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사의 발전 단계에 있어 중요한 분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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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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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8 00:00
구약의 역사는 아다시피 신약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4천 년 구약의 역사는 역사적 흐름에서 읽을 때는 신약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역사의 전부이며 우리의 구원입니다. 모든 교리의 중심입니다.
주님 대속이 완성 된 초대교회의 첫 전투는 성경 문제니 어느 것이 성경이냐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경이 성경이었으나 초대교회 출발의 첫 순간에는 제자들의 일반 편지와 성경으로 기록한 편지를 구별하는 문제로부터 66 권의 성경을 오늘처럼 확정 짓는 문제를 두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사실 교회 내부는 복잡할 것이 없고 명확했으나 교회를 흔드는 외곽 세력이 혼란스럽다고 부추겨 혼란이 생긴 것입니다.
66 권 성경이 확정 된 이후에는 그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에 대한 신관 교리가 삼위일체와 신인양성일위로 요약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를 요약한 인물이 주후 4 - 5 세기의 '어거스틴'입니다. 참회록은 자기 내면의 신앙 감사 편지니 글 재주가 없어 그렇지 누구든지 회개하면 그런 세계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이 초대교회 모든 교리 입장을 한번 정리한 의미는 참으로 중요했습니다. 이후 천주교 1천 년이 허무하게 흘러 갔습니다.
1517년의 루터와 곧 이은 칼빈의 노력으로 교회는 천국을 가게 되는 구원이란 전적 은혜로 받는 것임을 확정 짓습니다. 이 노력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 '중생 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라는 중생 교리이니 이 교리는 가깝게는 1517 이후의 5백 년 동안 교회가 한 걸음도 더 나가지 못하고 맴 돌던 자리에서 재 약진을 할 수 있도록 막힌 길을 턴 표현입니다. 좀 멀리 잡는다면 구원론의 흑암기는 어거스틴 이후 1,500여 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기간 전체를 해결한 표현입니다. 루터의 칼빈의 수고가 1천 년 천주교 흑암을 끝장 낸 수고라고 한다면 백영희의 이 교리는 그 내용까지를 포함한 종결 완결판입니다.
영과 심신을 나눌 수 없었기 때문에
양심적인 사람은 성경을 가지고 실제 한 말씀 살피다 보면 중생 후에도 자기 몸과 마음이 죄를 짓고 있는 것은 뻔한 일이고, 죄 없이 천국에 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고, 주님의 대속이 완전 해결임도 더더욱 확실하니, 주님의 대속을 먼저 잡은 이들은 중생과 천국 구원은 확신을 가지나 믿은 이후에 짓는 죄 문제로 고통합니다. 반대로 중생 후에도 죄를 짓는다는 면을 먼저 잡은 이들은 자기의 영이 늘 죽었다 살았다 하고 있다가 마지막 죽을 때에 회개를 하지 못하고 죽으면 영원한 지옥으로 들어 갈까 해서 사람의 임종을 두고 목사님을 불러 오는 일은 서양세계에서는 마치 그 사람의 천국과 지옥을 결판 짓는 실질적 순간으로 보는 분위기로 내려 왔습니다.
천주교 시절에도 천주교의 교리는 행위구원이었으나 진실한 이들은 반발했고, 루터와 칼빈 이후의 오늘까지 교회는 은혜 구원임을 단단히 못을 박아 두었으나 모두들 내적으로는 현재 짓는 이 죄를 가지고 지옥을 갈까 해서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영과 심신을 구별했고, 영은 절대 범죄하지 않는 존재이고 심신만이 승패와 진퇴를 번복하는 성화의 대상입니다. 이리 명쾌하게 구별한 것은 역사적으로는 구원론의 완결이며 실질적으로는 그 어느 누구에게라도 구원관에 대한 교리만은 확정을 지웠고 이제 남은 것은 각자의 자기 현실에 자기 몫이 되도록 했습니다.
교리사적으로 '중생 된 영'의 교리를 평가하라 하신다면 루터 칼빈에 이어 또 한 번의 시대적 분기점을 기록할 발견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평가를 하라 한다면 2천 년 구원교리 역사의 전부며 유일한 해결이라고 하겠습니다. 인간 생각 같아서는 초대교회가 66권을 성경으로 확정하고 삼위일체와 신인양성일위 교리를 확정한 것처럼 구원교리도 중생 된 영은 범죄하지 않고 심신은 중생 후 죽을 때까지 죄와 의 사이에 반복 번복을 하면서 각자의 구원 발전 차이를 보인다고 했더라면 이렇게 복잡할 일이 없었습니다.
