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의 전도 방법론 - 생활 접촉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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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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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9 00:00
11355번에서 잘 설명해 주셔서 추가 답변이 필요 없을 정도이나 간단히 안내 드립니다.
1. 과거 서부교회 주일학교 견학의 경우
- 견학의 규모와 성격
과거 한국 교회에 서부교회 주일학교 견학처럼 대규모와 장기간과 심도 있는 현장 학습 사례가 있었을까? 없지야 않을 듯하나 내용을 깊이 분석하면 단연 최고 최대의 교회사 사례로 평가 될 듯합니다.
우선 서부교회는 거의 모든 교단들에 의하여 이단으로 또는 이단처럼 지탄을 받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한국 교계가 교계적으로 배우겠다고 학습자가 되어 이런 장기간 대규모 방문 학습을 했다는 점은 유례가 없을 것입니다.
둘째, 교파라는 교파를 막론했고 지역과 교회의 대소를 막론했고 신학과 신앙의 형편과 노선을 막론한 방문 학습이었습니다. 거의 전부는 전국에서 직접 와서 배우고 갔지 불러서 강사를 초빙한 경우는 예외적이며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를 걸쳐 계속 이어 졌습니다.
세째, 견학 오신 분들에게 집단 강의식 안내는 그야 말로 브리핑 정도였고, 대부분은 주일학교 반사들이 가는 골목을 직접 따라 가며 봤고 가르치는 시간에 앉아서 서서 목도하며 현장 중심의 학습이었습니다. 대개 이렇게 유명해 지고 나면 하나의 훈련이나 강의 체계를 만들어 돌리는데 원래 서부교회의 신앙이 그렇고 주교가 그러했고 외부의 대규모 방문 학습에도 서부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늘 하는 그대로 보여 준 것으로 전부였습니다.
- 견학자들의 관심사
오시는 분들마다 정말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뉴스 그대로 그러한지 현장 확인의 심리가 강했습니다. 보통 그 어떤 뉴스든지 호평적인 소식은 과장이 많습니다. 실제 보면 뉴스 소개보다는 좀 못한 면이 많습니다. 그러나 서부교회 소식만큼은 와서 보면 뉴스에 담지 못하는 더 놀랄 일들이 많았습니다.
오시는 분들의 두 번째 관심사는 그 비결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대개 첫 마디가 교사 양성 프로그램이나 교육 체계나 자료들을 달라고 합니다. 늘 설명하는 말이지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분들은 서부교회 주교의 성공을 제작하는 설비, 공장, 자격증, 교재 등을 요구했고 서부교회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오시는 분들이 세 번째로 확인하고 얻어 가는 것은 그렇게 전 교인들이 주교 전도에 관심을 갖고 또 목사님은 전력 독촉을 하고 그리고 반사들은 토요일과 주일에 학생의 집집을 직접 방문해서 데려 오니 그런 열정을 부러워했고 교회와 반사들의 특별한 열심을 성공의 열쇠로 보고 갔습니다. 와서 실제 겪어 보면 불덩어리들이어서 화상을 입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시는 분들의 네 번째로 확인하고 간 경우는 설교의 힘이었습니다. 이 대목부터는 오신 분들 중에 알고 간 분들은 적고 모르고 간 분들이 많습니다. 백 목사님은 설교를 참 잘하더라, 특별하더라, 이 정도에서 그친 분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설교는 듣지도 않고 주일학교만 보고 간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복이 있는 분들, 눈이 있는 분들은 열심이라는 것은 내고 싶다고 나오는 것이 아닌데 서부교회는 아무 체계도 교육도 없으니 이는 필시 목회자의 설교의 힘일 것이라고 여겼고, 장년반 예배를 참석하고 나서야 '백영희 없는 서부교회는 없고, 백영희 설교 없는 주교의 노력과 성공은 없다'라는 내면을 본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교를 보러 왔다 주교를 생산하고 움직이는 백영희 설교세계를 접했습니다.
