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나이, 우리 나이 - 신앙 생활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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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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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7 07:18
국회에서 2023년부터 만 나이로 통일 시키는 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법사위 소위를 통과했으니 이런 문제는 논란 없이 진행 될 것 같습니다. 12월 31일에 태어나면 하루만에 두 살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최대 두 살 어려진다 합니다.
사법기관과 국가의 행정 분야에서 국제 통용 기준인 ‘만 나이’를 사용합니다. 현재 우리 민법은 나이를 계산할 때는 만 나이를 적용합니다. 출생일에 0살이 되고 1년이 지나야 한 살씩 늘어납니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통성명을 할 때부터 거의 모든 생활에서 태어 난 연도를 헤아립니다. 심지어 청소년법과 병역법에서도 '출생 연도'를 사용합니다.
공회는 유독 우리 나이를 고수하는 모습입니다. 이번 시무투표도 짝수해에만 투표를 하기 때문에 매2년마다 투표를 하는데 설교록이나 공문에 보면 '3년마다'라고 적습니다. 백 목사님의 연세 소개에도 1910년 7월 출생에 1989년 8월 순교하셨는데 80세를 살았다고 합니다.
왜 우리 나이를 사용하는지, 어떤 유익이 있는지 소개해 주시고
법령이 통과 되고 우리 사회가 평 대신에 제곱미터를 사용하는 식으로 또 거리를 재는 자나 리, 무게를 재는 근이나 관을 결국
cm m km나 g kg tom으로 바꾸듯 모두가 다 바꾸게 될 것을 고려할 때 공회는 개역 성경이나 찬송가처럼 예전 것을 고수하실지, 아니면 이런 일상 생활에 대한 것은 변경 된 환경을 따를지 궁금합니다.
이런 한 가지를 통해 공회의 전반적 흐름을 배우고 싶습니다.
사법기관과 국가의 행정 분야에서 국제 통용 기준인 ‘만 나이’를 사용합니다. 현재 우리 민법은 나이를 계산할 때는 만 나이를 적용합니다. 출생일에 0살이 되고 1년이 지나야 한 살씩 늘어납니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통성명을 할 때부터 거의 모든 생활에서 태어 난 연도를 헤아립니다. 심지어 청소년법과 병역법에서도 '출생 연도'를 사용합니다.
공회는 유독 우리 나이를 고수하는 모습입니다. 이번 시무투표도 짝수해에만 투표를 하기 때문에 매2년마다 투표를 하는데 설교록이나 공문에 보면 '3년마다'라고 적습니다. 백 목사님의 연세 소개에도 1910년 7월 출생에 1989년 8월 순교하셨는데 80세를 살았다고 합니다.
왜 우리 나이를 사용하는지, 어떤 유익이 있는지 소개해 주시고
법령이 통과 되고 우리 사회가 평 대신에 제곱미터를 사용하는 식으로 또 거리를 재는 자나 리, 무게를 재는 근이나 관을 결국
cm m km나 g kg tom으로 바꾸듯 모두가 다 바꾸게 될 것을 고려할 때 공회는 개역 성경이나 찬송가처럼 예전 것을 고수하실지, 아니면 이런 일상 생활에 대한 것은 변경 된 환경을 따를지 궁금합니다.
이런 한 가지를 통해 공회의 전반적 흐름을 배우고 싶습니다.
1. 질문하신 내용
당연한 말이지만,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성경에서 근거를 찾고, 성경에 맞추고, 성경과 가깝게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질문하신 연도나 햇수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사건이나 왕들의 통치 기간은 연도 기록이 많고, 개인의 나이는 거의 햇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연도든 햇수든 그 날짜가 1년으로 다 채워졌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말하자면 1년 365일 중에서 1개월만 지났는지 12개월이 다 채워졌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적든 많든 한 해는 한 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공회의 기록은 햇수로 기록하면서 필요에 따라 연도도 사용해 왔습니다.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을 바꾸면 자칫 근본이 흔들릴 위험이 있습니다. 바꿔야 할 것을 바꾸지 않으면 고인 물처럼 되어 썩어버릴 수 있습니다. 바꿀 것은 바꿔야 하고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은 바꾸지 말아야 합니다. 무턱대고 바꾸는 것도 문제고, 무조건 붙들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은 한 걸음 물러서서 천천히 대처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만 나이’를 포함한 일상생활에 대한 다른 것들도 이런 원리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대하는 공회의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2. 교회와 세상의 관계
교회와 세상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교회를 두시고 세상 속에서 구원을 이루어 가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세상이 싫고 미워서 속세를 떠나서 산에 절을 짓고 도를 닦는 염세주의입니다. 기독교는 염세주의가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세상을 이용하여 하늘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세상이 없으면 천국의 구원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교회와 세상이 섞여버리면 교회는 세상이 되어버립니다.
교회와 세상의 관계는 마치 바다와 배와 같다고 합니다. 배는 바다가 있어야 쓸모가 있습니다. 바다 없는 배는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렇다고 배가 바닷속으로 들어가면 침몰해 버립니다. 배에 바닷물이 들어와도 침몰합니다. 뗄 수 없는 관계이면서 둘의 경계는 분명히 따로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 있지만 교회는 어디까지나 교회라야 합니다. 교회 안에 세상이 들어오면 교회는 속화되고 타락합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 들어가면 그건 세상이지 교회가 아니게 됩니다.
