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선의 뿌리는 개혁신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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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의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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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5 00:00
넓은 노선과 좁은 노선, 아브라함 신앙과 롯의 신앙, 성전 밖 마당과 성전 안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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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 질문에 대한 본질적으로 생각한다면,
본질적 의문에 대한 생각은 심사숙고하게 되고 솔직성이 일어나는 것이 그 경향이고 진실성과 고백성이 곁들여지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공회 노선은 솔직하게 표현하면 같은 기독교 중에서도 특별히 더 선별된 노선이라고 저는 사견적으로 말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외람되지 않도록 교만하지 않도록 범위를 잡아 정제된 어휘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노선이 있는데 다 같이 두노선이 선택한 백성이지만 롯은 인본주의요 아브람함은 신본주의 입니다. 두 노선 모두 동일하게 하나님을 섬겼지만 세상 복도 두 노선 다 같이 받아 살았지만 두 노선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다르고 그 기준이 다르고 그 인정이 달랐습니다. 구약 성전의 구조를 보면 성전 밖 마당이 있는 가 하면 성전 안이 있습니다. 성전 밖 마당도 성전이지마는 성전 안은 밖 바당과는 구별되었습니다.
오늘날 택한 백성은 위와 같이 두 노선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총공회에서나 일반교계에서나 이 두 노선은 개인적으로 단체적으로 나누어 질수 있을 것이나 개별적으로는 다 그렇다고 말하기 곤란하다고 보지만 교단 단체적으로보면 우리 총공회가 어느 노선에 속하는 것인지를 우리 공회 신자라면 쉽게 드러내지는 않해도 그 중심에는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 구조 속에서 일반 교계를 별로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일반 신학교를 배척시하는 경향이 일게 모르게 은연중에라도 사고 구조의 저변에 깔려 있다고 보면 그리 틀리게 본 것은 아닐 것입니다. 즉 우월감 속에서 배타감이 나오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보면 교만이 되기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당위적(Sollen)으로는 그렇게 생각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존재적(Sein)으로는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공회가 유별나게 행동한 것도 실은 없습니다. 단지 지금 보다 속화 되지 않은 예컨대 일제시대나 50, 60년대의 한국 교계의 당시 일반적 패턴을 버리지 아니하고 밟고자는 하는 것이고 일반교계은 당시 패턴을 버리고 변질되고 속화되고 세상화 되는 노선을 걸으면서 오히려 이제는 두 노선이 너무 차이가 벌어지니 우리 공회에 대해 외부에서는 이상한 시각이 있는 것 같아요. 당시 어느 목사가 주일설교강단에 급히 서기 위해 차를 타고 왔다면 그런 경우는 강단에 주일을 범했다고 해서 설교를 할 수 없었고 이런 경향은 당시 한국교계에서 당연시 되었는바 이제는 주일날 사법고시를 안 본다면 이상한 기독신자로 보는 것입니다. 이는 속화된 현상입니다. 물론 개별적으로는 주일날 사법고시 시험을 보는 것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것은 일반 교계의 신자였다는 점에서 본다면 저의 사견은 위의 당위적 견해입니다.
악의 정의를 일반적으로 하지 않고 우리 공회 방식대로 한다면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자기중심이라면 악이라고 봅니다. 일반교계는 아무리 교게를 부흥시키고 해도 자기중심이 대부분이고 우리 공회는 초라하고 적게 해도 자기중심을 배격하고 자기는 어떻게 되었든지간에 는 하나님 중심, 곧 선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악(:자기중심)과 선(:하나님 중심)은 노선의 두기지 흐름이리고 볼 때에 우리 공회는 악을 버리고 선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이런 사고 구조 속으로 부터 일반 교계를 잘 인정하지 아니하고 배타시 하려는 태도가 우리 공회 노선에서 심리 저변에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 예를 들면 어느 기독교 대학으로 유명한 대학에서 교수 채용을 하는데 교수에 채용되면 그 학교 교회를 다녀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고 해요. 물론 그 학교 교단도 보수적이고 건전한 데입니다. 그럼에도 어느 사람이 교수 채용이 거의 긍정적으로 예측되는 마당에서 채용 지원을 거절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일 까요. 그 총공회 신자 마음 속에는 평소에 일반 교단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속 마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어요. 이런 사실을 보고서는 일반 교인들은 다 들 정신 나갔다고 해요. 요새 교수 채용이 하늘에 별 따기 처럼 어렵고 교수 직업이 사회의 하이 클래스의 직업이지만 자기가 속해 있는 공회 노선은 일반 교계와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고에서 부터 그 교수채용을 거절한 동기가 나왔을 것이고 아무리 교수 채용이 사정상 급해도 노선 까지 바꾸어 가면서는 지원을 못하겠다는 동기가 있었다고 해요.