오시는 분들 중에 다섯 번째로 확인하고 발견한 경우는 그 설교가 은혜를 더하고 반사로 하여금 열심을 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교훈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교계 어느 중진의 말씀처럼 또는 교계의 어느 유명 신학교수의 평가처럼 '백영희 설교 세계는 세계적이라, 그의 설교는 역사적이라, 그는 칼빈과 견줄 신앙인이라'는 세계까지를 본 이들이 아주 드물게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주교 견학을 왔다가 서부교회 교인으로 눌러 앉거나 마음에 소망을 강하게 가지고 살게 됩니다. 그런데 아주 드물었습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로 정말 희귀한 경우이며 그 많은 방문인 중에 손으로 꼽는다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라는 숫자는 백영희 설교는 그 속에 기독교 교리사를 잇고 기독교 역사의 새지평을 열 차원이 있다는 의미까지 본 경우가 있었습니다.
2. 주교 전도 대상을 접촉하는 면을 두고
- 전도 지역의 우선 순위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전도 방법은 골목으로 가서 어느 아동들이든지 전도하고 데려 와서 가르치는 것으로 알려 져 있습니다. 당연한 설명이며 가장 중심 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밀 검토를 해 보면 골목들 중에서 자기가 사는 주변이나 연고가 있는 생활 지역의 골목을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반사와 지역이 겹치면 다른 반사가 가지 않은 곳으로 갔습니다. 공회의 전도는 행1:8 말씀처럼 살고 있는 예루살렘과 주변 유다 지역과 붙어 있는 이웃인 사마리아를 거쳐서 땅 끝까지 이르렀습니다.
- 주일학교의 골목 전도
1980년대까지는 이 나라 곳곳의 골목에는 어디든 아동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도서관이 없었고, 학교는 수업 후 아이들을 돌려 보냈고, 일반 학생들은 학원과 과외를 받지 못했으며, TV는 오후 5시 이후가 되어야 켤 수 있었는데 그 TV도 많지를 못했습니다. 심지어 놀이터초차 제대로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당시 '골목'이란 아동들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장소라는 말이지 주택과 주택 사이의 좁은 도로만이 총공회 주일학교의 전도 대상 지역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 다시 분석해 본다면
서부교회는 주일학교의 전도를 두고 '골목'이란 말은, 주택가 좁은 통로를 강조하거나 교리화한 것이 아니고 가장 쉽게 가장 편하게 가장 자연스럽게 가장 많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을 말한 것입니다. 당시 주교 반사들의 직업은 고정 직장을 가진 분들은 거의 없었고 노동이나 보따리 장사나 가정 주부나 학생들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이 자기 사는 곳은 당연히 전도했으나 서부교회 반사들의 주거지는 대개 걸어서 교회를 갈 수 있는 대신동 지역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더 이상 전도할 대상이 없다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서부교회 반사의 활동 무대는 자기 생활 주변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생활 거리에 수십 명 반사들이 서로 교차하여 살고 이미 다 전도가 되어 져 있는 교회 안마당 정도였으므로 차선의 지역인 옆 동네 먼 동네, 심지어 버스를 타고 20 - 30 분 거리로 선교처럼 갔습니다.
- 당시도 면밀히 보면
남들이 무조건 먼 곳으로 가니까 따라 간 사람이 있었고, 이미 서부교회 생활 거리에 서부교인들만 살고 있다 하던 때에 새로 반사를 시작하면서 서부교회 대문에서부터 전도하여 서부교회 직선거리 200 미터 정도에서 반을 형성할 수 있는 학생을 전도한 반사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없다 해도 또 처음부터 뒤지면서 서부교회 바로 주변에 누락 된 학생들이었습니다. 당시 교사는 자기 반 학생들을,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분은 종업원들의 식구들을 통해 학생들을 데려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직장이 많지 않고 그런 여건을 가진 분들이 너무 적어서 서부교회 주교의 일반 현상으로 관찰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골목 전도만이 전도가 아니었고, 골목 전도는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관찰자의 착시였고 내용을 몰랐으며 전도의 본질을 보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3. 오늘 우리의 형편
오늘도 어느 특수한 상황 때문에 주택가 골목이 아동의 전도 대상으로 다가 온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초등학교들이 수 없는 방과 후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정규 수업 이후 형편이 좀 곤란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저녁 식사 시간 직전까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바람에 학교 안이 전도할 기회가 된다면 오늘의 골목은 초등학교 운동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아동 대상 범죄 때문에 전국의 학교가 출입자를 조사하는 상황에서는 일반 반사들이 방과 후 초등학교 복도나 운동장을 골목으로 삼을 수 없는 경우일 것입니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주교 반사가 초등학교 방과 후 교사라면 자기의 시간을 활용해서 종교 편향의 시비를 받지 않으면서 전도할 기회로 삼는다면 그 분에게는 방과 후 초등학교 교실 안에서 이뤄 지는 학습 공간과 시간과 기회가 오늘의 자기 골목일 수 있습니다.
