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혁교회의 발전 된 모습이 공회 2. 진정한 회심은 전적 은혜라는 가장 낮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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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혁교회의 발전 된 모습이 공회 2. 진정한 회심은 전적 은혜라는 가장 낮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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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해석의 다양화와 문제점


총공회의 성경 해석이 다양한 것은 5백 년 내려 오는 개혁주의 설교와 다른 점 때문이지 내부적으로 성경 해석이 다양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성경 해석은 개혁교 그리고 개혁교에 뿌리를 두고 자라 나온 이 노선에서는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 할 만큼 조심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일점일획'의 의미가 너무 무겁고 중대하여 여간 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 교회를 아는 분들의 공통 사항입니다. 질문은 아무래도 공회의 성경해석이 개혁주의라는 이름으로 내려 오는 신학에서 나타 나는 성경 해석과 다른 부분이 많은 것을 염려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중심으로 신앙 세계에서 다른 것을 조심하다 보면 천주교 교황주의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반대로 다른 것을 예사로 생각하다 보면 오늘 기독교의 온갖 어리러운 방종과 탈선 심지어 이단으로 치 닫는 결과가 나옵니다. 질문자의 지적은 이런 양 극단까지를 염두에 두지는 않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교회의 범주를 벗어 나지 않겠지만 교회의 혼란이 큰 폐단일 것으로 보셨다고 읽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안내를 드립니다.


성경 해석은 거의 대부분 교리라는 이름에서 문제가 됩니다. 교리 범위를 넘어 서지 않고 전체 성경과 조화를 이루는 해석이라 한다면 그 해석은 더 깊은 해석이 됩니다. 공회가 개혁주의라는 이름의 신학과 성경 해석을 두고 다르게 보이는 면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교리 차이에서 오는 것과 하나는 깊이 차이에서 오는 것입니다.


교리 차이에서 나타 나는 성구 해석은 개혁주의 신학이 5백 년 동안 칼빈의 교리에서 단 한 발짝도 전진하지 않고 무한 반복만 하고 있어 발전이 없었던 것을 공회가 잠자던 5백 년의 개혁주의에서 깨어 일어나 제대로 보고 걸어 왔기 때문에 잠든 5백 년 개혁주의와 다르게 보였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천주교 1천 년 시대를 깨뜨리는 것이 시대적 사명이었고 칼빈은 그의 교리 전체를 통해 그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5백 년 동안 우리 기독교는 천주교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 나서 이제 천주교 교리에 영향을 받을 염려가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금도 개혁교라는 '개혁'의 단어가 천주교로부터 개혁을 의미하고 이 것을 지켜 나오고 있는데 마치 오늘 대한민국 국군이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 일어 난 정유재란을 준비하듯 하여 너무 심각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 개혁교는 사실 거의 다 천주교화가 되었습니다. 이 것이 바로 개혁교의 오늘입니다. 개혁교의 1500년대 사명을 오늘 입에만 외치고 있고 그들의 발걸음은 천주교 깊은 곳을 향해 제2의 천주교가 된 정도입니다.