칼빈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고목에서 새순이 돋아나듯이 우리 노선의 깨달음이 이 새순과 같다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지요. 새순은 고목에서 피어나는 것이지 고목이 없이는 새순이 돋아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걷는 노선은 별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 일반 교계보다 덜 속화 되었고 이전 4,50~60년대 신앙 패턴을 버리지 아니하고 쫓고자 하며 굳이 비교하자면 과거 역사에서 순수했던 미국 청교도 신앙이나 영국 정통 신앙과 흡사하며 일반 교단이 넓은 길이라면 우리 교단은 당위적으로 또 부분 존재적으로 좁은 길을 추구하며 자기중심(:악) 보다는 주님 중심(:선)을 추구하며 롯의 노선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노선을 따르며, 성전 밖 마당이 아니라 성전 안이라고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노선의 사고 방식은 우리 공회 소속 교역자 뿐만 아니라 거의 많은 공회 신자의 심리 구조 속에 자리잡고 있어서 일반 교계를 대할 때에 알게 모르게 은연중에 말이나 비판과 평가에서나 행동 태도에서나 배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알반 교계를 배타시 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요즘 일반 신학에 대해 비판적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일반 교계를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다들 존경하는 한국의 유명 목사를 존경하지 않는다거나, 일반 교계 신자를 만나면 기름에 모래알 처럼 동화 되지 못한다거나 우리 공회 복음을 우월시하고 일반 교계의 설교를 다들 유명하다고 하는 데 좋은 것으로 평가하는데 인색하는 등의 태도로 나타날 수가 있는 데 이는 속 마음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면 어쩔수 없고 불가피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꼭 그럴라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닌데 사실이 그런데 안 그렇다고 표현하는 것도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부득히 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 공회의 평소 태도를 보고서 자기들만 옳다고 한다고 교만하네, 이단이네 비판하는 오도된 시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각에 대해서는 웃어 넘길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무릇 의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 무리들은 핍박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면서 위안하면서 일반 교단이 아직 깨닫지 못해서 그렇다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요. 어떻게 보면 우리 공회 노선의 이런 타 교단 타 신학 불인정 태도나 배척 시 경향은 감출래야 감출수 없는 자연적 현상이지 오히려 그렇지 아니하면 외식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진영을 알기 쉽게 굳이 표현하지면 손양원, 주기철, 주남선 등의 선배 종들의 노선의 맥을 이으며 세계적으로는 영국 웨스트민스터 신앙노선과 미국 청교도 신앙과 인물로는 스펄전, 무디, 썬디싱 등의 신앙을 추구하며 초기 기독교의 순수한 신앙 노선과 함께 하며 오늘날 속화 되고 자기 중심적인 노선를 배격하고 순수한 신앙을 추구한다고나 할 까요. 한마디로 알기 쉽게 표현한다고 하면 오늘날 한국 땅에서 우리 공회 노선은 기독교 본고장들인 영국이나 미국의 청교도 신앙과 흡사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이런 기본적 사고로부터 오늘날 한국 교계의 인정에 인색하지 않을 수 없으며 교류를 거부하고 배척하고 자기 긍지를 갖는 것은 오히려 진실한 태도이며 화합하자고 또 타협하자고 또 인본적 세상적 사랑으로 하자면 우리 공회 노선이 일반 교계와 동화되며 저들을 따라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또 우리는 소수이고 일반 교계를 다수이니 합하면 다 한 통속이 되어 순수성을 잃게 되니 그럴려고 그런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배척하는 것이지요.
>> 일반-공회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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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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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ilee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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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공회는 거의 모든 타 교단이 없애 버린 과거 모습을 최선을 다해 지키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공회가 말하는 일반 교회의 과거 모습입니다. 꼭 고쳐야 할 부분이 아니라면, 고쳐서 크게 유익이 없다면, 엄청 난 손해를 감수하면서 일반 교회 스스로 다 버린 일반 교회의 이전 모습을 고집스레 우직스레 고수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반교회가 사용하다가 버린 '조사(전도사)' '전도회(선교회)' '반사(교사)' 같은 부스러기까지 싹싹 쓸어 담고 그 것을 유품 전시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 :
: : 일반 신학, 일반 교회, 역사 전통에 대해 이 노선이 가차 없이 내 버리듯 표현하는 경우는 주일학교를 일반 세상 학교 그대로 운영하는 것이나, 지킬 수도 없고 지키게 되면 대단히 문제가 대량 발생하는 교회 헌법, 또한 교리 중에서는 건설구원이라는 성화 분야의 한 걸음 등에 대한 일부 사안에 국한 됩니다. 교리 표현조차 일반 신학이 급속도로 바꾸는 것을 우리는 선배들의 당시 깨달음을 존중하고 감사하는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대단히 존중하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의 깨달음이 발전 된 부분이 있다면 그 것은 우리 깨달음이 나타 나기 전에 땅 밑에서 뿌리와 같이 수고한 역사 세계의 정통 교회들의 전통임을 늘 반복하고 있습니다.