대학 교수인 반사가 자기 지도하는 20대 학생들의 조카나 동생을 전도하기 위해 주력한다면 그 교수는 자기 연구실이나 대학 강의 기회가 자기 골목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직장이 엄청 나게 많아 졌습니다. 동네 구멍 가게를 운영한다면 찾아 오는 동네 손님들의 자녀를 상대로 자기 구멍 가게를 자기 골목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답변자 교회는 교회 이름으로는 예배와 신앙 관련의 직접적인 일 외에는 무조건 다 금지해 왔습니다. 농어촌 마을의 교회가 유아원 유치원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되면 운영비 지원이나 시설 개선자금이나 종사자 월급 지원 등의 조건 제시를 포함해서 별별 기회가 다 있었고 주변 모든 교회들이 그런 사업을 교회의 존재 이유나 전도의 본질적 요소로 삼는 정도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은 없었습니다.
대신 답변자가 국가의 법령이나 행정 제도나 예산 체계에 대해 백 목사님께 배운 것이 있어 교인들 중에서 공회의 이 노선 신앙생활에 열중하면서도 할 수 있는 직업들을 권한 적이 있었습니다. 주로 아동 관련 교육 복지 분야입니다. 지금은 사회적으로 아주 흔하게 되었으나 답변자가 교인들에게 처음 소개할 때는 아는 분들이 희귀했습니다. 그래서 경제나 자격증이나 그 면의 상식이나 여건을 전혀 갖추지 못한 교인들까지 평생 직장으로 삼아 이 노선에서 생활과 충성을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하게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들이 자기가 일상 직업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접촉하는 학생들을 전도한다면 이는 그들에게 21세기의 '과거 서부교회 주교의 골목 전도'에 있어서 '골목'이라고 하겠습니다.
4. 과거 기독지혜사 출간 책자에서도 설명했듯이
전반적으로는 1980년대 서부교회 주교 활동을 중심으로 그 책을 적었지만 그 내용에는 곳곳에 앞 날을 두고 미리 말씀 드린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벌써 1982년 경부터 백 목사님은 1980년대의 주교 전도 상황이 항상 계속 될 것이 아니므로 변화 된 상황에 오늘의 정신과 충성이 어떻게 표출 되어야 할지를 강하게 말씀하신 기록들이 있습니다. 답변자는 이 면을 남 달리 기억할 위치였고 상기 책자는 그 후 10여 년 뒤에 출간한 것입니다. 당연히 1980년대의 절정의 단면을 소개하면서 바뀔 상황을 담았으며 1997년에 '서부교회 주교목회1'권에서도 이 면을 말씀 드렸습니다.
서부교회 주교의 겉 모습은 모든 시대, 모든 교회, 모든 교파가 무조건 옮겨서 배껴야 하는 교리가 아닙니다. 1980년대 전성기의 그 모습을 만든 내용, 그 내용에 흐르는 신앙과 교훈과 교리가 무엇인지를 읽지 못하면 역사에 사라 진 수 많은 성공 이야기 중에 하나로 밖에 남지 않습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교리서를 출간하면서 그 내용 안에 서부교회 주일학교 운영안 중에 신발을 벗고 신발 주머니에 넣는다는 내용까지 담았는데 그 선교사님이 반사를 하던 시절에는 주머니가 있었으나 그 분이 떠난 뒤에는 그 마루를 뜯어서 신발 주머니가 없이 운영이 되었습니다. 신발 주머니에 신발을 넣는다는 것을 교리책에 교리로 소개하는 것은 영락 없는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예배당 안에서 아동들을 조심 시키는 것이 불변의 진리입니다.