공회는 그 출발부터가 천주교와 대결이나 긴장 관계는 아예 옛날에 다 지나 간 일로 보며 개혁교 선배들이 천주교로부터 탈출 시킨 우리 교회를 어떻게 발전 시키고 바로 나가게 하느냐는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너무 당연히 한 발씩 떼어 몇 발자국을 앞으로 나갔으니 개혁교와 공회를 비교하면 마치 교파가 다른 것처럼 보이나 개혁교 뿌리에서 제대로 자라 발전을 조금이라도 한 곳이 바로 공회이며 이런 점에서 공회 설교는 마치 개혁교와 다른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들여다 보면 뿌리가 둥치가 되고 둥치가 잔 가지로 뻗어 나감으로 그 모습만 달라 보이는 것이지 실제로는 이어 지는 성장 과정의 끝 모습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교리 차이로 인해 생기는 성구 해석 차이와 함께 또 한 가지는 개혁교의 성구 해석이 교리만 가지고 볼 때는 차이가 없는 성구라 해도 그 깊이가 달라서 나타 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이는 과거 선배들의 성구 해석에서 우리 후배들은 그 넓게 깊고 무한한 성경을 제대로 읽다 보면 과거 선배들이 깨달은 것은 기본적으로 아는 것이고, 그리고 하나라도 더 깨닫는 것이 있으면 당연히 더 깊어 지는 것이니 깊어 짐으로 과거 것과 달라 보이는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이 공회에 집중적으로 많이 나타 나는 것은 공회는 기본적으로 '신학'의 본질 또는 그 내용을 아주 부정하다 시피 하는 시각 때문입니다. 개혁교는 기본적으로 지성과 학습과 학설을 중시합니다. 공회는 성경 하나에 모든 것을 다 걸고 있습니다. 칼빈이 성경이 말한 것만 말하고 성경이 가라 한 데까지만 간다는 말을 개혁교는 입으로만 외우지 실제로는 전혀 상관 없이 나가고 있는 정도지만 공회는 실제 그 깨달음을 감명 깊에 듣고 그대로 가고 있습니다. 개혁교 5백 년간 내려 온 통설이라 해도 명확하게 성경이 그렇지 않으면 당연히 성경을 따르지 개혁교 역사를 따르지 않으며, 성경이 더 갈 수 있도록 열어 놓았을 때는 과거 선배가 더 나가지 않았다고 중단하지 않고 성경이 가자는 곳까지는 따라 가다 보니까 나타 나는 현상이 바로 신학 배제로 나타 나고 있습니다.


신학은 그 최초의 시도는 칼빈처럼 건전했으나 그 후배들이 더해 지면서 어느 순간 학자들의 학설을 연구하지 성경을 연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개혁교회의 이름을 가진 곳마다 신학 교과서만 보고 시대마다 또 현재도 전국의 목회자들이 배끼기만 하고 있는데 그 내용들은 대개 칼빈의 성경 해석에 뿌리를 두고 몇몇 선배들의 의견을 종합한 것으로 모두가 판박이입니다. 그런데 그 설교들이 더 이상 발전해서 안 되는 성경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끝 없이 발전을 해야 할 부분을 앉은뱅이가 되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공회의 시각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의 삼분과 중생 교리와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교리가 잘못 되었으면 공회는 시대를 대단히 혼란스럽게 만든 책임을 져야 하나, 만일 이 교리들이 옳다면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의 내용만 가지고도 천국에서 상을 받느냐 지극히 작다 크다 일컬음을 받느냐는 해석이 단번에 해결 되는데, 칼빈과 개혁주의 선배들이 천주교와 싸우느라고 후배들에게 남겨 놓은 이 부분을 후배들이 발전 시키지 않고 천주교와 싸움에서 생긴 '개혁'만을 가지고 오늘 천주교가 없어 진 세상에서도 그 이름만 집착하다 보니까 이런 성구를 5백 년 동안 과제로만 두고 늘 선배들의 성경 해석에 머무름으로 전체 교인들을 혼란에 빠뜨린 책임이 중하다 하겠습니다.


사실 정통 교회의 일체성을 두고 말한다면 공회는 성경에 명확한 것이 아니면 최대한 기존 개혁 정통 교회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한국교회가 다 폐기한 '조사'라는 표현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고 '연보' '반사'라는 표현까지도 지키고 있습니다. 또 '신본주의 인본주의'라는 단어도 신학교가 아니라 일반 강단에서는 공회만큼 많이 사용하는 곳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개혁교회'의 이름을 가진 곳이 예배와 신앙의 근본과 심지어 타 종교에까지 그리고 세상 모습에까지 급속도로 닮아 가고 있는데 공회는 이런 본질적 변질을 거부하고 마치 혼자 남은 것처럼 버티고 있습니다.


