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과 전쟁 직후의 당시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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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전쟁 직후의 당시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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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에서 물고기 잡기


통합교단은 그들의 교리나 사상이 신사참배를 했든 말았든 상관하지 않는 곳입니다. 설마 해도 된다고야 하겠습니까만 그들의 언행을 자세히 추적해 보면 신사참배 승패는 그리 중요한 것이 되지 않습니다. 교회라는 간판만 붙으면 된다는 사상을 가진 곳입니다.


해서 안 된다는 강한 의지와 발표가 있고 투쟁성이 있다 해도 막상 부딪히면 실패하고 넘어 지는 것인데 통합의 출발과 사상이 넓은데 신사참배를 이겼다고 한다면 우스운 일입니다. 통합교단은 신사참배를 무참하게 실패했거나 아니면 자진해서 앞 장 선 분들이 만든 곳입니다. 혹은 버티다 항복했거나 아니면 신사참배 앞에 무릎을 꿇은 이들을 동조하는 이들입니다.


2. 논문이나 발표의 시점


통합교단, 특히 순천노회가 신사참배를 두고 자기들 잘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시기를 봐 주시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해방 직후에는 모두가 어제 일이기 때문에 조작할 수도 없고 세상 분위기까지도 친일파들에게 험악했기 때문에 신사참배를 했던 통합교단의 당시 이름인 총회파들은 친일을 하게 된 변명에 급급했지 자신들이 일본을 상대로 투쟁했다는 소리는 아예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통합교단 쪽은 고신이 신사참배를 승리했으나 해방 후에 교단해서 실패했다고 기술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관련자들이 다 죽거나 죽기 직전의 힘 없는 상태가 되고 또 신사참배 승패라는 단어가 수십 년 동안 늘 교계 논쟁에서 정통성에 중심에 서게 되자 통합은 그들이 늘 밀렸던 신사참배 논쟁에서 잃은 입지를 되찾고자 반격에 나섭니다. 갑자기 순천 지역에 전국의 신사참배 반대에 마치 중심지나 되는 듯한 발표들이 줄을 잇고 나섭니다. 마치 북한의 평양이 그들 주장에 의하면 북한 주민들에게는 세계 중심지가 되고 세계는 평양을 사모한다는 정도로 교육하던 것을 연상 시킬 정도입니다.


3. 발표 단어를 주목하셨으면


순천노회가 신사참배를 항거하였다고 써 먹는 말에는 늘 '수난'이 나옵니다. 애양원 쪽에서 나오는 발표에도 그렇고 부근 유적지에서도 그렇습니다. 묘한 말 장난입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단번에 알아 차립니다. 신사참배 사건에 실패를 자인한 단어라는 뜻입니다.


신사참배 문제를 두고 '승리'라는 단어가 나오면 고신 쪽이고 신사참배 문제로 '고생을 했다'는 표현을 하게 되면 실패한 통합이 자기 변호를 위해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수난'이란 고생을 당했다는 뜻입니다. 하기 싫은 신사참배를 결국 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일제가 신사참배 문제를 들고 나왔을 때 처음부터 환영한 곳은 없습니다. 우려했고, 알고 보니 할 수 없는 일이라 반대했고, 그러나 총독부가 서슬 퍼렇게 압박하자 돌아 섰고, 한 쪽에서는 버텼고 한 쪽에서는 도망 갔고, 결국 잡아 들이고 옥고와 고문을 가하게 되자 차례로 전부 돌아 서서 신사참배를 했거나 피했을 뿐입니다. 끝까지 버티고 이긴 사람의 숫자는 거의 없습니다. 순천노회 스스로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통합 교단의 역사가 사실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기 싫은 신사참배를 버티다가 결국은 다 하게 되었기 때문에 순천노회가 할 수 있는 표현은 '수난', 즉 환란을 당했다는 것이지 이겼다는 것은 아닙니다.