결론적으로, 원칙은 이제 설명을 드렸고 구체적인 방법은 자기 현실에서 서부교회 주교 운영안의 성경적이고자 했던 내용과 신앙과 원칙을 살펴 볼 때 각 교회와 반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찾아 보면 이런 문제는 고등수학처럼 어렵게 풀 필요가 없이 바로 답은 나올 것입니다. 답변자는 현재 그 답을 조금 찾아서 오늘의 골목에서 학생들을 좀 모시고 있습니다.
현재 '리' 단위 옛날 시골 교회에 주교생의 출석이 매주 100 명이 넘고 있습니다. 200 미터 옆에 있는 초등학교 전교생이 70여 명입니다. 그리고 이 학교로 학생을 보내는 마을에 있는 교회가 7 개입니다. 안 믿는 가정 학생만 20여 명을 유지하는 반사 선생님이 있습니다. 다른 교회들의 다른 골목은 잘 모르겠습니다. 10 리 정도 떨어 진 곳에는 면소재지가 있고 그 곳의 초등학교 학생수도 이 곳 마을 학교와 비슷합니다. 전남 지역은 면 소재지 외에는 초등학교가 거의 다 폐교 되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서부교회 주교의 겉 모습은 없어 졌으나 그 내용은 오늘도 자기 지역의 골목을 발견하고 예전의 그 신앙을 참고하면 오늘에 주시는 은혜의 세계는 오늘에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 주교간사 님이 쓰신 내용 <<
:
: 주교를 맡고 있습니다. 워낙 유명하고 잘 알려져 있어 소상하게 연구를 했습니다. 알고 싶은 것은 과거 골목으로 나가서 선교하듯 만나는 대로 데려오던 시절과 지금 운영자 교회를 전해 들은 내용에 의하면 아동시설들을 앞세워 데려 오는 것은 서부교회 주일학교 운영의 철학에 자체 모순이 있는 것은 아닌지, 또는 오늘의 새로운 방법인지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과거 서부교회 주일학교 견학의 경우
- 견학의 규모와 성격
과거 한국 교회에 서부교회 주일학교 견학처럼 대규모와 장기간과 심도 있는 현장 학습 사례가 있었을까? 없지야 않을 듯하나 내용을 깊이 분석하면 단연 최고 최대의 교회사 사례로 평가 될 듯합니다.
우선 서부교회는 거의 모든 교단들에 의하여 이단으로 또는 이단처럼 지탄을 받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한국 교계가 교계적으로 배우겠다고 학습자가 되어 이런 장기간 대규모 방문 학습을 했다는 점은 유례가 없을 것입니다.
둘째, 교파라는 교파를 막론했고 지역과 교회의 대소를 막론했고 신학과 신앙의 형편과 노선을 막론한 방문 학습이었습니다. 거의 전부는 전국에서 직접 와서 배우고 갔지 불러서 강사를 초빙한 경우는 예외적이며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를 걸쳐 계속 이어 졌습니다.
세째, 견학 오신 분들에게 집단 강의식 안내는 그야 말로 브리핑 정도였고, 대부분은 주일학교 반사들이 가는 골목을 직접 따라 가며 봤고 가르치는 시간에 앉아서 서서 목도하며 현장 중심의 학습이었습니다. 대개 이렇게 유명해 지고 나면 하나의 훈련이나 강의 체계를 만들어 돌리는데 원래 서부교회의 신앙이 그렇고 주교가 그러했고 외부의 대규모 방문 학습에도 서부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늘 하는 그대로 보여 준 것으로 전부였습니다.
- 견학자들의 관심사
오시는 분들마다 정말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뉴스 그대로 그러한지 현장 확인의 심리가 강했습니다. 보통 그 어떤 뉴스든지 호평적인 소식은 과장이 많습니다. 실제 보면 뉴스 소개보다는 좀 못한 면이 많습니다. 그러나 서부교회 소식만큼은 와서 보면 뉴스에 담지 못하는 더 놀랄 일들이 많았습니다.
