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과 야곱의 아내는 아람에서 데려 오고 아들들부터는 그렇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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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과 야곱의 아내는 아람에서 데려 오고 아들들부터는 그렇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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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결혼을 보면 창24:4에서 '내 고향 내 족속'을 원칙으로 지켜 왔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는 창11:29에서 자기 고향 자기 족속에 따라 사라와 결혼했고 창24장에 이삭도 그렇습니다. 야곱의 경우도 이삭이 28:1에서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아니라 '내 고향 내 족속'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 했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계통이 되는 유다는 38:1장에서 가나안 사람과 결혼을 했고 베레스를 낳게 되는 다말도 가나안 지방 사람입니다.

왜 야곱까지는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사람을 데려 오고, 야곱의 아들들부터는 가나안 사람 중에서 아내를 가지게 되는지요? 훗날 출애굽을 하면서 모세를 통해 가나안에 들어 가면 가나안 사람을 모두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의 아내들이며 12지파의 어머니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지만 유다처럼 예수님으로 내려 가는 구원 계통의 가장 중요한 혈통부터 확실하게 가나안 사람으로 아내를 삼습니다. 먼저 이용하고 다음에는 배척하거나 죽이는 세상의 비정함이나 이용만 하고 버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담당 2022.12.11 19:22  
(신앙의 출발기)
이스라엘이 형성 되는 초기였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까지는 자녀가 적어 1 명으로 근근 내려 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살고 있는 가나안에서 사람을 찾는다면 공간적으로 근처가 모든 면에서 편리하지만, 신앙의 출발로부터 자라 가는 과정으로 본다면 신앙으로 더 가까운 사람을 가져 오기 위해 거리는 멀어도 밧단 아람으로 사람을 구하기 위해 가게 됩니다.

밧단 아람이라는 곳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오기 직전에 있었던 곳이고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원래 고향인 갈대아 우르에서는  출발을 했으나 가나안에 가기 전 하란에서 멈추고 그 곳에 살았고 그래서 아브라함의 형제들이 아직 그 곳에 있고 그 조카와 자녀들이 그 곳에 있으니 이들은 가나안 부족들보다 아브라함의 신앙을 기준으로 보면 더 가깝습니다. 역사적으로 계통으로 본다면 밧단 아람의 친척들은 아브라함을 따라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발전적인 면에서 부족했고 중간에 주저 앉았으나 그렇다고 계통 자체가 다르지 않았습니다. 즉, 아무리 거리가 멀고 불편해도 아내를 구하는 일은 신앙으로 가장 유리하고 가까운 사람을 찾는 것이 맞다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입니다. 육체로 이스라엘이 형성 되는 초기에는 신앙의 속도가 앞 서고 뒤로 갈 수 있습니다. 그 자체로 죄와 의로 나누지 않고 이스라엘과 이방인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주님의 인도를 따라 가는 단선으로 봅니다. 그래서 밧단 아람에서 아직도 머물고 있는 같은 신앙의 후발들 중에서 이끌어 오는데 이 것이 구약이기 때문에 마치 근친결혼처럼 보일 뿐입니다. 근친은 맞지만 근친결혼이 아니라 신앙 결혼입니다.

(신앙의 형성기)
아브라함은 데라가 있던 하란의 본토 친척 아비 집에 머물 수 있으나 인도를 따라 한 걸음 더 걸어 갔고 이삭의 아내를 아직도 뒤에 머물고 있는 같은 신앙의 후발 중에 데려 왔으니 오늘로 말하면 한 교단, 한 노선, 한 교회, 하나의 신앙이 출발을 할 때 머뭇거리거나 타이밍을 잠깐 놓친 이들은 1차로 이끌어 한 몸이 될 대상이지만

