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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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0
2012.04.30 00:00
신학생님,
상대적 지배와 절대적 지배의 경계가 어떻게 되나요?
어떻게 지배를 받는 것이 상대적이고 절대적이 되는지 그 구분부터 명확해야하지 않는지요?
일례로,
자살을 하면 원래 구원받지 못해 자살을 했다라고 합니다.
자살하기 전에는 멀쩡히 구원받았다라고 자타가 인정하다가 자살로 거짓임이 판명되어 버리는 것이 현재 일반 교계의 시각인데,
그 상대적/절대적의 구분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
: 영과 심신을 나눌 수 없었기 때문에
: 양심적인 사람은 성경을 가지고 실제 한 말씀 살피다 보면 중생 후에도 자기 몸과 마음이 죄를 짓고 있는 것은 뻔한 일이고, 죄 없이 천국에 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고, 주님의 대속이 완전 해결임도 더더욱 확실하니, 주님의 대속을 먼저 잡은 이들은 중생과 천국 구원은 확신을 가지나 믿은 이후에 짓는 죄 문제로 고통합니다. 반대로 중생 후에도 죄를 짓는다는 면을 먼저 잡은 이들은 자기의 영이 늘 죽었다 살았다 하고 있다가 마지막 죽을 때에 회개를 하지 못하고 죽으면 영원한 지옥으로 들어 갈까 해서 사람의 임종을 두고 목사님을 불러 오는 일은 서양세계에서는 마치 그 사람의 천국과 지옥을 결판 짓는 실질적 순간으로 보는 분위기로 내려 왔습니다.
: 천주교 시절에도 천주교의 교리는 행위구원이었으나 진실한 이들은 반발했고, 루터와 칼빈 이후의 오늘까지 교회는 은혜 구원임을 단단히 못을 박아 두었으나 모두들 내적으로는 현재 짓는 이 죄를 가지고 지옥을 갈까 해서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
: 영과 심신을 구별했고, 영은 절대 범죄하지 않는 존재이고 심신만이 승패와 진퇴를 번복하는 성화의 대상입니다. 이리 명쾌하게 구별한 것은 역사적으로는 구원론의 완결이며 실질적으로는 그 어느 누구에게라도 구원관에 대한 교리만은 확정을 지웠고 이제 남은 것은 각자의 자기 현실에 자기 몫이 되도록 했습니다.
:
: (질문)
: 윗글에 대해서
: 칼빈주의는 죄의 절대적지배는 끝이 났으나, 상대적지배는 계속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평생을 죄의 상대적지배와 싸워야 한다고, 그것이 성화의 삶이라고 이야기를 하고있습니다. 죄의 절대적지배는 완전히 끝났으나, 어떠한 죄를 지어도 한번구원은 영원구원인데
: 상대적지배를 이겨내지 못하면, 불신자의 삶을 짐승같은 삶을 살수도 있다고 합니다.
:
: 칼빈주의내에서도 나름데로, 중생이후 성도안에 죄의 지배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접근을
: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요?
상대적 지배와 절대적 지배의 경계가 어떻게 되나요?
어떻게 지배를 받는 것이 상대적이고 절대적이 되는지 그 구분부터 명확해야하지 않는지요?
일례로,
자살을 하면 원래 구원받지 못해 자살을 했다라고 합니다.
자살하기 전에는 멀쩡히 구원받았다라고 자타가 인정하다가 자살로 거짓임이 판명되어 버리는 것이 현재 일반 교계의 시각인데,
그 상대적/절대적의 구분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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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과 심신을 나눌 수 없었기 때문에
: 양심적인 사람은 성경을 가지고 실제 한 말씀 살피다 보면 중생 후에도 자기 몸과 마음이 죄를 짓고 있는 것은 뻔한 일이고, 죄 없이 천국에 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고, 주님의 대속이 완전 해결임도 더더욱 확실하니, 주님의 대속을 먼저 잡은 이들은 중생과 천국 구원은 확신을 가지나 믿은 이후에 짓는 죄 문제로 고통합니다. 반대로 중생 후에도 죄를 짓는다는 면을 먼저 잡은 이들은 자기의 영이 늘 죽었다 살았다 하고 있다가 마지막 죽을 때에 회개를 하지 못하고 죽으면 영원한 지옥으로 들어 갈까 해서 사람의 임종을 두고 목사님을 불러 오는 일은 서양세계에서는 마치 그 사람의 천국과 지옥을 결판 짓는 실질적 순간으로 보는 분위기로 내려 왔습니다.
: 천주교 시절에도 천주교의 교리는 행위구원이었으나 진실한 이들은 반발했고, 루터와 칼빈 이후의 오늘까지 교회는 은혜 구원임을 단단히 못을 박아 두었으나 모두들 내적으로는 현재 짓는 이 죄를 가지고 지옥을 갈까 해서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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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과 심신을 구별했고, 영은 절대 범죄하지 않는 존재이고 심신만이 승패와 진퇴를 번복하는 성화의 대상입니다. 이리 명쾌하게 구별한 것은 역사적으로는 구원론의 완결이며 실질적으로는 그 어느 누구에게라도 구원관에 대한 교리만은 확정을 지웠고 이제 남은 것은 각자의 자기 현실에 자기 몫이 되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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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윗글에 대해서
: 칼빈주의는 죄의 절대적지배는 끝이 났으나, 상대적지배는 계속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평생을 죄의 상대적지배와 싸워야 한다고, 그것이 성화의 삶이라고 이야기를 하고있습니다. 죄의 절대적지배는 완전히 끝났으나, 어떠한 죄를 지어도 한번구원은 영원구원인데
: 상대적지배를 이겨내지 못하면, 불신자의 삶을 짐승같은 삶을 살수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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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주의내에서도 나름데로, 중생이후 성도안에 죄의 지배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접근을
: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요?
`중생된 영은 범죄치 않는다` 교리의 중요성
`중생된 영은 절대 범죄치 않고, 심신(마음과 몸)이 범죄한다.`
교리가 2000여년 기독교 구원론의 핵심이 아닌지요?
`중생된 영은 절대 범죄치 않고, 심신이 범죄한다` 교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교리사적으로 구원론적으로 설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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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된 영은 절대 범죄치 않고, 심신(마음과 몸)이 범죄한다.`
교리가 2000여년 기독교 구원론의 핵심이 아닌지요?
`중생된 영은 절대 범죄치 않고, 심신이 범죄한다` 교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교리사적으로 구원론적으로 설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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