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다른 옳고 그름에 대한 상대 비교적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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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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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0 00:00
총공회 교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함께 고민을 해보며 배운바를 정리해 봤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은 자는 단번에 영원히 완전히 죄사함과 중생을 받고 천국을 갑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기본 진리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은 이후에도 우리는 옛사람의 악성 악습의 죄가 여전히 내 속에서 역사하고 죄를 짓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죄를 짓는 자신을 보며 과거의 원죄와 본죄의 값으로 지옥을 가야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고 천국을 가게 되었는데, 예수 믿은 이후에 계속 되는 죄에 대해 양심의 고통을 느끼며 절망하고 낙망하게 되고, 믿은 이후의 죄와의 투쟁과 말씀 순종의 노력에 대한 가치성과 의미를 상실합니다.
그 절망과 낙망 속에서 보통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첫째는, 내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는 믿음은 아직은 주관적인 착각일 뿐이다.
둘째는, 요일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한다 했는데, 예수 믿은 이후에도 계속 죄를 지으니 나는 원래 택함받은 사람이 아니다.
셋째는, 예수 믿고 구원 얻은 것은 사실이나 히6:4-6에서와 같이 다시는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는 타락한 사람이 되어 구원이 상실되어 다시 지옥 갈 죄인이 되었다.
이상의 논리로 본다면 성경상의 바울도 다윗도 베드로도 그 누구도 구원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믿은 이후 바울도 나는 죄인의 괴수며 자신 속의 죄의 법과 성령의 법이 날마다 싸우며 투쟁한다고 고백을 한 것을 압니다. 베드로도 믿은 이후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을 주로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다가 바로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사탄이 되기도 했습니다. 성경의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다가 순간 악령의 인도를 받다가 하는 반복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바울의 죄 투쟁의 수준과 일반의 죄 투쟁의 수준과 종류는 무한히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한다 했는데, 모세도 바울도 베드로도 다윗도 아브라함도 믿은 이후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면, 과연 범죄치 안는 자가 반드시 있는데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 범죄치 않는 자는 중생된 영이며 새사람입니다.
믿은 이후, 중생 이후 우리의 영은 범죄치 않고, 우리의 마음과 몸이 죄를 짓습니다. 중생 이후 우리의 마음이 중생된 영에 순종하면 영생의 것이 되고, 악령에 순종을 하면 모두 지옥불에 떨어질 심판의 요소가 됩니다. 이때의 사람의 마음과 혼이 짐승의 마음과 혼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상에서 질문자께서 벧후2:12의 “이성 없는 짐승”의 구절을 통해서 짐승의 이성이 없다면 사람과 짐승의 마음과 혼이 같다는 교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 된 것 같습니다. 마음과 혼과 이성은 짐승에게 없는 것이고, 사람과 짐승을 구별하는 요소이니, 사람의 마음과 혼과 이성은 짐승의 마음과 혼과 이성과는 전혀 다른 영이 아니겠냐는 생각이 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요일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한다 했는데, 믿은 이후에도 계속 죄를 지은 우리와 성경의 성도들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아닌 불택자가 되는 해결없는 혼동이 계속 됩니다.