: :
: : 이런 상황이므로 윗 글 질문자께서 인용하신 글은 공회에서 흔하게 접하는 글임에는 틀림ㄱ이 없고 실제 그런 언행과 자세를 아주 평범하게 들으셨을 것이라고 인정합니다만,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런 글들이 바로 적혀 졌다면 그 글의 앞 뒤를 좀 자세히 살핀다면 어느 한 부분에서 어느 한 면을 두고 '정통의 전통은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극단적 우파 주장을 순화 시키는 방법으로 그 반대를 강하게 외침으로 적절한 선에 세우고자 함이거나, 아니면 교인들 중에서 이 노선의 전체면을 모르고 섣부르게 소리를 높이는 분들의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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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다시피, 정통 장로교의 경우 '칼빈의 말씀'이 성경보다 우위에 있고 이단의 정죄도 칼빈의 언급이 기준이지 성경이 아닌 경우를 흔하게 봅니다. 이런 분들이 성화 구원의 토대가 5백 년 전에 잘 마련 되었기 때문에 백영희 신학이 그 터 위에 마음껏 꽃을 피우게 되었다고 하면 좋겠는데, 실제 그렇게 된 이 교훈의 건설구원을 두고 칼빈이 말한 곳까지만 가고 칼빈이 말하지 않은 부분은 더 이상 나가면 안 된다는 인식으로 이 교훈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데 서슴치 않았던 것이 한국 내 칼빈주의 또는 정통 장로교회들의 현장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을 상대로 오랜 세월을 대화해 온 것이 이 노선의 일반 상황입니다. 그런 과거를 모르는 분들이 이 홈을 방문하고 최근에 평범하게 이 노선을 알게 되었다면 이 노선의 과거 현장 상황 때문에 생긴 이질감입니다.
: :
: : 예를 들면 90세의 독립투사가 '왜놈, 이 놈들을 다 몰아내야 한다!'고 소리를 낸다면 옆에 국제금융학을 공부하는 20대는 '할아버지, 우리가 일본 자금 가지고 오늘 먹고 살아요. 일본인은 국제사회가 정직과 준법을 높이 사고 한국은 이런 면에서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해요'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 대화가 1940년대와 2000년대의 시점 때문에 생긴 것인 줄 안다면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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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 질문에 대한 본질적으로 생각한다면,
본질적 의문에 대한 생각은 심사숙고하게 되고 솔직성이 일어나는 것이 그 경향이고 진실성과 고백성이 곁들여지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공회 노선은 솔직하게 표현하면 같은 기독교 중에서도 특별히 더 선별된 노선이라고 저는 사견적으로 말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외람되지 않도록 교만하지 않도록 범위를 잡아 정제된 어휘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노선이 있는데 다 같이 두노선이 선택한 백성이지만 롯은 인본주의요 아브람함은 신본주의 입니다. 두 노선 모두 동일하게 하나님을 섬겼지만 세상 복도 두 노선 다 같이 받아 살았지만 두 노선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다르고 그 기준이 다르고 그 인정이 달랐습니다. 구약 성전의 구조를 보면 성전 밖 마당이 있는 가 하면 성전 안이 있습니다. 성전 밖 마당도 성전이지마는 성전 안은 밖 바당과는 구별되었습니다.
오늘날 택한 백성은 위와 같이 두 노선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총공회에서나 일반교계에서나 이 두 노선은 개인적으로 단체적으로 나누어 질수 있을 것이나 개별적으로는 다 그렇다고 말하기 곤란하다고 보지만 교단 단체적으로보면 우리 총공회가 어느 노선에 속하는 것인지를 우리 공회 신자라면 쉽게 드러내지는 않해도 그 중심에는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 구조 속에서 일반 교계를 별로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일반 신학교를 배척시하는 경향이 일게 모르게 은연중에라도 사고 구조의 저변에 깔려 있다고 보면 그리 틀리게 본 것은 아닐 것입니다. 즉 우월감 속에서 배타감이 나오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보면 교만이 되기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당위적(Sollen)으로는 그렇게 생각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존재적(Sein)으로는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공회가 유별나게 행동한 것도 실은 없습니다. 단지 지금 보다 속화 되지 않은 예컨대 일제시대나 50, 60년대의 한국 교계의 당시 일반적 패턴을 버리지 아니하고 밟고자는 하는 것이고 일반교계은 당시 패턴을 버리고 변질되고 속화되고 세상화 되는 노선을 걸으면서 오히려 이제는 두 노선이 너무 차이가 벌어지니 우리 공회에 대해 외부에서는 이상한 시각이 있는 것 같아요. 당시 어느 목사가 주일설교강단에 급히 서기 위해 차를 타고 왔다면 그런 경우는 강단에 주일을 범했다고 해서 설교를 할 수 없었고 이런 경향은 당시 한국교계에서 당연시 되었는바 이제는 주일날 사법고시를 안 본다면 이상한 기독신자로 보는 것입니다. 이는 속화된 현상입니다. 물론 개별적으로는 주일날 사법고시 시험을 보는 것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것은 일반 교계의 신자였다는 점에서 본다면 저의 사견은 위의 당위적 견해입니다.
