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13 늙은 선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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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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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2 12:34
열왕기상 13장에 보면, 늙은 선지자가 젊은 선지자를 속여서 결국엔 젊은 선지자가 죽었는데 29~30절에 보면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떠들어 나귀에 실어가지고 돌아와 자기 성읍으로 들어가서 슬피 울며 장사하되 곧 그 시체를 자기의 묘실에 두고 그를 위하여 슬피 울며 가로되 오호라 나의 형제여 하니라" 했습니다. 늙은 선지자는 자기가 속여 놓고 죽게 만들었는데 왜 슬퍼한 것인가요?
1. 질문자는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는 좋은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2.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을 결과적으로 죽여 놓고는 슬피 운 것은
본문에 언급했듯이 자기도 같은 선지자이고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므로 사자에게 찢긴 것이 하나님의 명백한 보응의 역사임을 알고 자신도 바로 믿지 못하지만 말씀을 어겨 실패가 되어진 처지가 자기와 같은 처지가 되어 동감이 되어 슬피 울게 된 것로 보입니다
3. 왕상13장을 살피면서 타락과정, 신앙종류, 외로움의 위험성, 맛을 잃은 소금의 결과 등 많은 신앙 교훈을 받을 수 있으니 면면히 살펴 보시면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겠습니다.
2.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을 결과적으로 죽여 놓고는 슬피 운 것은
본문에 언급했듯이 자기도 같은 선지자이고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므로 사자에게 찢긴 것이 하나님의 명백한 보응의 역사임을 알고 자신도 바로 믿지 못하지만 말씀을 어겨 실패가 되어진 처지가 자기와 같은 처지가 되어 동감이 되어 슬피 울게 된 것로 보입니다
3. 왕상13장을 살피면서 타락과정, 신앙종류, 외로움의 위험성, 맛을 잃은 소금의 결과 등 많은 신앙 교훈을 받을 수 있으니 면면히 살펴 보시면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겠습니다.
* 늙은 선지자의 '신앙 노쇠'
늙은 선지자라고 굳이 노쇠를 표시한 것은 육체로 나이가 들어 '늙은' 것과 동시에 그의 행동을 볼 때 그는 신앙까지 노쇠한 상태입니다.
젊은 선지는 비록 나이가 표시 되어 있지 않아도 늙은 선지의 나이를 표시했으므로 성경의 최소화 기록에 따라 나이가 축약 되었다고 보고, 젊은 선지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젊은 선지자는 비록 경험어 적고 자기보다 후배라 해도 그 날의 일을 들어 볼 때 원수의 나라에 원수의 대장에게 면전에서 저주를 하는 용맹스런 충성과 그 저주가 이루어 진 결과를 볼 때 젊은 선지는 나이만 젊은 것이 아니라 그의 신앙이 주님과 동행하며 순종하는 신앙이 청청한 상태입니다. 이 말씀에서 늙은 선지와 젊은 선지의 나이를 굳이 표시한 것은 육체의 선후배나 노장을 가지고 그 속에 하나님께 순종하며 말씀을 전하는 우리의 신앙의 시작과 훗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노쇠한 신앙의 '망령'
사울도 시작할 때와 한창일 때는 하나님과 동행했고 능력 있게 일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다 마찬 가지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가면 육체의 노쇠는 피할 수 없으나 신앙의 노쇠는 피해야 하고 오히려 더 청청해야 하는데 만일 우리의 신앙이 갈수록 자라 가지 않고 육체와 함께 노쇠해 지면 그 퇴락이나 성장 멈춤이나 신앙의 후퇴는 자타에게 반드시 큰 화를 끼칩니다. 늙은 선지는 비록 하나님과 동행하며 여로보암을 책망할 정도가 아니라 해도 자기를 보면서 젊은 선지를 이해했어야 하고 도움을 주면 줬지 길을 막고 주저 앉혀서는 안 되며, 그런 상황을 잘 아는데도 노쇠한 신앙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젊은 선지까지 자기 집으로 데려 와서 자기 꼴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북 쪽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께서 버렸고 그 곳에는 살아 있는 선지가 없습니다. 늙은 선지도 그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유다 지파는 비록 약해 졌으나 여전히 하나님께 붙들렸고 구원의 계통인 다윗을 잇고 있습니다. 유다에 속한 생명의 복음 운동이 타락한 이스라엘을 향해 목숨을 걸고 외쳤는데 노쇠한 선지자는 살아 움직이는 신앙까지 자기와 같은 형편 같은 처지 같은 입장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습니다. 거짓말도 다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라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죽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소망을 두고 길러 가는 생명 운동의 내부에 있기 때문에 화가 빠르게 미쳤습니다. 북조 이스라엘과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미 버린 지 오래 되어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히12:8에서 징계가 없는 사생자 취급을 한 것입니다.
