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는 사실, 대부분은 오해 (자료 추가 - 10일 2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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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는 사실, 대부분은 오해 (자료 추가 - 10일 2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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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모'의 출간 과정은 벌써 공개가 되어 있습니다.


- '메모'의 출간과 선행 작업을 안내합니다.


윗 글의 이 홈 비판을 요약하면 답변자가 '메모'라는 책을 출간할 때 김희준 선생님이 출간 준비를 끝 낸 것을 가지고 빼앗아 답변자 이름으로 출간했다는 그런 느낌입니다. '메모'라는 책은 어떤 경우도 저자 표시가 된 경우가 없습니다. 이는 백 목사님 생전에 출간 된 모든 책에 일관적으로 적용 된 경우입니다. 백 목사님 사후에는 조직신학처럼 그 책임을 표시해야 할 특수한 경우에만 저자 표시가 되었습니다.


저자가 표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홈은 /초기화면/총공회/일지요약/에서 '메모'의 출간 과정을 오래 전에 소상하게 소개했습니다.


일시 제목 내용 등록

■89.03.11.토 메모의 이름 1.메모 이름의 뜻 2.설교록 출간 현황 ○ 2005/10/19(수)

■89.03.10.금 메모 책자 출간 1.연구부장 목회 출발 명 2.메모 책자 출간 명 ○2005/10/19(수)

■89.01.01.주 89년 연간일정 1989년 1년의 주요 일정 ○ 2003/5/15(목)

■88.12.14.수 메모' 출간, 전도사 인허 4명, 메모 출간, 학생지도 위원 ○ 2003/5/15(목)

■88.11.25.금 시국 시국 평가, 공회의 헌법 시안, '메모' 출간 준비 ○ 2003/5/15(목)

■88.11.22.화 '메모' 출간 '메모' 출간을 위한 준비 작업 ○ 2003/5/15(목)

■88.10.10.월 양성원문제 1.당좌거래 2.양성원 강의별 주의할 점 등 ○ 2003/4/30(수)

■88.10.07.금 용어표현 믿음과 사랑에 대한 정의 ○ 2003/4/30(수)


편집실에 근무하던 김 선생님의 기초작업을 명시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출판 과정에서 중대한 문제점이 발견 되어 답변자에 의해 전면 재검토 되고 비록 내용 자체는 미세하게 변경 된 듯해도 교리를 아는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전혀 다른 목적으로 다른 상황에서 출간 된 것입니다.


따라서 김 선생님이 답변자를 비판하는 내용은 대단히 감정적이며 비판 일변도라고 보이는데 사실 관계를 바로 안다면 전혀 그럴 상황이 아니고, 백 목사님의 판단이 바로 되었는지 그리고 목회연구소의 업무 과정에서 연구부장의 업무 지시나 직원에 대한 지도에 문제가 없는지 또는 직원에 대한 설명이 충분했는지 등이 문제가 된다면 문제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애초 계획이 변경 되는 과정에서 김희준 선생님은 답변자 때문에 김 선생님 자신에게 출간 이익이 돌아 올 수 있는 것이 차단 되어 화가 나셨다고 보입니다. 이 홈은 옳고 그른 것만 따지지 이 홈이 옳다고 생각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연구소 직원 중에 누가 더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보는 문제는 교회 직원이라는 특성 때문에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홈이 아는 복음 운동은 자신을 희생한다고 배웠고 이를 십자가라고 알고 있으며 이를 거부한다면 십자가의 원수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 김 선생님의 경제 수입에 손해가 갔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답변자로서는 전혀 미안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백영희목회연구소는 출발 때부터 오늘까지 30 년을 늘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주면 받고, 안 주면 다행이고, 손해 보면 자신의 구원에 횡재라는 생각뿐입니다.


- 다시 봐도 오해할 일은 아닙니다.


누구의 요구나 당사자의 이의 때문이 아니라 이런 글을 알기 오래 전에 이 홈은 이 홈의 업무 내용이므로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메모'의 출간 과정을 공개했습니다. '메모'라는 단어로 해당 게시판을 검색하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면만 확인해도 이 홈이 김 선생님의 기초 작업을 부인하거나 감추려 한다는 등의 오해는 없을 듯하고 또 어떤 경우라 해도 답변자의 기억이 너무 확실하기 때문에 다른 장소에서 다른 발언을 하면서도 김 선생님의 기초 작업이 선행 되었음을 부인하거나 감추려 했던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혹시 오해 소지가 있는 곳을 지적해 주시면 크게 사과하고 당사자가 흡족할 이상으로 조처를 하겠습니다. 아마 답변자의 이 번 설명을 다시 듣고 나서 새로 해당 글들을 읽어 보면 김 선생님의 피해 의식이거나 선입견 때문에 생긴 일일 것입니다.