악의 정의를 일반적으로 하지 않고 우리 공회 방식대로 한다면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자기중심이라면 악이라고 봅니다. 일반교계는 아무리 교게를 부흥시키고 해도 자기중심이 대부분이고 우리 공회는 초라하고 적게 해도 자기중심을 배격하고 자기는 어떻게 되었든지간에 는 하나님 중심, 곧 선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악(:자기중심)과 선(:하나님 중심)은 노선의 두기지 흐름이리고 볼 때에 우리 공회는 악을 버리고 선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이런 사고 구조 속으로 부터 일반 교계를 잘 인정하지 아니하고 배타시 하려는 태도가 우리 공회 노선에서 심리 저변에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 예를 들면 어느 기독교 대학으로 유명한 대학에서 교수 채용을 하는데 교수에 채용되면 그 학교 교회를 다녀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고 해요. 물론 그 학교 교단도 보수적이고 건전한 데입니다. 그럼에도 어느 사람이 교수 채용이 거의 긍정적으로 예측되는 마당에서 채용 지원을 거절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일 까요. 그 총공회 신자 마음 속에는 평소에 일반 교단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속 마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어요. 이런 사실을 보고서는 일반 교인들은 다 들 정신 나갔다고 해요. 요새 교수 채용이 하늘에 별 따기 처럼 어렵고 교수 직업이 사회의 하이 클래스의 직업이지만 자기가 속해 있는 공회 노선은 일반 교계와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고에서 부터 그 교수채용을 거절한 동기가 나왔을 것이고 아무리 교수 채용이 사정상 급해도 노선 까지 바꾸어 가면서는 지원을 못하겠다는 동기가 있었다고 해요.
칼빈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고목에서 새순이 돋아나듯이 우리 노선의 깨달음이 이 새순과 같다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지요. 새순은 고목에서 피어나는 것이지 고목이 없이는 새순이 돋아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걷는 노선은 별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 일반 교계보다 덜 속화 되었고 이전 4,50~60년대 신앙 패턴을 버리지 아니하고 쫓고자 하며 굳이 비교하자면 과거 역사에서 순수했던 미국 청교도 신앙이나 영국 정통 신앙과 흡사하며 일반 교단이 넓은 길이라면 우리 교단은 당위적으로 또 부분 존재적으로 좁은 길을 추구하며 자기중심(:악) 보다는 주님 중심(:선)을 추구하며 롯의 노선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노선을 따르며, 성전 밖 마당이 아니라 성전 안이라고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노선의 사고 방식은 우리 공회 소속 교역자 뿐만 아니라 거의 많은 공회 신자의 심리 구조 속에 자리잡고 있어서 일반 교계를 대할 때에 알게 모르게 은연중에 말이나 비판과 평가에서나 행동 태도에서나 배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알반 교계를 배타시 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요즘 일반 신학에 대해 비판적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일반 교계를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다들 존경하는 한국의 유명 목사를 존경하지 않는다거나, 일반 교계 신자를 만나면 기름에 모래알 처럼 동화 되지 못한다거나 우리 공회 복음을 우월시하고 일반 교계의 설교를 다들 유명하다고 하는 데 좋은 것으로 평가하는데 인색하는 등의 태도로 나타날 수가 있는 데 이는 속 마음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면 어쩔수 없고 불가피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꼭 그럴라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닌데 사실이 그런데 안 그렇다고 표현하는 것도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부득히 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 공회의 평소 태도를 보고서 자기들만 옳다고 한다고 교만하네, 이단이네 비판하는 오도된 시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각에 대해서는 웃어 넘길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무릇 의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 무리들은 핍박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면서 위안하면서 일반 교단이 아직 깨닫지 못해서 그렇다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요. 어떻게 보면 우리 공회 노선의 이런 타 교단 타 신학 불인정 태도나 배척 시 경향은 감출래야 감출수 없는 자연적 현상이지 오히려 그렇지 아니하면 외식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진영을 알기 쉽게 굳이 표현하지면 손양원, 주기철, 주남선 등의 선배 종들의 노선의 맥을 이으며 세계적으로는 영국 웨스트민스터 신앙노선과 미국 청교도 신앙과 인물로는 스펄전, 무디, 썬디싱 등의 신앙을 추구하며 초기 기독교의 순수한 신앙 노선과 함께 하며 오늘날 속화 되고 자기 중심적인 노선를 배격하고 순수한 신앙을 추구한다고나 할 까요. 한마디로 알기 쉽게 표현한다고 하면 오늘날 한국 땅에서 우리 공회 노선은 기독교 본고장들인 영국이나 미국의 청교도 신앙과 흡사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이런 기본적 사고로부터 오늘날 한국 교계의 인정에 인색하지 않을 수 없으며 교류를 거부하고 배척하고 자기 긍지를 갖는 것은 오히려 진실한 태도이며 화합하자고 또 타협하자고 또 인본적 세상적 사랑으로 하자면 우리 공회 노선이 일반 교계와 동화되며 저들을 따라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또 우리는 소수이고 일반 교계를 다수이니 합하면 다 한 통속이 되어 순수성을 잃게 되니 그럴려고 그런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배척하는 것이지요.