이 홈의 '/연구실/일반자료/' 게시판에 어느 진보노선에 있는 분이 구원론에 대한 2천 년 교리사 혼란을 요약한 글을 올려 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 역사에 구원론만큼 교파를 많이 분파 시키고 격론으로 이어 진 교리가 없다고 했는데 과연 그렇습니다. 중생 영에 대한 교리 하나만 있었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넓게 보면 한 시대에 전부를 주지 않으시고 한 지체에게 온 몸의 역할을 다 맡기지 않으시며 세월 속에 길러 가며 시행착오를 통해 온전을 만들어 가시는 주님의 뜻이 있어 그러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후시대는 무조건 유리한가? 유리합니다만 그대신 우리의 이전 시대는 우리의 조상, 우리의 부모, 우리의 뿌리, 우리의 5계명에 은사기관이 될 수 있고, 우리는 이전 시대를 향해 우리가 부모 될 수는 없습니다. 이새의 신앙이 다윗보다 나을 수는 없으나 다윗은 아무리 그 신앙이 하늘에 닿았다 해도 이새의 아비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과 모든 시대와 모두에게 주님은 그들 각자에게 맡긴 역할이 있습니다. 이 번 질문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이 글을 주고 받는 우리는 인류 6천 년 기간을 통해 가장 복 된 시기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횡재를 한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 당대 유대인들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그들의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던 유일의 복 된 시기의 역사적 신앙적 복 된 사람이었듯이.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중생된 영은 절대 범죄치 않고, 심신(마음과 몸)이 범죄한다.`
: 교리가 2000여년 기독교 구원론의 핵심이 아닌지요?
:
: `중생된 영은 절대 범죄치 않고, 심신이 범죄한다` 교리의
: 중요성에 대해서, 교리사적으로 구원론적으로 설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역사의 전부이며 우리의 구원입니다. 모든 교리의 중심입니다.
주님 대속이 완성 된 초대교회의 첫 전투는 성경 문제니 어느 것이 성경이냐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경이 성경이었으나 초대교회 출발의 첫 순간에는 제자들의 일반 편지와 성경으로 기록한 편지를 구별하는 문제로부터 66 권의 성경을 오늘처럼 확정 짓는 문제를 두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사실 교회 내부는 복잡할 것이 없고 명확했으나 교회를 흔드는 외곽 세력이 혼란스럽다고 부추겨 혼란이 생긴 것입니다.
66 권 성경이 확정 된 이후에는 그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에 대한 신관 교리가 삼위일체와 신인양성일위로 요약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를 요약한 인물이 주후 4 - 5 세기의 '어거스틴'입니다. 참회록은 자기 내면의 신앙 감사 편지니 글 재주가 없어 그렇지 누구든지 회개하면 그런 세계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이 초대교회 모든 교리 입장을 한번 정리한 의미는 참으로 중요했습니다. 이후 천주교 1천 년이 허무하게 흘러 갔습니다.
1517년의 루터와 곧 이은 칼빈의 노력으로 교회는 천국을 가게 되는 구원이란 전적 은혜로 받는 것임을 확정 짓습니다. 이 노력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 '중생 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라는 중생 교리이니 이 교리는 가깝게는 1517 이후의 5백 년 동안 교회가 한 걸음도 더 나가지 못하고 맴 돌던 자리에서 재 약진을 할 수 있도록 막힌 길을 턴 표현입니다. 좀 멀리 잡는다면 구원론의 흑암기는 어거스틴 이후 1,500여 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기간 전체를 해결한 표현입니다. 루터의 칼빈의 수고가 1천 년 천주교 흑암을 끝장 낸 수고라고 한다면 백영희의 이 교리는 그 내용까지를 포함한 종결 완결판입니다.