이 홈은 뭐든지 먼저 다 공개를 해 버리는 곳이고 '메모' 작업은 백 목사님 생전에 추진 되고 출간이 되었고 당시 직원들이 적대적 관계로 뿔뿔이 흩어 져 있는데 그들을 생각하나 평소 이 홈의 성향을 볼 때 그 어떤 면으로도 윗 글은 지나 친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이 홈의 공개주의 행정은 늘 다른 분들이 감추려는 것을 너무 많이 공개해서 원망을 듣는 곳입니다. 이 번 건도 이 번에 질문으로 올려 지기 전에 이미 다 말씀을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왜, 무엇을 비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비판 글 내용에 비판의 문제점은 다 드러 나고 있습니다.


아마 글을 읽을 줄 알고 세상을 조금 살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김희준 선생님이 말씀하신 모든 내용과 이 홈의 답변자의 입장 그리고 백 목사님의 판단과 지도를 세세히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듯합니다.


참고로 그 일지를 언제 이 홈에 공개했는지를 두고는 답변자가 홈의 서버 이용을 할 줄 몰라서 월요일쯤 담당자를 통해 그 일지를 공개한 구체적인 일시까지 제시해 드리겠습니다. 답변자가 오해를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모르고 오해하는 분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 홈의 공정성을 믿지 못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이 홈이 돈을 대고, 이의를 제기하는 분이 외부 인력을 대동하여 이 홈의 원 자료를 확인하여 사실 관계가 입증 되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답변자가 평소 소신이 뚜렷하기 때문에 상대방들께로부터 비판을 받는 경우는 흔했으나 이 번처럼 아주 자세하고 사실인 듯 비판한 경우는 기억에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적게 되면 이 홈을 이용하는 분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운영자의 개인 명예야 처음부터 고려해 본 적이 없으나 이 홈에 담겨 있는 자료들의 이용 때문에 위에서 소개한 회고는 다른 사람을 극단적으로 원망하고 자신의 수고를 스스로 광고하는 것인데 복음 운동에서는 자기를 광고하지 않고는 달리 길이 없을 때 '어리섞은 자랑'을 마지 못해서 하는 것이지 누구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내가 피해자라고 공연히 광고하는 것은 꼭 피할 일입니다.


위 글 내용은 누가 읽어도, 그 글의 내용이 중대하게 사실을 왜곡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읽는 사람에게는 회고하는 분의 편에 서서 시험에 들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홈은 그 비판의 대상이 이 홈의 답변자이므로 답변자를 향해 들어 오는 이런 확실한 비판은 답변자가 자진해서 이 홈의 초기화면에 크게 소개를 해서 모든 이들이 다 읽도록 하겠습니다. 자기의 허물이 크게 나타 날수록 고치기도 쉽고 조심하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홈 때문에 답변자는 원래 수준보다 높게 알려 진 것 같아서 어느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실명으로 제대로 비판을 해 주셨습니다. 곧 조처를 하겠습니다.


2. 이미 밝힌 /일지요약/에 따르면


- 일부는 사실


'메모'는 김희준 선생님이 설명한 과정 그대로 초기에 준비가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출간 직전에 답변자가 그 기초작업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백 목사님께 그 자료가 출간 되면 큰 일 난다는 점을 보고 드렸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김 선생님이 예측도 짐작도 분석도 할 수 없는 단계입니다. 그 자료는 김희준 선생님의 손에서 즉각 답변자에게로 업무가 이전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김 선생님은 어물쩡 넘어 가고 있는데 백 목사님의 업무 파악력은 그 누구도 속이거나 슬쩍 넘어 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는 한 번만 발견 되면 백 목사님과의 신뢰 관계는 다시 복구 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당시 일반 직원들은 모두가 아는 대로는 노력했고 또 백 목사님의 파악력과 지도가 유리 속을 들여다 보듯 하여 거짓이나 왜곡을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연구소 내에서도 또 다른 부처에서도 가끔 부정 행위는 있었고 그런 일들은 그대로 다 알려 지고 조처가 되어 졌습니다.


김 선생님의 초기 업무를 답변자가 혼자 생각으로 어떻게 했다? 백 목사님이 속았다? 또는 당사자 김 선생님에게 어떤 부분을 그냥 넘어 갔다? 그런 사고방식은 오늘 적고 오늘 읽는다면 일반 교계나 공회 내에서도 흔한 일이어서 그 글이 미치는 영향이 더 크겠지만 당시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김 선생님은 당시 서부교회 직원이었으면서도 교회 직원의 위치와 생각과 언행이 아닙니다. 실제로 김 선생님은 일반 직원과 달랐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선생님은 연구소에 들어 오기 전에도 또 들어 온 이후에도 이 노선의 상식에서 용납할 수 없는 길을 걸었습니다.