>> 일반-공회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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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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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공회는 거의 모든 타 교단이 없애 버린 과거 모습을 최선을 다해 지키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공회가 말하는 일반 교회의 과거 모습입니다. 꼭 고쳐야 할 부분이 아니라면, 고쳐서 크게 유익이 없다면, 엄청 난 손해를 감수하면서 일반 교회 스스로 다 버린 일반 교회의 이전 모습을 고집스레 우직스레 고수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반교회가 사용하다가 버린 '조사(전도사)' '전도회(선교회)' '반사(교사)' 같은 부스러기까지 싹싹 쓸어 담고 그 것을 유품 전시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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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 신학, 일반 교회, 역사 전통에 대해 이 노선이 가차 없이 내 버리듯 표현하는 경우는 주일학교를 일반 세상 학교 그대로 운영하는 것이나, 지킬 수도 없고 지키게 되면 대단히 문제가 대량 발생하는 교회 헌법, 또한 교리 중에서는 건설구원이라는 성화 분야의 한 걸음 등에 대한 일부 사안에 국한 됩니다. 교리 표현조차 일반 신학이 급속도로 바꾸는 것을 우리는 선배들의 당시 깨달음을 존중하고 감사하는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대단히 존중하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의 깨달음이 발전 된 부분이 있다면 그 것은 우리 깨달음이 나타 나기 전에 땅 밑에서 뿌리와 같이 수고한 역사 세계의 정통 교회들의 전통임을 늘 반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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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상황이므로 윗 글 질문자께서 인용하신 글은 공회에서 흔하게 접하는 글임에는 틀림ㄱ이 없고 실제 그런 언행과 자세를 아주 평범하게 들으셨을 것이라고 인정합니다만,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런 글들이 바로 적혀 졌다면 그 글의 앞 뒤를 좀 자세히 살핀다면 어느 한 부분에서 어느 한 면을 두고 '정통의 전통은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극단적 우파 주장을 순화 시키는 방법으로 그 반대를 강하게 외침으로 적절한 선에 세우고자 함이거나, 아니면 교인들 중에서 이 노선의 전체면을 모르고 섣부르게 소리를 높이는 분들의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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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다시피, 정통 장로교의 경우 '칼빈의 말씀'이 성경보다 우위에 있고 이단의 정죄도 칼빈의 언급이 기준이지 성경이 아닌 경우를 흔하게 봅니다. 이런 분들이 성화 구원의 토대가 5백 년 전에 잘 마련 되었기 때문에 백영희 신학이 그 터 위에 마음껏 꽃을 피우게 되었다고 하면 좋겠는데, 실제 그렇게 된 이 교훈의 건설구원을 두고 칼빈이 말한 곳까지만 가고 칼빈이 말하지 않은 부분은 더 이상 나가면 안 된다는 인식으로 이 교훈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데 서슴치 않았던 것이 한국 내 칼빈주의 또는 정통 장로교회들의 현장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을 상대로 오랜 세월을 대화해 온 것이 이 노선의 일반 상황입니다. 그런 과거를 모르는 분들이 이 홈을 방문하고 최근에 평범하게 이 노선을 알게 되었다면 이 노선의 과거 현장 상황 때문에 생긴 이질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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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를 들면 90세의 독립투사가 '왜놈, 이 놈들을 다 몰아내야 한다!'고 소리를 낸다면 옆에 국제금융학을 공부하는 20대는 '할아버지, 우리가 일본 자금 가지고 오늘 먹고 살아요. 일본인은 국제사회가 정직과 준법을 높이 사고 한국은 이런 면에서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해요'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이 대화가 1940년대와 2000년대의 시점 때문에 생긴 것인 줄 안다면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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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공회의 일반신학에 대한 부정적 경향성..
목사님 홈페이지글을 읽다가 발견한 글입니다.
