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9장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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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9장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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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왕상9:1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다시 나타나셨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로 다시 나타나셨는지 궁금합니다.


2.왕상9:10-14


솔로몬이 성전과 왕궁 건축을 마치고 두로 왕 히람에게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보내준 대가로 갈릴리 땅의 성읍 20개를 주었는데 히람은 눈에 들지 않았고 그것을 가불(쓸모 없는) 땅이라 했는데 솔로몬은 왜 두로 왕 히람에게 쓸모 없는 땅을 보냈을까요?


또 히람은 금 120달란트를 솔로몬에게 보내주었는데, 이것은 히람이 그래도 땅 받은 대가로 준 것인지?


3. 왕상9:15-


솔로몬이 성전과 왕궁 건축에 이어 여러 성을 건축하는데, 이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지요? 성전과 왕궁은 하나님 중심이었다 해도 다른 여러 성 건축은 자기 중심이라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뒤에 보면 노역으로 인하여 문제가 생기는데, 이때부터 솔로몬은 잘못된 길로 가게 된 것은 아닌지?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경고하시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시간이 되시면 9장 전체 해석(맥락)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담당 4 2022.11.30 20:59  
1.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신 의미

열왕기상 6장에 성전 건축이 시작되어 7장에서 끝이 납니다. 그리고 8장에 언약궤와 함께 성전의 모든 기구들을 들인 후 솔로몬이 성전에 대한 기도를 하고 낙성식을 함으로 성전 건축에 대한 모든 행사가 마무리됩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은 바로 그 직후이며, ‘다시’ 나타나셨다고 했으니 솔로몬이 왕이 된 후 공식적으로 두 번째 나타나신 것입니다.

왕상 3장에, 솔로몬이 왕이 되고 일천 번제를 드린 후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솔로몬의 원하는 바를 물으셨고,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의 기도를 기뻐하셔서 지혜와 함께 부와 영광도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처음 나타나신 때입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후 처음 나타나신 이때, 지혜와 부와 영광을 주겠다고 하시면서 덧붙인 말씀은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이라는 조건의 말씀이었습니다. 바로 그 말씀이 첫 번째 나타나신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나타나실 때도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했고, 낙성식을 행하면서 성전에 대한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내가 네 기도를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하여… 나의 눈과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라고 하시면서, ‘네가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이라는 조건의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처음에는 왕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지혜를 구한 솔로몬에게, 두 번째는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바치며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모든 백성들을 살펴주시라고 기도한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는데, 두 번 다 솔로몬의 기도를 들어주시면서 공통으로 하신 말씀은, ‘네 아비 다윗같이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며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순종하라’는 말씀이었으니, 바로 이것을 다시 상기시켜 주시기 위해서 다시 나타나신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소원도 기도도 최종에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전부 삼아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며,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고 명령을 순종할 때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 주신 것입니다.


2. 히람에게 준 성읍 20

당시 이스라엘은 성전 건축에 총력을 기울인 후였습니다. 성전과 함께 왕궁과 그 외 여러 성읍들을 건축했습니다. 이때는 아직 솔로몬에게 약속하신 부의 축복이 쏟아지기 전입니다. 당연히 나라의 재정은 별로 넉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준비한 것이 많았지만 성전과 함께 관련된 성읍 건축이 워낙 대공사였습니다. 공사가 끝난 후 히람에게 넉넉하게 지불할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고, 그렇다고 솔로몬이 인색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지혜가 누구보다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성읍은 물산이 포함됩니다. 각 성읍에서 나는 물산으로 나라의 재정이 조달되고 그 재정이 성전 건축 비용이 되었을 것입니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솔로몬이 히람에게 준 성읍은 상대적으로 물산이 좀 덜한 곳일 수 있습니다. 히람의 눈에 들지 않았고 ‘가불’이라고 이름까지 붙이고 섭섭해한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히람의 마음에 만족할 수 있도록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섭섭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 수도 있고, 솔로몬이 판단할 때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대로의 판단 기준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솔로몬의 기준으로 판단해서 지불했고, 히람은 히람 자기 기준으로 판단해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모든 사람의 모든 기준을 다 맞추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솔로몬은 지혜가 있는 왕입니다. 이때는 심령도 밝을 때입니다. 히람에게 원망 들을 정도로 인색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히람의 기대가 좀 너무 크지 않았나 하는 면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기대만큼 안 되니까 섭섭했던 것인데 그것을 다 맞춰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본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 백성들의 기업입니다. 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백성들의 기업 된 땅을 임의로 풍성하게 줄 수는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성전 건축에 히람이 수고한 만큼 대가는 지불하되 인색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은 했지만 그것이 히람의 눈에는 차지 않았을 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히람이 금 120달란트를 보낸 것은, 받은 20 성읍에 대한 ‘대가’라기보다는 ‘인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히람이 성전 건축에 많은 목재와 금을 보냈고, 이에 대하여 솔로몬은 그 대가로 성읍 20을 주었는데, 그에 대해서 히람이 다시 금을 보낸 것은 대가가 아닌 인사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금 120달란트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한 성읍은 한 고을과 같은 것으로 성과 함께 거기 딸린 많은 토지들과 물산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120달란트가 20 성읍의 ‘대가’는 안 될 것 같습니다.