김희준 선생님의 수고는 본인이 설명하고 알던 거기까지입니다. 이후 출간 과정을 김 선생님은 자기가 해 놓은 것을 열매만 답변자가 따 먹었다고 보는데 너무 사실을 모르고 하는 비판입니다. 좋은 뜻으로 잘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김희준 선생님이라는 분의 실력과 시야에서는 볼 수 없는, 중대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김희준 선생님이 백 목사님과의 대화한 내용을 소개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모든 직접 대화 전부 후에 바로 답변자 때문에 이 작업은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을 향해 진행 되었고 출간 된 것입니다.


- 사실이 아닌 부분


토씨 하나 때문에 교파가 나뉘는 것이 교리 세계입니다. 공회는 세계 신학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김 선생님은 이런 세계를 전혀 모르던 시절입니다. 이 부분 때문에 김 선생님은 자신이 가장 잘 알며 메모 작업의 전부를 담당했다고 말씀하는데 그 말이 맞는 말씀이면서도 사실이 아닙니다. 그 때 일이 1988년인데 24 년이 넘도록 이런 문제를 이렇게 기억하고 원한을 가졌다는 것이 너무 안스럽습니다. 이 글은 김 선생님 양심에 김 선생님이 몰랐던 지식을 전달해서 내심 깊은 곳에 스스로 돌아 볼 기회를 드리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김 선생님의 손에서 처음 작업한 내용 대부분이 답변자 손을 거쳐 출간 된 이후에 얼마나 많은 내용이 겹쳤느냐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메모'라는 작업은 김 선생님의 원래 생각한 내용은 그대로 출간해서 안 되는 것이 되었고 그 대신 김 선생님의 좋은 뜻과 실제 교인들에게 은혜롭게 사용 되는 것은 다른 형태로 당시 활발하게 사용이 되어 졌습니다. 그렇다면 김 선생님의 실수나 큰 문제점이 외부로 일을 내지 않고 중단 되었으니 김 선생님은 답변자에게 크게 감사해야 할 것 같고, 김 선생님의 원래 뜻대로 많은 분들이 크게 은혜 받고 사용 되는 것은 그 것대로 그렇게 잘 이루어 졌다는 점에서 답변자는 김 선생님이 무엇을 원망하며 누구를 비판하며 무엇이 아쉬운지를 두고 혼란스럽습니다.


기억력을 볼 때는 대단히 명석하신 분인데 그 앞 뒤의 내용이 이렇게 혼선을 빚는다면 이런 우수한 분의 왜곡이나 실수라는 것은 그 결과가 본인이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일을 내는데, 이 번 글도 그렇고 또 과거 여러 그런 일들을 돌아 볼 때 역시 우수한 분임은 틀림 없고 위험하거나 위험을 초래한 일은 너무 심각하다고 생각 됩니다. 그럴지라도 이 홈을 위해 이 홈의 답변자를 위해서는 위험하고 강한 칼일수록 이 홈을 조심 시키고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미리 고치게 만드는 데는 더 낫기 때문에 세상 기준으로 볼 때는 자살행위가 되겠지만 이 홈의 천국 기준에서는 구원에 유익한 면을 위해 김 선생님의 극단적 표현을 하나도 빼지 않고 그대로 홈의 초기화면에 특별히 싣겠습니다.


- 1989년까지의 서부교회


김 선생님의 글을 1989년 8월 이전까지의 서부교회를 전혀 모르는 외부인이 읽는다면 선생님의 글은 구구절절이 그 사연이 맞는 것처럼 읽힐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생각한 것과 같이 세상이 그렇게만 돌아 가고 서부교회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야기를 적어 나간 것처럼 보이는데, 백 목사님은 교회 직원의 관리나 교회 업무를 두고 김 선생님의 말씀과 같은 그런 식으로 그런 방법으로 그렇게 처리해 나가지 않습니다. 김 선생님의 모든 추론과 짐작은 전부 다 잘못 짚었습니다.


이렇습니다. 김 선생님이 직접 목격해서 적은 부분은 다 믿어 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김 선생님이 직접 보지 못한 부분은 답변자가 직접 겪은 개인사입니다. 답변자의 이야기를 맞춰 보면 선생님의 글은 다 잘못 짚은 것입니다. 백 목사님과 서부교회를 아는 사람에게는 선생님의 글만 가지고도 답변자의 설명을 들을 것 없이 추론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기억하는, 선생님이 주고 받은 대화까지를 가지고 이후 선생님이 직접 보지 않은 부분을 적은 글은 아주 크게 오해를 했습니다.