제가 이 글을 읽으면서 느낀점은 2000년 일반정통기독교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굳이 이 글을 올린 이유는, 이글 뿐만 아니라 총공회에서는 일반교단에
대해서 이런 느낌이 알게모르게 있는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아랫글 1번에 `일반신학에서 믿고 난 후의 의롭게 삶은 무의미합니다.`
라는 글이 있습니다.저는 일반신학과 여기 홈페이지를 통해서 총공회신학을 둘다 공부했는데,일반신학을 보고 성화의 삶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굉장히 위험한 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건설구원을 몰라도 성화를 이루기 위해 생명걸고 달려간 분들이 2000년 기독교사에
또 현재의 한국교회에 세계교회에 많다고 생각을 합니다.
총공회의 건설구원교리를 모르고 성화를 열심히 이루어 가면 잘못된 것입니까?
총공회의 건설구원교리를 모르고 성화를 이루어 가면 잘못된것입니까?
총공회의 건설구원교리를 몰라도 `나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예수님의
닮아가는 삶을 추구하는 것은 건설구원을 몰라도 우리안에 성령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정신이 바로잡힌 성도라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당연히 그 사람에게 원하시는 삶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총공회의 건설구원을 몰라도 하나님의 구원받은 사랑이 너무커서 성화를 이루어 간다면 총공회의 건설구원을 알고 성화를 이루어가는
사람보다 더 기뻐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칼빈주의교리가 총공회신학보다 깊지는 못해도, 그 신학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성화를 이루어 가는 성도들이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것인데, 아랫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좋지가 않습니다.
목사님의 답변을 듣고싶습니다.
한번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그리고
1.일반신학에서의 믿고 난 후의 의롭게 삶은 무의미입니다.
본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부정하지만, 그냥 들어보면 결국 그 부정이 사실은 긍정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가 구원받는 것이 목적이고, 그 목적이 이루어진 이상 더 이상의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근래에 점진적인 구원이라 또는 연속적 중생이라는 말로 믿은 이후를 설명하려고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근간이 구원받는 것으로 끝났다는 것을 조금 얼버무리는 정도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단지 성화에 대해서 조금씩이나마 의식을 했다는 정도에서 만족할 정도입니다.
만약 구원 받은 자가 크~~ㄴ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될까요?
님의 마지막 부분의 고민입니다.
만약에 성령을 훼방한다든지, 속인다든지, 예를 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등
일반신학에 정통한 분들의 답변은, 그는 애초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조금 달리 설명한다 해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점진적인 구원이든지, 연속적 중생이라든지 말을 하더라도 위의 애초에 구원받지 못했다는 설명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연속적 중생이라는 말은 겨우 성화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하려는 시도일 뿐 거기서 더 뻗어나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큰 죄를 지은 자는, 또는 성경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자들은 애초에 구원을 받지 못해서 멸망받았다는 말로 끝이 납니다.
이런 답변은 칼빈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볼수있는 한계입니다. 한번 구원받은 자는 결코 구원상실이 되지 않는다는 명제를 세우기 위해 나오는 주장입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단면입니다.
문제는 답변을 하는 본인은 결코,당연히,절대로 구원받은 자라는 점이 그 한계의 정점에 있습니다.
절대로 본인은 큰 죄를 짓지 않을 것이라는 단정이 내면에 들어 있습니다.
살인죄, 신사참배 같은 우상숭배 등등...
구원받은 자가 구원상실될만한 그런 큰 죄를 지을 리가 없기 때문이지요..
2.죄를 해결하셨다는 의미는,
죄로 인하여 죽은 나를 죄에서 건져 주님의 의를 입혀서 천국에 데려가심이지, 내가 지은 죄에 금을 발라서 천국에 전시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내가 만약 살인죄를 지었다면 님은 내가 지은 살인죄를 천국에 둘지, 지옥으로 보내야할지 한번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살인을 하든, 도둑질을 하든, 내가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짓는 순간에 내 노력과 열심과 정력과 힘이 들어갑니다.
이후에 다시 같은 죄를 지으면 처음 죄지을 때보다 더 연습이 되어서 능숙하게 짓습니다.
님은 이런 능숙한 솜씨를 천국에서 영광스럽게 전시를 해야할지, 아니면 지옥에 폐기처분해야할지 심판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죄를 지었던 나를 깨끗케 하시려면, 죄짓는 능숙을 버려야 깨끗이 될까요? 아니면 능숙을 가지고 있어야 깨끗한 자가 될까요?
어쨋거나,
나는 주님이 대속을 입혀주셔서 내가 회개를 하든 안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구원받은 자가 되었으니 반드시 천국에 가겠지요.