3. 성전 외 다른 성읍 건축

집을 건축하면, 가정집이라도 방과 부엌과 화장실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좀 큰 집은 방도 큰방 작은 방, 침실, 거실, 응접실에 서실도 따로 만듭니다. 학교를 지으면 교실부터 학년별로 따로 다 만들고, 교장실, 교감실, 음악실, 과학실, 미술실, 실습실, 체육관, 도서관, 식당, 화장실, 사워실에 휴게실까지 만듭니다. 한 건물 안에 다 들어갈 수도 있고 건물이 몇 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학교쯤 되면 거의 한 마을이 될 정도로 건물이 많아집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본건물과 부속건물들입니다. 솔로몬이 성전 외에도 건축한 성들은 이런 의미와 용도로 볼 수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인데, 구약이라 오늘과 차이는 있지만 하나의 ‘상징’이라는 의미는 같습니다. 하나님은 무소 부재하시기 때문에 계시지 않는 곳이 없고 계시지 못하는 곳도 없습니다. 성전에만 계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모세에게는 성막을 지으라 하셨고, 다윗에게는 성전을 짓고 싶은 간절한 소원만 주셨고, 솔로몬에게는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셨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집이라고 해서 ‘성전’이라 했고, 그 성전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만나고 다스린다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어린 그들에게 보이는 상징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중심에 두고 성전을 중심으로 모든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이니 성전이면 전부이기도 하지만, 성전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나라를 다스리려면 왕궁이 있어야 합니다. 왕궁에는 수많은 사람이 함께 살기 때문에 크게 지어야 하고 부속건물도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 곳에 지을 수도 있고 주변에 흩어 지을 수도 있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은, 아내를 위한 성과 함께 국고성, 병거성, 마병의 성들과 그 외 여러 성들입니다. 모두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건축들입니다. 당연히 필요한 것들을 지은 것이기 때문에 솔로몬이 자기중심으로 했다고 보기는 곤란합니다.

솔로몬 때 하나님의 성전과 함께 많은 건축을 했기 때문에 백성들의 노역이 심했지만 대개는 이방인들을 동원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도 물심양면으로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죽고 난 후, 르호보암 때 이스라엘이 좀 쉬게 해 달라고 요구를 했던 것도 맞습니다. 그 요구는 그들로서는 할 수 있는 요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솔로몬으로 인해서 나라가 부강해지고 평안하게 살았던 것은 또 다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10지파가 하나님의 구원 계통인 다윗을 집을 배반하고 갈라져 나간 결과 그들은 다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감정에 휘둘려, 해서는 안 될 아주 나쁜 짓을 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솔로몬이 노년에 이방 비빈들에게 미혹되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지 성전과 그에 따른 여러 성읍들을 건축한 것이 원인은 아닙니다.


4. 9장의 전체 흐름

세밀한 해석과 설명은 너무 분량이 많기 때문에 간단하게 제목만 적어보았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은 질문에 대한 위의 답변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1-9절: 다시 나타나셔서 솔로몬을 깨우쳐 주심
10-14: 히람에게 준 성읍, 가불
15-22: 역군을 일으켜 여러 성읍을 건축함
    24: 바로의 딸을 위한 건축
    25: 전 역사 마침
26-28: 솔로몬과 히람의 사공들이 금을 실어 옴
담당 2022.12.01 18:31  
(첫 답변은 성경을 읽을 때 일반적인 순서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아무리 핵심 내용과 가장 중요한 면을 살핀다 해도, 그 이전에 성경 전체의 기본을 알고 나서 진행을 해야 합니다. 이 번 질문은 공회의 연경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곳이어서 첫 답변을 맡은 분은 누구라도 고려하고 살펴야 할 일반적인 면을 먼저 소개했습니다. 이 정도의 설명은 어디서라도 쉽게 대할 수는 있으나 지금은 신앙과 성경의 만사를 두고 불신자처럼 두고 갈 땅의 생활에 도움 되는 정도에 그치는 사례가 많으니 첫 글의 안내를 쉽게 읽지 않기 바랍니다. 이제 조금 더 내면을 살펴 보겠습니다.