이런 면을 고루 통찰한다면 공회의 성경 해석은 정통 교회의 정통을 정통답게 만든 결과로 보이고 오늘 정통 교회의 모습은 성장하지 않고 주저 앉은 장애자처럼 앉은뱅이처럼 기형처럼 조로증 환자처럼 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2. 청교도의 회심 설교


기본구원은 하나님의 자존 주권 예정이라는 절대적 전제에서 시작 되는 것이어서 청교도의 회심에는 비교할 수 없도록 그 기준이 엄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개혁주의 회심은 알미니안으로 가는 첩경이며 바로 이 빈 틈을 치고 들어 온 것이 알미니안입니다. 그리고 그 회심에서 인간이 알고 느끼는 면만 강조하여 회심의 구별과 진정성과 성결의 효력을 사람의 손, 그 것도 사람의 감정에 올려 놓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몇몇 유명 청교도 성자들의 회심에 대한 설교와 노력을 평가절하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이 간단한 성경의 교리 하나를 간과함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는 점입니다.


평안하다 평안하다는 것은 택자 우리에게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꼭 심어 두어야 하는 구원 확신에 대한 것이므로 이럴 약화 시키는 것은 바로 천주교의 수양주의 고행주의 선행주의로 넘어 가는 것입니다. 이 노선이 기본구원에 대해서는 확신으로, 그리고 성도의 평생 주력은 건설구원으로 그 목표와 향방을 구별하였기 때문에 오늘 세계적으로 개혁주의 노선에 굳게 선 상태에서 이 노선만큼 신앙에 매진하고 철저히 회개하고 있는 힘을 다하고 있는 사례를 답변자는 따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주일이라는 신앙 초보의 첫 걸음까지를 다 포기한 것이 개혁주의 간판을 앞 세운 교파들에 만연한 것이 사실이고, 이 노선에서는 교인 이름을 붙이는 정도면 벌써 세상 그 어떤 것이라도 다 포기하고 이 선을 넘어 가고 있음이 현실일 것 같습니다. 더하여 하나의 정통 교리를 전하려는 의도는 참으로 좋은 것이나 우리는 열매로 나무를 알아 보고 단정을 짓기까지 하나의 정통 교리를 확정하는 데는 조심에 또 조심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하나를 바로 도출하기 위해서는 필연코 반론이 나와야 하고 다른 의견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바로 이 면 때문에 기독교는 그 출발의 첫 정신이 자유성입니다. 개인의 신앙 자유와 교회의 결정 자유라는 의미는 혼란을 넘어 자멸에 가까울 정도의 상황을 만들고 있으나 기독교는 그 것을 통일을 위해 일원화하지 않고 있습니다.


진짜 회심과 가짜 회심을 분별하여 거짓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을 회개 시킨다는 말씀에 대해서는 한 순간을 보지 말고 그렇게 회개 시킨 그 뒤를 다시 살펴 보면 같은 일은 평생 반복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결교회의 유명한 이명직 목사님이 완전 성결을 주장하셨는데 그 분은 일제 말기에 신사참배를 했던 분이고 그 당시는 국가의식이어서 죄가 아니고 성결교리로 볼 때 자기의 회심, 자기의 성결에 문제가 없다 했는데 해방 후에는 이런 입장을 변경했습니다. 이로 인해 성결교의 회심, 성결교의 성결교리는 큰 내부 도전을 받게 되고 이후 성결교의 근본 방향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 교회사입니다.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1907년부터 계속 된 평양대부흥회와 그로 인해 파급 된 전국의 회개 운동은 선교사들이 본국에서 구경도 하지 못한 큰 성령의 불길이며 그로 인한 회심은 우리 한국교회사에 참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 때 그 누구도 부인 못할 성령의 불로 회개했던 분들, 그 중에서도 신앙에 가장 앞 장 섰던 지도자들 거의 전부가 얼마 후 신사참배를 6 년이나 극진히 했으니 그들의 1907년 회심은 가짜일까 아니면 진짜일까? 질문자의 회심 논리로 말하면 1907년도에 있었던 한국의 대부흥운동은 1938년부터 1945년까지 계속 된 신사참배에 의하여 거짓 회심이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해방 후에 또 한 차례 불어 닥친 전국적 굉장한 회개 운동은 주로 재건교회와 고신을 중심으로 일어 나는데 이 회개 운동은 1950년 6.25 전쟁을 거치면서 거의 전부 신앙을 부인하고 무신론 공산주의에 앞 장을 서게되는데 이들의 지난 날 회심은 전부 가짜일까? 그리고 오늘 2000년대 한국의 기독교는 주일조차 없는데 이들의 지난 날 회심이 가짜라면 한국교회에는 불신자들이 교계 지도부를 다 장악하고 중생이 가짜인 분들에 의해 진행 되고 있을까?