이미 구원받았으니 마음껏 죄를 짓는다면, 내 죄문제를 해결하시려고,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고, 또 나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기쁨으로 주님의 얼굴을 보실수있는지 한번쯤은 생각해 보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옥갈 자가 천국에 가게 되어 무조건 기쁘게 생각한다면 그 기뻐함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또 세상에 있을때 주님을 아주 기쁘시게 했다고 자랑스럽게 천국에 입성할 수있다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만,
과연 내 양심이 그렇게 될지 생각해 보심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님의 회개를 통해서 님의 죄가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도성인신, 십자가 대속으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님이 회개를 했다 안했다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진정한 회개의 의미는 입으로 시인하고 돌아서는 것에 있지 않고, 그 죄에 대한 주님의 수고와 인내, 그리고 그에 따른 나의 성찰 등이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3.굳이 구원을 둘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은,
지금 님 처럼 구원받은 자로서 죄문제와 회개문제,구원문제 등이 아리까리하게 헷갈리고 혼란스러움을 교통정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미 구원받는 시점이 있고, 그 이후가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분류해서 그 이후의 삶의 의미와 이유와 방법 등을 논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님은 구원받으셨나요?
이런 고민을 하시니 구원받으셨겠지요.. 기본구원을 이미 받은 자가 되었고, 일반신학이 가장 열심히 수고하는 전도의 목적에 다다랐습니다.
그러면 님은 앞으로 어떻게 사실것인가요? 구원받은 님의 입장을 어떻게 정리하실건가요?
이후는 건설구원을 두고 하실 고민입니다.
건설구원의 시작은 이미 받은 구원이후입니다.
그 마지막은 ..... 영원히 없습니다. 계속 ....ing입니다.
우리가 어쩌다보니 큰 자본가를 만났고(기본구원),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자본가로부터 자본을 마련하는 의미가 있고, 앞으로 천국에 가서는 그 자본으로 장사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건설구원).
4.저는 아직 백영희목사님의 설교에서만큼 예수님의 대속과 그 의의를 깊고 넓게 설명해주는 일반신학자나 일반교단 목회자를 만나본 일이 없습니다.
간판이 크고, 많은 책을 읽었다는 냄새가 나는 분들을 인터넷에서 만나기도 하고, 대화를 해보기도 했지만, 신학을 신앙인으로서 접했다는 생각이 드는 분은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마치 학창시절 교과서를 상대하던 생각이 아련히 떠오르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설교록을 읽으면 신앙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신앙을 정리해보면 신학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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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홈페이지글을 읽다가 발견한 글입니다.
제가 이 글을 읽으면서 느낀점은 2000년 일반정통기독교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굳이 이 글을 올린 이유는, 이글 뿐만 아니라 총공회에서는 일반교단에
대해서 이런 느낌이 알게모르게 있는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아랫글 1번에 `일반신학에서 믿고 난 후의 의롭게 삶은 무의미합니다.`
라는 글이 있습니다.저는 일반신학과 여기 홈페이지를 통해서 총공회신학을 둘다 공부했는데,일반신학을 보고 성화의 삶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굉장히 위험한 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건설구원을 몰라도 성화를 이루기 위해 생명걸고 달려간 분들이 2000년 기독교사에
또 현재의 한국교회에 세계교회에 많다고 생각을 합니다.
총공회의 건설구원교리를 모르고 성화를 열심히 이루어 가면 잘못된 것입니까?
총공회의 건설구원교리를 모르고 성화를 이루어 가면 잘못된것입니까?
총공회의 건설구원교리를 몰라도 `나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예수님의
닮아가는 삶을 추구하는 것은 건설구원을 몰라도 우리안에 성령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정신이 바로잡힌 성도라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당연히 그 사람에게 원하시는 삶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총공회의 건설구원을 몰라도 하나님의 구원받은 사랑이 너무커서 성화를 이루어 간다면 총공회의 건설구원을 알고 성화를 이루어가는
사람보다 더 기뻐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칼빈주의교리가 총공회신학보다 깊지는 못해도, 그 신학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성화를 이루어 가는 성도들이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것인데, 아랫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좋지가 않습니다.
목사님의 답변을 듣고싶습니다.
한번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그리고
1.일반신학에서의 믿고 난 후의 의롭게 삶은 무의미입니다.
본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부정하지만, 그냥 들어보면 결국 그 부정이 사실은 긍정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가 구원받는 것이 목적이고, 그 목적이 이루어진 이상 더 이상의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근래에 점진적인 구원이라 또는 연속적 중생이라는 말로 믿은 이후를 설명하려고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근간이 구원받는 것으로 끝났다는 것을 조금 얼버무리는 정도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단지 성화에 대해서 조금씩이나마 의식을 했다는 정도에서 만족할 정도입니다.
만약 구원 받은 자가 크~~ㄴ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될까요?
님의 마지막 부분의 고민입니다.