대변을 본 것은 사실이라 해도, 주인과 개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주인은 본 것을 기억조차 하기 싫어 하고 개는 주인 몰래 얼른 먹고 싶은 것입니다. 서부교회의 업무 처리, 백 목사님의 지도는 김 선생님이 짐작도 하지 못하는 면이 있는데 당시 함께 직원으로 있었다 해도 김 선생님은 이런 면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 곳에 답변자가 공개하기 어려운 일을 했고 또한 언행과 오늘까지의 활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초기화면/총공회/문답/' 게시판으로 옮겨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3. 김희준 선생님의 오해들


- 답변자는 김 선생님의 수고를 한 번도 묻은 적이 없습니다.


수 차례 설명했지만 이 홈의 일지요약 게시판에 김 선생님을 명기했고 기초작업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동시에 그 메모 출간의 방향은 답변자에 의해 다른 방향으로 나간 역사적 기록을 오래 전에 밝혔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 선생님의 수고를 매 번 거론할 필요가 없어서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예를 들면 설교록 출간은 모두가 자료를 감추고 출간을 막고 처벌할 때 답변자가 설교록 출간은 반드시 이루어 져야 한다고 해서 추진해서 출간한 것이 답변자의 수고입니다. 이 표현에서 답변자가 한 글자도 빠지지 않고 직접 듣고 타이핑 하고 교정하고 인쇄소를 드나 들고 제본을 해서 책을 만든 다음 답변자가 일일이 모든 분들에게 제공을 했는가? 천부당만부당한 말입니다.


교정을 가장 오랫 동안 그리고 그 내용도 가장 바르게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분은 동천 이 목사님입니다. 중간에 몇몇 분의 수고도 있었습니다. 다른 글에서 필요할 때 언급했습니다. 답변자의 설교록 출간을 두고 달리 표현하고 설명할 필요도 없이 김영환 목사님이나 이훈일 선생님과 같은 분들이 내가 출간에 큰 역할을 했는데 왜 감췄느냐고 말씀하고 나온다면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그런데 야단을 치고 비판을 하고 나온다면 할 수 없이 당시 사정을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판이 만일 작정하고 훼방으로 나온다면 그 분들의 당시 내용을 좀 자세히 설명하여 더 이상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복음 운동을 위해 불가피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과정을 거쳐 이 홈을 비판한 분들은 그 비판이 전부 반대가 되었지 그 비판이 증명 된 것을 답변자가 기억하지 못합니다. 답변자의 단점과 부족한 것은 이런 식으로 나온 것 중에서는 없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아무도 모르는, 답변자가 공개 고백을 해야 하는 여러 단점들을 따로 말씀 드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고백조차 또 하나의 자기 자랑이라고 비판을 할까 해서 사실 미루고 있었습니다.


- 원래 추진 된 작업


김희준 선생님은 현재 윗 글로 볼 때 당시 자료를 가지고 계실 듯합니다. 이 홈 역시 당시 자료를 가지고 있을 것이므로 서로가 기초 사실 자체를 왜곡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김 선생님의 원래 작업과 출간 된 '메모'는 내용과 향방이 전혀 달라 졌습니다. 같다고 보신다면 소경이고, 같아 보이나 아주 다름을 느낀다면 교계와 교리와 공회를 아는 분일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기초 작업은 김희준 선생님의 수고가 근본이고 거의 전부이기 때문에 왜 이 홈이 일지요약을 통해 미리 공개해 둔 것을 두고 이런 비판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김 선생님의 기초 작업이 책자화로 될 때 교리 문제로 교계의 이단 비판에 늘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공회의 입장으로 볼 때 준비한 내용은 중대한 교정을 받아야 했습니다. 또한 당시 답변자는 김 선생님과 전혀 별개로 또 김 선생님은 전혀 알지 못하는 별도의 작업이 진행 되고 있었는데 답변자의 작업과 김 선생님의 작업은 전혀 따로 진행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중복 되고 있었습니다. 김 선생님은 단순히 설교 내용 중에 요약하여 은혜 되는 내용을 전하는 것이라면 답변자는 그 모든 내용 전부가 단 한 글자라도 모순이 없고 교계의 비판을 전제하면서도 우리가 전할 것을 전해야 하는 조직신학의 교리작업이었습니다.