4. 역사의 현장 기록


손양원 목사님의 전기는 실은 그 분 생전에 나왔습니다. 손 목사님은 1950년에 돌아 가셨지만 그 두 아들이 1948년에 먼저 돌아 가셨습니다. 아들 두 명의 순교와 원수를 양아들로 삼은 것을 고신의 안용준 목사님이 전기로 출간했는데 이 과정에서 손 목사님의 내력이 전부 다 공개가 되었습니다. 이 때는 순천노회가 속한 통합 교단이니 합동교단이니 또는 통합과 합동이 모였던 총회파가 고신과 한 교단을 이루고 있을 때입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전기는 손 목사님 사후에 2부가 붙어 지면서 손 목사님의 순교 대목이 추가 됩니다. 여기에서 손 목사님의 신사참배 거부 과정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애양원이 속했던 순천노회의 전체 분위기가 잘 나타 나고 있습니다. 해방 직후는 친일파가 돈과 권력은 유지할 수 있었다 해도 감히 큰 소리 치고 잘했다고 떠들지는 못했던 시기입니다. 상황 이론을 통해 어쩔 수 없었다고 굽히던 때입니다.


5. 왜 1 명도 없다 하는가?


신사참배 박해를 피해 숨어 도망 다닌 분들은 있어도 정면에 나서서 반대하고 잡혀 가고 옥고를 치른 분들은 애양원에 단 1 명도 기록에 나오지 않습니다. 있었다면 손 목사님 전기집에 언급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애양원은 수용 시설이었고 엄하게 관리가 되던 곳입니다. 일반 자연 마을처럼 경찰력이 뻗치지 않는 곳이 아닙니다.


전쟁 시기에도 마찬 가지입니다. 나환자 시설이어서 점령 계획의 우선 순위 때문에 점령군들은 일단 전선의 승리와 일반 사회의 안정을 먼저 확보한 다음 수용 시설 안에 있는 환자들을 접수하려 했고 그 것은 독 안의 쥐와 같다고 생각해서 일일이 조사하여 압박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손 목사님만 당당하게 맞섰고 그 외에는 맞설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손 목사님이 돌아 가신 후 2 년쯤 후에 정양순 사모님은 손 목사님의 신앙 노선에 반대하는 애양원을 등 지고 애양원 바로 앞의 자연 마을에 신풍교회를 개척합니다. 이 때는 한반도의 남쪽은 전쟁이 끝났을 때였고 신사참배와 같은 일제 말기도 아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애양원의 관리권을 쥐고 있는 미국의 남장로교 선교부가 신사참배 승패 문제를 따지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하고 신사참배를 승리한 고신 측을 적대하면서 그 쪽에 서게 되면 애양원에서 쫓아 낸다고 하자 아무도 사모님을 따라 나서지 못합니다.


평화시에 선교부의 지시 하나 때문에 손 목사님의 신앙 노선을 알면서도 손 목사님의 신앙 노선에서 출발하는 사모님의 개척을 모두 외면했다는 사실 하나에서만 봐도 순천노회의 신사참배 승리니 수난이니 하는 문제는 패전한 분들의 변명과 미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제 말기에 학교를 자진 폐쇄한 것을 보통 신사참배 항거라고 하는데 그 것은 항거가 아니라 항복입니다. 당시 이 땅에 선교사들이 모국인 미국과 일본의 전쟁 때문에 미국 시민들은 적대국 시민으로 체포한다고 하자 모두 미국으로 돌아 갑니다. 이 역시 환란의 승패나 양 떼에 대한 책임이라는 표현은 안중에 없는 경우입니다. 선교라는 업무를 하러 나온 사람들이지 복음을 위해 밤중 최종 환란을 양 떼와 함께 맞선다는 목자의 개념 자체를 몰라서 나온 행동이었습니다.


6. 이 노선은 최종을 주목합니다.


학생의 실력은 평소 학교를 잘 다니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것으로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으나 시험을 쳐 봐야 드러 난다고 생각을 합니다. 평소 잘 믿는 것은 그 것대로 좋으나 평소 잘 믿는 것은 앞 날을 위한 준비지 최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평소 경제 어려움에 부대끼고 항복하고 죄를 짓고 주일도 없는 사람들이라면 환란은 생각해 볼 것도 없습니다. 평소 배고픔을 이기고 여러 환란을 다 이겨도 마지막에 목숨 문제가 걸리고 자기의 세상 최고의 가치가 걸릴 때, 그런 최종의 단계에서 신앙이란 신앙이었느냐는 것이 결정이 됩니다.