이제 야곱을 통해 열두 아들을 주셨고 이미 밧단 아람과는 외삼촌 라반의 추격 때 서로 넘어 가지 않기로 맹세를 했고 또한 야곱이 열두 아들의 아내들을 택하던 시점은 이제 밧단 아람의 과거 친족들과는 신앙으로 늦고 빠른 정도가 아니라 별도의 민족이 되었고 다른 신앙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가나안을 아브라함 이삭을 통해 야곱에 이르기까지 본향으로 받아 가졌고 이 곳에서 접하는 이들을 신앙의 것으로 삼고 신앙의 생명을 뿌리고 길러 가야 하는 시기입니다. 이제 장소적으로는 가나안이 신앙의 현실 공간이 되었습니다. 멀리 있다가 이제는 아주 멀어 진 아람 쪽보다 여전히 이방이지만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열두 아들을 지켜 본 주변의 사람이 현실에서 전도할 '예루살렘에서 출발하여 유다 > 사마리아 > 땅 끝까지 이르러' 라고 하신 행1:8이 적용 될 상황입니다.

(신앙의 절정기)
구약의 이스라엘은 일단 육체로 먼저 살피는데 출애굽 시기가 되면 이스라엘은 약 2백여 만 명이 됩니다. 따라서 출애굽기로부터 신명기까지 구약의 신앙들에게 이후 근친과 결혼은 금지 시켰습니다. 이스라엘 하나의 몸 안에서 모두가 같은 신앙인데 육체로 가깝고 세상으로 가깝고 살다 보니 성향이 같아 진 사람과 결혼을 하면 자기 단점 자기 약점 자기가 보지 못한 문제점을 발견하거나 고치는 것이 어려워 집니다.


** 결론적으로
그래서 오늘 우리로 말하면 통합 교단의 사람은 토합 교단 안에서 결혼을 하는 것이 기본이나, 다만 통합 교단 안에서 신앙의 성향은 같지만 하나님께서 맡긴 위치와 사명이나 세상적인 여러 면을 달리 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인간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서로 지켜 본 사람이라야 속지 않는다는 것은 어린 신앙에게 지도하는 단계이고, 그렇게 하려 해도 하나님은 가깝든 멀든 이상하게 부부는 알고 보면 참 서로가 다른 사람을 붙여서 서로 고치고 협력하게 만들어 갑니다.

총공회가 1989년 처음 분리가 될 때는 1 년 2 년 심지어 5 년이 지나도 왜 이 쪽에 있는지 왜 저 쪽으로 갔는지 사실 잘 몰라서 그럴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각 공회는 당연히 각 공회 내에서 사람을 찾아야 하나 각 공회 내부에 사람 자체가 없을 때는 대구공회는 대구공회가 옳은데도 멋 모르고 부산공회로 간 사람이 마치 이삭이나 야곱에게는 밧단 아람에 있는 친척들과 같습니다. 그 쪽으로 결혼해서 자기 쪽에 세우면 됩니다. 그런데 10 년이 지나고 20 년이 지나게 되면 이제 대구공회나 부산공회는 말만 총공회이지 내용적으로는 아주 다른 신앙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경우는 신앙의 한 흐름이 되는 자기 공회 안에서, 그리고 주신 입장이나 성장 과정이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하려 들면 선택이 좁아 지고 세상적으로 불리한 것이 한도 없이 많으나 그 것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고 그 것이 바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주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공회의 가장 중심에 서서 목회자들을 탈선했다고 가르치는 청년들이 자기는 타 교단과 결혼하고 그 사람을 그 교단에 출석을 시키며 공회 안에 데려 오지도 못하는 정도일 때는 에서가 주변 사람과 결혼을 한 것과 같습니다. 고신과 공회와의 사이도 초기 분리 때는 고신 사람을 공회와 같은 입장으로 상대했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은 고신은 고신에 주신 복음 운동의 분야가 있고 우리는 이 곳을 맡았습니다. 이런 신앙의 기본 성향을 섞어 버리면 세상 입장 때문에 그보다 더 중요한 신앙의 기본을 포기한 것이니, 야곱이 레아와 라헬을 두고 곱고 아리따움에 끌리고 매이는 바람에 130세까지 헛 일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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