오시는 분들의 두 번째 관심사는 그 비결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대개 첫 마디가 교사 양성 프로그램이나 교육 체계나 자료들을 달라고 합니다. 늘 설명하는 말이지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분들은 서부교회 주교의 성공을 제작하는 설비, 공장, 자격증, 교재 등을 요구했고 서부교회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오시는 분들이 세 번째로 확인하고 얻어 가는 것은 그렇게 전 교인들이 주교 전도에 관심을 갖고 또 목사님은 전력 독촉을 하고 그리고 반사들은 토요일과 주일에 학생의 집집을 직접 방문해서 데려 오니 그런 열정을 부러워했고 교회와 반사들의 특별한 열심을 성공의 열쇠로 보고 갔습니다. 와서 실제 겪어 보면 불덩어리들이어서 화상을 입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시는 분들의 네 번째로 확인하고 간 경우는 설교의 힘이었습니다. 이 대목부터는 오신 분들 중에 알고 간 분들은 적고 모르고 간 분들이 많습니다. 백 목사님은 설교를 참 잘하더라, 특별하더라, 이 정도에서 그친 분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설교는 듣지도 않고 주일학교만 보고 간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복이 있는 분들, 눈이 있는 분들은 열심이라는 것은 내고 싶다고 나오는 것이 아닌데 서부교회는 아무 체계도 교육도 없으니 이는 필시 목회자의 설교의 힘일 것이라고 여겼고, 장년반 예배를 참석하고 나서야 '백영희 없는 서부교회는 없고, 백영희 설교 없는 주교의 노력과 성공은 없다'라는 내면을 본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교를 보러 왔다 주교를 생산하고 움직이는 백영희 설교세계를 접했습니다.
오시는 분들 중에 다섯 번째로 확인하고 발견한 경우는 그 설교가 은혜를 더하고 반사로 하여금 열심을 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교훈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교계 어느 중진의 말씀처럼 또는 교계의 어느 유명 신학교수의 평가처럼 '백영희 설교 세계는 세계적이라, 그의 설교는 역사적이라, 그는 칼빈과 견줄 신앙인이라'는 세계까지를 본 이들이 아주 드물게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주교 견학을 왔다가 서부교회 교인으로 눌러 앉거나 마음에 소망을 강하게 가지고 살게 됩니다. 그런데 아주 드물었습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로 정말 희귀한 경우이며 그 많은 방문인 중에 손으로 꼽는다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라는 숫자는 백영희 설교는 그 속에 기독교 교리사를 잇고 기독교 역사의 새지평을 열 차원이 있다는 의미까지 본 경우가 있었습니다.
2. 주교 전도 대상을 접촉하는 면을 두고
- 전도 지역의 우선 순위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전도 방법은 골목으로 가서 어느 아동들이든지 전도하고 데려 와서 가르치는 것으로 알려 져 있습니다. 당연한 설명이며 가장 중심 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밀 검토를 해 보면 골목들 중에서 자기가 사는 주변이나 연고가 있는 생활 지역의 골목을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반사와 지역이 겹치면 다른 반사가 가지 않은 곳으로 갔습니다. 공회의 전도는 행1:8 말씀처럼 살고 있는 예루살렘과 주변 유다 지역과 붙어 있는 이웃인 사마리아를 거쳐서 땅 끝까지 이르렀습니다.
- 주일학교의 골목 전도
1980년대까지는 이 나라 곳곳의 골목에는 어디든 아동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도서관이 없었고, 학교는 수업 후 아이들을 돌려 보냈고, 일반 학생들은 학원과 과외를 받지 못했으며, TV는 오후 5시 이후가 되어야 켤 수 있었는데 그 TV도 많지를 못했습니다. 심지어 놀이터초차 제대로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당시 '골목'이란 아동들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장소라는 말이지 주택과 주택 사이의 좁은 도로만이 총공회 주일학교의 전도 대상 지역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 다시 분석해 본다면
서부교회는 주일학교의 전도를 두고 '골목'이란 말은, 주택가 좁은 통로를 강조하거나 교리화한 것이 아니고 가장 쉽게 가장 편하게 가장 자연스럽게 가장 많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을 말한 것입니다. 당시 주교 반사들의 직업은 고정 직장을 가진 분들은 거의 없었고 노동이나 보따리 장사나 가정 주부나 학생들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이 자기 사는 곳은 당연히 전도했으나 서부교회 반사들의 주거지는 대개 걸어서 교회를 갈 수 있는 대신동 지역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더 이상 전도할 대상이 없다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서부교회 반사의 활동 무대는 자기 생활 주변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생활 거리에 수십 명 반사들이 서로 교차하여 살고 이미 다 전도가 되어 져 있는 교회 안마당 정도였으므로 차선의 지역인 옆 동네 먼 동네, 심지어 버스를 타고 20 - 30 분 거리로 선교처럼 갔습니다.