다만 김 선생님은 설교 중에 '몇 가지'라고 말씀한 것만 간단히 요약하는 식이었고 답변자는 그런 쉬운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토씨 하나까지 살피며 10만 페이지 설교 내용 중에 있던 교리적 문제를 요약하며 살피던 중입니다. 답변자가 맡고 있던 작업 내용은 /초기화면/총공회/문답/2857번/ 문답에서 좀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당시 답변자 작업 내용은 백 목사님께서 공석에서까지 챙기던 내용입니다. 김 선생님의 비판에 대해 해명하려고 이제 와서 새로 핑계를 대는 그런 차원일 수 없습니다. 김 선생님의 작업은 답변자 작업의 하위 또는 일부 개념이고 답변자의 작업은 김 선생님의 작업을 포함하면서 관리 감독해야 하며 지도해야 하는 내용이면서도 전부는 중첩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김 선생님의 말씀처럼 김 선생님 혼자 준비 한 그 자료는 혼자 준비했기 때문에 답변자는 알지 못했고 김 선생님이 전체 직원들에게 자료를 달라고 전할 때도 답변자는 당시 다른 업무 때문에 전혀 듣지 못했으며 모여 진 기초 자료의 전체를 처음 보는 순간 그 자료가 바로 출간 되면 교리 문제가 있음을 단번에 알았기 때문에 백 목사님께 보고하여 조직신학을 맡고 있던 답변자 업무에 참고 자료로 편입한 것입니다.


- 이후 진행


김 선생님의 작업 내용에 중대한 문제가 발견 되어 답변자가 백 목사님께 보고했고 이로 인해 이후 백 목사님은 김희준 선생님께 전혀 연락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고 그래서 더 이상 연락이 없었던 것이며 원래 준비한 내용과는 아주 다른 방향으로 작업이 진행 되었으며 출간 역시 그렇게 되었습니다.


김희준 선생님이 지금도 당시 자료를 가지고 계실 것이고 그 분은 답변자 손을 거쳐서 나온 자료와 자신의 원 자료를 두고 비교할 때 극히 일부만 교정하고 그대로 나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바로 이 시각, 이 표현, 이런 인식 때문에 김 선생님은 은혜로 시작한 좋은 일을 김 선생님이 원한 대로 그 내용이 진행 되지 못하고 답변자 손에서 전혀 다른 차원에서 다른 결과물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핵심 내용을 설명한다면, 김 선생님은 단순 교훈 은혜용 요약으로 접근했고 답변자가 백 목사님께 보고한 것은 이 내용이 책자화가 되어 지면 공회와 목사님에 대해 외부에서 들어 오는 교리 시비 문제를 지적한 것입니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김 선생님은 교리 문제를 두고 외부에서 들어 올 비판과 시비가 어떤 내용이며 어떻게 시작해서 어떤 면으로 치고 들어 올지를 두고 전혀 모르는 분입니다. 그래서 백 목사님은 시급하게 전면 중단 시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입장으로 답변자에게 맡겼고 글자 한 자씩 전부 백 목사님께서 결정하고 그대로 책자화가 된 것입니다.


4. 김희준 선생님의 출중한 실력과 아쉬운 점


답변자는 메모를 두고 김희준 선생님의 수고와 제안과 선의를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동시에 그런 선의에도 불구하고 그 때 그대로 나갔더라면 아니 된다는 위험성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상기 내용에 담은 김 선생님의 비판 내용에는 인간적 비판이 많은데 이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하려다 보면 김 선생님이 왜 그런 탁월한 실력과 이 노선 자료에 대한 애착과 전념에도 불구하고 연구소에 계시지 않고 떠났어야 했는지 등을 두고 답변자가 설명을 해야 하는데, 그리 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김 선생님께서 연구소를 들어 오기 전, 그리고 연구소를 떠난 이후의 모든 활동과 업적은 당시 메모에 대해 김 선생님이 크게 오해를 하시고 계신 면을 잘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합니다.


김 선생님을 기억하면 현재 중국공회 어느 선교사님과 모든 면에서 너무 흡사하여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선생님은 스스로 설명한 과거 기억을 통해서도 그렇게 읽히도록 말씀했으나, 실제 답변자나 주변의 누구라 해도 모두가 김 선생님은 훌륭하고 재능이 탁월하며 우수한 인재인 줄 압니다. 이런 사실은 서부교회에서 모르는 분이 없고 연구소의 전신인 편집실에서 모르는 분이 없습니다. 김 선생님은 이미 백 목사님 생전에 양성원 안으로 가서 일반 신학서들을 판매했던 분입니다. 당연히 서적 판매의 이익금을 아는 분이고 또 이 노선 자료를 이 노선의 교훈의 가치성과 동시에 일반 교계의 시각으로 접할 수 있는 분입니다. 바로 이 점이 김 선생님의 장점이면서 단점이 되기도 하고 이런 배경 때문에 윗 글의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배경이 될 것입니다만 이 자리에서는 김 선생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아쉬운 점을 중심으로 해명을 하려 합니다. 김 선생님은 훌륭한 분입니다. 실력 있는 분입니다. 아쉬운 점은 이 노선의 기본 개념이 없었습니다. 이 것이 모든 오해의 발단입니다.