기본구원의 회개는 거저 받는 회개인데 이는 아무리 그 기준이 낮다 해도 이미 루터 칼빈의 정통 개혁교회가 5백 년 전부터 확립했던 기본 교리입니다. 그 기준이 우리 생각에 낮다 해서 우리 생각에 만족할 만큼 올린다면 성경을 거부해야 하는데 성경에 배치 될지라도 우리 마음에 개운하도록 기준을 바꾸는 일은 할 수 없는 일이고, 거짓선지자들이 평안을 외친 것은 꼭 불신자가 신자인 줄 알도록만 하는 경우는 기독교 국가에서나 가능하지 우리 나라처럼 이방 국가들에게서는 별로 그렇게 할 일도 없을 듯합니다. 아예 기독교를 믿지 않게 하거나 기독교를 믿는다면 불교나 유교와 교류를 할 수 있도록 변질을 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루터가 끝 없는 고행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죄가 나오고 그 것을 회개해야 했고, 그 가운데서 자기의 번민을 로마서 중심의 성경에서 해결을 하고 외친 것이 종교 개혁의 시작입니다. 이런 루터를 향해 결혼을 하고 싶고 고행에 고달픔을 벗기 위해 탈선한 신부가 자기 변호를 위해 내 놓은 것이 은혜 구원이라 했습니다. 은혜 구원이란 말처럼 기준이 낮은 것은 없다고 보입니다. 그 어떤 수고 하나도 없이 천국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 기본회심이며 루터 칼빈의 정통 개혁교의 교리 시작입니다.


>> 조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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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주의자들의 성경해석은 거의 다 동일합니다. 총공회에서 처럼 성경해석이 다양해지면 신앙의 주관화가 일어나고 그러한 현상이 성도들 가운데 만연히 퍼진다면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잡지 못하게 되고 그 후 시대 사람들에게 하나의 정통적인교리가 전달될 수 있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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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교도신학은 회심에 대한 설교가 많습니다. 진짜회심인지 가짜회심인지 분별하여 거짓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회개하고 믿게 되는 기능이 있고 또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므로 교회의 거룩성을 유지하는데 있습니다. 기본구원의 회개에 대해서 기준이 너무 낮은 것은 아닌지,,거짓선지자처럼 평안하다 평안하다하며 거짓구원의 확신 속에 있게 하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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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과 교회, 기본구원의회심에 대해
개혁주의자들의 성경해석은 거의 다 동일합니다. 총공회에서 처럼 성경해석이 다양해지면 신앙의 주관화가 일어나고 그러한 현상이 성도들 가운데 만연히 퍼진다면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잡지 못하게 되고 그 후 시대 사람들에게 하나의 정통적인교리가 전달될 수 있겠는지?


청교도신학은 회심에 대한 설교가 많습니다. 진짜회심인지 가짜회심인지 분별하여 거짓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회개하고 믿게 되는 기능이 있고 또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므로 교회의 거룩성을 유지하는데 있습니다. 기본구원의 회개에 대해서 기준이 너무 낮은 것은 아닌지,,거짓선지자처럼 평안하다 평안하다하며 거짓구원의 확신 속에 있게 하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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