영과 심신을 나눌 수 없었기 때문에
양심적인 사람은 성경을 가지고 실제 한 말씀 살피다 보면 중생 후에도 자기 몸과 마음이 죄를 짓고 있는 것은 뻔한 일이고, 죄 없이 천국에 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고, 주님의 대속이 완전 해결임도 더더욱 확실하니, 주님의 대속을 먼저 잡은 이들은 중생과 천국 구원은 확신을 가지나 믿은 이후에 짓는 죄 문제로 고통합니다. 반대로 중생 후에도 죄를 짓는다는 면을 먼저 잡은 이들은 자기의 영이 늘 죽었다 살았다 하고 있다가 마지막 죽을 때에 회개를 하지 못하고 죽으면 영원한 지옥으로 들어 갈까 해서 사람의 임종을 두고 목사님을 불러 오는 일은 서양세계에서는 마치 그 사람의 천국과 지옥을 결판 짓는 실질적 순간으로 보는 분위기로 내려 왔습니다.
천주교 시절에도 천주교의 교리는 행위구원이었으나 진실한 이들은 반발했고, 루터와 칼빈 이후의 오늘까지 교회는 은혜 구원임을 단단히 못을 박아 두었으나 모두들 내적으로는 현재 짓는 이 죄를 가지고 지옥을 갈까 해서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영과 심신을 구별했고, 영은 절대 범죄하지 않는 존재이고 심신만이 승패와 진퇴를 번복하는 성화의 대상입니다. 이리 명쾌하게 구별한 것은 역사적으로는 구원론의 완결이며 실질적으로는 그 어느 누구에게라도 구원관에 대한 교리만은 확정을 지웠고 이제 남은 것은 각자의 자기 현실에 자기 몫이 되도록 했습니다.
교리사적으로 '중생 된 영'의 교리를 평가하라 하신다면 루터 칼빈에 이어 또 한 번의 시대적 분기점을 기록할 발견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평가를 하라 한다면 2천 년 구원교리 역사의 전부며 유일한 해결이라고 하겠습니다. 인간 생각 같아서는 초대교회가 66권을 성경으로 확정하고 삼위일체와 신인양성일위 교리를 확정한 것처럼 구원교리도 중생 된 영은 범죄하지 않고 심신은 중생 후 죽을 때까지 죄와 의 사이에 반복 번복을 하면서 각자의 구원 발전 차이를 보인다고 했더라면 이렇게 복잡할 일이 없었습니다.
이 홈의 '/연구실/일반자료/' 게시판에 어느 진보노선에 있는 분이 구원론에 대한 2천 년 교리사 혼란을 요약한 글을 올려 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 역사에 구원론만큼 교파를 많이 분파 시키고 격론으로 이어 진 교리가 없다고 했는데 과연 그렇습니다. 중생 영에 대한 교리 하나만 있었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넓게 보면 한 시대에 전부를 주지 않으시고 한 지체에게 온 몸의 역할을 다 맡기지 않으시며 세월 속에 길러 가며 시행착오를 통해 온전을 만들어 가시는 주님의 뜻이 있어 그러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후시대는 무조건 유리한가? 유리합니다만 그대신 우리의 이전 시대는 우리의 조상, 우리의 부모, 우리의 뿌리, 우리의 5계명에 은사기관이 될 수 있고, 우리는 이전 시대를 향해 우리가 부모 될 수는 없습니다. 이새의 신앙이 다윗보다 나을 수는 없으나 다윗은 아무리 그 신앙이 하늘에 닿았다 해도 이새의 아비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과 모든 시대와 모두에게 주님은 그들 각자에게 맡긴 역할이 있습니다. 이 번 질문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이 글을 주고 받는 우리는 인류 6천 년 기간을 통해 가장 복 된 시기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횡재를 한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 당대 유대인들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그들의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던 유일의 복 된 시기의 역사적 신앙적 복 된 사람이었듯이.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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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생된 영은 절대 범죄치 않고, 심신(마음과 몸)이 범죄한다.`
: 교리가 2000여년 기독교 구원론의 핵심이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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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생된 영은 절대 범죄치 않고, 심신이 범죄한다` 교리의
: 중요성에 대해서, 교리사적으로 구원론적으로 설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중생된 영은 범죄치 않는다` 교리의 중요성
`중생된 영은 절대 범죄치 않고, 심신(마음과 몸)이 범죄한다.`
교리가 2000여년 기독교 구원론의 핵심이 아닌지요?
`중생된 영은 절대 범죄치 않고, 심신이 범죄한다` 교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교리사적으로 구원론적으로 설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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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된 영은 절대 범죄치 않고, 심신(마음과 몸)이 범죄한다.`
교리가 2000여년 기독교 구원론의 핵심이 아닌지요?
`중생된 영은 절대 범죄치 않고, 심신이 범죄한다` 교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교리사적으로 구원론적으로 설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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