사실 답변자가 이 홈을 운영하기 전에 이미 김희준 선생님은 대구공회 목회자로서 이 연구소보다 낫고 좋은 자료를 만들고 공개하고 운영을 하리라고 짐작을 했는데 이 홈을 개설할 때 김희준 선생님의 활동이 없어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참고로 '메모' 관련 당시 상황을 세밀히 알고 바로 옆에서 함께 이런저런 말들을 했던 이들의 책임자는 답변자를 1997년에 10여 건으로 고발한 분이고, 또 한 분은 이 홈에 자료를 주니 차라리 파묻어 없애겠다며 벼르고 있는 부공2의 김 목사님입니다. 그리고 지금 가장 억울하다는 분은 대구공회에 속하여 윗글을 공개한 분이니 답변자에 대해서는 조금도 우호적일 수 없는 분들이 이렇게 즐비합니다. 반면에 답변자를 위해 한 마디라도 해 줄 수 있는 분은 답변자와 호적상 가족이어서 그 분들이 실제 정직하게 말씀을 한다 해도 남들이 믿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일은 일방적으로 김 선생님께 유리합니다. 비록 김 선생님이 거짓말을 했을지라도 당시 주변 사람들은 모두가 현재 김 선생님 편을 적극 들어 주고 그리고 답변자를 아주 구석에 몰아 넣고 좋아 할 입장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답변자는 확실하게 말씀 드립니다. 당시 이야기를 자세히 다 설명해도 좋습니까? 그렇다면 여러 다른 자료로 설명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나가지는 않을 듯합니다. 좀 기다려 보겠습니다.


- 다시 설명 드리지만


'메모'의 기초 작업은 김희준 선생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작업한 그대로는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방향은 2 가지로 크게 나뉘었습니다. 김희준 선생님의 수고는 별도로 한 형태로 서부교회에 아주 크게 유행을 했고, 책자화 되는 것은 답변자 때문에 김 선생님이 보실 때는 답변자에 의해 김 선생님의 수고가 꺾였다 보일 것이고 답변자가 볼 때는 김 선생님의 내용이 그대로 나가면 큰 일 날만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메모'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출간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답변자에 대해 섭섭한 마음이 있어 비판적인 글을 적었다면 김 선생님 입장으로서는 그렇게 표현하고도 남을 만하다고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공은 공, 사는 사입니다. 6.25 전쟁의 사상자를 다 조사하고 그로 인해 땅을 치는 유가족과 피해자 조사를 다 기술하고도 그 시작을 북침이냐 남침이냐 둘 중에 어느 것으로 적느냐라는 단 한 줄은 나머지 조사 보고서 수천 수만 페이지 전부를 정반대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 옵니다. 이런 점에서 김 선생님의 기술은 전부 오해입니다.


이 홈의 입장을 조금 더 잘 밝히는 방법은 있으나 김 선생님은 현재 아마 목사님으로서 활동하고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정도에서 대화를 그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만일 그 쪽에서 원하거나 이 글에 대한 추가 내용이 들려 진다면 이 곳에서 더 자세하고 많은 이야기를 적게 될 것 같습니다. 일단 거론 된 내용에 대해서는 시간을 갖고 다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장소는 /초기화면/총공회/문답/ 게시판으로 옮겨 잇겠습니다.


5. 이 곳은 공개주의입니다.


이 곳은 이 노선 연구에 필요한 자료는 누구에게 유불리를 떠나 항상 있는 그대로 다 공개해 왔습니다. 답변자를 심각하게 꾸중하는 내용도 녹음 자료와 함께 타이핑한 자료 그대로 다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 답변자에게는 이 땅 위에 사는 날까지 늘 회개할 기회와 조심을 시키기 때문에 답변자를 위해 답변자에게 수치 되는 내용을 기쁜 마음으로 포함 시키고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다른 분들이 책망 받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분들도 중생 된 성도요 답변자처럼 자기 잘못을 고치고 갈 소망에 불 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설교 자료가 아닌 일반 자료도 이 노선 연구에 직간접으로 필요하다는 점에서 개인의 단점이나 잘못을 피하지 않고 공개하여 왔습니다. 답변자에 해당 된 자료는 어떤 경우라도 한 번 거론 되면 그 내용을 가루거나 순화 시켜 본 기억은 없습니다. 대신 일반 자료 중에서 타인의 단점이나 잘못이 거론 된 경우, 가끔 여러 면을 생각하여 표현을 순화하거나 답변자가 거론을 피해 본 적은 있습니다. 만일 당사자가 답변자처럼 자신의 단점이나 잘못을 공개해도 좋다는 입장을 밝혀 준다면 이 홈은 이 노선 연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관련 모든 내용을 공개 위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희준 선생님이 지금은 목회를 하고 계실 터인데 대구공회 홈에 그런 기록을 올려 놓으셨다면 공개 비판에 해당합니다. 그 글에 대해 답변자는 다음 내용으로 전체 해명만 간단히 하고 싶습니다. 혹시 그 쪽에 질문하여 답변자가 당시 상황을 다 설명해도 좋다고 하신다면 관련 내막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질문자 님이 쓰신 내용 <<

:

: 실수로 공개글로 올라갔네요.

