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는 '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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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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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8 12:43
백 목사님의 설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하루 70번씩 7번, 490번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말씀으로 우리의 연약성과 우리의 회개를 말합니다.
마태복음 18장 22절에는 '하루'라고 한정하지 않았는데 왜 '하루'를 굳이 말씀하셨을까요? 강조를 위한 것이지만 성경의 인용이 문제가 되면 귀한 교훈에 흠을 잡히기 때문에 문의 드립니다.
1. 행위구원
건설구원은 매 현실마다 마음과 몸이 죄를 지으면 죄 지은 마음과 몸의 행위는 사망이고, 의를 행하면 의를 행한 마음과 몸의 행위는 영생합니다. 그래서 건설구원을 행위구원이라고도 합니다.
매 현실마다 마음과 몸의 행위가 죄나 의로 결정됩니다. 그 매 현실의 마음과 몸의 행위가 하루에 수십 번일까요, 수백 번일까요, 수천 번일까요? 그것은 본인이 죄를 인식하는 범위에 따라 달라집니다. 신앙이 어려 죄의 인식이 좁으면 횟수가 적다고 할 것이고, 신앙이 장성해 죄의 인식이 넓으면 횟수가 많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남들은 성자라 했지만 자기는 죄인 중에 괴수라 했습니다.
2. 실례
말로 예를 든다면 구원에 유익이 되는 참말을 하면 의고, 구원에 손해가 되는 거짓말을 하면 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루에 하는 수십, 수백의 말들이 구원에 유익된 참말이 아니면 전부 거짓말로 죄입니다. 말 하나만 놓고도 하루에 수십, 수백의 죄를 짓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루 짓는 죄를 전부 합하면 쉽게 수백, 수천이 됩니다.
3. 하루 490번
또한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롬14:23). 하나님이 시켜서 한 것이 아니면 말이든, 행동이든, 욕심이든, 감정이든 무엇이든지 다 죄가 됩니다. 이것을 다 모으면 하루에 죄가 쉽게 수백, 수천이 됩니다.
성경에 없는데 '하루'를 붙인 것은 강조를 위해서 붙인 것이 아니라 실제 하루에 그 이상의 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실제를 말하기 위해서 붙인 것입니다.
건설구원은 매 현실마다 마음과 몸이 죄를 지으면 죄 지은 마음과 몸의 행위는 사망이고, 의를 행하면 의를 행한 마음과 몸의 행위는 영생합니다. 그래서 건설구원을 행위구원이라고도 합니다.
매 현실마다 마음과 몸의 행위가 죄나 의로 결정됩니다. 그 매 현실의 마음과 몸의 행위가 하루에 수십 번일까요, 수백 번일까요, 수천 번일까요? 그것은 본인이 죄를 인식하는 범위에 따라 달라집니다. 신앙이 어려 죄의 인식이 좁으면 횟수가 적다고 할 것이고, 신앙이 장성해 죄의 인식이 넓으면 횟수가 많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남들은 성자라 했지만 자기는 죄인 중에 괴수라 했습니다.
2. 실례
말로 예를 든다면 구원에 유익이 되는 참말을 하면 의고, 구원에 손해가 되는 거짓말을 하면 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루에 하는 수십, 수백의 말들이 구원에 유익된 참말이 아니면 전부 거짓말로 죄입니다. 말 하나만 놓고도 하루에 수십, 수백의 죄를 짓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루 짓는 죄를 전부 합하면 쉽게 수백, 수천이 됩니다.
3. 하루 490번
또한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롬14:23). 하나님이 시켜서 한 것이 아니면 말이든, 행동이든, 욕심이든, 감정이든 무엇이든지 다 죄가 됩니다. 이것을 다 모으면 하루에 죄가 쉽게 수백, 수천이 됩니다.
성경에 없는데 '하루'를 붙인 것은 강조를 위해서 붙인 것이 아니라 실제 하루에 그 이상의 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실제를 말하기 위해서 붙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7:4에서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은 생략을 통해 가르치는 것이 많고, 또 이중 기록을 통해 각 위치에 필요한 말씀을 하면서도 맞춰 보면 합해 지며 가르치는 것도 있고, 5병2어와 7병2어 또는 마리아가 향유를 머리와 발에 각각 부은 것은 다른 사건인데 다른 사건의 다른 기록을 합해 봐야 더 잘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백 목사님은 평생 마18장에 490번을 하루로 설교를 했습니다. 첫 설명은 목사님의 해석에 근본에 해당 되고 성구를 굳이 참고한다면 눅17장을 비교하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성경의 해석을 이렇게 할 수 있도록 기록해 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를 통해 나머지를 다 알 수 있는 것도 있고, 하나 둘을 통해 나머지를 알리려 하실 때는 두어 가지를 기록한 경우도 있으며, 굳이 적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모두 생략한 것이 성경 기록의 원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