이 노선은 평소는 신앙의 기본이므로 따로 평가할 것도 없이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평소는 사람 따라 교회 따라 형편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보고 또 자라 나가는 과정이므로 시행착오도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목숨이 걸리든지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고 싶은 자기의 가장 귀한 것이 걸렸을 때 이런 최종 순간을 기준으로 신앙을 따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고생하다 포기를 한 경우는 무릎을 꿇은 것은 최종을 기준으로 평가할 때는 마태복음 25장에서 어리석은 처녀로 보지 지혜로운 처녀로 보지 않습니다. 즉, 이 노선은 그 평가의 기준이 좀 높은 편입니다. 그렇다고 평소의 어린 신앙이 자라 가는 과정에 격려와 배려와 기다림을 무시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노선은 환란 중에 피할 길을 내셔서 피하는 것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으나, 환란 중에 맞서 이기라고 인도하시면 현장을 사수하며 예배 모임과 평소 신앙 생활을 사수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음으로 끝나지 밀려서 도망 다니는 것은 수난은 될지라도 승패로 나눌 때는 실패라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애양원에는 손 목사님 1 명 외에 일반 교인으로서는 단 1 명도 신사참배와 6.25 전쟁기에 승리자를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손 목사님의 과거를 가지고 애양원이 천문학적 국가 예산을 유치하여 사업을 하고 있으니 별별 미화가 다 있으나 그 미화마저도 손 목사님의 신앙 근처에 간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원불교에서 원불교 중들을 가르치는 인물이 애양원에 400억 국고 지원에 앞 장을 섰다고 사진을 함께 찍고 있는데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 외부인 님이 쓰신 내용 <<

:

: 애양원 쪽에서 들으면 많이 섭섭할 말입니다만 답변자께서 손양원 목사님 1명만 승리했지 나머지 교인으로서는 승리한 사람이 없다 하시는 표현이 많습니다. 순천노회는 매산학교를 폐쇄하고 노회적으로 신사참배를 항거하는 결의를 했고 일경에 의한 신사참배 거부 교역자의 수난사건으로 유명하며 관련 논문이나 발표도 많았습니다. 오히려 타 노회에 비하여 격렬했다고 보이며 순천지방을 맡은 남장로교는 미국의 보수주의 신앙을 가진 곳이어서 투쟁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 순천지역의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이 지역에서는 자부심을 가질 정도입니다. 물론 그 한가운데는 손양원 목사님의 애양원이 있습니다만 순천노회가 범 지역적으로 단결하고 항거한 기록은 적지 않고 여순사건이나 6.25전쟁 때에도 순교자가 많이 났습니다. 기독교기념관에도 자료가 많은 것을 봤습니다.
애양원에는 신앙 승리자가 1명도 없다 하심
애양원 쪽에서 들으면 많이 섭섭할 말입니다만 답변자께서 손양원 목사님 1명만 승리했지 나머지 교인으로서는 승리한 사람이 없다 하시는 표현이 많습니다. 순천노회는 매산학교를 폐쇄하고 노회적으로 신사참배를 항거하는 결의를 했고 일경에 의한 신사참배 거부 교역자의 수난사건으로 유명하며 관련 논문이나 발표도 많았습니다. 오히려 타 노회에 비하여 격렬했다고 보이며 순천지방을 맡은 남장로교는 미국의 보수주의 신앙을 가진 곳이어서 투쟁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순천지역의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이 지역에서는 자부심을 가질 정도입니다. 물론 그 한가운데는 손양원 목사님의 애양원이 있습니다만 순천노회가 범 지역적으로 단결하고 항거한 기록은 적지 않고 여순사건이나 6.25전쟁 때에도 순교자가 많이 났습니다. 기독교기념관에도 자료가 많은 것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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