* 사단이 던진 '마지막'
사울이 성령으로 살았으나 여러 번 고범죄를 짓게 되자 하나님께서 아주 버렸고, 그런 사울을 사단이 끝까지 붙들고 죄를 짓다가 마지막에 더 이상 사울을 데리고 다윗이라는 복음 운동을 막는 데 소용이 없게 되자 마지막에는 놓아 줬습니다. 신접한 여인이 불러 올린 것은 사울을 평생 끌고 다닌 귀신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게 된 사울은 맥이 풀려 버렸습니다. 귀신에게 한창 붙들려 설칠 때는 본인의 양심을 묻어 버렸고 그래서 양심의 신음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되어 죄를 짓는데 용감합니다. 사단이 쓸 만큼 다하고 나면 던져 버립니다. 이 때 현상은 육체까지 순식간에 폭삭 늙고 그냥 끝이 나 버립니다. 나이 많은 선지자가 노쇠한 상태에서도 여전히 귀신에게 놓이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젊은 선지를 주저 앉히는데 자기의 지난 날의 경험과 노인의 마지막 남은 기력을 다 쏟았습니다. 젊은 선지가 죽은 모습을 보며 귀신은 이 노인을 풀어 준 것입니다. 진리로 자유하라고 풀어 준 것이 아니라 귀신조차 용도가 없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의 각 공회 내부도 각 교회도 또 주변에 한 때 은혜롭던 신앙의 지도자나 인물들을 비교해 보면 우리의 신앙 생활에 넓은 시야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신앙의 노쇠는 자기의 후퇴에 그치지 않고 새로 출발하는 생명 있는 신앙까지 끌어 안고 함께 죽는 극단으로 치닫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이란 한 번 은혜를 받고 나면 앞뒤 가리지 말고 좌우 돌아 보지 말고 무조건 한 길로만 끝까지 가다가 계시록 6장의 백마 운동의 화살처럼 목표에 꽂히고야 중단하지 그 전에는 후퇴나 쉬거나 옆으로 가는 길이 없어야 합니다. 성경을 깊이 읽으려는 분들일수록 함께 새겨 읽어야 할 부분입니다.
늙은 선지자라고 굳이 노쇠를 표시한 것은 육체로 나이가 들어 '늙은' 것과 동시에 그의 행동을 볼 때 그는 신앙까지 노쇠한 상태입니다.