(다시 나타나신 하나님)
구약뿐 아니라 신약까지 성경 전반에 기록을 보면 중복 되는 내용들이 자주 있습니다. 왜 두 번으로 나누어 말씀하는지 또는 같은 내용을 왜 단순 반복하는지.. 이런 대목이 나올 때 성경을 요약 정리를 해서 이해를 더 돕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신명기라는 글자는 '반복'입니다. 출애굽 과정을 다시 반복합니다.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의 반복과 신약의 사복음 반복은 분량으로 봐도 반복이 심하게 느껴 집니다. 또 한 번으로 될 대화를 아브라함부터 삼손에 이르도록 굳이 두 번 나타 나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조금이라도 인간적으로 볼 때 번복, 반복, 중복 또는 절차나 대화를 둘이나 그 이상으로 나누는 대목이 있을 때는 연약한 우리 때문에 그렇게 적어 주셨음을 기억하면 좋습니다.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진실로'를 붙이지 않은 경우와 한 번 붙인 경우와 두 번 붙인 경우, 대개는 진실로 라는 표현이 붙을수록 더 중요한 말씀으로 생각하는데,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으며 동시에 그 어떤 말씀도 등가성이 있어 더 중하고 덜 중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볼 때 잘 믿지 않을 말씀이면 '진실로'를 붙입니다. 말씀하시는 주님이 이 것은 더 '진짜'라는 것이 아니라 읽는 우리가 더 믿지 않을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또 야곱과 다윗과 솔로몬에게 한 번으로 될 내용을 나누고 반복하고 2 회 3 회 나타 날 때는 어린 사람을 길러 가는 단계단계이거나 나누어서 설명하며 우리에게 구별을 가르치는 경우 등입니다. 따라서 이런 대목은 읽으며 궁금할 때 바로 답을 내려 하지 말고 길러 가시는 '유기적' 인도의 시각으로 다시 보면 대개 거의 답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차의 바퀴가 1 개면 더 나은데 왜 4 개일까? 5 세 아이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발 자전거와 세 발 자전거를 타 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어릴 때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숙달이 되고 기술자가 되면 바퀴 숫자를 줄이며 묘기를 보이게 됩니다. 성경의 기록을 두고 어떤 부분은 너무 줄이고 어떤 부분은 기록조차 하지 않고 어떤 부분은 왜 두 단계로 나누고 심지어 꼭 같은 표현을 두 번 했는지.. 이 부분은 질문자께서 직접 답을 적어 봐 보시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진행이 어려운 단계는 이 곳에서 안내를 하면 더 낫고, 방향만 알면 직접 다시 읽을 때 더 나을 것으로 보는 질문은 방향만 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히람에게 준 성읍)
아브라함이 창세기 14장의 전쟁에서 9개 나라의 사람과 재산을 모두 가지게 되었을 때 불신 이웃들에게 비용만 빼고 전부 돌려 줍니다. 그 시대의 세상 사람이 그들 기준으로 봐도 너무 파격적으로 넘치게 준 것입니다. 모세가 가나안으로 들어 가기 위해 에돔에 길을 요구할 때는 에돔 왕이 거절해도 싸우지 않았습니다. 바산왕 옥에게는 전멸을 시키며 점령해 버렸습니다. 구약의 모든 처분을 면밀히 보면 같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최대치로 베풀지만 불신 이웃에게는 전멸과 타협과 거래와 최소 비용으로 지나 가는 사례들이 섞여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두로의 경우는 가나안 내부가 아니므로 무조건 진멸 시킬 대상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북쪽에서 접하고 있는 두로란 아주 부강한 불신 나라인데 이스라엘이 주인이 되고 이 나라가 선한 이웃이 되어 이스라엘을 돕게 되면 성전을 지을 때 히람처럼 큰 역할도 하고, 아합 때처럼 두로와 하나처럼 되어 있는 시돈 왕의 딸이 왕비로 오게 되면 이스라엘이 끝장 나는 일도 생깁니다. 오늘 우리로 말하면 세상 밖으로 나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세상과 뒤섞일 수도 없습니다. 주일의 행사가 있으면 외면해야 하고 평일에 교회 주변의 동네가 청소를 하자고 제안하면 교회도 마치 주민의 일부처럼 빠질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서부교회가 주일학생 때문에 일대 주택가의 쓰레기 문제가 심각해 지자 매 월요일 새벽 예배가 마치면 전 교인이 마을 청소를 해 주었습니다. 어떤 때는 수재민 돕기를 한다며 동사무소의 부탁을 받아 성의 표시를 했는데 그 분량이 너무 미미해서 공무원들이 속으로 욕을 할 정도였으나 서부교회는 세계 10대 교회이든 시절에도 교회 본당에 페인트 칠도 하지 못할 만큼 실제로는 돈이 없었으나 평소 사용하는 비율 대비로 보면 서부교회는 성의를 보였으나 불신자들은 욕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체질적으로 남에게 많이 베푸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도 자기처럼 교회 주변에 큰 인심을 베풀어야 덕이 되고 전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 운동에 안팎을 면밀하게 계산을 한 다음 더도 덜도 말고 주님의 인도에 따라 씨와 양식을 구별해서 처리합니다. 그 결과가 속 모르는 사람에게는 많아 보일 때도 있고 너무 인색하다고 비판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서부교회 주교가 한창일 때는 모든 교계와 사회가 버려 두는 소외 계층 아동을 위해 이렇게 수고를 한다며 세계 제일의 아동 사랑, 복지하는 교회라고 극찬하는 말이 많았습니다. 실은 우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전도했을 뿐입니다.