3. 세상을 대하는 지혜
교회는 세상에 있지만 세상이 아닙니다. 교회는 교회라야 하고 세상은 세상일 뿐입니다.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을 이용하여 구원을 이루는 것이지 세상과 섞이거나 세상을 따라가는 것은 신앙의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에덴동산 아담 하와에게 하신 첫 명령이 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자기가 되고 그 자기가 주인이 되어 모든 것을 하나님 뜻대로 능동으로 끌고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로 말하면 교회가 주님과 연결되어 세상을 능동으로 상대할지언정 세상을 따라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개인으로 말하면 각자 현실에서 자기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현실을 능동으로 이끌고 다스릴지언정 현실에 피동되거나 종이 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한 말씀만 바로 깨닫고 붙들어도 믿는 사람이 세상의 많은 것을 바로 상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에 무슨 일이 있거나 변화가 생겨질 때 믿는 사람은 한 걸음 뒤에 서서 면밀하게 잘 살피면서 천천히 대처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바꾸면 교회가 즉각 따라가고, 저렇게 가면 또 재빠르게 따라가는 것이 지혜 있고 처세술이 있는 것 같으나 신앙으로 보면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코로나로 온 세상이 감염 위험 있다고 예배를 못 드리게 하니 많은 교회들이 따라갔습니다. ‘이럴 때는 예배를 중단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큰소리까지 치면서. 지나고 보면 부끄러워 고개를 들기 어려울 것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성경에서 근거를 찾고, 성경에 맞추고, 성경과 가깝게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질문하신 연도나 햇수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사건이나 왕들의 통치 기간은 연도 기록이 많고, 개인의 나이는 거의 햇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연도든 햇수든 그 날짜가 1년으로 다 채워졌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말하자면 1년 365일 중에서 1개월만 지났는지 12개월이 다 채워졌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적든 많든 한 해는 한 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공회의 기록은 햇수로 기록하면서 필요에 따라 연도도 사용해 왔습니다.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을 바꾸면 자칫 근본이 흔들릴 위험이 있습니다. 바꿔야 할 것을 바꾸지 않으면 고인 물처럼 되어 썩어버릴 수 있습니다. 바꿀 것은 바꿔야 하고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은 바꾸지 말아야 합니다. 무턱대고 바꾸는 것도 문제고, 무조건 붙들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은 한 걸음 물러서서 천천히 대처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만 나이’를 포함한 일상생활에 대한 다른 것들도 이런 원리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대하는 공회의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2. 교회와 세상의 관계
교회와 세상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교회를 두시고 세상 속에서 구원을 이루어 가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세상이 싫고 미워서 속세를 떠나서 산에 절을 짓고 도를 닦는 염세주의입니다. 기독교는 염세주의가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세상을 이용하여 하늘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세상이 없으면 천국의 구원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교회와 세상이 섞여버리면 교회는 세상이 되어버립니다.
교회와 세상의 관계는 마치 바다와 배와 같다고 합니다. 배는 바다가 있어야 쓸모가 있습니다. 바다 없는 배는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렇다고 배가 바닷속으로 들어가면 침몰해 버립니다. 배에 바닷물이 들어와도 침몰합니다. 뗄 수 없는 관계이면서 둘의 경계는 분명히 따로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 있지만 교회는 어디까지나 교회라야 합니다. 교회 안에 세상이 들어오면 교회는 속화되고 타락합니다. 교회가 세상 속에 들어가면 그건 세상이지 교회가 아니게 됩니다.
3. 세상을 대하는 지혜
교회는 세상에 있지만 세상이 아닙니다. 교회는 교회라야 하고 세상은 세상일 뿐입니다.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을 이용하여 구원을 이루는 것이지 세상과 섞이거나 세상을 따라가는 것은 신앙의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에덴동산 아담 하와에게 하신 첫 명령이 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자기가 되고 그 자기가 주인이 되어 모든 것을 하나님 뜻대로 능동으로 끌고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로 말하면 교회가 주님과 연결되어 세상을 능동으로 상대할지언정 세상을 따라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개인으로 말하면 각자 현실에서 자기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현실을 능동으로 이끌고 다스릴지언정 현실에 피동되거나 종이 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한 말씀만 바로 깨닫고 붙들어도 믿는 사람이 세상의 많은 것을 바로 상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에 무슨 일이 있거나 변화가 생겨질 때 믿는 사람은 한 걸음 뒤에 서서 면밀하게 잘 살피면서 천천히 대처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바꾸면 교회가 즉각 따라가고, 저렇게 가면 또 재빠르게 따라가는 것이 지혜 있고 처세술이 있는 것 같으나 신앙으로 보면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코로나로 온 세상이 감염 위험 있다고 예배를 못 드리게 하니 많은 교회들이 따라갔습니다. ‘이럴 때는 예배를 중단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큰소리까지 치면서. 지나고 보면 부끄러워 고개를 들기 어려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