젊은 선지는 비록 나이가 표시 되어 있지 않아도 늙은 선지의 나이를 표시했으므로 성경의 최소화 기록에 따라 나이가 축약 되었다고 보고, 젊은 선지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젊은 선지자는 비록 경험어 적고 자기보다 후배라 해도 그 날의 일을 들어 볼 때 원수의 나라에 원수의 대장에게 면전에서 저주를 하는 용맹스런 충성과 그 저주가 이루어 진 결과를 볼 때 젊은 선지는 나이만 젊은 것이 아니라 그의 신앙이 주님과 동행하며 순종하는 신앙이 청청한 상태입니다. 이 말씀에서 늙은 선지와 젊은 선지의 나이를 굳이 표시한 것은 육체의 선후배나 노장을 가지고 그 속에 하나님께 순종하며 말씀을 전하는 우리의 신앙의 시작과 훗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노쇠한 신앙의 '망령'
사울도 시작할 때와 한창일 때는 하나님과 동행했고 능력 있게 일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다 마찬 가지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가면 육체의 노쇠는 피할 수 없으나 신앙의 노쇠는 피해야 하고 오히려 더 청청해야 하는데 만일 우리의 신앙이 갈수록 자라 가지 않고 육체와 함께 노쇠해 지면 그 퇴락이나 성장 멈춤이나 신앙의 후퇴는 자타에게 반드시 큰 화를 끼칩니다. 늙은 선지는 비록 하나님과 동행하며 여로보암을 책망할 정도가 아니라 해도 자기를 보면서 젊은 선지를 이해했어야 하고 도움을 주면 줬지 길을 막고 주저 앉혀서는 안 되며, 그런 상황을 잘 아는데도 노쇠한 신앙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젊은 선지까지 자기 집으로 데려 와서 자기 꼴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북 쪽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께서 버렸고 그 곳에는 살아 있는 선지가 없습니다. 늙은 선지도 그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유다 지파는 비록 약해 졌으나 여전히 하나님께 붙들렸고 구원의 계통인 다윗을 잇고 있습니다. 유다에 속한 생명의 복음 운동이 타락한 이스라엘을 향해 목숨을 걸고 외쳤는데 노쇠한 선지자는 살아 움직이는 신앙까지 자기와 같은 형편 같은 처지 같은 입장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습니다. 거짓말도 다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라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죽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소망을 두고 길러 가는 생명 운동의 내부에 있기 때문에 화가 빠르게 미쳤습니다. 북조 이스라엘과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미 버린 지 오래 되어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히12:8에서 징계가 없는 사생자 취급을 한 것입니다.
* 사단이 던진 '마지막'
사울이 성령으로 살았으나 여러 번 고범죄를 짓게 되자 하나님께서 아주 버렸고, 그런 사울을 사단이 끝까지 붙들고 죄를 짓다가 마지막에 더 이상 사울을 데리고 다윗이라는 복음 운동을 막는 데 소용이 없게 되자 마지막에는 놓아 줬습니다. 신접한 여인이 불러 올린 것은 사울을 평생 끌고 다닌 귀신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게 된 사울은 맥이 풀려 버렸습니다. 귀신에게 한창 붙들려 설칠 때는 본인의 양심을 묻어 버렸고 그래서 양심의 신음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되어 죄를 짓는데 용감합니다. 사단이 쓸 만큼 다하고 나면 던져 버립니다. 이 때 현상은 육체까지 순식간에 폭삭 늙고 그냥 끝이 나 버립니다. 나이 많은 선지자가 노쇠한 상태에서도 여전히 귀신에게 놓이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젊은 선지를 주저 앉히는데 자기의 지난 날의 경험과 노인의 마지막 남은 기력을 다 쏟았습니다. 젊은 선지가 죽은 모습을 보며 귀신은 이 노인을 풀어 준 것입니다. 진리로 자유하라고 풀어 준 것이 아니라 귀신조차 용도가 없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의 각 공회 내부도 각 교회도 또 주변에 한 때 은혜롭던 신앙의 지도자나 인물들을 비교해 보면 우리의 신앙 생활에 넓은 시야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신앙의 노쇠는 자기의 후퇴에 그치지 않고 새로 출발하는 생명 있는 신앙까지 끌어 안고 함께 죽는 극단으로 치닫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이란 한 번 은혜를 받고 나면 앞뒤 가리지 말고 좌우 돌아 보지 말고 무조건 한 길로만 끝까지 가다가 계시록 6장의 백마 운동의 화살처럼 목표에 꽂히고야 중단하지 그 전에는 후퇴나 쉬거나 옆으로 가는 길이 없어야 합니다. 성경을 깊이 읽으려는 분들일수록 함께 새겨 읽어야 할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