혼란과 혼동 속에서 확정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완전자의 말씀이며 한 치의 오차나 오류 없는 완전한 말씀입니다. 말씀의 한 획도 필요 없는 것이 없으며,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말씀의 가치의 상대성이 있는 것도 아니며, 우리의 구원에 더하거나 덜하거나 할 것이 없는 완전한 말씀이 성경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 받은 구원도 중생도 완전하며,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범죄치 않는다는 말씀도 모두 다 오류 없는 완전한 말씀이라 확정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오류 없는 진리의 말씀으로 볼 때, 벧후 2:12의 “이성 없는 짐승”과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에서의 이성은, 마치 북한 공산주의의 이성과 자본주의 남한의 이성이 다른 것과 비교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옳고 그름이라는 이성의 잣대를 가지고 남한을 볼 때, 남한은 이성이 없는 미치광이 이고, 남한의 이성으로 북한의 전반을 볼 땐 이성을 잃은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하나님이 가지시고 계시해 주신 옳고 그름과 선악이라는 이성을 통해서 악령과 불택자의 이성을 볼 때, 그것은 마치 이성이 없는 미치광이로 보여집니다. 세상 불신자의 이성으로 만들어진 철학과 종교와 세상이 추구하고 연구하는 인간의 모든 이성의 산물은 불신 인간과 악령의 이성으로 존재하지만 죄 아래 있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하는 “이성 없는 짐승”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짐승에게 이성이 없다는 벧후2:12의 표현은 짐승에게 마음, 혼, 이성이라는 요소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상대하여 비교할 때 이성이 없는것과 같다고 보여지는 부분을 가지고 없다고 표현한 것이지, 짐승에게 마음이나 혼이나 좋고 싫은 이성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각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각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자기에고 좋고 나쁘면 선악이라는 구분과 판정을 통해서 이성이 작동을 하고, 나에게 좋고 옳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폭력과 살인과 독재를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이성이니, 이런 정도의 인간 이성의 그 이상은 동물에게서 살펴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만 보더라도 주인을 따르고 주인의 기분을 살피고 자신에게 무엇을 시키고 요구하는지를 파악하고, 아무리 주인이라도 자신에게 싫고 해가 되는 행동을 하면 주인을 물수도 있는 이성이 있는 것이 동물이기도 합니다.
자연현상을 통해서도 자세히 살피면 동물에게나 인간에게나 이성이 존재하는 것을 분명히 발결할 수 있고, 이성 없는 짐승이라는 표현은 상대적이고 비교적인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전도서 3:21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알랴
>> 성경1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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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네요... 없다는 말에는 없어서 없는 것도 있고 약한 것을 없다 하는 것도 있고 또 있어도 잘못됨을 말하는 경우도 있네요. 찾아보려면 너무 많은데 몇 곳만 봤습니다. 좋은 의견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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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후서 11:23
: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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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살로니가전서 5:14
: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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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소서 4:19
: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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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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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사람이 아주 엉뚱한 행동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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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이 정신이 있나? 없나?" 라고 말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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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때 사람보고 정신이 없다고 할 때
: : 그 사람의 마음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 : 오히려 논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함을
: : 지적하는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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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벧후 2:12의 이성없는 짐승을 말할 때
: : 헬라어 원문과 영어 번역 성경을 참고하면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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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SV 2 Peter 2:12 But these, like irrational animals, creatures of instinct,
: : NAS 2 Peter 2:12 But these, like unreasoning animals,
: : NIV 2 Peter 2:12 They are like brute beasts, creatures of instin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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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론적으로 벧후 2:12, 유 1:10 등의 "이성없는 짐승"은
: : 짐승에게 이성(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an animal without reason)는 것이라기 보다는
: : 매우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짐승도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요소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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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마음으로 인간이 하는 것과 같은
: :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정신작용"이 없음을 표현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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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yilee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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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노선의 교리 체계를 어느 정도 파악했다면 벧후2:12 성구는 해결이 가능할 듯합니다.
: : : 교리는 체계화 된 성경 깨달음을 말하니 체계화는 몸이라는 말이고 교통 사고 현장에서 인체로부터 떨어 져 나온 한 부분이 발견 되었다면 어떻게 맞춰 봐도 결국은 맞아 질 것입니다. 해부학 전공자는 바로 알아 볼 것이고 우리처럼 모르는 사람은 한참 뒤적일 것이나 그렇게 어려울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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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다 함께 배우고 함께 발전하자는 뜻에서, 또 배우되 따르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평소 답변하는 전담자 외에 다른 분들의 지도나 의견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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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신학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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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베드로후서 2:12
: : : :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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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백영희 교리체계의 특징 중에 특징은 사람의 마음을 영적 존재로 보지 않고 물질로 본다는 것인데는 이는 파격적이며 누구와 대화해도 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가 벧후2:12을 보며 의문이 듭니다. 짐승에게는 이성이 없다고 했습니다. 백영희 교리는 마음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같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또 이성이나 생각이나 양심이나 이런 것을 영이 아니고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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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베드로후서 2장 12절에서 '이성 없는 짐승'은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은 자는 단번에 영원히 완전히 죄사함과 중생을 받고 천국을 갑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기본 진리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은 이후에도 우리는 옛사람의 악성 악습의 죄가 여전히 내 속에서 역사하고 죄를 짓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죄를 짓는 자신을 보며 과거의 원죄와 본죄의 값으로 지옥을 가야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고 천국을 가게 되었는데, 예수 믿은 이후에 계속 되는 죄에 대해 양심의 고통을 느끼며 절망하고 낙망하게 되고, 믿은 이후의 죄와의 투쟁과 말씀 순종의 노력에 대한 가치성과 의미를 상실합니다.