:

: 본의아니게 이렇게 되었습니다.

:

:
메모
아래의 글에 대하여 이영인 목사님의 입장을 간단히 여쭙고 싶습니다.

대구공회 홈페이지의 글중에 읽다가 발췌한 것입니다.

혹 아래의 글을 직접 공개하시고 직접 해명하실 필요가 있으신지는 목사님께서 판단하셔서 처리하시면 되겠습니다. 제가 직접 공개글로 올리고 싶지는 않아서요.


제목 : 고 백영희 목사님 설교 요약 메모 비사


이것은


서부교회 편집실에서 발간했던 메모에 얽힌 이야기이다.


백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받고 있던 나는


설교의 요점을 요약한 내용 몇 가지를 A4용지에 기록하여 일하는 자리의 벽에 붙여 놓았었다.


어느날 문석표 목사가 벽에 붙어 있는 설교 요약이 적힌 것을 보고


"이게 뭡니까?" 라고 물었고


나는 "목사님 설교의 핵심을 요약해 놓은 것입니다."라고 했더니


문석표 목사는 "그거 복사해 줄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고


나는 편집실장의 동의를 얻어 복사를 해 주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것을 요약해 놓은 것을 복사해 달라는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 많이 생겨났다.


내가 메모의 내용을 바꾸어 붙여 놓으면


그것을 또 복사해 달라고 하는 요청이 줄을 잇는 일이 되풀이 되고 있던 어느날 백영희 목사님이 나를 부르셨다.


5층으로 올라가 "편집실 김희준입니다. 목사님께서 부르셔서 왔습니다."라고 하자


나와서 문을 열어주시며 "들어오너라"라고 하셨다.


그런데 문을 여신 목사님은 종이 한 장을 손에 들고 계셨다.


"이리 와 앉아라"


"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너, 이거 네가 한 거냐?"라고 하시며 손에 들고 계시던 종이를 보여 주셨는데


설교를 요약해서 복사한 것이었다.


"네"라고 대답했더니


목사님은 미소를 머금은채 메모 종이를 잠시 보시더니


"너 이런 거 더 있나?"라고 하셨고


"네, 조금 더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더니


"그거 다 모아서 가져와 봐라"라고 하셨다.


며칠 후 설교 요약 메모를 갔다 드렸더니


"너 이거 책으로 만들어라"고 하셨다.


며칠이 지난 후 메모 작업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보자고 하셔서


메모 가본을 만들어 다시 목사님께 가져갔더니


"이거 양이 좀 적은 거 같은데 더 많이 모아봐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내 설교에 너처럼 은혜를 받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것을 해 놓은 사람이 있을 것이니


직원들에게 말을 해서 최대한 많이 모으라"고 하셨다.


나는 자료 수집을 위해 교회의 직원들(편집실, 중간반, 행정실, 주일학교)에게 내용을 전달했으나


당시 주일학교 총무로 있었던


장영목 전도사의 부인 음성희 선생만 요절지 노트에 다섯 가지를 적어서 가져왔을 뿐이었고


나는 필기 노트에 있는 설교 메모를 좀 더 정리하여 내용을 추가하였다.


그리고 또 다시 얼마 시간이 지난 후


목사님께서 다시 메모 작업의 진척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물으셨다.


"자료를 모으기 위해 직원들에게 말했으나 음성희 선생 외에는 아무도 가져오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그래! 내 설교에 은혜를 받는다고 하면서 이런 것 정리하는 사람이 그렇게도 없어!"라며 실망감을 나타내셨다.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나


기도실을 다녀오시던 목사님은 나를 부르시고 메모 자료 수집이 어떻게 되어가는가를 물으셨다.


더 가져온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직원들한테 말을 안 한 것 아니야?"라고 하시기에


"아닙니다. 교회의 직원에게는 모두 알렸습니다."라고 하였더니


그때 마침 옆에 있던 이영인 선생이


"아닙니다. 우리는 메모 자료 수집에 대해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영인 선생의 그 말은 나를 모함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직원들에게 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장영목 전도사의 부인 음성희 선생은 다섯 개라고 할지라도 가져올 수 있었겠는가?


