고, 많은 책을 읽었다는 냄새가 나는 분들을 인터넷에서 만나기도 하고, 대화를 해보기도 했지만, 신학을 신앙인으로서 접했다는 생각이 드는 분은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마치 학창시절 교과서를 상대하던 생각이 아련히 떠오르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설교록을 읽으면 신앙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신앙을 정리해보면 신학이됩니다.
제가 이 글을 읽으면서 느낀점은 2000년 일반정통기독교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굳이 이 글을 올린 이유는, 이글 뿐만 아니라 총공회에서는 일반교단에
대해서 이런 느낌이 알게모르게 있는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아랫글 1번에 `일반신학에서 믿고 난 후의 의롭게 삶은 무의미합니다.`
라는 글이 있습니다.저는 일반신학과 여기 홈페이지를 통해서 총공회신학을 둘다 공부했는데,일반신학을 보고 성화의 삶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굉장히 위험한 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건설구원을 몰라도 성화를 이루기 위해 생명걸고 달려간 분들이 2000년 기독교사에
또 현재의 한국교회에 세계교회에 많다고 생각을 합니다.
총공회의 건설구원교리를 모르고 성화를 열심히 이루어 가면 잘못된 것입니까?
총공회의 건설구원교리를 모르고 성화를 이루어 가면 잘못된것입니까?
총공회의 건설구원교리를 몰라도 `나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예수님의
닮아가는 삶을 추구하는 것은 건설구원을 몰라도 우리안에 성령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정신이 바로잡힌 성도라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당연히 그 사람에게 원하시는 삶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총공회의 건설구원을 몰라도 하나님의 구원받은 사랑이 너무커서 성화를 이루어 간다면 총공회의 건설구원을 알고 성화를 이루어가는
사람보다 더 기뻐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칼빈주의교리가 총공회신학보다 깊지는 못해도, 그 신학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성화를 이루어 가는 성도들이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것인데, 아랫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좋지가 않습니다.
목사님의 답변을 듣고싶습니다.
한번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그리고
1.일반신학에서의 믿고 난 후의 의롭게 삶은 무의미입니다.
본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부정하지만, 그냥 들어보면 결국 그 부정이 사실은 긍정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가 구원받는 것이 목적이고, 그 목적이 이루어진 이상 더 이상의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근래에 점진적인 구원이라 또는 연속적 중생이라는 말로 믿은 이후를 설명하려고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근간이 구원받는 것으로 끝났다는 것을 조금 얼버무리는 정도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단지 성화에 대해서 조금씩이나마 의식을 했다는 정도에서 만족할 정도입니다.
만약 구원 받은 자가 크~~ㄴ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될까요?
님의 마지막 부분의 고민입니다.
만약에 성령을 훼방한다든지, 속인다든지, 예를 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등
일반신학에 정통한 분들의 답변은, 그는 애초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조금 달리 설명한다 해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점진적인 구원이든지, 연속적 중생이라든지 말을 하더라도 위의 애초에 구원받지 못했다는 설명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연속적 중생이라는 말은 겨우 성화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하려는 시도일 뿐 거기서 더 뻗어나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큰 죄를 지은 자는, 또는 성경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자들은 애초에 구원을 받지 못해서 멸망받았다는 말로 끝이 납니다.
이런 답변은 칼빈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볼수있는 한계입니다. 한번 구원받은 자는 결코 구원상실이 되지 않는다는 명제를 세우기 위해 나오는 주장입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단면입니다.
문제는 답변을 하는 본인은 결코,당연히,절대로 구원받은 자라는 점이 그 한계의 정점에 있습니다.
절대로 본인은 큰 죄를 짓지 않을 것이라는 단정이 내면에 들어 있습니다.
살인죄, 신사참배 같은 우상숭배 등등...
구원받은 자가 구원상실될만한 그런 큰 죄를 지을 리가 없기 때문이지요..
2.죄를 해결하셨다는 의미는,
죄로 인하여 죽은 나를 죄에서 건져 주님의 의를 입혀서 천국에 데려가심이지, 내가 지은 죄에 금을 발라서 천국에 전시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내가 만약 살인죄를 지었다면 님은 내가 지은 살인죄를 천국에 둘지, 지옥으로 보내야할지 한번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살인을 하든, 도둑질을 하든, 내가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짓는 순간에 내 노력과 열심과 정력과 힘이 들어갑니다.
이후에 다시 같은 죄를 지으면 처음 죄지을 때보다 더 연습이 되어서 능숙하게 짓습니다.
님은 이런 능숙한 솜씨를 천국에서 영광스럽게 전시를 해야할지, 아니면 지옥에 폐기처분해야할지 심판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죄를 지었던 나를 깨끗케 하시려면, 죄짓는 능숙을 버려야 깨끗이 될까요? 아니면 능숙을 가지고 있어야 깨끗한 자가 될까요?
어쨋거나,
나는 주님이 대속을 입혀주셔서 내가 회개를 하든 안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구원받은 자가 되었으니 반드시 천국에 가겠지요.
이미 구원받았으니 마음껏 죄를 짓는다면, 내 죄문제를 해결하시려고,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고, 또 나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기쁨으로 주님의 얼굴을 보실수있는지 한번쯤은 생각해 보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옥갈 자가 천국에 가게 되어 무조건 기쁘게 생각한다면 그 기뻐함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또 세상에 있을때 주님을 아주 기쁘시게 했다고 자랑스럽게 천국에 입성할 수있다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만,
과연 내 양심이 그렇게 될지 생각해 보심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님의 회개를 통해서 님의 죄가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도성인신, 십자가 대속으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님이 회개를 했다 안했다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진정한 회개의 의미는 입으로 시인하고 돌아서는 것에 있지 않고, 그 죄에 대한 주님의 수고와 인내, 그리고 그에 따른 나의 성찰 등이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3.굳이 구원을 둘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은,
지금 님 처럼 구원받은 자로서 죄문제와 회개문제,구원문제 등이 아리까리하게 헷갈리고 혼란스러움을 교통정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미 구원받는 시점이 있고, 그 이후가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분류해서 그 이후의 삶의 의미와 이유와 방법 등을 논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님은 구원받으셨나요?
이런 고민을 하시니 구원받으셨겠지요.. 기본구원을 이미 받은 자가 되었고, 일반신학이 가장 열심히 수고하는 전도의 목적에 다다랐습니다.
그러면 님은 앞으로 어떻게 사실것인가요? 구원받은 님의 입장을 어떻게 정리하실건가요?
이후는 건설구원을 두고 하실 고민입니다.
건설구원의 시작은 이미 받은 구원이후입니다.
그 마지막은 ..... 영원히 없습니다. 계속 ....ing입니다.
우리가 어쩌다보니 큰 자본가를 만났고(기본구원),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자본가로부터 자본을 마련하는 의미가 있고, 앞으로 천국에 가서는 그 자본으로 장사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건설구원).
4.저는 아직 백영희목사님의 설교에서만큼 예수님의 대속과 그 의의를 깊고 넓게 설명해주는 일반신학자나 일반교단 목회자를 만나본 일이 없습니다.
간판이 크고, 많은 책을 읽었다는 냄새가 나는 분들을 인터넷에서 만나기도 하고, 대화를 해보기도 했지만, 신학을 신앙인으로서 접했다는 생각이 드는 분은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마치 학창시절 교과서를 상대하던 생각이 아련히 떠오르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설교록을 읽으면 신앙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신앙을 정리해보면 신학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