그 절망과 낙망 속에서 보통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첫째는, 내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는 믿음은 아직은 주관적인 착각일 뿐이다.
둘째는, 요일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한다 했는데, 예수 믿은 이후에도 계속 죄를 지으니 나는 원래 택함받은 사람이 아니다.
셋째는, 예수 믿고 구원 얻은 것은 사실이나 히6:4-6에서와 같이 다시는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는 타락한 사람이 되어 구원이 상실되어 다시 지옥 갈 죄인이 되었다.
이상의 논리로 본다면 성경상의 바울도 다윗도 베드로도 그 누구도 구원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믿은 이후 바울도 나는 죄인의 괴수며 자신 속의 죄의 법과 성령의 법이 날마다 싸우며 투쟁한다고 고백을 한 것을 압니다. 베드로도 믿은 이후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을 주로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다가 바로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사탄이 되기도 했습니다. 성경의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다가 순간 악령의 인도를 받다가 하는 반복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바울의 죄 투쟁의 수준과 일반의 죄 투쟁의 수준과 종류는 무한히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한다 했는데, 모세도 바울도 베드로도 다윗도 아브라함도 믿은 이후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면, 과연 범죄치 안는 자가 반드시 있는데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 범죄치 않는 자는 중생된 영이며 새사람입니다.
믿은 이후, 중생 이후 우리의 영은 범죄치 않고, 우리의 마음과 몸이 죄를 짓습니다. 중생 이후 우리의 마음이 중생된 영에 순종하면 영생의 것이 되고, 악령에 순종을 하면 모두 지옥불에 떨어질 심판의 요소가 됩니다. 이때의 사람의 마음과 혼이 짐승의 마음과 혼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상에서 질문자께서 벧후2:12의 “이성 없는 짐승”의 구절을 통해서 짐승의 이성이 없다면 사람과 짐승의 마음과 혼이 같다는 교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 된 것 같습니다. 마음과 혼과 이성은 짐승에게 없는 것이고, 사람과 짐승을 구별하는 요소이니, 사람의 마음과 혼과 이성은 짐승의 마음과 혼과 이성과는 전혀 다른 영이 아니겠냐는 생각이 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요일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한다 했는데, 믿은 이후에도 계속 죄를 지은 우리와 성경의 성도들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아닌 불택자가 되는 해결없는 혼동이 계속 됩니다.