(이영인 선생은 나에게 잘못을 몇 번 지적받은 후에


"김 선생님은 실수를 안 하는지 두고 봅시다."라고 말하며 나를 벼르고 있었다.)


이영인 선생의 말에 나는 "분명히 전 직원에게 알렸습니다."라고 대답하였고


목사님은 "그만 됐다. 그대로 책을 만들어라"라고 하시며


"이 책을 팔아서 나오는 수익금은 니가 다 가져라"고 하셨다.


더 이상의 자료를 제출하는 사람이 없고,


내게 있던 것만으로 메모 소책자를 발간하기 위해 편집을 하고 있던 어느날 이영인 선생이 찾아왔다.


그리고는 "목사님께서 메모 작업을 나에게 맡기라고 하셨다."고 하면서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냥 내어서는 안 되고


교리적으로나 신학적 등의 면에서 문제가 없도록 오랜 시간 검토를 하고 책을 발간해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이영인 선생에게


"정말 목사님이 이 작업을 이영인 선생님께 맡기라고 하셨습니까?"라고 물었고


이영인 선생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세 번 똑 같은 질문을 하였고 이영인 선생은 그렇다고 대답하여 메모 편집 자료를 넘겨주었다.


나는 이영인 선생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목사님이 일처리를 이렇게 하지 않을 분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영인 선생이


"이런 것은 교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기에 신중하게 출간을 해야 한다."는 말을 목사님께 드렸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목사님은 편집 작업까지 넘겨 받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나의 편집 작업에 문제가 없더록 교리적인 면으로 함께 검토하고 의논을 하여 도와주라는 것이었다.


실수나 빈틈이 없는 행동을 지향하신 목사님이셨기에


편집 작업 자체를 내가 하지 못하도록 지시하셨다면


나에게 직접 그 작업을 중단하고 다른 사람에게 넘기라고 말씀하시든지


이영인 선생에게 그 작업을 넘기라고 하셨을 것인데


나에게 목사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메모의 편집과 발간은 내가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계셨다.


또한


설교 메모가 나로 말미암아 교단에 퍼지기 시작했던 것을 목사님이 아셨고


나에게 메모를 만들게 하신 분이셨는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작업을 넘기게 하면서


직접 나에게 말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해 말씀하실 분이 아니었고


그것을 출간해서 수익금을 니가 갇도록 하라는 말씀을 하신 이후에는


메모 작업의 진척을 나에게 한번도 물으신 적이 없으며


편집 작업을 넘긴 후에도 이영인 선생에게 작업을 넘겼는지 확인하는 질문을 하신 일이 없다.


나는 속으로


"메모의 판매 수익금을 내가 모두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을 직원들이 있는 앞에서 하셨기에


그 수익금을 내가 가지지 못하도록 시기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돈에 얽힌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마음이 없었으므로 편집하던 것을 넘겨주었고


메모의 마지막 마무리 편집 작업은 이영인 선생의 동생인 이신영 씨에게 맡겨졌다.


분명히 이영인 선생은


문제가 없도록 신중하게 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검토를 해야 한다고 말을 했었는데


그 작업물을 내게서 받아간지 불과 한 달 여만에 메모의 순서만 조금 바꾸어 메모 소책자를 발간했다.


마치 엄청나게 오랜 시간 연구하고 검토하고 해서


언제 출간할 수 있을지 기약도 없는 것처럼 말을 했는데


편집하고 있던 자료를 넘겨 받은 불과 한달 남짓 지나 메모를 발간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애정이 깃든 메모가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출간이 되었다.


그리고 발간된 메모는 순식간에 총공회 산하의 많은 성도들에게 사랑받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비록 메모 책자의 발간을 다른 사람이 했을지라도


그 내용은 모두 내 손으로 기록한 것들이다.


음성희 선생이 준 다섯 가지도 열여섯가지 구원과 같이


이미 요절지로도 내어준 것들이었으며, 모두 나의 메모 속에 포함된 것들이었다.


총공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주옥같이 생각하는 메모가 그렇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메모가 세상에 나오는 과정에 이런 비사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메모의 첫페이지 일러두기에


메모는 백 목사님의 설교를 필기한 몇 교인들의 4년치 메모를 모은 것이라 하였으나


실제로는 나 한 사람의 메모만 기록되어 있다.


이런 일들이 되풀이 되며 백 목사님은 나에게 많은 사랑과 애정을 보여주셨다.


그리고는


"너는 적어도 500명이 넘는 교회를 맡아 목회를 해야 한다"는 말과


"너는 큰 하나님의 큰 종이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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