- 당시도 면밀히 보면
남들이 무조건 먼 곳으로 가니까 따라 간 사람이 있었고, 이미 서부교회 생활 거리에 서부교인들만 살고 있다 하던 때에 새로 반사를 시작하면서 서부교회 대문에서부터 전도하여 서부교회 직선거리 200 미터 정도에서 반을 형성할 수 있는 학생을 전도한 반사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없다 해도 또 처음부터 뒤지면서 서부교회 바로 주변에 누락 된 학생들이었습니다. 당시 교사는 자기 반 학생들을,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분은 종업원들의 식구들을 통해 학생들을 데려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직장이 많지 않고 그런 여건을 가진 분들이 너무 적어서 서부교회 주교의 일반 현상으로 관찰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골목 전도만이 전도가 아니었고, 골목 전도는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관찰자의 착시였고 내용을 몰랐으며 전도의 본질을 보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3. 오늘 우리의 형편
오늘도 어느 특수한 상황 때문에 주택가 골목이 아동의 전도 대상으로 다가 온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초등학교들이 수 없는 방과 후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정규 수업 이후 형편이 좀 곤란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저녁 식사 시간 직전까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바람에 학교 안이 전도할 기회가 된다면 오늘의 골목은 초등학교 운동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아동 대상 범죄 때문에 전국의 학교가 출입자를 조사하는 상황에서는 일반 반사들이 방과 후 초등학교 복도나 운동장을 골목으로 삼을 수 없는 경우일 것입니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주교 반사가 초등학교 방과 후 교사라면 자기의 시간을 활용해서 종교 편향의 시비를 받지 않으면서 전도할 기회로 삼는다면 그 분에게는 방과 후 초등학교 교실 안에서 이뤄 지는 학습 공간과 시간과 기회가 오늘의 자기 골목일 수 있습니다.
대학 교수인 반사가 자기 지도하는 20대 학생들의 조카나 동생을 전도하기 위해 주력한다면 그 교수는 자기 연구실이나 대학 강의 기회가 자기 골목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직장이 엄청 나게 많아 졌습니다. 동네 구멍 가게를 운영한다면 찾아 오는 동네 손님들의 자녀를 상대로 자기 구멍 가게를 자기 골목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답변자 교회는 교회 이름으로는 예배와 신앙 관련의 직접적인 일 외에는 무조건 다 금지해 왔습니다. 농어촌 마을의 교회가 유아원 유치원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되면 운영비 지원이나 시설 개선자금이나 종사자 월급 지원 등의 조건 제시를 포함해서 별별 기회가 다 있었고 주변 모든 교회들이 그런 사업을 교회의 존재 이유나 전도의 본질적 요소로 삼는 정도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은 없었습니다.
대신 답변자가 국가의 법령이나 행정 제도나 예산 체계에 대해 백 목사님께 배운 것이 있어 교인들 중에서 공회의 이 노선 신앙생활에 열중하면서도 할 수 있는 직업들을 권한 적이 있었습니다. 주로 아동 관련 교육 복지 분야입니다. 지금은 사회적으로 아주 흔하게 되었으나 답변자가 교인들에게 처음 소개할 때는 아는 분들이 희귀했습니다. 그래서 경제나 자격증이나 그 면의 상식이나 여건을 전혀 갖추지 못한 교인들까지 평생 직장으로 삼아 이 노선에서 생활과 충성을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하게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들이 자기가 일상 직업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접촉하는 학생들을 전도한다면 이는 그들에게 21세기의 '과거 서부교회 주교의 골목 전도'에 있어서 '골목'이라고 하겠습니다.
4. 과거 기독지혜사 출간 책자에서도 설명했듯이
전반적으로는 1980년대 서부교회 주교 활동을 중심으로 그 책을 적었지만 그 내용에는 곳곳에 앞 날을 두고 미리 말씀 드린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벌써 1982년 경부터 백 목사님은 1980년대의 주교 전도 상황이 항상 계속 될 것이 아니므로 변화 된 상황에 오늘의 정신과 충성이 어떻게 표출 되어야 할지를 강하게 말씀하신 기록들이 있습니다. 답변자는 이 면을 남 달리 기억할 위치였고 상기 책자는 그 후 10여 년 뒤에 출간한 것입니다. 당연히 1980년대의 절정의 단면을 소개하면서 바뀔 상황을 담았으며 1997년에 '서부교회 주교목회1'권에서도 이 면을 말씀 드렸습니다.