혼란과 혼동 속에서 확정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완전자의 말씀이며 한 치의 오차나 오류 없는 완전한 말씀입니다. 말씀의 한 획도 필요 없는 것이 없으며,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말씀의 가치의 상대성이 있는 것도 아니며, 우리의 구원에 더하거나 덜하거나 할 것이 없는 완전한 말씀이 성경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 받은 구원도 중생도 완전하며,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범죄치 않는다는 말씀도 모두 다 오류 없는 완전한 말씀이라 확정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오류 없는 진리의 말씀으로 볼 때, 벧후 2:12의 “이성 없는 짐승”과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에서의 이성은, 마치 북한 공산주의의 이성과 자본주의 남한의 이성이 다른 것과 비교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옳고 그름이라는 이성의 잣대를 가지고 남한을 볼 때, 남한은 이성이 없는 미치광이 이고, 남한의 이성으로 북한의 전반을 볼 땐 이성을 잃은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하나님이 가지시고 계시해 주신 옳고 그름과 선악이라는 이성을 통해서 악령과 불택자의 이성을 볼 때, 그것은 마치 이성이 없는 미치광이로 보여집니다. 세상 불신자의 이성으로 만들어진 철학과 종교와 세상이 추구하고 연구하는 인간의 모든 이성의 산물은 불신 인간과 악령의 이성으로 존재하지만 죄 아래 있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하는 “이성 없는 짐승”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짐승에게 이성이 없다는 벧후2:12의 표현은 짐승에게 마음, 혼, 이성이라는 요소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상대하여 비교할 때 이성이 없는것과 같다고 보여지는 부분을 가지고 없다고 표현한 것이지, 짐승에게 마음이나 혼이나 좋고 싫은 이성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각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각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자기에고 좋고 나쁘면 선악이라는 구분과 판정을 통해서 이성이 작동을 하고, 나에게 좋고 옳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폭력과 살인과 독재를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이성이니, 이런 정도의 인간 이성의 그 이상은 동물에게서 살펴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만 보더라도 주인을 따르고 주인의 기분을 살피고 자신에게 무엇을 시키고 요구하는지를 파악하고, 아무리 주인이라도 자신에게 싫고 해가 되는 행동을 하면 주인을 물수도 있는 이성이 있는 것이 동물이기도 합니다.
자연현상을 통해서도 자세히 살피면 동물에게나 인간에게나 이성이 존재하는 것을 분명히 발결할 수 있고, 이성 없는 짐승이라는 표현은 상대적이고 비교적인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전도서 3:21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알랴
>> 성경1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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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네요... 없다는 말에는 없어서 없는 것도 있고 약한 것을 없다 하는 것도 있고 또 있어도 잘못됨을 말하는 경우도 있네요. 찾아보려면 너무 많은데 몇 곳만 봤습니다. 좋은 의견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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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후서 11:23
: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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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살로니가전서 5:14
: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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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사람이 아주 엉뚱한 행동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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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이 정신이 있나? 없나?" 라고 말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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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때 사람보고 정신이 없다고 할 때
: : 그 사람의 마음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 : 오히려 논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함을
: : 지적하는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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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벧후 2:12의 이성없는 짐승을 말할 때
: : 헬라어 원문과 영어 번역 성경을 참고하면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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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SV 2 Peter 2:12 But these, like irrational animals, creatures of instinct,
: : NAS 2 Peter 2:12 But these, like unreasoning animals,
: : NIV 2 Peter 2:12 They are like brute beasts, creatures of instin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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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론적으로 벧후 2:12, 유 1:10 등의 "이성없는 짐승"은
: : 짐승에게 이성(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an animal without reason)는 것이라기 보다는
: : 매우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짐승도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요소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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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정신작용"이 없음을 표현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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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노선의 교리 체계를 어느 정도 파악했다면 벧후2:12 성구는 해결이 가능할 듯합니다.
: : : 교리는 체계화 된 성경 깨달음을 말하니 체계화는 몸이라는 말이고 교통 사고 현장에서 인체로부터 떨어 져 나온 한 부분이 발견 되었다면 어떻게 맞춰 봐도 결국은 맞아 질 것입니다. 해부학 전공자는 바로 알아 볼 것이고 우리처럼 모르는 사람은 한참 뒤적일 것이나 그렇게 어려울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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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다 함께 배우고 함께 발전하자는 뜻에서, 또 배우되 따르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평소 답변하는 전담자 외에 다른 분들의 지도나 의견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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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베드로후서 2:12
: : : :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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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백영희 교리체계의 특징 중에 특징은 사람의 마음을 영적 존재로 보지 않고 물질로 본다는 것인데는 이는 파격적이며 누구와 대화해도 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가 벧후2:12을 보며 의문이 듭니다. 짐승에게는 이성이 없다고 했습니다. 백영희 교리는 마음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같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또 이성이나 생각이나 양심이나 이런 것을 영이 아니고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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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베드로후서 2장 12절에서 '이성 없는 짐승'은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