만약에 성령을 훼방한다든지, 속인다든지, 예를 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등
일반신학에 정통한 분들의 답변은, 그는 애초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조금 달리 설명한다 해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점진적인 구원이든지, 연속적 중생이라든지 말을 하더라도 위의 애초에 구원받지 못했다는 설명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연속적 중생이라는 말은 겨우 성화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하려는 시도일 뿐 거기서 더 뻗어나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큰 죄를 지은 자는, 또는 성경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자들은 애초에 구원을 받지 못해서 멸망받았다는 말로 끝이 납니다.
이런 답변은 칼빈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볼수있는 한계입니다. 한번 구원받은 자는 결코 구원상실이 되지 않는다는 명제를 세우기 위해 나오는 주장입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단면입니다.
문제는 답변을 하는 본인은 결코,당연히,절대로 구원받은 자라는 점이 그 한계의 정점에 있습니다.
절대로 본인은 큰 죄를 짓지 않을 것이라는 단정이 내면에 들어 있습니다.
살인죄, 신사참배 같은 우상숭배 등등...
구원받은 자가 구원상실될만한 그런 큰 죄를 지을 리가 없기 때문이지요..
2.죄를 해결하셨다는 의미는,
죄로 인하여 죽은 나를 죄에서 건져 주님의 의를 입혀서 천국에 데려가심이지, 내가 지은 죄에 금을 발라서 천국에 전시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내가 만약 살인죄를 지었다면 님은 내가 지은 살인죄를 천국에 둘지, 지옥으로 보내야할지 한번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살인을 하든, 도둑질을 하든, 내가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짓는 순간에 내 노력과 열심과 정력과 힘이 들어갑니다.
이후에 다시 같은 죄를 지으면 처음 죄지을 때보다 더 연습이 되어서 능숙하게 짓습니다.
님은 이런 능숙한 솜씨를 천국에서 영광스럽게 전시를 해야할지, 아니면 지옥에 폐기처분해야할지 심판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죄를 지었던 나를 깨끗케 하시려면, 죄짓는 능숙을 버려야 깨끗이 될까요? 아니면 능숙을 가지고 있어야 깨끗한 자가 될까요?
어쨋거나,
나는 주님이 대속을 입혀주셔서 내가 회개를 하든 안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구원받은 자가 되었으니 반드시 천국에 가겠지요.
이미 구원받았으니 마음껏 죄를 짓는다면, 내 죄문제를 해결하시려고,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고, 또 나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기쁨으로 주님의 얼굴을 보실수있는지 한번쯤은 생각해 보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옥갈 자가 천국에 가게 되어 무조건 기쁘게 생각한다면 그 기뻐함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또 세상에 있을때 주님을 아주 기쁘시게 했다고 자랑스럽게 천국에 입성할 수있다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만,
과연 내 양심이 그렇게 될지 생각해 보심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님의 회개를 통해서 님의 죄가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도성인신, 십자가 대속으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님이 회개를 했다 안했다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진정한 회개의 의미는 입으로 시인하고 돌아서는 것에 있지 않고, 그 죄에 대한 주님의 수고와 인내, 그리고 그에 따른 나의 성찰 등이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3.굳이 구원을 둘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은,
지금 님 처럼 구원받은 자로서 죄문제와 회개문제,구원문제 등이 아리까리하게 헷갈리고 혼란스러움을 교통정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미 구원받는 시점이 있고, 그 이후가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분류해서 그 이후의 삶의 의미와 이유와 방법 등을 논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님은 구원받으셨나요?
이런 고민을 하시니 구원받으셨겠지요.. 기본구원을 이미 받은 자가 되었고, 일반신학이 가장 열심히 수고하는 전도의 목적에 다다랐습니다.
그러면 님은 앞으로 어떻게 사실것인가요? 구원받은 님의 입장을 어떻게 정리하실건가요?
이후는 건설구원을 두고 하실 고민입니다.
건설구원의 시작은 이미 받은 구원이후입니다.
그 마지막은 ..... 영원히 없습니다. 계속 ....ing입니다.
우리가 어쩌다보니 큰 자본가를 만났고(기본구원),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자본가로부터 자본을 마련하는 의미가 있고, 앞으로 천국에 가서는 그 자본으로 장사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건설구원).
4.저는 아직 백영희목사님의 설교에서만큼 예수님의 대속과 그 의의를 깊고 넓게 설명해주는 일반신학자나 일반교단 목회자를 만나본 일이 없습니다.
간판이 크고, 많은 책을 읽었다는 냄새가 나는 분들을 인터넷에서 만나기도 하고, 대화를 해보기도 했지만, 신학을 신앙인으로서 접했다는 생각이 드는 분은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마치 학창시절 교과서를 상대하던 생각이 아련히 떠오르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설교록을 읽으면 신앙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신앙을 정리해보면 신학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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