서부교회 주교의 겉 모습은 모든 시대, 모든 교회, 모든 교파가 무조건 옮겨서 배껴야 하는 교리가 아닙니다. 1980년대 전성기의 그 모습을 만든 내용, 그 내용에 흐르는 신앙과 교훈과 교리가 무엇인지를 읽지 못하면 역사에 사라 진 수 많은 성공 이야기 중에 하나로 밖에 남지 않습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교리서를 출간하면서 그 내용 안에 서부교회 주일학교 운영안 중에 신발을 벗고 신발 주머니에 넣는다는 내용까지 담았는데 그 선교사님이 반사를 하던 시절에는 주머니가 있었으나 그 분이 떠난 뒤에는 그 마루를 뜯어서 신발 주머니가 없이 운영이 되었습니다. 신발 주머니에 신발을 넣는다는 것을 교리책에 교리로 소개하는 것은 영락 없는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예배당 안에서 아동들을 조심 시키는 것이 불변의 진리입니다.
결론적으로, 원칙은 이제 설명을 드렸고 구체적인 방법은 자기 현실에서 서부교회 주교 운영안의 성경적이고자 했던 내용과 신앙과 원칙을 살펴 볼 때 각 교회와 반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찾아 보면 이런 문제는 고등수학처럼 어렵게 풀 필요가 없이 바로 답은 나올 것입니다. 답변자는 현재 그 답을 조금 찾아서 오늘의 골목에서 학생들을 좀 모시고 있습니다.
현재 '리' 단위 옛날 시골 교회에 주교생의 출석이 매주 100 명이 넘고 있습니다. 200 미터 옆에 있는 초등학교 전교생이 70여 명입니다. 그리고 이 학교로 학생을 보내는 마을에 있는 교회가 7 개입니다. 안 믿는 가정 학생만 20여 명을 유지하는 반사 선생님이 있습니다. 다른 교회들의 다른 골목은 잘 모르겠습니다. 10 리 정도 떨어 진 곳에는 면소재지가 있고 그 곳의 초등학교 학생수도 이 곳 마을 학교와 비슷합니다. 전남 지역은 면 소재지 외에는 초등학교가 거의 다 폐교 되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서부교회 주교의 겉 모습은 없어 졌으나 그 내용은 오늘도 자기 지역의 골목을 발견하고 예전의 그 신앙을 참고하면 오늘에 주시는 은혜의 세계는 오늘에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 주교간사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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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교를 맡고 있습니다. 워낙 유명하고 잘 알려져 있어 소상하게 연구를 했습니다. 알고 싶은 것은 과거 골목으로 나가서 선교하듯 만나는 대로 데려오던 시절과 지금 운영자 교회를 전해 들은 내용에 의하면 아동시설들을 앞세워 데려 오는 것은 서부교회 주일학교 운영의 철학에 자체 모순이 있는 것은 아닌지, 또는 오늘의 새로운 방법인지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일학교의 어제와 오늘
주교를 맡고 있습니다. 워낙 유명하고 잘 알려져 있어 소상하게 연구를 했습니다. 알고 싶은 것은 과거 골목으로 나가서 선교하듯 만나는 대로 데려오던 시절과 지금 운영자 교회를 전해 들은 내용에 의하면 아동시설들을 앞세워 데려 오는 것은 서부교회 주일학교 운영의 철학에 자체 모순이 있는 것은 아닌지, 또는 오늘의 새로운 방법인지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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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를 맡고 있습니다. 워낙 유명하고 잘 알려져 있어 소상하게 연구를 했습니다. 알고 싶은 것은 과거 골목으로 나가서 선교하듯 만나는 대로 데려오던 시절과 지금 운영자 교회를 전해 들은 내용에 의하면 아동시설들을 앞세워 데려 오는 것은 서부교회 주일학교 운영의 철학에 자체 모순이 있는 것은 아닌지, 또는 오늘의 새로운 방법인지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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