이런 면을 고려하고 히람에게 준 성읍을 짐작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성읍의 규모나 가치 등을 두고 구체적인 표현이 있었으면 질문을 할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성경에 평가까지 했다면 더욱 질문 대상이 아닙니다. 아주 간단히 줄여 놓았습니다. 더 이상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을 때는 평소 성경 전체를 신령하게 정확하게 풀고 안내해 온 시대적인 스승에게 여쭙고 그런 분들의 가르침을 참고하면 참 좋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 대해서는 그런 힌트가 없다면, 우리는 평소 다른 부분을 배우고 또 실제 살면서 깨달아 본 것으로 비교해 보면 성경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조차 더 명확한 부분을 먼저 깨닫고 더 밝아 진 심령으로 대하면 낫게 됩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들어 가면서 점점 나아 집니다. 히람의 20개 성읍을 두고 먼저 설명한 내용을 상식으로, 그리고 추가한 몇 가지 사례를 가지고 솔로몬의 전체 상황과 성전을 두고 세상을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는지, 또 어느 정도 오갈 수 있는지, 또 복음에 사용할 역량 중 어느 정도를 지출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때 솔로몬의 심령이 어두워 훗날처럼 오판할 때인지 아니면 주님과 세미한 것까지 동행하는 시기여서 솔로몬의 모든 결정은 하나님의 결정으로 봐도 되는지.. 이렇게 살피다 보면 답이 없는 질문에 대하여 거의 답을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솔로몬의 다른 건축들)
기본적으로 '성전'의 건축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 설계와 준비와 물품과 건축 과정 전부에 인간 생각이 들어 가는 순간 마귀의 집이 되어 버립니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전체 흐름을 볼 때 솔로몬이 앞에 나서서 지었지만 실은 하나님의 건축이었습니다. 그리고 궁들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왜 궁궐이 성전보다 컸을까? 심장이 작고 손발이 커다 하여 중요성과 가치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성전은 하나님만 모시는 곳이고, 이 곳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가 되면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 '보호' '지도'는 왕궁에서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남들이 잘 모르고 그 은혜 때문에 죽자고 충성하고 순교한 활동이 우리 눈에는 크게 보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원수를 사랑하게 된 것은 기도 중 하나님과 은밀하게 맺어 진 관계 때문인데, 사람들의 눈에는 그 뉴스만 오늘까지 크게 남아 있습니다. 교회의 강단은 손바닥처럼 작고 교회의 교인 좌석은 넓을수록 좋은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명의 운동이 잘 진행 되려면 화장실도 필요하고 주차장도 필요합니다. 주일학교도 필요하고 회계부도 필요하고 대문에는 관리원인 사찰도 필요합니다. 이 것이 솔로몬이 이스라엘 곳곳에 세운 건축입니다.

하나님과 멀어 지면, 이후 활동은 필요한 것을 해도 망하고 안해도 망하고 전부는 죄와 멸망뿐입니다. 솔로몬이 바르게 나갈 때는 불신 나라와의 결혼조차 그 나라를 이스라엘의 것을 만들고 이용물로 만드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잘못 되면 그렇게 하려고 데려 온 여자가 솔로몬과 하나님을 끊어 놓고 하나님 나라를 자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건설은 보이는 것이고, 이 것은 신약의 오늘 우리의 내면 신앙과 각 교회의 신령한 면에 건설로 보면 좋겠습니다. .


(9장의 전체 흐름)
일단 다시 설명 드린 내용을 가지고 9장과 주변을 살펴 보면 좋겠습니다. 또 질문 외의 모든 성경을 읽을 때도 이 곳에서 안내하는 내용의 한 대목보다는 기본적으로 성경을 읽는 자세나 방향을 참고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도저히 막혀서 더 이상이 곤란할 때는 항상 적어 주시면 함께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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